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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인터뷰 차붐 – 새롭게 쓴 성패의 서사, 안산 느와르 그 이후

한국힙합위키

차붐 – 새롭게 쓴 성패의 서사, 안산 느와르 그 이후 리드머 작성 | 2017-09-05 03:14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33 | 스크랩스크랩 | 35,193 View


인터뷰, 글: 하태욱, 황두하 편집: 강일권



랩퍼에게 다양한 이미지가 있다는 것은 과연 득일까 실일까. 차붐은 어느 정도 박제된 이미지를 지닌 편이다. ‘양아치’, 혹은 ‘쌈마이’. 최근 호평받은 새 EP [Sour]를 발표한 그를 만나 대놓고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미지가 음악 활동을 하는 데 발목을 잡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주저 없이 “변하는 게 인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본인이 만약 당장 한 달 뒤에 지금과 다른,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라면서.


차붐이 인터뷰 도중 했던 말을 빌리려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의 음악을 들었을 땐 마냥 거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친 뒤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딱히 배신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앨범 속 캐릭터가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리드머(이하 ‘리’): 차붐 씨와는 첫 인터뷰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름의 기원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좀 찾아보니 초등학교 때 축구를 했다고 하던데….


차붐: 여러 번 와전이 되긴 했는데, 축구부였던 건 맞아요. 근데 그래서 차붐은 아니고요. 제가 85년생인데 98년도에 차범근 씨가 국가대표 감독이었어요. 당시 아시아 예선 때 돌풍을 일으키면서 기사마다 “차붐이 돌아왔다”는 게 신문 1면이었죠. 그땐 친구들이 차붐이 멋있는지도 몰랐거든요. 죄송하지만, 우선 차범근 감독님이 미남은 아니니까요. 이번 앨범을 보면 ‘Co-Producer’에 구자성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사실 제 동네 불알친구거든요. 요즘 들어 (별명을 지어준) 이 친구가 굉장히 후회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별명이 예명이 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리: 그럼 그전에 다른 예명들이 있었나요?


차붐: 제가 처음 공연한 게 중3때에요. 하이프맨(Hype Man)을 하면서 공연 데뷔를 했어요. 공연 데뷔는 17년차, 앨범은 10년차인데, 처음엔 별명 차붐에서 ‘C’와 ‘B’를 따서 ‘시빈’이라고 활동한 적도 있어요.


리: 시빈이라니 느낌이 확 다르네요.


차붐: 당시는 조금 어려서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웃음) 정말 솔직히 얘기하면, 저도 앞에 ‘Young’ 들어가고, ‘Lil’ 들어가는 이름을 하고 싶었어요. 멋있는 이름으로 해보고 싶었거든요.


리: 그러면 차붐이라고 딱 정하게 된 계기가?


차붐: 이름에 관해서는 많이 고민했죠. 2005년도에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다시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당시 대학로 공연을 했었어요. 그때 생각이 ‘별명을 예명으로 하는 게 제일 낫겠다’ 싶더라고요. 차붐이 별명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친구들이 모두 차붐으로 불렀거든요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그리고 해외 친구들 모두 다요. 그런데 음악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차붐이 본명 같다고 생각해서, 따로 별명이 생겼어요. ‘붐차’, ‘붐붐’ 등등. 심지어 던밀스(Don Mills)는 늘 ‘붐붐차’ 형이라고 부르고요. 제가 이제 형들보다 동생이 많아져서 그런지, 넉살이는 ‘붐차’ 형이라고도 부르거든요. 대부분 그렇게 불리는 거 같아요.


리: 음악을 시작한 건 어떤 계기였어요?


차붐: 온전히 처음 들은 힙합 음악이 퍼프 대디(Puff Daddy)의 “I'll Be Missing You”인데요, 그것도 퍼프 대디의 앨범으론 아니었어요. 이 곡이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 추모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어요. 당시가 조PD 씨 처음 나오고, 한창 pc통신으로 넘어갈 때였는데, 힙합음악이 점점 많아졌죠, 드렁크 타이거, [대한민국 1999] 나오고 마스터 플랜도 생기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가게 된 것 같네요. 다들 음악을 좋아하다가 시작하던데, 저는 사실 시네마 키드거든요. 가사 쓰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음악을 거의 안 듣는 사람이었고요. 힙합 음악도 “우와” 할 정도로 빠진 건 아니었어요. 그냥 여자한테 인기 좀 끌어보려고 시작했죠. “랩 한 번 해보자, (그래도) 노래보다 쉽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아직 돌파를 하지 못하고 있네요. (웃음).


리: 돌파요?


차붐: 네, 쉽게 랩을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가끔 생각해요.


리: 매우 겸손한 말씀 아닌가요? (웃음)


차붐: 사실 음악을 해야지, 먹고 살아야지, 또 성공해야지 혹은 무엇인가 이뤄야지 하는 생각 없이, 게으름 때문에 음악을 해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만큼 음악이 생활이 됐죠. “그만둬야지.” 하는 멋있는 판단을 내릴 찬스가 없었던 거 같기도 해요. 제가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우리 모두는 어제 자살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살고 있는 거다. 죽을 수 있는 판단이나 선택을 내릴 수도 있었는데, 그 선택을 하지 않아서 살고 있는 거죠. 삶의 애착이 있다는 것보다요. 약간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리: 차붐 씨가 말씀하는 ‘게으름’은 좀 다른 의미인 것 같습니다만….


차붐: 우리가 무엇인가 그만둔다거나 어떤 강한 판단을 내릴 때, 고민 끝에 강단 있게 판단을 내린 다음 그때부터 변화하잖아요? 변화할 정도로, 혹은 판단을 내릴 정도의 시간과 강단을 가지지 못했던 ‘게으름’이 아닐까 생각해요. 곡해돼서 들릴 수 있겠지만, 제가 그만둘 용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많은 분들이 음악을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온 것에 대해 “진짜 열심히 했다, 대단하다.”라고 말씀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이런 생각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만두지 못해 하는 거지, 딱히 이걸 하려고 열심히 알바를 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그런 열정을 가지진 못했거든요. 그냥 ‘살아간다’는 것 안에 음악이 있었던 것 같네요. 스스로 멋있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또 그만큼 (음악을) 열심히 했던 거 같지도 않고요, 그래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 중이에요.


리: 그러니까 ‘이제부터 정식으로 음악을 하겠다’라면서 시작한 건 아니네요.


차붐: 그렇죠. 처음부터 그런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단순한 건데, 음악을 듣다 보니 랩 가사는 쓸 수 있을 거 같아서 가사를 써봤고, 가사를 쓰다 보니 랩을 하게 되고, 라임이나 플로우를 맞춰서 하게 된 거죠. 그러다가 공연을 하고 싶고, 공연을 하다 보니 스튜디오 작업물을 하나 갖고 싶고, 저는 여전히 이 연장선에 있는 것 같아요. 솔로 앨범도 전작 [Original]이 처음이었고, 또 이번에 솔로 뮤직비디오도 처음 찍어본 거거든요. 아직도 많은걸 안 해봐서 여전히 저는 해봐야 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리: 씬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빅딜 스쿼드에 합류하면서라고 생각해요. 당시 함께한 계기가 있었나요?


차붐: 토론토에서 4년 동안 살다가 2005년 말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한국에 와서 처음엔 대학로 마로니에에서 공연을 했었어요. 슬러거 막판 공연이었는데, 빅스몰(Bigsmall)이라는 분이 제게 곡을 부탁했었거든요. 당시 제가 프로듀서 이미지가 더 강했어요. 전곡 프로듀싱을 하면서 녹음을 받았고요. 그때 데드피(Dead’P) 형이 믹싱이랑 마스터링을 해줬거든요. 그렇게 데드피 형이랑 친해지고, 또 대학로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제이락킨(JayRockin)을 만났죠. 지금은 이제 마진초이(Margin Choi)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데, 당시 언스포큰(Unspoken)이라는 프로듀서 크루를 만든다면서 마일드 비츠(Mild Beats) 형에게 저를 소개시켜줬죠. 그래서 데드피 형과 마일드 비츠 형이 저를 빅딜로 데려간 거예요. 그렇게 빅딜과 인연이 시작됐죠.


