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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엘이인터뷰 수민 (SUMIN) & 슬롬(Slom)

한국힙합위키

수민(SUMIN) & 슬롬(Slom) title: [회원구입불가]snobbi2021.09.19 18:04추천수 6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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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SUMIN)과 슬롬(Slom)은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를 대표하는 음악가다. 이들은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을 이어나가는 건 물론, 본인의 개성이 뚜렷한 작업물을 여럿 공개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그런 중에 두 음악가의 커리어에서도 손꼽을 만한 작품이 2021년 9월에 발표되었으니. 바로 수민과 슬롬의 첫 합작 앨범 [MINISERIES]다. 두 아티스트는 본인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듣고 자란 음악을 앨범 곳곳에 녹여내는 건 물론, 뚜렷한 각자의 음악적 색을 한데 섞어 하나의 단단한 결과물로 만들어냈다. 현 음악의 트렌드라 할 수 있는 절충주의와 Y2K 리바이벌, 그리고 합작 앨범으로서의 의미까지 모두 잡은 작품 [MINISERIES]. 힙합엘이는 수민과 슬롬을 만나 근황과 음악관, 그리고 [MINISERIES]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나누고 왔다. 많은 이가 궁금해했을 [MINISERIES]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이 인터뷰에 담겨 있다.






LE: 우선 먼저 힙합엘이 회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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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이하 S): 안녕하세요. 노래 부르고 프로듀싱하는 수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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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롬(이하 M): 안녕하세요. 저는 프로듀서, 디제이, 비트메이커로 활동하고 있는 슬롬이라고 합니다.






LE: 앨범 준비 때문에 한창 정신이 없으셨겠지만, 요즘 두 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S: 저는 비교적 조용하게 좀 지냈던 거 같아요. 지난해에 제가 참여했던 다른 분들의 곡 중 아직 나오지 않은 게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좀 조용히 지내면서, 협업 곡의 발매를 기다리고 있고요. 또, 다음 저의 솔로 앨범에 들어갈 음악들을 계속 만들고, 주변 사람들과 논의하고, 친한 아티스트들과 왕래하면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어요.


M: 저도 작년부터 올해까지 <쇼미더머니 9>에서 자이언티(Zion.T), 기리보이(Giriboy) 팀의 트랙 메이킹과 <릴머니>의 곡까지 쉴 틈 없이 작업을 해왔고요. 이제 스튜디오 앨범을 낼 시즌이 되어서 후반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이번 앨범이 사실상 제가 내는 첫 정규 앨범이다 보니까 어떻게 작업이 돌아가는지 보고, 배우고, 느끼고 있어요. 그러던 와중에 좋은 기회로 <쇼미더머니 10>의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LE: 말씀하신 대로 슬롬 님이 자이언티 님과 함께 <쇼미더머니 10>의 프로듀서로 참여하시게 되었잖아요. 첫 방송 출연이라서 부담스러우실 거 같은데. 어떠세요?


M: 부담스럽긴 하지만요. 여러모로 즐겨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 댓글이나 반응을 보면, 사람들이 저의 장르나 음악적 색깔에 대해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방송이 저의 음악에 얼굴을 달아주는 일종의 장치가 될 거 같아요. 제 색깔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거죠.






LE: <쇼미더머니 10>의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M: 제가 해보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요. 작년에 우연한 계기로 원슈타인을 만났지만, 저희는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고 끌고 갈 수 있는 친구가 되었거든요. 물론, 프로그램이 주는 미관 같은 건 저희가 안 좋아하는 부분도 많지만, 참여하는 사람으로서는 만나기 힘든 여러 뮤지션을 한 장소에서 만나서 함께 소통하고 작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거든요. 이런 부분을 좀 기대하고 있습니다.






LE: 수민 님은 “Fightman” 인터렉티브 싱글 발매 때 인터뷰에서 테크 요정으로서의 야심 찬 행보를 예고하셨는데요. (웃음) 준비하고 있는 다음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S: 사실 지금 “Fightman”을 함께 만들었던 버시스(VERSES)의 개발자분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는 건 첫째로, 음악의 ‘업데이트’예요. “Fightman”은 애플리케이션 기반으로 발매한 만큼 업데이트가 가능한데, 음악의 지속적인 업데이트는 좀 신선한 듯하거든요. 더불어 지금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정말 존경하고 팬이었던 선배님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제 솔로 앨범도 같이 준비 중이에요.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소식이라면, 아이폰(iPhone) 13 한국 광고에서 저의 “Shaker”가 쓰였어요.





LE: 좋은 소식이네요. 이제 수민 님의 커리어를 몇 개 짚어보려 하는데요. 그 전에 [Your Home] 인터뷰를 할 때 당시 영감을 준 아티스트로 소피(SOPHIE)를 꼽아 주셨던 게 생각나네요.


S: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였던 소피가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 아쉬웠어요. 소피는 새로운 사운드, 시장의 선구자였잖아요. 또, LGBTQ 커뮤니티에서 파생된 매력적이고 개성이 분명한 음악들, 기술적인 걸 떠나서 좀 더 감성이 어려 있는 음악들. 제가 지향하는 음악과 연결고리를 많이 만들어 준 아티스트가 소피였어요. 그런 부분에서 소피가 매우 반가운 아티스트였는데, 너무 짧게 활동을 하고 떠나버려서 아쉬웠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찰리 XCX(Charli XCX)도 앞으로 소피의 프로듀싱 없이 음악을 발매한다 생각하니 아쉽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무엇을 들려줄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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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소피가 많은 아티스트와 작업하면서 하이퍼팝(Hyperpop), 혹은 PC 뮤직(PC Music)이라 불리는 스타일을 세계에 널리 알렸죠.


S: 네. PC 뮤직, 테크노, 하이파이(Hi-fi) 한 음악을 추구하는 계보들이 있죠. 우리나라는 넷 갈라(Net Gala)가 그런 계보를 이어 나가려 하는데요. 저는 넷 갈라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PC 뮤직 자체가 너무 생소하잖아요. 그래서 넷 갈라가 얼마나 많은 걸 뒤집으면서 우리나라에 그런 음악을 전파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어요.






LE: 그렇다면 수민 님은 [Your Home] 발매 당시에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으셨고, 어떤 넥스트 스텝을 그리고 있었는지 기억나시나요?


S: 저는 항상 제가 뭘 할지를 잘 모르는 거 같아요. 또, 제가 뭘 할 줄 알았으면 그런 작품을 못 만들었을 거예요. 오히려 저는 이제 조금 더 자연스러운 걸 하고 싶어요. 그 자연스럽다는 게 충격적이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나이에 맞게끔 하고 다니겠다는 말도 아니고요. “Fightman”처럼 제가 좀 뒤틀리면 뒤틀리는 대로 트랜지션도 매우 많고, 진짜 극성맞은(?) 음악이 나올 수도 있는 거고요. 제 정서가 안정적이라고 해서 막 달콤한 음악만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닌 거처럼 말이죠.


제가 지금 딱 30대에 딱 접어들었거든요. 그러면서 저는 어렸을 때 언니 오빠들이 겪던 가족사, 친구, 연인 등 사람 관계를 제 음악의 정말 중요한 키워드로 항상 썼었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실제로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갈 때도 있고, 아니면 제가 예상한 대로 흘러서 노잼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도 있고요. 제가 30대여서만 알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확 생긴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이런 관계들과 경험을 마치 저라는 도서관에 책을 하나씩 쌓듯이 쌓아 놓고 있어요.


지금은 앨범 이슈가 있지만, 대외적으로 봤을 때 최근까지 제가 조용해 보였을 거예요. 한동안 저는 제 인생 자체에 투자하는 단계를 거쳤어요. 치열하게 음악을 하던 이전에는 제 인생이 없었거든요. 인간 박수민이랑 음악 할 때의 수민을 그냥 하나로 묶어 놓고 갔던 거 같아요. 지금은 인생과 음악을 약간 분리해 놓고 싶어요. 이런 게 너무 재미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주변 사람들한테도 인생과 음악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저는 삶에 대한 척도가 좀 바뀐 거 같아요. 물론,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상황이라서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요.






LE: 어떻게 보면, 지금 수민 님은 다음을 위해 자기 자신과 내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네요?


S: 네. 지금은 그런 거 같아요. 쉬면서 공백기에 돌입한 거죠. 옛날에 저는 그냥 사람들을 자주 만났거든요. 그래서 당시에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공감을 잘 못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해가 돼요. 또, 제가 이렇게 인간 수민한테 오랫동안 집중하고 있는 시기가 다음 앨범을 만들 때 엄청난 득이 돼서 돌아올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저를 믿고 맡기면서 생각을 오랫동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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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재미있네요. 지금 돌이켜 보면 [Your Home]은 어떤 앨범인 거 같나요?


S: [Your Home]은 제가 할 수 있는 음악들을 가지런히 정렬해 놓고 사람들에게 ‘나 이러이러한 것도 할 수 있다’면서 나를 자랑한 거에 가까운 앨범인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트랙들도 되게 들쭉날쭉하고요. 앨범에도 패기와 그때 당시만 할 수 있던 음악이 담겨 있었어요. 그리고 ‘이런 음악은 나만 할 수 있어.’ 이런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LE: 맞아요. [Your Home] 인터뷰 당시 때 느꼈던 수민 님의 패기가 아직도 생생하네요.


S: 아직도 그 인터뷰가 생각나요. 그때 되게 저돌적이었네요. 돌이켜보면 [Your Home] 때는 제가 그냥 다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크레딧은 나만 있어야 한다는 것에 엄청나게 집착했던 시기였어요. 지금은 친하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요. 앨범 안에 비앙(Viann)과 폼라드(Pomrad)는 ‘내가 진짜 좋아서 함께한 프로듀서야. 그러니 비양과 폼라드만 이 앨범에 들어올 수 있어.’ 이런 생각까지 했거든요. 당시의 저는 저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저의 가치를 엄청 높게 놓은 뒤 오히려 바깥의 시선으로 [Your Home]을 좀 봤던 거 같아요. 이 노래 너무 좋다. 이 앨범은 나 말고 아무도 못 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LE: 그렇다면 EP [OO DA DA]는 [Your Home]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거 같으세요?


S: [OO DA DA]는 [Your Home] 때의 음악을 조금 더 빠르고, 규격화된 느낌으로 만들려고 했던 거 같아요. 근데 똑같은 방식으로 앨범을 만들면 안 되니까 비주얼적으로 조금 더 팬시하고, 정교하게. 패션 필름 혹은 어디서 많이 봤을 법한 얼굴의 각도나 포즈 이런 것들을 다 하나로 합쳤어요. 그렇게 저에게 있었던 모습과 조금 더 단단한 수민의 모습을 접목해서 아이폰 10이 나왔다는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제시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때는 트랙별로 영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로 합쳤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런 영상 포맷은 (여러 트랙으로 시선이) 분산되다 보니 조회 수가 많이 나올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시스템적으로도 좀 문제가 있었는데요. 일단 이런 걸 무시하고 해보자는 게 당시 멤버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정리한 결론이었어요. 또, 새로운 걸 시도하면서 오는 리스크 자체도 우리의 이미지라고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던 앨범이었고요.






LE: LGBTQ 커뮤니티 문화를 녹여낸 [OO DA DA]의 비주얼은 인종과 성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느낌도 묻어 있었는데, 이러한 콘셉트와 이미지는 같이하는 프로덕션에서 나온 이야기였나요?


S: 사실 구체적으로는 얘기를 안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제 음악 자체에서 느껴지는 아이덴티티나 테마, 이런 것들은 항상 뚜렷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누군가에게 아무 생각이 들지 않게끔 하는 음악을 만들지 않는 주의거든요. 애초부터 EP [OO DA DA]를 함께한 GDW는 제 음악을 들려주면 너무나도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놓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프로덕션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너무 훌륭한 아이디어들을 저에게 역으로 제시해 줬고요. 계속 핑퐁을 거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그 작품이었어요. 그때 그 뮤직비디오, 비주얼라이징, 기타 등등의 것들 전부 말이죠. 그래서 [OO DA DA]는 제가 전에 [Your Home]으로 보여줬던 너무 자유분방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이미지를 마치 ‘잠깐 여기 있어 봐’ 하면서 탁 잡았던 앨범이었어요.






LE: 생각해 보면, EP [OO DA DA] 때는 수민 님이 어떤 비주얼을 보여주고 싶으신지를 확 느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S: (네. 그래서 [OO DA DA]를 발표할 당시에는) 발전 가능성보다 한국에서 차갑고 힙한 테크 요정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보여주자는 것에 머물러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때 이후로 되게 차가운 음악만 좀 했던 거 같아요. 되게 막 날이 서 있고, 프로덕션이 다 복잡하고, 더 어디에 무엇이 들어가야 할 지 모르는 그런 트랙들만 계속 만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사실 그때 제가 또 마음에 들거든요. 웬만하면 저는 제가 하는 게 다 마음에 들거든요. 그래서 그때는 오히려 음악보다는 이미지로만 얘기하는 게 좀 더 맞을 거 같아요. 그때는 프로덕션에서 메이킹해줬던 조금 범접할 수 없는 이미지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LE: 개인적으로도 그때 수민 님의 작품을 보고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던 게 기억나네요.


