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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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light] 앤덥 (Andup)
10대 청소년이 힙합씬에 데뷔한다는 건 외국에서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이나 없는 일이고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아마 한국힙합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봐도 지드래곤(G-Dragon) 정도가 그 예시로 들 수 있는 유일한 아티스트일 것이다. 그런 한국힙합 씬에 15살, 16살 때부터 도전장을 내밀고 당당히 데뷔를 해 20살이 된 지금까지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패기 있는 아티스트가 한명 있는데, 바로 그가 앤덥(Andup)이다. 자신이 10대였을때, 10대들의 목소리가 되어주었던 그가 이제는 20살 청년이 되어 새 앨범, [20]와 함께 돌아왔다.
- 본 인터뷰는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와 어린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관계로 반말로 진행이 되었음을 사전에 공지합니다.
LE: 반가워. 먼저 힙합엘이 회원 분들께 인사 부탁해.
Andup: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20]를 발매한 스무 살 앤덥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LE: 작년에 부틀렉 이후로 앨범을 꽤 오랜만에 냈는데,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에 대해 얘기해줘.
일단 부틀렉을 내자마자 수능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3월 모의고사를 친 게 생각보다 잘 나와서 자만에 빠져 있느라 한 3달 더 놀았어. (웃음) 그 다음에 6월 말부터 공부하다 수능 끝나고 나서 바로 또 작업을 할 계획이었는데, 수능을 망치면서 도저히 음악을 할 정신상태가 아니어서 또 몇 달 동안 방황을 하다가 어떻게 대학이 또 좋은 결과가 있어서 다니면서 보통 1학년들처럼 마시고 죽고 마시고 죽고 했고… 그러다가 어느 날 눈을 떴는데 간이 아프더라고. 간이 아파. 스무 살인데. (웃음) 그래서 “아, 내가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각성하면서 술 끊고 운동하고 6월 말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이제서야 앨범이 나오게 됐어.
LE: 다른 새내기 대학생들처럼 똑같이 지낸 그런 거구나?
그러다가 신체적인 한계를 느끼고, 제대로 살아야겠다 싶어서… 농담이 아니라 제이문(Jay Moon)이나 올티(Olltii)같은 애들이 너무 잘하니까 뭔가 이렇게 누워 있다가는 내가 개차반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해서 정신 차리고 하게 됐어.
LE: 대학 신입생인데, 요즘 대학교 다니는 건 어때?
1학기 때는 맨날 랩하는 형들하고 술 마시고 그러니까… 술자리가 진지하거나 아니면 형들이 외로우신 날엔 좀 그런… (웃음) 분위기였는데, (대학교 친구들이랑은) 상쾌한 분위기에서 모이니까 취해서 살았지.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면서 재밌게 지내다가 정신 차려서 앨범 내고 돌아오니까 (애들이) 1학기 동안 놀지, 2학기 때는 잘 안모이잖아. 그러니까 별로 재미도 없고, 학교 왜 다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음악 생각만 하면서 지내고 있어.
LE: 알아보는 사람은 많은 편이야? 아는 사람은 코보고 알아볼 것 같은데… (웃음)
그다지 흔하게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은 알아보는 것 같아. 학교에서는 생활에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고 강의 하나당 한 두 명씩? 그냥 은근슬쩍 신경 쓰이는데… 그 한 두 명 때문에 꾸미고 다니기 귀찮아서 안 씻고 다니고 그래. (웃음) 그래서 그냥 애들 있는데 누가 음료수 가져다 주고, 싸인 해달라 그러면 좀 으쓱하긴 해. 그런 날엔 가오가 살지. (웃음) 아주 가끔이야. 한 2주일에 한번씩 정도?
LE: 아무래도 여자들이 많나? (웃음)
그렇지. 남자들은 그냥 ‘걔다. 걔다.’이러거나 ‘별론데? 호빗인데?’이러거나. (웃음) 여자 분들은 음료수를 가져다 주신 다던지 하시지. 가끔.
LE: 항상 궁금했던 건데, 넌 니 코가 맘에 들어?
좀 과한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이 들긴 하는데, (웃음) 하지만 남자에게 있어서 코가 상징하는 바는 외모가 아니기 때문에… 관상에서도 (코가) 재물복이라고 그러더라고.
LE: 결국은 맘에 든다는 거네.
응. 난 남자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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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앞에서 간단하게 이런저런 최근 얘기를 좀 해봤고, 이제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좀 해볼게. 일단 랩, 힙합음악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허센데, 초등학교 때 남들 다 듣는 가요, SG워너비 이런 게 유행했었어. 너무 다들 잘나가는 걸 따라 하고 그러니까 비슷해서 뭔가 좀 새로운 걸 듣고 싶어서 MTV의 팝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을 많이 봤었어. 근데 그때는 이런 저런걸 다 들었었어. 그러다가 힙합, 알앤비장르도 모르면서 알리샤 키스(Alicia Keys), 어셔(Usher)의 테이프를 사서 듣다가 에미넴(Eminem)이 머리에 팬티 쓰고 여장하면서 또라이 짓을 하고 다닐 때 신기해서 (에미넴의 음반을) 샀는데, 가사는 몰라도 뭔가 되게 다르잖아. 톡톡 튀고. 그래서 그냥 좋다 그러고 그 앨범을 3년을 듣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TV에서 한국말로도 랩을 하는 사람들이 있길래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하면서 재미로 랩을 했었어. 근데 그때까지만 해도 가끔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실 때, 심심할 때 남들 게임하듯이 했었는데, 나중엔 전학을 자주 가게 되고 하다 보니까… 그때는 여자친구 그런 것도 몰랐고, 친구도 슬슬 생길만하면 내가 전학을 가니까 할 게 그거 밖에 없었던 거 같아.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딱히 친구랑 노는 걸 즐기는 편도 아니고, 딱히 친한 사람도 없고 해서 음악 많이 듣고 하다 보니까 게시판에 (작업물을) 올리게 되고… 게시판에 올렸더니 내 작업물엔 반응이 없는데 게시판에 잘나가는 사람이 있잖아. 자녹게(자작녹음게시판) 스타. 그런 사람들 보면서 괜히 열 받는 거야. 나는 이렇게 무관심 속에서 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겨보자.’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나도 게시판 짱이 될꺼야’이러면서. (웃음) 그러다가 소울컴퍼니(Soul Company) 음반을 듣고서 처음으로 힙합을 듣고 감동을 했었던 것 같아. 그때 “우린 때론 슬퍼도 웃어”였나? 그거랑 더 콰이엇(The Quiett) 형의 1집을 듣고서 ‘이거 되게 멋있다. 랩으로 남들한테 위로나 감동을 줄 수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내용이 있는 가사를 쓰기 시작하게 됐어. 중1때. 그리고 키비(Kebee)형의 ‘미운오리새끼’ 를 듣고 자살하려던 마음을 거둔 분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본격적으로 내용이 있는 가사를 쓰겠다고 생각한 계기였어.
LE: 중1때? 그럼 그 전까지는 취미로 살짝만 한 거고?
그 전까지는 그냥 카피랩하고, 폼 나 보이는 거 따라 하고…
LE: 내 기억에도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때 네가 에미넴 노래를 되게 좋아했던 기억이 나는 것 같아. 그때 대구 살 때였나?
응. 맞아. 대구 살 때.
LE: 근데 기억하기로는 서울에서 대구로 가고 나서부터 힙합을 많이 들었었던 것 같은데 맞지?
그렇지. 솔직히 그 전까지는 7살이니까 그냥 엄마가 틀어주는 거 듣고 이런 거였지. 대구를 가서 케이블 TV를 달면서 취향이 바뀐 거지. 뮤직뱅크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음악이 다가 아닌걸 그때 알았으니까. 그때만 해도 음악 채널이 음악채널다운 면모가 있던 시절이라서 신선한 음악들이 많이 나왔었거든. 인디 음악 뮤직비디오도 자주 나왔고, 팝 뮤직비디오도 많이 나왔고. 그런 음악들이 뻔하지 않아서 듣게 된 것 같고, 지금까지도 그런 게 이어지는 거 같아. 솔직히 대중적인 음악이 뭐고, 쉬운 코드의 음악이 뭐고, 이런 건 잘 모르겠는데 뻔한 건 안하고 싶어. 음악적인 신념? 이런 거라고 하기엔 좀 거창하지만 (힙합을) 들은 이유도 뻔하지 않았기 때문에였던 것 같아.
LE: 네가 음악을 시작하던 쯤에 대구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맞나? 거기서 술제이(Sool J) 씨랑 프리스타일 싸이퍼 같은 걸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음악을 시작한 초창기부터 프리스타일을 시작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어떻게 타이밍이 잘 맞아서 본격적으로 랩을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지 3달 정도 됐을 때, 그때가 술제이 형이 프리스타일 세미나를 전국으로 돌 때쯤이어서 술제이 형이 대구에 딱 오셨던 시기였어. 나는 밀러 랩배틀 영상? 그거 보고서 (술제이 형이) ‘와, 존나 멋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구에는 이렇다 할 공연도 없고 해서 유명한 랩퍼가 대구에 온다는 것만으로 신기해서 프리스타일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갔었어. 지금 내 친구들이 가지는 언더그라운드 랩퍼에 대한 환상 같은 게 나한테도 있었던 거 같아. 술제이가 온다는데, 술제이니까 몇 백 명이 와서 듣고 막 그럴 줄 알았는데, 한 30명 왔나? 진짜 이 까페 반만한 데서…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어. ‘어, 이게 뭐지? 이게 한국힙합의 현실인가?’싶었어. (웃음) 그렇게 시작해서 엄청 큰 움직임이 됐지만… 아무튼 그날 내가 원래 좀 부끄러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해서 (프리스타일) 해 볼 사람 있냐고 하길래 그냥 나가서 했었어. 맨날 방구석에서만 하다가 내가 뭘 했을 때 사람들이 ‘야, 너 어린데 되게 잘한다’라고 말해주니까 어깨도 으쓱하고 좋더라고. 그때부터 한 달에 세네 번씩은 주말에 그 공원에 가서 붐박스 틀고 프리스타일을 했었어. 누가 들어준다는 게 좋아서 했던 것 같아.
LE: 근데 그전까지는 프리스타일을 한번도 안 해봤었던 거야? 그냥 집에서 가사만 쓰고? 프리스타일은 일반적으로 가사를 써서 하는 랩이랑은 좀 다르잖아.
그땐 (프리스타일이) 뭔지도 몰랐어. 지금이야 뭐 홍대 놀이터를 가도 올티 같은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만 그땐 프리스타일을 하는 사람 자체가 별로 없어서 그냥 내가 겁 안 먹고 나가서 하면 사람들이 잘한다고 해줬었어. 그땐 (프리스타일에 대해서) 아무도 모를 때였어. 나도 아무것도 모르고 가서 하다가 진짜 많이 했지. 중3때까지만 해도 1년에 20,30번은 나갔을 걸.
LE: 지금도 프리스타일은 하는 편이야? 마이크 스웨거(Mic Swagger)에서 선보이기도 했었지만…
마이크 스웨거 할 때는 그냥 옛날에 하던 남은 감각으로 짜낸 거고… 아슬아슬했어. 표정관리 안되고. (웃음) 요즘에는 잘 안 해. 본격적으로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한 게 배틀에서 진다고 내가 그 사람보다 랩을 못하는 건 아니잖아. 근데 랩으로 누구한테 진다는 게 되게 열 받더라고. 그래서 안 해. 그때부터 안 하게 된 거 같아. 중2때인가? 별로 인정할 수 없는 패배를 당한 이후로… (웃음)
LE: 그렇게 대구에서 지내다가 중3때 네가 서울로 전학을 오지 않았나?
맞아. 계속 전학을 갔는데, 그때 서울로 전학을 왔었지.
