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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인터뷰 피셔맨(Fisherman) – ‘용’을 좇는 마음

한국힙합위키

피셔맨(Fisherman) – ‘용’을 좇는 마음 리드머 작성 | 2021-02-01 15:51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22 | 스크랩스크랩 | 8,529 View


인터뷰: 황두하, 김효진



‘사피어-워프의 가설’에 따르면, 언어는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의 너비를 결정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사고와 가치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티스트의 언어는 음악이다. 음악으로 소통하고 사고한다. 통상적으로 음악 안에 상념을 풀어낸다고 하지만, 반대로 음악이 어떤 생각을 아티스트에게 심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아티스트의 삶에 투영될지도 모를 일이다.


피셔맨(fisherman)이 지난 10월 발표한 [The DragonWarrior] 속 화자는 치열하게 숙고한다. 그 중심엔 ‘믿음’이 있다. 직감을 추구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 피셔맨 또한 그랬다. 본인이 느끼는 바에 충실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좇는다. 그게 일률적이지 않은 음악으로 표현될지라도 말이다. 열렬하고 자발적인 마음은 늘 어지러운 법이다.



리드머(이하 ‘리’): 반가워요. 이름 얘기부터 해보죠. 이전에 '라프'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거로 알아요. 이름을 ‘피셔맨’으로 바꾼 이유가 있을까요?


피셔맨(이하 ‘피’): 바꾼 이유는… 그때 비트 테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그걸 열심히 준비해서 제대로 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비트 테입 내는 김에 이름도 바꿨어요. 이름 자체에는 뜻이 없긴 해요. ‘피셔맨’의 어감이 좋아서 지었어요.


리: 이른 나이에 음악을 시작했잖아요.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피: 저도 정확한 시점이나 이유는 모르겠어요. 애매해요. 제가 어릴 때 게임을 만들고 싶어 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시작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랩도 취미로 조금 했었어요. 하다 보니 ‘비트도 만들어 볼까?’ 하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돼서 시작한 거 같기도 하고요. 정말 하다 보니까 하게 됐어요.


리: 힙합과 알앤비 같은 블랙뮤직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피: 처음에 힙합 접했을 때는… ‘자녹게’ 이런 거 많잖아요. 잘 돼 있는 힙합 커뮤니티들. 그래서 그런 커뮤니티 맛에 빠졌다가 자연스레 관심 두게 됐어요. 음악은 블랙뮤직 말고도 많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이 힙합/알앤비 쪽에 많다 보니 이쪽으로 음악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리: 그럼 가장 크게 영향받은 아티스트는 누구예요?


피: 음… 너무 많은데. 가장 크게요?


리: 여러 명 해도 됩니다. (웃음)


피: 프라이머리 앨범 엄청 많이 들었고 진보 앨범, 피제이 앨범도 많이 들었어요.


리: ‘자녹게’ 같은 커뮤니티에서 유저들이 랩을 많이 올리곤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도 플레이어가 아니라 프로듀서로서 활동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피: ‘열다’라는 크루를 통해서 음악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당시에 비트를 조금씩 찍어 보고 있었는데요, 거기서 비트 메이킹하는 형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로듀서로서 역할 하게 된 거 같아요. 같은 크루 소속 플레이어들도 ‘내가 플레이어가 되겠다.’라는 생각이 선행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자기 음악을 만드는 데에 신경을 많이 썼고, 각자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각각 프로듀서와 플레이어가 돼 있는 거죠.


리: 당시 ‘열다’라는 크루는 어떻게 결성된 건가요?


피: 저는 나중에 들어갔어요. 원래 형들이 서로 동네 친구들인가…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원래부터 서로 알고 있었고 각자 음악 하는 친구들이 모인, 그런 모임이었던 걸로 알아요. 그러다가 인터넷 통해서 음악 잘하는 사람도 더 찾아서 모이게 된 걸 거예요. 저는 예전에 ‘플래닛 플루토(PlanetPluto)’라는 팀을 했었는데, 거기에 같이 있던 형이 “다 같이 들어갈래?”해서 들어간 경우예요.


리: 이번 앨범에 김심야가 참여했어요. 그때 인연이 이어져 온 건가요?


피: 그렇죠. 그때부터 알고 지냈죠.


리: 두 분이 굉장히 다른 행보를 걷고 있잖아요? 크루 말고는 접점이 없어 보이고요. 그 이후로도 교류를 해왔군요?