S: 네. 모두가 [OO DA DA]를 발표하고 나서 놀랐어요. 왜냐하면 특히 우리 주변, 많은 분이 아는 대형 기획사에서도 모든 음악과 뮤직비디오의 레퍼런스가 [OO DA DA]일 때가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그런 거 때문에 되게 기분이 좋았거든요.


그런데 (이때부터) 제가 아티스트의 아티스트. 그런 이미지 같은 게 좀 세진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저는 2년 전부터 대중들의 아티스트가 되고 싶지, 아티스트의 아티스트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대중은 아티스트만 아니라 모두가 속해 있는 개념이고. 저는 그런 면에서 저 역시 대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제 아티스트의 아티스트보다는 모두의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그런 이미지가 약간 힘들었을 때가 있었거든요. 제 성격 자체는 되게 강아지 같은 스타일인데, 이게 다른 사람들한테 너무 어필이 안되는 거 같은 거예요. 저는 이런 점에서 괴리감을 느끼면서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을 거쳤어요.






LE: 아티스트 분들 중에서는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와 진짜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좀 있죠.


S: 네. 사실 저는 제 음악은 걱정 안 해요. 제 삶에서 바로바로 나오는 게 음악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는 제가 건강하고 좋은 인생을 살면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주의인데요. 남들이 보는 이미지는 제가 어떻게 컨트롤할 수가 없는 거라서, 그런 거에 대한 고민을 좀 하는 거 같아요.


차마 범접할 수 없는 이미지를 가져가려고 하는 아티스트들이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그런 게 약간 좀 심한 거 같거든요. 음악의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기준점이 너무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잘 버무려 내서 작품으로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저 역시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어느 정도까지 그런 이미지를 가져오고, 어느 정도까지 솔직하게 다 보여줘야 할지를 말이죠.






LE: 슬롬 님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M: 보통 아티스트들이 치명적이고, 굉장히 날 서 있어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거 같은 아우라를 풍기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힘들어하잖아요. 저희도 힘들어하거든요. 이런 이미지를 활용했다, 아니면 어떤 옷처럼 입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정도는 괜찮지만요. 아무도 이런 거로는 나를 대체할 수 없다든지, 약간 범접 불가능한 이미지를 풍긴다든지, 막 경배하라는 뉘앙스로 말이죠.


이런 것들을 사실 그냥 결과물로만 보면, 그냥 재미있게 봤을 텐데요.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이나 SNS를 통해서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나 쓰는 폰트 등을 통해서 필요 이상으로 사람의 성격, 또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 너무 잘 노출이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조금 과하게 느껴진다 싶으면 오히려 그 사람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범접할 수 없는 이미지를 가진 아티스트분들을 만났을 때를 놓고 생각해 보면요. 정말 제가 아는 그 사람의 모습과 SNS에서 봤던 범접할 수 없던 모습. 그 둘의 괴리감이 너무 심한 거예요.


S: 저도 그런 분들을 실제로 만났는데, 너무 병든 삶을 살고 계신 거예요. 진짜로 약물 과다 복용을 한다든지, 너무 피폐한 삶을 살고 계시더라고요. 그런 걸 제가 보면서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저는 이제 음악을 오랫동안, 그리고 꾸준하게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삶을 대하는 저의 자세도 점점 바꿔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신체적 건강과 정신 건강을 포함해서 제 삶 속 모든 부분의 퀄리티를 높여야만 저에게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진짜 찌들어 있는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보니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슬롬이나 DJ 돕쉬(DJ Dopsh)한테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우리같이 선진적인 걸 해야 하는 사람이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 나가야 한다. 물론 저도 많이 노력해야 하지만, 그래도 같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더 좋잖아요. 이렇게 다 연결된 거 같아요.






LE: 수민 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재미있네요. 요즘 들어 스피리츄얼스(Spirituals)라 해서 영적, 인간적 여정을 떠나는 과정을 담아낸 음악과도 맞닿아 있는 거 같아요.


S: 저는 사실 제 인생을 위해서 크게 투자를 하고, 명상이나 요가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대신에 누군가와 대화를 많이 나누고, 이 사람을 제 사람에 링크시키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스타일이거든요.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많은 거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또 동굴로 들어가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우리 주변에 있는 영진이(제이클레프, Jclef) 같은 경우를 보면 자주 동굴로 들어가서 잘 안 나오고, 그냥 나오라고 해야 나오는 스타일이잖아요. 저는 좀 조용히 의사소통을 계속하고 대화하면서 바쁘게 지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저는 따분한 걸 싫어하는 성격이고, 장난치고, 누군가를 괴롭히는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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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재미있습니다. 그렇다면 슬롬 님에게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사실 슬롬 님에 대한 사전 정보가 많이 없어서 신인 인터뷰처럼 해볼까 싶어요. 일단 음악을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웃음)


M: 제가 시퀀서 프로그램인 FL 스튜디오(FL Studio)을 처음 다운받은 건 2013년이에요. 아직도 FL 스튜디오를 애용하고 있고, 이걸로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2014년부터 주변 친구한테 음악 좀 한다고 자랑을 좀 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따라 만들기 시작했어요.






LE: 슬롬 님이 재즈를 좋아하시는 거로 알고 있거든요. 부모님 덕분에 재즈를 듣게 되신 건가요?


M: 저는 여러 음악에 관심이 두루두루 있는 편인데요. 그런데 아버지가 진짜 굉장히 재즈를 좋아하세요. 아버지가 미국에 계셨을 때 CD를 많이 모으셨거든요. 그래서 지금 방에도 CD 장이 하나 있어요. 저는 아기 때부터 많은 사람도 좋아하는 스탠다드나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빌 에반스(Bill Evans)의 노래를 아버지의 차를 타면서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려 보면 차창 밖에 건물들이 지나가고 있고, 아빠는 굉장히 편안한 재즈나 스탠다드를 틀어 주시면서 엄마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어요. 누나는 저와 놀아주고 있고요. 그래서 저에게 재즈는 안정적인 유년기에 대한 사운드트랙이에요. 그리고 저에게 있어 창작 활동이란 그 시절의 되게 편안했던 향수와 감각을 다시 찾아가는 일 같아요.






LE: 정말 멋있는 답변인데요? (전원 웃음) 그렇다면 음악이 주는 힘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M: 저는 시간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듣게 되면, 제가 원하고 거닐고 싶었던 그 시대의 거리 속 사람, 친해지고 싶은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 들거든요. 결국, 제가 만드는 음악도 말이죠. 제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이 있고, 이런 아티스트들을 통해서 청각적으로 펼쳐지는 세계가 있잖아요. 물론, 그분들보다는 제가 악기 연주나 음악적인 언어가 굉장히 미흡할지 모르지만요. 이런 세계와 감각을 되찾아가면서 새로운 우연한 기회나 음악들이 생겨나는 거 같아요. 저는 이런 감각을 즐기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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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재즈 하니까 떠오른 건데요. 사실, 슬롬 님이 영국의 재즈 랩 뮤지션인 펑키 디엘(Funky DL)에게 샤라웃을 받은 적이 있잖아요. (전원 웃음) 어떻게 샤라웃을 받게 된 건가요?


M: 그거 기억하세요? (웃음) 맞아요. 저도 펑키 디엘을 되게 많이 들었어요. 심지어 그분이 샘플링하던 컷의 간격 같은 걸 되게 많이 따라 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만들었던 초창기 트랙을 보면요. 굉장히 헤비한 샘플링 기반의 곡이라서 미세하게 커팅한 샘플들을 들을 수 있거든요. 한동안 그렇게 샘플링을 하면서 느끼는 쾌감으로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한동안 선배 사람들한테 샤랴웃을 받는 재미에 하젤(Häzel)이나 엠페이지스(M-Phazes)와 같은 비트 메이커에게도 계속 귀찮게 DM을 보냈어요. 그렇게 계속 그냥 프로듀서들만 파면서, 저도 프로듀서로서의 길을 닦게 된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를 잘 안 듣는 편이고, 사운드 배치에만 되게 집중을 많이 하면서 듣는 편이에요.






LE: 또, 슬롬 님이 UCLA를 졸업하신 거로 알고 있거든요. 언제부터 LA 생활을 하신 건가요?


M: 사실 제가 LA로 간 건 딱 대학교 신입생 때였어요. 그래서 LA와 연을 맺게 된 건 2012년부터였고, 실제로 생활한 기간은 군대 이런 걸 다 제외하면 4년 정도 되는 거 같아요. LA에서 일상을 보내다 보니 확실히 여행으로 가는 것에서 오는 무언가는 없었는데요. 그래도 사는 곳에서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좋은 공연이나 가게 같은 게 좀 많이 있었거든요. 그런 곳을 많이 구경 다녔던 거 같아요.






LE: 대학 생활 때 음악 작업은 어떻게 하셨나요?


M: 학교 밖에서는 LA에서 더 뽑아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없을까 하며 돌아다녔어요. 제가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거의 노트북과 컨트롤러, 헤드폰으로만 작업을 하거든요. 그래서 가방 안에 이걸 다 쑤셔 놓고, 여기저기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면서 작업하고 그랬어요. 데스크톱으로 작업을 시작한 건 군대에 있을 때였어요.






LE: 그렇다면 슬롬 님은 따로 음악 공부를 한 적은 없으신가요?


M: 많은 분이 저한테 DM으로 여쭤보시는 질문인데요. 저는 따로 공부하지 않았어요. 대신에 저는 진짜로 필요한 코드가 있으면요. 감각적으로 코드를 치기보다, 유튜브로 검색해서 코드를 봐요. 그래서 이런 코드를 만들고 싶다, 노래 속에서 특정한 구간에 쓰인 코드를 알고 싶다 하면요. 노래를 유튜브로 검색해서 연주하는 사람들의 손가락을 스크린 캡처로 저장해 두고요. 그 사진을 보고 따라 치는 식으로 제 몸에 익히는 편이에요.


그래서 저는 함께 작업하는 연주자들이 말해주기 전까지 제가 어떤 코드를 치는지를 잘 몰라요. 하지만 (음악을 제대로 공부할) 필요는 있는 거 같아요. 지금 제 장르를 작업할 때는 좀 그렇지만요. 앞으로의 작업을 위해서라도 제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slom · things



LE: 슬롬 님이 LA에 있을 때가 로우 앤 띠어리(Low And Theory)가 막을 내리고, 소울렉션(Soulection)이나 HW&W 등이 떠오를 때인데. 당시에 LA 씬의 현장을 체감하신 적이 있나요?


M: 사실 현장은 많이 보지 못했어요. 오히려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작업하거나 알게 된 친구들은 서울의 케이크샵(Cakeshop)이나 소프(SOAP) 같은 곳에 올 때 만났어요. 그런 다음에 “나도 LA 살고, 좀 있으면 다시 LA로 가는데, 우리 그때 가서 다시 만나자.” 이렇게 약속하고 LA로 돌아가서 만난 케이스들이 많아요. LA에서 우연히 마주친 좋은 사람들도 라이브 공연이나 디제이 셋을 하기보다, 그냥 집에서 작업하는 걸 더 좋아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았어요.






LE: 그렇다면 소울렉션, HW&W 음악가들은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아시게 된 건가요?


M: 네. 제가 딱 신입생 시절 때였는데요. 당시 한창 사람들이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격적으로 음악을 많이 올렸고, 리믹스 트랙이 (메이저 회사나 저작권에 의한) 저격을 당하기 전이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많은 트랙이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삭제되었지만요. 당시에는 진짜 전설적인 플립(Flip)들이 즐비하게 올라왔고, 진짜 말도 안 되지만 멋스럽게 매시업을 하는 그런 유행도 좀 있었어요. 밴드캠프(Bandcamp) 같은 데에 작업물을 올려놓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지금도 엄청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로우파이(Lo-fi) 계열의 뮤지션들이 그때 되게 많이 등장했고요. 아티스트 캐릭터를 내세운 사람들도 많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도 했어요. 그때는 지금의 인스타그램처럼 아이디를 다 소문자로 해놓는 것도 멋이었고, 프로필 사진이랑 타임 라인을 앨범 커버로 합쳐서 만들고, 사진도 본인 색깔과 같은 결로 올리는 느낌이 멋일 때가 있었어요.


저도 블로그나 콜렉티브 같은 곳에서 교류하는 방식에 되게 빠져들었어요. 그러면서 비트 뮤직 컴필레이션을 내는 프로젝트에 참여도 열심히 했고, 다른 음악가들이 하는 리포스트도 많이 봤고요. 그러면서 소울렉션 라디오를 통해 소울렉션 친구들을 알게 되었어요. 특히 조 케이(Joe Kay)가 소울렉션 라디오에서 제 트랙들을 여러 번 틀게 되면서 해외에서 저를 아는 사람들이 차차 생겨났던 거 같아요.






LE: 당시 슬롬 님의 작법에 영향을 끼친 비트메이커로는 누가 있나요?


M: 시기마다 여러 명이 있거든요. 제가 제일 처음 선생님처럼 여기고 따라 했던 아티스트는 디비아세(Dibiase)였어요. 그분이 공원에서 청소부를 하면서 LA 비트 씬에서 활동하셨던 프로듀서인데요. SP-404 샘플러를 즐겨 쓰면서 엄청 드럽게(?) 트랙을 만드는 걸 추구했거든요.


