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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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alon] 진보 (Jinbo)
한국에서 힙합, 알앤비를 대표하는 지역이라고 하면 다들 입모아 홍대를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홍대가 아닌 곳에서 힙합, 알앤비를 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홍대에서 하는 힙합, 알앤비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홍대 아티스트들은 이들만이 가진 힙합, 알앤비의 또 다른 바이브를 선사한다. 이 홍대와 '비'홍대를 구분하고 나누는 것은 정확히 하지도 못하고, 설령 한다 해도 무의미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두 부류가 각자 하는 음악의 느낌이 사뭇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에 만난 진보(Jinbo)는 비교적 '비'홍대에 가까운 색깔을 지니고 있는 아티스트다. 선수가 좋아하는 선수, 자기자신을 레프티라고 말하는 프로그레시브함을 추구하는 알앤비 아티스트, 진보를 만나고 왔다.
LE: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하게 인사 부탁 드립니다.
Jinbo: 한주현입니다. aka Jinbo, aka Superfreak.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 또 뭐가 있죠? 아, 요새는 슈퍼프릭 레코드(Superfreak Records)를 운영하고 있고 팟캐스트도 하고 있어요. 팟캐스트 ‘Superfreak Radio’의 진행자에요.
LE: [KRNB]가 주목 받은 이후로 인터뷰를 꽤 많이 하셨더라고요. 이번 앨범으로 인터뷰는 처음이신가요?
네.
LE: 이번 앨범에 대해 먼저 간단한 소개를 들을 수 있을까요?
[Fantasy]는 디지페디(DIGIPEDI)랑 같이 만나서 한 2년쯤 전인 것 같은데, 공동작업을 하려고 하는 중에 “Fantasy”라는 곡을 들려줬더니 디지페디 쪽에서 앨범으로 내고 싶어하고 영상을 만들고 싶어 해서 처음에 EP 정도로 시작했다가 좀 더 길어져서 정규 앨범이 되었고요. 컨셉 앨범이어서 1번부터 11번까지 전체적으로 하나의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고요. 애니메이션의 사운드트랙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정확히 얘기하면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다기보다는 배치를 그렇게 한 거죠. 중간 중간에 그런 트랙들도 있고요. 그리고 음악적인 특징은 약간 디지털 사운드 위주로 만든 앨범이에요.
LE: 이번에 함께 한 디지페디라는 분들도 소개해주세요. 음악적 콜라보가 아닌 다른 영역에 있으신 분들과의 콜라보잖아요.
디지페디는 영상 제작 프로덕션이고요. 최근에 샤이니(SHINee)를 비롯해서 프라이머리(Primary), 다이나믹듀오(Dynamic Duo), 이적, 서인영 등등 주류와 언더그라운드를 가리지 않고 아티스트들이 가장 작업하고 싶어하는 영상 프로덕션 팀이에요. 그리고 오로시(OROSH) 감독이랑 원모어타임(1MORETIME)) 감독 둘이서 하고 있고요.
LE: 이번 앨범을 위해 따로 사이트도 만들고, 인디펜던트 아티스트가 프로모션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네. 대답할 게 있나요? 맞습니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LE: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노력을 하시나요? SNS를 비롯한 여러 방법들이 있는데…
인터넷이죠. 싸이(PSY)의 “강남스타일” 같은 경우도 유투브에서 입소문으로 퍼져 전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점점 불이 붙어 큰 불이 된 것처럼 저도 일단 기본적으로는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마케팅을 다 하려고 해요. 그리고 큰 대형 기획사들이 주류 매체들 쪽에 이미 자리를 다 잡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새로 비주류로서 침투하기가 자본적으로나 기회적으로나 쉽지가 않기 때문에 아예 다른 길을 개척하고 싶어 하는 거죠. 인터넷은 일단 최소의 비용으로 마케팅을 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심의 부분에서도 제약이 적고, 그리고 컨텐츠가 진짜 좋으면 사람들에게 입소문으로 퍼져나갈 가능성도 있고, 바로 바로 피드백을 보는 장점도 있고요.
LE: 하지만 이렇게 셀프 프로모션을 하다 보면 지칠 때도 많을 것 같아요. 돌아오는 반응이 저조하다거나 할 때는…
그게 되게 극복해야 할 과제인 것 같은데, 그래서 이번 앨범을 음악으로만 계속 ‘이거 들어줘. 왜 이거 이해 못해.’라고 하는 건 마케팅적으로 잘하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오지 않고 진짜로 재미있어서 알아서 찾아올 수 있게 해야 되는데… 그래서 음악 뿐만 아니라 다른 쪽으로도 생각하고 있어요. [Fantasy] 자체를 오디오 북 같은 걸로 만든다든지 그런 여러 매체를 계속 활용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런 게일단 오프라인에 안 퍼지는 건 아쉽죠.
LE: 추후에 [Fantasy] 앨범을 이용해서 다른 컨텐츠를 또 생산하실 계획이 있으신 거죠?
네.
LE: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인디펜던트 아티스트 과정을 수료하셨다고 들었어요.
M.I.(Musicians Institute)에 인디펜던트 아티스트 프로그램이라는 코스가 있어요. 그 반에서 수강하는 과목들 중에 작곡 과목도 있고, 뮤직 비즈니스도 있고, 기악 연주 코스 수업도 있고, 여러 수업 중에 하나로 인딘펜던트 아티스트 과정이 있었어요.
LE: 수료하면서 도움이 많이 되었나요? 그 전과 후를 비교하면 어떤가요?
뮤직 비즈니스 수업에서 우리 바비 볼그(Bobby Borg) 교수가 항상 강조하던 건 절대 큰 레이블과 계약하지 말아라. 절대로 사인하지 말라. 큰 데랑 사인한다고 해서 인생이 풀리는 게 아니고, 얼마든지 망할 수 있기 때문에 계약을 조심해라. ‘DIY’라고 하잖아요. Do It Yourself.. 한마디로 줄이면 ‘DIY’였죠.
LE: [Fantasy]에 대한 지금까지의 반응은 어때요? 본인이 생각하는 만큼의 반응이 오고 있나요?
반응 좋은 것 같아요. 반응 좋은 것 같고, 제가 계속 CD 판매처에서 품절되었다고 연락을 받는 걸 보면 잘 나가는 것 같아요. 뮤직비디오 봤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좋아해주는 것 같고 오프라인 쪽으로 확장하는 방법을 찾고 있죠.
LE: 간단하게 최근 소개나 근황 들어봤고요. 예전 얘기부터 조금씩 시작을 할게요.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소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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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기본적인 질문인데, 이름 뜻에 관한 질문을 할게요. 진보라는 이름을 어떻게 짓게 된 건가요?
고등학교 때 NHK를 보다가 Blackout이라는 스케이트보드 영상이 있었는데, 거기서 스케이트보드 멤버 한 명 한 명이 멈추면서 켄보, 켄조, 켄지 이렇게 이름이 영상에 나왔어요. 그때 그 이름들이 영어로도 쓸 수 있고, 일본어로도 표기할 수 있고, 한자로도 표기할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전 옛날부터 한국에서만 뭘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미국 사람도 다 읽을 수 있고, 중국 사람도 읽을 수 있고, 일본 사람도 읽을 수 있는 그렇게 모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름이 두 글자 한자어 조합이라는 아이디어를 얻고서 그 다음에 저라는 사람의 캐릭터에 제일 잘 맞는 뜻으로 진보를 골랐어요. 진보적이다 할 때 그 진보에요. Progressive.
LE: 선거철에는 진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잖아요. 이름 지을 때는 이런 걸 생각해 보셨나요?
누가 그러는 걸 본 것 같아요. 별로 신경도 안 써요. 그런 거에 별로 신경 쓰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이러면 이럴 까봐 겁먹고 그러지 않아요.
LE: 음악을 하게 된 데에 특별한 계기나 동기가 있었나요?
