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쿤디판다 - 디테일함으로 재건축한 가로사옥 리드머 작성 | 2020-09-21 20:32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0 | 스크랩스크랩 | 12,319 View
인터뷰, 글: 황두하, 이진석
뮤지션은 음악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현실과는 다른 이상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 자신과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투영해 청자를 끌어들인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아티스트가 성공하진 못한다. 음악적인 완성도와 뛰어난 퍼포먼스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그 세계는 설득력을 갖는다. 본인의 세계에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초대했다면, 그는 아티스트로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점에서 쿤디판다(Khundi Panda)는 매우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이어오는 중이다. 2017년 발표한 믹스테입 [쾌락설계도]와 비앙(Viann)과 함께한 프로젝트 앨범 [재건축]을 통해 개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하는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여기에 독특한 질감의 소스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프로덕션, 날카로운 톤으로 많은 양의 단어를 속도감 있게 뱉어내는 랩으로 청자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였다. 2018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 음반' 부문을 수상한 것은 그의 음악적 시도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건이었다.
이후 약 1년 반 만에 발표한 첫 번째 정규 앨범 [가로사옥]은 [쾌락설계도]부터 이어져 온 3부작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그는 자신이 한국 힙합 씬에 발을 들이며 겪었던 개인적인 서사를 ‘가로사옥’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설정해 풀어냈고, 이를 통해 시스템의 내밀한 면을 드러냈다. 그의 커리어와 한국 힙합을 면밀하게 살펴본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탄탄한 프로덕션과 퍼포먼스로 장르 음악 고유의 쾌감까지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제야 첫 정규작을 발표했지만, 이미 본인만의 확고한 세계를 가진 아티스트로 발돋움한 것이다.
리드머 (이히 ‘리’): 랩네임의 뜻부터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쿤디판다(Khundi Panda), 상당히 독특한 이름이에요.
쿤디판다 (이하 ‘쿤’): 쿤디판다는 가상의 캐릭터였어요. 판타지 세계 속에 존재하는 캐릭터. 제가 어렸을 적에 봤던 판타지 소설과 만화 등에서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렇게 영향을 받으면서 상상으로 새로운 판타지 세계를 만들었는데, 그 속에 있던 캐릭터 중에 하나가 쿤디판다였죠.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쿤디판다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도 많이 있었어요.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는 같이 하던 아마추어들에게 랩네임으로 쓰라고 이름을 주기도 했어요. 근데 지금은 다 음악을 관둬버렸죠. 그래서 이제는 아무런 효용이 없는 이름이 됐어요. 그 판타지 세계 자체도 약간 퇴색된 느낌이 있어요.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제 안에 있던 작은 세상에 쿤디판다라는 캐릭터가 있던 거죠.
리: 본래 일러스트 작업도 했다고 들었는데, 캐릭터를 만들었던 게 그것과도 관련 있을까요?
쿤: 관련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근데 제가 했던 작업을 일러스트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제가 그림을 직접 그렸던 것도 있지만, 대부분 포토샵으로 콜라쥬 작업을 했던 거거든요. 진짜 일러스트 작업하시는 분들과는 차원이 다르죠. 손재주가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고, 지금은 거의 접은 상태예요. 저는 실제로 커서 겪었던 세계와 경험들을 판타지 세계에 투영하는 경향이 있어요. 음악을 만들면서 비유나 비주얼을 끄집어내는 게 전부 어렸을 때 만든 세계에서 나온 것들이죠. [가로사옥]을 만들면서 생각했던 이미지적인 구조나, 제목을 짓는 센스 같은 것들도 관련이 있다고 봐요.
리: 그 판타지 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굉장히 궁금해지네요.
쿤: 그냥 만화 같은 거예요. 악의 세력이 있고, 경찰들이 있고. 딱히 주인공들이 있지는 않았어요. 지금은 거의 다 잊어버렸는데, 10명에서 20명의 주요 인물들이 있고, 각자의 능력과 사연이 있었죠. 그런 판타지 소설이었어요. 악의 세력이 마약을 풀어서 그 세계가 돌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물리 엔진을 착취해가는 내용이었죠. 이런 이야기를 만들다가, 결국은 사라지게 된 거죠.
리: 그런 소설을 상상하고 구성했던 경험들이 음악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됐나요?
쿤: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초창기 믹스테입들의 커버나 전체적인 앨범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다 이런 판타지 세계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들이었어요. 첫 믹스테입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 믹스테입의 커버도 제가 아파트 단지에서 찍은 사진에 사자, 기린 등의 동물을 합성해서 색을 입혀 만든 것이었어요. 그리고 다음 믹스테입인 [KING IDDIM]도 판타지 세계에서 나온 거였고요. 사실 이딤 왕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좋은 간판이 필요해서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 지었던 이름이죠. 그 믹스테입을 통해 사람들이 좀 더 저의 존재를 알게 됐었죠.
리: 여러 인터뷰를 통해 에픽하이(Epik High)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어요. 음악에 빠지게 된 계기가 에픽하이였던 건가요?
쿤: 맞아요. 첫 계기는 에픽하이가 맞는 거 같아요. 물론 그 전에 누나의 mp3에서 에미넴(Eminem) 같은 아티스트의 노래를 듣기도 했죠. 그리고 중국에 있었을 당시에 누나가 가져온 DVD가 있었어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2000년대 미국 팝 뮤직비디오를 모아놓은 거였을 거예요. 거기에 그웬 스테파니(Gwen Stefani), 퍼기(Fergie), 니요(Ne-Yo), 에이콘(Akon) 같은 아티스트들이 있었어요. 에미넴도 있었죠. 그렇다고 해서 에미넴을 막 팠던 건 아니에요. 그냥 몇 곡만 들었던 거죠. “Real Slim Shady” 같은 곡은 워낙 유명하잖아요. 에미넴의 가사가 재미있어서 찾아보고 따라 부르기도 했지만, 완전히 이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갔던 건 아니에요. 이런 게 진짜 멋있다,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건 에픽하이죠. 당시에 동네 DVD숍에 한류, 케이팝 음반들이 들어오곤 했어요. 케이팝 CD 중에서 에픽하이의 [Swan Songs]가 있었거든요. 그 앨범이 아무래도 처음 대중적으로 히트 친 음반이다 보니 중국에까지 왔었던 것 같아요. 원래는 “Fly” 밖에 몰랐었어요. 근데 앨범을 들어보니 “Fly”가 가장 상업적인 느낌의 곡이더라고요. “도시가 눈을 감지 않는 이유”나 “Swan Songs” 같은 곡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붐뱁에 가까운 곡들이죠. 아무튼, 힙합 음악이라고 인식하며 듣고, 음악 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 건 [Swan Songs]였던 것 같아요.
리: 그럼 지금의 쿤디판다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는 누구인가요? 그것도 에픽하이일까요?
쿤: 음악적인 영향을 준 아티스트들은 너무나도 많죠. 지금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요. 근데 늘 듣던 음악이 지루해질 즈음에 다시 듣게 되는 건 에픽하이에요. 저에게는 그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제가 [Swan Songs]를 듣고, 1집, 2집도 찾아서 듣고, 다음에 나온 4집, 5집도 찾아들었어요. 6집은 직접 사기도 했죠. 그렇게 에픽하이 앨범을 듣다 보니까, 참여한 피처링 게스트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연필깎이”에는 키비(Kebee), “Still Life”에는 소울 컴퍼니(Soul Company) 멤버들과 진보(Jinbo) 형이 참여했었죠. 그래서 그걸 통해 소울 컴퍼니를 찾아 들었죠. 너무 좋았어요. 뭔가 더 ‘랩’스러웠죠. 소울 컴퍼니를 들으면서 라임(Rhyme)의 체계 같은 것도 알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가사를 쓰기 시작했어요.
리: 첫 믹스테입을 2015년에 발표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총 7장의 믹스테입을 발표했어요. 굉장히 많은 믹스테입을 발표했는데, 처음 낸 계기가 궁금해요.
