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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플레이야인터뷰 피타입 '한국힙합', 폭력적이고 잡종적이지 않게 로컬라이징에 성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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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입ㅣ'한국힙합', 폭력적이고 잡종적이지 않게 로컬라이징에 성공했나?

 힙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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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823 2015-04-20 20:56:23



HIPHOPPLAYA (이하 힙플) : 이번 앨범의 아트워크나 비디오들, 직접적으로 방향이나 콘티를 염두한 채로 콜라보한 건가

피타입 : 일단, 앨범의 아트워크의 경우에는 전적으로 내가 진두지휘 했다. 물론, 아티스트들의 노하우나 작업과정들을 내가 모두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 머리 속의 상상력으로 로우디가(Row Digga)와 윤협이라는 두 아티스트를 엮어버렸던 거지만, 그 둘이 합쳐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오더를 줬다. 당연히 윤협이가 뉴욕에서 활동을 하며, 현재 아티스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로우디가 역시 글로벌한 활동을 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한몫 했던 것 같다. 아트워크는 그 둘을 엮으면 시너지가 엄청 나겠다라는 생각에서 시작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대한의 감별을 통해 둘의 콜라보를 성사시켰다. 사실, [Heavy Bass]가 거론될 때마다 늘 찝찝했던 게 아트워크였는데, 이번 아트워크는 매우 만족한다.

‘반환점’이나 ‘Timberland ‘6’, 그 이후에 광화문까지 여러 아트들은 실제로 내가 다 핸들링한 작업물들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나도 작업자들의 바이브를 조금 더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돈키호테2’의 경우에는 회사의 A&R 스탭들의 도움이 컸다. 실제로, 강승원 감독이 어거스트 프록스(August Forgs)에서 독립한 뒤 어떤 작품이 나올지 내 머릿속에 좀 흐릿했었기 때문에, 스탭들과 옥신각신 끝에 비디오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힙플 : 우선, 헤비베이스에 킵루츠, 아티슨비츠(사탄), 피타입이 있었듯이 이번 앨범에서도 프로듀서 라인업이 꽤나 중요했을 것 같다. 섭외 과정들이 궁금하다.

피타입 : 이번 앨범은 [Heavy Bass] 시절의 바이브로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앨범이다. 그 바운더리에서 크게 다른 옵션들 까지는 생각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요새 많은 프로듀서들이 내가 만족할 정도의 하드한 붐뱁을 잘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옵션이 딱히 많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랩 피쳐링을 섭외할 때 기준도 그랬지만, 프로듀서 섭외 역시 현재 내 주변에서 지금 나와 같이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바이브를 위주로 컨택했다. 때문에 섭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일단, 패시네이팅(fascinating a.k.a MC성천)형 같은 경우에는 지난 3집을 놓고 봤을 때, 일리네어(Illionaire) 애들이랑 같이했던 ‘OST : Respect' 비트가 나한테는 앨범에서 가장 큰 만족치를 줬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작업을 하게 됐다. 그렇게 스타트를 페시네이팅형의 '반환점'으로 끊고 나니까, 술술 풀리더라. 사실, 앨범을 만들 때 아티스트 입장에서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가 프로듀서진의 구성이다. 프로듀서진을 브로드하게 벌렸을 때는 당연히 프로덕션의 다양함을 가져갈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3집 때와 같은 우를 범하기 싫었다. 개인적으로 [Rap] 앨범을 돌아봤을 때 ’일관성 없이 다양한 스타일을 개인이 적응하는데 급급했던 앨범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힙플 : 지난 3집 앨범은 성에 안찼던 건가?

피타입 : 맞다. 그래서 ‘프로듀서를 너무 많이 가지는 말자‘라는 생각이 있었고, 1집 때처럼 킵루츠(KeepRoots)형이 메인을 잡고, 상당부분 작/편곡을 겸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패시네이팅 조차도 사실 처음에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다만,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양한 프로듀서들에게 눈이 갔을 뿐이다. (웃음) 그렇게 눈을 돌리면서 ’어디 더 프레쉬한 사람 없을까’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던 프로듀서 중 한 명이 디프라이(Deepfry)였던 거고. 그 당시만 해도 디프라이는 오로지 쇼미더머니 때 가리온의 편곡자로 노출됐던 것 외에는 노출된바가 전혀 없었던 친구였다. 그런데, 마이노스(Minos)의 소개로 비트를 받아봤는데, 얘가 과연 20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붐뱁의 느낌이 잘 만들어져 있더라. 구식을 추구하면서도 패기 있게 잘하는 친구였다. 아쉽게도 샘플클리어런스 문제로 디프라이의 비트를 많이 셀렉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번 앨범은 처음부터 그런 부분에서 오점을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터라 더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힙플 : 정작 킵루츠의 프로듀싱 비중이 그렇게 커 보이진 않는다.

피타입 : 사실, 피타입 앨범에 킵루츠형의 비트가 딱 하나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물론, 킵루츠 비트를 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마지막까지도 조율을 했었지만, 어느 순간 킵루츠형에 대한 어떤 애착이나 집착이 과연 내 욕심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결국, 한 곡만 넣게 됐다.


힙플 : 듣고 보니 프로듀서 섭외는 결국, 붐뱁의 달인 색출작업 이었던 것 같다. (웃음) 그런 점에서 프로듀서 키비(Kebee)의 참여도 흥미롭다.

피타입 : 그래도 90’s 스타일의 바이브를 추구하는데 ‘재지한게 너무 적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재즈샘플을 통 샘플링하자니 그 방식도 좀 진부한 것 같고 색다른 바이브를 찾으려고 눈길을 돌리고 있을 때 키비의 ‘Vibe Versa’ 비트를 고르게 된 거다. 키비한테는 딱 한마디 했다. ‘야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꿈은 일매릭을 만드는 건데, 큐팁(Q-Tip)이 없어 (웃음)’ 그랬더니 결과적으로는 딱 원하는 느낌의 비트가 나왔지. 그 외에도 소리헤다나 마일드 비츠(Mild Beats)형, 험버트(Humbert) 같은 친구들이랑도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실제로 마일드 비츠형한테는 ‘이번 앨범에 형 비트 없이 붐뱁을 완성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을 정도인데, 이상하게 내가 마일드 비츠형이랑 작업을 하려고 할 때면, 일두형의 감정기복이 다운모드가 되더라 (웃음) 그래서 이번에도 거의 여름 한 철 내내 시도하고 왔다 갔다 하다가 마지막에는 내려놓게 된 케이스다.


힙플 : ‘붐뱁은 이름을 얻고 스탠다드를 내줬지’라는 가사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내가 어렸을 때는 붐뱁이라는 단어를 굳이 쓰지는 않았거든.

’붐뱁은 이름을 얻고 스탠다드를 내줬지 난 노래를 얻고, 악마와 계약을 맺었지’ – 최악의 남자 中


피타입 : 맞다. 근데, 그거는 어떻게 보면 시간이 흐르고 이 문화 안에서 표현되는 스타일들이 점점 누적이 되는 순간 어쩔 수 없어진 것 같긴 하다. 어쨌거나 그 현상 자체는 재미있었다. 그러게 말이다..(웃음) 붐뱁이 하나의 스타일화 된 순간 경계할건 딱 하나인 것 같다. ‘붐뱁이 원래 스탠다드야 모두 붐뱁으로 복귀해야 돼!’라는 얘기가 아니라, 어떤 하나의 음악 내지는 그 음악을 둘러싼 문화 속에서 서브 장르들을 계속 칼로 두부 썰기 하듯이 갈라놓는 건, 자칫 위험하고 쓸데없는 관점일수 있다는 거다.

실제로 주변에 어린 친구들한테 항상 얘기할 때 예를 드는 게 그런 거다. ‘너 소울하고 펑크 구분할 수 있냐?’ 혹은, ‘스티비원더(Stevie Wonder)는 소울의 신이야 아니면, 펑크의 아버지야? 그것도 아니면 알앤비의 선구자야?’ ‘제임스브라운(James Brown)은 펑크의 황제인 거야? 소울의 신인 거야?’ 이걸 모두 구분할 수 있나? 나는 못 하겠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런 구분의 가치들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힙합 역시 마찬가지겠지.

나는 되게 깜짝 놀랐던 게 재즈힙합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때다. (웃음) 왜 그게 하나의 당당한 서브 장르처럼 얘기가 되어야 하는 거지? 그냥 성향이고 색깔인 건데.. (웃음) 사실, 붐뱁이 스탠다드로 있을 때는 재즈 샘플을 써서 그런 바이브를 만들어 낸다고 해서 재즈힙합이라고 부르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바이브 자체가 하나의 서브 장르로 자리를 잡으려고 움트더라. 그 모습이 굉장히 어색했다. 마치, 크레이티브 디렉터, 아트 디렉터,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혹은 카피라이터 같은 직업들이 생겨났듯이 내 입장에서는 ‘이게 뭐야? 뭐 이렇게 많아, 왜 이렇게 타이틀에 집착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쩌면 그건, 계속 직업을 창출해내면서 리치마켓을 공략해야 하는 어떤 시스템의 노예 같은 일면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뭐, 그런 생각 정도다. 어쨌거나, 붐뱁이 스탠다드를 내줘버린 건 이미 그렇게 된 거고, 그거에 대해서 짜증난다거나 내지는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다양한 것들을 소화하려고 할 때 그 다양한 것의 중심에 존재해야 되는 건, 예술가로서, 혹은 이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에티튜드고, 이런 것들은 흔들림 없이 항상 있어야 되는 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코스프레가 안 되는 것 같다.



힙플 : 이번 앨범 작업기간이 꽤 길었나 보다.

피타입 : 그렇지도 않다. 보통 내 앨범의 텀을 생각하면 굉장히 짧았던 축에 속한다. 3집 이 나오고 불과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길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건, 음감회 때도 얘기를 했는데 가을, 겨울 한철을 쉬었기 때문이다.