감수성으로 따지면 어릴 때부터 집안에 음악이 많이 있었어요. 형들도 학교에서 밴드하고 있었고, 오케스트라도 하고 있었고, 어머니도 지휘도 하셨고, 피아노도 치셨고 성악도 하셨거든요. 그런 가정 분위기 때문에 집에 음악 방이 따로 있었어요. 레슨 받고 그런 방이었죠. 전축, LP도 많이 있었고, 악기도 많았고요. 그래서 그냥 정말 당연하게 ‘음악이라는 걸 저렇게 즐기면서 사는 거구나.’ 라는 걸 태어나자마자 알게 됐죠. 그리고 형들, 학교에서 파티 같은 걸 하잖아요. 댄스 파티 아니면 가을 되면 가을 축제, 봄 되면 봄 축제 이런 걸 학교에서 하면 전 그 당시 유치원생이었는데 가서 보면 형들이 연주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저거 진짜 할거야. 진짜 멋있다.’라고 생각했죠. 이후에는 중학교 때쯤 본격적으로 생각을 했는데, 그 전까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고,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수학을 제일 좋아하고 잘했었거든요. 지금도 ‘제일 멋있는 사람은 누굴까?’를 생각하면 과학자가 제일 멋있는 일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근데 과학자가 아니라면 그만큼 멋있는 건 음악인인 것 같아요. 음악만큼 지능과 감성이 둘 다 발달해서 조화시켜야 잘 할 수 있는 그런 게 얼마 없는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최고의 수학자, 물리학자가 될 수 없으면 음악하는 사람이 제일 우아한 일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LE: 중학교 때는 밴드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거기서 프라이머리 님을 만나셨다고 알고 있어요. 프라이머리 님과는 뷰직 세션도 함께 하셨었죠.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나 지금은 어떤 관계인지 말씀해주세요.
영동중학교에서 도시락이라는 밴드를 같이 했었고요. 당시 밴드 이름을 짓는데 다들 맥도날드에 모여서 ‘우리 밴드 이름 뭘로 할래?’ 하는데 프라이머리가 ‘능구렁이 어때 능구렁이?’ 라고 해서 작명센스에 실망했던 기억이 있죠. 그리고 공연할 때는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마의만 입고 공연하고 그랬어요. 의상이 아주 파격적이었어요. 재미있었어요.
LE: 진보님이 괴짜라는 이미지가 있고, 프라이머리 님도 트위터에서 황당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데요. 그런 걸 보면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영동중학교 문화인데, 96,7년도 영동중학교 문화인 것 같아요. 그래서 프라이머리 뿐만 아니라 아마 그때 그 학교를 다녔던 82년생들을 만나면 비슷한 걸 많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프라이머리랑 저도 그 영향을 받은 거고요. 언어파괴하고 이런 것들… 프라이머리가 막 트위트에 ‘걃륦’ 이런 거 쓰잖아요. 지금도 인사할 때 그러거든요. 프라이머리도 그런 친구들 중 하나인 거죠.
LE: 고등학교 때는 ‘전설의’ 상문고에서 ‘전설의’ 흑락회를 만들었어요. 진보 님께서 1기라고 알고 있고, 한국 최초의 고등학교 힙합 동아리라고 알고 있어요. 흑락회는 진보 님이 직접 만드신 건가요?
직접 만드는 게 건물 짓듯이 뚝딱뚝딱 쌓아 올리고 이런 게 아닌데… (웃음) 제가 고1때는 작곡반에 들어갔었어요. 작곡반에 들어갔는데, 음악적인 활동이 별로 없어서 약간 실망을 하고 있던 차에 고2때 작곡반을 우리가 만들자고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친구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자. 그래야 우리끼리 할 수 있으니깐요. 고1때는 선배들이 있잖아요. 선배들이 있으니까 좀 불편하더라고요. 제가 선배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러다가 2학년 때 우리끼리 만들자고 한 거죠. 당시 힙합 좋아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교에서 그런 거 좋아하는 애들이 좀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 고1에 지금 써드 코스트(3rd Coast), 일진스(Ill Jeanz)를 같이 했던 최지호라는 친구가 저희 학교로 오면서 본격적으로 불이 붙어서 만들었죠. 그 친구가 그 당시에 학교 전체에서, 그리고 아마 동네 전체에서 최고의 힙합 마니아였을 거예요. 집에 작업실도 꾸며져 있고 했었으니깐요. 그리고 그때 막 소문이 났었어요. 신입생인데 메쏘드 맨(Method Man) 랩 잘하는 친구가 들어왔다고... 애들끼리 막 몰려가서 ‘누구야? 누구야?’하다 찾아서 ‘너 랩해봐.’ 애들이 시키니까 처음에는 얼어있다가 ‘I came to bring the pain, more hard to the brain’ (‘What’s Happenin’’ 중) 이런 거 하고 그랬죠. 우린 이 친구가 있으면 동아리가 되겠다 싶었죠.
LE: 그 과정에서 일진스가 만들어졌어요. 일진스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다른 인터뷰에서도 하셨으니까, 최근 근황을 물어볼게요. 우선 이번 앨범에 함께 한 곡이 있더라고요.
일진스 첫 EP가 나오고 난 다음에 “Take It Slow”라는 싱글이 나왔었어요. 사실 “Tape It Slow”는 그 노래의 리믹스죠. 제목만 “Tape It Slow”로 바꾼 거죠. 그 노래가 뭐랄까, 히트곡 포텐셜이 있는 곡이었어요. 미국에서 공연 같은 거 할 때도 다들 이 노래 너무 좋다고, 이 노래 한국에서 크게 히트했냐고 물어보고 그랬어요. 근데 별로 히트 안 했다고 하면 왜 히트를 못했냐고 그러더라고요. 이건 진짜 옛날 테디 라일리(Teddy Riley) 느낌 나고 너무 좋다고 다들 그래서 공연 레퍼토리로도 많이 했었어요. “Fantasy”같은 경우에도 그게 5년 전 노래인데 공연 할 때마다 반응이 괜찮았었어요. 디지페디도 그걸 보고서 하고 싶다 그랬던 거고요. 아무튼 “Take It Slow”가 반응이 좋았는데 너무 프로모션이 안되고 안 퍼져 나가서 아깝더라고요. 어떻게라도 그걸 앨범에 다시 넣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리믹스를 했고, 리믹스가 [Fantasy] 전체 색깔과 잘 맞았어요. 색깔이 잘 맞아서 그런지 앨범의 키 트랙 중 하나가 되었고요.
LE: 특별히 아끼는 곡이나 사연이 있는 곡이 또 있나요?
사연은 다 있죠. 저는 사연 없이 노래를 만든 적은 없는 것 같아요. “Traumatic” 같은 노래는 제가 LA에 있을 때 친했던 젯 투(Jet 2)가 참여를 해줘서 그게 좀 특별해요. 사운드나 이상한 쫄깃쫄깃한 바운스가 좋은 트랙이죠. “Delete It Deal It” 같은 것도 다 제 얘기들이에요. 저를 위해서 만든 거고요. 그런 지우고 싶은 일들이 있어서 제목을 그렇게 짓고 만들었죠. “Don’t Be Sad When You’re Sad” 같은 노래는 제가 어떤 다른 노래에서 스킷 같은 걸로 들었던 건데, 코미디언이 그냥 ‘When I’m sad, I try not to be sad’라고 하는 스킷이 있었어요. 듣고서 너무 말이 안되잖아요. 슬플 때 안 슬프려고 해. 말이 안 되는 건데 역설적으로 해결책같이 들리는 거예요. 진짜 저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되게 우울할 때 이걸 들으면서 운전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만들어서 운전하면서 들었죠. “It’s Over”도 LA에 있을 때 만들었던 노래인데, 딱 노래의 내용 같은 일이 LA에서 있었어요. 완전 이제 끝났구나. 다시는 저 사람을 볼 수 없겠구나. 다 끝났다고 했을 때 집에서 만든 노래고 다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에피소드를 다른 형식으로 만들고 싶은 이유가 그 노래가 왜 나왔는지를 음악으로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해서 음악에서만 멈출 수 없어요.
LE: 그 안에 담겨있는 것들을 표현하기에 청각적만으로는 쉽지 않다 이건가요?
일단은 청각으로만 표현할 생각인데요, 일단은 앨범 노래 하나 하나에 주저리 주저리 되게 스토리가 많기 때문에 하나 하나가 짧은 단편 소설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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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일진스의 이보(Evo) 씨도 참여를 했는데, 이제 하이라이트 레코즈(Hi-Lite Records)에서 솔로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시잖아요. 그런 안정된 레이블 안에서의 활동을 보면 부러운 점도 있으신가요?
하이라이트 레코즈는 공연 같은 걸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부분에서 벌써 경험이 많아서 되게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공연 기획 같은 걸 해보니까 그건 또 다른 문제더라고요. 경험이 많아야 하는 거더라고요. 하이라이트 레코즈가 어느새 몇 주년 기념 파티도 하고 그런 걸 보면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이유 때문에 이보에게 하이라이트 레코즈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던 이유가 저는 그때 그렇게 공연을 많이 하고 싶고, 또 계속 싱글을 낼 생각이 좀 없었거든요. 그보다 제 레이블 색깔을 만들고 싶고 그랬죠. 또 제 개인적으로 어떤 음악이 나와야 하고,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이 정리가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보를 계속 잡아놓을 수가 없는 상태기도 했어요. 이보는 당시에 되게 현장을 계속 하고 싶어했고요. 싱글도 내고, 공연도 하면서 바로 바로 피드백을 원하는 친구였고, 저는 피드백 상관없고 다 필요 없었죠. 전 일단 나를 좀 알아야겠다 싶었어요. (웃음) 그러니까 이보는 그 쪽으로 한 게 되게 잘된 거죠. 잘 된 것 같아요. 저랑은 조금 다른 길이지만요.