쿤: 우선, 믹스테입을 너무 내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 세대, 93년생부터 99년생 정도까지가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 무료 MP3 게시판이 있었을 때의 세대인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시에 래퍼들이 다 믹스테입을 냈어요. 아마추어든 현역이든. 엄청나게 많은 믹스테입이 있었고, 저는 그걸 다 다운 받아서 듣는 게 재미있었거든요. 그렇다 보니 국외 힙합도 자연스레 입문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푸샤 티(Pusha T) 같은 경우에는 “Trouble On My Mind”로 입문을 하게 됐는데, 당시에 많은 한국 래퍼들이 그 비트에 랩을 했었어요. 너도나도 그 비트를 쓰니까 대체 뭔가 싶어서 찾아보게 된 거죠. 어떻게 보면 믹스테입을 다운 받아서 들었던 것이 저한테는 교재 같은 느낌이었던 거죠.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앨범 내기 전에는 믹스테입을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제가 유학 생활을 끝내고 18살 때 한국에 돌아왔어요. 당시에 한국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를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고, 교실에서 노래만 듣고, ‘믹스테입 만들어야지’라는 생각만 했죠. 그렇게 해서 고3이 됐을 때 첫 믹스테입을 만들었던 거예요. 그리고 또 ‘다음 믹스테입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했고요. 믹스테입에 대한 열망,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리: 쿤디판다 씨에게 믹스테입이 정말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아요.
쿤: 그렇죠. 엄청나게 특별한 의미죠. 초창기 때는 당연히 밟고 올라가야하는 수순이라고 생각했어요. [쇼미더머니 5]에 나가고, 성인이 되고 나서야 ‘믹스테입을 당연히 만들지 않아도 되는구나’라고 깨달았죠. 그렇지만 그 후에도 믹스테입을 만들고 싶었어요. 오히려 더 특별한 존재가 됐죠. 뭔가 ‘팬서비스’ 같은 느낌으로 다가와요. 모든 게 오피셜해지는 시대에, 진짜 비상업적으로 언오피셜한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하고요.
리: 아까 이야기한 [KING IDDIM]이라는 믹스테입에서 “신의 조우”라는 트랙이 화제가 됐었어요. 어떻게 만들게 된 트랙인가요?
쿤: 당시에 첫 믹스테입을 내고서 크루를 하나 만들었었어요. ‘퍼퓨라 에틱스(Purpura Ethics)’라는 크루였는데, 제가 리더였죠. 다른 힙합 크루랑 다르게 저희끼리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래퍼가 많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전례 없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고,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지 않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정말 신박한 음악이 뭘까 찾곤 했었죠. 당시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비공식 음원들을 엄청나게 찾아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당시 LA 씬을 강타하던 소울렉션(Soulection)이라는 집단의 음악을 많이 듣게 됐어요. 제가 그때 이들의 음악을 들었을 때 분명 트랩 기반의 음악인데, 트랩 음악 특유의 위협적이고 웅장한 느낌과는 다르게 굉장히 멜로디컬하고 아름다운 음악들이 많은 거예요. 여기다가 랩을 하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 그렇게 처음 만들게 된 트랙이 “신의 거중기”라는 곡이에요. 그 곡은 믹스테입에 수록하지는 않았어요. 래스컬(Rascal)이라는 프로듀서의 트랙에 랩을 한 거였어요. 또 당시에 골드링크(GoldLink), 왈보(Walbo), 제이든 스미스(Jaden Smith) 등의 음악을 찾아듣다 보니 같이 작업하던 프로듀서들인 타쿠(Taku), 샘 갤라이트리(Sam Gellaitry), 루이 래스틱(Loui Lastic) 같은 비트 메이커들도 찾게 된 거죠. 들으면서 ‘왜 이 비트에 아무도 랩을 안 하지?’, ‘여기에 하면 대박이겠는데?’ 싶었어요. 그래서 [KING IDDIM] 믹스테입에는 제가 그 이전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브레인피더(brainfeeder), 스톤스 스로우(Stones Throw)의 느낌과 소울렉션의 느낌이 반반 섞여 있어요. 일부러 그런 비트들을 골랐었죠. 그 중에 “신의 조우”라는 트랙도 있었던 거고요.
리: 초창기에 퓨처 바운스(Future Bounce) 스타일의 음악을 했던 게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퓨쳐 바운스 스타일의 음악을 하지 않기 시작했어요.
쿤: 그렇죠. 당시에는 분명히 신선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 믹스테입이 나올 때 즈음에 딘(DEAN)과 클럽 에스키모(Club Eskimo)라는 집단이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가져오기 시작했어요. 사운드클라우드에도 그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음악이 많이 나왔죠. 그래서 전 더 이상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 거예요.
리: [쾌락설계도] 이후로 음악 스타일이 바뀐 것도 그런 이유였던 건가요?
쿤: 그렇죠. 퓨쳐 바운스 음악에 흥미가 떨어진 거예요.
리: [쾌락설계도] 이후에는 프로듀서 비앙(Viann)과 함께 [재건축]이라는 앨범을 발표했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인가요?
쿤: [재건축]이라는 이름이 있기도 전에 비앙형과 같이 앨범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아마 그게 [쾌락설계도]를 만들기도 전이었을 거예요. 2016년 중반 쯤에 수원역 근처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했죠. 둘 다 이전부터 살롱01(Salon 01)의 팬이라는 접점이 있었어요. 수퍼프릭 레코즈(superfreak Records)가 사운드클라우드에 컴필레이션 형식으로 음원을 올리던 때가 있었어요. 그중에 비앙형이 참여한 곡이 있었는데, 우주선의 본(VON)의 랩을 샘플링했던 거예요. 제가 그걸 듣고 너무 반가워서 댓글을 남겼죠. 비앙형도 그 댓글을 보고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우주선의 본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비앙형이 저에게 연락을 했던 거예요. 그리고 당시에 제가 이미 뷰티풀 디스코(Beautiful Disco)와는 작업을 했었거든요. 비앙형이 그 작업물을 듣고 저를 괜찮다고 느껴서, 어느 날 만나게 됐어요. 만나서 대화를 해보니 취향이 너무 잘 맞는 거예요. 그 형도 브레인피더의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나, 스톤스 스로우의 날리지(Knxwledge) 같은 아티스트들을 좋아했던 거죠.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시간이 금방 가더라고요. 서로 취향도 잘 맞고 이야기도 잘 통하니까, 자연스레 합작 앨범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리: 그때부터 수퍼프릭 레코즈와도 연결고리가 생기게 된 건가요?
쿤: 그렇죠. 제가 그 전에 [KING IDDIM] 믹스테입을 진보형을 비롯한 수퍼프릭 레코즈 아티스트들에게 다 보내기도 했었어요. 그때도 답장은 왔었는데, 직접 만나지는 않았죠. 비앙형과는 앞서 말했던 때에 처음 만났던 거예요. 비앙형과 만나서 앨범을 하기 전에 가볍게 워밍업 느낌으로 한 곡을 만들기도 했어요. “SUPERFLUSH”라는 곡인데, 사운드클라우드로 공개했죠. 그 곡을 만들고, 비앙형이 케익 숍(Cake Shop)에 초대를 했었죠. 그 후로 이태원에 자주 놀러가다 보니까 자연스레 진보형을 비롯해서 수퍼프릭 레코즈 아티스트들과도 친해지게 된 거고요.
리: 그렇게 만든 [재건축]으로 2018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 앨범 부문을 수상했어요. 많이 늦었지만, 다시 한번 소감을 들을 수 있을까요?
쿤: 저는 제가 받을 줄 몰랐어요. 사실 받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후보에 오른 것 자체로 좋았고, 또 너무 목 매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했죠. 같이 후보에 오른 사람들보다 제가 좋은 앨범을 냈던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굉장히 부정적으로 바라봤죠. 정말 받을 줄 몰랐는데 받게 됐고, 받은 거에 대해서는 너무 좋고 감사해요. 그렇지만 그게 모든 걸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요. 다른 후보들보다 제 앨범이 장르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된 것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제 2년이 지난 후에 상을 받은 소감은 ‘좋은 기록이 되었다.’ 정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도 무슨 기준으로 제가 받았는지 모르겠어요.
리: 그렇다면 수상 이후로 달라진 점이 있었을까요?