중간에는 이블 니들(Evil Needle)이나 미스터 카맥(Mr. Carmack)이 있고요. 케이트라나다(KAYTRANADA)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어쩌다 그 사람들에게서 샤라웃을 받거나 맞팔을 받게 되면 너무 신나 했고, 저도 제 것을 들려주고 싶어 했어요. 그때는 그런 에너지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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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슬롬 님은 여러 비트메이커의 작법을 공부하신 후, 2014년에 무료 공개된 DJ 돕쉬 님의 [Dopstory EP]에 참여하셨는데요. 이때가 공식적인 첫 작업물이 맞나요?


M: 네. (웃음) 제 트랙은 아니고, 제가 친 건반과 멜로디 악기가 조금 들어간 거였거든요. 그런데 정말 재미있고 신기하게도 그때 작업을 같이했던 아티스트가 헤이즈(Heize) 님이셨어요. 그때 헤이즈 님은 엄청 랩을 열심히 하셨던 거로 기억해요.





LE: 이런 아름다운 인연이 있었군요. (웃음) 그렇다면 DJ 돕쉬 님과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당시 소개 글을 보면 슬롬 님과 함께 단톡방에 있던 거 같더라고요.


M: 제가 LA에 있는 학교에 다닐 때 돕쉬 형은 옆 학교에 다녔거든요. 또, 제가 신입생 때 돕쉬 형은 4학년이었고요. 그러면서 LA에서 음악을 좋아하면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끼리 단톡방을 팠었어요.






LE: 그렇다면 돕쉬 님을 통해서 어떤 분들과 교류를 맺게 되신 건가요?


M: 저는 군대에 가기 전까지 돕쉬 형과 가장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던 릴보이(lIlBOI) 형, 듀플렉스지(Duplex G) 강욱이 형을 알게 된 거 같아요. 그리고 군대에 간 다음부터 강욱이 형과 작업을 되게 많이 했고요. 이전부터 강욱이 형이 아티스트들과 함께 트랙 메이킹을 활발하게 하셨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아마 그때부터 어깨너머로 믹싱에 대해 배운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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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2014년에는 무료 비트테입 [Pixelated Memories]을 내기도 하셨는데요. 이건 국방부 퀘스트(?)의 압박 때문에 급하게 발표하신 프로젝트인가요?


M: 그렇죠. 트랙 제목 뒤를 보면 다 날짜로 되어 있거든요. 그걸 보면 작업 기간이 진짜 굉장히 빠른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지금 트랙들을 들어보면 뭘 하고 싶어 하는 지 대충 들리긴 하는데요. 미숙하고, 얘 진짜 못 했다고 생각하게 할 정도로 후회되는 앨범. (전원 웃음) 귀여웠던 거 같아요.






LE: 이때 슬롬이란 이름을 짓게 되신 건가요?


M: 네. 당시 학교 시험 기간 때 공부하기 싫었던 친구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이 있었는데요. 제가 예명을 지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제가 나무늘보를 닮았다고 해서 슬로스(Sloth)랑 민우랑 합쳐서 슬롬으로 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LE: 당시 슬롬 님은 듀플렉스지 님과 함께 슬롬덕(Slomdug)으로도 활동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M: 네, 맞아요. 당시 슬롬덕으로 만든 비트가 박재범 형의 [WORLDWIDE]에 실렸어요. “SEATTLE 2 SEOUL”이라는 곡이었죠. 또, 이것도 어떻게 보면 어글리덕(Ugly Duck) 형 덕분에 참여하게 된 거였거든요. 이렇게 연결고리를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저는 돕쉬 형을 통해서 FL 스튜디오를 받아서 작업을 좀 하다가. 한국에 왔을 때 돕쉬 형이 강욱이 형과 승택이(릴보이) 형에게 저를 “얘도 이런 거 하고 싶어 한다. 한 번 만나 봐.” 이렇게 소개를 해줬거든요. 그렇게 강욱이 형을 만나서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강욱이 형을 통해서 어덕이(어글리덕) 형을 만났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덕이 형이 “나는 너 그냥 알아서 찾은 거야”라고 말을 하긴 하시지만요. 또, 어덕이 형이 쌈디(사이먼 도미닉) 형이나 재범이 형 같은 사람들에게 저희 비트를 들려줬고요. 그러면서 프로듀서로서 데뷔를 군 생활 중에 하게 되었습니다.






LE: 역시 어글리덕 님이 빠지면 한국 힙합이 아니죠. (전원 웃음) 이때 보면 프랭크(FRNK) 님이나 피셔맨(Fisherman) 님과도 교류가 있으셨던 거 같더라고요.


M: 저희가 어떻게 모이게 되었냐면요. 2014년부터 사운드클라우드를 굉장히 눈여겨 보고 있던 프로듀서 친구들의 모임이 있어요. 또, 그때 한창 헤드룸 락커스(HEADROOM ROCKERS)가 화제였거든요. 사실 프랭크도 저처럼 엄청 소울렉션을 좋아하던 친구였고요. 저희는 정모하듯이 카페에서 만나서 알게 된 사이이고, 그렇게 프랭크와 피셔맨을 알게 되었죠. 마치 사운드클라우드 동호회 같은 모임이었어요.


웃겼던 게 그런 식으로 93년생 프로듀서 모임을 해본 적이 있었어요. 저와 프랭크, 밀릭(millic), 노 아이덴티티(No Identity). 이렇게 넷이 신나서 만나서 닭띠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자고 의기투합을 했는데요. 그 이후로 서로 아무도 앨범에 대해서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전원 웃음) 그래도 가끔 어디선가 친구들을 마주치면 그 이야기를 농담 삼아 꺼내곤 해요.






LE: 그렇다면 국방부 퀘스트 수행 당시에는 작업을 어떻게 하셨나요?


M: 저는 운 좋게 의경을 나왔거든요. 그래서 외출 나오면 바로 작업하고, 다시 군대로 들어가고 그랬어요. 또, 6시간 동안 근무를 하고 휴무도 따로 있었거든요. 그래서 사지방(사이버 지식 정보방)에 있는 컴퓨터 여섯 대에 모두 FL 스튜디오를 깔아 놓고요.


사지방에 자리가 날 때마다 아카이 MPK 미니(Akai MPK Mini)를 들고 들어가서 기본 킥을 찍고요. 유튜브에서 mp3를 다운받은 다음에 샘플을 잘라 놓고, 프로젝트 파일을 묶고 압축해서 제 이메일로 보냈어요.


그다음에 외출 나올 때마다 집에 있는 킷으로 바꿔 끼는 식으로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군대 안에서 mp3 플레이어를 쓸 수 있었거든요. mp3 플레이어에는 그동안 만들었던 트랙과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담아서 계속 반복해 듣고 그랬어요. 특훈 아닌 특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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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재밌네요. 사실 슬롬 님의 커리어 중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요. 슬롬 님이 스톤 스로우(Stones Throw)의 키퍼(Kiefer), HW&W의 마이크 가오(Mike Gao)와 작업한 이력이 있는데, 어떻게 작업을 하셨나요?


M: 저는 다른 분들과 주로 온라인으로 작업을 했어요. 심지어 키퍼는 작업하고 나서 처음 만났어요. 제가 학교를 휴학한 뒤 제 트랙을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기 시작할 때였는데요. 그때 키퍼가 ‘너의 음악을 들어봤는데 괜찮다’면서 연락을 해서 같이 작업을 했거든요. 그러고 나서 복학을 한 뒤 LA에서 만나 키퍼의 집을 놀러 갔는데요. 지금 생각 해보니까 엄청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를 키퍼의 집에서 만날 수 있었어요.


당시에 제가 브레인피더(Brainfeeder)에서 앨범을 낸 루이스 콜(Louis Cole)을 만난 적이 있거든요. 저는 당시에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옆에 있던 존 킥(John Keek)이라는 친구가 “야! 너 루이스 콜 몰라? 루이스 콜 개 짱이야!”라면서 루이스 콜에 대해 뒤늦게 소개해 줬거든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루이스 콜한테 “나도 비트 만든다.”라고 말을 걸었죠. (전원 웃음) 이런 우연한 상황이 되게 많았던 거 같아요.


사실 LA 쪽 뮤지션들을 보면 LA나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란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다들 어디 초등학교에 다녔거나, LA에서 음대를 다닌 식으로 자기들끼리 엄청 끈끈히 묶여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어요. 마치 한국에서도 연주자 씬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마이크 가오의 경우는요. 본인이 동양인이기도 하니까 한국에 있는 아티스트들과 되게 가까워지고 싶어 했거든요. 그래서 마이크 가오가 소프에 왔을 때 만나게 되었는데요. 제가 영어도 할 줄 알고 그러니까 다시 LA로 돌아갔을 때 만났거든요. 우리는 LA에 몇 없는 동양인 프로듀서란 나름의 유대관계가 있어서 마이크 가오의 집에도 자주 놀러 가고 그랬어요. 또, 마이크 가오가 소개해주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도 보면 딱히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아티스트들이 되게 돈독한 사이인 경우가 많잖아요. LA도 마찬가지였어요. 예를 들면 마이크 가오의 생일 파티에 앤더슨 팩(Anderson .Paak)이 놀러 온다든지, 룸메이트가 브록햄튼(BROCKHAMPTON)의 돔 맥레넌(Dom McLennon)이어서 셋이 함께 트랙 작업을 한다든지 말이죠. 이런 식으로 저한테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우연한 기회로 마주친 멋진 아티스트들과 좋은 작업을 많이 하게 되는 재미난 상황들이 많았어요.






LE: 외부에서는 미처 알지 못하는 이야기네요.


M: 아까 수민 누나가 이야기한 것과 연장선에 있는 건데요. 그런 부분에서 LA 쪽 사람들도 자기 인생을 살고 있고, 본인들의 생활이 있고, 주어진 환경에 맞춰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구나. 이런 걸 많이 느꼈어요. 그때 기억나는 게 미스터 카맥과 세션을 하러 갔는데요. 미스터 카맥이 지금 런닝을 하고 있어서 30분만 있다가 만나면 안 되냐는 식으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저는 약속을 잠깐 미루고 갔거든요. 또, 가보면 미스터 카맥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늘은 뭘 했고, 이제 우리 뭐 먹으러 가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나요. 그런 식으로 뮤지션들끼리 사적인 교류가 매우 많았고, 저도 그 안에서 굉장히 풍족한 느낌을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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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재미있습니다.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요. 2017년부터 슬롬 님이 자이언티 님과 협업을 해오고 있는데요. 자이언티 님도 돕쉬 님을 통해서 아시게 된 사이인가요?


M: 네. 저는 2016년에 전역하자마자 돕쉬 형의 소개를 통해 자이언티 형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 돕쉬 형은 자이언티 형의 A&R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요. 자이언티 형이 같이 작업을 할 만한 신인 프로듀서를 찾고 있었는데, 돕쉬 형이 저를 추천했어요. 그리고 자이언티 형이 제 사운드클라우드를 듣고 괜찮다고 만나보자 해서 성사된 만남이었죠.


그때 저도 엄마한테 “엄마! 자이언티가 날 찾아!” (전원 웃음) 이런 식으로 말을 할 정도로 자이언티 형의 엄청난 팬이었거든요. 만나서 너무 신나게 작업을 했고요. 그때부터 이전과는 다른 맥락으로 많이 배웠던 거 같아요.






LE: 다른 맥락으로 많이 배우셨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걸 배우신 건가요? 가령 블랙 레이블(THE BLACK LABEL)에서 작업하시면서 송 캠프 방식에 대한 이해도를 늘리셨을 수도 있고요.


M: 송 캠프는 아닌 거 같아요. 자이언티 형은 그때그때 손에 닿을 수 있는 것 중에서 소재를 얻고요. 또, 모티브를 얻은 다음에 살을 붙일 때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쓰는 편이거든요. 이렇게 말하면 좀 설명이 어려울 거 같은데…


S: 해솔이 오빠(자이언티) 같은 경우는 그때마다 무작위로 사람들을 모아서 임의로 작업하는 편인 거 같아요.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랑도 작업을 잘하고요. 물론, 꾸준히 해솔이 오빠와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지만, 또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기존 작업자와 새로운 작업자가 반반이죠.


M: 자이언티 형 작업 방식이 왔다 갔다 하는데요. 당시에는 제가 새로운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그때 첫 아이디어를 내고 만들었던 트랙이 “Complex”와 “눈”이었어요.






LE: 자이언티 님의 기존 파트너를 꼽아보면 피제이(Peejay) 님이 계실 텐데요. 헤드룸 락커스 이야기도 하신 만큼, 피제이 님과의 작업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을 거 같은데. 어떠셨나요?


M: 제가 해외에서 좋아하는 프로듀서가 있듯이, 한국에서 어떤 프로듀서가 좋냐고 얘기를 하면 항상 피제이 형을 꼽았거든요. 그런 만큼 ‘성덕’이 된 느낌으로 함께 작업했어요. 피제이 형과의 작업에서 테크니컬 한 부분으로 배운 점을 꼽자면, 좀 비워내는 방법을 배운 거 같아요.