피: 그렇죠. 아는 형·동생 사이로 지내고 있어요. ‘Cable Tie’ 트랙 만들고서 김심야 형이랑 너무 잘 어울릴 거 같아서 먼저 연락했죠.


리: 현재는 ‘우주비행’라는 크루에 속해 있잖아요.


피: 제가 들어갈 당시에 “호구”라는 곡을 만들었어요. 곡이 다 만들어지고 발매할 때 기리보이 형이 ‘우주비행’이라는 DJ 크루를 만들 생각인데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서 바로 “네!”하고 들어가게 됐어요. “호구”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죠.


리: ‘호구’는 어떻게 만들게 됐어요?


피: “호구” 전에 제가 비트 테입을 냈었어요. 당시에 모든 래퍼들하고 모든 프로듀서들에게 제 비트 테입을 들어봐달라고 트위터로 무작정 연락했거든요. 그때 기리보이 형이 듣고 좋다며 답장을 보낸 거예요. 같이 작업하자고. 그렇게 인연이 닿아서 만든 곡이 “호구”예요.


리: 활동 초반에는 말랑말랑하고 미니멀한 느낌을 추구했었죠?


피: 그때 들었던 음악들이 그런 쪽이었어요. 원래 음악 취향이 부드럽고 말랑한 거 같아요. 부드러운 음악을 평소에 많이 들어요. 기리보이 형이랑 작업할 때도 그런 면에서 많이 통한 거 같아요.


리: 처음 ‘피셔맨’이라는 이름을 접한 게 비프리(B-Free)의 [KoreanDream]에 수록된 “Good Year”를 통해서였어요. 그 트랙도 비슷하게 이메일로 연락해서 작업했다고 들었어요.


피: 네, 맞아요. 그때도 비트 테입이 시작인데요. 당시 제 작업량이 많았어요. 그런데 많은 곡을 비트 테입에 다 담지는 못하니까 아쉽게 남겨진 곡들이 많잖아요. 그 곡들을 비프리 형에게 보냈었죠. 그렇게 해서 같이 작업하게 됐어요.


리: 적극적으로 본인을 어필하는 편이었네요.


피: 그랬던 거 같아요. 어리고 패기도 있었고요.


리: 비트 테입 [Lolita](2014)부터 주로 인스트루멘탈로 된 앨범을 많이 발표해왔는데, 피쳐링을 많이 활용하지 않는 점도 눈에 띄어요.


피: 일단 그런 앨범을 정말 많이 들었고요. 솔직히 말해서, 다른 프로듀서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만들면 아무래도 애착이 가잖아요. 이미 그 상태로 완성처럼 들려요. 그런 앨범들도 실제로 많고. 그래서 인스트루멘탈인 상태로 자주 발매하게 됐어요.


리: 앞으로도 그런 작업을 많이 할 계획인가요?


피: 요즘에는 목소리를 얹었을 때 완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 맛에 빠졌어요. 그런데 그런 작업을 실제로 하게 되면 절차들이 많아서… 하고는 싶고 하기는 할 거예요. 이번 앨범은 감사하게도 모두 흔쾌히 해줬어요.


Format (2017)


리: 2017년에는 구원찬 씨와의 콜라보 앨범 [Format]도 발표했어요. 어떻게 작업하게 된 거예요?


피: 원찬이 형도 ‘열다’에 속해 있었어요.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고 음악도 워낙 좋아하는 아티스트였고요. 시작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Format]을 만들기 시작할 즈음에 어떤 계기로 물꼬가 트여서 원찬이 형이랑 대화를 많이 나눴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렇게 같이 얘기를 나누다가 구상하게 된 앨범이에요.


리: 그렇게 활동을 시작한 지 6~7년 만에 첫 정규 앨범 [The Dragon Warrior]를 발표했습니다.


피: 저는 사실 정규 앨범이든 EP든 낼 때마다 마음은 같아요. 그런데 이번엔 트랙 수가 많아지다 보니 정규로 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정규로 낸 거거든요. EP와 정규의 차이가 깊이의 차이라면, 저는 전에 냈던 앨범들도 다 정규 앨범이에요.