LE: 대구에서 프리스타일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오다 보니까 프리스타일에서 좀 멀어진 것도 있을 것 같은데…
서울 싸이퍼도 많이 하긴 했었는데… 지금 올티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했었던 것 같아. 밤새고 집에 안 들어가고. 어린 애가 길에서 막걸리 먹으면서… (웃음) 그래서 내가 올티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에 먼저 번호를 땄었어. 우연히 프리스타일을 같이 하는데 너무너무 잘하는 거야. 물론 옛날의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올티가 잘하긴 하지만 중학생이 길에서 밤중에 프리스타일을 하고 있다는 게 약간 예전 내 생각도 나고 해서 저 사람이랑 음악 얘기도 하고 그러고 싶다 해서 번호를 딴 거지. 걔는 프리스타일 자체에 대한 열정이 장난이 아니야. 나 같은 경우엔 즉흥적으로 랩을 했을 때 자기 능력 이상으로 나올 때가 있잖아. 그런 재미로 했던 것 같아. 그렇게 하다가 ‘난 이제 하나의 곡을 만드는데 집중해봐야지.’라고 생각하면서 흥미가 많이 떨어졌지.
LE: 프리스타일 얘기는 이쯤으로 하고 다시 돌아오면 앤덥이란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다른 이름으로 아마추어 씬에서 활동한 걸로 알고 있어.
공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웃음)
LE: 그래? (웃음) 아무튼 내가 알기로는 그때 만났던 사람들 중에 지금 수면 위로 올라온 사람이 꽤 있는 걸로 아는데… 좀 얘기를 해줄 수 있나?
사실상 두메인(Do Main)이 그 아마추어 랩 게시판에서 만나서 시작을 한 크루고, 지금 그랜드라인 엔터테인먼트(Grandline Entertainment)의 테이크원(TakeOne) 형이 그때 당시에 정글 라디오에서 짱이었어. 글 올리면 댓글 40개 정도가 쭉 달리고…
LE: 아마 바보란 이름으로 활동할 때였지?
응. 그랬고, 깐모(Gganmo)형이 지금 믹스테잎 하나랑 EP 앨범 하나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 형도 그 때 게시판에서 짱이었어. 그리고 지금 저스트뮤직(Just Music)의 기리보이(Giriboy) 형도 그때는 곡을 안 쓰고 랩을 했었는데, 그 형도 그때 잘나갔었어. 그 당시 상대적으로 수면 밑의 멤버가 어글리 덕(Ugly Duck) 형하고 나하고 삼이 형이었지. (웃음) 그렇게 두메인이라는 크루가 있었는데,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을 꼬신 거지. 그냥 대충 게시판에서 얘기하고 친했던 사람인데, 같이하자고 무턱대고 들이대고… 게시판에서 했었던 형들 많아. 지코(Zico) 형도 자녹게 끝판왕이었고, 내 기억에는 제이통(J-Tong) 형도 했었어.
LE: 나름 그 게시판에서도 조그만 판이 있었구나?
그때 다 진지했지. 진짜 짱먹던 게 AR 크루? 크루셜 스타(Crucial Star) 형도 AR 크루였었나? 정확하진 않고.
LE: 나도 중3때였나? 우리 동네 아마추어 랩퍼들을 기반으로 한 크루인 떠벌이집단이었나? 그 크루에 친구를 한 명 알았는데, 그 친구를 통해서 크루셜 스타나 당시 Tusa, Tureal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기리 보이를 알게 됐었던 기억이 좀 나. 어쨌든 그럼 네가 앤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전까지의 기간이 어느 정도 되는 거지?
그때 한창 댓글에 집착하고 이럴 때였는데, 한 1년 반 정도 그랬지. 근데 그러다가 UMF Super Rookies에 붙게 됐었는데, 거기가 좀 학교처럼 빡셌어. 매주 과제도 나오고 그랬어. 곡을 몇 개 이상 써와라. 그거 하느라 게시판에서 활동을 안 하게 됐지.
LE: 그러니까 UMF Super Rookies에 참여함과 동시에 앤덥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거지?
그렇지. 우연히 이름을 바꾼 지 몇 달 안돼서…
LE: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게시판에서 활동을 하다가 UMF Super Rookies라는 계기를 만나게 되어서 그거에 되게 매진을 하게 된 거네?
솔직히 말하자면 게시판에서 되게 인정받고 싶었는데 잘 안됐지. 그때는 내가 ‘나는 잘하는데 왜 아무도 나를 잘한다고 말 안 해주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울컥하면서 ‘아 씨, 여기서 안 해.’이랬었어.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묻힐 만해서 묻혔던 거 같아. (웃음) 그래서 게시판 열정이 죽었었지. 아무도 나를 알아주질 않으니까. 두고 보자 하고 혼자 연습하고 있다가 우연히 이름을 바꿈과 동시에 그 기회가 생겼지. 그래서 넘어오게 됐지.
LE: UMF Super Rookies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거야? 그 당시에 아마추어 랩퍼들에게는 되게 희망적인 오디션? 공연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옴니버스 공연 같은 게 우후죽순 많이 생겼지만, 그때는 사실상 그런 공연이 힙플쇼 밖에 없었어. 공연을 열면 다 망했었고. 잘돼도 다같이 고기 먹고 끝나는 정도? 근데 그래도 최소한 정기적으로 하는 공연이 있었으니까 난 지방에서 올라와서 눈이 뒤집혔지. UMF를 할 때마다 가서 봤는데, 내가 좋아하던 뮤지션들을 눈으로 본다는 거 자체가 신기했어. 키비 형, 더 콰이엇 형, 슈프림팀(Supreme Team) 형들. 진짜 매번 갔었어. 그러다가 공연이 끝나고서 옛날 MP처럼 프리스타일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의 내 프리스타일부심(?)은 하늘을 찔렀었어. 남들 무대에서 랩하는 거 보면 억울했었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사실 더 잘할 순 없었는데. (웃음) 그래서 기회만 되면 항상 마이크를 잡고 프리스타일을 하곤 했었는데, 다음 달에 오디션 공고가 떠서 당연히 해야겠다 싶었고 난 무조건된다 싶어서 했는데 잘해서 붙었다기보다는 특이해서 붙었던 거 같아. 1차는.
LE: 어린 것 때문에?
나이도 일단 눈에 들어왔었고. 디제이 스킵(DJ Skip) 형도 나중에 말해주셨는데, 남들은 지원서에 ‘붙여만 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썼는데 그때 난 진짜 랩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어. 자신감이 제이지(Jay-Z)였어. 그래서 ‘긴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썼었어.
LE: 어, 이거 약간 허세 느낌인데? (웃음)
장난 아니었지. 난 그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랩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어. 내가 제이지인 줄 알았어. (웃음) 아무튼 그렇게 해서 지금은 창피 주는 것 같아서 말은 못하겠지만, 지금 잘되고 있는 형 중에서도 지원했다가 떨어진 형들도 있고 그랬는데, 실력이 떨어져서라기보다는 그 형들이 긴장해서 실력발휘를 못하고 그랬었거든. 근데 나는 내가 제이지인데 왜 쫄아. (웃음) 당당하게 했지. 당시에 활동하던 인디 뮤지션들도 많이 참여했었는데, 투표나 평가 합산한 결과가 좋았지.
LE: 내가 너 공연을 할 때 가서 봤었는데, 공연이 끝나면 나오는 쪽에 판 같은 걸 만들어서 투표를 했었잖아. 근데 가만히 보니까 너한테 되게 많이 붙어 있더라고. 압도적일 정도로? 내가 보기엔 그랬었어.
그때는 여드름도 많고, 돼지고 해서 얼빠(?)가 없었어. (웃음) 순전히 근거 없는 패기로 받은 점수였던 것 같아. 뭔가 너무 당연하게 지가 짱이라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혹하고 그랬던 것 같아. 무한 자신감. 중1, 중2 때는 내가 인정받지 못하는 게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우매한 대중들 때문이고, 난 존나 짱이고 언젠가 나는 1등이 될 거고… 그런 자신감이 있었어. (웃음) 그래서 멘트도 엄청 당돌하게 했었던 것 같아. 곡 내용도 그렇고. ‘내가 치고 올라갈 거야.’같은 게 아니고, ‘해가 뜨고 지듯이 나는 짱이 된다’같은 느낌이었지. 부끄러운 과거… (웃음)
LE: 그래서 결국엔 최종 합격을 하고 데뷔까지 하게 됐어. 킹더형 레코즈에서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게 됐어. 그때가 몇 살이었던 거지?
녹음은 중2 겨울 때 하게 됐었어. 그때 UMF Super Rookies가 공연 브랜드임과 동시에 DJ 스킵 형이 하는 거였기 때문에 공연 자체보다도 신인발굴에 의의를 두는 프로그램이었어. 거기서 괜찮게 보신 랩퍼들을 영입을 하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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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때 킹더형 레코즈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해서 지금까지도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잖아. 영보이즈(Young Boyz)도 있고, 가장 잘된 케이스로는 리듬파워(Rhythm Power)가 있고. 일단은 누가 제일 아티스트로서 존경할만하고,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를 꼽자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 거 같아?
그때 다들 시작하는 시기였는데, 나는 진짜 형편없었고 다른 형들도 풋풋한 느낌으로 했었는데, 리듬파워 형들은 그때도 그냥 평범하게 한 적이 없었어. 항상 재밌게 하려고 노력하고 통통 튀는 게 있었어. 그래서 다들 되게 좋아했었어. 영보이즈 형들도 되게 프레쉬했었고. 그때 당시는 다들 통통 튀었던 것 같아. 틀에 가둬두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의기투합한 그런 게 아니라 (DJ 스킵 형이) 따로 뽑아오신 거거든. 아직 경력이 없는 사람들을. 전부 다 달라서 각자에게 배울 점이 있었던 것 같아. 특히 엘큐(Elcue) 형이나 알이에스티(R-EST) 형은 경력이 있는 뮤지션이어서 우리가 두루뭉술하게 공연 전날에 가사 외우고 했던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많이 깨주셨지. 프로페셔널하게 하는 모습을 많이 배웠었어. 스튜디오 녹음을 했던 것도 처음이었고, 공연 기회가 그렇게 꾸준히 온 것도 계속 새로운 고민을 하게 만든 원동력이었고.
LE: 처음에 녹음할 때는 혼도 많이 났을 것 같아. 가이드도 철저하게 받고.
내가 녹음할 때 준비를 되게 많이 하는 타입이라서 녹음하는 당일은 오히려 녹음기사님이 좋아하셨어. 경력이 좀 된 형들은 가사를 덜 써오기도 하고, (웃음) 플로우 까먹어서 ‘아, 잠깐만요.’ 그렇게 하는데 나는 초짜니까 진짜 완전 달달 외워서 갔으니까. 근데 아무래도 기량이 덜 올라온 채로 앨범 수록곡을 만들려다 보니까 가녹음을 보낼 때마다 많이 짤렸지. 다시 써라. 다시 써라. 그래서 ‘까불지마’같은 경우는 벌스를 8개인가, 9개를 썼어. 다 까여서. 그래서 결국엔 그때 당시 내 수준에서는 만족스럽게 나왔던 거 같아. 내 능력 이상으로 나왔던 거 같아.
LE: 당시 네가 메인이 됐던 “까불지마”라는 수록 곡에는 버벌진트(Verbal jint)가 참여하기도 했었는데, 난 되게 놀랐었어. 버벌진트랑 이런 완전 신인이 콜라보를 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같이 하게 된 거야?
일단은 킹더형 레코즈에서 주제를 약간씩 잡아줬었어. 구체적인 주제가 아니라 그런 거지. 1번 열정, 2번 사랑, 3번 패기. 이런 식으로 잡아줬었는데, 그때 내가 아마 패기였을 걸? (웃음) 그래서 ‘나는 다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으로 랩을 하면 베테랑 MC가 ‘너 조심해라.’ 약간 다이나믹듀오(Dynamic Duo)의 “서커스”같은 식으로 하기로 했었어. 근데 (킹더형 레코즈에서) 물어보시더라고. 네가 존경하는 MC가 누구냐고. 그때 당시엔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버벌진트하면 우리나라에서 랩을 제일 잘하는 완벽한 아티스트였잖아. 그래서 그냥 버벌진트형 팬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섭외를 해오신 거야. 내 생각에는 그때 진태 형이 내가 “누명” 랩 컴퍼티션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던 걸 기억을 하시고 수락을 해주신 게 아닌가 싶어.