LE: 일진스는 앞으로 계획된 앨범이나 활동은 없나요?
계획되어 있는 건 없어요.
LE: 많이 넘어와서 (웃음) 2005년에 [Call My Name EP]가 발표하십니다. 이때도 확실한 음악적 지향점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Call My Name EP] 때는 음악적인 지향이 없었죠. 군대 가기 전 빨리 앨범을 내야겠다는 지향만 있었죠 (웃음)
LE: 뭔가 하나라도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이셨던 건가요?
네. 군대 가기 전에는 무조건 앨범을 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때가 앨범 나올 수 있는 찬스인 것 같아요.
LE: EP 때는 킵루츠(Keeproots) 님하고 같이 되게 많이 작업하셨더라고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그때 킵루츠가 제가 있던 레이블인 가라사대에 프로듀서로 있었고요. 그리고 킵루츠가 당시에 붐뱁(Boom Bap)이나 재즈 힙합, 피트 락(Pete Rock) 류의 비트를 제일 잘 만드는 사람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같이 해보고 싶었어요. 음악적 지향이 뚜렷한 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시에 제일 좋아했던 사운드가 네오 소울이었어요. 빌랄(Bilal), 디앤젤로(D’Angelo), 뮤지크 소울 차일드(Musiq Soulchild)를 들으면서 그런 걸 하고 싶어 하던 때에 그런 드럼을 만드는 프로듀서가 또 킵루츠니까 같이 해보려고 했죠. 많이는 안 했어요 근데. 첫 곡 같은 경우에 제가 군대를 가고 킵루츠가 그냥 따로 개인 작업한 트랙이에요. 킵루츠가 앨범에서는 “떠나기전 날에” 그 노래 하나밖에 안 했죠. 그 외에 트레스패스(Trespass)와 작업에서 현무랑 같이 한 것도 있었던 것 같고… “공작새”라는 노랜가? 보컬 네 명만 한다 그래서 당시 태완, 채영, 저하고 정기고(Junggigo)였나? 정기고였던 것 같아요. 라디(Ra.D)는 아니고… 그렇게 네 명이 모여서 만든 트랙이 있어요. 혹시 공개가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프로젝트도 있었어요. 그렇게 한 세, 네 개 정도 한 것 같아요.
LE: 가라사대로 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많이 생략한 편인데, 가라사대 하면 전체적으로 올드하고붐뱁 느낌을 많이 지향하는 레이블이었는데, 지금 진보 씨나 예전 그때의 진보씨 음악을 보면 가라사대와 어울릴 법한 느낌은 좀 들지 않는데, 어떻게 연이 닿게 된 건지가 궁금해요.
제가 프라이머리를 따라서 많이 따라갔던 것 같아요. 프라이머리가 작업실 냈을 때도 거기 괜찮냐고 하고 같은 건물에 들어가기도 했고요. 당시 프라이머리가 가라사대에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2003년부터 부다 사운드(Buda Sound)와 왕래가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2005년 쯤에 누구 소개로 만났는지는 기억이 안나요. 군대 가기 전 앨범을 내야 했었는데 제가 한달 반 안에 앨범 내줄 수 있냐고 했었죠. 되게 짧은 시간 동안에 앨범 내줄 수 있냐고 했었는데, 그때 가라사대가 할 수 있겠다고 해서 같이 했었어요.
LE: 그리고 나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서 2010년에 [Afterwork]를 발표하셨어요. 두 앨범 사이의 시간적 간극은 되게 긴데, 음악은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른 매체에서도 밝히셨지만, [Afterwork]가 말 그대로 작업들이 끝난 후에 모아둔 작업물 들이라고 알고 있어요.
사실 그 전에 나오려고 준비를 하고 있던 앨범이 몇 개가 더 있었어요. 그 중에 하나가 [Love Is All You Need]라는 앨범이었고요. 그리고 [Fantasy]가 있었고요. 그런 것들을 항상 쭉 모아서 데모로 가지고 있었는데, [Afterwork]가 나오게 된 건 거의 전적으로 “U R”이 나오면서였어요. 제 데모 중에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었는데, 알켈리(R.Kelly)스러운 알앤비도 있었고요. 아니면 약간 레게도 있었고요. 신스 팝 같은 것도 있었고요. 그렇게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U R”이 나오면서 방향이 다 그런 스타일로 가게 되어서 그런 스타일의 곡들을 모으게 됐어요.
LE: 데모로 여러 스타일이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것들이 못나오게 된 이유가 울림 엔터테인먼트와 마찰 때문에 그랬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다음에 CJ로 입사를 하시고요.
네. 울림 위약금 갚으려고요. (웃음) 마찰이 좀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맨날 죽이고 욕하고 싸우는 악몽 꾸고 장난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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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들어갈 때는 그래도 ‘여기는 날 서포트 해 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해서 들어가셨던 거죠?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찝찝하긴 했어요. 왜 기획사 사장들만의 분위기가 있잖아요. 뭔가 그 사짜 냄새 나고, 필요 이상으로 잘해주고…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잘해주는 사람들 보면 지금도 경계해요. 필요 이상의 감언이설로 꼬시고 잘해주다가 어느 순간 ‘야, 이 새끼야.’라고 하는 순간, ‘계약 망했다. 큰일났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근데 상대적으로 웃겼던 게 저를 두고 울림 엔터테인먼트와 경쟁을 하던 회사는 더 사짜였어요. 결국 거기는 망했어요. 울림 엔터테인먼트는 그나마 안 망하고 잘하고 있지만… 아무튼 울림 엔터테인먼트에선 저도 어느 정도는 여기 들어온 이상 완전히 인디, 실험적인 음악을 할 생각을 아니었어요. 그냥 어느 정도 메인스트림 알앤비도 우리나라에 제대로 없으니까 그런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울림 엔터테인먼트를 들어갔었어요. 당시에 회사 측에서 ‘너 TV도 나가야 되고 하는데, 그런 거 할 수 있겠냐?’라고 했는데, 저는 그런 거 하고 싶다고 했었어요. 그대신 나는 이미지가 약간 제이미 폭스(Jamie Foxx) 같았으면 좋겠다고 했죠. 시상식 사회 보면서도 가사 웃기게 바꿔서 노래 부르고, 음악적인 엔터테이너나 음악가인데 엔터테이너도 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었고, 그 쪽에서도 그걸 처음에는 OK해줬죠. 근데 그 다음부터 뭐만 만들면 ‘야, 니요(Ne-Yo)없냐? 니요 같은 거 해.’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가 니요(Ne-Yo)의 “So Sick”이 유행할 때였어요. 그래서 진짜 “So Sick”에 질려버렸어요.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도 아티스트로서 실력을 떠나서 창작을 하는 사람인데, 누군가로부터 ‘너 니요 같은 거 만들어봐. 싸이 같은 거 좀 만들어봐.’라고 얘기를 듣는 건 되게 모멸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그런 데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고, 그리고 자기가 기획사, 레이블 사장이면 자기 아티스트를 제일 서포트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심지어 어떤 아티스트가 음악을 내놨는데, 그 음악이 대중적이지 않을 경우에도 그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을 어떻게 대중적으로 만들까는 회사와 사장의 몫이잖아요. 마케팅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건 회사의 몫인데, 자꾸 저를 뜯어고치려고 하는 거예요. ‘니요 만들어. 니요 만들어’라고 하면서 자기는 손 하나 안대고 코 풀려고 하니까… ‘완전 뜰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 그럼 난 그 노래를 방송국에 찌르고 너랑 돈 나눠먹자.’같은 식이잖아요. 그래서 정이 완전히 떨어졌고, 그때부터 결심했죠. 저는 복수를 좀 길게 하는 편이에요. 제가 상처를 되게 잘 받는 스타일인데, 근데 그 자리에서 화내는 스타일은 아니고 긴 전략을 짜서 10년짜리 복수를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 당시에 그러면서 맘을 먹었었죠. 나는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되겠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잘되고 말겠다는 생각을 했죠
LE: 그게 복수의 마지막 결과겠죠?