리: 근래 보기 드문 2CD 구성도 인상적입니다. 두 번째 CD에 첫 번째 CD 곡의 인스트루멘탈을 담았는데요, 보통 국외에서는 디럭스 버전의 보너스 트랙 개념으로 이런 구성을 볼 수 있는데, 피셔맨 씨는 프로듀서라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도 같아요.


피: 일단 인스트루멘탈 앨범을 내고 싶었어요. 그 자체로 좋은 것 같아서요. 실제 “DOOM” 같은 트랙은 디테일이 많아서 오히려 목소리가 없는 게 낫다는 분들도 간혹 있었거든요. 그럼 인스트루멘탈로 다 내자, 했는데 앨범을 2CD로 나눌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눠서 냈어요. 딱 나뉘니까 깔끔하잖아요.


리: 대개 인스트루멘탈을 따로 낼 때는 “DOOM (inst.)”식으로 표기하잖아요. 그런데 2CD에 담긴 인스트루멘탈은 ‘(inst.)’ 없이 제목만 있어서 하나의 완성된 트랙으로 느껴졌어요.


피: ‘inst.’를 붙여버리는 순간, 의미가 좀 뭐랄까, 완성된 곡에서 요소 하나를 뺐다는 의미로 다가오잖아요. 불완전한 느낌으로. 이것보다는 완성된 트랙에 요소 하나(피처링)를 얹었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리: [The DragonWarrior]는 무엇보다 앨범 전체에 녹아든 메시지가 인상적이었어요. 메시지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구상 과정이 궁금해요.


피: 이 앨범은 게임이 시작이었어요. 친구랑 어떤 게임 영상을 보는데, 그 영상에 용을 잡는 기사가 나왔어요. 제가 문득 “저 기사한테 가서 용 없다고 정신 차리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하고 던졌거든요. 그 친구가 “오!” 이러는 거예요. 순간 괜찮다 싶어서 ‘Dragon Warrior’라는 테마를 잡고 접근하기 시작했어요.


리: 평소 음악적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는 편이에요?


피: 보통은 영화 같은 볼거리에서 많이 받는 편인 거 같아요. 노래에서도 많이 받지만, 음악은 표현할 수 있는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영감을 받고요. 주제나 제목이나 느낌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건 주로 시각적인 것에서 받아요. 요즘에는 SF물 많이 봐요. 가장 최근에는 [데브스] 봤어요. 재미있던데요. 영화 [컨택트]도 재밌게 봤어요. 그 영화는 삽입된 음악도 너무 좋더라고요.


리: 혹시 피처링이 들어갈 트랙과 그렇지 않은 트랙을 따로 염두하고 작업하는 편인가요?


피: 만들다 보면 느낌이 와요. 예를 들어서 이번 앨범 2번 트랙 “Blade of Dignity” 같은 경우에는 특정한 BPM이 없어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거든요. 그런 곡에 목소리를 얹으라고 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 트랙은 당연히 있는 그대로 두죠. 만들다 보면 느낌이 오는 거 같아요.


리: 이번 앨범에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지분이 늘어났어요. 커리어 초반에 작업하던 곡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음악 스타일이 변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피: 신시사이저는 원래 좀 쓰는 편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전작과 비교했을 때 가장 새롭게 느껴지는 건 앰프 부분인 거 같아요. 록 사운드 느낌. 이번에 앨범 준비하면서 프린스(Prince)의 “Purple Rain”을 많이 들었거든요. 평소 듣지 않았던 장르라 그런지 더 좋더라고요. 제가 그런 느낌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마 앞으로 낼 음악들도 사이키델릭한 느낌이 많이 묻어날 것 같아요.


리: 앨범에서 유독 신경을 더 많이 썼다 싶은 트랙이 있다면요?


피: 다 같은 마음으로 썼는데 그래도 꼽아야 한다면… “DOOM”인 거 같아요. 원래 지금 나온 버전보다 다이내믹이 더 큰 곡이었어요. 저는 그런 포인트들이 오히려 매력적이라고 느꼈는데, 다른 분들에게 들려줬을 때 깜짝깜짝 놀라는 부분이 많다고 피드백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에 신경 써서 디테일을 많이 뺀 곡이에요.


리: 그럼 “DOOM”을 만들면서 비와이를 염두에 둔 건가요?