LE: 내가 정확하게 체크를 안하고 와서 그러는데 “까불지마”를 작업하기 전에 "누명" 랩 컴퍼티션에서 수상을 했었던 거야?
응. 아무도 모르지만 그때 내가 나름 가사 쓰는 방식을 확 바꿨던 시기가 있었어. 소울컴퍼니 영향을 많이 받아서 스토리텔링이나 가슴을 울리는 얘기를 쓰는데 초점을 맞추다가 루다크리스(Ludacris) 노래를 들으면서 ‘아, 이거다!’해서 스타일리시하게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시기였을 거야. (루다크리스의 트랙 “Stand Up”에서 이름을 따옴.) 어쨌든 딱 그 시기에 컴퍼티션이 있어서 참여해서 나름 그루브한 느낌의 랩을 만들어서 올렸었어. 그래서 아무래도 진태 형이 좀 눈여겨보고 있는 게 있지 않았을까 싶어. 작업하게 됐을 때 킹더형 레코즈 형들도 다 신인이었으니까 난리 났었어. 앤덥이 진짜 부럽다고. 방사능(현 리듬파워) 형들도 진짜 부럽다고 하고. ‘녹음할 때 옆에서 구경하면 안돼?’이러고. (웃음) 역시 포스가 남다르시더라고. 우리는 그때 사실상 스튜디오 녹음 처음이어서 가사 보면서 떨고 있었는데, 진태 형 빨대로 아이스 모카 같은 거 드시면서 그냥… (웃음) 더블링도 거의 안 하셔. 더블링 표시도 따로 안하시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더블링하고 15분만에 녹음 끝내고 가셨어. 그때 나랑 방사능 형들이 인사하려고 두 손 모으고 기다렸었어. ‘아, 영광이라고.’ (웃음) 진짜 신기했지. 얼떨떨했지.
LE: 니 가사들을 쭉 보면 내 어릴 적 우상, CD 주문서에 있던 이름들이 내 트랙리스트 위에 올라와 있다 뭐 이런 식의 얘기를 많이 하잖아. 그런 가사들을 생각해보면 지금도 만나거나 교류가 있으면 아직도 놀랍거나 ‘와 내가 이 사람과…’ 이런 기분이 드는 아티스트로는 누가 있어?
일단 이센스(E-Sens) 형은 완전 좋아하는 아티스트였는데 실제로 알게 되고 나서 완전히 우상이 됐어, 이센스 형이랑 게임같이 하고 그러는 딴 형들은 이제 별로 환상 같은 게 없는 것 같은데 난 (이센스 형은) 아직도 보면 좀 함부로 못하겠고, 농담도 잘 안 나오고… (웃음) 곡 만들면서 제일 가슴 벅차고 그랬던 건 “상자 속 젊음”의 그 후의 이야기를 내가 이어서 한다는 건 그런 거 있잖아. 축구 좋아하는 애가 ‘나 월드컵 나갈 거야.’라고 하는 것처럼 꿈처럼 생각하던 일이었는데, 그걸 곡을 쓴 당사자와 작업을 했으니까. 팔로알토(Paloalto) 형하고 “상자 속 젊음 Pt.2”의 곡을 받아 가사를 쓰고서 더 콰이엇 형한테 전화 걸어서 이거 곡 이름 써도 되겠냐고 확인을 딱 받았을 때가 제일 감동적인 순간이었어. “상자 속 젊음”… 그걸 내가 그냥 갖다 쓴 게 아니라 가녹음본을 보내드리고 ‘이 이름을 써도 될까요?’ 하고 허락을 받고 한 거라서 되게 감격적이었어. 근데 그때는 더 콰이엇 형이 신경 안 쓰시는 줄 알았거든? ‘어 그래? 나쁘지 않네.’하고 마신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본인 블로그에다가 ‘앤덥이란 친구가 내가 쓴 곡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실력 있는 친구니까 앞으로 더 잘될 것 같다’라고 글을 쓰신 게 있더라고. 엄청 뿌듯했지. 특별히 누구라기보다는 지금 작업하고 만나는 형들이 다 꿈같지. 야구선수로 치면 배영수가 양준혁하고 같이 뛰는 거니까. 싸인 받았던 사람들이랑 같이 작업하고, 음악 얘기하고… 내 작업물을 직접 들려드리기도 전에 이미 잘 들었다고 해주시고. 바스코(Vasco) 형, 팔로알토 형, 제리케이(Jerry.K) 형, 더 콰이엇 형. 다 내가 CD 나오는 날만 기다렸다가 샀었는데… 바스코 형이 은퇴한다고 하셨을 때는 악플다는 애들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었어. 네가 뭘 아냐고. 남의 인생에 대해서… 그랬는데, 바스코 형한테 음악 잘 들었다고 따로 전화 오고. 요즘도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면 얼떨떨하지.
LE: 예전엔 한번 힙플 라디오에서 도끼(Dok2) 씨한테 칭찬을 받았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맞나?
(웃음) 그건 중1때 랩한 지 3달 됐을 때였어. 힙플 라디오를 되게 열심히 들었었어. 그때 10시에 했었나? 학원 갔다 오면 달려와서 듣곤 했는데, 나를 좋아해주는 고등학생 팬들도 같은 느낌일 것 같아. 어린데 잘하고 잘되는 걸 보니까 너무 존경스럽고, 어떻게 하면 도끼 형처럼 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서 도끼 형이 힙플 라디오에 게스트로 나온다고 하길래 사연 게시판에 내가 한 랩인데 어떻냐고 조언을 부탁 드린다고 글을 올렸었어. 도끼 형이 미리 들어보고 왔다고 그러시더라고. 자기는 랩한 지 3달 됐을 때 이것보다 훨씬 못했다면서 시작한지 얼마 안된 거에 비해서 잘하니까 열심히 하면 잘될 거라고 해서 들떠있었지. 그러고서 그 방송 때 1년에 300벌스 이상 쓴다고 그래서 그날 이후로 1년에 400벌스를 썼어. 사실 별로 도움은 안됐고. 무식하게 많이 쓰는 게 좋은 건 아니더라고. (웃음) 그 다음엔 중3, 고1때 만나서 인사 드린 다음에 네이트온으로 조언을 많이 받았었어. (작업물을) 보내드리면 여러 번 들어보신 다음에 세세하게 조언을 해주셔서 많이 도움 받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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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위의 질문에 이어서 씬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고마운 아티스트, 형을 꼽자면 어떤 사람이 있어? 왜 고마운지도 얘기해줘.
일단은 우리 크루. 두메인, 벅와일즈(Buckwilds) 전부 다. 두 가지 역할을 다하는 거 같아. 크루면 모여서 낄낄 거리고 노는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 크루 형들은 다 유쾌하고 재밌고 또 자기 분야에서 재능 있고 열심히 하는 형들이라서, 모여서 헛소리하고 낄낄거리고 놀다가도 음악 얘기를 하다 보면 되게 배우는 점도 많고 형들 새로 나온 작업물들을 들으면 굉장히 큰 자극이 돼. 정말 잘하는 형들이 많아. 아 그리고 아마 이 인터뷰를 보시진 않겠지만 이센스 형… 이센스 형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렇게 엄청 가까운 건 아니지만 옛날에 무한 자부심으로 까불 때. 지금 생각해보면 과분한 기회를 잡다 보니까 내가 많이 까불었어. 헛소리도 자주 하고. 한 번은 게시판에 내가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이 추앙을 받고, 버벌진트 같은 아티스트는 과소평가 받고. 이런 거 때문에 내가 빡이 친 거야. ‘아, 제대로 인정해주는 데가 없어. 나 언더그라운드 안 해’이런 헛소리를 했었거든. 그때 보통 형들은 눈에 거슬렸어도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갔지. 근데 이센스 형은 따로 ‘한 것도 없는 게 무슨 언더그라운드 한다 만다 하냐? 정신차려라.’라고 하시면서 크게 혼내주셨어. 보통은 암만 10년 차이가 나고 15년 차이가 나도 친동생도 아닌데 특별히 쓴 소리를 안 하잖아. 그냥 둥글게 둥글게 지내고. 근데 이센스 형은 내가 잘못 가려고 그럴 때마다 되게 크게 혼내주셔서 내가 정신 차리게 해주셨어. 혼나면 듣기 싫고 ‘아, 꼰대 같은 새끼’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센스 형은 감정적으로 툭툭 뱉는 게 아니라 확실한 기준이 서신 채로 깊게 말씀을 해주셔. 지금은 이센스 형이 하는 음악 스타일이랑 나랑은 많이 다르지만, 음악을 대하는 자세나 랩을 하는 사람으로서 진짜 많이 배웠어. 지금은 만나서 직접 얘기를 안 듣더라도 가사 속에서 많이 배우는 것 같아. 특히 그 믹스테잎 [New Blood Rapper Vol.1]의 가사들은 진짜 교과서인 것 같아. 가사의 거의 절반 이상이 랩퍼로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이야긴데, 겉멋으로 쓴 구절이 진짜 하나도 없어. 항상 만나든 안 만나든,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되게 많이 배우게 되는 분이 이센스 형이야.
LE: 이번에 나온 프라이머리(Primary) 씨 앨범의 선공개 곡이 이센스 씨의 복귀곡이더라고. 혹시 들어봤어?
응. 당연히 들었지. 역시 클래스는… 가사가 단순히 표현이 신선하고 공감대를 건드리고 이런 걸 떠나서 차원이 다른 거 같아.
LE: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그렇게 킹더형 레코드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한 후에 [Jackpot]이라는 믹스테잎이 나왔었는데, 그때가 아마 씬에 믹스테잎 열풍이 불었던 시기이자 한정판에 대한 열풍이 좀 있었던 때였는데 너도 그때 이 믹스테잎을 냈었어. 근데 듣기로는 너는 이 믹스테잎을 싫어한다고 그러던데…
이 믹스테잎을 준비할 때가 아까 말했던 그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딱히 준비를 안하고 있었던 거지, 뭐 하나 내면 다 뒤집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 내 나이 대에 본격적으로 프로들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내가 천재인 줄 알았던 거 같아. 그러고 있다가 레이블에 들어가니까 계속 누군가는 앨범을 내야 되잖아. DJ 스킵 형이 ‘너 4월까지 믹스테잎 하나 내라.’하셔서… 근데 보통 그런 큰일, 작업을 시작하는 건 이래저래 고민을 했어야 했는데 그냥 그런 거 없었어. 난 짱이고 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웃음) 걱정도 안 했어. 지금은 앨범을 내면 걱정해. ‘사람들이 듣고 실망하면 어떡하지?’, ‘실망도 아니고 그냥 묻혀 버리면 어떡하지?’하고 생각해. 근데 이 믹스테잎을 만들 당시엔 걱정이 하나도 없었고 ‘이거 나오면 진짜 난리 나겠지?’, ‘나 이제 제2의 도끼가 되는 거야. 좆됐다. 난리 났다.’이랬어. 근데 나오자마자 진짜 가루가 되도록 까였어. 그때 당시에 이슈가 없어서 그런 것도 있었는데, 내가 무슨 네임밸류가 있는 MC도 아닌데 게시판 절반이 내 욕이었어. 멘탈 붕괴가 왔지. 그때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장난이 아니었어. 난 신동이고 천재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나를 되돌아 보는 게 아니고 나를 욕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했었어. ‘니네가 뭘 아냐. 내가 1등할 때 심사위원이 누군 줄 아냐.’ 이런 식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유치하지. 그게 뭔 상관이야. 본인들이 듣기에 구리다는데 내가 할말이 없지. 날 욕하는 사람들하고 끝까지 싸우려고 그랬어. 난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
근데 딱 그때 이센스 형한테 크게 혼났었어. 너 지금 뭐하는 거냐고. 네가 기술적인 걸 떠나서 한 명이라도 (노래로 리스너들을) 감동시킨 적이 있고 커리어라고 할만한 게 있긴 하냐고. 씬에 보탬 된 것도 하나도 없고, 한 것도 아무 것도 없는 주제에 네가 뭔데 가오 잡고 들어주는 사람한테 손가락질하냐고. 그때 내가 욕을 할거면 내가 뭐가 잘못된 건지 제대로 된 피드백을 달라고 했어. 근데 이센스 형 말 듣고 벙쪘던 게 ‘걔네가 니 부모님이고 형제고 친구냐. 네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걔네 인생이랑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 걔네가 너에게 구체적인 피드백을 해줘야 하냐? 좋으면 좋다고 하는 거고, 구리면 구리다고 하는 거지. 억울하면 네가 잘해야 되는 거야. 구질구질하게 떠들 거 없어.’라고 하시는 거야. 그때 진짜 심하게 혼났어. 이센스 형 말씀 듣기 전엔 형들 붙잡고 ‘왜 내가 욕을 먹는 걸까요? 내가 잘못했나요?’라고 물어보고 다녔었어. 분명히 딴 형들도 내가 뭐가 잘못됐는지 알았을 거야. 근데 그냥 넘어갔지. ‘신경 쓰지마. 누구나 욕 먹는 거니까.’정도로만 얘기해주고. 근데 이센스 형한테 정말 호되게 혼나고 정신이 번쩍 들었었어. 그러고 나서 믹스테잎을 하나 더 냈을 거야. 도끼 형 인스트루멘탈 앨범에… 그때 그렇게 혼난 날 기점으로 몇 달 내내 연습만 했었어. 어… 그래서 그때 ([Jackpot]을) 사주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고민 없이 만들었던 믹스테잎이었어. 그래도 그때 인터뷰에서 약속했었던 게, 5년 내로 몇 배로 팔게 해드리겠다고 했었는데… 지금도 가격은 오르고 있으니까… 나중에 정 맘에 안 들면 팬클럽 같은 데에 경매를 붙이면 약간의 돈은 건지시지 않을까… (웃음)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 돼서 값을 올리겠습니다.