쿤: 분명히 달라진 게 있다고는 생각해요. 그런데 좀 애매한 건, 상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연락을 받기 시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당시에 제가 굉장히 많은 사람과 교류하기 시작하던 때거든요. 제 기억으로는 상을 받기 전부터 담예(DAMYE)랑도 만났고, 키드 밀리(Kid Milli)형과도 작업을 했고, 여러 경로로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아예 한대음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재건축]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가 된 건 아니었거든요. 제가 모르는 사람들이 이 앨범을 샤라웃해준 경우도 없고요. 진짜 파격적으로 좋은 앨범이었다면 발매되고 나서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왔겠죠. 그런데 상을 받고나서 연락을 하게 된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생각해보면 제가 상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호의적이진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일수록 선을 긋기가 쉽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상’이라는 것으로 아는 점이 생기니까 그 선이 지워진 거라고 생각해요.
리: 프리스타일 랩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쿤: '마이크스웨거'가 큰 영감을 줬어요. 보면서 프리스타일이 정말 재미있는 거라고 느꼈고, 자연스레 따라하게 됐던 거죠. 그때가 한창 소울 컴퍼니 입문하던 때여서, 라임을 찾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마이크스웨거 보면서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순발력있게 라임을 맞추지?' 싶었죠. 그래서 혼자 비트 틀고 프리스타일을 해보곤 했어요. 한국 돌아와서도 자연스럽게 홍대 놀이터, 윗잔다리를 찾아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페이스북에 윗잔다리에서 프리스타일 모임을 한다는 공지를 띄우면, 그걸 보고 찾아갔죠. 갔는데, 생각보다 다 못하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잘하는 사람이 진짜 많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때 잘하던 사람들이 지금도 잘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때 딕키즈(DiCKIDS) 크루도 많이 왔었어요. 수린이라는 친구도 많이 봤고, 록스 펑크맨(Loxx Punkman)도 왔었고, 가끔 가다가 올티형도 와서 하고, 서출구 씨도 와서 하고, 제이제이케이(JJK)형은 그때 막 아들을 키우던 때라서 자주 보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그때 다 보고 얼굴을 익히게 된 거죠.
리: 그런데 본인이 프리스타일 래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비쳤어요.
쿤: 저는 프리스타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이 있어요. 잘하죠. 저도 제 프리스타일을 좋아하거든요. 그렇지만 프리스타일은 음악을 창작하는 입장에서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봐요. 프리스타일을 리튼(Written)처럼 하는 건 대단한 능력이지만, 그래도 리튼으로 음악을 남기는 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거든요.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프리스타일 래퍼라는 허상의 이미지가 래퍼에게 굉장히 안 좋다고 생각해요. 프리스타일 래퍼라는 건 사실 없거든요. 그냥 프리스타일을 잘하는 래퍼가 있는 거죠. 결국 중요한 건 작품이거든요. 프리스타일은 래퍼로서 그냥 재미 있는 놀이인 거예요. 프리스타일에 대해서 그 이상으로 크게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래퍼들이 더더욱 프리스타일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헛소리여도 좋으니까 그냥 재미있게 뱉으면서 노는 거죠. 그런데 ‘프리스타일 래퍼’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프리스타일을 멀게 느껴지게 하고, 두렵게 생각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부정적인 거죠.
리: 쥬스오버알코올(Juiceoveralcohol)이라는 크루에도 소속되었는데, 현재는 탈퇴했어요. 이유가 뭔지 말해줄 수 있을까요? 소속 아티스트들과 현재도 많이 교류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쿤: 생각이 달랐던 것 같아요. 저는 크루라고 하는 게 결국은 같이 작업을 하고,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중심에 음악이 있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크루가 아니라 그냥 친목회인 거죠. 그리고 저는 인터넷 게시판과 커뮤니티에 있는 수많은 크루들을 겪어봤어요. 쥬스오버알코올 멤버들도 마찬가지죠. 어떤 사람들과는 이렇게 크루였고, 또 어떤 사람들과는 이렇게 크루였고,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해요. 계속 이합집산을 하게 되는 거죠. 크루를 해체하게 되는 건 애정이 식거나 지향하는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쥬스오버알코올도 마찬가지예요. 크루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과 달라진 거죠. 저도 그렇고, 멤버들도 그렇다고 느꼈어요. 특히, 음악에 있어서 실행 능력이나, 개인 작품을 만들 거나, 크루 단위로서 뭔가를 만들자고 하는 그런 의지가 사그라진 거죠. 그런 게 저한테 어느 순간부터 사람까지 싫어지게 하는 이유가 되려고 하더라고요. 제가 또 그런 부분에 있어서 쓴소리를 안 하는 사람도 아니라서요. 다른 사람들한테 ‘왜 너 이렇게 안해?’, ‘우리 이런 거 저런 거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쓴소리를 하는 사람도 좋아서 하는 게 아니에요. 그렇다 보니까 자연스레 마음이 멀어지게 되고, 이 사람들을 끌고 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버려야겠다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탈퇴하게 됐죠. 오히려 그러고 나니까 멤버들을 만나는 게 훨씬 마음 편해졌어요.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 부탁하기도 너무 편하고요.
리: 오히려 집단 안에 있는 게 독이 되었던 거네요.
쿤: 그렇죠. 연인 관계랑도 비슷한 것 같아요. 서로 다른 점이 있을 때, 친구라면 별 상관 하지 않던 것들도 연인이 되면 신경 쓰고 부딪히게 되잖아요.
리: 현재에는 보석집과 서리(30)라는 크루에 소속되어 있어요. 각 크루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쿤: 딱히 계기라는 건 없어요. 굉장히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사람들이라서요. 쥬스오버알코올에 대한 애정이 식어갈 때 쯤에 저는 제 음악을 어떻게 하면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당시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같이 토론을 하던 사람이 심바 자와디(Simba Zawadi)였어요. 지금은 손 심바(Son Simba)죠. 심바랑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던 와중에 디젤(dsel)이라는 친구도 굉장히 많이 만나게 됐어요. 만나다 보니까, 셋 다 랩을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마치 축구 명 경기를 보면서 전략이나 개인기를 분석하는 것처럼, 저희가 진짜 잘한다고 생각하는 랩과 래퍼들의 콘텐츠들을 듣고 보면서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본질적인 것에 대해 고민한 거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같이 만드는 음악이 많아졌어요. 또 같이 살기까지 했어요. 저랑 심바, 디젤, 그리고 희수라는 만화 그리는 친구랑 넷이 상수동에서 살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비앙형과 씨제이비95(cjb95)도 데려오자고 해서 서리가 만들어졌죠. 보석집도 똑같아요. 제가 [재건축]을 만들 때, 큐엠(QM)형도 [WAS]라는 앨범을 냈었거든요. 둘이 만나서 앨범 교환식을 했죠. 큐엠형이 주제를 담아내거나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때 만나서 형한테 너무 좋다고 이야기했는데, 형이 보석집이라는 집단을 만들려고 하는데 멤버로는 테이크원(TakeOne)과 저를 생각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보석집이 크루 같은 느낌이면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런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이 모인 단체고, 그런 걸 추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심볼 같은 존재예요. 저는 보석집으로 딱히 크루 활동 같은 것을 하고 싶지도 않아요.
리: 크루로서 활동한다기 보다는 소속 자체가 의미 있는 거군요.
쿤: 그렇죠.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움직이지 않는 등대 같은 느낌이죠. 실제로 저한테 메일로 오는 신인들의 믹스테입을 들어보면 보석집의 영향을 받은 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 영향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모르겠어요.
리: 잘하는 래퍼들의 콘텐츠를 보면서 랩을 분석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분석하고 영향받은 거예요?
쿤: 음악 작업을 몇 년 간 반복하다ㅍ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잖아요. 그러한 매너리즘이 래퍼들에게 안 좋은 이유는 벌스를 쓸 때 쓰는 단어들이 똑같아지거나 하는 말이 비슷해지기 때문이에요. 그럼 재미없어지거든요. 그런데 저나 심바, 디젤 모두 쓰는 라임 같은 것들이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랩에 대한 공부를 했어요. 라임이 왜 중요한지, 라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이죠. 랩이 좋게 들리려면 리듬이 만들어져야 해요. 리듬이라는 건 반복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귀에서 리듬으로 인식하면서 좋게 들리는 거예요. 랩에서는 라임이라는 지표가 반복되는 지점을 찍어주죠. 저희가 버벌진트(Verbal Jint)를 좋아하는 이유도 같은 거였어요. 원래도 버벌진트를 좋아했지만, 이런 것을 알고서 다시 들어보니까 정말 라임을 기가 막히게 쓰는 사람이었구나 싶은 거죠. 글자로 라임을 맞추는데, 리듬이 빈약하게 회수되는 래퍼들이 왜 구리게 들리는지도 알게 됐고요. 라임뿐만 아니라 호흡을 어떻게 가져가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했죠. 또 타이트함이라는 것이 단순히 음절을 욱여넣거나 목소리에 핏대를 세우는 게 아니에요. 마스타 우(Masta Wu)를 들어보면 랩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해요. 음절이 별로 없고, 라임도 항상 마디 뒤에만 배치하죠. 기본적으로 본인이 가진 호흡법과 목소리 톤 때문에 랩을 들었을 때의 몰입감이 달라요. 그래서 저는 타이트함이라는 게 기술적인 게 동반된 전체적인 랩의 몰입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거죠.