피: 트랙 자체를 2018년 3월에 만들었어요. 이건 정말 제가 아끼던 곡이었어요. 그런데 앨범에 담으려면 어쨌든 결이 맞아야 하잖아요. 그런 이유로 아끼고 있다가 비와이 씨가 언젠가, [Well Being] 냈을 때였던 거 같은데, 제 노래를 잘 들었다고 SNS에 올려줬더라고요. 그게 인연이 돼서 부탁했어요.


Well Being (2019)



리: 이번 앨범에 실린 랩 트랙 같은 경우 통념적인 랩 구성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피: 이건 제가 제의한 게 아니라 아티스트 분들이 그렇게 해줬어요. 곡 자체가 반복되는 부분이 없다 보니까 그렇게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


리: 피처링 아티스트와 작업할 때 아예 맡기는 편이에요? 가사나 구성 같은 것들…


피: “DOOM”은 미리 얘기했어요. 이 곡을 타이틀로 할 것 같았거든요. 비와이 씨가 종교인이잖아요? 독실한 종교인일지라도 ‘엄청 힘들 때는 신을 부정할 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외람된 질문일 수 있지만, 그렇게 써서 보냈거든요. 그랬더니 그런 느낌으로 해줬어요. 나머지 트랙은 전적으로 맡겼어요. 앨범 이름 같은 건 말씀드리고요. 예를 들어 지우(jiwoo) 같은 경우는 “Dragon Warrior”에서 보름달의 이미지를 연상하면서 썼다고 하더라고요.


리: 수민이 피처링한 트랙(“사이”)도 인상적이었어요.


피: 제가 아끼는 트랙이에요. 비트 만들고서 수민 씨가 하면 너무 잘 어울릴 거 같아 부탁드렸는데 너무 흔쾌히 해줘서 감사했어요. 정말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되기도 했고 가사가 진짜 재밌어요. 첫 번째 벌스랑 후렴을 먼저 받았을 때 (가사 내용 보고) ‘와 진짜 나빴다.’ 생각했거든요. 근데 두 번째 벌스 받고서 ‘아, 그럴 수 있나?’ 하며 납득한 기억이 있습니다.


리: 수민과는 어떤 인연으로 작업하게 된 거예요?


피: 따로 연고는 없었는데 곡 만들고 나서 디엠으로 부탁했어요. 비와이 씨도 그렇고 수민 씨도 그렇고, 꼭 해야 할 것 같아서.


리: 매우 적극적인 스타일이네요.


피: 모르겠어요. 앨범 낼 때마다 그렇게 되나 봐요.


리: 쿤디판다와의 작업 계기도 궁금합니다.


피: 쿤디판다랑은 동갑 친구예요. 자주 술도 먹는 사이인데, 그 친구 목소리도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하게 됐어요. 근데 가사가 진짜 우리 얘기거든요. 같이 술 먹을 때나 떠들 때 했던 대화들이요. 그래서 너무 웃기더라고요.


리: 이번 앨범에 클래식 곡(“Gymnopedie”)도 있잖아요. 수록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아니면 평소 클래식도 자주 듣는 편인가요?


피: 사실 평소에 클래식을 아예 안 들어요. 그런데 어느 날에 “Gymnopedie”를 우연히 듣게 됐어요. 순간 ‘이 노래 아는데?’ 하다가 이 곡을 일렉트로닉하게 풀어내면 재밌겠다 싶어서 만들게 됐어요. 일단 곡이 이미 있으니까 제가 뭐 할 게 없잖아요. 약간 편한 것도 있었던…. (웃음)


리: 그간 많은 아티스트들과 작업했는데, 본인과 가장 잘 맞는다고 느껴진 아티스트를 꼽는다면요?


피: 저는 아무래도 원찬이 형인 거 같아요. 서로 친밀한 사이다 보니까 스케치 과정에서 생각 없이 툭툭 던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어요. 그래서인지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고요.


리: 앞으로 작업해 보고 싶은 아티스트도 있을 것 같은데요.


피: 일단 앨범을 만들다 봐야 알 것 같아요. 누구를 정해놓고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고 만들다 보면 생각나요. 저는 작품을 먼저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곡도 그렇고.


리: 예전 인터뷰를 보니 '연구하는 음악'에 매력을 느낀다고 답했더라고요.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줄 수 있을까요?