네. 그렇죠. 끝까지 하고싶은 대로 다하고, 저를 포함해서 제 레이블에 있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제가 서포트를 해서 ‘너 그 음악 안되니까 음악 바꿔.’가 아니라 그걸 가지고 어떻게든 창의적인 마케팅을 해서 성공시키는 게 저의 복수이자 플랜이죠.
LE: 수많은 데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셨는데, [Afterwork]는 제이 딜라(J Dilla)나 드웰레(Dwele)의 영향을 받아 만든 것이라고 다른 인터뷰에서 얘기하셨더라고요. 그런 하나의 스타일로 묶으신 것 같은데, 그 스타일로 묶은 이유가 특별히 있으신가요? 루프를 돌리는 방식을 베이스로 한 음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제이 딜라 음악을 제대로 들었던 게 2008년, 2009년이었어요. 전세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들 제이 딜라처럼 사운드를 내고 싶어했고, 제이 딜라 카피 캣들이 많았죠. 물론 그 카피 캣이 꼭 부정적인 의미만을 가지진 않아요. 이건 좀 딴 얘기인데, 힙합 비트를 만드는 사람들은 제이 딜라를 한번 마스터해야 하는 것 같아요. 농구선수가 할 수만 있다면 마이클 조던(Micheal Jordan)의 것을 마스터하는 게 본인의 스킬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힙합에서도 제이 딜라는 꼭 마스터해야 하는 존재 같고, 저도 그런 의미에서 그때는 거의 매일 제이 딜라를 들었어요. 그리고 제이 딜라의 [Donut] 앨범이 되게 터칭 하잖아요. 듣고 있으면 제이 딜라가 죽기 전의 무언가가 느껴지고… 그때 정서적으로도 제이 딜라가 제 안에 많이 들어와있었던 거 같아요.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근데 이 영향을 받았다는 게 단순히 ‘영향 많이 받았어요. 꽂혔어요.’같은 게 아니고, 들으면서 ‘나도 음악으로 이런 주제를 표현해야 되나?’ 아니면 누군가가 들었을 때 내가 지금 제이 딜라를 듣고 느꼈던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같은 생각을 했었죠. 어떤 비트에서 ‘에~’하는 샘플이 듣는 재미였다면, 내 앨범에도 그런 샘플 넣어봐야겠다 같은 기타 등등의 많은 아이디어를 제이 딜라에게서 얻었어요.
LE: 그리고 나서 피제이(PEEJAY)님과 콜라보 작업을 하시면서 [The Combination]을 내셨어요. 피제이 님과는 지금도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작업은 요새 같이 못하고 있어요. 제가 제일 편하게 생각하고, 제일 따르는 사람 중에 하나고요. 음악적으로도 항상 배우고 있어요. 보통 음악은 자기가 만든 것만 듣거나,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외국 아티스트의 음악만 듣거나 하는데, 저는 피제이 음악 자체를 좋아해서 데모 같은 거 나올 때마다 보내달라고 하면서 들으면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근데 보시다시피 저는 분당에 살고, 피제이는 홍대에 살아요. 분당에서 홍대는 정말 힘들어요. 한번 갔다 오면 기름 다 떨어지고, 또 3만원 넣어야 되고… 그래서 잘 안 가게 되는데, 홍대 갈 일 있을 때는 살짝 보고 그래요. 작업을… 작업해야죠. 하고 싶어요.
LE: 대략 진보 님과 작업을 함께 하신 아티스트 분들을 보면 지금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신 분들보다는 비교적 측근에 있는 분들과 작업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은 성격에서 기인한 건가요?
저는 일단 기본적으로 되게 레프티에요. 이름도 진보인 것처럼 남들 다 좋아하는 거 싫어하고, 남들 다 뭐하면 하기 싫고, 남들이 걔가 요즘 제일 핫하다고 하면 그 사람이랑 같이 하기 싫고… 그런 생리적인 반응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요. 또 한편으로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항상 고수는 일반인이 살짝 몰라주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만인이 좋아하는 선수가 있고, 그리고 선수들이 좋아하는 선수가 있어요. 저는 선수들이 좋아하는 선수들을 좋아하고요. 그냥 저는 그런 사람들이 좋아서 그런 사람들이랑 작업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보기에 ‘어? 얘랑 작업했어?’라고 했을 때… 예를 들면 이번에 스윙스(Swings)랑 작업했을 때도 처음에 제가 스윙스 섭외할 때도 그렇고, 다들 ‘어? 스윙스?’라고 했어요.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뻔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너 도끼(Dok2)랑 많이 하지 않았어? 왜 도끼랑 안해?’라고 하기도 하는데, 제가 그런 식으로 이 사람하고 작업하면 마케팅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제 방식으로 음악하는 길을 뚫지도 않았겠죠. 그렇게 하는 것에 관심도 없고, 속보이고 들키는 것도 창피하고요. ‘어? 이 새끼 이랬네. 앨범 좀 팔고 싶었구나?’라고 속보이는 게 싫고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스윙스의 랩 플로우가 되게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캐치하게, 화려하게 들리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본기를 생각하면 스윙스인 것 같아요. “It’s Over”같은 경우엔 완전 힙합이라기보다는 사실 저는 마이클 잭슨(Micheal Jackson)의 노래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만든 노래에요. 마이클 잭슨의 트랙에 핍티 센트(50 Cent)가 참여한 노래가 있어요. 그 노래를 생각하면서 스윙스가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근데 사람들은 ‘스윙스?!’라는 반응을 보였고, 근데 들어보소. ‘오, 스윙스 잘했다. 스윙스 이런 애였어?’라고 하고… 그때 되게 ‘나이스. 봤지? 봤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했죠.
LE: 본인의 안목이 증명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그런 거 찾는 거 좋아해요. 삼성전자 주식 사는 거보다 ‘이 주식이 분명히 잘 나갈 거야’라고 하며 아는 사람들은 아는 주식을 사는 것과 같은 거죠.
LE: 작년에 빈지노(Beenzino) 씨의 “Aqua Man”이란 트랙을 프로듀싱하셨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았어요. 아까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보면 빈지노 씨는 진보 씨가 말씀하신 ‘선수들이 좋아하는 선수’에 해당이 되는 건가요?
빈지노는 지금은 그때 제가 느꼈던 포텐셜들이 많이 터져있는 상태인데, 지금은 되게 ‘랩스타’가 됐잖아요. 근데 그 당시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죠. 왜냐하면 앨범 나오기 전이니깐요. 외국은 힙합계에서 스타가 되어서 미국 전체 스타가 되잖아요. 제이지(Jay-Z)하면 미국 국민들 중에 모르는 사람 없잖아요. 스눕 독(Snoop Dogg)이나 릴 웨인(Lil Wayne)도 꼭 힙합 좋아하는 애들 아니더라도 다 아는 그런 일반적인 팝 아이콘이잖아요. 빈지노는 한국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힙합이 계속 ‘한국힙합, 한국힙합’ 하면서 요만한 데서 돈도 안 나오고, 그 얼마 안되는 돈도 다 고등학생이 사주면서 발생하는 거니까 음악이 고등학생들이 즐기는 정도에서 더 이상 성장을 못하고 계속 거기에만 있고… 그렇게 되면 점점 구려질 거 같아요. 누구 하나가 스타가 되어서 힙합 노래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둬야 의미가 있을 거 같아요. 예를 들면 힙합 싱글인데 멜론 차트니, 인기가요니 이런 데에 상위권에도 좀 들어가야 나름대로 10년 동안 힙합이란 게 있었고, 힙합을 해왔던 게 의미가 있지, 계속해서 거기에만 있으면… 저도 거기에 관련이 돼있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제 직장이 계속 중소기업 정도 수준으로만 있는 건 싫은 거죠. 뭔가 이게 좀 더 퍼져나가고 랩, 힙합 아이콘을 통해서 ‘어, 이런 애도 있었네’라고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길이 틀려면 스타가 하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빈지노가 딱 그걸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제가 도울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같이 하게 됐어요.
LE: 빈지노 씨 외에 진보 씨가 보시기에 선수들이 좋아하는 선수에 해당하는 아티스트로는 누가 있나요?
