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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회원구입불가]Melo2015.11.13 17:15추천수 12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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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블럭 (bluc)
4주년은 건너 뛰었지만, 3주년 때는 스태프 인터뷰로 가사해석 계의 거장(?) 댄스디(DanceD)를 인터뷰했었다. 이번 5주년 스태프 인터뷰도 역시 댄스디 만큼 힙합엘이의 레전드(?)이자 현역 스태프와 가졌다. 그는 힙합엘이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와 프리랜서 글쟁이, 기획자 등등의 타이틀로 큰 매체부터 작은 매체까지 종횡무진하고 있다. 지금은 여러 매체에 발을 걸치고 있어 예전만큼 힙합엘이에서의 활동이 활발하진 않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의 역량이 닿는 한 힙합엘이가 잘될 수 있도록 큰 노력을 해주고 있는 이다. 힙합엘이 매거진팀의 대부(?), 블럭(bluc)이다.
LE: 반갑습니다. 먼저 힙합엘이 회원 분들께 인사와 간단한 소개 부탁 드릴게요.
b: 안녕하세요, 저는 힙합엘이에서 블럭(bluc)이라는 이름으로 5년째 활동하고 있는 박준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LE: 인터뷰는 처음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혹시 이전에 제의가 왔던 경우가 있었나요?
방송사에서 의견을 묻거나 하는 경우는 몇 번 있었는데, 공식적인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LE: 사실 3주년 때도 인터뷰 얘기가 잠깐 나왔다가 당시에는 댄스디(DanceD) 씨를 하게 되었었는데요. 저희 내부에서 나름대로 이유도 있었고 했는데, 3주년이었던 2013년과 5주년인 2015년은 커리어 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엄청난 차이가 있죠. 사실 2013년에는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았어요. 지금 하는 일의 반의반에 반도 안 했었죠. 굉장히 미미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죠. 그리고 제가 작년과 올해 일을 특히 많이 했기 때문에… 당시와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LE: 2013년이라면 졸업을 하셨을 땐가요?
그렇죠. 2013년이면 졸업 후죠. 졸업하고 취업에 실패한 뒤, 한창 공백기를 가지고 있을 당시였어요. 그래서 커리어랄 게 더욱 없었죠.
LE: 최근에도 계속 바쁘신가 궁금해요. 주변 지인분들은 모두가 알듯 지옥에서도 돌아온 프로마감러시잖아요. 항상 매일 해야 할 일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요즘도 일은 많죠. 거의 하루에 기본적으로 마감 하나와 미팅 하나는 하고 있고요. 사람을 만나는 일이 하루에 절반쯤 되고, 글은 짧든 길든, 하고 싶든 하기 싫든 하루에 하나 이상은 쓰고 있어요.
LE: 예전에 비해 미팅이 많아지셨잖아요. 그래서 시간을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죠. 글을 쓰는 일 자체에 시간을 집중하는 건 조금 어려워요. 오늘도 스케줄이 안 맞아서 길에다 시간을 많이 버렸는데… 워낙 만나야 하는 사람도 많고, 시간도 제각각이다 보니까, 일정을 조율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예를 들면,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한 일’과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데에 소비하는 거 같아요. 바쁘긴 한데, 이 직업을 가지는 순간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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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게요. 스태프 인터뷰라고 해서 다를 건 없고,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돌아가 보도록 할게요. 일단 힙합은 언제부터 어떻게 듣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지금 저한테 당시에 대한 기억이 많이 없어서 (인터뷰에 오기 전에) 사실 일기장을 들춰봤었어요. 초등학교 4, 5학년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처음 힙합을 들었어요.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제가 사촌 형이 있어요. 8살 차인가? 그런데 그 형은 한국에서도 굉장히 힙합을 일찍 접한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그래서 그 형이 당시 초등학생인 저한테 힙합 앨범을 들려주고, 그런 앨범들을 손에 쥐여주고, 랩에 관해서 이야기해주곤 했었어요. 관련된 에피소드 중 하난데, 당시에 김건모의 “부메랑”이란 곡이 나왔었어요. 그 곡에 영어 랩이 나오거든요. 근데 그 영어 랩이 엉망이에요. 그래서 사촌 형이 초등학생인 저를 옆에 앉혀놓고 이 랩에 라이밍은 어떻고, 이게 왜 영어로 쓰였는지, 이건 이래서 별로라는 등의 얘기를 저한테 했었어요. 저는 그때 ‘이게 무슨 소린가?’ 했죠. 그래서 라임이니, 영어 랩 가사니 뭐니 궁금해서 찾아본 기억이 있어요. 제 초등학교 일기장에 이런 게 적혀있더라고요. ‘힙합이 최고다’, ‘힙합 짱’ 이런 거. 잘 모르는 주제에… (웃음)
LE: 그럼 그때부터 뭔지는 몰라도 힙합에 대한 매력을 느끼셨나 보네요.
그렇죠. 그때는 노래 말고 랩이라는 개념이었으니까. 랩이라는 포맷 자체에 매력을 느꼈죠.
LE: 그때가 몇 년쯤이었던 건가요?
98, 99년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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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럼 사촌 형 분께서 외국 랩, 국내 랩 가리지 않고 전해주신 건가요?
다 가져다줬죠. 저한테 아직 [1999 대한민국] CD도 있고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 앨범도 형이 가져다줬었어요.
LE: 그럼 그 큰 형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나요?
큰 형은 지금 송도에서 멕시칸 레스토랑을 하고 있고요. 가게는 굉장히 잘 되고 있어요. 조금 있으면 애도 나오고요. (웃음)
LE: 알기에는 대구 출신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서울이 아니다 보니 미디어가 아닌 실생활에서 힙합을 접하기는 좀 어려운 부분도 있지 않았나요? 블럭 씨 학창시절 때라면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 중반이니까요.
초등학교 때 PC 통신이란 거를 처음 해봤고, 중학교 때 학교에 컴퓨터실이 생기면서 인터넷이란 걸 알게 됐죠. 그리고 동네 레코드 가게가 집에서 한참 걸어가면 하나 있었어요. 근데 거기는 너무 작아서 안 유명했죠. 외국 음반도 거의 없었고… 그래서 시내로 나가야 했어요. 큰 레코드 샵이 있는 중앙로나 동성로 이쪽으로요. 그때는 타워 레코드(Tower Records)가 대구에 있었어요. 놀라운 일이죠. 타워 레코드를 접할 수 있단 거는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진부한 표현이 딱 어울리는 거였거든요. (웃음). 그래서 한 시간 넘게 계속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죠. 가서 디깅도 하고 구매도 하고… 또, 그때는 타워 레코드에 감사한 게, 제가 19금 음반을 사도 신분증 검사를 안 했었어요. 그래서 맘껏 앨범을 살 수 있었죠. (전원 웃음) 그래서 문을 닫았을지도…
LE: 학창시절부터 힙합을 들어왔다면 랩을 하거나 프로듀싱하는 등 뭔가 음악적인 활동을 그때부터 하진 않으셨는지 궁금해요.
사실 래퍼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랩을 하고 곡을 쓴 건 아니에요. 그때는 이거를 당연히 해야 한다는 분위기였어요. 중학교 때 랩을 하겠다고 주변에 까불대는 애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중2병 걸린 애들이랑 팀을 해서, 같이 개소리도 하고, 진지한 이야기도 하고, 랩도 써보고 했죠. 그리고 그때는 밀림(Millim)이라는 창구가 있었으니까. MSN 메신저로 서로 가사도 보여주고 곡도 들려주고 하면서 놀았죠. 진지하게 임한 게 아니라 그 틈에 껴있으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거였고, 같이 놀다 보니까 그렇게 해본 거죠.
LE: 그럼 밀림에 올리기도 하셨나요?
네. 올렸었죠.
LE: 그럼 그때 올린 작품이 아직도 있나요?
다 지웠어요. (웃음) 저는 그런 기록이 남는 순간 저한테 그게 뭐가 되는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어서… (웃음) 굉장히 일찍 지웠어요. 흑역사가 될 거란 거를 뻔히 알고 있었죠. 뛰어난 판단력이죠.
LE: 87년생이시고, 2006년부터 대학교에 다니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음악과는 별개로 그냥 일반 공부를 해서 중앙대학교 민속학과 입학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때는 크게 생각이 없으셨던 건가요?
대학은 당연히 가는 거였고, 사실 서울로 가고 싶었어요. 부모님의 바람 이런 부분이 아니라, 제가 서울로 가고 싶었어요. 막연한 동경이 있었죠. 서울은 되게 좋은 곳이고, 내가 가면 무언가 바뀔 것 같고, 잘 풀릴 것 같고… (웃음) 전공은 사실 음악을 계속 듣다 보니까 직접 하는 쪽으로 전공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돼서 가고 싶은 과를 가자 해서 민속학과를 가게 됐죠.
LE: 민속학과는 왜 가고 싶으셨나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PD 같은 게 되고 싶었어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근데 민속학과를 가면 특수한 분야에 정통할 수 있고, 민속에 해당하는 거를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이차적으로 가공하면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LE: 중앙대학교 민속학과가 지금은 폐과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없어졌어요. ‘중앙대학교 민속학과는 재단 측의 의견으로 학생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은 채 폐과되었습니다.’ 제가 졸업한 해에 폐과됐고, 사실 나름대로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노력했는데, 안타깝게 폐과가 됐죠.
LE: 사실 이름만 들어도 좀 생소한 편이에요. 대체 어떤 걸 배우는 곳인가요?
민속학과가 쉽게 말하면… 민속에 대해 배우긴 하는데, 그것도 나름의 카테고리가 있어요. 구전 설화나 민요, 무속, 현대 민속 등을 다 배우는 과정이고, 방법론적으로는 인류학 같은 거랑 비슷하죠. 대신에 한국 거만 배우지는 않고요. 다른 나라의 민속 같은 부분도 당연히 익히고, 수업 들으면서 재미있는 거를 많이 보고 경험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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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지금은 성공회대학교 국제문화연구학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일단 대학원에 간 이유가 궁금해요.
솔직히 말하면, 대학원에 가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이 공존해요. 그래서 후회할 때도 있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대학원은 뜻이 있다고 해서 다 가는 거는 아닌 것 같아요. (웃음) 사람에게는 다 때가 있고, 그래서 그때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고… 사실 저는 일을 하면서 인풋이 필요하다고 많이 느꼈어요. 계속 아웃풋만 보이고 있어서 무언가를 배울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 글을 쓰는 데 있어 깊이가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그래서 대학원을 가게 됐죠.
LE: 대학원과 일을 병행하려니 생겨나는 이런저런 애로사항이 있나요?
포기하는 부분이 많죠. 하고 싶은 일도 몇 개 포기하기도 하고, 저에게 오는 제의를 다 수락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죠. 그래서 지금도 방향에 있어서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LE: 석사 논문 주제도 궁금해요. 어떤 주제로 쓰실 예정이신가요? 일전에 아시아 음악의 세방화에 대해서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요. 뭔가 특이한 주제로 접근하실 것 같은데요.
두 가지가 있는데, 우선 아시아 음악의 세방화는 제가 대만이나 태국이나 이런 데를 다 다닐 수 없기 때문에 포기를 해야 하고요. (웃음) 하나는 인터넷에 글을 쓰는 행위가 문화 행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음악 산업 측면에서 지금 한국의 아이돌 문화를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서 지금 고민 중입니다.
LE: 다시 대학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중앙대학교 힙합 동아리에서 활동하셨던 걸로 아는데요. 미료(Miryo), 스컬(Skull)과 같은 분들이 당시에 동아리 선배인 걸로 알고 있어요. 동아리에서는 주로 어떤 파트를 담당했고, 그때 당시에 기억이 어떤지 궁금해요. 예전에 공연하는 사진 한 장 정도만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짧게 얘기할게요. 중앙대학교에 가시면 흑인음악 동아리가 하나 있고, 저는 1학년 때 들어가서 랩도 하고 곡도 쓰고, 공연도 하고 했습니다. 전역 후에도 조금 활동을 하기도 했죠. 근데 나중에 그게 굉장한 주책없음을 깨닫고…
LE: 그때 당시에 미료나 스컬 같은 분들을 알고 지내셨던 건가요. 특별한 에피소드 같은 거는 없나요?
사실 동아리라는 매개를 통해 두 분을 만날 수 있다는 기회가 있었을 뿐이죠. 예를 들면, 스토니 스컹크(Stony Skunk)가 학교에 공연하러 와서,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거나 라는 정도가 있었지, 아는 사이는 아니에요.
LE: 그러다 군대에 다녀오시고 나서 2010년 말인가요, 2011년 초부터 힙합엘이 활동을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사이트 기록상으로는 2011년 2, 3월 쯤이 본인의 글이 공식적으로 게재된 시기인데요. 당시에 힙합엘이는 어떤 생각으로 들어오게 되신 건가요?
2010년 말에, 음악으로 글을 쓰는 일을 해보고 싶단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시작을 하면 좋을까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히맨(Heman)이란 사람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지원을 했죠. 힙합엘이란 곳에서 글을 써보고 싶다고. 그래서 글을 한 3개 정도 써서 보내드렸고, 내부 심사 끝에 저를 쓰게 됐죠. 그때부터 저는 지금까지 힙합엘이를 함께 하고 있어요.
LE: 블럭 이란 이름은 이때부터 쓰신 건가요? 이름에 어떤 뜻이 있는지 궁금해요.
블럭이란 이름은 아무 생각 없이 지은 거고, 그전부터 사람들이 의례 그렇듯이, 인터넷 아이디로 이걸 써서 필명을 이어왔죠. 사실 후회할 때도 있어요. 좀 더 멋있게 지을걸. (웃음) 근데 워낙 오랫동안 쓰다 보니까 제 이름이 됐죠. 또 저랑 동명이신 박준우 기자님이 먼저 유명해 지셔서… 워낙 유명하시니까 제가 다른 이름을 써야죠. (웃음)
LE: 이름을 블럭이 아니라 레고(Lego)로 바꿀 의향이 있으신가요?
레고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안 들어서…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LE: 블럭으로 이행시. 레고!
블 : 블럭은 럭 : 럭키가이다 (전원 웃음) 왜 이런 질문을…
LE: 사실 그 당시에 힙합엘이는 사실 지금과는 다르게 되게 소박했잖아요. 지금 같이 메뉴도 많이 없고 뉴스나 글, 자막 뮤직비디오 위주였을 뿐이었는데요. 본인이 힙합엘이 스태프가 되기 전에 힙합엘이에게 느꼈던 인상 같은 게 궁금해요.
들어오기 전에는, 솔직히 말해서 그냥 히맨 형의 공간인 줄 알았어요. 내부의 스태프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사실상 뉴스와 자막 뮤비를 하는 사람이 히맨 형이었고, 그냥 히맨 형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강했죠. 커뮤니티에도 적은 사람만 있어서 아기자기한, 충성도 높은 곳이란 생각을 했어요.
LE: 힙합엘이에 들어오는 데에 디씨 트라이브(DC Tribe)의 영향도 있었나요? 아무래도 운영자 히맨 씨가 디씨 트라이브에 뭔가를 올리는 것부터 시작된, 그게 사이트화가 된 게 지금 형태니까요.
저는 사실 (그런 영향이) 전혀 없었어요. 저는 힙합엘이를 먼저 알게 됐고, 알고 난 뒤 히큐멘터리(heQmentary)라는 블로그를 나중에 알았어요. 디씨 트라이브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LE: 초창기 유저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힙합엘이 대표이자 운영자인 히맨 씨에 대한 첫인상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히맨 형을 트위터로 처음 알았어요. 거기서 사담도 조금씩 하면서 알게 됐죠. 그리고 힙합엘이를 하기 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근데 그때는 그 형이 머리를 어깨 넘게까지 길러서 꽁지 머리를 묶고, 까만 옷을 입고 다녔어요. 안경도 좀 이상하고… (웃음) 그래서 약간 무서운 버전의 김태원? 이런 느낌이랄까. 그리고 버벌진트(Verbal Jint) 씨 인터뷰를 할 때 공식적으로 히맨 형을 처음 만났는데, 그때도 제 앞에 앉자마자 불을 붙이면서 “말 놔도 되지?”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무서운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죠. (웃음)
LE: 힙합엘이가 이제는 아무것도 없던 초창기와 다르게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 거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기도 해요.