LE: [Jackpot] 이후로는 킹더형 레코즈가 없어져서 무소속이 됐어. 그 이후로는 어디 소속되어 있던 적이 있어? 네이버엔 소속사가 앤덥뮤직이라고 되어 있긴 하던데… (웃음)
사실 킹더형 레코즈가 해체하고 나서는 지금 소울 다이브(Soul Dive) 형들이 있는 제이투 엔터테인먼트(J2 Entertainment)에 영보이즈 형들이랑 같이 영입이 됐었는데, 일단 소울 다이브 형들을 메이저로 올리는 게 회사의 주된 목적이었기 때문에 내 앨범을 케어해 줄 시간이 도저히 없었어. 갈등이 있어서 나온 건 아니고, 내가 내 앨범을 만들고 싶을 때 바로 만들고 싶어서 ‘혼자 하겠습니다.’하고 나왔다가 존나 후회했었지. (웃음)
LE: 아 그래? 지금도 후회하고 있는 거야?
아, 지금은 아닌데 첫 앨범 만들 때는 내가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LE: 아 앨범을 만드는 음악 외적인 과정에서?
응. 아무 것도 모르고 형들한테 물어 물어 만드니까 너무 힘들더라고. 어쨌든 고생해서 앨범이 나왔고, 반응도 좋았으니까…
LE: 그 첫 앨범인 [The Speaker Of Teen]도 그렇고, 이번 앨범 [20]도 그렇고 그냥 너의 개인 자금으로 만든 거야?
첫 앨범은 엄마한테 돈을 빌렸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Jackpot]때 가지고 있던 자신감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어. ‘돈 빌린 거? 금방 갚을 건데. 난 존나 짱이니까.’했지. (웃음) 근데 갚는데 6개월 걸렸어. 근데 이번 앨범은 내가 음악으로 번 돈으로 해결했어.
LE: 손익계산으로 따져보면 [The Speaker Of Teen]은 제로를 만드는 데에 좀 오래 걸렸던 거네?
그렇지. 내가 돈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안하고 만들었는데… 피쳐링이나 곡 써주신 형들은 페이없이 그냥 도와주셨는데, 내가 생각한대로 일이 안되고 차질이 있고 하다 보니까 추가 비용이 자꾸 들더라고. 그래도 형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어느 정도 수익이 생긴 걸 아껴 모으고 해서 이번 앨범 참여진들한테는 적게나마 페이도 드렸어. 근데 그렇게 해도 이제 손해날 걱정은 안 할 수 있을 것 같아. 공연하고 나서 페이 같은 거까지 생각하면 용돈 넉넉히 쓸 정도는 되는 거 같아.
LE: 소속 회사 없이 독립적으로 하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너한테 100% 돌아가게 되는 거잖아. 떼가는 것도 특별히 없고. 그래서 좀 더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한데.
근데 아마 최종적으로 보면 금전적으로는 손해일거야 회사가 있는 거에 비해서. 내가 일을 해야 하잖아. 계산기 두드리고, 여기저기 일하러 엄마 차 몰고 가서 뭐하고, 새벽에 잠 못 자고 들어오고, 피폐해지고. 또 앨범 만드는 것 자체에도 에너지를 많이 쏟다 보니까 홍보에 대해서는 진짜 머리가 텅 비어서 그런 쪽으로는 유야무야 해버리기도 하고. 손해인 거 같아. 근데 매년 회사에서 제의가 꽤 많이 들어와. 언더 오버 다 합치면 아마 지금까지 한 10군데에서 제의가 왔었던 것 같아. 회사에서 안 하는 이유는 (회사에) 들어가면 어떤 회사든 내 맘대로 할 순 없고 책임이 생기는 거잖아. 금전적으로나 효율성으로는 내가 혼자 하는 게 확실히 손해인데, 그래도 일단 한 1,2년은 더 고생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LE: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예전에 정글 엔터테인먼트(Jungle Entertainment)에서 제의가 들어왔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때도 안 들어갔었잖아. 개인적으로 그 결정이 좀 놀라웠어.
이제 와서 보니까 (그 제의가) M.I.B라는 그룹의 멤버 모집이었어. 그때 당시에 고민을 진짜 많이 했었지. 랩하는 사람한테 드렁큰타이거(Drunken Tiger), 윤미래가 있는 회사에서 제의가 왔다는 게 엄청 혹하잖아. 거기서 일단 혹했고, 그리고 그때 내가 빅뱅(BigBang)을 되게 좋아했었어. 보이 그룹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어. 근데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보다가 ‘잘 할 수 있나? 내가 이런 걸 잘 할 수 있는 걸까?’생각을 하다가 안 했어. 결과적으로 보면 만약에 거기를 들어갔을 때 데뷔를 위해 쏟았을 시간에 난 [The Speaker Of Teen]도 냈고, 여러 가지 좋은 경험도 하고, [20]도 냈잖아. 그리고 그런 힙합 아이돌 그룹은 꼭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할 수 있는 건데 나보다 잘생기고 끼 있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런데 [The Speaker Of Teen]나 [20]같은 건 이 나이 대에 수면 위로 올라온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무도 못했던 거고. 나만 할 수 있는 걸 내가 했다는 거에 대해서 되게 뿌듯해. 그때 결정을 잘한 거 같아.
LE: 그렇게 인디펜던트로, 그리고 정식적인 작품으로서 나온 첫 앨범이 EP [The Speaker Of Teen]이야. 일단 이 앨범 전과 이 앨범에서의 랩 톤이 많이 바뀌었어. 어떤 기술적인 변화를 꾀하려고 해서 그렇게 변한 거야?
일단은 그 앨범이 작업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던 게, 그 앨범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구상을 했었어. 트랙리스트도 2곡 밖에 안 바뀌었어. 그런 거 있잖아.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 텐데, 난 영향이 정말 먼지만큼도 없지만 중요한 경기 전에 내가 오더 한번 짜보고 이런 게 있잖아. (웃음)내년에는 조동찬이 잘해줄 거야. 이런 거. 그런 식으로 실현 불가능한 일을 그냥 꿈처럼 써놨던 걸 그대로 실현시키는 작업이었어. [The Speaker Of Teen] 전에는 되게 화려하게 하고 싶었었어. 귀에 딱 박히는. 그래서 박자도 되게 산만하게 타려고 하고, 소리도 되게 크게 지르려고 그랬어. 근데 앨범을 만들 때는 랩의 기술 자체보다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전달되어야 해서 잡스럽고 산만하게 쳤던 라이밍들 다 빼고 정석으로만 가려고 했어. 가장 큰 변화는 그 앨범 녹음을 하기 한달 전부터 내가 담배를 펴서… (웃음)
LE: 톤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웃음)
맞아. (웃음) “상자 속 젊음 Pt.2” 가사를 집에서 다 써서 (스튜디오로) 갔는데, 톤이 안 잡히는 거야. 그날 스킷에 나레이션을 해준 친구가 담배 피는 친구였어. 녹음하고서 그 친구 집 가는 길 배웅해주려고 갔는데, 내가 그때 애들이 담배를 권하는데 안 피려고 애쓸 때였어. 근데 그 친구가 ‘펴볼래? 줄게. 펴.”이래서 녹음도 안되고 짜증나니까 폈어. 내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복입고 담배를 폈던 것 같은데, (웃음) 피고 들어왔는데 2시간 동안 안되던 녹음이 15분 만에 되는 거야. 그래서 “상자 속 젊음 Pt.2”를 작업할 때 앞에 잘 안됐던 시간 빼면 6 테이크 만에 끝냈어. 그래서 ‘어? 이건가?’했지. (웃음) 그때부터 담배를 피기 시작해서 담배를 안 필 때 녹음했던 나머지 트랙들도 다 날리고 다시 녹음했었어. 확실히 톤이… 이거 너무 청소년들에게 담배를 권하는 건가… 물론 꼭 이런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야. 담배를 피고서 톤이 망가지는 사람도 많고, 듣기 싫게 찢어지는 사람도 많으니까. 나 같은 경우는 정말 큰 도움이 됐지. 목소리가 뜨는 걸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더라고. 하지만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내 가족과 이웃까지 병들게 하니까… (웃음) 어쨌든 나한텐 좋았어. 그래서 빈지노(Beenzino) 형이 비다 로카(Vida Loca) 형 비트에 피쳐링한 “Smoke”를 듣고 아주 공감됐지. ‘꼭 나쁜 것만은 아닌데.’ 하면서…
LE: 사실 랩 톤이 변한 기점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뉴올(Nuol)의 앨범에 들어간 “You Are Mine”이었던 거 같아. 완성도 자체도 좋았지만 톤이 자리가 많이 잡혀서 놀랐었어. 그 전의 작업물들이 약간 아마추어와 프로를 왔다 갔다 하는 걸로 느껴졌다면 그 트랙에선 완전히 올라선? 그런 느낌이었어.
나도 쓰고서 되게 만족스러웠었어. 비트가 되게 어려웠어. 삼박자로 떨어져서. 정박으로 쓰기가 어려워서… 거기에 나까지 랩을 산만하게 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차분하게 써봤는데 그게 오히려 더 깔끔하게 잘 나왔던 거 같아. 가사도 되게 디테일하게… 내 가사 스타일이 완성됐던 것도 그때였던 것 같아. 비트가 되게 신선한 구성이라서 나도 신선하게 구성해보자했지.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연기도 하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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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다시 [The Speaker Of Teen] 이야기로 돌아오면, 앨범이 나올 당시에 나도 고등학생을 벗어난 지 1년도 채 안될 때여서 그런지 몰라도 공감이 되는 가사들이 되게 많았어. 너도 만들 당시가 고등학생이어서 그냥 생활하면서 느낀 점을 그대로 써낸 느낌이 있는 거 같아.
뭔가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그렇고, 내가 듣고서 생각한 것도 그렇고 그 앨범에서 이거다 싶은 라인들 있잖아. 그 라인들이 책상 앞에 앉아서 쓴 가사들이 아니야. 지하철 타고 학교 갈 때나 학교에서 안 듣는 수업시간일 때 썼던 것들 중에 좋은 가사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 그래서 생활에서 녹여낸… 특히 “Stand Up”이란 트랙은 중2때 가사를 다 썼다가 어설픈 부분만 수정해서 썼던 거고. 그래서 되게 자연스럽게 나왔던 거 같아. 평소에 메모장에 썼던 것들을 기반으로 나머지 부분을 채워서 만드니까…
LE: 되게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고등학교를 한번 옮겼잖아. 근데 전학 가기 전 학교에서의 생활이 되게 상황이 안 좋았다고 알고 있어. 일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학교가 주는 억압과 강제성같은 점에서 말이지. 그렇다면 [The Speaker Of Teen]에서 했던 이야기들은 전학 가기 전 학교에서 나온 거라고 봐야 하나?