리: ‘랩’을 정말 덕후처럼 팠던 거네요.
쿤: 그렇죠. 기술적인 부분을 연구한 거예요.
리: 한때 도미넌트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에 잠깐 소속됐었죠? 어떤 계기였어요?
쿤: 구두 계약이었어요. 정말 짧게 있었죠. 당시에 되게 친한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제안을 해와서 함께하게 된 거예요. 사실 실질적으로 일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오르내림(OLNL)이 스톤쉽(StoneShip)과 계약을 하게 됐어요. 당시에 오르내림은 회사를 통해서 앨범도 내고,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거죠. 그걸 보면서 회사가 있다면 저런 일을 해야하는구나 느꼈어요. 근데 저도 준비가 안되어있었고, 제가 있던 회사도 구색만 갖춰졌지 실질적으로 준비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회사에 같이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나오게 됐어요.
리: 그래서 2017년 쯤부터 인디펜던트로 활동을 하게 됐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쿤: 많았죠. [가로사옥] 전에는 전부 다 인디펜던트로 냈던 거예요. 회사가 있으면 확실히 인터뷰나 콘텐츠에 출연하는 등의 활동이 집중되는 거 같아요. 앨범을 냈을 때 프로모션 날짜를 연속적으로 안 겹치게 잡아두고 홍보 효과를 확실하게 줄 수가 있죠. 인디펜던트로 활동할 때도 꾸역꾸역 많은 콘텐츠에 나가긴 했어요. 마이크스웨거도 나가보고, 힙합플레이야, 힙합엘이(HipHop LE), 그리고 유튜브에 있는 수많은 콘텐츠들에 출연했죠. 앨범 나올 때만 출연한 것도 아니었어요. 활동을 안 할 때도 갑자기 출연하는 경우도 있었고, 약간 중구난방이었죠. 활동이 하나로 뭉쳐지지가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작업 거절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제가 아무리 피쳐링 벌스를 잘 써도, 그 곡은 제가 주인이 아니잖아요. 그 사람의 프로덕션에 제 노동을 빌려 쓴 거죠. 가뜩이나 제 작품이라고 생각을 안 하고, 정당한 페이가 오는 것도 아닌데, 작업 제의가 너무 많이 오는 거예요. 그래도 다 좋은 관계니까 해줬어요. 다 해주지만, 그게 수확이 되는 것도 아니죠. 가뜩이나 형들이면 더 거절하기 힘들죠. ‘밥 사줄게~’라고 해서 피쳐링해달라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맛난 고기와 술을 대접해줄 테니, 벌스를 달라는 거죠. 어차피 돈을 받아도 제가 술과 고기에 쓸 텐데, 차라리 돈으로 주는 게 어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어요. (웃음) 그게 참 힘들었죠. 이제는 회사가 생겼으니까, 완만하게 거절을 할 수 있게 됐죠.
리: 회사가 생기면서 활동하는 게 굉장히 깔끔해진 느낌이네요.
쿤: 그렇죠. 그리고 하나 더 좋은 건 저의 단가가 올라갔다는 거예요. (웃음)
리: 그렇다면 데자부 그룹(Dejavu Group)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가요?
쿤: 어느 날 비와이(Bewhy)형이 저를 만나고 싶어했어요. 그 전에는 마주치면 인사만 하는 정도의 사이였죠. 그래서 만났는데, 저한테 요새 작업을 하는 게 있냐고 묻는 거예요. 당시에 제가 [가로사옥]이라는 정규 1집에 대한 아이디어만 머릿속에 있던 상태였어요. 구상만 1년 정도 있었던 거죠. 그래서 작업이 된 건 없고, 1집에 대한 아이디어만 있다고 했어요. 비와이형이 그거라도 한 번 이야기를 해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한 2시간 정도 떠든 것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야기해줬어요. 스토리와 구조, 음악적인 장치까지 말했어요. 형이 그걸 듣더니 ‘네가 음악에 대해서 굉장히 디테일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되게 좋은 것 같다. 너와 함께 하고 싶다.’라고 이야기해서 함께 하게 된 거죠.
리: 원래 프로듀서 비앙이 먼저 계약을 했잖아요?
쿤: 그건 기사가 그렇게 난 거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계약을 했어요.
리: 그렇군요. 비앙도 합류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던 건가요?
쿤: 미리 알았던 건 아니에요. 계약을 할 때 쯤에 동시에 알게 됐죠.
리: 이제 앨범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첫 정규 앨범 [가로사옥]은 [쾌락설계도]와 [재건축]을 잇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고 있어요. 꽤 오래 기획된 작품인 것 같아요.
쿤: 사실 [쾌락설계도]는 계획적으로 낸 작품이 아니에요. 당시에 제가 심적으로 힘들었었어요.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죠. 개인적인 일들이라서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쇼미더머니 5]에 나가서 예상보다 일찍 탈락하고 나서 사람들에게 그저 그런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고 나서, 그나마 있었던 사운드클라우드의 팔로워나 조회수도 떨어지게 됐죠. 커리어의 정체가 온 거죠.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알지도 않고, 그나마 아는 사람들은 2차 탈락으로 기억했죠. 그래서 어느 순간에 다 내려놓고 제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더 이상 제가 저를 다른 것으로 꾸미고 그걸 멋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옵션이 많지 않았죠. 그렇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제 이야기를 쓴 거죠. 그 계기는 2번 트랙 “네버코마니”에 나오는 문제의 사운드클라우드 곡이에요. 그 아티스트는 그런 곡을 내서 되게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기분은 나빴죠. 그게 그 사람한테 기분이 나빴던 건지 제 상황 때문에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그 사람의 곡에서 ‘너넨 큰일 났고, 나도 큰일 났는데, 너넨 구려’라고 말하는 태도가 너무 건방져보였어요.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고, 어떻게 구린 건지도 설명 못할 것 같았어요. 그냥 자기는 멋있으니까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 같아서, 그 반대 입장을 풀어보자 싶었죠. 당시 저의 심리 상태와 함께. 그래서 만들게 된 곡이 “현대극락”이었어요. 원래는 3부작이 아니었고, [쾌락설계도]의 1번 트랙으로만 끝날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풀어내다 보니까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 거예요. 그래서 2번 트랙, 3번 트랙, 쭉 이어서 나오게 됐죠. 뭔가 정리가 된 상태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던 게 아니고, 인간적으로 힘들었던 걸 즉흥적으로 녹여낸 거였어요. 복현(본명)으로서 쿤디판다가 잘됐으면 했는데, 잘 안 되어서 힘들었던 마음을 약간은 징징대는 느낌으로 쓰기 시작한 거죠. 그게 5, 6곡이 쌓이니까 ‘안되겠다, 이거 이렇게 묶어서 내야겠다’ 싶어서 믹스테입이 됐죠. 그러면서 마침 만들려고 했던 비앙형과의 합작 앨범을 [재건축]으로 만들게 됐어요. 그때 이제 ‘이걸 3부작으로 끝내야겠다’라고 마음 먹은 거죠. [쾌락설계도]랑 [재건축]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서 발표한 것들이에요. [쾌락설계도]는 2017년 9월에 나왔고, [재건축]은 11월에 나왔으니까요. 그런데 3부작을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었어요. [재건축]까지는 여태껏 기록된 내용들을 풀어냈던 건데, 3부작을 끝내려면 제 인생에도 다른 결론이 생겨야 기록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당시에는 결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 완성된 건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는데, '과거를 등지고 앞으로 나아가고, 과거를 방으로 남기고' 같은 생각을 하다가 ‘가로사옥’이라는 혼성어가 나왔어요. 결론을 어떻게 지을까 하다가 결국은 ‘결론이 없구나’가 결론이 되어서 지금의 이야기가 완성됐어요. 어떻게 보면, [가로사옥]에 있는 곡들은 [쾌락설계도]부터 나왔던 이야기의 연장선이면서도 그것들을 포괄하는 내용이에요. 뒷부분에 가서야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죠. 과거 이야기를 푸는 것들은 제 커리어를 따라와준 분들이라면 다 아는 것들이거든요.