힙플 : 한 타이밍 쉬었던 이유가 있나?

피타입 : 3집을 여름에 내놓고 그 해 가을 겨울부터 작업에 들어가서 이듬해 1월달 즈음 반환점을 내놨다. 반환점을 이미 내놓는 시점부터 이건 앨범에 싱글컷이라는 걸 마음속으로 정해놨기 때문에 그 시기부터 이미 작업이 활성화 돼있는 시점이었다. 그렇게 두더라잇랩(Do The Right Rap)으로 봄까지 달리고, 행사나 외부의 일들을 6~7월에 소화하고 나니 9월 낙엽 떨어질 무렵 이전에 작업했던 트랙들을 들었을 때는 그것들이 성에 안 찼다. 이건 뭔가.. 분명히 내가 이 작업을 시작한 동기는 3집에 대한 큰 불만을 지워버리고자 했던 거였는데, 그것들이 채워지지 않은 채 찜찜함으로 남아있었다. 그대로 진행됐다가는 또 다시 같은 우를 범할 것 같았고, 그때부터는 정말 거짓말 안하고 가사를 한 줄도 안 썼다.


힙플 : 그럼 그 기간엔 뭘 하고 지냈나?

피타입 : 생각만 했다. ‘뭐가 빈 거지?‘ 거의 한 3개월정도를 한 줄의 가사도 안 썼다. ‘뭐지? 나 지금 뭐가 만족스럽지 않지?’ 라는 생각들. 오히려 ‘반환점’이나 ‘Do The Right Rap’ 같은 곡에서는 리듬을 만드는 체계자체로 분명히 나를 더 혁신했다고는 생각을 했는데, 리듬을 바꾼 것만으로는 부족한 건가?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가을한철을 그렇게 생각만 했던 것 같다.


힙플 : 그래서 해답은 찾았나?

피타입 : 그 무렵이 지날 때 즈음, 뭔가 하나를 깨우쳤다. 그 동안 내가 내 언어를 작품의 언어로만 대해 왔다는 것. 그러니까, 내 언어들은 뭔가 정제되어있는 단어여야만 했고, 여러 가지의 상황 변수를 고려한 단어여야만 했던 거다. 한 마디로 내 단어들은 ‘갈고 닦기를 너무 많이 한 단어’들이었다. 결국에는 ‘툭 나와서 툭 뱉은듯한’ 느낌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하는 지점에 이르렀지. 그리고, 신기한 건 바로 그때 차붐이 [Original]을 들고 나왔다는 거다. ‘시발 이거야!’ 싶더라 (웃음) 내가 고민하던 그 언어를 차붐이 가지고 나온 거지. 차붐의 앨범을 듣고, 만족치가 생기는 걸 느끼면서 내가 지금 포착하고 있는 내 안의 문제가 틀리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그때부터는 조금씩 고민이 풀렸던 것 같다. 실제로 그 뒤로 몇몇 가사들은 쭉쭉 풀리기 시작했다. ‘광화문’, ‘이방인’ 같은 가사들, 정말 쉽게 쉽게 즐겁게 썼다.


힙플 : 이어지는 맥락으로 피타입의 이전 인터뷰들을 보면 아티스트로서의 피타입도 있지만, 기술자로서의 피타입이있다. 기술적인 고민을 끊임없이 해온 대표적인 아티스트 중 한 명이지 않나, 지금은 어떤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은 끝난 건가?

피타입 : 그거에 대한 답은 습관처럼, 계속 숨쉬듯이 고민을 해야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리듬 패턴을 한 번 바꿨고, 사용하는 언어의 종류를 한 번 바꿨다고 해서 내 안의 혁신이 끝났다고 하면, 나는 그날 죽어야 된다. 아티스트라는 건 그런 존재다. ‘뭘 좀 바꿔보지? 나를 어떻게 수술해보지?’ 내 안에서, 혹은 바깥에서부터 그런 불만스러운 점을 찾아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업이라고 생각한다.


힙플 : 1집 당시에는 정말 치열하지 않았나 (웃음)

피타입 : 물론, 1집 당시에는 (씬 안에)그런 고민자체가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1집을 통해 ‘그 고민을 하는 게 맞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그 고민을 하셔야 10년뒤에 고민의 결과물들이 나올 것이고, 그래야 한국힙합도 미국의 힙합처럼 멋있어집니다.’ 라고 얘기한 반면에, 지금 상황에서는 사실 라이밍 정도는 모두가 다 할 줄 알지 않나. 정말 웃긴 건, 당시에 나와 SNP식구들을 비롯해서 씬을 형성하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이를 부득부득 갈며 달려들고, 주장해서 이뤄낸 결과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라임을 쓰지 않던 사람들도 이제는 은근슬쩍 라임을 쓰지만, 그 누구도 너희들 때문에 라임을 쓴다는 말은 안 한다는 거다. 그러나 그런 은근슬쩍은 계속 일어나는 일이고, 그거를 공치사하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이 정도면 됐다고 본다. ‘됐어 그래. 이제 다들 노력은 하네, 됐네’ 싶은 거지. (웃음) 이제 와서 또다시 그 필요성을 얘기하기에는 너무 오그라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보도자료에 라임 어쩌고 들어가는 것도 싫어한다.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웃음) 너무 라임으로 포커싱하니까 다른 부분은 못 하는 것처럼 보이거든. (웃음) 내가 회사스탭들한테 금지어로 지정한 단어들 중 1세대 외 몇몇 단어들이 있는데, 이제는 라임을 추가해야 될 거 같다. (웃음)



힙플 : 말했듯이, [RAP] 앨범에서 이번 앨범으로 가장 익숙하고 잘하는 것으로 회귀한 느낌이다. 3집 [RAP] 이후 느꼈던 음악적 생각들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

피타입 : 3집을 내고 나서, 여러 인터뷰에서 겸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실 1집이나 2집 같은 경우에는 내가 향하고자 하는 지점이 명확했다. 1집 같은 경우에는 ‘왜 이렇게들 밖에 못해?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하는 마음에서 교과서를 내놓겠다는 작정을 하고 달려들었던 거였기 때문에 [Heavy Bass]는 오리지널 외에는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그 이후의 앨범은 말하자면 ‘조금 더 뿌리로 돌아가자’였다. ‘너무 힙합이라는 이름 안에만 갇혀있었던 건 아닌가’하는 고민들 말이다. 오히려 그건 랩이라는 보컬 테크닉을 좀 다양하게 어댑테이션 해보자는 시도였다. 그러고 나서 5년동안 회사생활을 했다. 그럼 그 다음 3집 앨범은 5년만에 복귀하는 앨범이 되겠지. 그런데, 그 주제에 내가 뭔가를 지향하고, 뭔가를 입증해야 되고, 주장해야 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내가 그럴 깜냥이 돼?’ 하는 회의가 들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신 있는 건 랩밖에 없었고, 그래서 제목까지도 랩이 됐던 건데, 어떻게 보면, 프로덕션면에서는 하나의 일관성 내지는 어떤 지향성을 띈다는 것 자체가 애매모호한 상태가 되어버렸던 거다. 그리고, 나는 나대로 그 상황에 적응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어쩌면, 자연스럽게 만족도가 떨어지는 결과를 낳은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1집 이후로 2집과 3집 자체가 ‘힙합이라는 단어를 내 가슴에 박아놓고 가면서 만든 앨범이었냐’한다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3집의 모호한 지점은 결국 거기서 생겼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너 뮤지션으로 복귀할거야, 아니면 힙합 아티스트로 복귀할거야?’라는 부분에서 스스로 답을 못 내렸던 거지. 3집 앨범은 ‘힙합의 키워드들을 사용하지만, 나는 과연 힙합을 하는 게 맞나?’라는 의구심을 낳았고, 거기서부터는 ‘나를 수술하지 않으면 답이 없겠다’라고 생각했다.


힙플 : ‘반환점’이라는 선공개 타이틀이 그 갈림길에서 답을 내린 시점이었나?

피타입 : 그렇다. 첫 싱글 ‘반환점’에 타이틀을 붙인 건, 힙합 본연의 모습으로 나 자신을 되돌린다는 의미가 컸다. 바로 그 시점이 내가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인 것 같다. 힙합으로 스스로 인식하고 확고한 태도로 돌아온다는 것


힙플 : 그럼 그 모든 맥락에서 이번 앨범은 어떤가?

피타입 : 그런 점에서 이번 앨범은 적응을 끝낸 앨범이다. 다만, ‘요새 맛은 다 봤고, 뭔지는 알겠는데, 내가 예전에 하던 것 할 때보다 재미있나?’ 라는 생각을 했던 거고.



힙플 : 문제의 2집 앨범이다. [The Vintage]는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의미의 1집이라는 취지로 시작한 앨범 아닌가, 그 이후로 그 프로젝트의 맥이 끊겼던 이유가 있었나

피타입 : 지금에 와서 그 당시의 내 발언이나 새로운 행보를 시작했을 때를 돌아보면 몇 개의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로는 1집 [Heavy Bass]를 정말 ‘힙합, 힙합, 힙합!’으로 만들어놓고 돌아보니 ‘또 그거를 해야 되나’ 하는 전형적인 소포모어가 있었을 테고, 그 다음으로는 여러 번 얘기하고 다녔듯이 어느 순간 샘플을 수집하려고 음악을 듣고 있는데 ‘내가 왜 이 노래를 따서 만들어야 되지? 이걸 직접 해야 동급의 아티스트로 살아갈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다른 한 지점으로 있었다. 그리고 이 지점은 어떻게 보면 뿌리로 다가가겠다는 의지였다.