거의 그렇지. 극한의 상황이었지. 거긴 영하 10도건, 20도건 패딩 입으면 그대로 하키채로 패고 그러니까. 지각했다고 하키채로 패고, 단추 풀려 있다고 싸대기 맞고. 그런 학교였으니까 지긋지긋했지. 그래서 예고로 넘어 오니까 살판나겠다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더라고. 거기도 불시에 소지품 검사하고, 애들 지갑 뒤지고. 별반 다르진 않았어. 우리나라 학교의 병폐는 거기도 다 가지고 있었어. 남녀공학이니까 심한 체벌이 없었을 뿐이지.
LE: 근데 그래도 전학을 가기 전에는 그 학교에 대한 기대나 환상 같은 게 있었을 거 아냐. 어떤 걸 기대하고 간 거야?
방송연예에 관련된 고등학교니까 기대를 많이 했지. 난 지금 남고에서 삭발하고 맨날 쳐 맞고 쌍욕이나 듣고 살고 있지만, 거기 가면 연애도 하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갔다 왔더니 책상에 음료수 누가 놓고 가고. (웃음) 장난 아니겠지. 교실에서 샴푸 냄새가 나겠지? 근데 진짜 교실에 딱 들어 갔더니 샴푸 냄새가 나는 거야. 남고 교실에선 식초 냄새가 나잖아. 알잖아. 문 열자마자 ‘아 씨발…’이러면서 들어가는데… 상상대로였던 것 같아. 이건 뭐 내 자랑이지만 대시도 많이 받고. (웃음) 많이 달랐지.
LE: 근데 학교는 예고인데, 진학한 대학교 과는 그런 계열의 과는 아니잖아? 청소년 과니까 [The Speaker Of Teen]과 결부가 좀 되는데, 그 과를 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어?
일단 예고에서는 내가 성적이 좋은 편이었어. 요즘 연극영화과도 성적을 많이 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나를 어떻게든 연극영화과를 보내려고 했어. 성적에서 애들이 다 짤려 나가니까. 나를 중대, 한양대를 무조건 보내야겠다고 했었는데, 내가 연기를 해보니까 연기를 하려면 되게 몸이 깨끗해야 하거든. 습관도 없고 백지 같아야 거기다가 캐릭터를 넣을 수 있는 건데, 나는 걸음도 어슬렁거리고, 말투도 점잖은 연기 하면 건들거린다고 자꾸 지적 받고 그랬어. 스트레스 받아서 못하겠더라고. 그렇다고 굳이 (그런 언행을) 고친다는 게, 나는 두 번째 직업을 생각하고 대학을 가는 건데 연극영화과를 가려면 그걸 다 버려야 하잖아. 내가 랩을 하면서 체득한 것들을 다 버려야 하는데 난 대학을 두 번째 직업을 위해 가는 건데 두 번째 직업을 위해서 첫 번째 직업을 버린다는 게 말이 안되잖아.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수능치기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성적 최대한 잘 받아서 인서울 점수 제일 커트 낮은 곳. 그냥 간판만 따려고 했었어. 근데 그건 또 돈 낭비고 시간 낭비고 해서 고민을 계속했었지. 근데 어느 날 밥 먹을 때 EBS를 틀었어. 쿠바가 되게 범죄가 많은 나라잖아. 마약사건이나 총기사건이 많은 나라인데, 소년원 출신 아이들을 우리나라로 치면 구민센터 같은 곳에 모아서 랩이랑 비트 메이킹을 가르쳐주더라고. 그러니까 (소년원 출신) 애들이 나쁜 곳으로 안 돌아가는 거지. 열정을 쏟을 데가 생기니까 안 돌아가는 거야. 멋있더라고. 내가 아무래도 전학도 많이 다녀보고, 인문계도 예술계도 다녀봤으니까 아무래도 나만큼 다양한 청소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더라고. 나는 또 전교권에서 놀 정도로 공부를 했던 때도 있었고, 음악 한다 그러니까 양아치들이 붙어서 양아치들이랑 놀아본 적도 있었고 해서 진짜 나보다 다양한 청소년을 겪어본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어. 그러면 내가 가진 경험에다가 음악 쪽에 능력이 있으니까 나중에 음악을 그만두게 되면 저런 거 괜찮겠다 싶더라고. 그런 것도 있잖아. 아이들한테 바이올린을 하나씩 쥐어줬더니 아동 범죄율이 몇 퍼센트가 떨어졌다. 브라질이다. 브라질. 음악이 그런 역할도 해줄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음악을 활용하면 뭘 배워야 하나 찾아봤는데 사회복지를 배워서 청소년 쪽으로 빠지든지, 아니면 청소년 학과를 가든지 둘 중 하나더라고. 근데 사회복지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더라고. 그리고 나는 그냥 청소년들한테만큼은 도움 될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은 거지, 봉사하는 정신은 없어. 몸 불편하신 분들 거들고 이런 거 할 정도로 성격이 좋진 않거든. (웃음) 그래서 졸업을 하려면 실습을 나가야 하는데, 사회복지학과는 못 가겠더라고. 그래서 찾아봤더니 청소년 학과가 중대하고 경기대가 있는데, 중대는 현실상… 거긴 수리를 반영하기 때문에… 그래서 무조건 경기대 청소년 학과를 가야겠다 생각하고 수능을 쳤었어. 그래서 최대한 성적을 잘 받아서 4년 장학금을 받자 했는데, 수능을 망쳐서… (웃음) 근데 지금도 그런 생각은 하고 있어. 성공적으로 음악 커리어를 이어가다가 끝까지 붙잡지 말고 힘에 부칠 때 그만두고 소년원이나 고아원 쪽에 가서 좀 삐뚤어지기 쉬운 친구들한테 도움을 주고 싶어. (힙합은) 자기 얘기를 하는 장르잖아. 상담사들이 제일 힘든 게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 상담사는 너무 맑고 바르게 자란 사람인데, 대하는 애들은 너무 거칠게 자란 애들이니까… 나랑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애들이 입을 닫아 버린대. 근데 랩을 가르쳐주고, 가사를 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줄 수 밖에 없잖아.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그런 부분도 구체적으로는 아니지만 계획은 하고 있어. 내가 해왔던 일과 배운 것을 결합해서…
LE: 근데 사실 20대가 되면 고등학생들이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어지기도 하잖아. 어차피 우리 입장에선 다 지나가버린 학창시절, 수험생활이니까. 물론 아직 1년도 안돼서 그런 고등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아직 가시진 않았겠지만 조금은 줄어든 것 같기도 하지 않아?
솔직히 그때는 내가 힘드니까 남이 힘들고 우울한 것도 잘 이해가 되고 그랬는데, 나 요즘 하나도 안 힘들거든. (웃음) 안 힘들어. 뭐가 힘들어. 나보다 재밌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학교도 재밌게 다니고, 음악도 돈을 크게 버는 건 아니지만 존경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고 너무너무 좋아. 근데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들어. 결국에 어른이 되어서 청소년을 만나야 된다고 하면 아무래도 내가 음악을 하다 보면 보통 어른들보다는 철없이 살 거야 아마. 그리고 누군가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면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해. 내가 청소년 시기가 아주 화려해서… (웃음) 성적이나 가정 환경이나 지역이나 전공이나 계속 바뀌었기 때문에… 일을 막상 해보면 다르겠지만 누구보다 자질이 있는 것 같아.
LE: 이제 [The Speaker Of Teen]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해보자면, 20대가 된 [The Speaker Of Teen]의 제작자로서 이제는 10대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
재수하지 말라. 천국을 눈 앞에 두고 왜… (웃음) 재수한다고 뭐 크게 달라지는 사람을 못봤어. 진짜 그날 교통사고가 났다든가, 밀려 썼다든가 이런 게 아니면 진짜 재수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너무 행복해 스무 살. 물론 개개인마다 힘든 일도 있겠지. 그래서 내 앨범에서도 힘든 얘기를 꺼냈는데, 그래도 이거 이상 좋을 수가 없을 거 같아. 교복 입은 게 그립긴 개뿔이 그리워. 스무 살이 최고야. 그러니까 지금 남은 기간은 열심히 하고… 고1이라면 2년, 고2라면 1년, 고3이면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남은 기간 후회 없이 열심히 해서 스무 살 재밌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
LE: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고 진짜 디테일한 얘기네.
내가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진짜 인생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 멋진 얘기를 해주는 것보다는 그냥 스무 살 되면 즐길 게 너무너무 많다고 얘기해주는 게 적당한 거 같아. 그렇다고 해서 시트콤처럼 갑자기 연애할 일이 생기고, 그러진 않아. (웃음) 갑자기 여자친구가 생긴다든지, 훈남이 와서 번호를 따간다든지 그런 일은 없어. 훈남은 많지만 니 남자는 아니야. (웃음) 그렇긴 해도 너무 재밌고, 걱정이 있긴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걱정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거 같아. 그러니까 정말 아쉽고 미칠 거 같지 않으면 재수해서 이 아름다운 시간 1년을 날리지 말고. 특히나 남자들은 군대 때문에 2년을 날려야 하는데 또 1년 날리면 진짜 얼마 안 남잖아. 남은 시간 열심히 하고 빨리 즐겼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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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20대가 된 지금에 대해 말하는 앨범, 최근에 나온 [20]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해볼게. 일단 간단하게 앨범 소개를 부탁할게. PR시간이야. (웃음)
그래. 나는 가난한 앤덥뮤직 CEO니까… (웃음) 딱히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내가 겪고 본 스무 살의 이야기야. 다 내 이야기는 아니고. 나를 중심으로 썼지만 내 친구들의 이야기도 있고. “That Girl”같은 경우도 친구들 이야기랑 내 이야기를 섞어서 쓴 거고. “20”같은 경우도 그렇고. 그래서 청소년들이 듣기에는 ‘아 스무 살 되면 진짜 재밌겠다’라고 느끼면서 가슴 설렐 수 있을 것 같고, 지금 스무 살인 애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고, 황금기를 지난 사람들은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 스스로 들어봐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잘 만든 거 같아.
LE: 앨범에 여섯 트랙이 실렸는데, 일단 어떤 트랙이 제일 맘에 들어? 그리고 트랙 중에 작업 중에나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에피소드가 있던 트랙이 있다면 얘기해줘.
어느 트랙이 좋은 지는 프로듀서들이 볼 거기 때문에 말할 수 없고… 난 근데 진짜 가식이 아니라 전곡이 다 마음에 들어.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딱 나온 거 같아. 딱 이렇게 만들고 싶었어. 에피소드라고 하면, 작업할 때 내가 거의 모든 곡의 소스들을 조금씩 빼달라고 했어. 화려해지고 복잡해지면 내가 의도한 느낌이 안 날 것 같았어. 하여튼 무겁지 않게 가고 싶었어. 왜냐하면 내가 지금 그다지 진중하게 살고 있지 않고, 그냥 그대로 녹여내고 싶었어. “That Girl”같은 경우는 엄청난 속도로 만들었어. 그때 곡을 새로 만들려고 김박첼라 형을 찾아갔는데, 스케치한 거 있다고 들어보라고 하시길래 너무 좋아서 받아서 크루셜 스타(Crucial Star) 형한테 보내줬는데, 15분 만에 가녹음을 해서 보내주고 나도 가사를 한 시간 반 만에 스토리 라인 구상한대로 쫙 뽑고 끝났어.
LE: 일단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일단 “That Girl”은 실화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실화 여러 개를 섞어서 픽션으로 만든 거야. 나는 태어나서 모르는 사람한테 번호를 물어본 적이 한번도 없어. 근데 우리 과는 남자가 적어서 우린 남자끼리 항상 모여. 모이면 버스에서 단발머리 여자를 봤는데 장난 아니다. 천사를 본 줄 알았다. 맨날 같은 시간에 타는데 다음 주엔 내가 번호 물어본다. 이런 얘기를 되게 많이 하거든. 그리고 나는 버스에서 만난 상황은 아니지만 진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 느꼈던 걸 아까 말한 그 상황에 녹여낸 거지.