리: 앨범의 아트워크도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미스터 미상(Mr. Misang)이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참여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작업하게 된 건가요?
쿤: 그 분은 [재건축]을 만들 때 쯤에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일러스트레이터예요. 제가 [가로사옥]을 구상하면서 스토리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요. 이거를 다 앨범에 담을 수는 없었죠.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덜어냈는데, 그래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텍스트가 메모장에 남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비주얼로 만들려면 이 만큼의 디테일을 잡아낼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근데 미스터 미상은 그림 하나를 그려도 굉장히 빽빽하게 디테일을 넣어서 그리는 분이더라고요. 그리고 그림체가 너무 진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봤을 때도 즐거울 수 있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색감도 제가 원하는 정도의 컬러풀함이 있었고요. 그 분의 개인 작품을 봤을 때 제가 원하는 느낌을 살려줄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연락을 했죠.
리: 여러 경로를 통해 이미 설명했지만, 각 아트워크가 각 트랙을 의미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쿤: 그렇죠. 다 의도한 거였어요.
리: 앨범에 비앙 씨를 비롯해서 다양한 프로듀서들이 참여했어요. 아이오아(IOAH), 언싱커블(Unsinkable), 담예, 뷰티풀 디스코, 연수 등등.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요?
쿤: 제 머릿속의 뭉툭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거였어요. 그 사람들의 음악만 듣고 ‘이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이런 걸 만들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했던 거죠. 다 개인으로 연락을 돌렸어요. 사실 제가 처음 생각했던 분들 중에는 같이 작업을 못한 분들도 있어요. 비트를 받았는데 여러 이유로 못 쓴 게 있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좁혀진 라인업이에요. 마지막 트랙 “집”에 참여한 히피는집시였다 같은 경우는 애초에 [가로사옥]을 처음 구상할 때 무슨 이야기를 쓰든 결론은 이렇게 나야겠다는 게 그러져 있었기 때문에 나온 트랙이에요. 이걸 표현할 수 있는 건 히피는집시였다 밖에 없었어요. 처음 생각난 아이디어였는데, 너무 좋았고, 실현이 됐죠. 그래서 그 형들한테 정말 옛날부터 꼭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해놓은 상태였어요.
리: 히피는집시였다가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에 참여한 경우가 굉장히 드물어요. (*필자 주: 김오키(Kim Oki)의 [스피릿선발대], 한스커(Hanscur)의 [BLOW YOUTH] 참여 이후 세 번째이다.) 다른 트랙들과도 바이브가 굉장히 다르고, 히피는집시였다 특유의 사운드로 마무리되어서 독특했던 것 같아요.
쿤: 마지막에 굉장히 침잠된 분위기로 끝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거죠. 결론이 있었고, 그 결론이 침잠된 성격의 것이어서 히피는집시였다를 초빙한 거예요.
리: 다른 피처링 게스트와 다르게 히피는집시였다는 ‘with’으로 표기한 건 의도한 건가요?
쿤: 의도한 거죠. 그거 말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둘은 팀이잖아요. ‘with’라고 안 하면 “집 (Feat. Sep) (Prod by JFlow)” 이런 식으로 해야 하니까요.
리: 프로덕션 전체의 색깔도 독특해요. 붐뱁을 기반으로 하지만, 신시사이저를 과장되게 사용함으로써 일렉트로닉적인 성향이 두드러진 사운드를 들려줬는데, 이런 스타일을 추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쿤: 옛날부터 좋아하던 것들이 다 섞이게 된 거죠. 좋아하는 것들을 하다 보니 그것들의 교집합이 생긴 거예요. 그런 리듬의 그런 신스를 사용하는 스타일. 저는 힙합 비트에서 베이스와 드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좀 과장되게 말해서 그거 두 개 말고는 있든 말든 상관 안 할 정도예요. 베이스 라인이 좋아야 좋은 비트죠. 앨범 들어보시면 곡마다 베이스 라인이 강점이에요. 제 앨범 전체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죠. 마지막 두 트랙 빼고는 베이스 라인을 듣는 재미가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힙합 앨범들도 베이스가 부각된 것들이었거든요. 제이 딜라(J Dilla)의 음악도 베이스가 진짜 재미있죠. 그것들의 영향을 받아서 지금의 스타일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리: 앞서 에픽하이 이야기를 했는데, “Breakdown”, “전자깡패”처럼 전자음이 강한 붐뱁 곡들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쿤: 그럴 수도 있죠. 딱히 에픽하이 곡을 레퍼런스 삼은 것은 아니었지만,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리: 사운드에 대한 생각이 확고한 만큼, 프로듀서들과 작업할 때도 의견을 활발히 주고 받았을 것 같아요. 베이스 라인을 강조해달라든지.
쿤: 네. 그렇지만 전부 케바케였어요. 비앙형은 원래 특유의 베이스가 있어요. 무그(Moog)랑 섞은 베이스를 굉장히 잘 만들거든요. 그건 제가 요청하지 않아도 그런 식으로 비트가 오기 때문에 이야기할 필요가 없죠. 그리고 언싱커블과 함께한 “자벌레”도 원래 곡이 지금 같은 구성이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걸 되게 잘 아네’ 싶었죠. 반대로 아이오아나 다른 프로듀서들의 곡은 제가 가이드를 조금 줬죠. 아이오아와 함께한 “네버코마니”는 베이스 라인을 주된 악기로 해서 진행되는데, 제가 준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만든 트랙이었어요.
리: 직접 프로듀싱을 한 건 아니지만, 프로듀싱에 깊게 관여한 거네요.
쿤: 그렇죠. 작곡은 프로듀서들이 했지만, 당연히 편곡 아이디어는 제가 내줘야 하는 거니까요. 제 앨범이잖아요.
리: 이번에 피처링 게스트 중에 진보는 [재건축]에 이어서 두 번째예요. “어덜트금고”에서 굉장히 레드카펫을 깔아주면서 등장했고, 가사 내용도 그렇고, ‘멘토’와 같은 느낌인 것 같아요. 본인에게 진보는 어떤 존재인가요?
쿤: 저는 원래 시니컬한 사람이에요. 20살이 되면서 디스로 커리어를 시작하고부터 항상 힙합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 같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뭔가 환영 받지 못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한 거죠. 그래서 [재건축] 당시에도 굉장히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앨범에 완전히 만족을 못한 상태에서 발매를 하기도 했고요. 근데 그때 진보형이 진짜 멘토처럼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막연히 ‘걱정하지마’라고 하는 낙관적인 말이었는데, 그게 저한테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 형은 잘 되든 안 되든 뭐든지 흡수하고, 시도해보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들의 장점은 남의 장점을 잘 본다는 거예요. 단점만 보면 흡수하지 않겠죠. 그래서 [재건축]마저 안되면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던 저에게 ‘잘 될 거야’라고 계속 말해줬고, 정말 그 말처럼 잘 됐어요. 진정한 멘토가 된 거죠. 그래서 저도 그 형에게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됐어요. 그런데 [가로사옥]을 만들다 보니까 타이틀곡인 “어덜트금고”가 과거에서 벗어나는 터닝포인트가 되는 곡이 됐는데, 사실 [재건축]의 “이사”와 똑같은 주제거든요. “이사”는 ‘변화는 우리가 모르는 상태에서 오지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니까요. 어떻게 보면 “어덜트금고”가 “이사 2”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똑같은 내용이에요. 저는 앨범 피처링 진을 약간 캐스팅하는 느낌으로 생각했는데, “어덜트금고”의 배역에는 진보형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고요. “이사”에도 참여해줬으니까요. 일부러 그런 구간도 만든 거예요. 그 형의 목소리가 딱 등장하면서 저에게 조언을 해주는 느낌이 들게 한 거죠. 실제로 “어덜트금고”에서 “이사”의 가사들을 샘플링하기도 했고요.