리: 친분으로 된, 거의 마지막 멤버라고 말씀했죠.


차붐: 맞습니다. 이런 말 그럴 수도 있지만, 거의 배가 침몰된 상태에서 들어갔죠. 처음부터 그걸 잘 알고 있었고요, 사실상 마지막 빅딜 멤버였어요. 그리고 아직도 혼자 그 곳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죠. 조금 농담인데요. (웃음) 지들이 떠났으니까요. 저만 남겨두고 다 떠났어요. 물론, 농이지만요. 열 받아서 사람들 모두 자고 있을 때, ‘빅딜’ 타투라도 크게 새겨놓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언젠가 복수할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전원웃음)


리: 그럼 이후 마일드 비츠 씨와의 앨범은 어떻게 같이 하게 된 거예요?


차붐: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2007년 정도쯤이겠네요. 23살 무렵부터 마일드 비츠, 일명 ‘일두 형’이랑 떨어진 적이 없어요. 그때부터 이른바 최측근이었고, 앨범은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습니다. 일두 형은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 온전히 제 멘토거든요. 앞서 말한 마진초이는 제 음악적인 멘토에 가깝죠. 인간적으로는 아니고요. (웃음) 마일드 비츠 & 차붐 앨범이 급물살로 진행된 건 일두 형이 당시 안산으로 이사 오면서부터예요. 서울에서 어드스피치 형이랑 살다가 계약기간이 끝났고, 이사 갈 때쯤에 제가 “안산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고 꼬셨죠. 일두 형은 그렇게 아는 사람이 없는, 안산에서 2년을 살게 됩니다. 그 기간에 온전히 단 둘이서 수많은 대화를 하면서 앨범을 만들었고요.


리: 같이 산 건가요?


차붐: 아니요. 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 (웃음) 이후에 망원동에서 2년 정도 같이 살긴 했는데요, 저는 당시 부모님이랑 살았고요. 일두 형이랑은 따로 살았죠.


리: 마일드 비츠 씨와 낸 앨범도 차붐 씨의 개인 스토리가 강했던 앨범이었죠. [Still Ill] 때부터 ‘안산’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프로듀서와 같이 작업하는 것과 솔로 음반을 내는 것 간에 차이점이 있을 것 같아요.


차붐: 차이점이 큽니다. 보실 때는 제가 쓰는 랩이라 크게 상관이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요. 프로젝트 작업 시, 특히, 마일드 비츠 & 차붐을 할 때는 한 사람이 50%를 내고, 또 50%를 다른 사람이 내면 이게 합쳐지면 200~300% 정도 낼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제 의견은 명확하게 50%까지만 내요. 나머지 50%는 무조건 일두 형의 머리와 아이디어를 섞는 쪽으로 진행하죠. 제목이나 주제, 흐름 등을 최대한 같이 의논하는 거예요. 전 가사를 쓸 때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요. 이번 [Sour] 앨범도 가사 쓰는 데 2주, 녹음하는 데 2주 정도 걸렸는데, [Original]도 총 한 달 안에 만든 앨범이에요. 피처링도 저는 주로 현장에서 쓰거든요. 대신 머릿속으로 철저히 구상하는 편이라서, (이 방식이) 가능한 거 같아요.


리: ‘안산’이라는 지역을 내세워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해요.


차붐: 좋아하는 미국 힙합 음악을 들으면 자기 도시에 대해 샤라웃(Shout-Out)하는 게 너무 자연스럽잖아요. 딱히 계기라기보다 원래 가사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안산’이라는 지명을 쓴 건 마일드비츠 & 차붐 때가 먼저였지만, 빅스몰, 제이락킨이랑 음악 작업을 할 때도 안산 레프리젠트는 지속적으로 했었던 부분이에요. 입버릇이랄까요? 제가 살아온 곳이 그곳이고, 대체로 하는 이야기가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어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한국 랩퍼들이) 저 이전에는 그런 샤라웃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래서 조금 더 부각이 된 거 같네요. 안산이라는 도시를 잘 모르잖아요. 지방의 대도시가 더 멋있죠.


리: 실제로 안산은 차붐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차붐: 고향이자 애증이랄까요. 너무 사랑하지만, 늘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곳이죠. 친구들끼리 “안산은 안돼.” 이런 얘기를 자주 하거든요. 또래 친구들은 신도시 이후에 태어났으니 물론, 토박이지만 저희 부모님 세대는 그렇지 않죠. 어떻게 보면 촌스럽기도 하고요. 차라리 안양이나 수원이 더 나은 거 같아요. 그래도 인천보다는 (안산이) 덜 촌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리듬파워 이런 애들 보면 알잖아요. (웃음) 어쨌든 분명히 애착은 있어요. 그래서 이곳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됐으면 좋겠고,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이 지역 출신이라는 자부심은 압도적으로 높아요. 이런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다른 래퍼들의 경우 센 척을 많이 하는데, 당연히 하나의 스웩이지만, 전 좀 우습다고 생각해요. “너희 싸움 못했잖아!” 같은 의도로 말하는 게 아니라 잘 모르는 데 그냥 따라 하기 위해 가사를 억지로 쓴다고 해야 할까요.


리: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네요.


차붐: 오히려 마일드 비츠 & 차붐 할 때는 그런 걸로 욕하고, “내가 짱이잖아, 너희는 솔직히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뭘 알아” 이런 가사를 쓰기도 했었죠. 지금은 초점이 조금 바뀌었어요. 그래서 더 이상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고, 별 생각도 없어요. 그런데 절 뿌리 깊게 한 번 살펴보면 아직도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긴 해요. ‘Fake MC’들에 관해서 말이죠. 그걸 표현하지 않는 건 저도 음악을 하다 보니, ‘어라 나도 사실 Fake인데?’ 하는 생각을 해서 그렇죠. 저도 입만 열면 구라니까요. 랩퍼들은 그래서 안돼요. (웃음)


리: 같은 업계라서 말씀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웃음) 몇몇 곡들은 ‘안산’을 말하지만, 실은 한국을 얘기하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추가적으로 이른바 ‘헬조선’에 관해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요?


차붐: 제 정치적인 견해는 명확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밝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 음악은 저의 정치적인 견해와 다르고,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해야 할 이야기는 정치적 견해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일반적인 ‘군상’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근데 물어보시니 뭔가 제 정치적인 견해를 얘기하고 싶어지는데, 자제해야 할 듯해요. 그럼에도 짧게 얘기한다면, 제가 안산에 관해 조금 전 답변 드린 것과 같습니다. 애증.





리: 안산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나가 보죠. 이번 [Sour]에도 “안산블루스”가 있는데, 이전 안산 시리즈(“안산”, “안산느와르”)의 마지막 종착지인 걸로 알아요. 이 모든 게 계획됐던 건가요?


차붐: 온전히 계획한 겁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방식, 또 어떤 제목으로 몇 장을 낼 건지 이런 건 처음 음악 할 때부터 준비돼 있었거든요. 앨범 커버도 마찬가지인데, EP는 핀업걸 컨셉트로 낸다거나 전작 [Original]에서는 보도방 명함을 쓰는 것 등이 이미 다 정해진 거죠. 이제 ‘안산’이라는 이름으론 음악을 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바뀔 수도 있겠죠? “안산블루스”까지는 당연히 시리즈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안산”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3인칭 시점에서 썼던 가사에요. 늘 제 얘기만 하다가 누군가를 관찰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트랙이죠. 안산에 대해 시리즈를 이어갈 때 ‘온전히 내 이야기로 가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안산’이라는 배경과 무대에서 말이죠. 비화 하나를 알려드리자면, 원래 “안산 블루스”는 처음부터 그 제목이 아니었어요. 세월호, 다문화 등 사회•정치적인 이슈를 담는, 굉장히 진지한 이야기의 노래였거든요.