LE: 사실 원래 질문은 그 ‘That Girl’이랑 지금도 만나냐고 물어보려고 했었거든. (웃음)
(앤덥은 말없이 손에 낀 반지를 보여준다.)
LE: 아, 그렇구나. (웃음)
이거 나갈 때 앤덥은 말없이 손에 낀 반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써줘. (전원 웃음) 숨기는 것도 구린 거 같고… 내가 아이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부러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유치한 거 같아서.
LE: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볼게. 혹시 ‘That Girl’이 “방안에서”의 주인공이야?
그건 완전 픽션인데. 그냥 상황을 설정해서 야한데 끈적하게 야한 게 아니고 상쾌하게 야한 곡을 만들고 싶었어.
LE: 결론적으로 실화는 아니라는 건가?
뭐, “방안에서”같은 상황도 물론 겪었겠지. (웃음) 나한테 관심 많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 순진하고 그러지 않아.
LE: 이번 앨범 [20]에 제이락킨(Jay Rockin), 더 콰이엇, 김박첼라, 제이신(J.Sin), 비다 로카, 기리보이의 비트를 사용했는데 각자 다른 프로듀서와 일하면서 느낀 점이나 일반적인 작업방식과는 다른 점이 있었어?
다른 건 다 일반적이었고, “지금 이대로”는 내가 제이락킨 형이 만든 비트를 듣는데 드럼은 내가 원하는 거였어. 근데 들었을 당시의 버전은 좀 어두웠어. 원래 라인이 마이너로 깔리는 비트였는데, 드럼만 두고 새로 만들어달라고 해서 드럼만 받은 다음에 거기다 벌스, 훅 가사를 다 썼어. 리믹스처럼 작업을 하게 된 거지. 추가적인 소스를 내가 쓴 랩, 훅 위에 나중에 얹게 된 거지.
또 얘기하고 싶은 건, 기리보이 형이랑 술 먹다가 형이 ‘야 너 내가 쓴 거 들어볼래?’해서 들었는데 진짜 좋은 거야. 이건 내가 꼭 써야겠더라고. 근데 기리보이 형이 잘 안 주려고 하더라고. 원래 프로듀서 형들이 진짜 잘 나온 곡들은 자기가 쓰려고 하거든. 내가 졸라서 받았는데, 원래 술 먹으면 노래가 좀 좋게 들리잖아. 혹시 그래서 내가 실수한 게 아닐까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들어봐도 너무 좋은 거야. 거의 약간 협박하다시피 얘기해서 쓰게 됐지.
LE: 위에 말한 두 곡에 참여한 브라더수(Brother Su)와 러비(Lovey)는 모두 라디(Ra.D)의 레이블인 리얼콜라보(Real Collabo) 소속으로 알고 있는데, 평소 같이 작업하면 좋겠다 싶어 염두 해두고 있었던 아티스트들이었어?
안지는 얼마 안됐고, 브라더수 형이랑 러비가 남매인데 항상 같이 다녀. 긱스(Geeks) 형들이 두메인 크루고, 크루셜 스타 형도 리얼콜라보 분들이랑 친하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공연장 같은 데서 인사만 하고 지내고 그랬는데… 러비같은 경우는 “플랫 슈즈”를 듣고 알게 됐어. 힙합 보컬은 좀 끈적한 경우가 많잖아. 근데 난 상큼한 보컬이 필요해서 찾다가 “플랫 슈즈”를 듣고 이 목소리다 싶어서 작업 제의를 했지. 브라더수 형 같은 경우는 “지금 이대로”의 후렴이 내가 쓴 지가 거의 1년이 됐어. 곡은 상쾌한데 내가 톤이 낮아서 한 옥타브 올려서 불러야 하는데 안 되는 거야. 누구한테 불러달라고 해야 하나 싶었는데, 난 참여진을 디깅을 해. 우리나라 인디 음악을 듣다가 매치를 시켜보는데 브라더수 형이 부르면 딱 톤이 맞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같이 해달라고 해서 훅 라인은 내가 짜고, 브라더수 형이 불러주셨지. 되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
LE: 지금까지 얘기한 트랙들은 되게 상쾌하고 발랄한 편인데, 후반부에 5번 트랙인 “20”라는 트랙을 들어보면 ‘더 넓은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 같아’라는 가사가 있어. 앞에서 그렇게 신나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20”에서 갑자기 그런 분위기를 내니까 뭔가 모순적인 느낌이 있었어.
근데 그게 진짜인 것 같아.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어도 고민할 때가 있고, 우울한 날이 있는데 진짜 스무 살의 신나는 모습을 담았다고 해서 1번부터 6번까지 신나게 놀기만 한다면 그게 진짜 가식적인 앨범인 거지. 컨셉 앨범이지. 신나는 컨셉. 근데 나는 그냥 내가 1학기 끝날 때까지 겪었던 걸 그대로 쓴 거지. 처음엔 신나게 마시고 놀다가 1학기 끝날 때쯤만 돼도 애들이 전과할까, 편입할까, 군대부터 일찍 다녀올까 등등 고민들이 생기기 시작하잖아. 그냥 그런 고민들을 그대로 담은 거지.
LE: 모순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거네?
솔직하게 드러내서 그런 우울한 모습도 나왔던 거 같아.
LE: 근데 보면 “상자 속 젊음 Pt.2”도 그렇고, “20”도 그렇고 벌스 별로 네가 화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느낌이 있어. 특별히 그런 형식을 좋아하는 거야?
이건 좀 영감을 받아서 하게 됐어. 일단 내가 청소년일 때 “상자 속 젊음”의 뒷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은 했었어. 어떤 형식으로 담느냐가 문제였는데, 다이나믹듀오의 “잔돈은 됐어요”가 각자가 역할을 맡아서 진행되잖아. 한 곡에서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크게 다가왔고… 그리고 또 버벌진트 형의 노래 중에 “Drunk”에서도 화자를 바꿔 가면서 진행되잖아. 한 명이 얘기하고 있는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되게 좋은 거 같더라고. 보통 세 명의 얘기를 하려면 세 곡을 써야 하는데. 그래서 그런 구성을 차용해서 한 곡에 담아서 만들었어. 사실 “상자 속 젊음 Pt.2”는 아쉬움이 좀 남았었어. 믹싱할 때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처럼 들리게 해달라고 얘기하긴 했는데, 내가 그때 톤이 덜 잡혀서 연기를 못했어. 누가 잘 못 들으면 ‘다중인격인가. 미친 건가’이럴 수도 있게… (웃음) 근데 이번 “20”에서는 벌스 1,2,3에서 톤이 완벽하게 바뀌거든. 그런 면에서 좋은 거 같아. 이번 노래처럼 완벽하게 화자가 바뀌었다는 걸 알릴 수 있었고, 세 사람의 얘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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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근데 보면 [The Speaker Of Teen]도 그렇고, [20]도 그렇고 너 자체도 나이라는 관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거 가지고 트집잡는 새끼들이 많아. 언제까지 나이로 울궈 먹을 거냐고 하는데 그럼 스무 살인데 스무 살이라 스무 살에 대해 쓰는데 뭘 울궈 먹어. 나이 40 먹고 발랄한 척 하거나 아니면 13살 짜리가 인생에 쓴 맛에 대해 얘기하면 그게 가짜겠지. 난 그냥 솔직하게 하고 싶었던 거고… 나는 그냥 연습곡 쓸 때는 그냥 맘대로 쓰는데, 앨범을 낼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 중에 내가 해야 더 와 닿는 이야기가 뭘까 생각해. 나도 스웨거 트랙 쓰려면 얼마 거두지 못했지만 랩퍼 지망생들보다는 해낸 게 많은 게 있으니까 그거 가지고 쓸 수는 있지만 “Profile”보다 좋은 트랙은 절대 못 만들 거 같아. 일단 기량이 다르니까. 그 형들은 완전 절정에 선 형들이잖아. 데드피(Dead’P) 형의 [Undisputed]같은 앨범이나 팔로알토 형의 가사도 나한테 지금 맞는 옷은 아닐 것 같아. 나도 우울해하고, 짓눌려 있고 그런 게 있어. 사는 게 별로 재미없고. 물론 스무 살에도 그런 걸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지만 그런 내용은 팔로알토 형이 할 때 제일 잘 느껴지는 거지. 내 나이에 그런 걸 하면 허세같이 보일 것 같아.
LE: 리스너들이 [20]를 어떻게 들어줬으면 좋겠어?
아무 생각 안하고 들어줬으면 좋겠어. 물론 나도 만들 때 고민도 많았고 치열했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존재가치탐구 뭐 이런 심오한 주제도 아니고, 뭔가 메시지를 던진다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들려주는 거지. 만들 때 생각은 그런 거였어. 듣고 나면 사람들이 ‘아 얘 참 재밌게 산다.’, ‘나도 스무 살 때 재밌었는데…’하는? 내가 [20]를 만들었다고 20대 초반을 타겟으로 만든 게 아니라 지금 내가 가장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데다가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성장 드라마 ‘반올림’을 진짜 좋아하셨었어. 챙겨서 보셨었지. 어릴 때 생각 많이 난다고. 40살이 15살의 얘기를 듣고 보고 즐길 수 있고 추억할 수 있는데 그냥 나도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내 앨범을 듣고) 스무 살 때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렸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보다 어린 공부에 찌든 친구들은 좀만 더 열심히 해서 ‘나도 저 오빠처럼, 저 형처럼 신나게 재밌게 살아봐야지’라고 생각했으면 좋겠고. 또 우리 또래 친구들은 놀 때 틀어놓고 같이 놀았으면 좋겠고.
LE: [20]에 대한 이야기를 이 정도로 하고, 다른 이야기들을 조금 해볼게. 제이통의 “똥”이라는 소울커넥션 디스곡에 CSP 씨가 “좆망”이라는 반격곡을 냈었는데, 네가 거기에 “똥망”이라는 또 다른 디스곡을 냈었잖아. 어떻게 디스하게 된 거야?
일단 일차적으로 소울커넥션 음악 싫어했었어. 그 이후에 제이통 형이 무대에서 디스하고 내려왔는데 ‘곡 잘 들었습니다.’하면서 허리 굽혀 인사하는 꼴이 되게 구리다고 생각했었어. 게다가 그러고 나서 무대에 올라가서는 당당한 척하면서 ‘요즘 좆밥들이 우릴 존나 씹죠?’ 이러더라고. 그래도 제이통 형이 일을 벌인 상태에서 내가 끼면 숟가락 얹는 느낌 날 것 같아서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좆망”이란 곡에서 자기 욕하는 사람들은 다 바람 타서 하는 거고 자기들을 욕하려면 자기들만큼 돈 벌고 하라는 둥 이상한 합리화를 하면서 오히려 묵묵히 진중하게 음악 하는 사람들을 병신 취급하더라고. 그래서 화가 너무 나서 그날 밤에 다 쓰고 녹음해서 올렸었어. CSP가 자기네들 디스 지는 게 우르르 몰려서 편들기 해서 그런 거라고 쓰는 바람에 그거 듣고 나한테 잘했다고 연락 온 형들은 다 개인적으로만 연락이 왔어. 그 사람도 나름 잔머리가 좋은 것 같아.
LE: 소지섭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고 일본에서 같이 공연도 하고 그런 것 같던데, 소지섭의 음반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거야?
우연한 기회로 김건우 작곡가 형님하고 만나 뵙게 됐는데, ‘요즘 작업하는거 있는데 해볼래?’라고 하시길래 그냥 가이드버전으로 하나 떠서 보냈었어. 근데 그게 소지섭 형님하고 그쪽 제작사 측에서 다 오케이 싸인이 나고, 다른 곡들도 2곡 더 쓰게 됐어. MC몽, 김진표 님이 먼저 작업을 하신 게 있었는데 내가 한 게 뽑혀서 뿌듯했었어. (웃음) 공연은 소지섭 형님 일본 팬 미팅 공연에 따라가서 안락하게 관광하고 10분 정도 공연하고 돈 벌었지. (웃음) 작업이 끝나고서도 비싼 몽블랑 볼펜 선물도 보내주시고, 영화 회사원 시사회 티켓도 보내주셨어. 정말 멋진 형님이야. 이번 앨범 제작비도 그 작업으로 상당부분 벌었어. 소간지 짱!