리: 형선, 누기(Noogi), 돈 사인(Don Sign.) 등등, 다른 게스트의 참여 배경도 궁금합니다.
쿤: 대단한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전부 다 제 앨범에 악기로서 너무 필요했던 사람들이에요.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목소리와 음악적 영역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각 트랙의 후렴구가 비워져 있을 때, ‘여기에는 이 사람밖에 없다.’ 싶었던 거죠. 원래 “향바코”와 “자벌레”는 제가 후렴을 썼었어요. 근데 잘 안 묻더라고요. 그래서 떠올린 사람들이죠. 어차피 래퍼 피처링이 없기 때문에 환기를 시켜줄 수 있는 부분은 후렴이라고 생각했어요. “자벌레”에는 형선이 같은 여성 보컬이 딱 어울릴 것 같았고, “향바코”에는 기교 없이 수수하게 부르는 보컬이 필요해서 누기님을 불렀죠. 누기님을 부르면서 후반부에 보코더가 들어가면 멋있을 것 같아서 돈 사인님에게 연락을 한 거죠. 담예형도 마찬가지예요. 첫 번째 벌스를 쓰고 나서 바로 담예형이 떠오르더라고요. .
리: 트랙 제목들이 굉장히 특이해요. “향바코”, “어덜트금고”, “양심트리거” 등등, 익숙한 단어를 낯설게 조합하는 방식인데요.
쿤: 처음 음악을 만들 때부터 항상 들었던 생각이 있어요. ‘커버가 멋있어야 해’, ‘곡 제목이 궁금증을 유발시켜야 해’. 왜냐하면 저 역시도 그런 제목의 트랙과 아티스트들에게 더 마음이 갔었거든요. 앨범 커버만 봐도 듣고 싶게 만들고, 졸라 독특한 느낌을 줘야 하는 거죠. 사운드클라우드에 곡을 올릴 때도 다른 아티스트들과 다르게 커버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저는 심미안이 남들보다 좀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걸 최대한 활용한 거죠. 직접 디자인을 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곡 제목도 마찬가지로 눈에 띄게 만들기 시작한 거죠. 저는 그게 다른 아티스트들, 특히 힙합 아티스트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합성어, 혼성어를 만드는 것. 그리고 이게 저라는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거죠. [가로사옥]을 만들 때는 아예 이런 느낌으로 전 트랙의 제목을 짓자고 생각했어요. 제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직접 트랙을 들었을 때 제목이 납득되잖아요. 제목이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제 음악 자체를 어려워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타협하지 않고 밀어붙인 거예요.
리: 한영혼용을 배제한 것도 고민의 결과인가요? “국제사회”에서도 관련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직접 듣고 싶어요.
쿤: 저도 처음에는 한영혼용을 굉장히 많이 썼어요. 어디서 주워들은 영어를 썼던 게 아니라,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영어로 랩을 하면 이렇게 해야지’ 싶어서 썼던 가사들이었죠. 근데 어느 순간부터 가사를 보니까 가독성이 굉장히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쾌락설계도] 때부터 제 얘기를 풀어가야 되는데, 여태 해왔던 것처럼 가사를 쓰면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들리지 않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영어를 줄여가기 시작했어요. [재건축] 때까지만 해도 제레미아 재(Jeremiah Jae)와 함께한 “Foreignhub.co.kr” 같은 곡에서는 후렴구를 조금 더 유려하게 만들기 위해서 영어를 썼어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곡의 제목도 다 한글이고, 앨범 이름도 너무 한국적인 이름이고. ‘나는 지금 한국에서 나올만한 한국의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를 쓰면 안돼.’라고 강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영어는 외래어까지만 허용한다는 마음으로요.
리: 의식적으로 족쇄를 찬 느낌이 있었던 거네요?
쿤: 그렇죠. 저 스스로에게 미션을 준 거죠. [가로사옥] 전에도 순수하게 한국어로 가사를 채우면서 느낀 건데, 어려운 건 아니더라고요. 생각을 한두 시간 더 해야되는 작업이긴 하지만요.
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제레미아 재와는 어떻게 작업하게 된 거예요?
쿤: 그 아티스트의 음악을 너무 좋아했어요. 제레미아가 원래 브레인피더 소속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 미국 래퍼들이 피처링 가격을 세일한다는 트윗을 올리더라고요. 가격을 직접적으로 올리기도 하고. 그게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너무 쿨하더라고요. 제레미아 재는 직접 가격을 올리진 않았는데, 피처링 제의를 받는다고 메일 주소를 올렸어요. 그래서 비앙형이랑 작업하면서 ‘와 얘네 골 때린다’ 싶었죠.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하면 주위 동료 아티스트들한테 욕 먹을 게 뻔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도 한 번 써볼까?’ 하고 이야기가 나온 거죠. 그래서 메일을 보냈어요. 그리고 제레미아는 이미 뷰티풀 디스코랑 작업한 경력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뷰티풀 디스코랑 같이 음악 작업하는 동료들인데, 우리도 이런 음악을 좋아한다, 같이 하고 싶다.’라고 했죠. 당연히 페이도 줬어요. 그렇게 작업한 거예요.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리: “Foreignhub.co.kr”는 곡도 굉장히 독특했어요. 판소리를 샘플링했는데,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된 거예요?
쿤: 그건 비앙형의 아이디어였어요. 그 비트를 듣고 저도 너무 좋았죠. 제가 가사를 쓰기 전에 제레미아와 연락이 되어서 먼저 비트를 보냈어요. 사실 지금 음원이 나온 상태에서 보자면 한국적인 판소리를 샘플링한 비트에 제레미아와 합작한 그림이 되어버렸지만, 의도한 건 전혀 아니었어요. 하다 보니까 맞아떨어진 거였죠. 제목은 저의 아이디어였어요. 저도 굉장히 애착이 가는 트랙이에요.
리: 가사가 굉장히 디테일해요. 실명 거론도 많고, 상황과 감정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구체적인데, 이러한 디테일도 의식적으로 추구하게 된 건가요?
쿤: 제가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활동할 때 사랑 노래 같은 것을 쓴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사랑 노래를 쓸 때, 너무 뻔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당연히 욕을 먹기도 쉽고, 너무 쉬운 접근이니까요. 저 역시도 뻔한 사랑 노래를 싫어했고요. 적어도 내가 그렇게 쓰지는 말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좀 과하게 디테일한 개인 이야기를 써보자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던 거죠. 사실 아무리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도, 사람들이 공감하는 영역은 똑같아요. 제가 이별했던 경험을 쓴다고 해도,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본인이 이별했던 경험, 혹은 슬픈 경험을 투영하게 되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나는 그냥 졸라 디테일하게 쓰자!’가 된 거죠. 그렇게 한 번 써보니까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디테일하게 썼을 때 사람들이 들으면서 그림이 그려지겠구나 싶었죠. 가사의 상황을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 디테일을 맛있게 살리려면 평서문으로 쓰면 안돼요. 평서문으로 쓰는 구간도 있지만, 도치를 쓴다든지 해서 일부러 불친절한 부분을 만들어놔야 재미가 생기죠. 이번 앨범에서 그런 불친절함이 가장 잘 드러난 트랙이 “자벌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처음에 프리 후렴(Pre-Hook)으로 시작한 다음에, 벌스에서 ‘방지턱을 무시하고 달린 것 같아’라는 가사가 나오죠. 그리고 이제 음악적으로 같이 했던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우리가 음악을 같이 시작했는데’처럼 뻔한 문장으로 시작한다면 재미없었을 거예요. 일부러 꼬아놓아서 처음에는 사람들이 무슨 얘기인지 싶다가도 끝까지 들으면 떡밥들이 회수되면서 이해가 되는 거죠. 저는 그래서 가사를 쓴 다음에 순서를 바꾸거나 장면을 바꾸거나 하는 식의 시도를 해요. 영상을 촬영한다고 치면, 그냥 제 얼굴에서 시작하는 것과 발이나 머그컵에서 시작한 다음 제 얼굴을 비추는 것과의 차이인 거죠.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도 그러한 효과를 줘서, 무슨 장면인지 모르게 할 때가 있잖아요. 대충 5분 정도 지나면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하죠. 저는 그렇게 하는 게 디테일을 풀어낼 수 있는 좋은 소화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리: 같은 장면이라도 연출에 신경을 쓰는 거군요. 그럼 가사를 한 번에 쓰지 않고 여러 번의 수정 과정을 거치는 건가요?