일단 360사운즈(360Sounds)의 썸데프(Somdef)가 있고요. 썸데프 앨범에 저도 한 곡 참여했는데, 뮤직비디오도 찍었고요. 시모(Simo)도 참여했고요. 시모 앤 무드슐라(Mood Schula)는 모든 선수들이 좋아하는 선수이고… 그리고 최근에 만난 알앤비쪽 친구들 중에서는 크러쉬(Crush)가 그런 것 같아요. 크러쉬가 되게 나이에 비해서, 제가 그 나이대에 했던 것에 비해서 훨씬 더 음악성이 있는 친구인 것 같아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 크러쉬가 소속되어 있는 크루 비비드(VV:D) 전체가 다 잘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크러쉬가 눈에 들어오고요. 그런 유망 주식 말고 진짜 고수 주식이라고 하면 직접 만나보진 않았지만, 제이패스(J-Path) 형이 우리 중에서는 선수로 알려져 있어요. DJ 머프(DJ Murf), 키드비(Kid-B), 제이패스 그렇게 세 분이 저희들이 또 올려다보는 형들이에요. DJ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도 당연히 있는데, 너무나 많이 언급되어서 새롭게 언급할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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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언급하신 분들 중에 360사운즈에 소속되어 계신 분들도 있는 데요. 360사운즈와 여러 가지를 함께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지금 보면 홍대 씬이 있는 거 같고 비홍대 씬이 있는 거 같아요. 홍대 씬이 조금 더 젊고, 트렌드한 느낌이고, 비홍대 씬엔 트렌디한 거 말고 조금 더 프로그레시브한 것들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홍대 씬과 비홍대 씬이 교류가 많이 없는 거 같아요. 홍대 씬은 프로그레시브한 걸 원하지 않으니깐요. 딱 트렌디한 걸 원하니깐요. 그렇게 프로그레시브한 걸 원하는 사람들끼리 비홍대 씬에 모이는데, 썸데프도 그런 친구 중에 하나고요. 음악적으로 얘기를 나눌게 많아요. 이번에 같이 작업한 노래 같은 경우도 전혀 트렌디한 스타일이 아니고요. 그리고 360사운즈가 제가 제일 친한 크루이기도 해요. 작년 한해는 이태원에서 시간을 정말 많이 보낸 것 같아요. 작년이 이태원에 씬이 형성되는 분위기였어요. 디제이 코난(DJ Conan), 디제이 스터프(DJ Stuf), 그리고 저하고 무드 슐라까지 해서 4명의 82년생들끼리 모여서 이태원에서 행사들을 많이 했었고요. 그리고 이태원에 케익샵(Cakeshop)이란 데가 있는데, 케익샵에서 썸데프가 많이 해요. 저나 무드 슐라도 하고요. 지금 케익샵이란 곳을 중심으로 프로그레시브한 사람들이 이태원에 많이 모이고 있죠.
LE: 말씀하신 대로 한국힙합 씬을 홍대 씬과 비홍대 씬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홍대 씬의 음악을 즐기는 입장에서는 비홍대 씬의 음악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360사운즈도 집단 자체가 파퓰러한 느낌보다는 자기들만의 어떤 문화나 가치를 추구하고 영유하려는 느낌이 있어요. 한마디로 겉에서 보기에는 어려워 보인다는 거죠.
그 얘기를 예전부터 많이 들어왔었는데, 한국 사람들 자체가 보수적인 경향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그 보수적인 게 어떻게 드러나냐 하면, 문화 활동 같은 걸 할 때도 떠먹여주기를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먼저 다가가지 않고요. 어떤 파티를 가서도 혼자 가서 옆에 모르는 사람을 친구로 새로 사귀진 않아요. 아는 사람들하고만 가요. 그렇기 때문에 360사운즈 파티 같은 데에 가서 자기들끼리 논다고 그러는데, 사실 자기들끼리 노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은 다 서로 친구고, 또 그 사람들이 주최자잖아요. 당연히 주최자들끼리 있을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리고 오히려 그쪽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접근하는 경우는 있어도 반대로는 접근을 안 해요. 이건 하루 아침에 고쳐질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미국에 가서 클럽을 가보면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거기서 다 알게 되고, 혼자 가는 사람도 많고요. 저도 혼자 가고요. 페스티벌 같은 데도 혼자 배낭 하나 매고 가서 거기서 친구 사귀어서 어디 술집 가서 놀다가 또 딴 친구 사귀어서 놀고 그래요. 근데 동양인들은 진짜 안 그래요. 동양인들은 다 너무 주눅들어있고 쑥스러워하고 그래요. 360사운즈 파티에 가서 소외감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인 거죠. 그렇게 ‘쟤네들끼리만 놀고 난 못 끼는 것 같아’라고 하는 거죠. 근데 음악도 그런 것 같아요. ‘저 음악은 모르겠어.’라고 하면서 내 친구들이 좋아하기 시작하면 되게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러는 거 같아요. 이건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저는 그래서 진짜 사람들을 타지 생활을 경험하게 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걸 한번 체험하고 나면 독립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어요. 갑자기 독일에 유학을 보내놓으면 자기도 재미있고 싶잖아요. 그러니 혼자라도 놀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아, 뭐야? 혼자서도 다할 수 있네?’라고 느끼고, ‘나같이 혼자 지내는 애가 나 혼자가 아니고 다 그러네?’라고 느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취미도 갖게 되고, 새로운 클럽도 혼자 가보게 되는 거죠. 근데 한국은 그게 좀 부족하죠.
LE: 밴드 몽구스와의 작업은 많은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한 장르 안에 국한되려고 하시는 편은 아니신 것 같아요. 밴드 사운드에 대한 갈망도 있으신 것 같고요.
밴드 사운드는 쉽지 않아요. 진짜 힘든 일이에요. 밴드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존경을 표해요. 저는 밴드 사운드를 추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반대에요. 밴드는 단순히 음악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기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밴드는 엄청난 카리스마로 팀을 꽉 잡고 머릿속의 계획을 A,B,C,D,E 이렇게 짜서 ‘넌 이거하고, 넌 이거해.’라고 하면서 할 일을 딱딱 지정해주는 독재를 하는 경우나 아니면 다같이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내가 A할게. C해볼까? D해볼까?’라고 하면서 척척 호흡이 잘 맞는 경우가 아니면 되게 힘들어요. 그래서 오히려 혼자 할 수 있는 음악들을 하려고 해요. 요즘에는 다들 컴퓨터로 작업을 하니까… 혼자 이런저런 음악을 하는 거 같아요. 그러다 보면 장르도 여러 가지를 하게 되죠. ‘하우스 만들어봐야겠다.’, ‘테크노 만들어봐야겠다.’, ‘레게 만들어봐야겠다.’라고 하면서 혼자 하게 되는 거죠. 그런 연장선에서 저도 해볼 수 있는 걸 해보는 것도 있고, 그리고 어릴 때도 여러 음악에 꽂혀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여러 가지로부터 영향을 받으니깐요. 힙합만 계속 들으면 재미가 없을 때가 있고, 그럴 때는 하우스가 새롭게 들리고, 하우스도 프로그레시브 하우스가 좋아서 클럽을 가서 테크 하우스 들으면서 놀다가 ‘테크 하우스 너무 트렌디한 것 같아.’같은 생각이 들면서 80년대 디트로이트 하우스를 들으면서 ‘와, 이거다. 무슨 창고에서 듣는 것 같아.’라고 하다가 밴드가 연주하는 70년대 소울을 들으면 ‘드럼 머신 소리가 아닌 진짜 드럼을 들으니까 감동이 온다’라고 하면서 왔다갔다하는 거죠. 그리고 당연하게도 점점 넓어지는 거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알앤비만 듣다가 대학교 때는 힙합, 알앤비를 듣다가 대학교 졸업한 이후에는 일렉트로니카 듣다가 그 다음에는 모두 듣고… 자연스레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거 같아요.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되게 다양하게 좋아하는 거 같아요.
LE: 이제 [KRNB]에 대한 얘기를 해볼게요. 그 전에 재키 초(Jaeki Cho) 님과 함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재키 초는 XXL이라는 힙합 음악 잡지의 에디터이기 때문에 현재 힙합의 상황이나 역사를 잘 알고 있고 뉴욕에 살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한국 음악을 되게 많이 들어요. 어떤 음악도 다 체크를 하고, 한국 트렌드도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재키 초는 저를 되게 신기하게 생각했던 거죠. 어떻게 한국에 사는데 아무것도 모르냐고 하더라고요. 저한테 ‘이거 들어봤어? 이거 들어봐.’라고 하는데 전 ‘내 취향 아닌데.’라고 하고 그랬는데, 재키 초가 보기에는 한국 음악 시장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았던 거죠. ‘형, 왜 얘한테 곡 안 줘? 형이 곡을 줘야지. You Can Do It, Man’이러고… (전원 웃음) 그래서 그전까지는 한국 팝에 관심이 없다가 재키 초 얘기를 듣고서 조금 조금씩 마음이 열렸죠. 맨 처음에는 조용필, 김추자의 옛날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걸 샘플링하면 좋을 거 같아.’같은 얘기를 하다가 제가 재미로 ‘야, 알앤비는 가사가 다 되게 직설적이고 끈적끈적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노래 가사가 너무 귀여운 거 같아. 이렇게 불러야지.’라고 하면서 가사를 야하게 바꿔서 부르면 애들이 ‘Yo!!! 그런 거 해야 돼.’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그런 반응이 놀리는 건 줄 알았다가 계속 그러니까 그러면 아예 프로젝트로 하자고 결심을 한 거죠. 곡 셀렉션도 다하고…
LE: 곡 셀렉션을 하시면서 진보 님의 취향이 어느 정도 반영이 된 거잖아요. 보면 다양한 재해석이 있었는데, 어느 하나의 무드에만 초점을 두신 건 아닌 것 같아요.