그 다음 세 번째로는 힙합이라는 걸 당시의 나조차도, 과연 ‘라이프스타일로 인지하고 있었나?’라는 물음이다. 그리고, 돌아보면 그 발언을 하던 시기의 나 역시도 장르 음악을 하나의 테크니컬 폼으로 인지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싶다. 일단, 그 부분은 명백한 오류였다.

마지막으로 그때 내 나이가 딱 서른 살이었거든. 힙합으로 10년을 살고 나서 30대를 맞은 사람의 어떤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괴리감이 모두 복합적으로 얽혀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사실은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착각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총체적으로 비전이 안 보였던 것 같다. ‘비전이 안 보였다’라고 하면 단순히 ‘돈벌이가 안 된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주변사람 혹은 대중들)그 누구도 힙합을 컬쳐 폼으로 인식을 하지 않고, 마치 뮤지컬 폼, 음악적 형식으로만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 세대가 비보이파크(B-Boy Park)를 하던 때는 실상 그렇지는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비보이들이랑 괴리감을 느끼고 있고,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랑 멀어졌고, 그런 와중에 친했던 비보이 친구들이 힘들어서 판을 떠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아이드피스(Black Eyed Peace)는 성공을 거두고, 지하철역에서는 이제 랩 음악을 듣는 게 어렵지 않게 됐으며, 한국에는 ‘8마일’ 붐이 일고 있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까 ‘아, 내가 여기서 라이프스타일, 내지는 컬쳐폼으로서 힙합을 뿌리내리겠다고 하는 도전이 과연, 적합한 도전인가? 10년동안 해왔는데 나는 그에 합당한 결과를 손에 쥐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섣부른 판단을 내렸었다. ‘안 된다 이 나라 사람들은 문화라는 말 자체의 뜻도 모르고 알 생각도 없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라는 판단이 섰고, ‘힙합은 문화로서 지속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라고 나 스스로 선고를 내렸다. 그런데, 그게 30대를 맞이하는 개인의 생계와 맞물리면서 굉장히 네거티브한 늬앙스가 되어버렸고, 그러다 보니 ‘한국적 정서의 문화폼은 아닌 것 같아요’라는 발언이 ‘폭력적인 잡종문화’라는 발언으로 나왔던 거다.


힙플 : 결국에는 그것 또한, 로컬라이징에 대한 이야기였군

피타입 : 맞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한국화 되기는 힘들 것 같아요’라는 발언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로는 30대로써 사회적 괴리감을 지우기 위해서 직장생활을 열심히 했지.


힙플 : 어쨌든, 다시 씬 안으로 복귀했다.

피타입 : 판으로 돌아 오고자 했을 때, 내가 반성하고 깨달았던 건, ‘지속가능성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섣불리 던졌던 돌이 아직 살아있음을 본 순간이었다. 굉장히 숙연해졌고, 이 판을 지켜온 사람들에 대해 굉장한 존경심이 들더라. 아직도 후배 아티스트들에 대해서 ‘나보다 낫다’라고 얘기하고 다니는 것도 그런 부분들이다. 특히, 딥플로우(DeepFlow)나 팔로알토(Paloalto)같은 친구들은 이제 일가를 이뤄내지 않았나. 이런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5년은 존재할 수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5년전에 내가 한 판단은 명백한 오판이었던 게 되는 거고.


힙플 : 2집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해야 될 것 같다. (웃음)

피타입 : 뭐, 그렇다. 당시에 내가 내린 결론은 ‘문화로서, 혹은 라이프스타일로서, 삶으로서, 이걸 지향하면서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페이크다’ 라는 결론을 내렸던 거다. 나는 이미 내 머릿속에서 그런 판단이 선 상태에서 힙합을 표방할 수는 없었고, 말하자면 ‘다른 무언가를 해야 돼! 다만, 나는 여기서 랩이라는 보컬 테크닉만은 가지고 나가겠어’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만약 거기다 대고 그걸 힙합이라고 우겼으면? 그거는 내가 생각했을 때도 쓰레기다. 혹자들은 물어본다. ‘2집에서도 랩을 했고, 충분히 프레쉬한 라이밍을 보여줬는데, 그렇다면 블랙뮤직의 카테고리로는 볼 수 있지 않냐, 왜 굳이 힙합 안 한다는 말을 했냐?’ 나는 아직까지도 그 상황에서는 힙합을 한다고 했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힙플 : 어쨌든, 당시에도 피타입을 지지하는 측과 비난하는 측, 양쪽의 대립이 첨예했다.

피타입 : 그래서 당시에 재미있는 해프닝이 뭐였냐면, 앨범이 나온 이듬해에 대중 음악상 힙합부문 후보에 이 앨범이 올라간 거다. 나도 당연히 통보를 받았는데, 그때 내가 직접 그건 힙합이 아니라며, 당장 내리라고 했다. 내 스스로 위배되는 삶을 살수는 없으니까. 힙합으로 논해지는 것 자체가 힙합한테도 나한테도 안 좋은 것 같으니 내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결과적으로 내려갔었는지 어땠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 (웃음)


힙플 : 그럼 이 기회에 ‘폭력적인 잡종문화’라는 말을 다시 정의해줄 수 있나

피타입 : 어쨌거나, 힙합이 폭력성, 내지는 잡종이라는 속성에 의해 태어난 문화라는 생각은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혹자들이 비판하긴 하지만, 폭력이라는 걸 ‘경쟁적이다’라는 말로 바꾸면 과연 어떨까? 세상의 모든 경쟁은 폭력이다. 그리고, 힙합이 그런 폭력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는 건 변함이 없다. 일례로 배틀을 하는 건 여기밖에 없고, 그건 힙합의 중요한 속성이라고 생각 하거든. ‘잡종’이라는 말 역시 부차적의미로 낮춰 부르는 ‘잡놈’의 ‘잡’과의 동음이의어에 의한 혼동으로 생겨난 오해 같은데, 잡종은 하이브리드고, 두 개 이상이 섞여있으면 잡인 거다. 나는 실제로 도요다 프리우스 하이브리드 잡종차를 타고 있다. 그렇다고, 그 차가 질이 낮다거나 상대적으로 낮춰 부를 수 있는 차는 아니지 않나. 그리고, 실제로 중국집에서도 잡탕밥이 짬뽕밥보다 비싸다!

(웃음) 잡이 반드시 비하를 의미하는 건 아닌데, 당시의 그 말 자체는 어쩌다 보니 비하발언이 되어버리더라. 물론, 아까 얘기한 것처럼 당시 얽혀있었던 힙합의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과 내 개인 신상에 얽혀있는 얘기들이 더해져서 네거티브한 늬앙스를 증폭시켰던 거기 때문에 분명 내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과연 틀린 것일까?’라고 생각해보면, ‘폭력적인 잡종문화라는 게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요?’ 라고 하는, 이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존재하고 여전히 유효하지 않나 생각한다.


힙플 : (웃음)재미있는 건, 그때의 화두를 이번 앨범에 다시 소환해서 직접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목화밭도 못 봤고, 피부 색깔 역시도 못 바꿔‘ 라는 한 구절로 앨범의 정체성을 못박고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느낀 건, 피타입이 말하는 한국힙합의 패러다임이 '외국힙합 따라잡기'에서 한 프레임 더 넓혀 봤더니, 결국 다시 오리지널 한국힙합으로 귀결됐다는 말로 들렸다.

’나는 목화밭도 못 봤고 피부 색깔 역시도 못 바꿔 코스프레 따윈 니년 오빠 거 이거부터 확실히 못 박고’ – 폭력적인 잡종문화 中


피타입 : 맞다. 다시 로컬라이제이션에 대한 이야기였다. 2008년도 당시, 발언했던 ‘폭력적인 잡종문화’ 라는 말의 핵심은 거듭 말하지만, 토착화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였기 때문에, 다시 그 단어를 꺼냈을 때는 당연히 그때의 얘기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정확히 로컬라이제이션에 대한 문제다. 흔히 우리가 하는 여러 논쟁이 있지 않나, 힙합씬을 둘러싼, 혹은 힙합씬 내에서 벌어지는 그 논쟁들은 결국 내 눈에 ‘로컬라이제이션이 되고 있는 거냐, 혹은 단순히 따라 하는 거냐’의 문제로 비춰졌다. 다양하다고 하는 스타일까지도 결국에는 외국 것에 대한 모방, 혹은 따라잡기로만 바라봐야 되는 건지에 대한 고민들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다. 애당초 내가 1집을 만들 때의 에티튜드 자체도 ‘제대로 따라 하자’ 였는데 ‘뭐 다를 거 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소위 비판 받을만한 컨텐츠들이 나올 때마다 ‘어느 부분이 잘못된 건가’하는 딜레마에 빠졌는데, 곰곰히 들여다보니 여전히 딱 그 부분인 것 같았다. ‘힙합다운 힙합’을 시작하면서 말했던 그 내용들..

‘난 의문이다 가죽의 줄무늬가 같아질 수는 없음을 한 숨을 쉴 뿐이다 – 힙합다운 힙합 中’


적어도 우리는 흑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힙합은 그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만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과연 우리한테 이 문화를 흑인처럼 따라 하거나, 아예 흑인들의 카테고리에서 완전히 벗어나버리는 것 두 개의 선택지 밖에 없는 걸까?’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됐을 때, 내 경우에는 그건 아닐 것 같았다는 거다. ‘대한민국 지금 충분히 참담한데? 반도 전체가 게토라고 설정하면 더 많은 얘기가 가능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까지 도달했고, 나는 그 부분에서 내 나름대로의 대안을 내놓고 싶었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이번 앨범이 전반적으로 힙합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이야기하고, 나를 얘기하지만 결국 그 귀결은 로컬라이제이션에 대한 시도로 갔던 이유다.