커지는 건 좋은 일이죠. 근데 가끔 힙합엘이 연관 검색어에 일베 같은 단어가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속상하기도 하고요. 힙합엘이의 자체 콘텐츠가 늘어난 거에 대해서는 스스로 뿌듯하기보다는, 같이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들죠.
LE: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글 쓰는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일단 처음에는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어떤 마음가짐에서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처음부터 직업으로는 염두에 뒀었어요. 그리고 이 직업이 얼마나 많은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죠. 마음가짐은 특별히 어떤 사명감이나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글 쓰는 일을 좋아했고,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다 보니까… 이런 일을 하고 싶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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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한때 지금 사이트에 올라오지 않은 편까지, 아티스트 열전 시리즈는 무더기로 많이 쓰던 시절이 있으셨잖아요. 그때 당시에는 블럭 씨가 글 찍어내는 공장장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도 정말 많은 글을 쓰긴 하지만, 그때는 정말 그냥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혼자 폭주했던 거잖아요. 기억이 생생하실 것 같기도 해요.
생생하진 않고요. (웃음) 힙합엘이 초기 프로젝트 중 하나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자는 게 있었어요. ‘LE DB’라는 프로젝트가 있었고, 아티스트를 검색하면 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편하게 볼 수 있는 한국어로 된 무언가를 만들자는 게 목표였죠. 그래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글을 썼죠. 하루에 하나씩은 기본으로 썼고, 많이 쓰면 하루에 5개씩도 썼어요. 진짜 열심히 했죠. (웃음) 그게 어떤 리워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때는 그게 재미있었어요. 많이 쓰는 게 재미있었고, 열심히 하고 싶은 부분이 컸죠. 아무래도 내부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할 사람이 적다 보니까, 그렇게 열심히 하면 추진이 될 것 같기도 했고요. 이런 게 나중에는 큰 도움이 됐죠. 많은 글을 빨리 쓰다 보니 빨리 쓰는 요령이 늘었죠.
LE: 지금도 글을 많이 쓰고 계시는데, 자신을 글 기계라 생각하시나요?
작년까지는 그런 거를 못 느꼈는데, 올해 사실은 제가 쓴 글을 모아서 정리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쓴 글이 저한테 없는 글을 빼고, 있는 거만 1,400개 정도 되거든요. 그래서 1,400개를 다 모아서 링크를 찾아서, 정리하고 이럴 수가 없잖아요. (웃음) 제가 돈이 많았으면 누군가를 시켰을 텐데…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우선 포기를 했어요. 1,400개가 많은 수인지 적은 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하루에 한 개는 썼다는 거잖아요. 만 4년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나름 열심히 썼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모든 글이 다 잘 쓴 글은 아니어서 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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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글을 쓰기 시작한 게 힙합엘이가 처음이긴 하지만, 그 이후에 수많은 웹진에서 함께하게 되시잖아요. 일단 음악 관련 웹진부터 쭉 이야기해볼게요. 대략 힙합엘이, 스캐터브레인(Scatterbrain), 웨이브(Weiv), 아이돌로지(Idology), 비하이프(Beehype), 뮤직매터스(Musicmatters) 이 정도로 알고 있어요.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가 볼까요? 일단 스캐터브레인이란 웹진은 소개부터 필요할 것 같아요. (웃음)
스캐터브레인은 2011년에 힙합엘이를 하고 얼마 안 돼서부터 힙합 이외의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싶어서 찾아다니다가 만나게 됐죠. 당시 스캐터브레인은 오픈형 체제여서,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었어요. 그래서 2011년 11월 즈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죠. 지금은 잘 안 돌아가고 글도 많이 안 올라가지만, 나름 글이 많이 올라갈 때도 있었어요.
LE: 그럼 잘 되던 때는 스캐터브레인만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구상이 있었나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 같아요. 저는 스캐터브레인이 이미 글을 어느 정도 가진 상태에서 합류한 거였어요. 과거 스캐터브레인도 음악취향Y라는 웹진처럼 카페에서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만들어진 색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제가 많이 고민하진 않았어요. 대신에 기존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제가 톤을 맞춰가야겠다는 생각은 했죠. 그리고 스캐터브레인은 사실 자유로운 곳이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쓸 수 있었어요.
LE: 스캐터브레인은 사실 지금은 더 활동이 죽은 상태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될 예정인지 궁금해요.
제가 스캐터브레인의 인공호흡기였는데요. (웃음) 인공호흡기가 멈춘 상태라 모르겠어요. 사실은 작년까지만 해도 에너지가 좀 있어서, 몇 개 글을 쓰기도 했는데… 요새는 에너지가 없어서 잘 안 되고 있죠. 전체적으로 동력이 떨어진 상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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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웨이브의 경우에는 2014년에 들어가시는데요. 졸업 이후 공채에 떨어지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시기에서 만난 웹진인 걸로 알고 있어요. 이곳을 통해서는 힙합 이외의 글도 많이 쓰셨잖아요. 어떻게 웨이브와 함께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해요.
아마 인터뷰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 같으니까 언급하면… 웨이브에 차우진 님이라고 전 편집장님이 계세요. 지금은 메이커스(Makeus)에서 근무하고 계시는데, 그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해야 해요. 실제로도 제일 감사한 분이고요. 2013년 상반기에 공채를 많이 넣었어요. 이쪽 관련된 곳에도 많이 넣었고, 대기업 보험사 같은 관련되지 않은 곳에도 넣었고요. 그래서 영업 부서 같은 곳은 거의 합격까지 가기도 했는데… 2013년 당시에 저한테 선택지가 몇 개 있었어요. 문화 산업 관련된 취업을 하든지, 음악을 하든지, 음악에 관련된 글을 쓰든지, 일반 직장에 들어가든지, 최후의 보루는 공부하든지 등이었죠. 그 다섯 개 중에 제일 먼저 택한 선택지가 음악과 관련된 회사에 들어가는 거였어요. 당연히 그게 제일 안정적이고, 하고 싶은 것과 맞닿는 거니까. 그런데 다 떨어졌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 택한 선택지가 글을 써보잔 거였어요. 그래서 잘 되든 안 되든 이것도 해보자고 해서 해봤고, 신기하게도 이 일은 시작하면서부터 가속이 좀 붙었어요. 찾는 사람도 조금씩 계속 생겼고, 그게 점차 잘 되고 있다는 거를 조금씩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 쥐게 됐죠. 그게 지금까지 온 거고요.
LE: 그럼 그 선택지를 고르는 과정에서 차우진 씨를 만나신 건가요?
이 선택지를 고르고 나서, 2013년 말에 만났죠. 감사하게도 저에게 몇 번의 기회를 주시고, 많이 챙겨주셨죠. 글이나 방향이나, 이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행보나 이런 부분을 많이 조언해주셨어요.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도 도움이 되고 있고, 그래서 웨이브에도 글을 쓰게 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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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사실 요즘 취업이라는 게 쉽지 않아서 공채라는 게 한 번에 붙는 게 말이 안 되기도 하고, 그래서 두 번 세 번 시도 하는 건 예삿일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한 번 만에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 생각해보면, 취업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바로바로 결과를 봐야 했고, 그게 가장 큰 이유였죠. 환경이나 성격적인 측면에서도요. 그리고 이 바닥은 TO가 별로 없는 게 느껴졌어요. 자리가 없는데 비집고 들어가기보다는 제가 제 일을 만들면서 발전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빠르게 전환을 했죠.
LE: 지금 사회에서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프리랜서 생활이 주는 즐거움이라든가, 이점 같은 것도 있을까요?
저는 직장 생활을 잘 모르지만, 장단점이 있겠죠. 직장 생활이 가지는 장점도 물론 있어요. 돈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표면적으로는 퇴근이 정해져 있잖아요. 프리랜서가 가지는 장점은… 솔직히 말해서… 있나? (전원 웃음) 아니 돈을 많이 받기를 해, 늦잠을 잘 수 있기를 해… 오전에 미팅이 있거나 하면 부리나케 (직장인들이랑) 똑같이 일어나서 지옥철을 타야 해요. (웃음) 사실 큰 장점은 없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프리랜서는. (웃음) 개인적인 측면에서 ‘나’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와 그걸 성장시킨다는 뿌듯함과 성취감 정도는 있지만, 일이 많아지면 많아지는 대로 피곤하고, 내가 나를 컨트롤 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기도 하고… 장점이 없네요. (웃음)
LE: 사실 프리랜서라는 게 일이 있는 만큼 돈을 벌고, 또 일이 없으면 생존을 못 하잖아요. 그 안에서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문제점도 있을 것 같아요. 이를 테면, 원고료 체불이라든가, 생활하기에는 극히 낮은 원고료 책정이라든가요.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사는 데 있어 단점 중 하나는 생활고라는 건데요. 사실은 생활고가 프리랜서한테만 있는 거는 아닌 거 같아요. 일용직이나 계약직이신 분들 모두의 고민인 거 같아요. 그리고 고료에 대한 문제는 사실 애매해요. 전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기준이 없기 때문에, 매체마다 주는 고료 차이가 천지 차이죠. 그래서 감사하게 많이 주는 곳도 있고, 아쉽지만 적게 주는 곳도 있어요. 구조적 문제는 사실 어느 업계든 다 존재하고, 한국 전반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만화 업계도 윤태호 씨가 고료 얘기를 많이 했잖아요. 그런 걸 보면 만화계도 금액적인 문제가 뚜렷하게 존재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레진 코믹스(Lezhin Comics)나 네이버(Naver) 웹툰 같은 큰 곳이 조금씩 움직이려는 거 같더라고요.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죠. 글의 퀄리티보다는 글 쓰는 사람의 인지도나, 매체의 자본에 많이 좌우되는 게 현실이기도 해요. 오랜 시간 동안 동결된 고료가 존재하기도 하고요. 시스템 전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겠죠. 솔직히 저는 나라 탓을 많이 하고 싶어요.
LE: 많지는 않겠지만, 프리랜서 글쟁이를 혹여나 희망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그 친구들에게 충고 한마디 해주세요.
입사를 하세요. (전원 웃음) 안정된 생활을 한다는 거는 굉장히 중요해요. 어디 들어가서도 글을 쓰는 일은 할 수 있어요. 굳이 이쪽에 관련되지 않은 일에 종사해도, 이쪽에 관한 글을 쓸 수 있고,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다 각자의 사정이나 현실을 ‘진정성’이라는 이름 앞에 그만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투잡이나 그런 게 결코 나쁜 게 아닙니다. 한 번 살 때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한다는 자체가 열심히 산다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좋은 곳에 들어가세요. (웃음) 그래서 조금씩 여유를 찾은 뒤에, 이 일을 생각해보셔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본인이 절체절명의 사명감이나 ‘나는 이 일만 할 거야. 내가 이 씬을 바꿔보겠어’라고 생각하며 엄청난 사명감이 있다면, 솔직히 말리고 싶지만, 대신에 굉장히 힘들다는 거는 알아주셨으면…
LE: 그럼 현재 블럭 씨의 마인드는 어떠신가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는 운이 아주 좋은 편이에요. 운이 너무 좋아서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제가 지금 유명하고 대단하다는 게 아니라, 어쨌든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는 벌고 있는 게 단순히 제가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운이라는 게 언제 끝날지 모르잖아요. (웃음) 그래서 저는 늘 열심히 할 수밖에 없죠. 직장은 솔직히 기회가 오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이 일이 에너지를 정말로 많이 필요로 하고, 스스로를 컨트롤 해야 하고 이런 게 힘에 부치는 순간이 있죠. 그래서 회사는 솔직히 갈 수 있으면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죠. 저는 뭐, 사명감이나 이런 거는 사실 많지 않아서…
LE: 다시 웨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웨이브를 통해서는 네이버와도 계약했던 인터뷰 시리즈 <힘들게 만난 사람>을 하셨잖아요. 그 시리즈를 하면서 가수가 노래 제목 따라가듯 글쟁이도 시리즈 제목 따라간다고 느끼셨다고…
일단, 하게 된 계기는 네이버와 웨이브가 콜라보를 하게 된 거여서 저한테도 기회가 찾아왔죠. 격주로 인터뷰를 내보내는 거였죠. 격주로 인터뷰가 나가되 일반 언론사 인터뷰처럼 짧게 나가는 게 아니라 깊게 파보는 거였고, 해당하는 대상 역시 음악가보다는 이쪽 일을 하시는 종사자 분들이었죠. 힘들게 만난 사람이라는 이름은 다 바쁜 분들이라 그분들을 힘들게 찾아뵙는다는 의미였는데, 나중에는 제가 힘들게… (웃음) 주어가 달라졌죠. (웃음) 어쨌든 간에 힘들게 만난 사람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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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를 만난 것(링크)도 그렇고, 지소울(G.Soul)을 만난 것(링크)도 그렇고 좋은 경험을 했고, 또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당시에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소회 같은 게 있을 것 같아요.
격주로 인터뷰를 내보낸다는 거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닌 거 같아요. 인터뷰 대상을 정하고, 컨택을 하고, 스케줄을 조율하고, 직접 만나러 간다는 자체가 조금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게 있었죠. 마이클 부블레 같은 경우는 좀 급하게 정해져서 빨리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영어로 하는 인터뷰가 저는 피곤해요. (웃음) 제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까, 영어로 하는 인터뷰를 할 때는 어떻게 하긴 하는데, (녹취를) 풀 때 힘이 들어요. 그리고 말을 굉장히 빨리 하거나 하는 경우는 한참을 다시 듣는 경우도 있죠. 사실 한국어도 사투리가 강하거나 억양이 세면 힘든데… 그리고 인터뷰 대상이 직전에 정해진다든가 해서 좀 힘이 들긴 했는데, 제가 언제 마이클 부블레 인터뷰를 해보겠어요. 네이버라는 이름 덕분에 좀 큰 인터뷰를 할 수 있던 것도 있고, 저한테는 얻는 부분이 훨씬 많았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LE: 글도 쓰지만, 사실 앞서 말한 <힘들게 만난 사람>은 물론, 힙합엘이 인터뷰까지 수많은 인터뷰를 하러 다니셨잖아요. 사실 힙합엘이 인터뷰를 진행할 때, 깨알 같은 과거 사실이나 전적, 이력을 뽑아내는 건 거의 오로지 블럭 씨의 몫인 적도 많았는데요. 그게 힙합엘이 인터뷰가 가진 탈탈 털어먹는 스타일의 기틀이 되어주기도 했고요. 인터뷰 질문을 짤 때나 인터뷰에 임할 때 본인만의 노하우나 철학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해요.