LE: 앞서 말했듯이 ‘최연소 MC’라는 타이틀을 달고 씬에 데뷔했는데, 이젠 성인이 됐어. 나이에 비해 잘한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얘기를 듣지 못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 이제는 그런 걸 이겨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아?
그래서 요즘에는 나이에 비해 잘한다는 소리는 안 듣는 것 같아. 올티, 제이문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담감은 없어. 그냥 랩퍼니까 랩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건 나이에 상관없이 항상 있는 거고… 그리고 난 나이에 비해 잘한다는 말에 스스로 숨어본 적은 없어. 그냥 더 잘하고 싶어. 그것보다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건 형들이 잘할 때는 저 형 나이쯤 될 때는 ‘내가 더 잘할 거야.’ 하는데,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나보다 더 잘했을 때는 피할 변명이 없잖아. 그런 부담감은 있지. 나도 이제 더 이상 ‘나중에 잘해야지’라고 할 때가 아니니까. ‘앞으로 잘해야지.’가 아니라 이제부터 더 잘해야 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하니까. 이런 내 스트레스는 거의 제이문하고 올티가 주는 거 같아. 나쁜 놈들.
LE: 그렇게 갑자기 그렇게 어린 애들이 막 튀어나오니까 톤이 바뀌기까지는 발전의 단계가 보이는데, 그 다음부터는 발전의 단계가 좀 지지부진해 보였어. 발전이 없는 MC라는 평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The Speaker Of Teen]을 내고 랩 자체에 대한 연습은 거의 못했어. 랩 기술 자체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난 신경 안 써. 기술적으로 화려한 건 예전엔 욕심을 많이 냈는데, 요즘에는 욕심을 별로 안내고 있어. 어떻게 하면 곡을 잘 만들까에 대한 욕심은 있지. 랩을 위주로 보는 사람들은 발전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 근데 음악전체를 듣는 사람들은 저번 앨범과 이번 앨범의 차이를 단번에 알 거야. 구성력, 가사의 디테일, 톤 조절, 랩이 곡에 묻어나는 거, 비트 초이스, 피쳐링 선정 이런 것들. 내가 들어도 눈이 부시게 발전했어. 랩 자체로는 그런 소리 들을 수 있고, 앞으로 나도 랩을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서 신경쓰긴 할 거야. 근데 발전이 없다는 얘기는 너무 좁은 시선에서 보는 게 아닌가 싶어.
LE: 요즘 인기 있는 플레이어들을 보면 90년대생들이 많은 거 같아. 누구랑 제일 친한 편이야? 그리고 약간 민감한 질문이 될 것 같은데, 누가 제일 잘하는 것 같아? 라이벌을 꼽아도 되고. 대충 몇 명을 대보면 릴보이(Lil Boy), 루이(Louie), 크루셜 스타, 깐모, 기리보이, 어글리덕, 제이문, 올티, 테이크원 이 정도일 것 같은데…
친한 건 우리 크루 형들하고 친해. 특히 처음 할 때부터 같이 했던 형들이랑 친하고… 제일 뛰어나다고 하기보다는 제일 부러운 사람은 릴보이 형. 화려하게 박자를 꺾고, 텅트위스팅을 하는 게 아닌 데도 소름 돋게 터지는 부분들이 있어. 무엇보다도 랩이 곡에 잘 묻게 하는 걸 잘하기 때문에… 랩 자체만 잘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싱어들도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제일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 근데 릴보이 형은 음악적인 감각이 있는 데다가 랩을 잘하고, 잘 들리고, 곡에 착착 붙지. 감각적으로 하는데 그렇게 된다는 게 되게 부러워.
LE: 90년대생 아티스트들이 점점 씬의 메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얘기를 했는데, 90년대생 아티스트로서 현재 힙합씬은 어떤 상태인 것 같아? 어떻게 보면 어릴 적엔 소비자였고, 지금 와서는 생산자잖아.
요즘 게시판에 한국힙합이 망한 이유 같은 글들이 돌아다니던데, 똥싸고 앉아 있는 소리야. 씬 안에 한발도 안 들여다 놔봤으면서 무슨 구조가 어쩌니 저쩌니… 진짜 놀고 앉아 있고, 딱 봤을 때 내가 4년 전에 음악 한다고 애들한테 소문이 났을 때 ‘쟤 음악하는 애래.’라고 했지, ‘누구랑 작업하는 애래.’라는 소리가 안 나왔어. 언더그라운드 앨범 일년에도 몇 장씩 앨범이 3,4천장 나갈 때, 매니아 아닌 친구들은 아무도 몰랐다고. 근데 지금 학교에서 나보고 ‘너 긱스랑 같은 크루라면서?’, ‘버벌진트랑 작업했다면서?’, ‘이센스랑 안다면서?’, ‘팔로알토가 이번에 곡 줬다면서?’, ‘이번 앨범에 더 콰이엇이랑 바스코 참여했다면서?’이래. 애들이 다 물어봐. 힙합 동아리 애들이 물어보는 게 아니고 그냥 애들이 다 알아. 팔로알토, 바스코, 도끼 이런 뮤지션들을 다 알아. 망하긴 뭐가 망해. 지금 수익 구조가 안 나는 건 기형적인 음악산업의 구조 때문이지, 힙합 영향력은 옛날하고는 비교가 안돼. 지금 내가 힙합 씬에서 탑 10에 드는 MC도 아니고, 유망주 축에 드는 MC인데 내 앨범 나왔다고 앨범 발표되는 시간에 내가 멜론 실시간 검색어 4등했어. 비프리(B-Free) 형 앨범 나오는 시간에도 4등 했어. 긱스, 버벌진트도 1등하고. 지금 언더그라운드 힙합 영향력이 비교가 안되게 팽창했는데 망하긴 뭐가 망해.
난 성공적으로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고 봐. 우리 전세대의 아티스트들인 팔로알토 형, 바스코 형, 더 콰이엇 형, 나이는 어리지만 이제 10년차가 된 도끼 형, 노이즈맙(Noise Mob) 형들. 이런 내가 음반 살 때 있었던 형들이 건재하게 버텨주면서, 그 밑에 뮤지션 되기를 꿈꾸던 크루셜 스타 형이나 나도 있고 또, 긱스 형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을 치우고도 가요계까지도 술렁이게 하잖아. 물론 이센스, 사이먼디(Simon-D), 스윙스(Swings), 베이식(Basick)형들이 신인일 때보다는 한방이 있는 아티스트는 안 나오고 있지만… 근데 오히려 그 한방이 있는 아티스트들이 있었을 때는 그때가 더 불안정했던 것 같아. 슈프림팀이 방송을 나가고 나니까 언더그라운드가 휑해져 버렸잖아. 스윙스 형 업타운(Uptown)하고, 슈프림팀 메이저 데뷔하고, 베이식 형 유학 가니까 끝났잖아. 근데 지금은 한방이 있는 아티스트들은 없어도 충분히 좋은 음악 꾸준히 내주는 사람들이 있고… 지금 10월, 11월 한국힙합만 봐도 정말 좋은 앨범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성공적으로 세대교체 하고 있다고 봐. 개선되어야 할 점은 수익 구조에 대한 거나 아니면 언더그라운드에서 또 다른 수익모델을 어떻게 찾느냐의 문제지. 어딜 봐서 망했다는 건지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완벽한 균형이라 생각해. 지금 한국시리즈 중인데, 삼성 라이온즈같아. 진갑용처럼 10년 전부터 해오던 선수, 가리온 건재하고. 중견 이상의 선수 박한이, 팔로알토 형, 바스코형. 신진 급으로 치고 올라오는 선수 배영섭, 정형식 같은 나도 있고. (웃음) 베테랑, 중견, 신예, 올라오는 새싹들까지. 올라오는 새싹은 나이로 규정할 순 없지만 제이문이랑 올티겠지. 완벽한 구성인 것 같은데? 나는 3년 후에 얼마나 더 재밌어질 지 듣는 사람 입장으로서도 기대돼.
LE: 근데 사실 언더그라운드에서 앨범이 잘 팔리던 시절이 있었잖아. 2007,8,9년쯤? 그런 시절이랑 비교하면 지금 앨범 판매량은 많이 줄었지 않나 싶어.
그건 힙합씬이 죽은 게 아니고 한국 음악계가 죽은 거지. 그런 식으로 치면 2007,8년에 SG워너비, 휘성 앨범이 30만장 나갔는데, 지금 5만장도 안 나가잖아. 단순 비교하면 글쎄? 지금 빈지노 형도 3000장 판다던데?
LE: 빈지노 씨는 어떻게 보면 특이 케이스 아닌가?
그러니까 줄어든 사이즈가 가요계에 비해서 오히려 낫지. 그리고 사람들이 굉장히 착각하는데, 옛날에 제일 잘나간다던 아티스트들도 공연 페이 각각 10만원, 20만원씩 받았어. 지금 그 정도의 인지도면 공연 나갈 때 100만원 이상 받아. 더 많이 받기도 하고. 씬의 크기가 10배, 20배, 30배 더 커졌는데 말이 안 되는 얘기야. 그때는 공연하고서 밥 먹으면 다행이었어. 밥 한끼 같이 먹을 돈이 없어서 그냥 인사하고 갔어. 그때 생각하면 너무나도 환경이 좋아졌어.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안에 있는 사람이 느끼기엔 그래. 뒤에서 키보드 질이나 하고 지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 앨범 안 낸다고 힙합 망했다고 하는 새끼들은 제발 힙갤로 꺼졌으면 좋겠어. (웃음)
LE: 사실 이 얘기를 하기가 좀 껄끄럽기도 한데, 아까 얘기가 나왔지만 소위 요즘 많이들 하는 말로 ‘얼빠’라고 하잖아. 야구로 치면 룰도 모르면서 잘 생긴 선수 쫓아 다니면서 애들 있잖아. 힙합씬도 마찬가지인데, 그리고 슬프게도 그런 ‘얼빠’들이 이 씬에 돈을 돌게 만드는 주된 소비층이기도 하고. 근데 그런 소비층도 쌓이면 문화가 형성이 되는데, 10대에 그렇게 ‘얼빠’짓을 하다가 나이를 먹으면 나가. 그리고 또 다시 똑 같은 ‘얼빠’들이 그 자리를 채워. 그런 식의 현상이 한 몇 년 동안 지속됐던 것 같아. 그런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너도 그런 ‘얼빠’들이 좀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는 인정해. 나도 안에 있던 입장에서 나가고 들어가고 나가고 들어가고 많이 봤어. 그런데 내가 19살에서 스무 살이 돼보니까 왜 나가는지 알겠어. 음악 듣고 공연장가는 것 외에도 재밌는 게 너무 많아. 미팅도 하고, 머리도 맘대로 할 수 있고, 옷도 고를 수 있고, 선배가 야구장 가자니까 갔더니 야구도 재밌고. 10대 팬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 아마 농구장 따라다니던 10대 무리들도 스무 살 되면서 많이 빠져 나갔을 거야. 다른 게 재밌어지니까. 그게 정도가 심하다 보니까 문제라고 생각될 수도 있어. 근데 해결되고 있어. 바깥에서 보기엔 똑같아 보일 수도 있는데, 몇 년 전엔 진짜 (팬들 중에) 스무 살, 스물한 살이 없었어. 근데 지금은 공연이 끝나면 애프터 파티를 하잖아. 술 먹는 파티. 공연을 해서 200명이 오면 애프터 파티에는 150명이 와. 그럼 걔네 뭐야? 민증 훔쳐서 온 애들이야? 대학생이잖아. 대학생들도 (힙합) 듣던데. 그리고 힙합 딱히 좋아하지 않는 누나들도 가끔씩 공연 보러 와. 힙합 동아리 아니야. 그냥 우리 학교 과선배고, 케이윌(K.Will) 좋아하고 휘성 좋아하는 사람이야. 근데 그냥 팔로알토 형도 좋아하고, 빈지노 형도 좋아하니까 공연장 와. 그리고 공연장을 찾아오는 사람 중에 10대 팬이 대다수인 건 지극히 당연한 거 같아. 직장인들은 금요일까지 야근하고 회식하고 뻗었는데, 3시간 동안 스탠딩으로 보는 공연을 자주 간다는 건 힘든 일인데 어쨌든 가끔은 올 수 있게 우리가 퀄리티 있는 공연과 음악을 제공하는 게 먼저긴 하겠지. 그래도 안에서 봤을 땐 점점 해결되고 있어. 물론 맨 앞줄에 서서 소리 지르는 관객들은 10대 팬들이야. 시간이 많으니까. 하지만 직장인 팬들도 많아. 나도 트위터로 오는 멘션들 보면 ‘퇴근하고 들어볼게요.’, ‘월급 받으면 살게요.’, ‘회사에서 틀어봤어요.’그런 얘기 많아. 이 상태로 몇 년 더 지나면 확실히 더 좋아질 거야. 쌓여가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생각하기에 앨범이 너무 드문드문 나오니까. 스무 살이 되니까 재미가 없어진 게 아니라 스무 살이 돼서 딴 걸 하고 있을 때, 이 앨범도 나오고 저 앨범도 나오고 계속 나와야 여기 관심을 가지는데 앨범이 자주 안 나오잖아. 3년에 한 장 내고 이러니까 관심이 끊어질 수 밖에 없었던 거 같아. 야구경기도 1년에 9개월을 하고, 오늘 경기가 있고 내일 경기가 있고 하니까 계속 관심을 가지잖아. 야구를 한국시리즈만 2년에 한번 한다고 하면 그걸 기다릴까? 그 사이에 농구를 보든지, 축구를 보든지 하지 않을까? 내가 인기가요를 볼 때도 저번 달에는 빅뱅이 컴백하고, 이번 달에는 투애니원(2NE1)이 컴백하니까 관심을 가지고 보는 거지. 맨날 이상한 잔챙이들만 나오고 관심 가질만한 사람들이 안 나오면 결국에 ‘또 똑같겠지 뭐.’하고 채널 돌리겠지. 아무튼 지금 흐름 너무 좋고 성숙한 음악들, 공연들 계속 꾸준히 제공을 해주면 (팬층이) 쌓일 수 있을 것 같아.