쿤: 한 번에 쓰긴 해요. 한 번 쓸 때 여러 번 쓰면서 바꾸는 거죠. 한 번 쓰고 나서 고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리: 그럼 가사를 쓸 때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는 편이에요?
쿤: 글쎄요. 영감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다를 것 같아요. [가로사옥]의 아이디어 같은 경우는 전부 제 실제 이야기에서 비롯된 거였죠. 저는 [가로사옥]에서 이 이야기를 풀었을 때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앨범으로 만들어낸 거예요.
리: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일반 리스너도 즐겨들을 수 있겠지만, 래퍼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들었을 때 더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한국 힙합 씬 내부의 굉장히 디테일한 내용들을 담고 있잖아요.
쿤: 근데 전 오히려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와 제 세대의 사람들 이야기라서요. 가사에 있는 것처럼 네이버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온 세대의 래퍼들이 씬의 ‘미들 차일드(Middle Child)’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전 세대는 처음에 각광받지 못했지만, 앨범을 많이 내고 성공을 이뤄낸 사람들이고, 저희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음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트렌드가 굉장히 빠르게 변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트렌드에 올라타는 것을 선택했고, 저 같은 사람들은 트렌드를 좇지 않는 걸 선택했죠. 게다가 쭉 방송되던 [쇼미더머니]는 점점 그 물이 빠져가고 있죠. 그래서 선택의 기로에 많이 서게 됐던 세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세대가 가장 씬의 발전을 이뤄낼 세대라고도 생각하고요. 그렇다 보니까 제 앨범의 이야기들도 그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공감할 거라고 봐요. 이 다음 세대나 그 전 세대가 공감하지는 않을 거예요. 특히, 다음 세대는 더더욱 공감 못 할 거예요. 물론,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겠죠. 그렇지만 그들은 이제 방송이 전부인 세대가 되었어요. [가로사옥]이 그 친구들에게 좋은 앨범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건 학습된 것이지 공감해서가 아니에요.
리: 굉장히 단호하네요. (웃음) 앨범에서 두 곡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됐어요. “블랙박스”와 “어덜트금고”. “블랙박스”는 굉장히 사이버펑크스러운 공간에서 촬영을 했고, “어덜트금고”는 여행을 떠나는 느낌으로 촬영했어요. 작업 배경이 궁금합니다. 에이직(Aezik)이 감독을 한 걸로 알고 있어요.
쿤: 에이직 형 같은 경우는 [재건축] 때부터 알고 지냈고, 그때도 도와줬어요. 워낙 기술적으로 믿는 형이에요. 앨범 커버도 10장으로 만들 정도로 이번 [가로사옥]의 비주얼에 신경을 많이 쓴 만큼, 뮤직비디오도 웬만하면 전 트랙 다 찍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제작비가 말도 안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열 트랙을 어떻게든 다 보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찍어보고 싶어서 에이직 형과 이야길 했는데, 계획들이 변동되다가 보니까, 확실히 이건 찍어야겠다 싶은 트랙들이 추려지더라고요. 그게 타이틀곡인 “어덜트금고”와 첫 트랙인 “블랙박스”, 그리고 마지막 트랙 “집”이었어요. 처음과 타이틀곡, 마지막을 보여주면 앨범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기승전결에서 기와 결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집”도 뮤직비디오가 나올 거예요.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아이디어는 제 머릿속에 모호한 상태로만 있었어요. “블랙박스”도 아이디어만 있었는데, 같이 이야기하며 빌드업해서 지금의 결과물이 나온 거죠. 뮤직비디오에서 제가 사이버펑크스러운 공간 속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잖아요. 처음에는 ‘블랙박스’ 속에서 불타고 있는 이미지를 상상해서, 그러면 전자레인지 속에 제가 있으면 되겠다 싶었어요. 그 상자 안에서 돌아가며 타고 있는 거죠. 그 이야기를 에이직 형에게 했더니, 아예 크로마키 작업으로 촬영한 다음 3D 기술자를 불러와서 세련된 느낌으로 빌드업해보자는 거예요. “어덜트금고”는 거의 다 에이직 형의 아이디어예요.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시간이구나’라는 걸 깨닫는 모습을 여행과 자연으로 표현한 거죠.
리: “어덜트금고”는 제주도에서 촬영한 건가요?
쿤: 네 맞아요. 근데 최대한 제주도스럽지 않게 찍으려고 했어요.
리: 다른 트랙의 뮤직비디오도 나왔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쿤: 그렇죠. 그렇지만 이번에는 세 곡만 찍게 됐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이번 [가로사옥]의 비주얼라이징에 대한 아이디어가 되게 많았어요. 앨범 아트워크의 메인 커버를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보내서, 트리뷰트처럼 재해석을 받아볼까 싶기도 했죠. 그래서 인터뷰 등의 프로모션이 다 끝난 후에 그 재해석 본들을 쭉 올려볼까 생각했어요. 아쉽게 불발이 되긴 했지만요. 아무튼 그런 비주얼적인 아이디어가 엄청 많았어요.
리: 음악이 아닌 아트워크의 리믹스네요?
쿤: 그렇죠. 아트워크의 리믹스가 맞는 말 같아요. 음악 리믹스도 하려고 했는데, 안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다른 사람이 하면 느낌이 살지 않을 것 같거든요. 물론 다른 프로듀서가 아카펠라를 달라고 하면 줄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진행하진 않을 것 같아요.
리: 이번 앨범에 랩 피처링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인가요?
쿤: 맞아요. 랩 피처링이 없는 게 이 앨범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어요.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니까요. 래퍼를 쓰려고 해도 못 써요. 저는 원래 랩 피처링을 받을 때는 같은 주제에 입각해서 기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런 주제를 쓰고 싶은데, 네가 그 주제를 잘하니까 너도 써줘’가 되어야 하는 거죠. 그렇지만 [가로사옥]은 너무 제 이야기만을 담은 앨범이라서요. 남이 어떻게 풀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리: 딥플로우(Deepflow)의 [Founder]도 생각나네요. 그 역시 본인과 회사의 이야기라서 외부로부터 랩 피처링을 받지 않았으니까.
쿤: 저는 그래서 [Founder]도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한 게, “품질보증” 같은 곡은 VMC 단체곡이지만, 앨범의 스토리 상 딱 맞는 위치에 들어가 있잖아요. 피처링을 적절히 기용하면서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은 거죠. 항상 앨범에 단체곡이 들어갔던 전통을 지켰으니까요. 그게 너무 멋있었어요.
리: 요새 코로나 탓에 활동 반경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외부 공연이나 콘서트 같은 건 어려운 상황인데, 향후 활동 계획이 또 있을까요?
쿤: 이제 거의 모든 인터뷰를 다 하긴 했어요. 오프라인은 사실 생각을 하나도 안 하고 있어요. 하나 있던 게 음감회였죠. 음감회에서 앨범 아트워크를 실제 캔버스 액자로 인쇄해서 전시를 했어요. 전시회 겸 음감회였죠. 근데 음감회가 끝나서 이 그림들이 아깝게 됐잖아요. 제 작업실에 썩히기도 그렇고. 그래서 당분간은 비앙형의 카페의 전시를 해놓기로 했어요. 그거 제외하고는 딱히 없어요. 아, 하나 있는 게 큐레이션 영상을 만들까 하고 있어요. 음악 만큼 아트워크에 대한 질문이 많이 있거든요. 그것에 관해서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직접 큐레이팅을 해주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직접 그걸 설명해주는 영상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 중이에요. 앨범 작업 후기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개할 것 같아요. 마블의 영화를 보면 다 CG잖아요. 근데 비하인드 영상으로 그린 스크린에서 촬영하는 걸 다 공개하곤 하죠. [가로사옥]도 CG처럼 굉장히 많은 입체적인 장치들이 쌓여있는 작품이거든요. 그래서 이걸 분해하는 느낌으로 설명하려고요.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더더욱 이 앨범의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리: 기대가 되는 계획들이네요. [가로사옥]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뭐예요?