리: 말씀대로 나왔다면 곡의 무게가 더 컸겠습니다. 바꾼 이유가 뭔가요?


차붐: 가사를 쓰기 전, 정리할 때가 되니까 결국, 그 무게감을 제가 감당하지 못할 듯하더라고요. 아무리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해도 단어 선택의 실수 만으로도 상처받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절대 건드려선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개인적인 심정으로만 (노래를) 가져가야겠다고 맘먹었죠. 그래서 아예 반대로, 트릴로지의 마지막이니까 진짜 가볍게 가려고 한 거예요. 가사도 30분 만에 썼어요. 녹음을 앞두고 바로 당일에 말이죠. 즉, “안산블루스”는 그 전 버전을 갑자기 다 뒤집고 다시 쓴 노래에요. 개인적으로 대만족합니다.


리: 데뷔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첫 솔로 앨범 [Original]을 냈어요. 오래 걸린 이유가 있었나요?


차붐: 원래 솔로앨범을 낼 생각이 아예 없었어요. 언제까지 음악을 계속 할지도 모르고, 음악은 제가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저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회사의 유통 담당자 직원 분이 우연찮게 제게 그러더라고요. “투자를 할 테니 앨범 한 번 내보지 않겠느냐.”라고요. 그래서 1-2주 정도 고민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반년을 이어갔어요. 이후에 내야겠다고 결심하고 찾아갔더니 이미 그 직원 분은 회사를 나갔더군요. 회사 내부적으로 살펴보다가 결국, 투자는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고요. 그래서 그냥 제가 대출을 받아서 냈어요.


리: 그래도 어떻게 보면, 그 직원분의 한 마디가 계기를 만든 거라고도 볼 수 있네요. 결국, 내긴 했으니까요.


차붐: 당시 녹음은 부스트놉(Boost Knob) 박경선 엔지니어가 담당했어요. 그 친구 도움으로 돈 한 푼도 내지 않고, 녹음은 끝내 놓은 상황이었고요. 당시 CD를 찍을 돈이 없었는데, 포기하려던 차에 중국 사업의 러브콜이 왔어요. 이번 앨범(‘Sour’)을 관철하는 주제죠. ‘이거 돈 좀 벌겠는데.’ 싶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대출로 앨범을 먼저 내놨어요. 그 다음 계획도 있었지만, 사실 사실 이게 누가 원할 때 (앨범을) 내는 거지, 제 맘대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 딴에는 스스로 계획한 것보다 효과적이진 못했다고 판단했어요. 결국, 설득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거죠.


리: 설득이라면?


차붐: 음악을 듣는 리스너에게 “설득에 실패했다.”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래서 사업 러브콜이 왔을 당시에는 인생의 마지막 앨범을 낸다는 심경이었죠. “이거나 먹어라” 하는, 뭔가 똥 싸고 도망가는 느낌으로요. 그래서 중국 가는 비행기에서 “다시는 한국 오나 봐라.” 했었어요. 진심입니다. 100%


리: 그때 걸그룹을 만든 걸로 아는데, 투자 제의가 왔던 건가요?


차붐: 처음엔 친한 친구가 중국에서 학원 사업을 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했는데, 이른바 대박을 터뜨린 거죠. 성공가도를 달릴 때 즈음, 산동 TV에서 서바이벌 방식으로 아이돌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이야기가 잘 맞아서 저희가 외주제작을 맡았던 거죠. 우선 파일럿을 만들었고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본편으로 이어질 정도로요. 일이 그렇게 진행됐죠. 그런데 중국은 한국과 달리 연습생이라고 해서 잠깐 학교를 하루, 이틀 정도 빠질 수 있는 제도가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 프로그램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결국 그 프로그램은 저희 때문이 아니라 산동 TV 쪽에서 욕심을 많이 내다가 잘려나간 상황이었어요. 그러면서 저희도 해당 프로그램에서 잘린 상황이었고요. 저희는 학원 사업을 다시 하면 되지만, 아이들은 이제 다닐 학교도 없는 거죠. 그때 중국 파트너가 아예 이 아이들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몇 명의 친구들만이라도 중국에 가서 데뷔를 시키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제작하게 된 거에요.


리: 앨범을 들어보면, 내레이션으로도 나오지만, 현재 사업은 어떤 상태인지요? 추측하건대 사드 떄문에…


차붐: 정확하게 때려 망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처음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제 중국 파트너의 아버지가 정부 쪽 일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저희가 불법적인 일은 한 건 아니고요. 다만 정부 쪽에 있다 보니 적어도 사기 당할 일이 전혀 없었던 거죠. 누군가 장난을 친다거나 그런 것들이요. 그런데 사드가 터졌을 때, 그 후폭풍도 중국 내에서 저희가 가장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죠. “한국 사업을 철수하라”는 압박을 많이 받았고, 최종적으로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과정에서 중국 파트너와 이견이 생겼죠. 저는 한국과 중국 모두를 케어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실직자를 만들 수도 있는 거니까요. 결국 뒤통수를 맞았어요. 이걸 좋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웃음) 그런데 이 친구가 일종의 배신을 한 건 맞지만, 충분한 이유가 있어요. 비즈니스라는 건 그런 거니까요. 정리하자면 그 친구와 이견이 생겨서 함께하지 않게 되었고, 한국 사업과 관련된 리스크를 제가 전부 떠안게 되었습니다. 중국 사업에서 저는 강제적으로 철수를 당했고요. 그래서 회사도 접고, 설상가상으로 한국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믹스(MIXX)라는 그룹은 중국 대표에게 빼앗겼어요. 추후에는 (이 팀이) 다른 회사에 팔린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마 (애초부터) 그렇게 하려고 계획한 것 같고요.


리: 파란만장했네요. 다시 [Sour] 얘길 해보죠. 이번 앨범은 언제부터 기획한 거예요?


차붐: 2년 전 중국에서 생각한 거예요. 그때 거의 모든 곡이 나와 있었죠. 가사를 다 쓰진 않았지만, 구상이나 제목, 후렴 같은 것들은 이미 머릿속에서 끝나 있었거든요. 만들게 된 시점은 앨범 발매 한 달 전이었고요. 그동안 사업 때문에 앨범을 내지 못하다가 정확히 올해 4월에 회사 문 닫고 나서 내야겠다고 맘먹었어요. 기쁜 마음으로 냈죠. (웃음)


리: 보너스 트랙까지 포함하면 총 10곡정도 되는데요, 굳이 EP로 내려고 한 이유가 궁금해요. 정규작이라 해도 손색없을 듯한데요.


차붐: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 저는 ‘질보다 양’이라는 주의거든요. 두 번째는 정규로 내기에는 아직도 [ORIGINAL] 이후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생각했어요. 정규의 볼륨은 뭐랄까요, 제가 발상이 교체가 됐을 때 나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 후 ‘이렇게 됐다’라고 말이죠. 사실 이번 EP는 8번 트랙으로 끝나는 건데, 아까 말한 것처럼 전 질보다 양이라서요. 보너스 트랙으로 넣을 다른 곡들도 있었지만, 인생이 이렇게 되면서 이를 반영하고자 “엿”과 “장미”를 담았어요.


리: 아이러니하게도 보너스 트랙이 있어서 앨범이 완성된 느낌이에요.


차붐: 내레이션도 제가 모두 쓴 건데 정확하게 제 마음이 그랬어요. ‘사업은 망했는데, 앨범 퀄리티는 올라가겠는데?’ 이렇게요. 그런 거 있잖아요. 글 쓰는 분이니 공감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떤 특수한 일이 하나 생기면 그게 아무리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어도 나중에 ‘재미있는 이야기, 또는 썰 풀이야기 하나 생겼다!’라고 생각하잖아요. 직업이 가사를 쓰는 것이다 보니 ‘아싸!’ 할 때도 있는 거죠. 그러기엔 물론 사건이 너무 컸어요. 사실 앨범 퀄리티 필요 없어요! 제가 잘 사는 게 중요한 거지. (웃음)





리: 앨범에서 성공의 정점을 찍은 “에쿠스” 이후, 무드가 계속 어둡고 가라앉는 것이 흥미롭더군요.