또, 피제이형과의 작업은 제가 이전까지 하던 작법이랑 매우 달랐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하나의 내러티브가 완성되어 있고, 하나의 제품처럼 잘 정돈된 음악을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심사과정에 대해 많이 보고 배웠던 거 같아요.


또, 피제이 형을 통해서 알게 된 노래들이 많은데요. 제가 피제이 형에게 만드는 노래들을 들려 드리면요. 피제이 형이 “어, 이거 어떤 곡 생각난다”라고 하면서 노래를 들려주셨는데요. 그렇게 들려주시는 곡이 다 제 취향에 맞더라고요. 덕분에 장르적으로 새로 파게 된 음악들이 많아요. 저는 스틸리 댄(Steely Dan)도 피제이 형을 통해서 처음 알았거든요.


제가 재즈나 1960년대에서 1970년대의 편곡들을 열심히 찾아 들었지만요. 1980년대에서 1990년대의 록, 훵크 쪽 음악이나 팝적인 요소가 들어간 음악들은 거의 배제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피제이 형과 수민을 통해서 알게 된 아티스트들이 매우 많습니다. 제 장르에 대해서 새로운 길을 터 준 사람이 대표적으로 피제이 형과 수민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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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렇게 슬롬 님의 커리어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제 수민과 슬롬의 앨범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요. 이전에 두 분이 어떻게 음악적으로 교류를 맺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S: 저희는 원래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존재를 알고 있던 사이였어요. 사실 이전까지 슬롬은 너무 조용한 이미지여서 제 눈에 별로 띄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좀 자극적인 캐릭터를 좋아해서, 주변에 반짝거리고 유별난 분들이 많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서로 자주 왕래는 안 하고 지냈어요.


그러다 2018년 즈음에 제가 LA에 갈 일이 있었는데요. 그때 슬롬이 자기가 LA에서 유명하다고 그래서요. (전원 웃음) 마침 저도 LA에 간다고 연락을 했고, LA에서 같이 보면서 조금 친해졌던 거 같아요. 물론, LA에서 만났을 때도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고 그랬지만요.


이전부터 슬롬이 저에게 마이크 가오(Mike Gao)나 자엘(JAEL), 그리고 스타로(starRo) 같은 음악을 알려줬는데요. 저도 이런 아티스트들이 있구나, 같이 작업하면 진짜 재밌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LA를 두 번 갔었는데, 두 번째 갔을 때 슬롬이 마이크 가오와의 만남을 주선해줬어요. 그래서 같이 집에 가서 잼하고, 놀고, 작업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친해졌어요. 음악 때문에 친해지게 된 셈이죠.


M: 저희가 본격적으로 친해졌던 건 수민이 LA에 놀러 왔을 때였어요. 그때 LA의 생활을 짚어보면 의외로 느껴지겠지만, 약간 부산 사는 사람 같았거든요. 친구들이 자주 놀러 왔고, 그때마다 여기 뭐 좋다고 친구들한테 소개해주고 그랬어요.


S: 마치 슬롬이 관광지 소개해 주는 가이드처럼 여기도 가봐야 하고, 저기도 가봐야 하고, 이 사람 만나봐야 한다. 이런 식으로 소개를 많이 해줬어요. 그러다 집을 한번 놀러 가자고 그래서, 집에서 여러 친구랑 만나서 술도 마시고 놀고 그랬어요.






LE: LA 여행 이후 두 분은 또 어떻게 교류를 하셨나요?


S: 제가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는데요. 제가 한국에 있고, 슬롬이 LA에 있을 때였어요. 한국 시각으로 완전 새벽인 시간이었어요. 저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 바이닐(Seoul Vinyl)에서 놀고 있었는데요. 그때 슬롬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그러면서 전화로 너무 힘들다면서 한 두 시간 정도 계속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당시 슬롬이는 막 밤낮으로 술을 마실 때였거든요. 사실 순수 아티스트, 작가주의를 가지고 작업을 해 왔던 프로듀서가 셀링 포인트에 도달하는 그런 과정이 정말 쉽지 않거든요. 근데 당시 슬롬이는 그런 면에서 과도기를 뭔가 겪고 있었었던 거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요.


M: 그런 것도 있었는데요. 기본적으로 지쳐 있었어요. 당시의 저는 프로듀서로서의 커리어를 쫓을지 말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일단 학업에 집중해야 했어요. 그렇게 LA에 있는 학기 동안 학교에서 한국인 학생으로 있을 때였고, 당시에는 저와 비슷한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을 찾을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또, 학교 안에서는 제가 뭘 만들고, 요즘 이거 뭐 나왔다. 이런 식으로 음악 취향을 함께 공유할 친구들이 없었거든요. 학교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다 이거 좋다고 노래를 틀다 보면 꼭 EDM으로 넘어가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LE: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아요. 슬롬 님이 혼자 된 기분을 많이 느끼셨을 거 같아요.


S: 그때 슬롬이 너무 외롭고, 힘들다고 엄청나게 취하고 고된 목소리로 저한테 전화를 건 거예요. 그런데 저는 너무 맨정신이었거든요. (웃음) 그때는 저희가 담배를 피울 때였는데요. 제가 한 시간 반 정도 같이 줄담배를 피우면서 “너 진짜 힘들겠다”, 이러면서 슬롬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그랬어요. 이후에 매일은 아니고 가끔 슬롬과 통화를 했는데요. 그때마다 기본적으로 한 두 시간씩 통화하고, 서로의 동향을 파악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한 유대가 깊어졌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슬롬이 한국에 들어왔는데, 그때도 그냥 서로 동향만 묻고 지냈는데요. 이제 슬롬이 돕쉬와 함께 작업할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그때쯤 슬롬이 이거 누나랑 한번 작업을 해보고 싶다면서 저에게 던졌던 게 “신기루”라는 트랙이었어요. 그래서 트랙을 들어보니까요. 제가 쉬운 언어로 바로 작업해 나올 수 있는 트랙인 게 딱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LE: 어떤 점에서 그런 걸 느끼신 건가요?


S: 저도 곡을 쓰고, 그런 프로듀서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요. 저에게 곡을 주는 프로듀서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사실 저는 제 마음에 쏙 드는 트랙이 많이 없어요. 이거는 제가 잘한다, 못한다는 개념이 아니에요. 생각보다 저라는 사람이 여기 가져다 놔도 잘 어울리고, 저기에 가져다 놔도 잘 어울리거든요. 그런데 보내주시는 트랙을 들어보면 저한테 한 가지 모습만 강요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트랙에서 재미있게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보내주시는 트랙이 너무 제 귀에 재미없게 느껴지는 트랙밖에 없는 거예요. 매번 들었던 음악 같고, 매번 사용했던 소스 같고, 매번 들었던 믹스 스타일인 거 같았어요. 반면에 슬롬 같은 경우에는 차분하고 침착함, 그리고 강인함 같은 본인의 성격이 음악에서도 되게 느껴졌거든요. 음악 사운드로 따지면 묵직하고 단단한 맛이 있는데, 그런 맛이 슬롬의 성격에서도 되게 잘 드러나요.


저 같은 경우는 목소리가 되게 날카롭기도 하고, 제가 만드는 소리도 따뜻하기보다는 좀 날카로운 소리가 좀 많거든요. 반면에 슬롬은 서브 우퍼에서나 들을 법한 묵직하고 너무 낮아서 들릴 듯 말 듯한 그런 대역까지 신경을 쓴 티가 나거든요. 이렇게 슬롬의 비트가 차분히 자리를 잡고 있고, 여기에 제 편곡이든, 목소리를 넣으면 서로의 밸런스가 잘 맞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을 하게 되었죠. 여전히 지금도 똑같은 생각이지만, 첫 트랙부터 너무나도 둘의 합이 잘 맞았죠. 원래 “신기루”는 슬롬의 싱글 혹은 솔로 정규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던 트랙이에요.


M: 제 앨범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이 난 건데요. 제가 수민 누나와 통화를 하면서 힘들어했던 것도 이 이야기와 연관이 있어요. 저는 외주 프로듀서 이상으로 제 이름을 내세워서 작업해보고 싶었고, 제가 직접 주도해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홉 트랙 정도 규모의 앨범을 생각해서 미리 비트를 다 만들고, 필요한 가수분들을 만나서 피처링을 받았는데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좀 더 나은 프로모션을 위해서 참여 아티스트 분들의 앨범 곡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이 중에는 후디(Hoody) 누나의 “Golden”도 있었고, 쌈디 형의 “귀가본능”이 있었어요. 그때도 앨범의 1번 트랙이 “신기루” 였고요. 또, 주인을 못 찾은 트랙들이 제 EP [Alone]에 섞여 수록되었죠.


물론, 이게 누구의 탓도 아니고요. 지금은 그런 과정들이 모두 만족스러운데요. 그때 이제 LA의 생활 속에서 오는 외로움과 제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저의 고민을 수민 누나가 되게 잘 들어줬어요. 그래서 이제 “신기루”는 이미 작업을 했으니까요. 이제 저도 묵힌 걸 덜어내자는 느낌으로 앨범 혹은 싱글로 내기 위해 앨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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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텀블벅(Tumblbug) 소개 글을 보면요. 2017년 즈음에 “신기루”를 작업하고, 이후에 “여기저기”를 함께 작업하신 거 같은데요. 작업 순서가 어떻게 된 건가요?


M: 2018년 즈음인데요. “신기루”는 이미 어느 정도 만들어져서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하고 골자가 짜여 있던 상태였어요. 그러다가 수민 누나와 통화를 하면서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내가 요즘 만든 거 들어 볼래?” 하면서 “여기저기”가 된 하우스 트랙을 들려줬거든요. 그런데 수민 누나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걸 들을 때 쓰는 화법이 있는데, 그때 누나가 “제발 나 줘라, 이거 다른 사람 주지 마라, 내 꺼 찜”.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전원 웃음)


그래서 좋다고, 잘 어울릴 거 같다고 하면서 수민 누나가 작업하는 걸 가만히 기다렸거든요. 그런데 한국 시각으로 밤일 때 ‘이거 미쳤다, 이거 죽인다, X된다, 이거 왜 이렇게 좋냐?’ 하면서 수민 누나한테 카톡이 연달아 오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저기”가 된 파일을 보내줘서 들어봤는데 진짜 정말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저기”는 “신기루” 이상으로 우리의 작업 타율이 되게 괜찮다고 생각한 작업이었던 거 같아요.


그때부터 제가 본격적으로 그럼 ‘이건 어떠신가요?’ 하면서 하나 꺼내서 보내 주고, 또 ‘그러면 이것도 어떠신가요?’ 하면서 또 들려주고요. 이렇게 그동안 계속 앨범을 만들기 위해 쌓아 놨던 트랙들을 하나둘씩 누나한테 들려줬는데요. 그걸 되게 덥석덥석 잘 받아서 작업하더라고요.






LE: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두 분이 작업하시게 된 셈이군요.


S: 네. 처음 작업할 때만 하더라도 슬롬이 트랙을 하나 보내고, 또 누나 이것도, 저것도 잘 어울릴 거 같다면서 트랙을 한두 개씩 보내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제가 워낙 작업을 많이 하고, 작업 타율이 너무 높으니까. 어느 순간 슬롬이 오륙십 개가 넘는 트랙을 한 번에 보내는 거예요. 그때 슬롬이 “돕쉬와 수민만이 내 모든 트랙을 가지고 있다.”고 한 게 생각나요. (전원 웃음)


그런데 저는 비트가 다 좋아서 보낸 트랙들을 엄청 여유롭게 골라서 작업을 했어요. 그때 작업한 곡 중에서 이번 [MINISERIES]에 수록된 노래도 있고, 작업 중간에 새롭게 트랙을 만들어서 앨범에 수록한 노래도 있어요. 그렇게 진짜 건강하게 앨범 작업을 했어요.


M: 수민이 선택한 곡도 있었지만요. 제가 이런 걸 할 수 있는데 미처 선택되지 않은 곡들이 몇 개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장르로도 한번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제안을 해서 따로 제작한 곡들이 몇 개 있어요.


S: 저는 보내는 족족 재미있게 작업을 해서 슬롬에게 탁탁 보냈어요. 저희가 명확하게 역할 분담이 딱 되었거든요. 저는 보컬 관련된 부분을 다 맡아서 한 다음에 믹스를 해서 그냥 보내면, 슬롬은 트랙 관련된 것만 정리해서 곡을 만들어 놓고요. 너무 깔끔하게 일 처리가 되더라고요. 작업하면서 서로가 이 정도까지 했다고 보내 놓으면, 단 한 번도 서로에게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어요.


M: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아?” 이런 감도의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S: 그냥 여기서 이렇게 하면 X되겠다. 이 정도? 약간 감탄사 섞인 리액션 정도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업했어요.






LE: 서로 간에 의견 충돌이 있던 건 아니었군요.


S: 의견 충돌은 없었고요. 장단점이라고 하면, 서로에게 비어 있는 음역들을 채워준 거 같아요.


M: 저는 거의 저역대 이런 부분만 담당했고요. 수민이 중/고음, 고음을 담당한 거죠.