힙플 : 다른 한편으로 ‘폭력적 잡종문화’는 당시의 발언 때문에 스스로 자제하고 있었다는 뉘앙스도 준다. 언더그라운드 지킴이 역할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지금, 한번 힙합을 부정했다는 과거가 자격론을 들이민다면 어떨 것 같나

피타입 : 뭐,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결국 그거에 대한 해답은 살면서 내가 갚는 것 밖에는 없다. 그건 이미 내가 30대에 들어서며 한번 생각을 해봤던 문제인데, 그 낙인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어쨌거나 내가 벌린 일이고 지금에 와서 그때의 내 얘기가 ‘사실은 힙합에 대한 부정이 아니었다.’ 라며 덮어버리기도 싫은 거다. 그냥 날 퇴출하고 싶은 사람들은 날 안 보면 그만이겠지만, 내가 스스로 행했었던 일에 대한 책임을 갚아야 한다면, 그건 내가 다시 랩을 제대로 잘 하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다. 마치 전과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랑 똑같은 것 같다. 그런데, 전과자는 선행을 하거나 의로운 일을 행할 수 없는 건가? 혹은 그 의로운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올바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건가? ‘평생 전과자의 낙인을 안고 그냥 숨어서 조용히 닥치고 살아’라고 하는 시선은 굉장히 잘못되고, 못된 생각 같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갱생이지. 한국힙합을 부정했다는 부분을 갑론을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래서 잘 되었냐, 폭력적이지 않게 잡종적이지 않게 로컬라이제이션까지 잘 했니?’ 라고 되묻고 싶다. ‘



힙플 : ‘핏줄이라곤 이제 내 그림자뿐’ 1세대가 보여준 한국힙합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하려는 건가? 한국힙합은 적통이 없다고 느끼는지..

피타입 : 그 부분에서 질문이 더 전개되기 전에 제대로 한번 짚고 가야 되는 게, 네안데르탈은 일단, 힙합씬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그 연속의 맥락으로 보면 조금 덜 짚어지는 부분들이 있고, 오히려 가사를 굉장히 못쓴 게 될 거다. ‘네안데르탈’은 예술계 전체를 은유한 곡이었고,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고, 예술이라는 전통적 가치가 점점 쇠락하고 있고 작금의 세태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 무리들은 멸종을 맞이하는 종이나 다를 게 없다’라는 것에서 시작을 한 주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마이노스가 ‘형 저는 이걸 힙합씬에 대한 이야기로 베리에이션 해서 쓰겠습니다’ 하고 가사를 쓰고 있을 때 내가 스탑시켰다. 이 메타포 자체가 사실은 우회의 각도가 굉장히 큰 메타포인데 마이노스가 그렇게 베리에이션 해버리면 꼬아지고 꼬아져서 주제의식이 흐릿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너도 여기 붙어’라고 못박고 작업을 했었던 거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술계 전반을 칭하는 이야기지 굳이 힙합씬의 특정 상황에 포커싱한 내용은 아니었다.


힙플 : 사실, 나는 JJK가 재작년에 발표했던 ‘종의 마지막’이라는 곡을 연상했다. 내가 너무 빠져버린 건가. (웃음)

피타입 : 쭉 이어지는 맥락으로 읽다 보면 그럴 수도 있었을 텐데, 사실 그렇게 비춰지지 않길 희망했었다. (웃음) 사실, 그 부분에 대한 실마리를 좀 더 뚜렷하게 썼어도 좋았을 테지만, 개인적으로는 노래 자체를 수수께끼처럼 남기고 싶었기 때문에 훅 또한, 수수께끼처럼 썼던 거고.


힙플 : ‘Neander, Neumann, Newman’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멸종을 부르는 열정 신인류 Neander Neumann Newman’ – 네안데르탈 中


피타입 : 이 곡은 ‘Neander, Neumann, Newman’ 이라는 말에 많은 실마리가 들어있다. 흔히 네안데르탈에서 발견된 고대의 인종을 ‘네안데르탈인’ 이라고 하지만, 사실 ‘네안데르’는 지명 이름이고, ‘탈’이라는 말은 독일어로 계곡이라는 뜻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이름이 재미있는 건 네안데르라는 지명이 그 지역에서 배출한 작곡가이자 시인인 ‘네안더(Neander)’라는 사람의 이름을 땄다는 거다. 네안더라는 이름은 그리스식 표기고, 독일식으로는 ‘노이먼(Neumann)’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노이먼이라는 이름은 미국식 발음으로 ‘뉴먼(Newman)’, 신인류가 되지. 이 세 개의 이름에 포착을 해서 훅을 풀어냈다. 그래서 멸종(네안데르)을 부르는 노이먼(예술가)의 열정이 뉴먼(신인류)을 만들어냈다는 건데, 이 관계를 떠올리고 나면 사실, 이 이야기가 힙합씬 안에서의 이야기로 비춰진다기 보다는 그냥 예술계에 대한 이야기로 비춰진다. 그러니까, 인터넷 바람이 불어 닥치고 심지어는 모든 것들이 공공재화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 미술은 그렇게 죽었고, 문학 또한 그렇게 죽어버렸다. 출판사들은 문을 닫고, 인터넷화된 문학 작품들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이지. 단지,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는 거다. 음악 역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퍼플레코드(Purple Record)와 레코드포럼(Record Forum)이 문을 닫았다. 미화당은 진작에 문을 닫았고, 이제 향레코드 하나만 남았는데, 그 말은 즉, 이 인근에서는 더 이상 피지컬 메테리얼(Physical Material)은 끝났다는 걸 의미한다.


힙플 :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지만, 이 노래가 담담하게 그걸 받아들이는 흥은 아니었다. 그런 흐름들이 내심 아쉽진 않나?

피타입 : 그것들이 피지컬로 남아있을 때, 우리한테는 사실 여러 가지의 가치가 있었다. 선물을 할 수 있고, 빌려 들을 수 있고, 모으는 재미가 있었으니까. 물론, 그것들이 디지털라이즈 되고, MP3로 남아 있을 때 까지만 해도 다운로드해서 모으는 사람이 아직까지는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모두 스트리밍으로 옮겨갔다. 스트리밍으로 옮겨간다는 건 말하자면 공기처럼 된다는 거거든. 누구나 마실 수 있고, 누구나 지나가다가 들릴 수 있게 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예술의 대한 가치 자체가 바뀌는 거지. 그것이 추락인지 상승인지는 아직 가치판단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 가치는 변했다. 다시 말해 음악은 이제 돈을 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사유화되는 자산이 아닌, 공공의 자산이 되어버린 거다. 그랬을 때, 이걸 생산하는 예술가들의 입지는 굉장히 위태위태하고, ‘멸종을 눈앞에 두고 있다’라고 보는 거다.


힙플 : 그것에 대한 대안이라고 한다면?

피타입 : 수정자본주의에서는 사회주의 내의 사유재산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그것을 공공화 시키되 국가가 계획 경제로 들어가서 지원을 해준다. 반면, 북한에서는 영화인들한테 연금을 주고 배우들한테 연금을 준다. 사회주의에서는 이런 것들이 굉장히 활성화 되어있다. 물론, ‘사회 체제를 유지 존속시키는데 일조해라’ 라는 딜을 내걸겠지만 어쨌거나 ‘국가가 예술가를 보호한다’라는 개념은 사회주의에서는 익숙한 개념이고, 실제 수정자본주의에서 받아들여져야 되는 부분들인 거다. 근데 우리나라는 이미 공공자산이었던 것조차도 민영화 시킨다. 국가의 보호를 받아도 모자를 판국에 말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네안데르 종이 멸종한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힙플 : ‘광화문’에 바로 그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특히, '반강제로 수긍한 이 시스템'에서 '피라밋 같은 건물들 그 속에서 곧 물들거나 늙을 어린아이였던 속물들'로 이어지는 구간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나의 밤과는 상관없다 방관한 타인의 삶 반강제로 수긍한 이 시스템 시스템 위에 시스템이 낳은 시스템 권력이 거리에 미메시스된 피라미드 같은 건물들 그 속에서 곧 물들거나 늙을 어린아이였던 속물들 귀찮아도 눈을 떠 삐걱대면서 버텨 과연 이러는 게 똑똑한가 하루는 비참하고 다른 하루는 비겁해 오늘 난 옛날의 나에게 떳떳한가


피타입 : 우리 모두가 반강제로 시스템에 수긍하고 있다. 그 시스템을 선동하거나 혹은 지지하건, 반대하건 그거와 상관없이 우리는 세금을 내고 있고 시스템 위에 만들어진 것들에 녹을 먹으며, 시스템 안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단 말이다. 반대하고 있는 사람 조차도 이미 이 시스템 안에 있는, 말하자면 반강제로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그 바로 전 가사가 ‘나의 밤과는 상관 없다며 방관한 타인의 삶’인데 사실, 그 순간 이미 시스템에 수긍하고 있다는 거고, 우리는 누구나 시스템 안에 있으면서 그 시스템을 받아들이기도, 거부하기도 애매한 오갈 데 없는 민초의 삶이다. 이 상황은 말하자면, 누구를 비판할 것도 없고, 누구를 상대로 떳떳할 것도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가장 많이 충돌했던 게 작년 한 해였지 않나.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시스템의 리더들이 행하는걸 보면서 그렇게 충돌하는 해를 보냈다.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수긍하며 살고 있었던 거다. 내가 오늘밤 광화문에 촛불을 들러나가면 난 내일 출근을 못하겠지만, 세상은 뒤집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현장에 나가지 않은 사람을 우리가 손가락질 할 수 있나? 혹은 나가지 않았지만, 아무도 나한테 손가락질 할 수 없다고 떳떳할 수 있나? 누구도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복잡미묘함 자체가 21세기의 대한민국 한복판의 현실이고 내가 처한 현실이며, 남들의 현실이다. 나는 이 모든 걸 이 곡을 통해 그저 고백하고 싶었다. 포장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항변하고 싶지도 않다. 이 곡에서는 있는 그대로가 제일 중요했던 것 같다.