네. 그렇죠.
LE: [KRNB]는 외국 사이트인 하이퍼트랙(Hypetrak)에 앨범을 게재하셨잖아요. 국내 씬에서의 활동에 집중하기보다는 좀 더 와이드하게 활동을 하시면서 해외에 진보라는 아티스트를 선보이는 데에 도움이 됐을 거 같아요. 처음에 하이퍼트랙에 게재할 때 어떤 생각이었고,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하이퍼트랙에 게재하신 걸 보면, 진보 씨는 뭔가 기존에 있는 한정적인 프로모션 방식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프로모션에 관해서 보다 폭넓게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와이드하게 생각해야죠. (웃음) 케이팝이라는 걸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도 인식을 하긴 했지만 그 사람들에게 케이팝은 여자 애들 나와서 춤추는 댄스 같은 것 정도였는데, 하이퍼트랙에서 제 것을 듣고서 이건 자기들이 알던 케이팝이 아니다, 되게 인터내셔널한 것 같다고 봐줬기 때문에 올려준 것 같고요. 제 입장에서도 그 사람들이 느꼈던 그 느낌을 주고 싶어서 하이퍼트랙 쪽으로 많이 하려고 하는 거죠.
LE: 정식 발매가 아니고 무료 공개여서 아쉬운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니요. 전혀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좋은 본보기 같은 걸 만드는 데에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권리와 의무 중에서 약간 의무 파트에 좀 더 신경 써서 한 프로젝트죠.
LE: 그럼 이제 [Fantasy]에 대해 얘기해볼게요. 우선 최근 유행인 EDM 음악에서 들을 수 있는 트렌드에 가까운 사운드소스들을 접할 수 있었어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어렸을 때는 힙합만, 언제는 힙합, 알앤비만, 언제는 하우스까지 들으셨다고 하셨는데, 그럼 요즘에는 EDM 음악에 꽂혀있으신 건가요?
제가 빠져있다기보다는 음악의 중심이 시대별로 움직이잖아요. 지금은 EDM 음악의 세대에요. 요새 NB에서도 힙합 잘 안트니깐요. 일단 지금 그런 시대이고, 단순히 그게 유행이니까 하는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감성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사회적으로 있는 것 같아요. 디지털 음악의 발달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요. 어떤 앨범을 낸다거나 어떤 창작물을 내는 데에는 다 그 사회가 반영이 되는 거니까 제 음악에도 그 지금의 시대랑 저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사회가 반영이 되는 것 같아요.
LE: 해외 팬들을 고려해서 그런지 영어 가사가 많은 편이었어요. 어쩌면 한글로 노골적인 어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Be My Friend”에서와 같이 재치 있는 표현들도 있었지만요.
외국인들, 전세계를 통틀어서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깐요. 그리고 인터넷이란 플랫폼이 있기 때문에 굳이 물리적인 제약에 따라 ‘난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사람이 들을 음악을 해야겠어.’라고 생각하는 건 되게 좁은 생각인 거 같아요. 아까 와이드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하신 것처럼 그렇게 좁게 사는 건 싫고요. 한국이란 좁은 땅덩어리의 나라에 살고 있는데, 인터넷이 있음에도 그 안에서도 좁게 살고 싶진 않아요.
LE: “Cops Come Knock”같은 곡도 어쩌면 한국에서만 음악을 들어온 사람 중에서는 이 표현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잖아요.
네. 그렇죠.
LE: 아까 [KRNB]가 권리와 의무 중에 의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부분을 권리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의무 한번 했으니까… 서비스 한번 했으니까… (전원 웃음) 이제는 ‘날 따라와. 내 맘대로 할거야.’ 하는 거죠.
LE: [KRNB]에서도 그랬지만, [Fantasy] 앨범이 예전보다 음악적 코드가 섹스어필에 조금 기울어진 것 같아요. 의도하신 건가요?
제 노래들이 다 로맨스와 여자, 여자에 대한 음악이죠. 앨범에 대한 간단한 시놉시스를 드릴게요. [Fantasy] 앨범의 배경은 일단 22세기에요. 22세기에 있는 휴머노이드가 주인공이에요. 영화 “A.I.”에서 주드 로(Jude Law)가 맡고 있는 그런 연인 로봇 같은 거죠. 엔터테이너 휴머노이드에요. 그 주인공의 이름은 쥴스 원더(Jules Wonder)에요. 쥴스는 소설가 쥘 베른(Jules Verne)에서 따왔고요. 원더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에서 따온 거예요. 쥴스 원더가 엔터테이너 휴머노이드인데, 인간의 소울과 로맨스를 추구해요. 근데 22세기의 인간 사회, 지구에서는 그게 거의 다 없어진 거죠. 그냥 가상 현실 속에서 혼자 이것저것 즐기고, 로맨스나 변수 같은 것도 없어요. 다 그냥 컨트롤돼있는… 마치 스마트 자동차끼리 해서 교통사고 안 나는 것처럼요. 다 정해진 대로만 사는 소울이 없는 시대에요. 근데 쥴스 원더, 얘만 되게 오타쿠인 거죠. 인간 오타쿠. 마이클 잭슨 음악 들으면서 ‘어떻게 이런 게 있지?’하고, 소설 같은 거 보면서 ‘너무 낭만적이다.’라고 하고… 그래서 그런 옛날 것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계속 그런 것들을 디깅하다가 21세기의 지구랑 비슷한 환경으로 남아있는 타임 워프를 해서 가서 인간의 로맨스를 자기가 직접 다 경험해보는 그런 내용이에요.
LE: 하나의 소설이네요.
그렇죠. 그래서 첫 트랙인 “Neon Pink Ocean”이라는 행성으로 가는 거예요. 거긴 지금의 사람들처럼 컴퓨터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죠. 인간적인 사람들. 거기로 가서 “Fantasy”에서처럼 여자와의 로맨스를 해보고, 설레임을 느끼죠. “Tape It Slow”에서는 좀 더 발전되어서 다른 무드로도 놀아보죠. “Loverbot”에서는 자기가 애인로봇 취급 받는 것에서 상처도 받고요. “It’s Over”까지 가면 이 여행으로 너무 상처받아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면서 ‘아, 로맨스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고 하면서 포기하려고 다시 돌아가려고 하죠. “Be My Friend”에서는 한층 발전된 경험과 기량으로 원래 살던 곳에서 모든 여자들의 사랑을 받는 거죠.
LE: 이야기는 먼저 만들어놓으신 건가요, 아니면 트랙들을 조합하는 도중에 만드신 건가요?
이야기는 제 머릿속에 되게 막연하게 항상 있는 내용들이에요. 우주, 사랑, 여자, 관계, 인간성 그런 것들이 항상 저의 주제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만든 노래들이 다 그런 내용들이었죠. 그래서 대강의 스토리는 제 머릿속에 항상 있는 주제이고, 이번 앨범으로 엮고 나서 이걸 다 듣고 어떤 TV 시리즈물이나 애니메이션처럼 느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LE: 개인적으로 앨범을 듣고 나서 느낀 게, 요새는 남녀가 잠자리를 가질 때도 어떤 그 무드를 즐기기보다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그런 시대인 거 같아요. 그래서 이 앨범을 들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흥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로맨스가 되게 없는 거 같아요. 그게 비단 남녀간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로맨스 자체가… 예를 들면, 우표 수집 같은 것도 우표와 자신과의 로맨스잖아요. 어떤걸 구했다 하면 신나서 ‘Oh, Shit. 아무도 못 가져가게 숨겨놔야지.’ 이러는데, 요새는 그런 게 없는 거 같아요. 모든 게 바로 바로 할 수 있고… 그런 것에 아쉬움이 있어서 더 집착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로맨스가 더 없어지기 전에 음악으로 만들어서 남겨놓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리고 제 노래를 들으면서 여자들이 Horny해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LE: 아까도 22세기라고 하셨지만, 지금이랑 크게 다르진 않은 거 같아요.