S: 저는 앨범의 중/고음과 컴프레스, 빡빡함, 지랄같음(?)을 담당한 거 같아요. 그리고 각자가 각자의 리듬 사이사이를 채워줬다고 보면 적절할 거 같아요.






LE: 그렇다면, “여기저기”나 이후의 작업물을 들었을 때. 수민 님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나요?


S: 저는 전 트랙을 들었을 때 슬롬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모든 트랙을 들을 때마다 제가 여기에 뭘 해도 너무 재미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여태까지 저는 저에게 그런 자신감을 주는 프로듀서를 못 만났었거든요. 또, 가끔 듣다 보면 슬롬의 트랙이 저한테 마치 물 흘러가듯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거든요.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건 제가 못 하는 부분이거든요.


저는 그동안 자극적인 부분들만 고려해서 음악을 만들던 타입이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사람의 트랙 위에 보컬리스트나 래퍼들이 작업하고 싶어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제가 맞더라고요. 저는 트랙을 들은 다음에 ‘정말 이 트랙에다 작업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기 힘든 편인데요. 슬롬이랑 작업하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슬롬과 작업을 할 때마다 베이비페이스(Babyface) 시절. 플레이어들이 갑이 아니고, 프로듀서들이 갑이었던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러니까 가수들이 프로듀서들을 찾아가서 저한테 곡 좀 달라고 했던 시절 말이죠. 슬롬과 작업할 때 그런 시절이 좀 다시 돌아온 거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왜냐하면은 그만큼 슬롬의 비트를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으니, 마음대로 작업할 수 있는 권한을 저한테 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저는 제가 직접 트랙을 만들다 보니 그런 거일 수도 있고, 제 커리어와 삶이 제일 중요하니까 생각하는 완전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긴 한데요. 제 기준으로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드는 프로듀서들은 국내에서 정말 거의 없어요. 너무 훌륭한 프로듀서분들이 많지만, 저한테는 ‘그분이 만든 트랙 위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끔 만드는 프로듀서가 없어요. 그런데 슬롬 같은 경우는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프로듀서이면서도 편한 친구인 게 너무 흔치 않은 거죠.






LE: 슬롬 님의 경우는요?


M: 수민 누나 같은 경우에는요. 일단 본인이 트랙을 직접 쓰니까 어떻게 하면 본인 목소리를 트랙 적재적소에 넣을 줄 아는 거 같아요. 그래서 노래나 멜로디를 미리 잘 짜서 저에게 보내주곤 했어요. 저는 간단한 비트를 보내줬다고 생각했는데, 수민 누나는 잘 만들어진 노래, 완곡을 제 비트 위에 써서 보내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미 잘 만들어진 노래를 뭐 이 정도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후반 작업을 했어요. 정말 ‘후반 작업’이란 단어처럼 말이죠.


보통 후반 작업을 할 때는 장시간의 수정 때문에 진짜 고되고,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수민 누나가 노래를 보내 줘서 들어보면 ‘어? 노래가 끝나 있네?’라고 느꼈거든요. 그러면 이제 뭘 넣으면 노래가 더 좋겠다, 이게 있으면 진짜 기분 좋게 들을 수 있겠다. 이런 식으로 툭툭 작업을 했고, 작업하면서 되게 마음이 편안했어요.


S: 그리고 저는 이것도 있었어요. 좀 오랫동안 슬롬이 해솔 오빠랑 작업하는 과정을 거쳤잖아요. 해솔 오빠는 엄청 정교하고, 진짜 좋은 의미로 오타쿠 같은 부분이 좀 많거든요. 반면에 저는 살짝 긍정적인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이 소리 괜찮아? 이거 어떤 거 같아?” 물어보면요. 저는 진짜 다 좋다고 하거든요. 이런 식으로 저는 유난히 좋은 걸 꼽으라고 하면 꼽을 수 있지만, 안 좋은 걸 꼽으라고 하면은 좀 힘들어해요. 왜냐하면 전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소리가 다 너무 멋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튼 슬롬이는 그쪽 세계에서 왔고, 저는 좀 정반대에 있다가 보니까요. 처음에는 슬롬이랑 작업하면 ‘좀 내가 휘말리는 거 아냐? 원래 내 프로세스가 있는데, 후반 작업하다가 휘말리면 어떡하지? X됐는데?’ 이런 생각을 했는데요. 정말 고맙게도 슬롬이가 ‘이거 나 완전 좋은데?’ 하면 다 따라와 주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슬롬이도 좋아서 그런 말을 하겠지만, 뭔가 저랑 작업할 때만 유난히 그랬던 건 아닌지를 묻고 싶네요. (전원 웃음)


M: 저는 작업의 주도권이 저한테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른 사람의 앨범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제 앨범을 만드는 거로 생각하니까요. 좀 더 제가 자신감 있게 선택을 했던 거 같아요. 외주 작업을 하다 보면, 제 게 아니고 그 사람의 노래라는 감각이 좀 더 지배적으로 머릿속에 들거든요.


그러다 보면 대중적인 취향, 혹은 작업하는 아티스트가 내세우고 싶은 색깔 같은 걸 굉장히 많이 고려하게 되고요. 노래도 조금 달라지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번 앨범에 대해서는 충분히 제가 좀 자랑하고 싶은 부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수민 누나가 이런 게 좋은 거 같다, 저런 게 좋은 거 같다고 해주니 저도 마음이 열려서 신나게 작업을 한 거 같아요.


S: 제가 주접을 엄청나게 떠는 스타일이거든요. 심지어 너무 좋다고 춤도 췄어요. (웃음) 아시겠지만, 저는 제가 만드는 걸 항상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하도 좋다고 주접을 떨면서 옆에 있으니까요. 슬롬이가 좋은 의미로 살짝 좀 저에게 물든 부분도 있는 거 같아요.






LE: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이언티 님의 작업 프로세스가 궁금해지네요.


M: 해솔이 형과의 작업은 트랙에서 계속 뭘 더 할 수 있는지를 찾고, 찾으면 또 어떤 다른 걸 할 수 있는지를 찾거든요. 그런데 이번 앨범은 들어 보시면 아시겠지만요. 저도 그냥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직관적으로 생각나는 것들만 탁탁 배치해 놓은 그런 느낌이 좀 있어요. 그만큼 힘 빼고 작업한 앨범이에요.






LE: 그래도 앨범 속에서 여러 디테일이 묻어 나오던데, 이런 건 자이언티 님과의 작업 프로세스를 거치다 보니 얻어진 결과물인 건가요?


M: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쨌든 수민 누나 같은 경우에는 사실 저한테 진짜 아티스트나 프로듀서로서 선배의 개념도 있고, 저보다 오랫동안 여러 사람과 폭넓은 포지션에서 활동해 왔거든요. 그래서 수민 누나가 얘기하는 것들이 굉장히 상세하고, 저도 제가 경험하지 않아도 들으면 이해가 되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이런 거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이야기를 하면요. 저는 ‘그게 뭐야?’ 이런 느낌이거든요. 그런데 누나가 쓰는 언어는 ‘그냥 그거, 약간 그거’ 이런 식이거든요. 그런데 희한하게 저도 바로 수민 누나의 피드백을 반영해서 곡을 만들 수 있는 상태가 되었어요. 그래서 좋았어요. 저도 제가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 반응이 딱히 없었고요.






LE: 소위 말하는 주파수가 맞았던 셈이네요. 이렇게 작업을 하려면 두 분이 성격적으로 되게 잘 맞아야 하지 않나요?


S: 맞아요. 제가 ENTP거든요. 슬롬은 INFJ고요. 제가 슬롬이를 엄청나게 괴롭히고 놀리는 스타일이에요. 반면에 슬롬은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은근히 다 즐기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슬롬이 우둔하게 엄청 잘 받아주는 맛에 잘 놀려요. (전원 웃음)






LE: 두 분의 케미가 정말 잘 맞는군요. 최근에 두 분이 함께한 일본 뮤지션 시럽(SIRUP)의 “Keep In Touch”는 어떻게 성사된 작업인 건가요?


M: 작업의 발단은 욘욘(YonYon) 누나 덕분이었어요. 그때 욘욘 누나가 중간 A&R 역할을 맡아서 저에게 시럽의 “Ready For You” 리믹스를 제안했거든요. 이후 제가 작업한 결과물에서 굉장히 만족감을 얻었고요. 그러면서 욘욘 누나와 함께 정규 앨범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제가 요즘 수민 누나와 앨범을 만들고 있다는 걸 욘욘 누나에게 이야기하니, 마침 시럽이 수민과 작업을 또 하고 싶어 한다고 욘욘 누나가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당시 이미 앨범 트랙들은 이미 다 나와 있던 상태였고, 저희가 작업하는 게 굉장히 생각보다 빠르고, 저희끼리 일종의 프로덕션처럼 움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상태였어요. 그러면서 수민 누나와 제가 만나서 임의적으로 꾸며보는 트랙들이 었었고, 이 중에서 청하(CHUNGHA) 님의 “짜증 나게 만들어”가 있었어요. 여기에 시럽 씨와 함께할 기회가 생겼던 거죠. 그렇게 시럽 씨와 같이할 곡을 찾다 수민 누나와 만들었던 트랙을 들려줬는데요. 그 곡이 선택이 바로 되었고, 물 흐르듯이 작업이 이뤄졌죠.


S: 맞아요. 트랙이 그간 시럽 씨가 하던 음악 스타일과는 달랐는데, 마침 적기여서 작업이 이뤄진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 시럽과 함께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공연을 같이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서로가 각 나라에 왔다 갔다 하면서 공연을 했는데요. 그 안에는 욘욘이 있었어요. 제가 욘욘의 한국 활동을 뒤에서 많이 서포트 했고, 반대로 저의 일본 활동을 욘욘이 많이 서포트 했었어요. 그러면서 시럽을 조금 알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시럽이 지금처럼 알려지기 전이라서 소규모 클럽에서 공연을 많이 했거든요. 그때부터 욘욘이 시럽이랑 꼭 같이 작업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저도 시럽이 다른 일본 아티스트들보다 라이브를 너무 잘해 가지고 한국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럴 때 욘욘이 그런 기회를 만들어서 저희에게 정식적으로 시럽과 협업 제안을 했고, 슬롬도 시럽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끝난 직후라서 작업이 이뤄졌어요.






LE: 국제적으로 협업하면 일 처리 부분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고 그러진 않나요?


S: 사실 국제 협업은 실무 면이나 혹은 어느 쪽에서 좀 탈이 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단 한 번도 문제가 생겼던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저희가 뭘 늦게 보냈던 적은 있지만요. 너무 컴팩트 했고 진짜 괜찮았던 프로젝트 중 하나예요. 그런데 “Keep In Touch”가 일본에서 생각보다 인기가 좋았어요.


그래서 조금 나중에 나오긴 했지만, 뮤직비디오도 찍게 되었고요. 시럽이나 청하 씨 노래를 작업할 때도, 저희 앨범 작업할 때처럼 정말 작은 이슈 하나 없이 똑같은 기분으로 작업을 했어요. 이렇게 내부적으로 꽤 좋은 성과가 있어서 저희의 프로덕션을 어떻게 앞으로 잘 풀어보면 좋을지에 대한 얘기를 저희끼리 심심치 않게 나눠요.


M: 제가 트랙을 만들고, 수민 누나가 탑 라인을 쓴 다음에요. 둘이 생각하는 컨셉을 합치고, 노래의 후반을 작업할 때도 이견이 없어요. 그렇게 둘이 이거는 내가 하는 거, 저건 네가 하는 거란 식으로 작업을 해요. 제가 다른 걸 작업할 동안 누나가 뭘 하는 지 슬쩍 봤거든요. 그러면 누나가 저런 걸 하고 있으면 그냥 진짜 좋다 이래요. “왜 그렇게 해?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저희도 신기해요.






LE: 두 분의 다툼을 싣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전원 웃음) 사실 외부에서 봤을 때, 두 분이 뭔가를 준비한다는 걸 알아챈 건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라온 “노래방”과 “불만사항” 덕분이었어요.


S: 네. 두 노래는 정말 즉흥적으로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어요. 두 노래 모두 저희가 앨범 작업 때문에 모여서 이걸 만들지, 저걸 만들지, 아니면 원래 그전에 작업했던 것 중에서 뭘 더 디벨롭할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제작 초반 단계에서 작업했던 곡이에요.


정확히 “노래방”을 언제 작업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어쨌든 당시에는 우리 앨범이 나오려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노래방”을 앨범의 개요로 생각하고 올리자. 이렇게 슬롬에게 이야기를 했고, 노래를 만든 즉시 바로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어요.


M: 사실 저희 둘 다 작년에 이번 앨범을 낼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앨범을 내기 전 빌드업으로 몇 달에 한 번씩 사운드클라우드에 노래를 공개하고, 바로 정규 앨범을 내는 계획을 세웠는데요. 수민 누나도 개인 일정이 있고, 저도 <쇼미더머니 9>에 참여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더 좋은 시기를 위해 앨범 발매를 조금씩 미루게 되었어요.


S: 결과적으로는 저희가 훨씬 좋은 시기에 앨범 발매를 하는 거 같아요.




SLOM & SUMIN · 노래방 NORÉBANG



LE: 개인적으로 두 노래를 듣고 정말 큰 게 온다 싶었거든요. (전원 웃음) 특히 “노래방”은 노래 속 술 따르는 소리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처럼 에코가 들어가는 게 재밌더라고요.