힙플 : 광화문이라는 장소가 가진 특별한 의미가 있나?

피타입 : 실제로 광화문이라는 곳은 대한민국의 마천루들이 즐비한 거리다. 국가의 중앙시스템들이 모두 집중되어있고 대기업 건물들이 들어와있고, 건물들이 피라미드보다 더 웅장하게 위엄을 뽐내고 있는 곳인데, 그 거리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 한 거다. 마치 권력이 미메시스된 것 같은, 그러니까 권력이 거리에 형상화된 것 같은 모습 말이다. 피라미드라는 건 사실 그런 것이지 않나, 왕은 어차피 지하에 묻히지만, 그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쓸데없이 높은 마천루를 지어 올리는 것과 같은 거라고 본다. 우리가 흔히 고층건물에 권위를 느끼는 이유도, 펜트하우스에 상위1%의 감을 갖는 것도, 왠지 사장실은 높은데 있을 것만 같은 것도 다 그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 빌딩들이 마치 권력이 거리에 미메시스된 형상 같다고 생각을 했던 거고, 그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이제 끝난 인생은 아닌데 영원히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순수했던 과거를 추억하면서 속물로 늙어가는 그 모습들이 손가락질 하고 비난할게 아니라 누구나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 줄이 그런 거다. ‘하루는 비참하고 하루는 비겁한 거라고’


힙플 : 굉장히 큰 프레임으로 쓴 가사지만, 사실 우리는 힙합 커뮤니티고 어쨌든, 내가 본 작은 프레임으로 그 부분을 해석했다. 아주 덮어놓고 억측하는 거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브랜뉴에서의 피타입을 이입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레이블 역시 시스템이지 않나

피타입 : 그거 되게 신선한 해석인데? 전혀 생각 못했는데 그렇게 대입해도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웃음)


힙플 : 한국 힙합씬에서 멀티를 지향하는 레이블이 가지고 있는 인식들이 다양하다. 브랜뉴 안에서의 피타입은 어떤가?

피타입 : '어떤 부르짖음이기도 했는가?' 라는 질문인 것 같다. 뭐 그 생각을 하면서 쓴 가사는 아니지만, 그렇게 놓고 얘기를 하니까 그것도 맞는 것 같다. (웃음) 어쨌거나 시스템 대 개인과의 관계를 놓고 얘기해보자면 맞다. 그럴 수도 있다. 근데 실제로는 이런 거다. 브랜뉴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혹은 창작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작품을 내주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런 외압은 없다. 다만, 전혀 압박이 없지는 않지. 그걸 압박이라고 표현하는 거 자체가 웃기지만, 사실 상의를 하지 않는 것도 웃기다. 그럴 거면 뭐 하러 계약하겠나 (웃음) 어쨌거나 대표와 스텝들과 주요곡들을 놓고 상의를 하지만, 나머지 곡들이야 회사 내에서 내 나이가 있다 보니, 터치하거나 혹은 나한테 많은 부담을 주려고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배려를 많이 해준다. 게다가 나라는 뮤지션 자체가 팝 성향을 해봐야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건 회사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곡들이 나올 때는 소위 대중성이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정도의 판단은 함께 하려고 한다. 계약을 한 순간 그게 책임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힙플 : 그럼에도 광화문 같은 곡을 주요곡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피타입 : 실제로 '광화문' 같은 노래는 회사에서 반기지 않았고. 라이머형은 '꼭 이걸로 해야 되니?'라며 '광화문'은 수록곡으로 하고 바로 타이틀을 까자라고 했었다. 그런데, 나는 죽어도 이 노래는 오픈해야 된다고 이 문제로 속을 많이 썩였지. 어마어마한 똥고집을 부렸다. (웃음) '서른 여섯 살 강진필이 4집앨범을 내는 시점에서 이 곡은 한 번 내놓고 가야 됩니다' 라고. 이 곡을 수록곡으로 묻어둔 상태에서 타이틀곡을 까는 건 내가 생각하는 맥락이 아니었고, 피타입이라는 텍스트의 맥락상 옳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우여곡절 정도가 있는 거다. 근데, 그건 누구나 겪는 우여곡절일거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거란 말이다. 그리고, 그 얘기인 즉, 아까 포착한 얘기가 말이 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사회 생활을 하는 모두가 시스템과 나의 자율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나, 그 정도의 고민인 거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시스템을 부셔버리겠어' 혹은 '모두 이 시스템에 순응하고 있잖아? 닥치고들 살아' 이런 것도 아니고 '누구나 비참하고 누구나 비겁하다'라고 누군가는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다. '최소한 혁명가는 못될지언정, 예술가라면 그렇게는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정도다. 물론, 굉장히 신선한 해석이었고, 적용 가능한 시각인 것 같다.


힙플 : 돈키호테는 원곡을 해치지 않으려고 무척 신경 쓴 느낌이다. 원곡이 10년넘게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부담되지는 않았나

피타입 : 맞다. 사실은 제목 자체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데뷔 11년차가 되어서도 다시 한번 소포모어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그런 제목이지 않나 (웃음) 사실 ‘돈키호테2’를 만들려는 시도는 그러니까 브랜뉴에 들어오고, 컴백한 이후부터 늘 있었다. 2년넘게 싱글을 작업하자는 얘기가 있었고, 심지어는 ‘휘성도 섭외할 수 있다!’라는 라이머형의 공언까지도 있었는데, 막상 그런 오더 아닌 오더를 받고 권유를 받다 보니 어떻게 ‘‘돈키호테2’를 만들어야 되지?’ 라는 부담이 들더라


힙플 : 어떤 고민이 들던가?

피타입 :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첫 번째 고민은 ‘히트곡이었으니까, 히트만 시키면 되나? 혹은 옛날에 클래식이니까 웰메이드 힙합으로 만들면 되나?’ 근데, 어떤 식으로 가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영광을 좇아서 사람들이 많이 들을 수 있는 노래로 만들자니 돈키호테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정말 멋있는 힙합으로 끝내자니 먼지 되고 끝날 것 같은.. 그런 딜레마가 있었다. 이게 결국에는 모든 아티스트가 고민하는 작품성과 대중성 사이의 딜레마인데, ‘돈키호테’는 사실 그 밸런스를 굉장히 잘 잡았던 곡이었다. 그런 압박 때문에 만들고, 엎기를 반복하고 가사를 썼다 지우기를 2년 반 동안 반복했다.



힙플 : 그래서 완성할 수 있었던 실마리가 있었나?

피타입 :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돈키호테2’를 좀 잘 만들어서 무조건 선공개 하라는 정도의 라이머형의 주문은 있었다. 근데, 그렇게 선공개성 곡 작업을 하려고 하니까 어떻게 해도 돈키호테 같지 않더라. 그래서 중간에 그냥 생각을 바꿨다. 내려놓은 거지. 그렇게 해서 비트 셀렉까지는 됐다. 원래 다른 내용을 쓰려던 비트를 돈키호테로 만든 셈이다.

가사 역시도 생각이 많았다. 10년 전 돈키호테는 전체를 놓고 포부를 밝히는 가사를 쓰는 게 가능했지만, 10년만에 또 포부를 밝히는 것도 웃긴 거고, 또 한편으론 과연 10년전, 돈키호테를 불렀던 나에 대해, 남들이 대입하는 성공을 내가 누리고 있는지도 생각해봤다. 쇼킹했던 건, 3집 작업 당시 일리네어 애들이랑 밥을 먹는데 그 친구들이 하는 얘기가 ‘형 1집 되게 많이 팔리지 않았어요? 그때 정산 받았으면 형 이렇게 힘들게 안 하셔도 되는 거 아니에요?’ 라고 하더라. ..정산을 받았다면 그래도 되겠지. (웃음) 4만 몇 천장이 팔렸는데.. 정산을 제대로 받았다면, 어림잡아도 킵루츠(Keeproots)형이랑 나는 1억씩은 챙겼어야 됐다. 근데, 한 푼도 못 건졌다.


힙플 : 왜인지 물어봐도 되나?

피타입 : 회사가 없어졌다.


힙플 : 허허.. 그런 경우도 있나?

피타입 : 회사가 공중분해 되고, 누군가 정산을 받았는데, 그 사람을 못 찾은 거지. (웃음) 당시에는 그 정도로 미비했다. 저작권법 조차도 희미할 때였는데, 우리는 그 당시 저작권자 등록도 안되어있었거든. 당시 스물다섯 살 짜리 피타입은 언감생심으로 ‘내가 변호사 살 돈이 어디 있어’ 하면서 움츠러들기 마련이었고, 당시에는 (킵루츠와)우리 둘 다 그냥 ‘그래 데뷔 잘했으니까 이걸로 됐다’하면서 소주 마시고 끝난 거다. 그러고 나서 우리 둘은 노가다를 뛰었지. (웃음)

미련했고, 똑똑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어쨌거나, 당시의 그 성공은 그렇게 그냥 날아가 버렸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한 싱글이였고 성공한 앨범인 상황이었지. 실제로 그 정도 팔린 거면 쥬얼리보다 많이 팔았다고 하니 성공이 맞지만, 10년 후 현실의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정도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런 괴리감을 내가 어떻게 다뤄야 될지 생각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지금의 초라함과 궁색함을 표현하자니 내가 그렇게 바닥치고 있지는 않은데 그건 싫고, 그렇다고 과거에 대단한 노래를 만들었던 나를 과대 포장할 정도로 내가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 위대하기엔 초라하고 초라하기엔 위대한 심정이랄까. 그런데, 결국 이걸 고민하는 게 과거에 그 노래를 불렀던 나의 현주소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돈키호테2’에서는 고민하는 나를 소탈하게 담아내려고 했다.


힙플 : 보컬 섭외는 어떤 기준이었나?