차붐: 그렇게 됐네요. 트랙을 배치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이야기의 흐름이 어떻게 가느냐에 관한 것인데요, 사실 그보다 비트 셀력션에 굉장히 신경을 쓰죠. (트랙 배치는) 마치 전체적인 흐름을 퍼즐처럼 맞추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순서를 정할 때 예를 들어, ‘이곳에서 올라 가야하고, 내려가야 한다’ 같은 흐름을 딱히 생각하진 않아요. 트랙 위치는 그냥 그 위치에 들어가야 할 노래였던 거 같네요. 상황이나 시기적으로도 그렇고요. 이번에는 어떻게 하다 보니 트랙 순서대로 가사를 썼어요. 실제로 구상했을 때의 순서가 앨범 순서가 된 거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리: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네요. 시간의 흐름대로 배치된 것일 뿐….


차붐: 네. 구상할 때는 정확히 시간의 흐름이고요.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에요. 마진초이 씨랑 중국에도 같이 가 있었고, 늘 붙어있는 분이라 제 개인사까지 잘 아는데도, 서로 피드백을 하면서 “소주가 달아”와 “몇 밤 더 자고가” 같은 트랙들이 집중 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트랙리스트의 순서를 배치할 때도 이 같은 반전을 가지고 올 줄 전혀 몰랐고요. 그런데 “소주가 달아”는 빼려고 했어요.


리: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이 탁월한 곡들이었는데, 이유는요?


차붐: 제게 너무 민감한 이야기였거든요. 온전히 개인적인 이유고요. 이 트랙을 내야할지 말아야 할지 굉장히 고민했어요. 노래에 대한 구상은 이미 중국에 있을 때 했어요. 당시 술을 먹고 자는 게 일상이었는데,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한국과 떨어져 있다 보니 여러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 사건은 제게 굉장히 타격이 컸던 일이었어요. 불알 친구였고, 유학도 같이 갔던 친구였거든요. 애초에 (그와 관련된) 노래를 낼 생각은 아예 안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목까지 차오르는 이야기라 어떻게든 뱉어낼 수밖에 없던 이야기였던 듯해요.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요. 그 친구가 힙합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친구가 죽고 나서 친구의 어머님이 노트북을 보여줬는데, 모든 파일이 다 지워진 가운데, 마일드 비츠 & 차붐 앨범만 있더라고요. 노래로 ‘애도’ 같은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또 이 노래를 뱉어냈다고 해서 제 마음 속에서 그 친구가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고, 극복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런 이유로 (곡을 뺄까 말까) 많이 고민했죠.


리: 다른 인터뷰를 보니 “몇 밤 더 자고가”도 가장 진솔하게 가사를 쓴 곡이라던데….


차붐: “소주가 달아”와 “몇 밤 더 자고가”는 모니터할 때 듣고 이후에는, 그러니까 유통하고 나서부터 이 두 곡들을 아예 안 들어요. 기본적으로 제 노래를 잘 듣진 않지만.


리: 아이러니하게도 반응이 가장 좋은 곡들입니다.


차붐: 개인적으로 음악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랩은 특히 다른 가사에 비해 직설적이고 길게 얘기할 수 있다 보니,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그런데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설득이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몇 밤 더 자고가”를 어머니한테 들려드리니까 ‘사람들이 공감을 못하지 않겠냐’라고 말씀하더라고요. “소주가 달아”도 어차피 저에 관한 이야기라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피드백이 반전이었죠.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리: 차붐 씨 음악을 듣고 나서 이른바, “로우(Raw)하다.”란 반응이 많은 편인데, 어떻게 생각해요?


차붐: 아마 지금 대화를 나누며 느끼겠지만, 가사에서 말하는 방식이 사실 제 말투에요. 그래서 오히려 친구들은 제 음악이 늘 지루하다고 하죠. 저희끼리 했던 얘기를 노래에서 그대로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진부하다고. 친구들이 힙합을 좋아하거든요, 제 앨범이 나오는 날에도 ‘쇼미더머니’를 보러 가더라고요. ‘Raw하다.’라고 평가하는 건 아마 제가 가장 일상적인 언어를 필터링하지 않고, 가사로 쓰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얘기하는 건 제가 의도한 바를 잘 받아들여준 거고요. 다행이네요.


리: 로우한 랩퍼로 굳어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는 말씀으로 생각하면 될까요?


차붐: 예전에는 고민도 많았죠. 기껏해야 솔로는 두 번째 앨범이긴 하지만, 음악을 해온 기간이 있으니까. 지금은 힙합에 욕이 들어가는 걸 뭐라 하는 경우가 없다시피 하지만, 힙합 하는 사람들이 철학적인 가사도 많이 쓰던 예전엔 같은 뮤지션한테 진짜 욕 많이 먹었어요. 안산 샤라웃 하니까 안산이 어디냐고, 의미 없다고도 하고. 이밖에도 가사엔 왜 그렇게 쌍욕이 많냐 등 말이 많았죠. 그런데 제가 한국 음악 역사에서 ‘씹새끼’라는 말을 처음으로 썼다고 하더라고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리: 아, 최근엔 저스디스(Justhis)의 “씹새끼”란 곡이 정말 화제였는데요. (웃음) 이번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가, 한국식 길바닥 용어라고 해야 할까요? ‘리빠똥’, ‘드카’, ‘갑지’ 같은 표현들이었어요. 듣기로는 이게 인천에서 시작된 거라고 하던데요.


차붐: 네 맞아요! 우선 ‘리빠똥’은 70년대 나온 [리빠동 장군]이라는 장편소설에서 차용했고요. 고등학교 때 학원에서 “나중에 (시험에) 나오니까 읽어 보라”고 했는데, 그게 기억났어요. 똥파리를 뒤집으니까 프랑스어처럼 들리는 거죠. 비트를 만들 때부터 마진초이랑 ‘이건 리빠똥’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드카’, ‘갑지’ 이런 말은 많이 쓰지 않나요? 사실 제가 85년생이고, 온전히 시사대담 세대거든요. 예전에 구봉숙(김구라·황봉알·노숙자) 광팬이었어요. 그래서 친구들끼리 얘기할 때도 “우리 쭈맥 한잔 하게!”라든가 “갑지에 드카 들고 나와” 뭐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죠. 인천에서 나온 게 맞아요. 구봉숙 그분들이 인천 출신이기도 하고요. 제가 온전히 가져다 쓴 게 맞아요.


리: 그 파격적이었던 인터넷 방송!


차붐: 굉장히 좋아했고, 영향을 많이 받았었죠. 지금도 좋아해요.


리: 그러고 보니 차붐 씨의 랩퍼 캐릭터와도 묘하게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힙합 안에서 캐릭터가 참 중요하잖아요. 근데 차붐 씨는 어느 순간 ‘쌈마이’, ‘양아치’ 등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거 같아요. 이것이 지금까지 음악을 통해 매우 설득력 있게 부각했다고 생각하고요. 그럼에도 향후 다른 시도를 할 때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차붐: ‘캐릭터’라는 건 좋게 말씀해준 거라고 생각하고요. 사실 그 모든 것들이 기믹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랩퍼가 본인이 의도해서 만들었다면 기믹인 거고, 누군가의 판단을 통해 주어진 거라면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저는 기믹은 아니에요. 누가 제 가사를 듣고 어느 순간 ‘양아치 같다’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제 가사에 ‘양아치’란 말이 들어간 거 같아요. 여기서 말하는 양아치는 저희 어렸을 때 말하던 양아치죠. 조금 불량한, 뭐 그런 느낌이요. 이걸 앞으로 살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거든요. 그 이미지가 왜 아직까지 남아있을까 생각은 하지만, 그게 제 발목을 잡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그 정도로 인지도가 있지 않아요. (웃음)


리: 그래도 이번 앨범의 반응이 참 좋잖아요.