M: 저희가 작업을 하면서 공통으로 거친 재밌는 과정 중 하나가요. 수민 누나가 재미있는 가사 컨셉을 제시하고, 가사에 어떤 부분이 재미있는지를 설명해 줬거든요. “노래방”을 만들 때도 그랬어요. 이 노래는 노래방이다, 이거 코노(코인 노래방)다, 술 마시고 노는 거다. 막 이런 걸 저에게 얘기를 해줬거든요. 그래서 저는 노래 안에 술잔 부딪히는 소리, 술 따르는 소리 등등을 집어넣어서 이야기를 소리로 그려냈어요. 또, 의외로 제 주위 분 중에서 제 캐릭터로 꼽는 것 중 하나가 가사에 맞는 폴리 사운드(Foley Sound, 효과음)를 집어넣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노래를 만들 때 가사에 맞는 소리를 찾아 집어넣는 재미도 좀 있었죠.






LE: 가사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요. 개인적으로 수민 님은 진짜 본인만 쓸 수 있는 매콤한 느낌의 가사를 잘 쓴다고 느끼거든요. 수민 님은 가사를 쓸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S: 너무 좋은 질문인데요. 일단 저는 실제로 제가 하는 말, 자주 쓰는 말들을 최대한 가사로 가져 가려 해요. 저는 아티스트는 정말 교태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말해서 너무 멀지는 않지만, 약간 멀리는 있고. 그렇게 잡힐 듯, 안 잡힐 듯한 거리에 아티스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지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예요. 저는 일상생활에서 되게 지X맞을 때도 있고, 발칙할 때도 있거든요. 저는 그런 제 모습이 저의 가사에서 최대한 많이 드러나게 하자는 주의예요.


그런데 어쨌든 제가 봤을 때 음악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정해진 시간 안에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시간 예술인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음악 안에 제 말을 녹진하게 다 녹여 내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불필요한 것들을 다 빼고 농밀한 단어나 어떤 뉘앙스만 노래 속에서 가져가려고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전체적으로 되게 진하고 매콤한 가사들이 주로 나오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저는 뭐 이래서, 이렇게 했는데, 때마침 얘가 나타나서 이러지를 못했어. 이런 가사를 쓰는 게 아니고요. ‘내가 지금 밥 먹는데 X나 맛있다, X나 맛있으니 내일 나 또 이렇게 할 거야.’ 이런 식으로 되게 단순한 가사를 써요. 그래서 저의 가사는 듣는 사람들이 굉장히 상상하기도 좋고, 자기 입장에서도 생각하기 되게 편한 대상인 거 같아요. 이렇게 저는 감정 표현을 좀 더 솔직하게 할 수 있게끔 제안하는 역할의 가사들을 좀 많이 쓰는 편이에요.






LE: 그런데 재미있는 게 하나 있다면요. 이전까지 수민 님의 가사를 비유하자면 스코빌 지수가 엄청 높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곤란한 노래” 같은 걸 들어보면 스코빌 지수가 좀 낮아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혹시 이번 앨범을 만들 때 따로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S: 사실 특별히 신경을 쓰지는 않았는데요. 생각해보니까 저는 “곤란한 노래”의 가사를 쓸 때 어떤 특이점을 찾기보다 좀 예뻐 보이고 싶고, 뭔가 잘해보고 싶은 마음 뒤에 숨겨져 있는 찌질함. 이런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 가사 표현에 다채로움이 조금 더 생긴 거 같아요. 덜 자극적이라기보다도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거죠.


예를 들면 ‘내가 지금 너한테 이렇게 하는 이유는 말이야. 사실 이렇기 때문이야.’ 이런 식으로 가사를 썼거든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가사가 좀 덜 매운 맛처럼 보일 수 있지만, 친절하게 왜 그런 지에 대한 이유가 같이 나와주는 거죠. 왜 그러냐면 찌질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렇게 찌질함을 같이 보여준 거죠. “곤란한 노래”의 가사를 보면요. 밤새도록 표정도 연습하고, 춤도 연습하고, 어떻게 클럽에 있어야 할지도 연습한 다음에 클럽을 우연히 놀러 간 척하고, 하나도 연습하지 않은 척 보여주는데. 알고 보면 이 모든 게 계획적이었다. 이런 귀엽고 발칙하지만, 뒤에서 막 엄청 막 긴장한 제 마음과 찌질한 모습을 그냥 다 보여준 곡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가사 측면에서 그냥 저를 계속 발칙하게 보여주는 것만 신경 쓰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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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좋습니다. 이제 [MINISERIES]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볼까요? ‘미니시리즈’란 앨범의 타이틀은 어떻게 정하신 건가요?


M: 저희가 앨범 타이틀을 엄청 많이 고민했어요. 그냥 ‘수민 슬롬’으로 할까 했는데요. 사실 이번 앨범이 안에서 어떤 서사 구조가 생기기는 조금 어려운 작업 순서를 거쳤거든요. 수민 누나에게 트랙을 보낸 뒤 누나가 작업한 노래를 받으면, 앞뒤에 또 다른 트랙이 있으면 좋겠다 싶으면 다시 트랙을 덧붙이는 작업 순서로 진행되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번 앨범이 정규 앨범이라는 포맷으로 나오기는 하지만요. 하나의 흐름이나 스토리 라인을 짜서 앨범을 만들려고 해보니까 장르가 부딪혀서 뭔가 듣기 껄끄러운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앨범 속 연결고리를 포기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이번 앨범의 공통된 주제는 사랑이고, 사랑은 시간순서와 상관없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다. 그러면 마치 영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같이 옴니버스 형식의 사랑 이야기 모음집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러다 그냥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한국 TV 드라마, 미니시리즈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S: 한국 드라마의 특징이 8회 차에 봐도 무슨 내용인지 다 이해가 되잖아요. 보니까 둘이 이혼했고, 이 사람들은 재혼했고, 얘는 수양딸이고. (전원 웃음) 이런 것처럼 말이죠.






LE: 한국 드라마로 비유해 주시니까 한 번에 이해가 되네요. 이번 앨범은 소요(soyo) 작가님이 커버 아트워크부터 컨셉 사진 등을 맡으셨더라고요. 어떻게 작가님과 작업을 하게 된 건가요?


S: 네. 소요 작가님을 알게 된 건 뷰티풀디스코(Beautiful Disco) 덕분이었어요. 장규(뷰티풀디스코)가 1년 반 전부터 저에게 소요가 사진이든 영상이든 뭐든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면서 협업하는 걸 종종 추천했거든요. 그런데 당시에는 제가 [XX,]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요.


뭔가 둘이 작업을 하려면 소요한테 맞춰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진짜 시너지가 좋을 거 같은 작품이 나올 때 소요에게 부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저희 앨범을 준비하다가 ‘이 앨범은 소요랑 한번 같이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그전까지 [Your Home]도 그렇고, “Fightman”도 그렇고, 레어버스(Rarebirth) 오빠랑 종종 작업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고민도 좀 되었는데요. 뭔가 미니시리즈라는 말 자체가 어감도 너무 귀엽고, 왠지 소요 감독님도 욕심을 내서 재미있게 잘해 주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슬롬한테 의견을 묻고, 슬롬도 소요 감독님의 작품을 찾아보고 좋을 거 같다고 했죠.


그렇게 소요 작가님과 같이 작업을 진행했는데요. 너무 일사천리로 작업이 잘 진행되었어요. 저희 심볼도 그렇고, 저희가 이야기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작업을 알아서 잘하고 계세요. 또, 소요 작가님이 저희 이야기도 능동적으로 잘 들어주셔서 마음에 무척 드는 작업을 같이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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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소요 작가님이 디자인하신 심볼은 또, 리스타(Leesta) 님이 입체화한 아트토이로도 나오잖아요. 이런 작업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었을 거 같아요.


M: 네. 직접 보기도 했고요. 아트토이 작업이 중간중간 업데이트되는 과정도 일일이 저희가 상세하게 체크를 했거든요. 그러면서 정말 다른 세계의 작업실도 놀러 갔고, 너무 다른 몰두의 환경이어서 정말 신기했어요. 일단 소요 감독님께서 만들어 주신 동글동글한 심볼로 무엇을 만들까 고민을 했는데요. 다양한 각도로 얹어보고, 배치해보다 저런 형태가 나오게 되었죠.


S: 그런데 심볼을 실물화 하는 과정이 정말 어렵더라고요. 저는 심볼이 단순하게 생겨서 아트토이도 바로 그렇게 나올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심볼을 3D로 만드니까 표정이 달라져 보이는 신비한 일이 생기는 거예요. 이거는 누가 뭘 잘못한 개념이 아닌 거죠. 저희가 소요 감독님에게 받은 평면의 2D 심볼을 리스타 님과 함께 입체적인 3D로 실물화 시키니까 생각보다 디테일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수정 사항도 꽤 많았어요.


또, 저희 도색 작업할 때 심볼처럼 아트토이의 색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파란색은 괜찮았는데, 다른 녀석이 원본처럼 색깔이 너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이렇게 제작 과정이 엄청 어려웠어요. 그런데도 리스티 작가님도 본인 메인 프로젝트처럼 저희 프로젝트에 신경을 정말 많이 써 주셨어요. 저희 수정사항 같은 것도 다 반영해 주시고요. 아트토이 패키징도 엄청 공들였거든요. 개런티 카드, 스펀지, 박스까지. 돈도 돈인데, 규격부터 색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썼거든요.


제가 [Your Home]을 낼 때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아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걸 하고 있으니 스스로 정말 대견했어요. 또, 정말 공들이고 어렵게 만드는 만큼 텀블벅 후원도 성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LE: 그래도 음감회 관련 리워드는 정말 빨리 마감이 되더라고요.


S: 저희는 음감회가 그렇게나 빨리 마감될 줄 몰랐어요. 아무래도 비용을 보고 좀 부담스럽게 느끼실 분들이 많겠구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빨리 마감이 될 줄 몰랐는데 정말 항목이 빠르게 채워지더라고요. 다른 분들도 이런 것들이 되게 간절하시다는 걸 이번 기회로 정말 크게 체감했어요.






LE: 텀블벅 이야기가 나온 김에, [MINISERIES]가 바이닐로도 발매되잖아요. 이번 앨범을 바이닐로 발매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M: 저는 기본적으로 제 앨범을 낸다는 게 처음이고 기분이 좋았아요. 그래서 뭐든지 제가 가질 수 있는 거는 다 갖고 싶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어요. 또, 수민 누나가 바이닐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가 우호적이기도 했고요. 저도 앨범을 바이닐의 형태로 발매를 하면 사람들이 좀 더 소중하게 다루고, 주거나 받거나 하는 사람들도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할 거로 생각했어요.


S: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요. 저는 현존하는 음악이 담긴 복제품 중에서 바이닐이 가장 큰 포맷 같거든요.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 중에 한해서 가장 성의가 느껴지는 제품군이고요. 그래서 바이닐을 따라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저는 바이닐을 몇 번 찍어 보기도 했고요.






LE: [MINISERIES]의 바이닐은 웰컴 레코즈(Welcome Records) 분들과 협업을 해서 발매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S: 이전부터 웰컴 레코즈의 앤도우(Andow) 오빠가 저한테 이제 바이닐을 좀 같이 찍자, 그러니 앨범이든 뭐든 준비를 하라고 제안을 해 주셨거든요. 당시에 제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저의 새 앨범과 [MINISERIES]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저는 [MINISERIES]를 바이닐로 찍으면 진짜 괜찮은 명반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슬롬한테도 의사를 물어보고, 앤도우 오빠한테도 말씀을 드렸는데요. 앤도우 오빠가 이번 앨범을 다 듣고 무조건 바이닐을 찍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만 이 앨범을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란 걸 느꼈고, 사람들이 옆에서 장려할 때는 바이닐로 찍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진행하게 되었죠. 모두가 좋게 생각하는 앨범을 바이닐로 찍는다는 게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일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여태까지 찍었던 장수보다도 조금 더 넉넉하게 찍을 거 같아요. 사인 반으로 150장을 찍고, 일반 반으로 300장을 판매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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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바이닐 패키징도 재미있어요. 개인적으로 앨범 커버를 보고 엠플로(m-flo), 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 같은 제이팝 음악가들을 머리에 떠올렸어요. 소위 말하는 Y2K 감성도 느껴지고요.


S: 저희가 이번 앨범의 컨셉을 2000년대 제이팝을 모티브로 삼았어요. 폰트도 그런 감성으로 가져왔고요. 그런데 이런 감성을 이미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음악이랑 같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제 주변에는 음악과 감성을 같이 이해하는 사람이 슬롬 밖에 없었어요. 저희가 차에서 음악을 되게 많이 듣는 편인데요. 같이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의견이 합쳐지면서 이번 앨범의 컨셉을 정하게 되었어요.