사실 중점에 두는 거는 딱 한 가지에요. 남들이 안 한 질문을 하는 게 우선적이죠. 또, 이미 인터뷰를 많이 하신 분을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기존의 질문을 다시 하는 거는 가급적 하고 싶지 않아요. 좀 디테일한 경험이나 이런 부분은 힙합엘이 인터뷰가 어느 정도 브랜딩 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요소로 가져가고 싶었어요. 세세한 거 물어보면 재미있잖아요. 인터뷰할 때도 그냥 단답형으로 나오거나 하는 경우는 “왜?”라는 질문을 한 번 더 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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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아이돌로지에는 뜨문뜨문 <아이돌 코드>라는 독특한 시리즈를 연재하고 계시잖아요. 어떤 시리즈인지 설명해주시고, 또 그 시리즈를 대표하는 글 몇 개 정도를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돌로지는 만들어질 때부터 알고 있었고, 아이돌에 관한 글은 아이돌로지가 생기기 전부터 몇 번 쓰고 있었어요. 사실은 상황상 아이돌로지까지 할 수 없었어요. 그때는 웨이브도 하고 있었고, 웹진이 많았으니까. 어쨌든 아이돌로지는 올해 들어오면서 시작하게 됐고, 리뷰도 쓰고, 퍼스트 리슨(1st Listen)이라는 정규적인 글도 쓰고 있고, <아이돌 코드>라는 시리즈도 쓰고 있어요. 아이돌 코드는 예를 들어서 어떤 그룹이 앨범을 내고 어떤 활동을 할 때, 음원이나 안무, 뮤직비디오 이런 것들이 다 하나로 묶이곤 하잖아요. 그래서 그 자체를 좀 분석하는 거를 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좀 말도 안 되는 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을 재해석해보고 싶었죠. 예를 들면, 신화라는 그룹이 어떻게 나이를 먹어가는가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잖아요(링크). 그리고 현아가 “잘나가서 그래”라는 곡과 뮤직비디오를 냈었잖아요. 그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이는 수영복이나 네온으로 대표되는 이미지가 사실 몇 년 전에 <Spring Breakers>라는 영화에서 쓰였던 이미지랑 비슷하거든요(링크). 그런 것들을 비교해서 쓴다든지 하는 그런 글들을 쓰고 있죠.
LE: 알기에는 아이돌로지의 경우에는 약간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또 그리고 본인이 이야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영역으로의 확장 같은 느낌으로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아이돌 음악, 아이돌 산업, 아이돌 평론에 관한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계실 것 같기도 해요.
일단 저는 민속학을 배운 게 좋았던 거 같아요. 저는 가치판단을 하기 전에 우선 현상에 관심을 보이거든요. 그래서 아이돌 같은 경우에도 이것이 좋다 나쁘다 가치 판단을 하기 전에, 여기서 어떤 곡들이 어떻게 나오고 등이 궁금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업이나 가치의 측면에서 현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편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아이돌 자체가 좋다 나쁘다 보다는 거기서 나오는 곡이 좋다 나쁘다 혹은 뮤직비디오가 좋다 나쁘다고 말하지, 그 자체를 딱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보지는 않아요. 아이돌 산업 자체를 장기적으로 점치는 사람들도 있고, 한국 음악 산업의 미래로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거기까지 역량은 안 되는 거 같아요. 역량 이전에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게 이 바닥이기에… (웃음) 여자친구가 “오늘부터 우리는”으로 잘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크레용팝(Crayon Pop)이 “빠빠빠” 들고 나왔을 때도 그렇고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매력인 거 같기도 해서, 현상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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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비하이프의 경우에는 외국에 한국의 음악을 영어로 소개하는 글을 쓰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처음 시작을 하게 됐고, 나름 개인의 의의 같은 게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우리의 것을 세계로… (전원 웃음) 이런 건 아니기 때문에 엄청난 의의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이미 앞서 많은 웹진을 말했지만, 그래도 비하이프는 조금 더 소개하고 싶어요. 일차적으로 우리가 대부분 접하는 외국의 음악은 영미권의 팝 음악이잖아요. 그런데 비하이프를 가면 각 나라에 있는 로컬 음악을 접할 수 있어요. 그런 부분이 굉장한 큰 매력이고, ‘엄청나게 작은 나라에도 로컬 음악이 있구나.’를 느낄 수 있어요. 어디였지…어떤 제도가 있어요. 아! 몰도바(Moldova). 몰도바에도 로컬 음악이 있거든요. 그 정체성 자체로도 이미 힙하잖아요. (웃음) 실제로도 굉장히 특이한 음악이 나와요. 특이하다는 게 민속 음악이라 특이하다는 게 아니라, 그 나라가 가지는 정서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똑같은 모던록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하더라도, 그 위치성에 따라 색깔이 많이 달라지고 각각의 분위기가 존재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한국 음악을 얘기하지만, 또 외국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자체가 좋아서, 이 사이트를 더 알리고 싶어요. 비하이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선 저에게 먼저 연락이 왔어요. 우연히 웨이브를 통해 저를 알게 됐고,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이 폴란드(Poland) 사람인데 그분이 한국에도 관심이 있고 해서 자연스럽게 쓰게 됐죠. 현재는 저도 로컬 음악을 계속 소개하고 있어요. 제가 로컬 음악을 소개했을 때, 거기서 관심을 보여서 다른 나라에서 그걸 보고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고요. 예를 들어서, 이승열 씨 노래였나? 트램폴린(Trampauline)의 노래였나? 둘 중 하나를 비하이프에서 보고 그리스(Greece)에서 기사를 쓰기도 하고, 그런 독특한 경우가 있어요(링크).
LE: 음악 이외의 글 쓰는 곳에 관해 이야기하면, 여성주의 웹진인 일다와 고함20이 있잖아요. 일다의 경우에는 굉장히 오랜 기간 페미니즘과 음악을 엮어 글을 쓰신 걸로 알고 있어요. 활동하게 된 계기나 활동하면서 느낀 점 같은 게 남다를 것 같기도 해요 특히 일다는.
얘기가 좀 길어질 수도 있는데, 여성주의나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잘 모르다가 군대가 발단이 됐어요. 군대에서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불편함을 많이 느꼈고, 그 불편함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하다가 찾게 된 개념이 페미니즘이었어요. 그래서 전역한 이후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대학교 다니면서는 여성주의 교지를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는 여성주의 활동을 조금이라도 이어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일다에 제가 먼저 연락을 했어요.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고. 그래서 글을 몇 개 써서 보냈고, 감사하게도 일다에 계신 분들이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의해주셨고요. 그래서 그게 시작이 돼서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죠.
LE: 군대에서 그런 불편한 부분을 느끼면서 페미니즘이란 개념을 찾았다고 하셨는데요. 근데 사실은 한국 남자들이 군대를 다녀온다고 하더라도 “아, X같네.”하면서 그냥 버티고 나오는 게 일상다반사잖아요. 그런 걸 정말 불편하게 생각해서 이걸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혹은 생각해야 할까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되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여튼 그래서 군대에서의 부조리로 인해서 페미니즘에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일반적인 한국 남자들에게는 상상력 밖의 일인 것 같기도 해요.
근데 군대에 가기 전,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도 그 불편함을 인식하고는 있었죠. 알게 모르게 불편함을 겪고 있었는데, 그 불편함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몰랐을 뿐이죠. 단어를 찾지 못했던 거죠. 단적인 예로, 어릴 때 학교에서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루종일 왼손을 묶여 있기도 했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경험들부터 불편함 느끼기 시작했던 거겠죠. 그런 일들도 있었고… 중학교 때는 커밍아웃한 친구도 있었고요. 그런 경험을 일찍 일찍 한 덕분에 그 불편함이란 걸 알고 있었고, 2010년이 되어서야 그걸 표현할만한 단어를 찾았던 거고요. 이후에도 계속 한국 사회가 가진 문제점이라든지, 그 안에서 남성성이 발현되었을 때의 문제점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느끼고 있었고요. 일단 환경이 좀 더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집에서 가사 노동을 해왔던 것도 어떻게 보면 경험의 하나고요. 제가 막 특별히 유별나서 그랬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실은 모두가 느끼는 불편함인데, 다만 저 개인이 그걸 조금 더 일찍 찾았고, 조금 더 일찍… 사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일찍도 아니에요. 어쨌든 그래서 그에 관해 말하게 된 거로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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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일다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하면,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 니키 미나즈(Nicki Minaj)는 물론이고, 여러 뮤지션에 관해 여성주의적 측면에서 일다에 글을 쓰신 걸 본 적이 있는데요. 근데 제리케이(Jerry.K) 씨의 “You’re Not A Lady”에 관해 썼다가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링크). 그 당시 느낀 점이 궁금한데요. “You’re Not A Lady”가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곡이라고 해도 어쨌든 교조적인 뉘앙스로 곡이 보일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성급했구나.’ 그때 (그 시리즈를) 격주로 연재했었어요. 한 1년 반인가, 2년 썼나? 격주로 계속 쓰면서 솔직히 말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고민의 깊이가 줄어든 게 사실이에요. 빨리 써야 하니까. 계속 뭘 써야 할지를 찾고 하다 보니까요. 그리고 “You’re Not A Lady”는 제리케이라는 래퍼를 좋아하고, 또 그 곡을 좋아할 수 있는 측면이 있으니까 좋아했었어요. 그래서 그걸 한번 써보자 했는데, 제가 좀 고민을 그만큼까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빠르게 사과했고, 그 글을 쓰고 난 다음에 더 늘어났죠. 어떤 음악을 골라서 어떻게 써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그러다 보니까 이 매체와 이 지면에 적합한 음악을 더 열심히 찾게 되었죠. 그 덕분에 더 좋은 음악을 많이 소개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제 이름을 치면 스카웨이커스(Ska Wakers) 앨범을 소개한 글이 많이 나오더라고요(링크). 왜 그런지도 모르겠고, 실제로 많이 읽으셨는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때의 반성이 도움이 됐죠.
LE: 사실은 여성주의적 인식론이라는 게 워딩 자체에 ‘여성’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그렇지, 사실은 인식론적으로 따져 보면 ‘A는 B다.’ 식으로 딱 규정해놓고서 사물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자는 게 여성주의의 기저에 깔린 가장 기초적인 생각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런 인식론을 기반으로 해서 글을 쓰고, 말을 하기 때문인지 블럭 씨는 무언가에 관해 공격하는 식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이런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는 식으로 글을 쓰고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런 인식론적인 측면이 단순히 페미니즘에 관련된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본인이 하는 일 자체에도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죠. 굳이 일다에 쓰는 글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글을 써놓고 나서 그런 지점에서 문제가 있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인식론이 글을 쓰는 데에 있어서 보다 섬세하게 쓰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됐죠. 단적으로 이건 이렇다고 쓰지 않게 되는 거죠.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 곡이 왜 불편한지, 어떤 점이 불편한지 얘기하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LE: 사실 올해는 페미니즘 측면에서 한국 전체가 그런 불편함을 느끼는 한 해이기도 했잖아요. 여전히 못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조금도 체감하지 못했던 남성들도 ‘아, 이런 걸로 불편함을 느끼는구나.’ 깨닫기도 하고요. 메르스 갤러리, 메갈리아라든가, 기타 등등 여러 집단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는데요. 근데 올해 화두가 되기 전인 시점부터 그에 관해 생각하고, 글을 써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는 그전부터 해왔는데…’ 약간 이런 생각도 들 것 같기도 해요. 또, 올해 한국에서의 여성혐오, 혹은 페미니즘의 흐름에 관한 본인의 생각도 궁금해요.
제가 먼저 썼다는 식의 생각은 전혀 없고요. 페미니즘에 관해서는 사실 얘기하고 싶은 것도 많고, 얘기해야 할 것도 되게 많지만, 어쨌든 올해를 전후로 화두가 되고 더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게 된 건 되게 좋다고 생각해요. 어떤 식으로 얘기하든 좋은 거 같아요. 근데 그런 것들을 지적하는 데에 있어서 누구나 공부는 당연히 필요하죠. 제가 그런 지적을 하다가 잘못을 했을 때, 반성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단적인 예로 어느 연대체를 가든, 신입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가 당연히 있고요. 그리고 뭔가 이런 것에 관해 처음 눈을 떴을 때, 알아가는 과정이 당연히 있죠. 비단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이든, 어떤 관심사든 간에 뭐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과정이 재미도 있고요.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그런 얘기를 해요.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고, 과격한 지적을 하다가 조금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좀 공격적으로 임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걸 다시 지적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페미니즘은 문제다.”라고 하며 지적에 지적을 하곤 하는데, 사실 저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페미니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본인이 불편하게 느끼는 걸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얘기를 하는 데에 있어서 페미니즘과 반대되는 지점의 방식으로 얘기했다면 반성해야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건데, 문제는 그 다음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반성을 하고, 페미니즘적인 태도로 나아간다 혹은 그렇지 않고 삐뚤어진다 두 가지 경로가 있을 텐데… (웃음) 그래도 저는 페미니즘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반성을 한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이야기 자체가 많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저는 지금의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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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해서 이야기를 좀 연결해보면, 최근에 고함20을 통해서 각 대학교의 여성주의 학회를 인터뷰하고 다니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링크). 근데 고함20같은 경우에는 20대 끝자락에서 약간 불꽃을 피우듯이 들어가 활동하는 느낌이기도 해요. 블럭 씨가 지금 20대 끝자락이니까요. 29살. 20대가 거의 끝나가는 무렵에 고함20이라는 대안언론 매체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렇게 말하면 좀 웃긴데, 20대의 마지막에 들어서 ‘내가 20대로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고 생각해봤었어요. 남들은 이때 내일로 여행은 간다든지, 불 같은 연애를 한다든지 하겠지만, 저는 20대로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게 20대 매체에서 글을 쓰는 거라 생각했어요. (웃음) 좀 등신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저한테는 그게 제일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20대 매체가 몇 개 있지만 그중에서 이미 알고 있고 제일 좋아했던 고함20과 얘기를 나눠서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런 이유로 고함20을 시작하게 됐죠. 하게 되고 나서 재미나 보람 두 가지를 많이 느꼈어요. 시야가 넓어지는 것도 느꼈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도 느꼈고요. 경험의 폭도 넓어지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어가는 것도 있었고요.
LE: 근데 내년에 서른이 되면 바로 ‘강퇴’인가요? (웃음)
그게… 고함20 내부 규칙 같은 게 있는데, 기준이 ‘만’이라고 하더라고요. 한 1년 정도는 더 할 수 있겠죠. 그래 봐야 1년이지만…
LE: 그래서 고함20에서의 활동 같은 경우에는 음악 관련 글은 안 쓰시고 다른 것에 관해 쓰시잖아요. 기억나는 걸로는 조선일보의 달관 세대 프레임에 관한 글도 있었던 것 같고(링크), 청년 희망 펀드에 관한 글도 있었던 것 같아요(링크). G버스에 관한 글도 쓰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링크). 이렇게 문화예술 쪽보다는 어떤 사회 현상에 관해 글을 쓰시니까 고함20에 쓰는 글을 약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쓰실 것 같기도 해요.