차붐: 당연하지만 사람은 생각이 바뀌잖아요. 지금 이게 진짜고, 이건 가짜야 하고 생각했던 게 온전히 정반대가 돼서 한 달 뒤에라도 생각이 바뀔 수 있거든요. 그걸 이야기하는 데 두려움은 전혀 없어요. 만약에 생각이 바뀌면 그대로 이야기할 생각이에요. 그게 또 제 캐릭터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런 부담은 전혀 없어요. 저는 온전히 ‘아저씨’로 늙어가고 있기 때문에, 힙합을 하고, 음악 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일반 세상과 맞닿아있는 타입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타격은 덜 한 거 같아요.


리: 어떻게 보면 시류에 휩싸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차붐: 그 파도를 좀 타고 싶은데 (웃음) 몸이 무거운 걸까요. 늘 파도를 못 타네요. 저도 당연하게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또 많이 듣거든요. 사운드클라우드 세대에 관심도 많고요. XXX텐타시온(XXXTENTACION)도 좋아해서 라이브는 물론이고, 걔가 사람 치는 것도 보면서 “아 잘 치네” 하면서 보거든요. 또 요새 사건이 많잖아요. 미고스(Migos)랑 조 버든(Joe Budden) 사이에 있었던 일이나 릴 야티(Lil Yachty) 같은 멈블 랩에도 되게 관심 많아요. 그래서 많이 찾아보고 시도도 많이 해보려고 해요. 아까 캐릭터를 말씀했는데, 캐릭터뿐만 아니라 오히려 랩 스킬적으로 변화를 줬을 때 ‘반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불편하게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스킬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구해야죠. 직업이니까요. 비트도 바꾸면서 연습해보는데 걱정은 해요. 대중이 들었을 때 이걸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죠. 그런데 제가 이번 앨범에서 트랩을 했는데도 “어! 차붐도 트랩하네”란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어떻게 된 걸까요? 고민이 많습니다. (웃음) 제가 장르를 잘 소화하지 못 한 건지. 아니면 다행히 잘 묻어가서 그런 건지. 예를 들어 “돈 명예 섹스”는 온전히 요즘 노래잖아요. 그런데 아무도 그런 언급을 하지 않아서 고민이 많습니다. (웃음)





리: 기존 작업물에서는 붐뱁을 고집한 것처럼 보였는데, 이번 앨범에는 말씀대로 트렌드를 반영한 곡이 많더라고요. “에쿠스”, “이빠이”, “돈 명예 섹스”처럼요.


차붐: 붐뱁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분명히 다르겠지만, 주로 미드 템포 힙합 넘버에 랩을 했고, 그걸 붐뱁으로 본다면 분명히 맞죠. 그런데 온전히 ‘90년대 붐뱁으로 제한한다면, 저는 그런 붐뱁 비트에는 랩을 해본 적이 전혀 없어요. 오히려 마일드 비츠 & 차붐은 알캐미스트(The Alchemist) 사운드에 가깝고, 제가 하는 랩 자체도 큐비(QB) 스타일에 가깝거든요. 요즘엔 장르 제한이 없잖아요. 그래서 늘 시도하고 있고요. 요즘엔 장르 제한이 없잖아요. 그래서 늘 시도하고 있고요. 곡이 좋고 따라오는 게 있다면, 거기에 걸맞게 하는 거예요.


리: “에쿠스”는 차 스웩 트랙이지만, 조금 비틀어져 있어서 더 좋았어요.


차붐: 저는 애초에 시네마 키드인데요, 제게 “음악을 만들 때 누구에게 가장 영향을 받았냐”라고 물어본다면 일단 가사 쓰는 데는 코미디언이에요. 특히,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을 좋아하는데요, 데이빗 샤펠. 루이스케이, 케빈 웨임스. 케빈 하트, 크리스 락 등등, 진짜 좋아해서 다 찾아봐요. 요즘 넷플릭스에 많이 나와서 모두 찾아보거든요. 일본 오리(ORI)도 좋아하는데, 일본 코미디는 만담이나 꽁트로 나누어져 있어요. 일본 ORI 가운데 다운타운이라는 팀에 마츠모토 히토시, [대일본인]이라는 영화도 냈었고, 감독으로도 활동하는데요. 거기서 가사적인 영향을 많이 받죠. 음악적 주제의식은 특히 봉준호 감독님한테서 영향을 받았어요. [살인의 추억]이나 [마더]를 좋아하는 분이 많은데, 저는 [괴물]을 좋아하거든요. 영화에서 보면 항상 싸우러 가기 전에 밥 먹는 씬이 나와요. 그걸 보고 제가 맛 시리즈(Flavor)로 가게 된 거죠. [괴물]을 보면 완전 뒤집는 설정이 많은데, 특히, 고질라 같은 큰 괴수가 아니라 불안정하고도 조그만 괴물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얘가 또 불안정해서 먹은걸 모두 토해요. 전작 [ORIGINAL]에서 “쌈마이” 가사에 토하는 후렴은 온전히 [괴물]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거였어요. 앨범을 관통하는 모토 자체가 소화시키지 못하는 욕망이거든요. 또 [괴물]에서는 괴물이 백주대낮에 출현하잖아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말이죠 그렇게 뒤집는 방식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괴물]은 한국 배경인데, 정서는 미국 배우가 표현하고. 이걸 힙합에 비유를 하자면요, 사실 우리는 컴튼(Compton)에 살아본 적이 없어요, 그들은 총이나 마약이 있지만, 저는 접한 적도 없는 거죠. 없는 걸 (가사에) 쓰는 게 멋있을 수도 있고, 또 그걸 한국에서 열심히 스웩하는 것도 멋있다고 여기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걸 한국 정서로 가져왔을 때 ‘뭐가 스웩일까?’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 부분이 봉준호 감독님한테 영향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리: 앨범에서 또 하나 눈에 띈 점은 마일드 비츠 씨의 비트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대부분 곡이 마진초이 씨의 손을 거쳤던데요.


차붐: 저도 프로듀서로 시작해서 지난 앨범엔 제가 찍은 비트 숫자가 꽤 많은 편이었는데, 이젠 비트를 만들지 않아요. 마진초이랑 함께 겪어오면서 라이벌이자 파트너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비트로는 ‘따라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친구랑 제가 음악적인 아이덴티티가 비슷하거든요. 같은 곡을 디깅해도 샘플링하면 다른 곡이 나올 확률이 높은데, 저희는 거의 같은 곡이 나와요. 그래서 이제 마진초이의 비트를 그냥 써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마일드 비츠 형님의 비트를 쓰지 않은 건 이번에 마일드 비츠 & 차붐 2집을 준비하고 있어서입니다. 발매 시기는 협상을 해봐야하는데요, 아! 그리고 마일드 비츠 형님 3집도 나오거든요. 저희 회사인 레이백사운드에서요. 날짜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마일드 비츠 & 차붐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래서 이번 앨범에는 일두 형 비트가 없어요. 나중을 위해 모으고 있죠.


리: 오, 여전히 마일드 비츠 & 차붐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 중이었군요.


차붐: 마일드비츠 & 차붐 2집은 여태까지 제 앨범 중에 가장 ‘날 것’으로 나올 것 같고요. 제가 의도적으로 하는 날 선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아요. 가장 딥하게, 깊이 있게 들을 수 있는 트랙들이 될 겁니다. 동시에 불편할 수 있는 앨범이 될 거고요. 색상으로 따지면 거의 뭐 한도 끝도 없는 빨간색이랄까요.


리: 선혈이 낭자하는?