피타입 : 돈키호테면 보컬 훅이 붙어야 했고, 주요곡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듣기 좋은 라인을 만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남자보컬을 선정했다. 그러다가 이 곡에 대해 내려놓고 수록곡으로 만들자고 생각한 시점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고, 여자 보컬을 넣어볼 생각을 하게 됐다. 은근히 재지한 바이브가 들어가면 그것도 어울릴 것 같았거든. 우리의 머릿속에 최초 탈립콸리(Talib Kweli)의 ‘Get By’나 혹은 다일레이티드 피플즈(Dilated Peoples)의 ‘This Way’같은, 칸예웨스트(Kanye West) 초창기 스타일의 레퍼런스가 있었다면, ‘여기에 여자 보컬을 넣읍시다’ 라고 하는 시점에는 우리가 생각하던 칸예 초창기가 아닌 오케이플레이어(Okay Player) 스타일이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바버렛츠(Barberettes)의 멤버 김은혜씨가 완전 힙합 올드팬이어서 편하고, 수월하게 작업이 성사된 거다. 게다가 ‘돈키호테2’라고 하니까 은혜씨 같은 경우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더라. (웃음) 처음에 힙합팬이라는고 했을 때 상투적인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딥한 힙합팬이어서 놀랐다. 그래서 은혜씨한테 멜로디 라인을 주도적으로 맡겼는데, 가녹음을 받았을 때, 정말 생각한 그대로 나왔다. 결과적으로 기대 이상의 캐스팅이였다. 라이머형한테도 들려줬더니 ‘타이틀로 가’ 하더라. 어깨에 힘 빼고 있는 그대로 투영하자라는 생각이 유효했던 트랙이다.


힙플 : 선우정아나 바버렛츠는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굉장히 잘 녹아 들어서 더 의외였다. (웃음)

피타입 : 개인적인 지론상 90년대 붐뱁 바이브는 특히나 재지한 보컬이 들어가면 끝난다고 본다. 그건 진리다. (웃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사람들과 작업을 할 것 같다.


힙플 : 실제로 ‘돈키호테2’의 가사처럼 10년전 클래식이 피타입의 상대였다. 현재까지 앨범에 대한 피드백들이나 본인이 느끼는 만족도는 어떤가?

피타입 : 다행히도 생각한 정도의 피드백이 돌아오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하고 있다. 내가 기대한 만큼의 반응은 끌어낸 것 같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마케팅 데이터로서는 역시나 이런 건 차트에서 맥아리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계기도 됐다. 그렇다고 해서 차트에서 힘 받을 수 있는 노래를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단지, ‘차트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수 있겠구나’라는 걸 재확인한 셈이다. 확실히 매니아층이 이제는 꽤 다수가 됐지만, 아직은 파플러한 마켓에서 그 숫자가 영향력을 가지는 숫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이런 데이터를 알고 있으니 헷갈려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트에 못 들어간다고 징징대거나 내지는 차트송 스타일로 갑자기 자신의 행보를 꺾는 그런 비겁한 짓은 하지 않아야 된다는 말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데이터 하나 쌓았다. 물론, 어차피 이럴 줄은 알았지만 (웃음)


힙플 : 그런 점에서 차트 음악에 대한 유혹은 없나 (웃음)

피타입 : 그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회사한테)무책임한 거다. 가급적이면 많이 듣는 게 좋은 거니까,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 그게 과연 ‘내가 하고 싶은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가?’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할 수야 있겠지. 3집때 적응을 하면서 시도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단지, 그게 나한테 딱 맞는 옷은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범버자켓 입고, 팀버랜드 신고 다닐 때가 제일 멋있지, 보타이 매고, 슈트를 입는다거나, 스키니진 입고 스니커즈 신는다면 웃기지 않겠나 그런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나한테 어울리고, 그게 과연 나한테 유효한가’의 문제지 ‘욕심이 있냐, 없냐’의 관점은 아닌 것 같다. 안 맞는 옷 입고 욕심부려서 성공이라도 거머쥐면 다행이지만, 사실 안 맞는 옷 입고 성공을 거머쥐는 경우도 별로 없거든.



힙플 : 다시 앨범으로 돌아와보자. 개인적으로 이 앨범은 10년전 ‘돈키호테’의 가사에서 ‘무엇 하나 이루어진 것이 없다’ 라고 회고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바라는 건, 정체된 이 문화가 거센 바람을 거두며 앞으로 나가 빛을 발하는 것 내가 말하는 걸 기억한 어린 아이들이 어서 자라는 것’ – 돈키호테 中


피타입 : 이 앨범은 ‘이루어진 게 전혀 없다’라기 보다는 ‘손에 쥔 게 없다’라고 표현한 앨범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이루어진 것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문장을 일궈낸 장본인들, 허클베리피(Huckleberry P)나 마이노스같은 친구들이 나한테 계속 힘을 실어주고 있고, 과거를 회상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것들이 나한테 많은 힘이 된다. 그리고, 당연히 ‘돈키호테2’에서는 다시 10년뒤의 예언이나 바람까지 담지는 않았다. 그건 그런 곡이 아니니까. 이 노래는 10년전 ‘돈키호테’를 불렀었던 강진필에 관한 노래다.


힙플 : ‘여기 멋지게 낡은 미래란 없지’라는 가사나 ‘누가 붙여달랬냐 1세대 딱지’라는 가사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리스펙트에 대한 문제다. 한국힙합에서 1세대들이 레전드로 남을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피타입 역시 그런 성찰을 한 것 같은데

’여기 멋지게 낡은 미래란 없지 꼰대라던 아버지들에게 빚진 건 떼어먹지 – 반환점 中’

‘누가 붙여달랬냐 1세대 딱지 개나 주고 다시 가져와 지폐와 금딱지 – 폭력적인 잡종문화 中’


피타입 : 맞다. 나는 심지어 내가 직접 메스를 대고 싶을 때도 있다. 심지어는 크루 내부에 있는 동료들이나 선배들을 보면서도 ‘이제 이런 거 해야 되는데..’라는 생각들을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나는 불한당 내부에서 영원히 그런 존재다.


힙플 :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

피타입 : 2002년도부터 나는 늘 형들한테는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동생이었다. 가리온(Garion)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술 취해서 ‘라임은 왜 안 써요?’라고 했을 정도니까. 그리고, 그 얘기를 10년동안이나 하고 있다. (웃음) 아무튼, 나는 형들한테 직구를 제일 잘 던져오던 사람이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어쨌거나, 멋지게 낡아갈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아.. 서른다섯이면 그렇게 늙은 건 아닌데.. 시발


힙플 : (웃음)

피타입 : 성인 남성의 전성기는 서른다섯에서 여섯이다. 육체적으로 가장 뛰어난 힘을 발휘할 때인데, 마크헌트가 효도르를 팽개쳤을 때도 그 나이 때였다. 시발.. 비록 졌지만.. 어쨌든, 영 플레이어들이 워낙 빠르게 유입되고 많아지는 상황에서 씬의 첫 모습부터 있어왔던 사람들이 만약 자신이 여태까지 해온 업적만을 묻어둔 채로 멈춘다면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죽을 때까지 쇄신해야 하는 예술가의 소명으로서 옳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그렇게 멈춘 사람들과 1세대라는 이름 하에 같은 딱지가 붙는 것도 나로서는 굉장히 불쾌하기 때문에, 그런 뒷방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사실 악착같이 하고 있는 것도 있다. 다만, 내가 불만스러운 것들은 마치 그들이 다음 세대들한테 비판 받듯이 내 입에서도 그 비판이 행해져야 되는 상황들과 거꾸로 나한테 이뤄지는 비판들은 내 동세대가 나한테 하는 비판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인 거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치고 박기는 영원히 있을 거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이 되어야겠지.


힙플 : 사실, 내 질문의 초점은 새로운 세대들의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웃음) 예를 들어 팔로알토(Paloalto)가 ‘이미 업적을 일궈낸 레전드는 그거대로 존경 받아 마땅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피타입 : 그것 또한 멋있는 시각이지. 멋있는 리스펙이고.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영원히 쇄신하려는 노력을 멈췄다면, 그 시점에선 그 아티스트에게 분명한 비판이 가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나는 그런 치고 박기가 활발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나 또한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여태까지 일궜던 업적이 한 순간 잿더미가 되는 것도 위험하지만, 그것 때문에 까방권이 생겨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힙플 : 그것대로 타당하다. 신인들에 관한 질문들로 이어가 보자. 힙합씬이 그리 꿈같은 동네가 아니라는 걸, 여러 랩퍼들이 간증하고 있는 상황에도 매년 랩퍼 지망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모든 지망생들은 랩스타를 바라보고 있겠지. 이 구절은 그런 상황에 관한 구절인 것 같다.

’랩퍼들은 마약 같은 성공 팔고 어린아이들은 꿈이란 이름의 마약 빨고 나는 목화밭도 못 봤고 내가 사는 현실 역시도 못 바꿔 – 이방인 中’


피타입 : 소위 차붐의 '빨아삐리뽕'이나 여타가사에서 진부한 클리셰라고 표현했던 얘기들. 결국에는 ‘이방인’이나 ‘광화문’같은 얘기들도 그렇지만, 힙합에 관한 얘기를 힙합얘기로 끝나지 않게, 내 얘기는 내 얘기에서 끝나지 않고, 세상에 대한 얘기는 세상 얘기에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앨범의 미션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혼재시키고, 융합 시키려고 했던 시도가 몇 곡에서 있었는데, 특히, 이 곡의 가사가 그렇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가사를 쓰는 내 모습으로부터 시작해서 세대차이를 이야기하고, 전화기 속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 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씬의 얘기로 끝나는 그런, 혼재되고 뒤섞인 이야기 말이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판에서 내가 가장 거부 반응을 가지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게 바로 정확히 짚어낸 대로 지금의 이방인 같은 상황에 관한 이야기였다.