LE: 결론적으로 수익 구조가 제대로 안돼있다 보니까 뮤지션에게 돌아가는 게 별로 없고, 그러면서 다음 앨범을 내는 게 늦어지고, 그러면서 또 리스너들은 관심이 줄어 들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거네?
근데 어느 정도 인지도가 올라온 아티스트라면 물론 60원짜리 수익구조에서 대단한 돈을 벌긴 힘들지만 부지런히 최소한 1년에 한 장 씩은 앨범을 내는 게 경제적으로도 훨씬 도움이 돼. 공백이 2년, 3년 가는 건… 물론 신중하게 내는 뮤지션도 많지만 대부분 게을러서 작업을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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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너도 앨범을 2010년에 한 장, 2011년에도 한 장, 올해도 한 장 이렇게 내고 있는데 그런 생각들이 약간 반영되기도 한 건가?
난 계속 작업하고 싶은 게 있었을 뿐이고, 내가 수능공부 몇 달하고, 대학가서 몇 달 정신 없이 시간 보냈는데도 충분히 계속 (결과물을) 낼 수 있는데, 역량이 올라 온 사람이 전업 아티스트면서 몇 년에 한번씩 나온다는 건… 네임밸류가 그대로 유지되는 게 더 신기한 거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신중하게 나오는 앨범… 물론 다작으로 무조건 찍어내는 게 답은 아니겠지만 몇 년에 한번씩 나오면서 꾸준한 관심을 기대하는 건 너무 욕심이겠지. 가리온 형님들이나 닥터드레(Dr.Dre)가 아닌 다음에야…
LE: 나도 방금 그 생각했는데. (웃음)
닥터드레는 괜찮아. 닥터드레니까… 8년을 기다릴 수 있게 만든 앨범을 내놨으니까. 근데 2년을 기다릴 수 있는 앨범을 내놓지 않은 채로 2년 동안 잠수를 타버리면 팬이 딴 데로 떠나겠지.
LE: 인터뷰마다 물어보는 질문이야. 힙합엘이에는 자주 오는 편이야?
힙합엘이 진짜 너무 바쁜 날 빼고는 매일매일 들어가고, 항상 본토에 관련된 신선한 기사들도 많고, 클래식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기사들도 있고. 기존에 나왔던 음악들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사들도 있고. 자료들도 너무 많고. 항상 재밌게 보고 있어. 섹션 하나하나가 다 버릴 데가 없는 거 같아. 혹시라도 내 인터뷰 때문에 들어온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씩 다 둘러봤으면 좋겠어. 여긴 완전 힙합학교야. 힙합엘이만 전체 싹 봐도 어디 가서 힙합 뮤지션들 앞에서도 무식한 소리는 안 할 수 있을 것 같아.
LE: 우리가 외국힙합을 많이 다루는 사이트인데, 넌 최근에 어떤 음악을 즐겨 듣고 있어?
요즘에 난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취향이 좀 변했는데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음악이 좋더라고. 위즈 칼리파(Wiz Khalifa)나 맥밀러(Mac Miller), 애셔 로스(Asher Ross)같은 아티스트들 음악을 들으면 상쾌해지고 에너지 솟는 느낌이 좋아. 요즘엔 위즈 칼리파가 제일 좋은 거 같아.
LE: 위즈 칼리파 예전 앨범?
그냥 요즘 나온 "Work Hard, Play Hard"도 좋고… 그런 게 좋은 거 같아. 제이통 형이나 릴보이 형도 그런데, 사람이 별로 쓸데없는 걱정을 안 해. 그래서 그 음악에서 그 사람 성격이 티가 나는 거 있지. 그런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LE: 얘길 들어보면 뭔가 아방가르드하고, 난해한 언더그라운드 보다 라이트한 쪽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런가?
난 그냥 들어서 좋으면 좋은 거니까. 그런 게 되게 소모적인 거 같아. 뭐가 진짜 힙합이고, 뭐는 힙합 아니고. 그냥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듣고 좋으면 좋은 거지. 우울할 때 우울한 거 듣고 싶고, 기분이 아방가르드할 때는 아방가르드한 거 듣고. (웃음) 근데 난 요즘 그냥 기분 좋거든. 하는 일 딱히 대단히 잘되는 것도 없지만 나쁜 것도 없고. 그래서 난 기분 따라 듣는 거라서 요즘엔 그런 상쾌한 게 좋은 거 같아.
LE: 랩적으로, 음악적으로 롤모델이 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누가 있어?
모르겠어. 지금 당장은 그런 음악을 하고 싶은데. 기분이 그러니까. 사는데 별로 불만이 없으니까. 그냥 정해놓지 않는 것 같아. 그때 당시의 솔직하게 하고 싶은 걸 하는 거고 롤모델이라고 하면 딱히 있나? 그냥 예전부터 지금까지 티아이(T.I.)가 항상 제일 멋있는 거 같아. 그런 캐릭터? 스킬로 막 조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팝적인 걸로 조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감각 있게 여자도 남자도 좋아하는. 음… 사실 딱히 롤모델 없는데? 잘나가고 싶어. 재밌게 하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돈 많이 벌고 싶어. (웃음)
LE: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돼? 아티스트로서의 계획과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 계획 둘 다 부탁해.
일단 이번 앨범 제작까지 같이 하면서 너무 심신이 지쳐서 당분간은 공연하고 연습만 할 거 같아. 단기적으로는 이번에 딥플로우(Deepflow) 형이 [Heavy Deep]의 인스트루멘탈을 전곡 공개했잖아. 전곡에 다 한 벌스 이상씩 작업해서 발표하려고 해. 그런 작업들을 당분간 할 거 같아. 재밌는 거. 나는 앨범을 만들 때는 컨셉이나 구성 같은 걸 미리 짜고 들어가서 에너지를 모을 시간이 좀 필요한 거 같아. 아마 그렇게 지내다가 방학하고 나면 슬금슬금 떠오르는 곡들 하나씩 작업해서 부틀렉 또 하나 낼 것 같아. 컨셉없이 편하게. 이건 시기를 말하지 않을게. 시기를 말하면 쫓겨.
LE: 아티스트로서는 중요한 문제일 것 같은데 군대는 언제 갈 생각이야?
한 7,8년 정도 뒤에? 아까 얘기한 거랑 좀 연결되는 것 같은데, 닥터드레는 7,8년 동안 앨범을 안내도 그 정도를 기다리게 만들 정도의 앨범을 내고 있으니까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거잖아. 나도 그런 기준에서 생각해봤어. 내가 지금 내놓은 거 가지고는 2년 사라지면 난 잊혀질 거 같아. 다이나믹듀오가 군대 2년을 갔다 왔다고 해서 위치가 바뀐 게 없잖아. 사람들이 2년, 3년 나를 잊지 않고 기다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와 작업물을 내놓고 가고 싶어서 한번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루고 가려고. 그때 별볼일 없으면 망하는 거지. 그만두는 것도 생각해봐야지. 솔직히 12년 정도 했는데 존재감이 미미하면 딴걸 해서 먹고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웃음)
LE: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한 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인터뷰 소감 등등 자유롭게 얘기해줘.
요즘에 제일 아쉬운 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나한테 호감이 있는 사람들의 피드백만 듣다 보니까 지적을 받기가 힘든 거 같아. 옛날엔 나 까던 분들은 날 지독하게 깠는데 요즘은 내 과거사나 캐고, 이상한 짓을 하잖아. 좀 요목조목 날 좀 까줬으면 좋겠어. 공격받고 싶어. 인신공격 말고.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계속 열심히 할 테니까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좋으면 사주시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추천해주시고, 별로면 어떤 비난을 하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가차없이 많은 피드백을 부탁 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인터뷰 시간 내줘서 고마워.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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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글 | Melo, Twangsta 인터뷰, 사진 | Creaty 4 추천 목록 스크랩신고 댓글 12 title: 신발 (2)Juicy J11.2 21:00 잘봤습니다~
추천 댓글 Brake11.2 22:58 말참재밌게 잘하네요ㅋㅋ 추천 댓글 title: MBDTF브루스웨인11.3 09:23 잘봫슴니다ㅋㅋ 추천 댓글 Mr.Complex11.3 20:55 저 군대있을 때 처음본 게 엊그제같은데.. 세월이 참 빠르네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나이 어린 친구지만..많이 배우고 갑니다. 앞으로도 쭉 건승하길 추천 댓글 닉네임고를때가엄청난난제11.3 21:46 헤헤 감자전 앤덥 인터뷰 잘 봤습니다~
추천 댓글 title: 아링낑낑 (2)browndogg11.4 02:46 잘봤습니다:)
추천 댓글 중지11.5 20:57 누구보다도 잘하는 친구
추천 댓글 트리스타나11.7 22:09 맥 밀러같음 ㅋㅋㅋ
추천 댓글 neil11.24 15:08 오 앤덥형 18인가 그쯤에 앨범낸거 중학교때 듣고 잘한다 생각햇엇는데 추천 댓글 라이머니10.1 09:49 잭팟193번째 한정판 소유자입니다. 앞으로 좋은음악 많이 들려주세요 ㅎㅎ 추천 댓글 Nelly10.8 19:20 앤덥푸쪄핸써ㅃ 추천 댓글 yeezysoo10.5 23:05 요즘 게시판에 한국힙합이 망한 이유 같은 글들이 돌아다니던데, 똥싸고 앉아 있는 소리야. 씬 안에 한발도 안 들여다 놔봤으면서 무슨 구조가 어쩌니 저쩌니… 진짜 놀고 앉아 있고, ......
진짜 공감!!인터뷰게시판 쭉 둘러보다 봤는데 어려도 나이에 비해 씬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생각하는 것도 성숙하고 멋있네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도 있는거같고. 현실적인면도. 오랜만에 앨범쭉돌려봐야겠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