그렇죠. 제가 SF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SF소설은 그 당시를 너무 논란이 되지 않으면서 묘사하기 위해서 시대를 바꾸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얘기한 내용들도 다 지금 현시대를 반영하고, 이 추세를 좀 더 과장을 한 거죠. 과장을 하니까 더 드라마틱하게 나오니까 할 얘기가 생기는 거고요. 솔직히 저만 해도 핸드폰 항상 들고 다니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트위터에 뭐 올라와있나 보고… 예를 들어 어떤 뮤직비디오 감독을 알고 싶다면 그럼 옛날같이 힘들게 찾아가거나 우연히 인연이 발생해서 만나고 이러는 게 아니라 그냥 ‘제 뮤직비디오 찍어주실 분.’ 하면 ‘저…요.’하고… (전원 웃음) 아니면 팬들이 저한테 직접 ‘이 곡 수록해주면 안돼요?’라고 하고… 그럴 때마다 팬레터 받아본 시대의 사람들 되게 부러워요. 옛날 가수들 예전 인터뷰 보니까 자기가 힘든 시기에 팬레터 중에서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인내하면 언젠가 밝은 날이 올 거예요.’라고 써서 보낸 팬레터를 보고 참아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그런 게 없잖아요. 다 즉각적인 반응이죠. 잠깐 핸드폰 배터리 나가도 초조하고 심심하고 뭐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러거나 아니면 점점 다들 용기가 없어지는 거죠.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요새 많이 컨트롤되고 있는 것 같아요. 변수를 향해서 뛰어들거나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는 걸 즐기지 않고, 다 통제돼있는 상황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런 거 좋잖아요. 제가 상문고였으니까 다들 연습장에다가 나중에 머리 기르면 이런 머리 할 거라고 하면서 그리는 거죠. 여긴 보라색으로 하고, 여긴 무슨 색으로 하고, 여긴 파마하고… 그런 걸 맨날 꿈을 꿨는데, 정작 졸업하고 나서 두발에 자유를 얻은 학생들을 보면 다 개성이 없어요. ‘쟤는 왜 저러고 다녀? 내가 지금 쟤면 이런 머리하고 다닐 텐데.’ 싶은 거죠. 그런 안타까움이 세대 별로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시대를 보면 제가 어렸을 때보다 뭔가 모두 통제돼있고, 말 잘 듣는 부류거나 아니면 가볍게 즉각 반응하는 경우거나. 그 두 가지 경우 모두가 어떤 로맨스나 스릴을 못 느끼는 거죠. 그래서 이번 [Fantasy]로 그런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SF, 애니메이션 사운드 트랙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LE: 그런 로맨스나 섹스 어필이 알앤비에서는 되게 코어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진보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런 스타일의 음악이 나오는 동기가 크게는 관계라는 주제와 여자 때문인 것 같아요. 하나는 관계, 하나는 여자의 아름다움. 친밀한 관계의 끝은 섹스이고, 제일 깊은 데까지 나누는 게 섹스니깐요. 그런 관계에 대한 테마, 그리고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테마가 제일 알앤비에서 주된 거 같아요. 남자들끼리 여자 얘기 되게 많이 하잖아요. ‘쟤 봤어? 허리가 완전…’ 이렇게 말하는 걸 음악 하는 사람들은 음악으로 표현하는 거죠. 배고프면 처음에는 ‘배고파, 배고파.’하다가도 너무 배고파지면 ‘배~고~파~, 배~고~파’하다가 더 배고파지면 ‘배!고!파!, 배!고!파!’라고 하게 되잖아요. (전원 웃음) 이렇게 표현이 점점 세지잖아요. 그래서 이쁜 여자를 보면 처음에는 ‘너무 이쁜데?’라고만 하다가 나중에는 ‘존~나~ 이~뻐~’라고 하게 되는 거죠.
LE: 근데 한국에서는 그런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노래를 듣기가 어려워요. 우리나라에서 알앤비라는 장르의 경계가 모호하잖아요. 그런 관계나 여자에 대해서 라이트하게 표현하는 노래마저도 알앤비라고 규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면에서 ‘이건 좀 알앤비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도 하셨을 것 같아요. 알앤비의 근본적인 부분까지 다가가지 못하는 음악까지 알앤비라고 불리니까…
그렇죠. 음악이 형식만 있는 게 아니라 리듬앤블루스면 블루스 안에 슬픔이나 한, 결핍, 고통까지 포함한 건데, 그냥 블루스 스케일에다가 리듬을 붙인다고 리듬앤블루스가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아무래도 한국은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니까 가벼운 버전에서 멈추는 경우가 되게 많은 거 같아요. 더 깊게 안 파고 형식적인 수준에서 그치는 거죠. 아직까지도 ‘이게 알앤비구나.’라고 알아가고 있는 단계인 거 같아요. 이제 조금 알기 시작하는 정도? 아까 얘기했던 크러쉬 같은 친구들을 보면 그 친구들은 음악의 형식도 우리나라 옛날 알앤비보다 더 오리지날하게 이해하고 있고, 거기에 대한 표현이나 주제 같은 것도 강도가 미국처럼 ‘Sex Me~’는 아닐지언정, 그려지는 상황이나 묘사 같은 것들을 되게 정통스럽게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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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지금보다 더 끈적한 노래를 할 의향도 있으신가요?
전 뭐든지 다 할 생각 있어요.
LE: 이번 [Fantasy] 앨범도 PBRNB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 일단 PBRNB가 뭔지 잘 몰라요. 최근 그런 용어가 있다는 것만 알고 막 뒤지다가… 감 안 와서 알기를 포기했어요. (웃음) 사실 알앤비 앨범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힙합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그런 생각을 안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 분류하는 사람들도 판단하기 힘들 것 같아요. “Fantasy” 자체는 그냥 어반 알앤비죠. 근데 그 외에 “Cops Come Knock” 뭔지 모르겠고, “Neon Pink Ocean” 뭔지 모르겠고, “Tape It Slow”는 알앤비 멜로디와 코드들을 가지고 있지만 또 전체적인 사운드로 생각하면 그것도 뭐… “Traumatic”같은 것도 팝으로 분류하겠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힙합 팬들에게 ‘야, 들어봐.’ 해서 들어보면 그 사람이 기대하는 거랑 전혀 아닐 거고… “It’s Over”도 그냥 알앤비보다는 알앤비-팝에 가까운 것 같아요.
LE: 사실 저희 같은 웹진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뭔가 규정하고 정의하는 걸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근데 막상 진보 님 같은 분들을 만나 뵈면 자기 음악이 어떤 장르라고 규정을 안하고 자기 것만의 뭔가를 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 결과를 보면 이건 어떤 장르라고 규정을 하기가 힘들고 ‘그냥 진보의 음악이다’라고만 규정을 할 수 있고요.
음악하는 사람들이 모두 결국에 가고 싶어하는 최종 목적지는 자신만의 장르를 만드는 게 목적지죠. 딱 듣고서 ‘어, 이건 이런 장르네. 저건 저런 장르네.’라고 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자기 프라이드에 상처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LE: 슈퍼프릭 레코드라는 인디펜던트 레이블을 가지고 있으세요. 간단하게 소개 부탁 드려요.
슈퍼프릭 레코드는 한국에서 제일 프로그레시브한 음악을 받아들이는 곳이고요. 한국의 기획사들에 있는 모든 단점과 폐해의 반대 꼭지에 서있는 레이블이에요.
LE: 어떤 비즈니스적인 부분에서 그렇다는 건가요?
음악적으로도요. 제가 울림 엔터테인먼트에서 느꼈던 서러움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곳이에요. 외국 레이블들 중에 아델(Adele)이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가 나온 엑셀 레코딩스(XL Recordings)같은 경우에 영국 레이블이라고 생각하는 레이블은 별로 없잖아요. 그냥 엑셀 레코딩스잖아요. 그 레이블의 음악색깔로만 레이블을 이해하잖아요. 슈퍼프릭 레코드도 그런 레이블이 되는 게 목표로 만들었어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제가 제 음악 만드는 것처럼 레이블도 그런 게 담길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 음악 스타일처럼 레이블도 제 스타일의 레이블이이에요. 좀 괴짜스러운 것부터 해서 제한, 제약, 금기가 없는 레이블이에요.
LE: 진보 님의 음악이나 슈퍼프릭 레코드의 음악은 프로그레시브하고 뭔가 홍대 씬의 사람들이 하는 음악과는 조금 다른 음악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막상 진보 님이 다른 아티스트의 음악에 참여를 할 때는 그 대상에 홍대 씬에 있는 분들도 눈에 많이 보여요. 더콰이엇(The Quiett) 씨도 그렇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교류를 막아두고, 거절하고 이러지 않으시는 편인 건가요?