일단 고함20의 화두 자체가 세대 담론인데, 그중에서도 세대 담론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20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목표 중 하나에요. 그러다 보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얘기를 해야지.’ 생각하고 쓴다기보다는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야 그 사태에 관해 쓰는 경우가 워낙 많은데… 사실 ‘병크’는 매일 터져요. (전원 웃음) 하루도 쉬지 않고 터지기 때문에 글을 써야 할 건 되게 많아요. 그게 비단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고요. 2012년 때부터 대자보를 매일 써야 하나 싶었던 게 몇 년 째 이어지고 있는 거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러다 보니까 저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아지고요. 무엇보다 그런 얘기들을 할 때, 항상 답답했던 건 당사자를 배제하고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였어요. 하다못해 음악 글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저는 빠져 있는 거예요. (웃음)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음악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에 관해 이야기할 때 저는 거기에 없고, 청년 혹은 20대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거기에 없는 거예요.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해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자기가 자기 목소리를 내야 듣는 사람도 생기고, ‘이런 게 있구나.’ 알고, 후회도 안 할 테니까 그런 얘기를 많이 했던 거예요. 특히나 올해는 조선일보의 프레임 만들기에 되게 감탄을 많이 했었어요. 달관 세대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세 개씩 쓴 것도 조선일보고, 얼마 전에 아무것도 안 하면서 ‘헬조선’이라는 단어로 분노만 한다는 기사를 쓴 것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그쪽 계열 신문이고요. 그들이 20대나 청년을 개새끼로 만들면서 그런 프레임을 만들어가는 거에 감탄도 했고, 제가 또 거기서 무력감만 느끼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고함20에) 글을 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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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좀 다른 이야기도 해볼 텐데요. 이건 매체 관련 이야기는 아니고요. 영화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우선, <금요일은 수다다> 관련된 내용을 좀 여쭤볼게요. 알기에는 <금요일엔 수다다>에서 작가 역할을 잠깐 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당시에 준비하면서 정말 매번 하셨다고 들었어요. 해서 에피소드 같은 게 있으시면 얘기해주세요. 아니면 그때 <금요일엔 수다다>에 출연하셨던 칼럼니스트 김태훈 씨와 관련된 얘기라든가…
에피소드랄 건 별로 없고, <금요일엔 수다다> 작가를 그 기간 내내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세 달 동안 했었어요. 그중에서 <영화 들려주는 남자>라는 코너였어요. 김태훈 씨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어느 정도 쓰는 게 제 역할이었죠. 사실 작가라는 직업이 되게 힘들어요. 제가 경험한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요. 특히, 막내 작가분들은 정말 본인 생활 없이 일 하나에 올인을 해도 힘겨운 경우도 많으니까요. 저도 코너 작가였음에도 (좀 힘들었었죠). 처음에는 어떤 영화에 관해 쓸지를 고르는 결정을 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었어요. 그걸 결정하고 나면 스크립트를 쓰고, 녹화하면 녹화 현장 가서 보고, 끝나고 나서 가편집한 걸 모니터링을 해요. 모니터링을 하고, 가편집한 것 위에 자막을 써요. 그 가편집본이 보통 전날 밤에 나와요. 그래서 그 새벽에 자막을 쓰고, 당일 날 방송이 나가고 그런 식이죠. 그러다 보니까 힘들 수밖에 없었죠. 저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힘든 시스템이고요. 어쨌든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꽤 중요하고… 그리고 그만둔 이유가 사실은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 뒤에 원래 하기로 한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그 프로젝트랑 작가 일이랑 날짜가 겹쳐서 어쩔 수 없이 그만뒀는데, 하기로 했던 프로젝트가 빠그러지면서 강제적으로 백수가 됐던 적이 있었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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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근데 <금요일엔 수다다>도 그렇고요. 함께 한 적이 있던 공중파 프로그램마다 다 종영을 시킨 ‘신화’를 세우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웃음) 그 본인이 함께하다가 종영했던 프로그램들을 좀 나열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렇죠. JTBC에 <김국진의 현장박치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제가 종영시킨 건 당연히 아니고요. (전원 웃음) 다만, 종영과 겹쳤을 뿐이죠. 그 프로그램에서는 한두 달 동안 일을 했었는데, 작가는 아니고 거기 코너에 들어가는 음악을 만드는 역할이었어요. 그때 꾸역꾸역 만들었었는데, 어쨌든 종영이 됐고…
LE: 아, 음악을 ‘만드는’ 일이었군요.
네. 또, 아까 얘기 나왔던 <금요일엔 수다다>가 종영됐고, KBS 제3라디오에서 <이상호의 스튜디오 1049>라는 프로그램에 나갔었는데 그것도 종영이 됐죠. 그래서 다 종영을… 시키진 않았고 종영이 되었습니다.
LE: 그렇군요. (웃음) 영화 얘기를 좀 더 길게 해보면 좋을 것 같은 게 영화도 음악 못지 않게 꽤 많이 접하시는 걸로 알고 있고, 또 영화제에 스탭으로 참여하신 적도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일단 어느 영화제에서 어떤 업무를 했었는지부터 여쭤볼게요.
제대로 참여한 건 한 번인데, 2013년에 EBS 국제다큐영화제를 할 때, 프로그램 노트라고 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쓰는 걸로 참여해서 네 편의 소개 글을 썼었죠. 그다음에 영화제를 하면 보통 GV(Guest Visit)가 있잖아요. 보통 모더레이터, 해설자, 혹은 감독을 모시고 진행하는데, 모더레이터로 두 번 나갔었죠. 나가서 진행하고… 사실 영화제 관련된 경험은 그게 전부긴 하지만, 그것도 개인적으로는 너무 일찍 찾아온 기회였죠. 그때 프로그램 노트를 쓰신 분들도 엄청난 분들이셨고요. 모더레이터하셨던 분들도 엄청난 분들이셨는데, 어떻게 보면 제가 땜빵의 느낌으로 했던 거라도 어쨌든 그걸 할 수 있었다는 게 저한테는 엄청난 기회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향후 몇 년간 그런 기회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저한테는 감사한 일이었죠. 그러니까 계속 이야기하지만, 이런 것만 봐도 저는 진짜로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아서 남들 못해보는 그런 것도 다 해볼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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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영화제에서도 소개 글을 쓰는 일을 하셨고, 블럭 씨가 가장 많이 활동하는 형태가 글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궁금했던 게 너무 많아서 하나를 콕 찝어서 얘기가 힘드실 것 같기는 한데, 지금까지 썼던 글 중에 가장 잘 썼다, 가장 고민을 많이 담아냈다, 혹은 가장 재미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인상적이다 등등 어떤 감상이든 좋으니까 긍정적인 측면에서 본인 마음에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싶은 결정적인 글이 있는지 궁금해요.
일다에 쓴 글들은 그래도… 제가 일다에 쓸 때만큼은 정말 고민을 되게 많이 하고, 공부도 되게 많이 하고 그랬었어요. 일다에 쓴 글들은 많이들 읽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소재는 음악이었지만, 그것과 관련해서 페미니즘을 많이 이야기할 수 있었고요. 사실은 요즘 같은 때에 더 많이 해야 함에도 못하고 있어서 더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외에도 몇 개가 있어요.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의 [Food & Liquor II: The Great American Rap Album Pt. 1] 리뷰도 좀 열심히 쓴 거 같고요(링크).
LE: 그게 <아메리칸힙합>에도 실린 원고죠?
아마 그럴 거예요. 그거랑 자넬 모네(Janelle Monae)에 관해 쓴 글이 있는데요. 자넬 모네가 가진 컨텍스트랑 연결되는 게 <메트로 폴리스>라는 영화랑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가 쓴 소설 등 몇 개가 있어요. 그런 것들을 다 소개한 글도 있었어요. 힙합엘이 연재 기사 시리즈 중에 아티스트 열전으로도 올라가 있죠(링크). 그것도 봐주셨으면 좋겠고요. 올해 고함20에 쓴 글들도 나름대로 되게 고민을 많이 하고 쓴 글들이라서 역시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LE: 이번에는 글 이외의 일 중에 또 이렇게 언급할만한 게 있을까요? 프로젝트, 강연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죠?
제가 일을 많이 해서 기분도 좋고, 보람도 있고 그랬던 건 역시 2014년에 했던 EBS 국제다큐영화제고요. 사실은 힙합엘이 자체가 제일 큰 거고, 제일 해온 것 중에 가장 큰 무언가에요. 제가 다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왔다는 게 신기한 거 같아요. 프로젝트는… 제가 제 커리어를 다 기억을 못 해서요. 패션 잡지 아레나(ARENA)에 계속 썼던 <영광의 앨범>이 기억나네요. 남들이 얼마나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의미가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작년에도 그런 비슷한 포맷으로, 앨범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로 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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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지금까지 했던 것 말고도 하고 싶은 것이 많긴 하시겠지만, 앞으로 써보고 싶은 글, 만들어보고 싶은 콘텐츠, 성사시켜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많아요. 정말 많은데, 요즘 얘기하는 건 두 가지에요. 하나는 <힘들게 만난 사람>을 다시 해보고 싶고요. 하나는 <파 프롬 홍대>를 다시 하고 싶어요(링크). <파 프롬 홍대>가 앞에서 얘기는 안 했지만, 기억에 남아요. 기억에 남는 만큼 아쉬움도 많았어요. (당시) 여건상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시간이 막 나질 않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일주일 동안 그 지역에 있으면서 정말 천천히 둘러보고, 각각의 플레이스마다 방문해서 계시는 분들의 인터뷰를 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되게 후다닥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아쉬운 점이 되게 많고, 아직 가지 못한 지역도 많고요. 그래서 가장 다시 하고 싶은 건 단연 <파 프롬 홍대>에요. 그 지역에 분명히 싸이퍼를 하는 장소가 있고, 프리스타일 래퍼가 있고, 스트릿 샵이 있고 할 텐데도 오히려 그 지역 사람들도 몰라서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근데 그런 것들을 아주 속속들이 취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어요.
LE: 다시 해보고 싶은 것 말고 아예 새로운 것도 있나요?
아예 새로운 건 사실 있어요. 있는데, 이런 건 정말 ‘지 키 지 못 할 약 속’이긴 한데… 몇 개가 있어요. 하나는 소울 컴퍼니(Soul Company)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요. 몇 년 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소울 컴퍼니라는 집단이 화려하게 꽃 피웠다가 사라졌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아직까지 되게 많이 활동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모습이 되게 많이 바뀌었고요. 그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인터뷰를 따고, 자료 화면도 공개적으로 구하고, 그렇게 해서 소울 컴퍼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아예 장편으로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데 못하고 있는 거고… 재미도 있고, 가치도 있을 것 같지만, 저한테는 지금 동력이 없기 때문에… (전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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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누가 투자를 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그렇죠. 펀딩을 하고, 촬영 인력을 구하고 그래야 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사실 작년에는 일을 벌이는 게 쉬웠어요. 무슨 제의가 들어오면 무조건 예스였어요. 내가 하겠다, 내가 하겠다, 내가 하겠다 이렇게 해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었어요. 근데 올해는 주저하게 되는 것도 있고, 새로 무언가를 벌릴 자신이 준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이 더 많이 늘고, 아이디어가 위축되는 것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편 다큐멘터리 같은 건 제가 좀 더 정신이 나가고, 철이 든 걸 좀 잊어버리고 투자하고 싶어요. 재미있을 테니까.
LE: 또 생각 나는 게 있을까요?
그 이상 얘기하면 지키지 못할 약속이기 때문에… (전원 웃음) 일단 꼭 하고 싶은 건 그거 하나.
LE: 사실 시작은 힙합엘이, 힙합에 관해서였지만, 알기에는 외부 기고의 경우에는 힙합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아주 많지는 않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그런 다양한 영역을 건드릴 수 있게 되신 건가요?
처음부터 제가 건들 수 있는 영역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여러 영역을 건드린 건 아니고요. (힙합이 아닌) 다른 쪽으로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건드린 거고요. 모르는 부분을 건드렸을 때, 비판받는 걸 되게 많이 봤고, 그래서 저도 모르는 건 얘기 안 하려고 해요.
LE: 본인이 다룰 수 있는 문화예술, 사회 현상의 영역이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은 안 하더라도 그래도 이런 계열은 건드리기 좀 힘들다 싶은 게 있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완전 하드한 헤비메탈 이런 쪽은 안 쓴다던가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내가 건드리기에는 이건 좀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 드는 부분이 어떤 게 있을까요?
모르는 부분도 많죠. 제가 헤비메탈에 관해 글을 쓸 수는 없고요. 록 음악에 있어서는 모르는 부분이 되게 많아요. 물론, 듣기는 하지만 그걸 다 얘기할 수는 없죠. 클래식에 관해서도 제가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없고요. (웃음) 클래식이든, 오페라든 이런 건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거고… 그런 식으로 제가 모르는 부분도 되게 많고, 얘기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아요. 음악 밖에서도 제가 차에 관해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스포츠에 관해서도 얘기할 수 없고요. 국내 프로 야구는 그래도 봐요. 워낙 오랫동안 LG 트윈스(LG Twins)를 봐왔으니까요. 근데 LG 트윈스 외에 다른 팀에 관해서는 많이 얘기할 수가 없어요. 얘기할 수 있는 부분에 비해서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은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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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주로 음악에 관한 글을 쓰시는데, 아무래도 음악이라는 게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에 조금 한계가 어느 정도 있기도 하잖아요. 소리적인 요소가 큰 예술이다 보니까 뭔가 구체화된 어떤 표현으로 설명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쓰지 못하게 되면 자칫 인상비평을 하는 걸로 보이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음악에 관해 글을 써오면서 머릿속에 유념해온 부분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확실히 음악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훨씬 더 어려운 거 같아요. 영화를 이야기하든, 사회 현상을 이야기하든 이런 걸 할 때보다 음악 자체를 이야기할 때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단적인 예로 어떤 힙합곡이 있는데, 그 곡의 드럼 소리가 되게 멋있어요. 킥 소리도 멋있고, 스네어 소리도 멋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킥 소리를 ‘묵직한’이라고만 쓰면 자칫 인상비평으로 보이거든요. 또 그렇다고 해서 어떤 희한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면서 킥 소리를 예찬할 수도 없고요. 그게 또 그렇다고 해서 제가 악기 소리의 원류를 찾아서 이 소스에서 피치를 이 정도 내린 듯하다고 쓸 수도 없고요. (전원 웃음) 실제로 그 사람이 피치를 내려서 썼는지, 이미 내려져 있는 건지 알 수도 없고요. 그런 점에서 되게 어려운 점이 많고요. 그런 부분도 아는 선에서는 쓸 수 있는데, 어쨌든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어려운 게 제일 많죠. 신스 소리에 관해 쓰면 이 신스 소리가 평상시에 얘기할 때는 “어, 신스 되게 날아다니는데 좋다.”라고 얘기하지만, 글에서 날아다니는 신스가 인상적이라고 하면 인상비평으로 보이게 되죠. 그런 부분에서 약간 한계를 느끼고, 제일 어려운 점인 거 같아요. 영화는 하다못해 어떤 장면에서 어떻게 카메라가 움직이고, 거기서 배우를 클로즈업하는데, 그 배우의 표현이나 그 배우가 풍기는 감정이나 이런 게 그래도 뚜렷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 관해 쓰는 게 음악에 관해 쓰는 것보다 쉽다는 건 아니고요. 영화는 그런 뚜렷한 지점이 있지만, 음악은 “이 곡의 1분 16초가 존나 쩔어.”라고 할 수 없잖아요. (전원 웃음) 훅이 좋다고 해서 “이 부분은 훅이 존나 좋아.”라고 하면서 훅만 길게 쓸 수도 없고요. 그런 어려움이 있죠. 그런 거에 있어서 아카데믹한 부분이 있으면 좋은데, 한국에는 그런 게 많지도 않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음악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서 실용음악과를 다시 간다고 해도 그걸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장담도 없고요. 여담이긴 한데, 사실 묵직한, 두터운, 둔탁한 이런 식으로 바꿔가며 표현하는 건 미국 쪽에서 잘해요. 외국 리뷰에서는 평상시에 안 쓰는 사전에나 나올법한 단어를 되게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LE: 그래서 그런 인상비평을 피하려고 글을 쓸 때 곡에 녹아 있는 악기, 이펙트, 주법 등 여러 음악적인 요소를 언급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단순히 인상비평을 할 때보다 좀 더 설득력을 끌어올리려는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음악 글 쓰는 사람이면 일부러 그런 걸 알아볼 때도 있잖아요. 잘 모르겠으면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찾아보면서요. 해서 음악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이 그런 음악적인 요소를 알고, 또 실제로 음악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저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완전히 해보지는 않더라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게 전혀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텍스트를 알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런 지식이 필요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하이 패스 필터나 로우 패스 필터 같은 걸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데요. 근데 그걸 (음악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이면) 모르는 걸 부끄러워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알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필터들을 썼을 때, 어떤 특정한 소리가 나오는데, 그걸 그냥 물 먹은 듯하다고 쓰는 것보다는 그래도 이펙트를 어떻게 쓰는지는 어느 정도 알고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 걸 보고 “저 사람 또 아는 척한다.”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하나의 공부고, 그걸 모르면 인상비평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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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런 설득력을 높이는 방법을 포함해서 평소에 글을 쓸 때, 글을 구상할 때 본인만의 특별한 방식 같은 게 있나요?