모두가 성공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꿈을 좇았더니 성공했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 아이들은 그걸 바라보고 랩스타의 대한 환상을 품으며, 랩씬으로 들어오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 상황은 결국 로컬라이제이션으로 연결된다. 로컬라이제이션을 얘기할 때 가장 핵심포인트로 짚어야 하는 부분이 ‘힙합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달려드는 아이들이 많다’라는 거거든. 그 얘기인 즉, 아이들은 ‘힙합을 하나의 기술로서 인지하고 있다’라는 거고, 결국 그 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다시 ‘힙합을 문화가 아닌 음악장르로 받아들인다’라는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런데, 문제는 힙합이 일개 음악 스타일이 되어버린다면, 결국에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하는 어린 친구들은 이 문화를 ‘어떤걸 내가 쉬우면서 멋있게 할 수 있을까’라는 옵션으로만 판단을 하게 된다는 거다. 그랬을 때 이 문화는 하나의 직업 옵션에 지나지 않게 될 거고, 삶의 가치관으로서는 기능을 잃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쇼미더머니에 3~4천명이 몰리는 이유도 정확하게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초, 중, 고등학교에서 획일화된 교육을 받고, 대입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서 경주마처럼 살다가 대입자체가 존재 가치를 잃은 시대가 도래하니, 아이들은 새로운 직업에 눈을 돌리게 됐고, 그 옵션 중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가장 달콤하게 다가왔을 거다. 그리고, 그 연예인의 여러 옵션 중에 가장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게 힙합 뮤지션이었을 거라고 보는데, 그래서 결국, 이 꼬라지가 났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너희가 뭘 하고 살건, 네가 행복하면 된 거야’라는 교육을 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란 말이다. 직업을 고민하게 되고, 그 직업 중에 하나로 힙합을 골라잡게 되는 상황이 된 거다. 그러니 당연히 그 시점에서 랩퍼들의 ‘나는 잘 살게 됐단다’라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아이들에게 마약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켰을 거다. 그건 마치, 모든 화이트 칼라들의 우상이 빌게이츠고, 스티브잡스가 되는 거랑 똑같은 논리다. 하나의 성공담을 시스템에 있는 노예들이 우상처럼 받아 들고 따라가게 되는 거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랩퍼들이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보는 건 아니다. 성공한 아이들이 성공한 이야기를 하는 게 뭐가 나쁘겠어. 다만, 그것으로 인해 이런 부작용이 일어나는 이 상황 자체가 굉장히 웃긴 거지. 결국, 원흉은 시스템일 테고 내가 포착한 부분은 그 부분인 거다.


힙플 : 듣고 보니, 목화밭이라는 키워드로 마무리되는 것도 그런 장치였군

피타입 : 실제로 목화밭이라는 키워드는 이방인의 비트에서부터 출발했다. 처음에 디플라이의 비트를 셀렉했을 때, 닐영(Neil Young)의 ‘Southern Man’이라는 곡을 샘플링한 걸 알고, 그 곡의 가사를 다시 한번 찾아봤다. 그런데, 그 가사가 내가 앨범에 담아내려고 했던 주제의식과도 일맥상통하더라. 그래서 일부러 내 가사집에도 닐영의 보컬 파트 가사를 브릿지로 써놨다. 실제로 이 곡이 샘플링한 ‘Southern Man’이라는 노래는 닐영이 60~70년대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하던 때 남부 지방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남부 백인들은 각성해야 한다는 의미로 쓴 노래다. 가사 내용이 ‘너네 그렇게 살면 너희들이 보고 있는 성서에 위배되는 행위 아니냐, 나는 남부에서 목화밭도 봤고 높은 흰 저택도 봤지만, 흑인들이 사는 낡은 판자집도 봤다’라는 내용이다.

작년 한해 마이클 브라운이나 에릭가너 사건으로 미국 흑인사회가 한껏 들끓었었고, 또 동 시점에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겪었다. 내가 트위터로 팔로우 해놓은 많은 미국 내 아티스트들이나 혹은 매거진들이 전부 마이클 브라운과 에릭가너 사건을 얘기했는데, 이 상황이 나한테는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더라. 그것들이 나한테 의미가 없는 거 같지도 않고, 딱히 의미가 큰 것 같지는 않은 그런 미묘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하게 된 거다. 난 이런 곡을 샘플링해서 이 부분까지 썼는데, ‘그 목화밭, 나는 봤나?’ 그건 로컬라이제이션이 필요하다는 어떤 반증의 의미이기도 했다.


힙플 : 얼마 전에 ‘Do The Right Rap’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 컴페티션에 ‘Right Rap’이라는 주제로 접수된 많은 곡들을 모니터링 해봤을 텐데 어땠나?

피타입 : 잘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뽑히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취향에 부합하는 친구들이 되게 많았는데, 그런 친구들 중에 몇몇은 실제로 만난 친구들도 있다. 어쨌건, 나를 심사에서 스스로 배제 했기 때문에 그런 친구들과는 개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나눴다. 결과적으로 잘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고, 멋있었다. 근데 음감회 때도 얘기했지만 캠페인이 끝나고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거다. ‘이 씬은 정말 플레이어 반 리스너 반이다’라는 생각.

‘Do The Right Rap’ 가사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가 있지만, ‘리스너라고 해도, 다들 잠재적으로 랩퍼가 되기 위한 리스너들이 더 많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나나 내 동료들 역시 그렇게 출발했듯이 힙합의 팬이면서, 그 팬들이 성장해서 (힙합을)사랑하는 마음으로 아티스트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게 과연 우리가 흔히 작금에 얘기하는 ‘힙합씬이 커졌다고 보는 것의 실체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한 뒷맛도 있었다. 실제로 1,200명에서 1,500명 정도가 넘게 캠페인에 참가를 했는데 그만한 숫자가 우리가 투어를 도는 동안 목격되지 않은 걸 보면 극명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주목 받고 싶고, 좀 더 힙합스러워지고 싶고, 그걸로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은 많아졌을지언정, 순수하게 이 음악을 듣고 공연장에서 움직이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 소위 일부 평단에서 얘기하는, ‘사람을 따라다니는 팬을 늘었을지언정, 음악을 따라다니는 팬은 줄어들었다’라는 얘기도 같은 맥락인 것 같고,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어떤 씁쓸한 소회가 남기는 했다.


힙플 : 말하자면 판을 까는 사람들이나, 판에 깔리는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피타입 : 판을 까는 사람들이 없다? 뭐, 그 부분은 굳이 내가 날을 세워서 비판 하고 싶지는 않다. 그거는 사실, 개인의 행보니까. ‘판을 까는 이들이 너무 없어!’라고 하는 푸념은 하나 마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의 씬은 이유불문하고 더 커져야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지금 해야 할건 그건 것 같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거지. 그런데, 노를 저어야 하는 게 개인의 일신이 아니라, 판을 부풀리기 위해서라면 거품이 많이 껴도 상관없다고 본다. 거품이 낄수록 남는 것도 많으니.


힙플 : 얼마 전, 리드머에서 언프리티 랩스타를 비판한 글의 포인트는 판이 커져가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었다. 피타입의 입장은 방식불문하고 판이 커져야 된다고 보는 건가?

피타입 : 나올게 나왔군. (웃음) 그렇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낄 거품이면 아예 많이 껴야 거품 꺼질 때 남는 거라도 늘 거란 생각이다. 어쨌든 결국, 아티스트들 본인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는 건 잘못됐다고 본다. 왜 그 눈치를 보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더 활발히 외부로 모습을 비추려 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고, 마음에 들지 않을지언정, 더 활발하게 (컨텐츠들이)생겨나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그곳에 나와서 제대로 해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날 테고, 그럼 판 깔아주는 사람들 중에서도 제대로 된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생겨날 거라고 생각한다.

막말로 엠넷이 힙합에 해박하지 못한게 단죄 받을 대상인가. 대한민국 모든 미디어 관계자들, 혹은 힙합이라는 키워드를 쓰고 싶은 사람들 전부다 이미 힙합 잘 알고 시작해야 하나? 물론 노력해야지. 노력하지 않는다면 혼나야겠지. 비판 받고, 그에 귀 기울이고, 그래서 더 나아지는 거, 그게 건강한거지. 앞에선 무시하고 뒤에선 놀리는 거, 그거 제일 비겁한 거 아닌가. 만나서 가르쳐 주던가, 가르쳐주는 친절한 태도가 자신의 캐릭터가 아니라면 나가서 침을 뱉어 주면 되는 건데, 왜 뒤에서 선동질인지 모르겠다. 뭐, 그렇게 하는 게 자신들의 역할이라면 그것까지도 이해하겠다. 그런데, ‘쟤 구리니까 니네 쟤랑 놀지마. 쟤랑 놀면 니네도 구린거야’라고 하는 건... 무책임하고 유치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에 노출해서 인지도를 높이고 싶고, 그걸 통해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싶은 게 부도덕한 건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웃음) 나는 왜 그게 출연에 응한 이들을 한국 힙합에 먹칠한 역적 무리로 싸잡아 몰아갈 근거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


힙플 : 리드머 역시 하나의 매체로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공격했다고 본다면?