쿤: 요즘은 “낙찰전 / 용기합창단”이라고 담예랑 같이 한 트랙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최근에 다시 들어봤는데 그 트랙이 제일 와닿더라고요. 근데 들을 때마다 항상 달라져요. 랩적인 디테일에 있어서 그 트랙이 가장 현란하면서 주제에서도 벗어나지 않았거든요. 또 그 곡에서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향수가 느껴지기도 해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제이콜(J.Cole), 썬더캣(Thundercat) 등등, 다 느껴져요. 듣는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성공한 거죠.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제 느낌으로 소화해낸 거니까요. 그리고 벌스에서 한 마디만 끄집어냈을 때 엄청 멋있는 라인들이 있잖아요. 모든 트랙이 그렇지만, 특히, “낙찰전 / 용기합창단”에 그런 라인이 많아요. 라이밍이나 단어 선택도 제일 재미있었어요. 변주 후에 후반부 라이밍이 특히 재밌죠. ‘얼마나 얼마나 그래 얼마나 더 / 가야지만 나 받고 싶은 만큼 받을까 / 걸만하던 내 작품 / 관중은 카지노와 미술관 중간쯤’이라는 라인이 있어요. 여기서 라임이 자연스레 바뀌는 것도 재미있고, ‘카지노’와 ‘미술관’을 이야기하면서 내 작품을 ‘건다’는 이중의 뜻을 내포한 것도 있죠. 워드플레이와 라이밍이 적절하게 맞아떨어진 라인이에요. 제가 들으면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플레이였습니다. (웃음)
리: 정말 랩을 쓰면서 많은 것들을 신경 쓴다는 게 느껴집니다.
쿤: 항상 신경 썼지만, 이번에는 더더욱 그랬어요.
리: [가로사옥] 말고, 최근에 가장 즐겨듣는 음악은요?
쿤: 저는 아키 마샬(Archy Marshall)이라고 킹 크룰(King Krule)이 본명으로 낸 [A New Place 2 Drown]이라는 앨범을 많이 들었어요. 최근에 안 건 아니고, 이전부터 들었던 건데 요새 마음이 가더라고요. 최근에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들이 좀 있었는데, 그 앨범이 굉장히 우울한 무드를 담았거든요. 그리고 어제 VMC의 프레디 카소(Fredi Casso)가 낸 [Pale Blue Dot]을 엄청 좋게 들었어요. 저는 한국에도 이런 아티스트가 이런 앨범을 내는구나 싶었죠. 사실 그 형은 옛날에 씨와이(C.WHY)라는 예명을 달았을 때부터 저랑 알고 지냈거든요. 둘 다 사운드클라우드 팔로워가 50명 정도일 때부터 알았죠. 그 형이 씬에서 제일 처음 안 사람이 저일 거예요. 형이 저한테 처음으로 블루 앤 엑자일(Blu & Exile)을 들려주고, 그런 음악들을 알려준 사람이에요. 사실 그 형이 이번에 낸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할 줄 몰랐어요. 씨와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던 음악들은 그냥 잘 빠진 힙합 정도의 인상이었거든요. 근데 항간에 소문이 들렸어요. 프레디 카소가 만드는 앨범이 제가 굉장히 좋아할만한 사운드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나와서 들어보니 옛날에 같이 이야기했던 음악의 재미있는 포인트들을 잘 잡아서 만들어냈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화지형이랑 한 “Pixel” 같은 경우는 특히 너무 좋았죠. 안 좋은 트랙이 없었어요. 이런 거 왜 나랑은 안 했지 싶더라고요. (웃음) 그리고 문선(MOOSUN)과 민수라는 뮤지션이 만든 프로젝트 팀 모아(Moi)의 음악도 즐겨 들었어요. “도란도란”이라는 트랙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리: 일렉트로닉 터치가 들어간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쿤: 생각해보면 옛날부터 취향이 그랬던 것 같아요. 살롱01이나 오버클래스(Overclass)를 좋아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어요. 펜토(Pento)형 1집 듣고 좋아했던 것도, 중간에 갑자기 난입하는 신시사이저 같은 요소들 때문이었거든요. 그리고 제피(XEPY)라는 프로듀서가 만든 곡들도 다 들었던 것 같아요. 그 프로듀서가 신스를 굉장히 두텁게 만들어서 사용했던 사람이거든요.
리: [가로사옥] 이후의 작품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쿤: 지금 준비 중인 앨범이 몇 개 있어요. 일단은 전에 만들어놨던 곡들을 EP로 풀어내는 것과 1년 반 전부터 약속된 싱어송라이터와의 합작 앨범이 있죠. 제가 생각했을 때 [가로사옥]은 제가 발표한 ‘가로사옥스러운’ 앨범 중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에요. ‘가로사옥스러움’이라는 것은 굉장히 자전적인 앨범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다음 작품들은 이것과는 다른 결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두 개를 준비하고 있는데, EP로 나올 작품도 역시 제 이야기지만, 상당히 우울한 무드로 풀어갈 것 같아요. 싱어송라이터와의 합작 앨범은 100% 픽션일 거예요. 소설 같은 거죠. 팻두(Fatdoo) 만큼의 자극적인 스토리가 될 거예요. 저는 팻두가 그런 주제를 풀어내는 능력이 부족해서 비판을 받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단순히 ‘자극’ 자체만 남아버린 거죠. 그런 주제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런 자극적인 스토리를 잘 풀어낼 자신이 있어요. 같이 하는 싱어송라이터의 역량과 저의 이야기를 푸는 능력을 살리면 전에 없었던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거예요. 사람들이 적잖이 충격을 받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거니까요.
리: 동료 래퍼들이 평론에 대한 생각을 여러 경로로 풀어놓은 적 있어요. 평론에 대한 쿤디판다 씨의 생각도 궁금한데요.
쿤: 평론이라는 건 '지식이 체계화된 감상평'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한국에서 평론이 아쉬운 건 너무 적다는 거예요. 여러 군데에서 평론을 하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다 보니까 자꾸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당연히 아티스트들이 민감하게 반응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고요. 평론 측과 아티스트 측의 의견 대립과 양극화는 너무 당연한 일이죠. 비슷하게 저도 음원 사재기에 대하여 언성을 높인 적이 있어요. 지금도 변함 없는 의견이고, 그 당시에는 더더욱 제가 옳다는 입장으로 말을 했지만, 당장의 제가 제기한 의문의 덮개를 확실하게 벗길 수 없었어요. 창작가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입을 열고,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해결 없이 대립 뿐인 이 문제에 저와 타 아티스트들이 논하고자 하는 부분은 결국 창작-평론의 깨끗한 환경 조성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고이지 않고 모두가 객관적인 지표를 가지고 작품을 음미하려면 평론이 많아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는 거죠. 평론가들이 다 다른 이야기를 써야 하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개선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리드머에서 쓴 평론들 중에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은 별로 없었거든요. 점수 말고 내용적으로요.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죠. 그렇지만 그건 사람들마다 다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릴러말즈(Leellamarz)형도 반박하는듯한 글을 올렸더라고요. 다 다르게 생각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요새 힙합엘이 같은 사이트에 장문의 리뷰를올리는 분들도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평론에 대한 문제는 시간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글을 쓰고 의견을 내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서 우리들의 작품이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늘어나는 거니까요.
리: 솔직한 의견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줘서 기분이 좋아요. 과한 욕심일 수도 있지만, [가로사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사랑받는 작품이 되면 좋겠어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스스로 생각해도 재미있으면서 남들이 봐도 명반인 걸 만들자는 마음으로 정규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만들다 보니까 그 생각을 접고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맘으로 돌아섰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게 명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없던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근본이 없거든요. 어떻게 보면 진짜로 ‘틀 깨기’를 시도한 작품이라고 봐요. 그러면서도 이전에 사람들이 감동을 느꼈던 작품들의 결에서 벗어나지 않는 감성을 가졌고요. 그래서 더더욱 묘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제 작품을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으로 나올 제 작품들, 그리고 제 행보도 지켜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쿤디판다가 뽑은 한국 래퍼 TOP 5 (무순위)
개코
씨잼
저스디스
딥플로우
팔로알토
쿤디판다가 뽑은 좋아하는 앨범 TOP 5 (무순위)
Little Simz [Grea Area]
Tyler, the Creator [Flower Boy]
D'Angelo and The Vanguard [Black Messiah]
Kendrick Lamar [To Pimp A Butterfly]
Flying Lotus [1983]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리드머
via 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9130&m=view&s=interview&c=24&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