예전에는 일단 무작정 쓰기부터 시작했는데, 그런 건 크게 도움되지 않는 것 같고요. 오히려 그거에 대해 생각을 좀 많이 하면 나중에는 빨리 쓰는 것 같아요. 정작 쓰는 시간은 짧아지고, 그걸 평소에 계속 생각하죠. 예를 들어, 어떤 거에 관해 써야 한다고 가정하면, 그거에 대해서 지하철을 타고 있든, 어딜 오가든 들으면서 계속 생각하다가 쓰기 시작하면 머릿속에서는 이미 정리가 되어 있는 테마들이 있으니까 그걸 꺼내서 정렬하는 거죠. 글을 쓸 때 자체는 정석적인 거 같아요. 저도 개괄을 먼저 짜고, 처음에는 뭘 이야기해야겠다, 그다음에 뭐 이야기하고, 뭐 이야기하고, 이렇게 끝내야겠다 이런 식이죠. 그걸 생각하고서 쓰는 편이에요. 특히, 글이 길어지면 그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정말 수업 시간에 배우듯이 하는 거죠. 서론, 본론 1, 본론 2, 본론 3, 결론 써놓거나 생각해놓고 그다음에 내용 채워 넣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LE: 사실 실제로 쓰는 시간이 2, 3시간이라고 하더라도 그 글을 쓰는 데에 생각했던 시간까지 포함하면 굉장히 긴 시간을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개괄을 쓰는 게 분량 맞추기가 편해요. 개괄을 안 쓰고 일단 쓰기 시작하면 나중에 분량이 모자라면 결국 개소리를 하게 돼요. 내용은 다 썼는데 더 채워야 하고, 이제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싶어요. 그러다 보면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되게 많은 것 같아요. 사족도 많아지고… 그렇게 하다 결국 욕을 먹고. 글 퀄리티도 안 좋아지고요.
LE: 그런 게 대형 음원 사이트나 잡지에 기고하는 원고든, 힙합엘이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매체에 기고하는 원고든 간에 적용되는 이야기인데, 분량이라는 게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는 편이잖아요. 그렇게 분량을 맞추는 것도 그렇고, 또 글을 쓰다 보면 그 집단이 가지고 있는 톤이라든가, 혹은 그쪽에서 원하는 요구사항이 있을 텐데요. 아무래도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거다 보니까 그런 걸 웬만하면 조율해서 가져갈 거 아니에요. 그런 점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오히려 저는 그런 게 더 재미있어요. 피드백 주고받는 것도 재미있고, 쓰는 곳의 색깔이 다양하다 보면 말씀하신 대로 그 곳곳마다 원하는 톤이 있잖아요. 분량도 다르고요. 예를 들어, 어떤 곳에서는 최대한 가볍게 써달라고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되게 의견을 구하고… 그런 게 되게 다르니까 (그 색깔에) 맞춰가는 재미가 있고요. 그렇게 어떤 룰이 정해져 있을 때, 그거에 맞게 행동하는 나름의 재미가 있어요.
LE: 그럼 되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곳은 없나요? 본인의 프라이드를 건드릴 정도로 너무 과도하게 내용을 고쳐달라든가…
지금은 없는데, 몇 년 전에는 있었어요. 매체 톤이 워낙 중요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제가 그 톤을 못 맞춰서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는데, 또 다르게 보면 존경, 존중의 문제일 수도 있죠. 저라는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과도한 수정을 요구하는 걸 수도 있죠. 그런 문제점 같은 게 예전에는 약간 있었죠. 요새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전에는 사실 “좀만 더 이렇게 썼으면 좋겠다.”라고 하는데, 그게 소위 말해서 약간 짜치는 느낌이었었죠.
LE: 그래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영역을 다루고 계시는데, 일단 힙합엘이 인터뷰니까 이걸 여쭤볼게요. 다른 장르와 차별화되는 힙합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 만약 있다면 그게 뭔지 궁금해요.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거죠.
제가 다른 장르들보다 힙합 자체를 좀 더 좋아했던 건 사실이고요. 그리고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매력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장르라기보다는 힙합이라는 문화가 매력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때로는 한 커뮤니티를 대변하고, 어떤 지역을 대표하고, 그렇게 형성된 정체성마다 특수한 지점이 있고요. 똑같이 돈을 이야기하더라도 그걸 누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확 달라지죠. 저는 그런 게 (힙합의) 엄청 큰 매력인 거 같아요. 특정한 문화라면 그 문화만이 가지는 특성이 있잖아요. 비단 랩 음악뿐만 아니라 비보이도 있고, DJ도 있고, 그래피티도 있고, 머니 게임도 있고… 그게 부정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들이죠. 그런 것들이 또 소수의 것으로 축소되는 게 아니라 지금 엄청 커졌잖아요. 힙합이라고 했을 때, 누군가는 NBA를 떠올리기까지 하잖아요. 그게 엄청 커진 거죠. 제이지(JAY Z)가 뭘 하느냐에 따라 그게 또 힙합으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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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술을 팔아도 힙합이기도 하죠.
그렇죠. 술을 얘기할 때도 예전에는 술만 얘기했지만, 이 술도 힙합과 연결해서 얘기할 수 있잖아요. 누가 이번에 무슨 술을 런칭했다든가, 누가 무슨 술을 좋아한다든가 하면 말이죠. 페티 왑(Fetty Wap)은 1738을 되게 좋아하는데, 그게 음악으로까지 이어지는 식이죠. 힙합은 그런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는 재미가 뚜렷하고, 그런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장르도 그 장르만의 문화나 코드나 매력이 있지만, 힙합은 좀 더 어떤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해야 하나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말이죠.
LE: 그럼 힙합 영역에 속하는 소재에 관해 쓸 때랑 힙합이 아닌 영역에 속하는 소재에 관해 쓸 때랑 차이가 분명한 편인가요?
어떤 음악이든 그 음악이 나오기까지의 맥락이 존재하니까 그런 걸 알고, 거기에 관해 얘기하는 게 재미있는데요. 사실 엄청나게 큰 차이는 없기는 한데요. 근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유독 힙합에 관해서는 일단 모르면 못 쓴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큰 것 같아요. 다른 음악 글 쓰시는 분들도 어떤 음악이 좋으면 당연히 써도 되는데, (힙합에는) 너무 ‘아, 이 장르는 전문가들의 몫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LE: 약간 건드리기 힘든 거군요.
네. ‘이건 내가 쓰면 안 된다.’라는 인식이 너무 강하고, 그게 저는 오히려 단점이라고 생각해요. (힙합에 관해) 누구나 다 이야기할 수 있는 거고, 이걸 누군 건드려도 되고, 누군 건드리면 안 되고 이런 게 없잖아요. 빅 크릿(Big K.R.I.T.) 앨범이 좋으면 빅 크릿 앨범에 관해서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건데, ‘내가 좋게 들었지만, 이건 내 영역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게 저는 좀 아쉬워요. 또,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고요.
LE: 힙합이라는 문화, 장르 안에서 ‘Real’과 ‘Fake’을 강하게 구분하고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보니까 그런 건 아닌가 싶네요. 굉장히 강한 기준이 있으니까요. 힙합에 관한 글을 읽는 분들도 그런 게 없지 않아 있는 것 같고요. 어떤 잣대가 너무 명확하고, 기준이 높다고나 할까요. 진중권 씨가 라임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의 힙합 팬들의 반응 같은 게 단적인 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모르면 얘기하지마.’라는 인식이 있긴 하죠.
LE: 또 그런 것도 큰 것 같아요. 미디어에 비치는 기성세대 평론가가 잘 모르는데 살짝 아는 척을 보태서 이야기하는 식이죠. 엠넷(M.Net)에서 매년 하는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 해설 방송에서도 틀린 정보를 주고 그랬던 게 예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틀리게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 또 그 틀린 것에 힙합 팬들이 강하게 반응하니까 ‘아, 여긴 건드리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는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 게 중요하지만… (웃음) 사전 정보 없이 얘기하는 건 되게 위험하죠. 그래도 힙합에 관해 쓰는 사람들도 다른 음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거고, 다른 음악에 관해 쓰는 사람도 힙합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건데… 정보만 알고 있다면요. 저는 그 말하는 거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근데 어떤 발화 자체가 문제 있다고 인식되다 보니까 아쉬운 것 같아요. 힙합이 물론, 진정성에 대한 의혹을 가장 많이 받기는 해요. 대필 의혹 같은 것도 가장 많이 드는 영역이고, 자기가 자기 얘기를 해야 한다는 룰이 존재하고, 그런 진정성의 문제가 크다 보니까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죠. 어떤 래퍼를 이야기할 때, 그 음악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생애의 맥락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실제로 아는 게 또 도움이 되고요. 그런 제약 아닌 제약들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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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단도직입적으로 본인의 삶에서 힙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퍼센트로 따지기는 좀 애매한가요?
태도에는 되게 영향을 많이 준 거 같아요. 앞서 힙합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이런저런 이유로 제약 아닌 제약을 받는다고 했는데, 그래도 그 사람의 맥락을 알아가는 게 때로는 귀찮고 그걸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그게 재미있을 때도 있어요. 그냥 사람 사는 데에 있어서 이 사람의 지금이 궁금함과 동시에 지금에 오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해지고 그래요. 물론, 그 사람의 진실한 면모가 무엇이냐를 가려내자는 건 아니지만, 어떤 사람에 관해 궁금해할 때 힙합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랩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라는 존재를 두고 내 이름을 걸었을 때 이 이름이 어떻게 보여야 하고,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고, 어떻게 걸어야 하고 그런 거에 있어서 힙합의 영향이 되게 많은 거 같아요.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 삶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힙합만큼은 정말 그게 괴리감 없이 그대로 이어지잖아요. 저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LE: 계열을 음악, 영화, 사회 현상 등등으로 나눈다 치고 어떤 부분에 관해 쓰는 게 본인이 가장 편안한지가 궁금해요. 혹은 흥미가 가장 많이 가는 쪽이라든지요.
쉬운 건 하나도 없는 것 같고요. 음악은 음악대로 어렵고, 영화는 영화대로 어렵고, 사회 현상은 사회 현상대로 어렵고… 모든 게 어려워요. 모든 게 어려운데, 사실 그런 어려움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 어렵다는 게 제가 몰라서 어렵다는 게 아니라 계속 고민하게 되니까요. 그런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거 같아요. 그게 힘들면 오래 못할 것 같아요.
LE: 사실 누구나 알잖아요. 그런 고민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 끝에 결과물을 내놓음으로써 성취감이나 재미를 맛볼 수 있다는 것, 또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는 걸요. 근데 그런 고민이 연속되면서 지치기도 마련이잖아요. 이를테면, 뭔가를 보고서 이걸 대중문화 텍스트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재미있게 즐기고 싶은데, 습관 때문에 그 안에서 뭘 발견하고 싶고, 글로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죠. 이게 어떻게 보면 출, 퇴근이 명확한 직장 생활과 연관이 될 수도 있는데요. 직장 생활을 하면 그 시간에 맞게 업무를 하고 나면 나머지 일상생활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별 생각 없이 있어도 되는데, 프리랜서 생활은 다음 주까지 어떤 거에 관해 써야 하고, 만들어야 하면 그것에 관해 최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그 과정이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게 자신의 삶에 피로감으로 다가오는 순간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체력적인 문제도 있을 테고요. 물론, 요즘은 직장인들도 잦은 야근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쉴 시간이 없긴 하지만요.
근데 그건 21세기에서 특정한 무언가에 전문적으로 일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LG전자를 다니면서 직장인의 삶을 살아도 IT 부문 관련해서 계속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해요.
LE: 동향을 봐야 한다 이거군요.
직장에서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한다 쳐도 일을 하지 않는 밖에서도 어떤 기계가 새로 나왔다든가, 어떤 기술에 새로 개발됐다든가 이런 거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한 거고, 그렇게 해야 자기 발전이 있겠죠. 그런 게 필요 없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걸 필요로 하는 직종에 있는 이상, 어떤 거에 특화된 일이든 간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LE: 그럼 일을 하면서 겪는 애로사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경제적인 부분이겠네요.
사실 일을 하면서 힘든 건 많죠. 경제적인 것도 있고. 체력적인 것도 있고, 시간적인 것도 있고요. 내일 이런 미팅을 가야 하고, 이런 마감이 있으면 제가 시간을 딱딱 정해서 해야 하고, 다음 주에는 어떤 거 어떤 거가 있다는 걸 잊고 정신 놓고 살면 전 끝나요. 항상 생각해야 하는 거죠. 뭘 해야 하는지를 정리하면서 이거 이거는 끝났고, 이거 이거는 해야 하고 우선순위를 두면서 컨트롤 하는 게 제일 힘들죠. 그러다 보니까 진짜 긴장을 놓을 수가 없어요. 눈 뜨면 출근이고 눈 감으면 퇴근이에요. (전원 웃음)
LE: 그게 또 계획을 세워놓는다고 해서 그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걸 또 어떻게 짜놓는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에요. 미팅 시간이 바뀐다든지 하면 원고 쓸 시간을 밀거나 땡기거나 해야 해요. 그때그때 또 바꿔야 하는 거죠. 항상 (정신을) 놓을 수 없는 상황… 가장 큰 피로감은 일이 안 끝난다는 피로감이에요. 항상 일과 일이 맞물려요. 어떤 일이 끝나는 지점이 어떤 일을 하는 지점이고, 또 그 일이 끝나는 순간 어떤 다른 일이 시작돼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리스트가 있어서 다 하고 나면 끝났다는 상태가 되면서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상황이 안돼요. 거기서 오는 피로감이 제일 크죠. 그게 어쩔 수 없고요.
LE: 그리고 그렇게 일과 일이 접합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끝나서 일이 좀 없는 상태가 되더라도 뭔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할 일 리스트를 아무리 봐도 없는데 있는 것 같은 거죠.
그렇죠. 그런 것도 있죠. 근데 뭐, 요즘은 직장을 가도 카톡방을 파니까… 부장이 밤에 방에다가 오늘의 글 같은 거 막 올리고… 무슨 고도원 선생님도 아니면서 아침 편지를 왜 쓰는지… 격려의 글 올리고. 격려는 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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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근데 사실 그런 게 본인이 하는 일을 조절할 필요도 있는 부분이잖아요. 어떤 현실적인 부분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인 경우도 있지만, 블럭 씨 같은 경우만 해도 돈을 안 받고 하는 매체도 더러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본인이 아무리 하고 싶은 게 많다 보니까 스스로 혹사시킨다는 느낌도 드는지 궁금해요. 그래서 생존과 생활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유료 기고 쪽으로 점점 넘어가는 게 아니지 않나 싶거든요.
근데 사실 저는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돈이 최우선으로 되는 건 아니라서요. 돈이랑 재미랑 비슷한 거 같아요. 재미있어야 하고, 재미없으면 돈이 되더라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몇백씩 주면 해야지. (전원 웃음) 근데 그런 경우는 없어요. (웃음)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돈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걸) 어느 정도 병행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에너지가 닿는 한은 그래도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니까 돈이 안 되는 글도 계속 쓰고 있어요. 그 돈이 안 되는 글도 그냥 돈이 안 된다고 인식하기보다는요. 글 쓰는 게 예전에는 뭔가 활동가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어떤 캐치프레이즈가 있고, 어떤 캠페인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밖에 나가서 외치잖아요. 외치는데 아무도 안 들어. 하지만 그걸 듣는 누군가는 존재하고, 그게 언젠가는 저한테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근데 글 쓰는 건 그것보다도 하찮은 일인 것 같아요. 하찮다기보다는 그것보다 돌아오는 길이 더 긴 것 같아요. 그게 너무 멀어서 (글 쓰는 게) 농사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날씨가 맑든 굳든 간에 제가 씨를 뿌려놔야 해요. 그걸 거두는 건 하늘의 뜻이고요. (웃음)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죠.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LE: 농사는 하우스에서… (전원 웃음)
그 하우스를 덮어줄 비닐이 저한테는 없어요. 한국에서는 그 비닐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웃음)
LE: 아무튼, 예전보다는 유료 기고가 많아진 편이죠?