피: 당시에 말한 건 신시사이저나 사운드 디자인 쪽으로 (공부하는 입장에서) 말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마스터했고. (웃음) 사운드 믹싱 방식이라든지… 옛날에는 모르니까 배워갈 게 많았다면 지금은 아는 게 많아서 제 색깔에 맞춰 선택하는 편이거든요. 지금은 공부라기보다는 센스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거죠. 요즘은 수민 씨와 같이 한 “사이” 같은 음악을 더 하려고 하고 있어요.


리: 그럼 요즘엔 알앤비에 가까운 음악에 관심을 두고 있는 거네요?


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장르보다는 질감에 빠지면 그거만 쓰거든요. 요즘엔 디스토션이나 드라이브 같이 깨뜨리는 거에 빠져 있어요.




리: 프로듀서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뭐예요?


피: 음악적으로 좋은 것이요. 앨범이라고 했을 때 질감적인 측면도 있고 문학적인 측면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프로듀서로 계속하다 보니 언어가 달라져도 좋은 것들, 그런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리: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이나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피: 자기 개성을 살리는 노력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근데 이걸 내가 함부로 말해도 되나? (웃음) 아무튼 개성이 있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직업적으로 하고 싶은 분들이 계신다면… 솔직히 (곡을 만드는 사람은) 대안이 너무 많잖아요.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 거잖아요. ‘이런 곡을 만들어주세요.’ 했을 때 그냥 그런 곡을 만드는 사람한테 가면 되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대체재가 없는) 개성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본인만의 것이 확실한 거요.


리: 요즘에는 어떤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어요?


피: 어… 제가 음악을 들을 때나 디깅할 때 아티스트 이름이나 발매일 잘 안 보고 무작위로 듣는 편이거든요. 재미있게 들은 건 많은데…… 하나 꼽자면 카엘린 엘리스(Kaelin Ellis)의 [MOMENTS] 많이 들었어요, 요즘에.


리: 현재 소속사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려운 점은 없어요?


피: 없는 것 같아요. 소속사 있는 분들 얘기를 자세히 안 들어봐서 모르겠는데… 그런 건 있어요. 앨범 만들려고 할 때, 음악에 대한 의견을 나눌 사람이 없을 때 막막한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런 거 빼고는 괜찮은 거 같아요.


리: 회사에 들어갈 생각은 없고요?


피: 없진 않은데 있지도 않아요. (웃음) 그냥 뭐, 좋은 기회가 있겠죠. 제가 ‘뭘 해야지!’, ‘어떤 게 되어야지!’ 하는 게 없어요. 꽂히면 하는 편이에요.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안빈낙도하듯이… 요즘 심경은 그래요.


리: 혹시 피드백 같은 걸 많이 찾아보는 편이에요?


피: 제 앨범을 듣는 분들이 상상력이 좋아요. 어떤 느낌이 든다면서 다양하게 해석을 해주는데 그런 거 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리: 해석하게끔 음악을 만드는 것 같아요. 앨범 안에서 그 여지가 다분하고, 스토리텔링 구성 방식도 그렇고요.


피: 그런 걸 좋아해요. 장치를 넣는 거. 듣는 맛이 생기니까요. 그게 ‘내가 생각한 정답은 이거야!’ 이런 느낌은 아니고, ‘이런 부분이 있으면 듣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겠다.’ 싶은 것들을 많이 넣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싶은 건 없어요. 장치를 넣되 명확한 의도를 담지는 않는 거죠. 거기에 개인적인 게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고 까먹을 때도 있고…. (웃음)


리: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나 준비하고 있는 앨범이 있을까요?


피: 일단은 생각해 둔 게 있는데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EP나 싱글을 생각하고 있어요. 계속 크게 크게 냈잖아요. 근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아서요. 그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작은 단위로 몇 개를 내보고는 싶은데 아직은 초안이라서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겠어요. 트랙은 준비가 됐는데 그것들을 잘 엮어서 예쁘게 내야 하잖아요. 지금은 한 데로 묶을 테마가 생각이 안 나서요. 그런 테마가 생각나면 곡을 다 갈아야 할 수도 있고….


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피: 앨범 들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피셔맨이 뽑은 좋아하는 앨범 5(무순위)


Thundercat - TheGolden Age Of Apocalypse

A Tribe Called Quest - We got it from Here… Thank You 4 Your service

Slum Village - Fantastic, Vol. 2

f(x) [4 Walls – The 4th Album

Daft Punk - Random Access Mem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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