LE: 너무 캐치하네요. 사실 최근에 패션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2000년대 대중문화들이 돌아오고 있잖아요. 두 분은 그런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S: 보통 1990년대 음악이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 되잖아요. 그런데 제가 1990년대생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1990년대 음악은 제가 선택해서 들은 게 아니고 누군가가 틀어줘서, 부모님이 들려준 음악이란 느낌이 있어요. 좋고 싫고를 떠나서 나 이런 걸 들으면서 자랐다고 말할 수 있는 음악인 거죠. 반면에 2000년대는 제가 직접 선택해서 들은 음악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또, 저는 성악을 오랫동안 했지만, 제이팝 음악도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이렇게 제 안에 두 개의 자아가 있었어요.






LE: 그때 어떤 제이팝 음악을 들으셨는지 기억나시나요?


S: 저는 폭이 넓었어요. 동경사변(東京事変, 도쿄지헨), 각트(GACKT), 라르크 앙 시엘(L'Arc~en~Ciel), 그리고 말리스 미제르(Malice Mizer)라는 비주얼계 음악도 즐겨 들었어요. 또, 하마사키 아유미(Ayumi Hamasaki), 코다 쿠미(Koda Kumi), 오렌지 렌지(Orange Range), 미야비(Miyavi), 그리고 모닝구 모스메(Morning Musume.)랑 쟈니스(Johnny’s). 저는 그 당시 방송국에 드나드는 아티스트분들의 음악을 다 들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더 파가지고 매니아틱한 걸 하시는 분들 음악도 진짜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LE: 그렇다면 피지카토 파이브나 플리퍼즈 기타 (Flipper's Guitar)와 같은 시부야케이(Shibuya-kei) 쪽도 즐겨 들으셨나요?


S: 네. 그런데 오히려 저는 그런 쪽 음악들을 우연히 일찍 접했어요. 2004년도 즈음에 저는 토와 테이(Towa Tei)의 “Free”를 뮤직비디오로 처음 접했거든요. 당시 저는 토와 테이가 누구인지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뮤직비디오가 너무 예쁘고, 노래가 저한테 너무 세련되게 다가오는 거예요. 그때 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Free”의 원작자가 토와 테이인 줄 알았어요. 또, 샤프(Sharp) mp3 플레이어에 노래를 넣고 들었던 기억이 나요.


당시에는 일본 TV라는 이름의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다음 카페가 있었거든요. 저는 그곳에서 모든 아티스트들의 정보와 음악, 영상들을 찾아서 보고 듣고 그랬어요. 엠플로도 그때 알게 되었어요. 보아(BoA) 이사님이 엠플로 앨범에 참여한 건 워낙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엠플로 앨범에 참여한 다른 한국 아티스트들을 찾아봤는데, 휘성 님도 있고 되게 많더라고요. 그렇게 일본 아티스트의 음악을 찾아봤는데 앨범커버나 컨셉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LE: 어떤 점이 재밌게 느껴지셨나요?


S: 엄청 급작스럽게 일본에 들어온 외래 문화를 재미있게 잘 표현한 느낌이었어요. 네덜란드 쪽의 히피 문화를 급하게 받아들인 티가 나고, 되게 팝하고, 촌스럽고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의 눈으로 봤을 때는요. 같은 동양인이다 보니 저한테 너무 반갑고, 예쁘게 느껴졌어요. 2000년대는 ‘니뽄삘’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잡지 논노(non-no)나 오리콘 차트(Oricon Chart) 같은 용어들이 주위에 되게 많았거든요.


또, 당시에는 한국 아티스트가 일본 진출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본에 많이 수출될 때였거든요. 덕분에 일본 문화에 대해 너무 관심이 많았었죠. 저는 저 자신이 일본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가 될 줄 알았어요. 아무것도 모를 때도 제가 “앞으로 나는 일본에서 활동할 사람이 될 거야.” 이렇게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LE: 슬롬 님은 어떤 음악을 즐겨 들으셨나요?


M: 저는 친누나가 동경 사변의 시아나 링고(Sheena Ringo) 팬이었어요. 그러면서 저도 제이팝을 듣게 되었는데요. 수민 누나가 방송국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많이 들었다면요. 저는 태생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프로듀서 쪽 음악들을 많이 들었어요. 중학교에 다닐 때 저는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Fantastic Plastic Machine), 프리템포(FreeTEMPO), 다이시 댄스(DAISHI DANCE), 그리고 몬도 그로소(Mondo Grosso)를 mp3 플레이어에 넣고 들었어요. 여기에 저는 좀 더 깊게 파고 들어가서 스튜디오 아파트먼트(Studio Apartment), DJ 카와사키(DJ KAWASAKI) 이런 사람들 음악을 직접 찾아 들었어요.






LE: 안 그래도 10번 트랙 “한잔의 추억”에서 말씀하셨던 시부야 케이의 향취가 느껴졌어요. 프로듀서의 관점으로 봤을 때 시부야케이는 어떤 매력이 있는 음악 같나요?


M: 뭔가 좀 매력이 섞여 있는 거 같아요. 저에게 시부야케이는 소울, 라운지, 알앤비 등 각기 다른 시대의 장르들을 합쳐 놓은 혼종인 거 같거든요. 토와 테이나 이런 쪽 사람들의 음악은 되게 깔끔한 커팅보다도 힙합이나 개러지에서 보이는 찹들이 들리고, 소울, 하우스에서 나오는 그런 코드와 베이스 편곡이 담겨 있거든요.


그래서 트랙이 굉장히 참 빠르면서도 힙합에서 들을 수 있는 러프함이 있는가 하면서도 그냥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맛이 있어요. 그런 부분이 사람들한테 안정적인 느낌을 줘서 머릿속에 각인되는 거 같아요. 제가 연주를 잘하지는 못해도, 제 기억과 에디팅 실력에 의존해 “한잔의 추억”을 통해 제가 기억하는 시부야케이를 구현해보았어요.






LE: 그렇다면 이번 트랙리스트를 짤 때 나름 고려한 부분이 있을까요?


S: 이번 앨범은 음악을 저희가 다 만들어 놓고 트랙리스트를 짰거든요. 그런데 만들어 보니까 같은 앨범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을 미처 못했던 트랙들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노래를 다 만들어 놓고 하나의 흐름을 짠다는 게 좀 어려웠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까 맞춰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처럼 트랙리스트가 나왔어요.






LE: 크레딧을 보니까, 칼리드(Khalid)의 프로듀서 블란다(Blanda)와 두아 리파(Dua Lipa)의 기타리스트인 카이 스미스(Kai Smith)가 앨범에 참여했더라고요. 어떻게 함께 작업하게 된 건가요?


M: 이번 앨범은 피처링이 없고 대부분 제 프로덕션과 수민 누나의 보컬로만 이뤄져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나머지 트랙은 금방 작업을 끝냈는데요. 좀 추가로 터치가 필요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LA에 있을 때부터 앨범 작업을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당시 근처에서 교류하던 아티스트에게 트랙을 들려주면서 아이디어를 받기도 했어요.


이 중에서도 블란다는 칼리드를 비롯해서 기성 팝 아티스트 싱글에 참여하면서 요즘 입지를 굳히고 있는 프로듀서예요. 원래는 그 친구와 다른 앨범에 들어갈 트랙을 만들고 있었는데요. 그 친구가 휘리릭 건반을 쳤는데, 그냥 좋아서 가져가겠다고 말한 뒤 트랙에 수록했어요.


“어떻게 될 것 같애”도 비슷한 맥락으로 작업했어요. 기타에 참여한 카이 스미스(Kai Smith)란 아티스트도 저랑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고 있던 친구였거든요. 그 친구는 두아 리파의 밴드 마스터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일정이 있어서 LA에 왔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오프라인으로 한 번 만나야 하지 않겠냐 하고 만났는데요. 그러면서 작업하고 있던 데모를 들려주고, 그 친구가 데모 위에 기타를 쳤는데요. 바로 제가 이걸로 하겠다고 말한 뒤 트랙에 넣었어요. 이렇게 물 흐르듯이 사람들에게 트랙을 들려주고, 사람들이 그냥 이거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연주를 했고요. 저는 바로 그걸 가져다 트랙에 썼어요.






LE: 말씀하신 5번 트랙 “어떻게 될 것 같애”는 피제이노트레블(PJNOTREBLE) 님이 베이스로도 참여하셨잖아요. 트랙에 리얼 세션의 연주를 넣은 까닭이 특별히 있었나요?

M: “어떻게 될 것 같애”는 빠른 노트의 트랙이거든요. 이전 트랙인 “여기저기”도 그렇듯이 악기가 굉장히 반복되서 나오는데요. 반복되는 룹이 주는 긴장감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될 것 같애”는 빠른 템포에도 불구하고, 좀 뭔가 터치가 섬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재즈 훵크(Jazz Funk) 트랙들도 하우스 느낌이 나는 것도 있지만요.


영국에서 활동 많이 하는 소울/딥하우스 아티스트 중에서 약간 크래카잿(Crackazat)라든지 짐스터(Jimpster) 같은 하우스/누재즈(Nu Jazz) 계열 분들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느낌. 이렇게 “어떻게 될 것 같애”는 뭔가 섬세하면서도, 리듬은 엄청 빠르고, 약간의 긴장감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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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좋습니다. 그렇다면 앨범의 트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신기루”는 잔잔한 인트로와 대비되는 수민 님의 ‘우~’하는 보컬이 굉장히 포인트 있게 느껴졌어요. (전원 웃음) 두 분이 각자 생각하는 트랙의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S: 말씀하신 그 부분이 맞아요. 제가 그 부분을 직접 녹음해서 좀 깜짝 놀라게 하는 포인트를 만들면 재미있을 거 같았어요. 저에게 슬롬의 트랙이 넘어왔을 때 원래는 엄청나게 칠한 느낌이었거든요. 슬롬이 나름대로 포인트를 준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 부분을 그렇게 만들면 곡 자체가 되게 긴장감 있게 느껴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워낙 깜짝 놀라게 만들고, 곡 속에서 트랜지션을 주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인데요. 슬롬은 반복적인 룹 속에서 중간중간 디테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거든요. “신기루”에서 둘의 그런 매력을 함께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곡이 되게 잘 나온 거 같아요.


M: 트랙의 포인트는 수민 누나가 이야기했던 디테일적인 부분이 맞는 거 같아요. 사실 저는 제 트랙을 스스로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편인데요. 저는 트랙 속에 무언가를 얹을 때마다 노선이 계속 바뀌거든요.


그래서 설계가 되어 있던 트랙이라기 보다도요. 원래는 이런 리듬으로 트랙을 진행하다가 갑자기 다른 리듬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리듬 파트를 바꾸고요. 문득 갑자기 트랙에 포인트를 넣으면 좋겠다 싶어서 트랙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또, 트랙 안에서 기본적으로 되게 많이 들리는 신스 패드가 갑자기 나왔다, 사라졌다가 계속 반복해요.






LE: 2번 트랙인 “맞닿음”은 제이 딜라(J Dilla)의 향취가 느껴지는 트랙이었어요. 슬롬 님은 곡의 포인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M: 첫 파트가 기본적으로 계속 코드가 쌓여 있다가요. 그러다 오픈 햇으로 쫙 긁은 다음에, 트랙이 잠시 멈추는 것처럼 아무것도 안 들렸다가 다시 룹이 반복되는 형태예요. 트랙 자체는 제이 딜라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조금 전에 하셨던 질문처럼 제가 모티브를 많이 받고, 사운드적으로 공부를 많이 했던 프로듀서가 제이 딜라였거든요. 제이 딜라 음악의 매력은 드럼의 칼 스윙, 들릴 듯 말 듯한 저음역이 주는 따뜻한 느낌에서 나오거든요. 그런 포인트를 잘 정리해서 만든 트랙이 “맞닿음”이에요.






LE: 수민 님은 “맞닿음”을 만들 때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이 있을까요?


S: 기본적으로 슬롬이랑 작업할 때는 ‘트랙도 잘 들리고, 보컬도 잘 들리는 게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될 거 같다.’ 이런 생각이 은연 중에 있었어요. 조심스러운 말이지만요. 가끔 (곡을 듣다 보면) 보컬이 프로덕션을 너무 잡아먹는 트랙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노래를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MINISERIES]는 보컬리스트만의 앨범이 되는 걸 지양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이번 앨범에서는 제 보컬이 트랙을 침범할 때도 좀 세련되게 침범하자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맞닿음”은 엄청 리스크가 있는 비트예요. 소위 말하는 ‘딜라 키즈’ 곡처럼 리듬이 다 뒤에 있고요. 그래서 앨범에서 유난히 이 곡만 다르게 가야 할 거 같았어요. 그래서 저도 약간 노래의 드럼같이 위태롭게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노래를 들으면 되게 아슬아슬할 거예요. 저는 보컬로서 자칫하면 사고 날 것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을 거의 비트와 비슷한 감도로 내고 싶었어요. 노래 속의 텍스처 같은 건 원래부터 제가 하던 거여서 크게 다른 점은 없어요.






LE: 타이틀 곡 “곤란한 노래”는 지펑크(G-Funk)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두 분은 이 트랙을 만들 때 어떤 요소에 신경을 쓰셨나요?