그렇죠. 많아졌고, 실제로 그런 걸 백이면 백 다 할 수도 없고요. 시간상 그 모든 걸 다할 수가 없어서 못 하는 경우도 있고요. 최대한 다른 사람한테 주려고도 해요.
LE: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많이 줄 정도로 무료든 유료든 일을 많이 하시는데,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내재적인 요인도 있을 테고, 외부적인 요인도 있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말하면 없어요.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하는 건 아니고요. 제가 그런 포디즘의 노예는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포디즘처럼 어떤 생산의 일부가 된다고 해서 그 생산물을 돈으로 사거나 맛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또, 이 일이 솔직히 말해서 엄청난 성취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요. 특히나 한국에서는 존경보다는 욕을 더 많이 먹는 직업이고요. 대신에 그 욕을 하는 사람 대부분이 익명이기 때문에 전 신경 쓸 필요가 없고요. 그래서 어떤 성취감이라든가, 손에 잡히는 어떤 것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어떤 다른 목적이 없어요. 뭔가를 위해서 재미와 돈이 있는 게 아니라 재미와 돈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거죠.
LE: 일하면서 느끼는 재미가 원동력이다?
그렇죠. 그게 제일 크죠.
LE: 뭔가 고갈된다는 생각이 들 때는 없으신가요? 충전을 해야 하겠다든가…
올해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좀 많이 했는데, 그게 재미가 떨어져서 쉬고 싶다는 식이 아니라 정말로 체력적으로 한계가 다가오니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에요. (웃음)
LE: 그 체력도 원래는 관리를 좀 해왔는데도 연차가 쌓이면서 떨어지게 된 건가요? 한 번에 많은 일을 하다 보니까 시간 관리도 그렇고, 체력 관리도 그렇고 모두 필수적일 것 같은데요. 체력 관리에 있어서의 본인만의 노하우 같은 게 있나 궁금해요. 혹 그런 게 없어서 올해 부침이 오는 건가요?
여러분 건강은 스무 살 때부터 관리하세요. (전원 웃음) 정말 중요합니다. 그리고 몸이 복수하는 것 같기도 해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정말 농담이 아니라 하루에 2, 3시간씩 잤어요. 몇 개월씩 그렇게 살았는데, 그때는 끄떡없었어요. (웃음) 커피 샷 네 개 넣은 걸 하루에 여섯 잔씩 마시고, 에너지 드링크 1년 내내 마시고… 그 짓을 하다 보니까 올해 몸이 복수하기 시작한 거 같아요. 그래서 올해는 몸한테 잘못했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요. 사과하는 기간을 갖고 있습니다. 잠도 충분히 자려 하고요. 오늘 끝내고 싶은 일을 못 끝내도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면 다음날 하고, 잠을 더 자는 걸 택하고 있어요. 카페인 든 음료도 안 마시고 있고… 운동도 좀 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LE: 이런 게 레귤러한 삶을 못 사는 프리랜서분들한테는 정말 귀중한 조언인 거 같네요.
근데 레귤러한 걸 본인이 맞추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레귤러가 없으면 만들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되게 패기 있게 잠 안 자고 일 존나 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게 쌓여서 돌아와요.
LE: 설령 오버타임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날은 웬만하면 오프를 한다든가 해야 하는 거 같아요. 체력이 쌓여 있으면 한 번 할 때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어릴 때는 그게 한참 뒤에나 돌아올 줄 알았어요. (전원 웃음) 이렇게 혹사하면 최소한 마흔 넘어서 고생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절대 아니에요.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생각 못 했어요. 정말 지금 (몸에게) 자숙하는 기간이에요.
LE: 쉴 때 하는 다른 취미 같은 건 어떤 게 있으신가요?
쉴 때… 뭐가 있지? 그냥 휴식도 결국 인풋의 연속인 거 같아요. 영화 보고, 예능 보고, 책 보고… 대신에 그런 건 있어요. 계속 접하는 건 어쩔 수 없고, 일이든 취미든 좋아하는 걸 접하는 게 싸이클 안에 있는 건 당연한 건데, 취미가 있다면 그런 거라고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 취향이 뭔지 되돌아보는 거? 내 플레이리스트를 짜면서 좋아하는 거죠. ‘나는 이런 걸 좋아해.’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이런 곡들 모아놓고 돌려서 듣고… 아니면 이런 이런 (취향의) 영화만 하루 종일 본다든지…
LE: 알겠습니다. 역시 프로의 삶…
프로가 아니고 변태가 된 것 같아요. (웃음)
LE: 지금까지 체력적인 부분, 경제적인 부분, 취미 등등을 여쭤봤는데요. 이번에는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는지 여쭤볼게요. 워낙 외부의 피드백을 아주 크게 생각은 안 하시는 것 같기는 한데요. 남들의 시선, 그로 인해 욕먹는 일들이 종종 있긴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얘기하기 쉽진 않지만, 얘기해주실 수 있는 흑역사라든가, 지금까지 일을 해오면서 욕을 가장 많이 먹었던 일이라든가 기타 등등의 직업적으로 정신적인 타격을 받았던 일이 있나 궁금해요.
솔직히 말해서 일이 저한테 타격을 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웃음) 왜냐하면, 익명의 피드백은 신경 안 써요. 익명의 피드백을 주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그런 건 전혀 쳐다보지도 않고요. 저는 네이버에 글을 쓸 때도 어떤 타격도 안 받았어요. 물론, 글을 못 쓸 수는 있죠. 그리고 지적을 받았을 때, 반성하는 건 당연한 거고요.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매번 좋은 글이 나올 수는 없어요. 당연히 한 번씩 뻘짓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 뻘짓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뻘짓했다고 해서, 그걸 쳐다보는 게 무섭다고 해서 옆으로 치워놓는 게 아니라 제가 그걸 좆같다고 느끼더라도 계속 쳐다보고, 그로써 반성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그 반성은 사실 익명의 피드백으로부터 오지 않아요. 내 안에서 오는 거고, 정말 제 주변 가까운 사람한테서 오는 거예요. 아니면 그 글을 읽고 일일이 저를 찾아와서 얘기해주는 사람한테 오는 거죠. 그냥 스크롤 쓱 내리고 글 쓰는 그런 사람의 피드백은 사실 크게 도움도 안 돼요. 심적으로 다가오지도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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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근데 또 그런 피드백 하나하나에 연연해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예전처럼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는 때와는 다르게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볼 수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웹을 통해 자기 창작물을 내보이는 사람들은 멘탈이 좀 세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전에는 피드백, 혹은 욕을 하려면 우편을 보내고 그래야 하는데, 지금은 댓글 하나 남기기가 쉽고 거기에 상처를 받을 수가 있으니까요. 해서 글 쓰는 사람을 포함해서 본인과 비슷하게 웹상에서 자신의 창작물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그런 피드백에 대해서 어떤 처세법을 갖추면 좋을까요?
그거랑 별개로 그 피드백은 좋은 거 같아요. 글이 올라가기 전에 데스크의 피드백을 거친다든가 그런 거요. 예를 들면, 저는 클라이언트의 피드백을 계속 받아요. 그런 피드백을 받는 건 되게 좋은 일이죠. 제 글이 좋아지는 과정이니까요. 그런 피드백도 무서워서 그냥 올렸다가 개 욕 처먹는 것보다는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게 좋죠. 물론, 그 피드백에도 ‘아, 내가 글을 이렇게 못 썼구나.’ 생각하면서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고, 피드백이 길게 달리는 거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어요. 피드백이 너무 길면 ‘아, 언제 고쳐…’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게 있는데, 내부적인 피드백은 어쨌든 결과적으로 되게 좋은 거 같아요. 그리고 멘탈이 약하면 약한 대로 반성을 많이 해서 좋은 거 같아요. 멘탈이 약한 사람이 구리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으면 상처를 받을 거 아니에요. 그렇게 상처를 받은 만큼 좋은 글이 나올 거예요. 당시에 잠깐 가슴 아파하고 돌아서서 잊어버리고 나서 똑같은 짓을 반복하면 문제겠지만, 멘탈이 약한 사람은 그러지 않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 반성하는 만큼 다음에는 더 좋은 글이 나오겠죠. 반대로 멘탈이 강하면, 글에서 그런 강함이 느껴질 텐데, 그건 그거 나름대로 또 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강하면 강한 대로 자칫하면 남의 말을 안 들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걸 항상 경계해야죠.
LE: 아티스트 본인들에게 직접 항의가 온 적은 없나요?
저는 아티스트들에게 항의받은 적은 아직까진 한 번도 없어요.
LE: 항의보다는 좋은 반응이 많은 편인가요?
네. 어쩌면 제가 못 쓴 글을 그들이 아직 발견을 못 한 걸 지도… (전원 웃음) 다행일 수도 있죠.
LE: 그런 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가 보면, 본인이 어떤 부분에서 힘들지는 몰라도 주변 사람 중에 응원이나 도움을 많이 준 분들이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분 중에 본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분이 있다면 누가 있을까요? 이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에 도움을 주고, 조언을 해주고 등등… 뮤지션도 좋고, 뮤직 비즈니스 관계자도 좋아요. 같은 입장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분도 좋고요.
근데 일단 얘기하기 전에 제가 뭐라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제가 좆밥인 상태에서 누구한테 감사하다, 감사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좀 가당치 않은 얘기인 것 같긴 한데요. 일단 인터뷰 자체가 가당치 않긴 하죠. 저를 누가 궁금해하겠어요. 그렇기는 한데, 고마운 사람은 되게 많아요. 한 명 한 명 얘기하면 “나는 왜 없어?”라고 얘기할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뚜렷하게 누구라고 얘기하진 않을게요. 그 대신에 같은 일을 하시는 분 중에는 정말 많이 도움된 분들이 꽤 많아요. 글 쓰시는 분 중에서 조언해주시는 분들이 진짜 많고,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도 복 받은 거죠. 운이 좋았죠. 그리고 다행히도 지금까지 만난 분들이 대부분 좋은 분들이었고, 좋지 않은 분들과는 굉장히 빨리 헤어졌어요. (웃음) 그게 뭐, 제가 먼저 끊은 걸 수도 있는데… 어쨌든 주변에 계신 모든 분에게 감사해요. 그렇지 않은 분들과는 지금은 잘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LE: 같은 프리랜서 입장에 계신 분들에 관해 살짝 이야기해주셨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글 쓰는 사람 중에 20대가 많이 없기 때문에 연배가 있으신 ‘선배님’이라고 할만한 분들이 많으실 거 아니에요.
그렇죠. 다 형, 누나들이죠.
LE: 근데 힙합엘이 같은 경우에는 뭐랄까, 후배라고 할만한 친구들이 많잖아요. 힙합엘이 매거진팀에요. 블럭 씨가 한쪽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소속이 많아졌지만, 어쨌든 시작도 힙합엘이고, 그래서 그런지 힙합엘이 매거진팀에 물어다 주는 것도 되게 많은 거 같아요. 해서 힙합엘이 매거진팀에 어떤 애정이 있다든가, 여러 감상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있죠. 이 나잇대에 글 쓰는 사람이 물론, 여기저기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 좀 많은 편이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여기서만 쓰는 게 아니라 다른 데서도 글을 쓰고,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하고 있으니까 잘하고 있는 거 같아요. 이 사람들이 더 잘됐으면 하는 바람은 항상 있어요. 더 많이 했으면 좋겠고, 이것도 했으면 좋겠고 저것도 했으면 좋겠고 해요. 제가 하고 있는 것 중에도 나중에는 이건 얘 줘야겠고, 저건 쟤 줘야겠고 싶은 것도 있고요. 근데 또 이런 말이 이기적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부담 같은 건 갖고 싶지도 않고 별로 갖고 있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얘네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건 저는 신경 안 써요. 좋게 생각하든, 롤모델로 생각하든, 띠껍게 보든, 좆밥으로 보든, 전혀 신경 안 쓰고 그냥 얘네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사실 걔네 생각은 전 필요 없어요. (전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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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블럭 씨가 지금 매거진팀에 소속되어 있는 멤버 말고 웹상에서 20대 중에 글을 쓰는데 아직 어떤 매체에 몸담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아봤더니 진짜 없는 것 같다고 하신 적이 있잖아요. 힙합엘이에 있는 사람이 전체 파이에서 비율이 높다고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얘기해주신 적이 있는데요. 생각하시기에 20대 중에 음악에 관해 얘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활동하는 친구들이 많이 없어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근데 (요즘은) 뭘 하든 힘드니까… 더 힘든 일은 더 하기 싫겠죠. 일반적인 취업도 잘 안 되잖아요. 극소수는 이런 일을 해도 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겠지만, 사실 한국 사회에서 주변 환경을 무시할 순 없잖아요. 그리고 이 일을 하는 건 단적으로 말해서 가족에게 되게 미안해야 할 순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잘 모르는 사람이 멀리서 봐도 이 일은 그렇게 매력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은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든지, 이름이 알려진다든지, 하다못해 사는 게 좋아 보이기라도 해야 하는데, 눈에 보일 정도로 그 정도도 아니잖아요. 한국에서 음악 평론가라고 했을 때 정말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 많고요. 그렇기 때문에 당장 피부로 느껴지는 게 아니잖아요. 세대 차이가 가지는 갭이 있으니까요. 접근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요. 영화 글 쓰는 사람도 20대가 별로 없다고 해요. 이런 일 자체를 하기가 힘든 환경이기도 하고요. 나라 탓을 해야죠. (웃음) 사회 안전망이라도 있어서 누군가가 여기 뛰어들었을 때, 최소한 이만큼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상관없는데… 그런 거도 아니고 (보는 사람 입장에서) 매력 있고, 사명감을 가지고 뛰어들만한 그런 바닥은 아니라고 생각 들 수도 있고요.
LE: 지금이 마지막 세대일 수도 있는 거군요.
모르죠. 그냥 개인 블로거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 일도 하고 이러는 일을 하는 20대가 있을 수도 있긴 한데…
LE: 그게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사랑하고, 연애하는 게 어떤 ‘투자’의 개념으로 생각하듯 자기 취미라든가 그런 게 자신의 미래와 연결된, 특히 금전적인 일에 연결되지 않는다면 투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되게 큰 것 같아요. 그게 어쩔 수가 없는 게 지금의 환경이 너무 살기가 힘드니까요. 어떤 다른 것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거죠.
그렇죠. 그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죠. 요즘 ‘n포 세대’라고 하는데, 그건 포기가 아니라 엄두를 못 내는 거죠.
LE: 아웃풋이 바로 나오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환경인 거죠.
네. 한국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하려면 바로바로 결과를 봐야 해요. 사실 저도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을 택한 거지만, 음악을 하든, 글을 쓰든, 진득하게 누군가가 저를 기다려줄 수 있으면 길게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렇지 않잖아요. 순수 문학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도 똑같은 맥락이에요. 바로바로 결과를 보여줘야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니까… 포기라기보다는 엄두를 못 내는 게 맞아요. 그 엄두를 못 내는 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연결되니까 더 문제고요. 나라 탓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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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포기를 강요받는다는 식의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는 조금 가벼운 얘기를 해볼게요. 진짜 많은 웹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글을 쓰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제가 보기에는 모르는 게 많다고 쳐도 다른 사람에 비해 인풋이 많아서 정말 아는 게 많으신 거 같거든요. 평소에 핸드폰을 자주 보시잖아요. 그래서 옆에서 보기에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본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렇게 정보를 빠르게 빠르게 받아보는 것 자체가 습관이 잘되어 있는 건지, 습관처럼 길들이기 전에 반 자동적으로 이미 그러고 있었던 건지 궁금해요.