제가 조연 역할을 할 때랑 주연 역할을 할 때랑은 다른 거죠. 감독을 할 때랑 다른 거고… 조연 역할을 충실히 하고 그 사람들을 빛나게 해줘야죠.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얘기이긴 한데, ‘와 쟤는 진짜 맘대로 하고도 사네? 좋겠다.’라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싶어요. 말씀하셨다시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하는 코스들이 있잖아요. 쟤는 코스대로 안타고 완전 프리스타일로 가는데도 된다는 걸 증명해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자유롭게 해주고 싶은 게 아티스트로서의 목표에요. 제가 가지고 있는 사명감이랄까,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무서워하고 있는 금기들을 제가 앞장서서 그걸 깨도 죽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제 뒤로 사람들이 겁먹지 않고 따라올 테고, 그게 음악을 떠나서 어떤 예술가, 인간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에요.
그리고 프로듀서로서의 목표는 완전 달라요. 만약에 프로듀서로서 제가 소녀시대의 노래를 만든다고 하면 소녀시대가 가진 최고의 매력과 사람들이 소녀시대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매력과 제가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제일 멋있는 것을 결합해서 제일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국카스텐을 프로듀스하면 완전 락적인 걸 하겠고, 엄정화나 김완선의 컴백작을 만든다고 하면 셰어(Cher)가 컴백했던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 공부를 하겠죠. 셰어가 당시에 미국에서 유로가 인기가 아니었을 때 유로-하우스를 했고, 오래 전 글래머러스한 디바가 다시 성공적으로 돌아온 걸 생각하면서 결과물을 만들겠죠. 올해는 그런 프로듀서적인 일을 많이 하고 싶어요. 제가 제시해서 프로듀시한 건 작년이나 올해에 걸쳐서 그렇게 소홀하게 하고 있진 않았었는데, 그 작업들은 대중들과 소통하는 메이저 프로젝트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더 많은 일반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서는 프로듀서로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LE: 인터뷰가 막바지입니다. 저희 힙합엘이는 자주 들어오시나요? 자주 들어오신다면,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는지 얘기해주세요.
아메바컬쳐(Amoebaculture) 놀러 갈 때마다 자주 보고 있어요. 번역해서 뮤직비디오에 자막을 달아놓으시잖아요. 그게 진짜 좋은 거 같아요. 그런 것 덕분에 20대 초반 세대들이 그런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훨씬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옛날에 디시 트라이브(DC Tribe)같은 사이트에 가면 외국 음악 가사는 영어를 좀 하거나 미국에 살다 온 사람들만 가사 안의 디테일 함을 느꼈는데, 못 느끼는 사람들은 못 느끼고 해서 전자들은 그런 것 때문에 우월감 느끼고 그랬었어요. 근데 요새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앨범이 나와도 켄드릭 라마 해석본이 힙합엘이에 가면 있잖아요. 그렇게 해서 즐길 수 있게 된 게 되게 큰 발전인 거 같아요. 일본에서는 그런 걸 좀 많이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요새 UK베이스가 유행하면 일본 애들은 진짜 귀신같이 바로 UK베이스에 대한 책을 내버려요. 그래서 뭘 들어야 할지 명반들을 설명해놔요. 그러니까 일본 애들의 이런 세계 유행들을 안 놓치고 수많은 오타쿠들을 양산해낼 수 있는 저력이 다 이런 기록문화, 저작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힙합엘이가 그런 면에서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LE: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해요. 아메바컬쳐가 감사해요.
LE: 앞으로 진보라는 아티스트가 어떤 행보를 보일 계획이신지 단기적인 계획도, 장기적인 계획도 말씀해주세요.
Superfreak Radio 팟캐스트를 계속 할 거고요. 사실 되게 주력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공연 때문에 조금 소홀히 하고 있어요. Superfreak Radio 팟캐스트는 주력 프로젝트이고, 그리고 [Fantasy]가 Superfreak Radio의 한 컨텐트가 될 것 같아요. 여러 가지 구체적으로 진행을 하고 있진 않지만, 토크쇼 같은 것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것도 라디오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지만… 그리고 프로듀서로서 많이 할 생각이에요. 지금 SM이랑 JYP 쪽이랑도 많이 일을 진행하려고 얘기를 하고 있고요.
LE: 메이저 작업도 많이 하실 계획이신 건가요?
네. 메이저 작업 많이 할 생각이고, 외국 뮤지션들과도 더 많이 교류할 생각이고요. 그리고 무드슐라랑 같이 하고 있는 유닛도 작업을 슬슬 시작할 거고요. 그렇게만 해도 되게 바쁠 것 같아요. 음반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몇 개가 더 있어요. 슈퍼프릭 레코드 컴필레이션 앨범도 계획에 있고요. 제가 얘기하는 것들 중에 올해 몇 개가 나올지는 모르겠는데, 보통 계획 10개 잡으면 3,4개는 하니깐요.
LE: 말씀하신 것만 해도 2013년이 꽉 찰 것 같네요.
네. 거의… 엄청 빡세죠. 그리고 지금 공연하고 있고요. 미니 전국 투어하고 있고, 올해 페스티벌도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저한테는 처음으로 클럽 공연 같은 거 말고 페스티벌 공연을 하게 됐는데, 그런 일도 신선한 일들이죠. DJ로서 음악 트는 일도 계속 있을 것 같고요.
LE: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한 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클럽에 혼자 가는 거 두려워하지 말고 혼자 가서 사람도 사귀고, 새로운 음악도 찾고, 용기 있게 모든 걸 새롭게 부딪혀 봤으면 좋겠어요. 이 얘기를 하고 싶네요. 저는 제 스스로가 레프티라고 표현했잖아요. 이걸 좌파라고 표현하면 논란이 생기지만, 그런 게 아니니까… 모든 반항아들은 저에게 와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 새로운 걸 추구하는 사람들, 좀 더 뭔가 진보적인 걸 하고 싶은 사람들, 색다른 거 하고 싶은 사람들, 규칙 깨고 싶은 사람들, 금기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은 다 저랑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거니깐요. 저의 뒤에 있는 사람들은 저에게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고, 저의 앞에 있는 사람들은 저를 잘 이끌어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LE: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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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글 | Bluc, Melo
인터뷰, 사진 | Bluc, ATO
8 추천 목록 스크랩신고 댓글 14 BEEN4.1 18:26 진짜 제일 울트라 슈퍼 정말 캡 짱 멋지네요
Hypertrak에서 Hypetrak 으로 수정해야 할 것 같네요. 추천 댓글 title: [회원구입불가]Melo글쓴이4.1 18:47 @BEEN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추천 댓글 title: Thomas BangalterPusha T4.1 22:32 진보 참 이름 그대로 진짜 항상 참신한 음악 하는 뮤지션 같아서 정말 좋네요
call my name부터 잘듣고 있어요 !!!! 추천 댓글 itsnov114.1 23:35 아 요새 앨범이랑 뮤비 너무 좋게 감상하고 있어요 인터뷰도 잘 봤습니다ㅋ 추천 댓글 title: #BlackLivesMatterKAYEM4.1 23:38 예전부터 쭉 들어오고 지켜보고 있던 뮤지션인데 인터뷰 올라와서 좋네요. 곧 힙플에서도 인터뷰를 할 예정이라고 하니 그것도 기대하겠습니다. 추천 댓글 Shine_0N*4.2 05:59 이쁜 언니들에 대한 얘기가 없어서 조금 섭섭..한 건 저 하나 뿐이겠죠..ㅎㅎ 추천 댓글 구글번역기4.2 11:31 울림!! 성관계 당신! 난 실망감을 느끼다 그들의 태도에 추천 댓글 Soulmusiq4.3 00:59 제가 형을 좋아하고 따르게 된것 후회하지 않아요 역시. 최고. 추천 댓글 Dion4.7 18:38 진보짜응 추천 댓글 title: Rick Ross왕의햄버거4.8 00:52 뮤비...저도 참 좋아하는데요.ㅜ. 추천 댓글 dotK4.10 00:22 call my name 은 정말... 추천 댓글 battlecatt4.26 03:00 요새 다시 듣고있는데 전 곡이 다 좋더군요 새삼.. 좋은 앨ㅇ범 좋은 인터뷰 고맙습니다 추천 댓글 Luvtia9.13 01:01 아흐 유머에 섹시에ㅋㅋ 다 갖추셨습니다. 요새 사는게 참 힘든데 진보오라버니 앨범들으며 힐링하고 있어요ㅎ 화이팅 ! 추천 댓글 rawsoulkid10.10 01:05 Jinbo The Superfrea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