M: 사실 저는 좋아하는 노래들이 있으면 노래에 쓰인 악기들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TR-707이나 TR-808, 909 같이 엄청나게 센 소리의 드럼머신의 사운드보다도 린드럼(Linn Drum) 드럼머신이나 1980년대에 쓰였던 악기들이 다시 샘플링이 돼서 1990년대 지펑크로 탄생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그때 그 시절에 있던 그 드럼 소스들을 가지고 와서 뭔가 요즘 것들을 섞어보는 식으로 트랙을 만들었어요. 사실 요즘 거라 해 봤자 훅에서 나오는 TR-808 트랩 하이햇밖에 없지만요.


사실 이 트랙의 모티브가 유치한데요. 제가 2018년에 복학을 했고, LA 집에 입주했거든요. 그래서 ‘LA에 왔으니 한 번 노래를 만들어 볼까? LA하면 지펑크지!’ 이런 식으로 진짜 단순하게 생각해서 만들었던 트랙이었거든요. (전원 웃음) 그런 다음 만들었던 트랙을 수민 누나한테 보내줬는데요. 돌아오는 멜로디 라인이 생각보다 묘한 느낌이 나더라고요. 한창 한국에서 YG 엔터테인먼트(YG Entertainment) 쪽분들이 가요에서 썼던 그 시대의 느낌도 나는 거 같더라고요.


S: YG 스케일이라고 하거든요. (전원 웃음) 그 스케일이 사람의 마음을 엄청 요상해지게 만들거든요. 지누션(Jinusean)의 “전화번호”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M: 저도 그 때 YG 음악의 느낌이 나는 거 같았거든요. 그러면 이런 스타일에 좀 더 집중해 봐야지 하고 노래를 좀 다듬었던 거 같아요.


S: 지금 생각해 보니까 “곤란한 노래”의 스케일 노트가 몇 개 안 되거든요. 그러다보니 노래에서 우직한, 되게 단단하고 이지(Easy)한 느낌이 좀 있는 거 같아요.






LE: 말씀하신 것처럼 “곤란한 노래”는 강한 휘슬 소리 덕에 지펑크 느낌이 나서 좋았는데요. 그렇다고 너무 옛날 느낌도 안 나서 좋았던 거 같아요.


M: 왜냐하면 그때 쓰였던 악기나 사운드를 다 쓰면, 그때 그 시절의 스토리까지 다 가져오는 거 같거든요. 재현에 있어서 이야기하자면, 저는 과몰입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만 따라오고, 그때부터는 그냥 제가 알고 있는 것만 갖다 붙이는 게 제 방식의 재해석인 거 같아요.






LE: 멋있는 답변이었습니다. (전원 웃음) 또, “곤란한 노래”에 숨겨진 포인트가 있을까요?


M: “곤란한 노래”를 잘 들어 보시면 자이언티 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수민 누나가 탑 라인을 쓰고 노래를 만들었는데요. 미리 노래를 들었던 분 중에서 뭔가 자이언티 형 초창기 때 느낌 같다고 평을 해 주기도 하셨어요.


S: 또 이런 이야기도 있었어요. 원래는 해솔 오빠가 녹음을 안 했고, 제 목소리만 나왔거든요. 그런데 누군가 “야! 이거 코러스 자이언티지?” 이러시는 거예요. (전원 웃음) 그래서 이럴 바에 자이언티 목소리를 곡에 넣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죠. 그냥 해솔 오빠를 찾아가서 물어봤는데요. 오빠가 흔쾌히 콜을 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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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망가진 사이”는 정말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발라드 트랙이었는데요. 수민 님은 “망가진 사이”를 만들 때 가사나 보컬적으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S: 일단 “망가진 사이”는 트랙이 정말 처져 있으니까 나도 처져야겠단 생각을 기본적으로 했는데요. 돌이켜 보니까 제가 만들었던 노래 중에서 정말 개 슬픈 발라드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예전에 아픈 연애를 한 적이 있으니까 그런 감정을 좀 가지고 와서 노래에서 얘기해보려고 했어요. 특히 저는 많은 사람이 좀 공감할 만한 디테일한 요소들을 가사에 넣고 싶었어요. 보통 남녀가 헤어질 때, 생각보다 특별한 말로 헤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잘 지내. 밥 잘 먹고. 이런 식으로 생각보다 좀 평범한 대화를 나누면서 헤어져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을 그냥 대놓고 노래의 가사로 써봤어요. 특히 2절의 첫 부분이 그런데요. 어쩌다 마주치면 인사 정도는 좋겠어. 밥 잘 챙겨 먹고 푹 쉬어라. 사실 이런 말이 그렇게 쿨하지는 않거든요. 그런 말을 하는 입장 자체가 말이죠.


그런데 보통 다들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고 헤어지잖아요. 나중에 마주치면 우리 좋게 인사라도 잘하자고 하지만, 사실 그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잖아요. 이런 것들을 정리해보고 싶었고요. 오히려 이런 가사가 너무 마음을 아프게 만들더라고요. 먹먹하다는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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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인털루드에 해당하는 “ㅜ”는 “망가진 사이”를 만드신 뒤 트랙의 흐름을 고려해서 새롭게 만든 곡인가요?


M: 네. 짜임새 때문에 만든 트랙인데요. 만들면서 마음에 들더라고요. 드럼 룹은 집에 있는 코르그(KORG) 볼카 샘플(VOLCA Sample)로 만들었어요. 이번 앨범이 전체적으로 봤을 때 프로듀서의 앨범이기도 하니깐요. “ㅜ”는 프로듀싱적인 측면에서 즐거운 부분들이 많이 배치된 트랙이에요. 작법적으로 보면 저의 이전 앨범인 [Alone]의 비트 메이킹을 할 때 많이 썼던 방식을 가져왔고요. [Alone]과 연관성이 있도록 설계해 만든 트랙이긴 해요.


수민 누나의 목소리도 거의 악기처럼 사용했고요. 안전하게 네 마디를 진행한 후에 새로운 악기가 도입되는 전개 방식을 썼어요. 덕분에 곡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은 되지만, 계속 반복해서 듣기 좋거든요. 또, “ㅜ”는 “망가진 사이”로 넘어가는 느낌을 주기 위해 여러 사운드적인 연출을 신경 썼어요. 노이즈 소리도 넣었고, 테이프로 음악을 끊는 듯한 사운드, 1990년대 음악에 많이 쓰였던 물방울 소리도 집어넣었죠.






LE: “TRAP”도 사운드적인 연출이 재미있던 트랙인 거 같았어요.


S: 네. 패닝(Panning)을 썼거든요. 제가 너무 해보고 싶었었던 기술이 패닝이었는데요. 이 트랙을 듣고 여기에다 해보면 되겠다 싶어서 써봤는데요.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사실 저는 “TRAP”의 두 가지 주목할 점이 패닝이랑 트랜지션 되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곡이 마치 귀뚜라미 보일러 바이브로 잔잔하게 가다가, 패닝이 나오고, 이후에 트랩 비트가 나오는 구조이거든요. 저는 트랩을 가끔씩 듣다 보면 거기서 거기 같을 데가 있는데요. 그래서 슬롬이 만든 트랩 비트 위에 노래를 부를 거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M: 누나가 앞부분을 작업하고 잠시 쉴 때, 저한테 트랙의 뒷부분을 전반부와 다른 느낌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제안을 해줬거든요. 그러면 무슨 장르로 바꾸면 재미있을까 고민을 해봤는데요. 수민 누나가 위아래로 타는 리듬에서 노래했던 적이 없던 거 같고, 또 그런 리듬에 노래하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뒷부분을 트랩으로 만들었어요.


“TRAP”의 가사가 주는 느낌이 좀 허무하거든요. 또, 이어서 나오는 가사도 네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고, 차라리 아프면 눈물이라도 나면 좋겠다. 이런 가사가 덫에 빠진 감정처럼 느껴졌어요. 또 마침 뒤에 나오는 장르도 그렇고, 가사도 그렇고, 앨범에 다른 트랙들이 다 한글 제목으로만 이뤄졌으니까. 그냥 뻔뻔하게 노래의 제목을 “TRAP”으로 정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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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렇게 트랙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눠봤는데요. 아직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이 남아있지만, 앨범 작업을 마친 지금. 두 분에게 [MINISERIES]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시나요?


S: 저는 [MINISERIES]가 보컬 프로덕션과 트랙 프로덕션이 각자의 역할을 반반씩 충실히 한 앨범인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보컬리스트로서는 엄청 대단한 앨범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 같지만요. 작업 타율과 협업이라는 측면에서 정말 좋은 앨범인 거 같아요. 그리고 잡생각도 없고, 부정적인 에너지도 하나 없이 그저 즐겁고 재밌게 만들었던 앨범이라 제 기억에 많이 남을 거 같아요.


M: 그동안 저는 저의 매력이나 저만의 창작욕을 해소할 창구를 찾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제가 작품을 내면 작품에 있었으면 했던 것들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저의 창작욕을) 표출했던 작업이었던 거 같습니다.


S: 사실 저희가 이번 앨범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뭘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 이야기하라고 하면요. 답변하기가 좀 어려워요. 그만큼 저희 이번 앨범이 되게 다채롭거든요. 그래서 [MINISERIES]는 저희와 주변 사람들이 자주 쓰는 언어와 음악을 알집(AlZip)으로 압축해서 1집으로 낸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희 앨범의 표본이 되는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앨범과 아티스트들이 이미 있고, 저희는 그것들을 가지고 ‘애들아, 현대 시대에 이런 게 있었어.’ 하면서 알려주는 듯한 앨범을 만든 셈이죠. 저희 앨범이 클래식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요. 듣는 분들이 한 시대의 음악을 정리하는 앨범으로 생각해 주신다면 저희는 감사할 거 같아요.


M: 사실 저 같은 경우에도요. 저의 오륙십 개 트랙을 간추리고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어!’란 생각을 하면서 무언가를 얹어 낸 별의별 음악들이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해보고 싶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듣고 자라온 모든 걸 모아 놓은 앨범. 그리고 지금의 지점에서 나는 여러 시대의 이런 것들을 추억하면서 모았다. 이렇게 앨범으로 마치 비석을 박고 가는 기분이 들어요.


S: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앨범은 제가 선택해서 듣지 않고, 제 안에 자동으로 입력이 되었던 음악과 제가 선택해서 들었던 음악의 교집합인 거 같아요.


M: 여태까지 듣고 해 왔던 음악을 섞은 다음에 예쁘게 포장을 해서 이때는 이런 느낌이다 보여주고요. 이제 다음 걸 하러 가는 거죠.


S: 마지막으로 저는 만약 나중에 ‘아, 이번에 뭐 만들지?’라는 고민이 생겼을 때 이 앨범을 다시 들어볼 거 같아요. 그러고 나서 이런 트랙으로 몇 개 더 만들어 볼까? 오늘은 이런 느낌의 트랙을 해봐야겠다. 이런 식으로 다시 작업할 거 같아요.






LE: 두 분은 이번 협업을 통해서 각자의 음악관이 어떻게 변한 거 같나요?


M: 저는 제가 좀 더 하고 싶은 걸 마음 편하게 해도 되겠다고 느낀 거 같아요. 제가 정제됨에 대해서 되게 오랫동안 공부를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이제는 어느 정도 그 감도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으니. 제가 재미있어하는 요소들을 계속 찾아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던 작업이었어요.


S: 슬롬은 작업 방식에 있어서 좀 배울 점이 많았던 상대였어요. 저는 진짜 본능적으로 작업하는 스타일이고, 제가 하는 걸 설명을 못 할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슬롬은 저와 정반대 스타일이고, 저는 그런 슬롬의 차분한 부분을 배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LE: 마지막으로 다른 분들이 [MINISERIES]를 어떻게 들어주셨으면 하나요?


S: 저는 이번 앨범으로 다양한 타입의 음악을 하는 분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도 다른 분들과 재밌는 음악을 많이 만들고 싶거든요. 제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타인에게 재미있는 음악을 저한테 제안해 달라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번 앨범으로 (재미있는 음악을 보여드린 만큼 앞으로도)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 같아요.


M: 저도 그런 게 좋은 거 같아요. 이번 앨범을 듣고 재미있는 반응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LE: 인터뷰 고생하셨습니다.

6 추천 목록 스크랩신고 댓글 7 시크릿맨9.19 23:39 본인들은 왕창 작업하고 나서 미니시리즈로 엮었다지만 저는 다 듣고나서 트랙하나보다 앨범전체로 기억하고있는게 신기하네요.. 그만큼 두분의 협업에서 오는 강한 인상이 있나봐요. 아직 네번밖에 안돌렸는데 인터뷰 따라 다시 천천히 정주행 하러 갑니다...

추천 댓글 CHrisdean9.20 03:58 진짜 뒤지게 알차고 좋은 인터뷰 ...

추천 댓글 LarryFisherman9.20 09:55 슬롬이 미국에서 있던 얘기들 재밌네요ㅋㅋㅋㅋㅋ

추천 댓글 DanceD9.20 17:51 슬롬에 대한 아카이빙이 이번 기회로 제대로 되는군요

추천 댓글 title: Frank Ocean - channel ORANGE콘스타치9.20 20:07 질여..

추천 댓글 title: Chance the Rappertameimpala9.20 21:22 John Keek은 진짜 의외의 인연이네요. 요새 Mk.gee나 Arthur, Dijon같은 뮤지션들이랑 어울리던데


via https://hiphople.com/interview/21397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