뭘 집요하게 찾고 알아보고 이런 건 어릴 때부터 좋아했었어요. 예를 들어, 앨범 크레딧에 누군가의 이름이 쓰여 있으면 그 사람에 관해 하나하나 찾아보고… 그런 재미는 어릴 때부터 느껴왔었는데, 정보가 워낙 많은 와중에 제가 필요한 정보만을 찾는 건 사실 계속 해오면서 설명하기에는 뭐한 요령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당연히 모르는 정보도 많은데, 그 대신에 나뉜 거죠. 관심사와 비관심사가 완벽하게 나뉘고, 비관심사는 아예 모르고요. 관심사는 잘 알고요. 그 관심사에 관한 정보는 빨리빨리 접하는 요령이 생겼고요. 예를 들어, 비관심사라고 하면 뭐가 있을까…
LE: 프로 여자 배구 이런 건 어떠세요?
전혀 모르죠. 어느 팀이 우승했다 이런 거 전혀 모르죠. 물론, 프로 여자 배구도 중요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고,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하지만, 저는 잘 몰라요. 차라든가, 시계 이런 것도 잘 모르고요. 명품도 잘 몰라요. 예를 들어, 이번에 톰 포드(Tom Ford) F/W가 나왔다든가 이런 거 잘 몰라요. 오베이(Obey) 신상이 나왔다고 해도 잘 모르고요.
LE: 하여튼, 관심 있는 것만 좀 집요하게 파는 편이라는 거네요. 근데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폭넓게 아는 경우도 있죠. 의학 지식도 좀 있고, IT 지식도 좀 있고… 저는 과학은, 태생이 문과라서요. (전원 웃음) 과학 정보나 기술이나 이런 건 정말 무지해요. 의학도 병원은 가지만, 뭔 소린지 모르고요. 약 주면 먹고, 또 오라면 또 가고… 말은 들어야 하니까요.
LE: 블럭 씨는 그 집요하게 파는 관심사 자체의 폭이 좀 넓은 느낌이에요. 사실 다른 거 다 떼어놓고 힙합’만’ 관심 있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렇죠. 일 빌(Ill Bill)이나 비니 패즈(Vinnie Paz) 신보 막 찾아 듣고… 근데 저는 그렇게까지 깊이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LE: 새롭게 알고 싶거나 알아보고 싶은 분야는 어떤 게 있나요? 아니면 몰랐지만 이건 좀 알아야겠다 싶은 거라던가요.
아, 있죠. 부동산. (전원 웃음) 제 생계와 직결되는 몇 가지 문제 중에 모르는 게 좀 있어요. 세금, 은행 관련 지식, 부동산, 의학 지식… 최소한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그것마저 모르는 경우에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LE: 소득 공제라든가 이런 거겠네요.
그렇죠. 그런 데서 특히 많이 느끼죠. 저는 프리랜서고, 1인 가구고 그런데, 보통 그러면 환급을 받잖아요. 근데 저는 환급을 내요. 뭔가 잘못됐잖아요. 근데 이걸 모르니까 항의를 못 하는 거예요. 인터넷 신고가 있는데도 잘 모르니까 결국 그냥 국세청을 직접 가게 되더라고요. 아무튼, 그런 게 제가 잘 모르고 잘못해서 내는 게 당연한 거긴 한데… 저는 환급을 2년째 했어요. 이게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나는 상태입니다. (웃음) 그렇다고 환급을 많이 한 건 아니고요.
LE: 근데 이런 게 지금 인터뷰 자리에 있는 모든 멤버가 나이가 적은 편이라서 그런 것도 있긴 하지만,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녹아 있는 거 같기도 해요. 뭔가 이쪽 종사하는 사람들은 차나 시계 이런 데에 아주 크게 관심이 있지 않다든가… 되게 클리셰 적으로 남자를 빛낼 수 있는 방법은 차, 시계, 벨트 이러는데, 여기 계신 분들 그 세 개에 관해 전혀 모르잖아요. (웃음) 물론, 패션 잡지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또 잘 아시긴 하는데요. 도끼(Dok2) 씨나 더콰이엇(The Quiett) 씨가 가사로 표현하고, 보여주고 해도 잘 모르고… 조던(Jordan) 비싼 거 신으면 “쩌는데?”라고 하는데, 베르사체(Versace) 같은 건 입어도 “어, 저게 뭐지?” 이런 느낌이죠.
그런 게 있죠. 저도 물가는 잘 알아요. 가사 노동을 하고, 장을 보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우유 사면 ‘부잔데? 마트까진 좀 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고… (전원 웃음)
LE: 다시 얘기를 돌아오면요. (웃음) 트위터를 옛날에는 정말 많이 하셨었잖아요. 요즘에는 또 다른 채널로도 정보 많이 받고 계신 걸로 알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트위터로 여전히 이런저런 거 받아보지 않나요?
트위터 거의 관뒀어요.
LE: 근데 예전에는 진짜 많이 하시지 않았나요? 한 달에 이만 개씩 하고 그러셨던 걸로 아는데…
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청 많이 했죠. 생각 없이 했죠. 배부르면 배부르다고 쓰고… 그런 등신짓을 하다가 깨달음이 왔죠.
LE: 트인낭?
그렇죠.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 아무런 소용이 없다. 물론, 소용이 있을 수도 있어요. 트위터라는 공간 안에서 유대 의식을 가질 수도 있고요. 친한 몇몇이서도 먼저 얘기를 하지 않을 때도 쓸모 있고요. 보통 누구한테 먼저 카톡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카톡을 받기만 하지 먼저 하진 않거든요. 근데 하는 경우도 있겠죠? 그렇게 해서 서로 안부도 묻고 하는데, (트위터는) 그런 게 안 되는 인간들끼리… (전원 웃음) 트윗을 남기면 이 사람의 근황도 알 수 있고, 유대 의식도 생기곤 하죠. 그런 장점도 있지만, SNS는 어쨌든든 하면 할수록 소모가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저는 거의 인스타그램 밖에 안 하고요. 페이스북도 힙합엘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거고요. 힙합엘이가 페이스북 그룹으로도 일을 주고받고 하다 보니까요. 가끔 그룹 확인할 때, 뉴스 피드에 뜨는 뉴스 몇 개 정도 확인하는 정도에요. 대신에 매체 몇 개를 정해놓고 본다든지 그러는 거 같아요. 오히려 그게 나은 거 같아요.
LE: 그럼 옛날에도 트위터를 스트레스 푸는 용도로 썼던 것도 아닌 건가요? 예전에 블럭 씨 트위터 보고 힙합엘이 스태프들 몇 명이 뇌랑 트위터랑 연동되어 있다고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생각하면 바로 입력된다고…
생각 없이 하니까 연동이 되는 거죠. 배가 고프면 그냥 배가 고프다고 쓰는 거예요. 그 행위 자체가 재미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일종의 버릇? 습관처럼 했던 거고요. 가끔 트위터가 이상하게 도움을 줄 때가 있어요. 컵라면에 물을 넣어놓고 트위터를 하고, 그다음에 그 트윗을 한 지 4분이 지났는지 확인하고… (전원 웃음) 그런 말도 안 되는 용도도 있긴 해요. 근데 사실 이런데도 트위터가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해요. 그래서 트위터를 계속 했던 거예요. 속보가 제일 빨리 뜨고, 뉴스 링크가 제일 빨리 뜨고, 누구 앨범 소식도 제일 빨리 뜨고요. 요새는 그게 너무 피로해져서요. 그걸 계속 신경 써야 한다는 게요. 모든 정보를 빨리 알 필요가 없더라고요. 너무 목 안 메도 될 것 같아서요.
LE: 그렇군요. 사실 사람들은 보통 어딘가로 이동할 때 트위터나 SNS를 많이 보곤 하는데, 블럭 씨 같은 경우에는 일을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경우에는 이동하면서도 글을 쓰시기도 하잖아요. 그건 둘째치고, 글을 쓸 때 집에서 쓰는 경우도 있지만, 일하기 위한 목적으로 카페를 자주 가시는 편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글이 잘 써지는 카페의 조건이 있는지 궁금해요. 어느 프랜차이즈 카페가 좋다든가, 싫어하는 카페 내 상황은 어떤 거라든가...
일단 이동할 때는 요즘도 SNS 보고, 유튜브 보고 그러는데, 정말 급할 때는 지하철에서 마감하고 그래요. 근데 정말 극도로 급할 때 말고는 요즘은 그렇게 안 하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멀미가 나더라고요. (웃음) 진짜 지하철에서도 멀미가 나요. 그러한 행위는 잘하고 있지 않고요. 한동안은 지하철에서 잤어요. (웃음) 카페는요. 최대한 집에서 하려고 했어요. 왜냐하면, 그게 돈이 덜 드니까요. 그리고 집이 조용하고요. 집에서 딴짓만 하지 않으면 어떤 측면으로든 효율적이니까 집에서 하려고 하는데요. 요새는 미팅이 거의 매일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되는데요. 해서 미팅 전후로 시간이 애매해질 때가 있어요. 그리고 집이 남양주라는 게 타격이 큰 게요. 제가 2시까지 홍대를 가야 하면 12시 30분에는 움직여야 해요. 12시 30분에 움직이려고 조금 일찍 9시에 일어난다 쳐도 그 3, 4시간 동안 글을 쓰기가 애매해요.
LE: 그래서 차라리 미리 나가서 자리 잡고 있는 게 낫기도 하죠.
그렇죠. 저도 그렇게 해요. 아예 그냥 일찍 나가서 미팅 장소 쪽에 도착해서 좀 하다가 거기서 미팅을 하든지, 근처 다른 장소로 미팅을 잡죠. 그러다 보니까 카페는 고정적으로 가는 데는 거의 없고요. 홍대에 자주 가는 몇 군데가 있긴 한데요. 예를 들면, 빨간 책방 좀 자주 가는 편이고요. 빨간 책방은 콘센트와 와이파이와 조용함이 보장되니까요. 그 삼박자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빨간 책방이 가장 마음에 드는 거 같아요.
LE: 가장 열악한 상황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열악한 경우는 콘센트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는데, 시끄러운 거죠. 전 사실 프랜차이즈 카페를 제일 안 좋아해요. 프랜차이즈 카페를 제일 안 좋아하고, 스타벅스가 차선책이긴 한데요. 근데 스타벅스는 제 기준에서 너무 어두워요. 그래도 자주 가긴 해요.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멤버십카드도 스타벅스 카드고요. 골드 회원이고… (웃음) 그게 은근히 중요해요. (안 만들면) 손해를 봐요. 아무튼, 그렇고요. 커피빈 같은 경우에는 어떤 분이 기프티콘을 주신다든지,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갈 데가 없을 때 가긴 가요. 근데 커피빈… 불편하죠. 와이파이도 없고, 콘센트도 없고, 의자도 딱딱해요. 그렇다고 해서 커피빈을 완전 싫어하는 건 아니고요.
LE: 이제는 옷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 텐데요. 옷을 막 딱히 힙합적으로 입진 않으시잖아요.
전혀 아니죠.
LE: 네. 그렇죠. 이유가 있으신가요? 안 어울려서? 아니면 혹시 엄청 그렇게 입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기는 좀 그렇다든지… 칼 카니(Karl Kani), 푸부(Fubu) 이런 거 입었다든가…
그렇죠. 제가 어릴 때부터 힙합을 들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어릴 때부터 바지 질질 끌고 다니고, 교복 이만한 거 입고… 그런 걸 하고 다녔는데, 그러고 나서 대학 가서도 (조금 그러고 다녔어요). 사실 제가 지금처럼 머리가 긴 지 한 2년밖에 안 됐어요. 계속 3mm로 밀고 다녔고요. 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머리가 엄청 짧았기 때문에 다들 그 머리만 기억하거든요. 그래서 머리 긴 거 보면 다들 한마디씩 해요. 머리가 왜 이렇게 기느냐. 잘라라. 3mm가 낫다.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3mm 밀면… 안 그래도 생긴 게 좀 그런데, 더 그래져요. (웃음) 머리를 기르고 염색을 해야 그래도 좀 사람이… 네. 머리를 여러 가지를 해봤었어요. 그 머리 해주시는 분이 5:5도 해보고, 뭐도 해보고 막 그랬는데, 아무것도 안 어울려요. 정말 이게 낫고, 나중에 그냥 묶어버릴 생각이에요. 묶으면 그나마 좀 덜 이상하더라고요. 아무튼, 옷은 저도 어릴 때 칼 카니 입고, LRG 입고, 푸부 입고, 예전에 큰 옷 나올 때 MF 입고… 처음 산 힙합 바지가 MF 거였어요. 얼마 전까지도 큰 옷을 계속 입고 다니다가… 별 얘기를 다 하네요. 살이 급격하게 빠지면서… (전원 웃음) 제대하고 살이 너무 많이 빠졌었어요. 제가 입대 전이랑 입대 후가 20kg이 차이가 났어요. 그래서 큰 옷을 못 입게 된 것도 있어요. 너무 헐떡이가 되어버려서요.
LE: 나이가 먹어서 그런 것도 있나요?
네. 그런 것도 영향이 있죠. 그리고 계속 미팅을 나가고 하다 보니까, 남의 회사를 들락날락하고 하다 보니까 어쨌든 저는 클라이언트한테 신뢰를 줘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웃음) 신뢰를 줄 법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은 지켜야 해요. 저도 그냥 친구 만나고 그럴 때는 후드티 입고, 칠부 바지 입고, 슬리퍼 끌고 다니고 그래요. 근데 늘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LE: 힙합을 좋아하기 전에 사회인이니까…
제가 상암에 CJ E&M 센터를 가면서 조던 슬리퍼 끌고 반팔 큰 거 하나 걸칠 순 없잖아요. 그러고서 “왔습니다.” 좀 그렇잖아요. (웃음) 그것도 도장 찍으러 가는데…
LE: 그래서 신발도 가장 편안한 뉴발란스 거를 애용하시는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냥 편안해서인가요? 오늘 신었나요?
저 뉴발란스 574만 5켤레 째에요. 574가 제일 편해요. 574는 존나 짱인 게 250도 편하고, 260도 편해요. 제가 발 사이즈가 240인데요. (전원 감탄) 너무 작아서 GS 살려고 하면 눈치 줘요. (직원이) “240이요?” 계속 물어봐요. 물건 찾으러 가면서 “아닌데…”하는데, 신어보면 맞아요. 그럼 존나 신기해 하고… 발이 작은 게 단점이자 장점인데, 어쨌든 GS를 싸게 사니까요. 오프라인으로 사기가 힘들어요. 눈치를 주니까요. 하여튼, 뉴발란스가 최고입니다. 발에 제일 잘 맞고요. 574는 사랑입니다.