피타입 : 얘기할 수 있다. 자신들의 포지션상 그럴 수 있지. 근데, 그렇게 해서 공격의 대상을 ‘모두’로 설정하는 게 맞냐 하는 거다. 브랜뉴 깠어? 괜찮다. MC몽 깠어? 엠넷 깠어? 다 괜찮다. 근데 거기에 가담한 모두를 역적몰이 하는 건 생각이 짧았거나 감정적이거나 의도가 의심된다. 거기에 연루된 모든 연루자들을 ‘연좌제로 낙인 찍겠다’라는 건 사실은 씬의 모두한테 ‘낙인 안 찍히려면, 우리 눈치 봐라’ 라는 것 밖에 안되지 않나. 여태 리드머의 몇몇 행보가 그래왔기 때문에, 참다 참다 그 부분에서 짜증이 났던 거다. 힙합 모르는 엠넷이 만든 힙합의 관점에서 구린 프로그램에 힙합으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엠씨몽이 나왔는데, 그 지난 회차에 출연했으니 유죄인 거면, 그 유죄 몇몇과 엮였던 리드머는 뭐냐. 나는, ‘너희는 그렇게 계속 몰아가 나는 너희들이 몰아가는 얘기에 공신력 없다고 떳떳하게 얘기할 테니까’ 였던 거다. 각자의 방식이라면 각자의 방식일 수 있겠지만, 나는 빡세게 인정 못하겠다. 아, 비평하는 것 자체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 공격 대상을 그런 식으로 설정하는 건, 난 죽을 때까지 인정 못한다.


힙플 : 특히, ‘버드맨의 늙은 썅년’이라는 표현은 비평에 대한 거부로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피타입 : ‘소신껏 침 뱉는 것이 비평인가’라고 한마디 덧붙인 것이 논란을 가중시킨 것도 있는데, 그 부분은 빼도 된다. 흥분해서 실언한 부분 같기도 하고. 각자 소신껏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 나 역시 그렇게 살면서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었지. 그러나 리드머 일부를 버드맨의 늙은 썅년처럼 느낀 건 맞다. 버드맨이라는 영화 안에서 그 비평가가 올바른 비평가의 표상으로 비춰지지 않은 건,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 그 비평가는 아티스트가 스스로 파멸하기 전까지 아티스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게 맞는 건가? 리드머가 하는 행태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설정한 답안지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을 페이크로 분류하는 과정 자체가 버드맨에 나오는 늙은 비평가 같았다는 말이다. 정확하게 그 여자가 영화 내에서 한 대사들이 리드머랑 비슷했거든. ‘너는 연예인이면 네가 노는 물에서나 놀지, 왜 여기 들어와가지고 좋은 작품이 차지해야 될 자리를 네가 차지하고 있냐, 난 네 작품을 보지는 않았지만, 네 연극을 반드시 죽일 거다’ 이게 썅년이지.. (웃음) 어떤 특정한 답을 정해놓고 비평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건, 무엇이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리드머의 비평 자체도 만약, 컨텐츠 질의 높낮이를 논했으면 나도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물론, 미디어에 나를 노출시킨 것 자체를 실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어휴, 질 낮은 프로그램 괜히 나가가지고’이러고 말았을 거란 말이다. 근데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연좌제로 까는 건.. 분명 잘못됐다고 본다. ‘까마귀 노는데 백로야 가지 마라’ 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다 그렇게 해서 피해 다닐 거면 댁들이나 그렇게 살라고 말하고 싶다. 막말로 우리가 씨발 MC몽 나오는지 알았냐고.. (웃음)


힙플 : 정말 아무도 몰랐던 건가?

피타입 : 아무도 몰랐다.


힙플 :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럼 브랜뉴뮤직을 향한 부정적 피드백들, 동료인 산이(San E)의 행보에 대한 피드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피타입 : 그 이야기들을 전부다 힙합의 카테고리 안에 몰아넣고자 하는 행동은 분명 잘 못됐었고, 비판 받을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대놓고 한다. 브랜뉴가 힙합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것들이 힙합이 아니라는 건 나도 인정한다. 그저 나는 내 것만 잘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 음악 시장에서 대중가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욕먹을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평가들도 그 부분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지금의 비판들은 그것이 힙합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 놓고, 힙합씬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니까 비판의 메스를 대는 거겠지. 그렇지만, 요즘에는 보면 너무 비판만 한다.


힙플 : 이제 마지막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피타입 : 아직까지는 다음 작품에 대한 뚜렷한 구상이 나올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지금 다시 돌아온 이 스탠스 자체를 굉장히 만족해하고 충분히 즐기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의 행보나 혹은 추가적인 컨텐츠들 역시 이 연장선상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다. 그 외에 이번 앨범과 관련한 활동으로는 방금 말씀 드렸듯이 내 의지에 반하는 어떤 노출 기회가 오더라도 나는 거기에 나가서 내 의지를 밝히고 올 거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마음에 안 드는 곳에 나가서 마음에 안 든다고 얘기하고 오면 되는 거다. 그런 모습들도 지켜봐 주면 좋을 것 같다.


힙플 : 그게 혹시, 쇼미더머니를 말하는 건가?

피타입 : 부른다면 갈 용의는 있다. 대신에 부르는 쪽에서 각오는 해야겠지. 내 생각 자체가 곱지는 않으니까. 예쁜 모습으로 재롱 떨다 올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물론, 아직까지는 어떤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예단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관련한 어떤 기회가 오더라도, 그 기회 자체를 ‘얘네는 힙합이 아니니까’라는 딱딱한 생각만으로 쳐내지는 않을 거다. 봐왔듯이 유연한 음악을 하는 것 만으로는 아무 기회도 오지 않고, 씬에 어떤 좋은 영향도 끼칠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씬은 무조건 커져야 하고, 그런 태도는 씬이 커지는데 아무 일조도 할 수 없다. 그냥 여태까지 늘 있었던 멋있는 목소리 중에 하나로 작게 끝나겠지. 더 큰 확성기를 통해서 목소리를 내보이는 것이 오히려 후세대들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는 브랜뉴가 더 많은 사람들한테 들려줄 수 있는 둥지인 거고. 다만, 나를 잃거나, 영혼을 파는 행위는 하면 안되겠지.


힙플 : 긴 시간 빡센 인터뷰 응해줘서 고맙다!


인터뷰 | 차예준, 이상원(HIPHOPPLAYA.COM)

피타입 트위터 | https://twitter.com/… 인스타그램 | https://instagram.com/…

16 Comments 김종오

2015-04-20 21:21:49

무한 존경합니다 피타입 리스펙

박상현

2015-04-20 21:22:13

많은공감하고 갑니다.. 모르면 가르쳐야지 바른 길로 인도해야죠

김준형

2015-04-20 22:52:00

키비한테는 딱 한마디 했다. ‘야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꿈은 일매릭을 만드는 건데, 큐팁(Q-Tip)이 없어 (웃음)’ 그랬더니 결과적으로는 딱 원하는 느낌의 비트가 나왔지. 진짜 너무 멋있네요...쇼미더머니 기대할게요

aspeder

2015-04-20 22:52:36

뚜렷한 신념이 보이는..

shallday

2015-04-20 23:22:32

힙합을 버리겠다.. 힙합다운 힙합을 듣고 딱 두마디 째 들어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 경험을 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로썬 엄청난 배신감을 가져다 준 발언.. 이번에 멜론에서 스트릿 포잇트리 발매소식을 보고 1번트랙 폭력적인 잡종문화 딱 듣고 참,나 하고 더이상 듣지도 않고 굉장히 원색적인 비난의댓글을 달았었는데 그후 나머지 트랙들을 다 들어보고나서야 굉장히 심혈을 기울인 앨범이란걸 느끼고 비난댓글을 단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긴 말 필요없이 앞으로의 행보 기대하겠습니다.

가니메데

2015-04-20 23:45:46

공감되는 부분도 많네요 이번 쇼미더머니 기대합니다!

유니즈

2015-04-21 00:07:10

이 형 진짜 멋잇네요 으와

신슬

2015-04-21 00:09:47

리스펙. 그리고.. Do the right rap 인터뷰 잘 뽑았네요. 그저께 딥플로우 인터뷰도 그렇고 정말 잘보고 갑니다

777

2015-04-21 01:03:34

여러가지로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될 인터뷰였습니다 두고두고 봐야겠네요 기대하겠습니다 방송이든 거리든 멋있는 움직임 보여주세요

이현호

2015-04-21 07:53:20

힙합을 부정했던 피타입과 힙합을 대변했던 산이의 엇갈린 행보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네요

황선재

2015-04-21 14:48:25

무한감동 피타입1집 나오자마자 산 중2학생이었던 때가 다시 떠오릅니다. 쇼미더머니에서 피타입의 인터뷰의 신념을 봤으면 합니다!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뜻깊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plat

2015-04-21 19:36:20

인터뷰가 왠만한 앨범 하나보다 멋있다고 느껴질정도

왕산리

2015-04-22 03:31:19

인터뷰에서 아티스트로서의 작가주의 정신이 느껴지는 한편, 끝없이 자만하고 자기합리화하는 모습도 보이네요 쨋든 화이팅

보노보노

2015-04-23 02:25:00

나는 목화밭도 못봤고

김승준

2015-04-25 20:10:18

저는 다른 건 모르겠고, 국가가 예술가를 보호한다는 내용은 나중에 쓸 소설에도 다루고 싶었던 부분인데, 피타입도 비슷한 주제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그 안티크라이스트 감독이 나치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는 얘기를 본 이후로 생각했던 건데, 나치새끼들의 군복이 오타쿠세력 사이에서 세련된 디자인으로 추앙받는다던지, 국제대회에서 입상한 전적도 있는 북한의 곡예단, 그리고 3S정책까지, 모두 독재국가에서 이루어진 예술지원정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왠지 인터뷰에서 했던 말 보다 더 간 느낌이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예술은 힘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보기 때문에, 국가가 예술의 배를 불려줘야 한다는 건 좀 위험한 생각인 거 같더라고요. 같은 결론을 냈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이라는 곡이 나왔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근데 진짜 신기하네요ㅇ.,ㅇa

염철현

2015-04-27 00:47:22

인터뷰가 한 권의 책을 읽는 느낌입니다.힙합팬을 자부하는 나 조차도 힙합이란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당하게 받는..많이 배웁니다.

via https://hiphopplaya.com/g2/bbs/board.php?bo_table=interview&wr_id=332&page=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