차붐: 아 그러면 검정으로 바꿀까요? (웃음) 너무 잔인하네요. 잔인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내막이랄까요. 우리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사실 말하지 않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려고 해요.


리: 이 정도만 들어도 너무 흥미롭네요. 주제나 다루는 대상만이라도 좀 더 말씀해줄 수 있을까요?


차붐: ‘역겨운 것’에 관한 이야기가 좀 많은데요, 이면이랄까요. 예를 들어 랩퍼들도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그 실제가, 같이 음악 하는 사람들도 다르잖아요. ‘겉 이미지는 센데, 실은 좋은 사람이더라.’ 같은 내용은 아니고요, 요새는 본인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게 기믹을 만들어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제가 아이돌 사업을 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들어가서 보고 느낀 뒷이야기들이랄까요. “사실은 이렇잖아.”라는 거죠. 돈을 어떻게 벌고 쓰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지저분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도 있는 것 같아서 고민 중이에요.


리: 영화로 치면 [내부자들]일까요?


차붐: 그렇죠. 실명을 쓸까 말까 고민 중이에요. 힙합 안에서도, 연예계 안에서도.


리: 누군가 불편할 수도 있겠네요.


차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불편하게 만들려는 목적은 아니고요. 솔직하게 담으려고 하지만, 저도 그렇게 솔직한 사람은 아닌 거 같아서 고민이 많습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에 대해서. 그래서 조금 밀리고 있습니다.


리: 그런데 불편할수록 흥미롭게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기대하겠습니다.


차붐: (외적으로) 듣기에는 무조건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합니다.


리: 마일드 비츠 씨의 정규 3집도 기대 중이에요. 최근에 리코(Rico) 씨랑 작업한 곡을 듣고 놀랐거든요.


차붐: 제가 마일드 비츠 형님이랑 마진초이랑 늘 음악을 해왔는데요, 이분들을 존경하는 이유가 베리에이션이 굉장히 넓어요. 특히, 마일드 비츠 형님이요. 여전히 많은 사람이 [Loaded] 때만 인식하는데, 이분의 진짜 장점은 뭐든지 소화할 수 있다는 거예요. 처음 말씀드리는 건데요, 지금은 네오 소울(Neo Soul) 앨범을 만들고 있어요.


리: 차붐 씨가 이렇게 최초로 밝혀도 괜찮은 건가요? (웃음)


차붐: 물론입니다. 일단 뱉고 나서 지켜야 하는 건 일두 형님이시니까.


리: 피처링 진과의 작업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게 된 건지 등등.


차붐: “에쿠스”부터 말씀드리자면, 딥플로우 형이야 뭐 오랫동안 함께 해왔으니까요. 처음 제목은 ‘체어맨’이었는데, 그게 잘 안 붙더라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사장님들은 체어맨이 아니라 에쿠스를 타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힙합 사장님들을 데려와서 그들 얘기를 하면 좋겠다 싶었고요. 가장 먼저 딥플로우 형한테 부탁했고, 팔로알토, 스윙스 씨 전화번호를 받아서 요청했어요. 두 분 다 바로 콜했고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사실 친분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리: “에쿠스” 뮤직비디오도 나올 거라고 들었어요.


차붐: 뮤직비디오 관련 회의를 이번 주 금요일(인터뷰 당일 기준)에 할 예정인데, 찍을지 안 찍을지 그 날 결정할 것 같아요. 이게 지금 사장님들 세 분을 모아야 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세계 안에 그들이 들어와야 하는 거니까 그분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죠. 그리고 “리빠똥” 뮤직비디오 감독님이 그 이후로 엄청 바빠졌어요. 이게 되게 웃긴 게, 앨범 내고 나서 저 말고 마진초이가 훨씬 더 바빠졌어요. 러브콜이 장난 아니에요. 이제 저만 잘 되면 될 것 같아요. (웃음) 아무튼 최대한 설득하고, 스케줄 맞춰서 해보고 싶어요. 섭외가 안 되면 아예 안 찍을 생각입니다.


리: 세 사장님을 모으기가 쉽진 않겠군요. (웃음)


차붐: 쉽지 않죠. 사실 저는 세 분들의 사이가 어떤지도 잘 몰라요. 아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제가 깜빡 잊고 이 분들한테 다른 피처링이 있다고 얘길 안 했었어요. 그래서 본인만 피처링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제가 인스타그램에 트랙리스트 올린 걸 보고 “뭐야 이거…?” 이렇게 된 거죠. (웃음) “어?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라고 사과하긴 했는데.. (웃음) 세 분의 사이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습니다.


리: 딥플로우 씨는 처음으로 오토튠(Auto-Tune)을 사용했죠.


차붐: 그러니까요. 왜 그랬대요. (웃음) 근데 엄청 좋았어요. 제일 마지막으로 녹음해서 넘겨줬는데, 오토튠을 사용해서 의외였죠. 저희가 요새 ‘39 세비지(Savage)’, ‘상구 세비지’라고 불러요. 스윙스 씨도 좋았고, 팔로알토 씨도 좋았어요. 피드백 중에 두 분 가사가 테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근데 제가 애초에 부탁한 거였어요. 사장님으로서의 애환이나 스웩, 혹은 에쿠스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써달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선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리: “몇 밤 더 자고가”에서 그레이스(Grace aka 김은혜) 씨와 작업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차붐: 제가 [ORIGINAL]을 만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게 바버렛츠 앨범이었는데, 이번 [Sour]를 만들면서는 헤이즈 씨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딱 제 스타일이더라고요. 예전에 막 프리스타일 노래 듣는 거 같고 그렇더라고요. 세련된 척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고 봐요. 어쨌든 제가 바버렛츠 앨범을 듣고 팬으로 좋아했는데, 도저히 연락처를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피타입 형의 앨범을 보니까 “돈키호테2”에 바버렛츠가 피처링했더라고요. 그래서 형한테 연결해줄 수 있겠냐고 하니까 “문제없지”라고 해서 연락했어요. 김은혜 씨가 지금은 바버렛츠를 나왔는데, 다행히 바로 오케이해줬고요. “몇 밤 더 자고가”를 만들 때부터 무조건 바버렛츠를 생각했었고, 마지막 구간에 들어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만약 김은혜 씨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 노래를 날리거나 뺄 생각이었어요.


리: “로얄제리”에서의 화지 씨는 이전부터 작업해왔고 합이 잘 맞는 아티스트라 친숙했는데, 디젤(Dsel) 씨는 생소해요.


차붐: 말씀대로 화지야 뭐, 늘 함께하는 친구이고, 인생과 음악의 동반자죠. 랩퍼로서나 인간적으로서나 모두 존중하고요. 디젤은 제가 새로 만든 래이백사운즈에 소속돼있는 랩퍼에요. 요즘의 사운드클라우드 세대일 텐데요. 급부상해서 활동하고 있죠. 김심야, 쿤디판다, 아카시, 오르내림 등등, 이런 친구들이 이제 다 먹을 거라고 보거든요, 그 친구들 음악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친구였어요. 그래서 함께하게 됐고, 이번 앨범에도 참여했어요. 이달 말에 앨범이 나올 예정이에요.


리: 보너스 트랙인 “장미”엔 뱃사공 씨가 참여했는데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통하는 지점이 엿보입니다.


차붐: ‘장미’가 원래는 친목회 이름이에요. 많이 모이면 일주일에 두세 번, 아니면 최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술 먹는 친목회거든요. 저랑 뱃사공이랑 넉살이랑 이렇게 해서 술 먹는 친목회. 이름이 장미인 이유는 별 것 아니에요. 어떤 술자리에 가면 꼭 누군가는 2차로 넘어가자면서 더 이상 술 먹는 걸 말리거나 중간에 빠지잖아요? 이 멤버들은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들이에요. 어느 날 뱃사공이 “기왕 맨날 술 먹는 거 이름 걸어놓고 먹자”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름도 만들고, 수건 같은 것도 만들었어요. 차라리 정기적으로 만나서 먹자는 거죠. 이름을 뭐로 지을까 하다가 제가 멋있는 걸 얘기했죠. ‘Guns & Roses’. 근데 반응이 별로였어요. 우리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차라리 ‘방석집’ 같은 걸로 하자더라고요. 촌스러운 간판 같은 게 어울린다고. 그래서 ‘Guns & Roses’가 아니라 그냥 ‘장미’가 된 거에요.