LE: 인터뷰가 막바지입니다. 원래는 저희 힙합엘이는 자주 오시냐는 질문을 하는데,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자주 안 가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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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초심이나 시작, 초지일관 같은 말에 별로 연연해 하는 타입이 아니시긴 하지만, 그래도 힙합엘이가 첫 시작점이니까 본인에게 힙합엘이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초심 이런 건 없고요. 사람이 초심으로 살면 어떻게 해요. 아무튼, 초심은 삶에 있어서 전혀 상관없는 무언가인 것 같고요. 그냥 초심은 초심일 때 제일 아름다운 거고요. 힙합엘이는 저한테 처음에는 얻은 게 너무 많았고, 얻은 게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제가 여기 뭔가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어요. 되게 엄청나게 커가는 걸 보면서, 사실 옆에 있으면 아무렇지 않기는 한데요. 솔직히 말해서 “와, 씨발 힙합엘이 이만큼 컸어. 존나 쩐다.”라고 하면서 울고 그러진 않고요. 그래도 그냥 신기하긴 해요. 사실 커졌다는 것보다는 5년씩이나 했다는 게 더 신기해요. 조금 있으면 제가 제일 오래 한 무언가가 돼요. 초등학교 다닌 6년이 가장 길었는데, 내년이면 그것만큼 한 게 되는 거잖아요. 초등학교는 강제지, 이건 강제도 아닌데 6년 동안 한다는 건 진짜 대박이죠. 엄청난 대박이죠. 강제하지 않았는데도 6년씩이나 한다는 건… 직장도 아니고요. 시간이 빨리 가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고요. 5년을 매번 세 가면서 하지 않으니까요. 아예 안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사실은 여기를 몇 번이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고민을 되게 많이 했었는데요. (웃음) 힙합엘이가 저한테 방해가 되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힙합엘이가 가는 거랑 제가 가는 거랑 좀 멀어진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제가 여기랑 아무 상관 없는 곳처럼 느껴져요. 그러면 굳이 여기 있으니 나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할 때도 종종 있는데, 그래도 어쨌든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 안에서 생기니까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LE: 그만큼 본인이 생각하기에 다른 매체와 차별화된 힙합엘이만의 매력이 있을 것 같은데요. 간단하게 말하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아… 있나? (웃음)
LE: 없으면 안 해도 되고요. (웃음)
있어요. 분명히 있어요. 힙합엘이만의 매력… 독보적이란 게 제일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크게 권위 있진 않은 곳 같아요. 수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매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 크다는 건 부인할 수 없죠. 그러다 보니까 정말 독자적인 곳이 되어버렸고, 그런 특수성이 가장 큰 매력이긴 하죠. 그게 또 장점이자 단점이고요. 그게 단점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여기서 뭔가를 한다고 대단히 인정받진 않아요. (웃음)
LE: 그런 여러 가지 지점 때문에 힙합엘이에 들어온 걸 후회한 적도 있나요?
더 솔직히 얘기하면, 힙합엘이 자체에서 한 건 제게 크게 도움이 되진… (웃음) 제가 도움받은 게 100이라면요. 힙합엘이에서 80에서 90 이렇게 받은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 받은 건 당연하고요. 여기서 쓴 글을 보고 연락한 사람은 사실 그렇게 많진 않아요. 대신 힙합엘이가 도움을 준 건 그렇게 보다는 제가 뭔가를 하려고 했을 때, 힙합엘이라는 매체 자체가 저를 푸쉬해준다든지, 혹은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준다든지 그런 거죠. 밖에서 제가 해볼 수 없는 걸 해본 것도 있고요. 그런 건 정말 큰 도움이죠.
LE: 후회한 적은 없겠네요.
네. 후회했으면 진작에 나갔겠죠. (웃음)
LE: 좀 전에 초등학교 이후로 가장 오래 한 무언가가 될 거라 하셨는데, 솔직히 언제 망할 것 같다 예상했었나요? 아니면 망할 거라고 생각한 적 있었나요?
망할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고요. 그냥 쭉 잘될 거라 생각했고, 다만 얼마나 잘 될까가 궁금했어요. 어떤 스타트업 기업이든 3년 차, 5년 차 같이 크게 반환하는 기점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 반환하는 기점을 3년 차가 되었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만들고, 5년 차가 되었다고 해서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LE: 그냥 자연스러운 거죠.
네. 이 공간은 3년 차가 되었을 때 변할 계기가 생겼었고, 5년 차가 되었을 때 변할 계기가 생겼었기 때문에 건강하다고만은 할 수는 없지만, 계속 커가고는 있는 거죠. 그냥 쭉 잘 될 거 같아요.
LE: 이건 블럭 씨한테 특히나 의미 있는 질문인지 모르겠어서 그냥 더 간단하게 여쭤볼게요. 오늘 들은 음악 중에는 뭐가 있나요?
오늘 들은 음악은 오늘 나온 신보죠. (전원 웃음) 뭐겠어요.
LE: 그럼 요 근래 즐겨 듣는 아티스트라든가, 앨범이라든가 이런 건 뭔가요?
저는 제일 좋아하는 건 얼터너티브 알앤비에요. 피비알앤비, 얼터너티브 알앤비 이렇게 불리는 앰비언트나 트랩 위에 노래하는 JMSN이나 하우 투 드레스 웰(How To Dress Well) 같은 사람들을 제일 좋아하고요. 그래서 그나마 최근에 나온 것 중에는 상대적으로 위켄드(The Weeknd)가 제일 좋았던 거 같아요. 위켄드의 “The Hills”…
LE: 힙합 위주로 요즘 주목하는 신인을 국내, 외로 꼽아봐 주세요.
신인은 326-2 졸업생 중에 AG0이라고 여성 래퍼 분이 있어요. 되게 잘하시는 거 같아요. 인스타그램을 보게 됐는데, 삶의 바이브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자기 리듬이 있는 것 같았어요. 랩하시는 것도 되게 흥미로웠고요. 국외는… 누굴 이야기해야 하나. 얼마 전에 강일권 리드머(Rhythmer) 편집장님도 글 쓰셨던데, 리틀 심즈(Little Simz)라고 영국 래퍼가 있죠. 되게 멋있더라고요. 뮤직비디오도 멋있고, 라이브도 멋있고요. 그리고 갈란트(Gallant)라고, 제가 좋아하는 알앤비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요. 국내에서는 사실 딘(Dean)이 제일 멋있는 것 같아요. 너무 소비만 안 됐으면 좋겠어요. 많이 알려지고, 많은 사람과 콜라보하는 건 좋은데, 그래도 자기 걸… 알아서 잘하겠지만요. 제가 남의 걱정을… 계속 멋있었으면 좋겠어요.
LE: 그렇다면 이상하지만 자꾸 눈이 가는 아티스트로는 누가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단연 일인자라고 봐요. 퓨처리스틱 스웨버(Futuristic Swaver). 진짜 전무후무하고, 그런 캐릭터는 그분 한 분밖에 없기 때문에… 계속 뭔가를 내니까 계속 듣게 되고요. 처음에는 좀 병맛이다 싶고, 따라 하는 것 같아서 별로다 싶었는데, 저번 정규 앨범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래도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게 있는 것 같더라고요. 보여주고자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걸 제대로 보여주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LE: 스스로 생각하는 성공이란 게 있는지 궁금해요. 블럭 씨의 라이프스타일이나 가치관을 보면, 어떤 걸 딱 이뤄냈다고 해서 그걸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긴 한데요. 그래도 비스름하게라도 본인은 어떤 걸 성공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주세요.
없어요. 전혀 없고요. 왜냐하면, 솔직히 말하면 애초에 뚜렷한 목표 지점이 없었어요. 글을 쓰고 싶다는 거였지, 글을 써서 뭘 해야겠다, 얼마만큼 유명해져야겠다, 혹은 얼마를 벌어야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자체가 목표였고, 이미 글을 쓰고 있죠. 그러다 보니까 어떤 성공이란 개념도 잘 모르겠고요. 그냥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면 그게 성공인 것 같아요. 별로 욕 그렇게 많이 안 먹고요. 먹긴 먹겠지만요. 나이 들어서 맛탱이가 갔다는 소리를 듣기 전에 뭔가 변화를 해야겠죠. 제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다른 걸로 글을 써야 하고, 그런 변화의 기점이 오긴 하겠죠. 하여튼, 성공은 그냥 계속 이 일을 하는 거 같아요. 이 일을 어떻게든 계속 이어나가는 거.
LE: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런지 지나온 20대를 돌아보면 어떤 시절이라고 표현하고 싶은지 더 궁금한데요. 꽤나 파란만장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나 힙합엘이를 비롯해 이쪽 일을 시작하고 나서 더 그럴 것 같고요.
되게 소름 돋는 건 20대의 절반을 힙합엘이에 날렸다는 거예요. 진짜로 소름이 돋아요. 내가 20대의 절반 동안 힙합엘이를 했어. 미쳤어. 말도 안 돼. 20대는 그냥 간단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었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전원 웃음) 그건 그 순간이고, 그렇기에 의미가 있을 뿐이죠. 그걸 반복하고 싶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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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사실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거에 그렇게 크게 연연해 할 스타일은 아니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고함20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계기도 그렇고, 어쨌든 그 앞자리 숫자에 어느 정도 마음을 두고 있는 건 맞잖아요. 해서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고 새롭게 설정한 목표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년부터 뭔가 계획하고 있는 거라든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궁금해요.
항상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모두가 알겠지만, 12월 31일에 자고 1월 1일에 일어난다고 해서 키가 갑자기 10cm가 커져 있다든지, 온몸에 털이 나 있다든지 이런 변화는 없어요.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하루가 지나가는 거죠. 시간이 쭉 흐를 뿐이지, 크게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그 대신에 스물아홉을 처음 맞이할 때는 스물아홉에 뭔가가 있는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주변에서 하도 아홉수, 아홉수 얘기를 하고, “너도 당해봐라.” 이런 얘기를 하도 많이 하니까 처음에는 있는 줄 알았어요. 그게 연초에나 잠깐 있었지, 어차피 저 사는 건 똑같고, 쭉 시간의 연장 선상일 뿐이죠. 그렇긴 한데, 얼마 전에 스물아홉은 이런 건가 얼핏 느꼈던 때가 있어요. 다들 얘기하는 그 아홉수의 특징과 비슷하더라고요. 사춘기 간지긴 한데, 저에 대한 고민을 엄청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그건 사실 저는 우연히 스물아홉에 되게 많은 상황이 한꺼번에 닥쳐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대학원이든, 회사의 오퍼든, 제가 하는 일이든 이런저런 변화가 갑자기 한꺼번에 너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됐는데요. 돌이켜보면, 스물아홉에 다들 그런 시기가 오고, 그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어렴풋이 스물아홉은 이런 건가 싶었어요. 근데 그래 봤자 두 달 정도 지나면 그냥 서른이 되는 거고요. 두 달 반 동안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든가, 달이 폭발하고 이러진 않을 테고… (전원 웃음) 다음날 같이 아재체 쓰고 그런 건…
LE: 그런 것 같아요. 보통 해가 바뀌면 마음을 먹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뭘 해야겠다, 뭘 해야겠다 하면서요. 근데 그게 마음만 먹으면 사실 날짜 관념이 상관이 없는데, 근데 그 마음을 못 먹다 보니까 날짜라는 관념에 뭔가 의존하는 느낌도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스물아홉, 서른은 좀 느낌이 다를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사람들이 막 서른 되기 전에 살을 빼놔라, 서른 되기 전에 뭘 해라, 서른 되기 전에 뭘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 다 못하고 있고… (웃음) 서른 되어서 해도 될 것 같고요. 그런 느낌이 제일 커요. 서른이 되어도 이 일은 할 수 있어요. 서른 되어도 살 뺄 수 있고, 서른 되어도 철없는 짓 할 수 있어요. 서른인 걸로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러지 않는 게 중요한 거죠. 서른이 됐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양복을 맞춰 입고, 걸음걸이가 바뀌고 이런 건 오버인 거 같아요. 에바야. (전원 웃음)
LE: 그런 거랑도 비슷한 거 같아요. “놀다가 11시부터 시험공부 해야지.”라고 하는 거.
그렇죠. 에바야. 안돼. (전원 웃음)
LE: 자, 이제는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여기저기서 입사 제의도 받으셨었고, 또 작년과 올해 이래저래 정말 격동의 변화를 겪기까지 하셨는데요. 앞으로 해가 바뀌든 안 바뀌든 간에 어떤 것들을 하고 싶은지 궁금해요. 작은 계획도 좋아요. 이런 프로젝트가 앞으로 준비할 것이라든가, 아니면 크게 봐서 앞으로 삶을 이렇게 이어가고 싶다는 식도 좋아요.
솔직히 말하면 요새는 정말 한 치 앞도 모르겠어요. 내년에 제가 뭘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대학원을 휴학할지 계속 다닐지도 모르겠어요. 회사에 다닐지 안 다닐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올해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전원 웃음)
LE: 방금 나눴던 얘기랑은 좀 다르지 않나요? (전원 웃음)
아, 그런가요? 고칠게요. 시간이 빨리 지났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빨리 지나서 뭔가 결정되었으면 좋겠어요. 결정의 순간이 계속 길어지니까… 물론, 그럴 때가 매번 와요. 왜냐하면, 프리랜서다 보니까 매해 초에 프로젝트 섭외가 들어오고, 8개 정도 제의가 들어오면 그중에 한 개라도 하면 다행이고요. 그런 게 올해는 전체에 걸쳐서 일어났기 때문에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시간이 빨리 지나서 그 각각의 클라이언트가 끝내야 하는 시점이 있을 것 아니에요. 그 시점이 빨리 와서 제 일도 같이 정리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과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지금은 먼 듯 가까운 듯한데요. 거기서 합일점을 찾거나 안정된 무언가를 찾는 건 사실 포기했고요. 별로 큰 사고만 안 났으면 좋겠어요. 무탈하게 하고 있는 일 하면서 어느 정도 하고 싶은 것도 조금씩 하고요. 그렇게만 해도 다행이죠. 지금 상황에서 큰 계획이나 그런 건 짤 수도 없어요.
LE: 이런 게 정말 포장 안 한 말인 거 같네요.
근데 어쩔 수 없어요. 큰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LE: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 한 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인터뷰 소감 등등 자유롭게 얘기해주세요.
거듭 강조하지만, 제가 뭐라고 이런 인터뷰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뭔데 인터뷰를 하느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런 인간도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고요. 힘들긴 한데, 어쨌든 이런 일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아까 얘기했듯이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고요. 그리고 여건이나 이런 것보다는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네. 끝입니다.
LE: 인터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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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글|Melo, Beasel
사진|ATO
12 추천 목록 스크랩신고 댓글 12 title: [E] ScHoolboy Q - OxymoronSimp11.14 01:25 잘 봤습니다!!! 추천 댓글 맨11.14 01:44 잘 읽었습니다~ 추천 댓글 박재범의읭?!11.14 02:32 엘이의 대들보!! 추천 댓글 title: 아링낑낑 (2)ReVal 1 11.14 11:40 웃음 사망꾼 추천 댓글 쌍계11.14 12:24 잘 읽었어요. 추천 댓글 title: Mos Def시비걸기11.14 12:33 박준우님 글 여기저기서 잘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응원합니다 추천 댓글 itry11.14 16:44 잘읽었습니다!! 추천 댓글 BitterCandy11.14 18:43 정말 담백하다 추천 댓글 title: Big PunPhife Dawg11.14 22:36 인터뷰 잘 봤습니다 다음 타자로는 히맨님 인터뷰 부탁합니다 추천 댓글 title: MBDTFBadMTone11.15 01:15 잘 읽었습니다! 솔직히 읽으면서 재미는 없었지만 ㅜㅜ 그래도 커트코베인 음악들으면서 정독했어요 ㅋㅋㅋ 힙합엘이만큼 애정 가지는 사이트는 없는데 이곳에서 꾸준히 활동하시며 좋은글들 많이 써주시고 라디오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뵈서 친숙했었던 분인데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이셨군요! 건강 헤치지마시고 힙합엘이나 어디서든 꾸준히 좋은 활동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추천 댓글 Q train11.15 12:20 잘읽었습니다!!! 추천 댓글 피노11.27 20:01 엘이라디오듣고나니 인터뷰에서 블럭님 목소리가 들리네여 via https://hiphople.com/interview/5584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