리: 그렇게 탄생한 모임의 이름이 곡까지 낳았네요. (웃음)


차붐: 네. 웃긴 건, 그 다음에 뱃사공과 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어느 날 넉살이가 “나는 왜 안 끼워줘?” 이러더라고요. 술 취해서요. 처음부터 같이 마시고 있었는데. (전원웃음) 그래서 정규 멤버는 3명인데, 항상 게스트가 있어요. 프로듀서 장수, 리짓군즈 해파리, 아까 말씀드린 제 불알친구이자 이번 앨범 공동 프로듀서인 구자성이가 참여하는 편인데, 결국에는 멈추는 걸 못하는 사람끼리 남는 거죠.


리: 술자리 정말 질펀하겠네요.


차붐: 저희는 1차에서 안주 두 개밖에 안 시키고, 비싼 것도 안 시키는데 진짜 소주 값만으로 3~40만원이 나와요. 그런데 문제는 1차 끝나면 모두가 만취상태인 거죠. 그래가지고 다들 5차까지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게스트들이 안 오려고 하죠. 슬쩍 “장미 하려고 하는데 올래?” 하고 물어보면 요새는 힘들다고 다들 안 오려고 해요. 특히 게스트들이 더 그러죠.


리: 체력들이 대단하네요. 놀라울 정도에요.


차붐: 예전부터 백사공이랑 넉살이가 앨범내면 무조건 피처링 하나 시켜달라고 쭉 얘기했었어요. 그럼 아예 ‘장미’라는 이름으로 가자 싶었던 거고요. 그런데 막상 하려니까 만만치 않더라고요. 친목회가 아니라 음악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이걸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후렴을 짜면서 ‘젊음의 장미?’란 느낌이 나서 만들게 된 곡이에요. 넉살은 ‘쇼미더머니’ 때문에 빠진 거고요. 앞으로도 “장미”는 시리즈로 나올 것 같아요. “장미2”가 누구의 앨범에 수록될 진 모르겠지만요.


리: 넉살 씨나 뱃사공 씨의 앨범을 통해 나오겠네요?


차붐: 그렇죠. 계속 돌아가면서 나오겠죠. 실은 노래가 이미 나왔어요. 넉살이랑 뱃사공은 자기들이 수록하겠다고 하는데, 그 곡을 마진초이가 만들고, 후렴은 제가 만들어서 아직까지 주진 않았습니다. 제가 넣겠다고 하는 중이에요. 하지만 넉살이 ‘쇼미더머니’에서 우승하게 된다면, 넉살 앨범에 수록되지 않을까 싶어요. 비즈니스는 정확해야죠. (웃음)


리: 아트워크 얘기를 해볼까 해요. 핀업걸 스타일인데요, 특별히 의도한 바가 있나요?


차붐: 어렸을 때부터 솔로앨범을 낸다면 무조건 핀업걸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 음악과 매칭은 거의 고려하지 못했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팬으로 좋아하고 있었던 헬독(Hell Dog) 형을 [ORIGINAL] 낼 때 접촉한 거죠. 번호를 아는 지인을 찾는 데까지 오래 걸렸어요. 결국, 만나게 됐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당시 형은 거절하려고 나왔던 거였어요.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당시 형의 여자친구가 빅딜의 팬이었던 거죠. 그렇게 인연을 맺으면서 노예가 됐고요. (웃음) 앞으로 낼 앨범들은 제목과 커버까지 다 정해놨거든요.


리: 이번 앨범 커버는 레모나 패러디인거죠?


차붐: 네, 맞습니다. [ORIGINAL] 앨범은 프링글스 오리지날 패러디였고요. 가령 이런 식이었어요. 다음 앨범으로 [Sour]를 낼 거면, 스키틀즈 사워 패러디로 가고, 다음은 예를 들어 피넛 앤 버터라면, m&m 패러디로 가는 거죠. 이런 걸 하고 싶다고 형을 설득했어요. 그런데 [ORIGINAL] 앨범 커버가 최종적으로 바뀌었죠. 음악을 듣고 나서 헬독 형이 절 설득했어요. 좀 더 맥락을 이어갈 수 있는 커버면 어떻겠냐고요. (앨범의) 뚜껑을 열었을 때와 앨범을 듣고 난 뒤, 그러니까 겉표지와 음악이 서로 다를 때 분명히 반전이 있지만, 너무 차이 나면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면서요.


리: 헬독 씨의 말씀도 일리 있네요.


차붐: 네. 다만, 본인의 그림 중 쓸 수 있는 걸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ORIGINAL] 때의 ‘보도방 명함’ 아이디어는 반년 넘게 회의하고, 고민해서 나온 결과였어요. 앞으로 나올 정규 앨범은 전작을 반영해서 ‘진화’와 관련된 주제로 나올 것 같고요. 또 EP들은 이번에 [Sour]가 나온 것처럼 ‘Flavor’ 시리즈로 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한국적인 제품을 패러디 할 생각인데, 온전히 헬독 형 그림으로 갈 거예요. 정규 앨범은 헬독 형이 그린 그림을 어딘가에 노출 시키는 방향으로 갈 듯하고요. 물론, 회의를 통해 그때 가서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요.


리: 뮤지션에게 정규 앨범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인식도 그렇고요. 저희 역시 정규 앨범의 가치를 꾸준히 높이 사고 설파해왔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정규 앨범을 통해 일종의 ‘선언’을 하면서 뮤지션이 중요한 입지를 가진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차붐 씨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요.


차붐: ‘정규 앨범’에 대한 답변을 먼저 드리자면, 전 정규 앨범이 좋아요. 단순히 제가 처음에 접했던 노래들이 정규 앨범 단위이기도 했고요. 앞으로도 유지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뭔가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거니까요. (싱글은) 드라마 한 회를 보고 끝나는 느낌이잖아요. 풀렝스(full-length)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요. 물론, 진짜 훌륭한 뮤지션이라면 한 곡 안에서도 역사를 담을 수 있겠지만요. 그럼에도 정규란 단위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죠. 다만, 대중음악을 하고 있으니까 산업계의 흐름에 따라 이끌려 가는 부분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까요. 그래서 싱글 위주로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전 풀렝스란 단위 자체를 굉장히 좋아해요. 영화랑 길이는 달라도 다룰 수 있는 구성은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리: 앨범 단위의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든 건 세계적으로 비슷한 현상인데 유독 한국대중음악계, 특히 힙합 씬마저 너무 쉽게 가치를 폄훼하는 것 같아 더 아쉬운 것 같습니다.


차붐: 뮤지션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차피 산업에 가장 민감한 장르가 바로 힙합이잖아요. 돈을 얼마 버느냐가 제일 중요하니까요. 보통 유통사에서 원하는 건 지속적으로 나오는 싱글보다 큰 덩어리에요. 홍보가 더 쉽고, 여러 음원을 독점할 수가 있어서 뮤지션들과의 계약이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전 생각하거든요 온전히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생각이지만요.


리: 그럼 음악산업계 전체 말고 요즘 힙합 씬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차붐: 주위에서 비슷한 질문을 해요. 최근 다른 곳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그랬고, 오랜만에 만난 큰 아버지도 “쇼미더머니에 안 나가냐?”라고 묻고. 오랫동안 고민을 참 많이 했는데, 오늘에서야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처음에는 쇼미가 싫고 나가는 사람들도 병신 같다고 생각했어요, 뭐 심사위원이야 돈 받고 하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이번 시즌에만 쇼미에 1만 7천명 모였다고 하더라고요. 그 땡볕에 열정이 참 대단하죠. 그러다가 심사에 들어가면 스웩이 들어가야 하고, 오디션 성격이니까 다시 스위치 오프를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그게 진짜 뭐 하는건지 싶었고, 평가받는 것 자체가 싫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이 바닥, 특히, 힙합 장르에서 돈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해요. 쇼미 역시 기회일 수 있고, 일종의 플랫폼일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이제는 ‘쇼미더머니’에 관해 100% 긍정적이에요. 나갈 건지 묻는다면 전략적으로 생각해야죠. 나가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나갈 것이고요. 좋은 플랫폼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기회잖아요. 물론, 그 기회를 잡은 친구도 있고, 이용당한 친구도 있죠. 다만, 한 가지 짜증나는 건 돈은 모두 CJ가 번다는 거죠. 저희는 거기서 정말 조금 튀어나온 콩고물을 먹는 거고요.


리: 전략적으로 나간다는 건, 예를 들어 같은 시즌에 누구랑 나갈 건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차붐: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변수이기 때문에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건 아닌 듯해요. 오히려 본인의 현재 인지도가 어느 정도이고, 그래서 CJ가 나를 어느 정도까지 이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나가야 한다는 의미에요. 나가서 한방에 스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확률적으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복권 긁는 거랑 비슷한 거잖아요.


리: 넉살 씨는 많이 응원하고 있겠어요? ‘장미’의 안주가 바뀌길 기대하면서요. (웃음)


차붐: ‘장미’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는 건데, 솔직히 넉살은 응원합니다. 그런데 이미 ‘쇼미더머니’ 나가기 전부터 잘 나가고 있었잖아요. 이 씬 안에서는 최정상에 있었기 때문에 약간 배가 아프다기보다는, “재수가 없다”는 생각을 좀 했어요. (웃음) 농담이지만. 넉살이랑 뱃사공이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거든요? 근데 갑자기 유명해졌어요.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얘들이 저를 좆밥 취급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슬슬 ‘앨범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처음엔 저희 셋 다 서로의 음악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만나게 된 건데, 이젠 너무 친해서 그걸 다 까먹었어요. (웃음) 인간적인 면으로만 만나는 거죠. 그러다가 넉살의 [작은 것들의 신]이 나왔을 때 ‘아 맞다. 넉살 랩 잘했지.’하고 깨달았고, 이번에 리짓군즈 앨범 나왔을 때도 ‘아 뱃사공 랩 잘했지’하고 깨달았어요.


리: 그래서 차붐 씨 앨범이 나왔을 때 두 분의 반응도 그랬나요?


차붐: 애들이 “형 진짜 구린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었는데, 음악 할 때는 멋있었지.” 하더라고요. 우린 그런 관계에요. 그리고 함께 성공해야 해요. 엄청나게 응원해요. 애들이 못 나가면 저도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친한 사람들끼리는 함께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럴 자격을 충분히 갖춘 친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들이 해온 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중이라고 생각하고요. 이제 와서 깨달은 건데, 그래서 인지도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입장에서 넉살을 매우 응원하고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안주가 바뀌는 이야기를 해보자면, 제가 원래 사업으로 잘 나갔잖아요. 그때 ‘장미’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장미 친목회를 하면서 8은 제가 냈고 2는 넉살이 냈어요. 뱃사공은 낸 적이 없습니다. 뱃사공은 처음부터 저희한테 공언을 했어요. “나는 망할 거고, 나에 대해서 당신들이 책임져라”라고. 늘 그렇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가 감당하고 있습니다.


리: 뱃사공 씨와는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차붐: 끽해야 2년 정도 됐어요. 근데 그 2년 동안 정말 지겨울 정도로 많이 봤죠. 뱃사공이랑 저랑 인간적으로 아이덴티티가 비슷해요. 다만 제가 조금 더 유식하고, 걔가 조금 더 무식하죠. (웃음) 처음에는 뱃사공이 저한테 팬으로서 앨범에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때 제가 씹었어요. (웃음) 당연히 저는 스타였고 걔는 좆밥이었으니까. (웃음) 농담이고요. “마초맨”이라는 트랙을 작업할 때 처음 알게 되었어요. 사실 그 전에 리짓군즈라는 팀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양지 힙합 페스티벌인가에 갔다가 제 다음 순서에 리짓군즈가 무대에 섰었는데, 그때 ‘와 저렇게 재미있고 멋있게 음악 하는 팀이 있구나!’ 싶었거든요. 그때부터 이미 눈 여겨 봤죠. 그래서 연락이 왔을 때 당연히 오케이 했어요. 제가 “마초맨” 작업 때도 가사를 녹음 당일에 가서 썼거든요. 뱃사공이 이후에 “사람 잘못 봤다.”라고는 했지만, 그러면서 친해졌죠.


리: 그 곡엔 딥플로우(Deepflow) 씨도 참여했잖아요.


차붐: 네, 맞습니다. 아 이건 별 이야기는 아닌데, 제가 당시 중국에 있던 때라서 그 작업 때문에 한국에 굳이 들어왔어야 했어요. 이제와 생각해보면 걔(뱃사공) 꺼 피처링 하려고 왜 그렇게까지 했나 싶은데. (웃음) 그날 그렇게 “마초맨” 작업을 하고 나서 바로 딥플로우 형이 [양화]에 들어간 “Cliche” 피처링을 위해 두 시간을 줘서 또 가사 쓰고 녹음했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요. . 두 곡을 그 날 같이 작업했어요.


리: 흥미로운 에피소드네요.


차붐: 더 웃긴 건 딥플로우 형도 (“마초맨”) 가사를 준비해오지 않았었다는 거예요. 뱃사공이 그때 화가 굉장히 많이 났었어요. (웃음) 가사 안 쓰고 녹음하러 온 사람들 처음 봤다면서. 그날 녹음 끝나고 술 먹는 자리에서 저에게 막 이야길 시작하더라고요.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며. 그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냐면서. (웃음)


리: 그럼 “마초맨” 뮤직비디오도 굳이 한국에 들어와서 찍은 거였겠네요? (웃음)


차붐: 맞아요. 그때 “마초맨” 찍은 감독이 이번에 “리빠똥” 뮤직비디오도 찍었어요. 리짓군즈의 윤카키라는 친구죠. “마초맨” 찍을 때는 [살인의 추억]을 패러디한다고 해서 저희가 입고 온 의상을 뱃사공에게 컨펌까지 받으면서 찍었어요. 저희에게는 촌스럽게 입으라고 해놓고 자기는 돋보이려고 멋있게 입었더라고요. 재수 없었습니다. (웃음) 그때가 5-6월쯤이어서 더워 죽겠는데, 딥플로우 형은 가죽 재킷이랑 목 폴라까지 입었었어요.





리: 론칭한 레이백 레코즈는 언제부터 준비한 거예요?


차붐: 사실 준비는 1년 전부터 했는데, 론칭은 [Sour] 앨범을 통해서 하게 됐죠. 실력으로 먼저 보여드리고 싶어서 앨범을 먼저 냈어요. 먼저 ‘레이블 론칭했습니다.’라고 하기엔 구구절절한 것 같아서요.


리: 소속 아티스트가….


차붐: 마일드 비츠, 마진초이, 그리고 이번 “로얄제리”에 참여한 디젤(Dsel), “로얄제리” 비트를 만든 힙인케이스(Hipincase), 그리고 오아이(OI)라는 20살 여성 알앤비 싱어가 있습니다. 저까지 총 6명이죠. 프로듀서 세 명에 플레이어 세 명이에요.


리: “에쿠스”에서 나온 것처럼 이제는 한 레이블의 사장님이 됐군요.


차붐: 제가 아이돌 사업할 때도 사장이긴 했거든요. 지금도 사장이긴 한데, 약간 느낌이 사장 새끼(?) 같은 느낌이에요. (웃음) 보스이기보다는 ‘함께 음악을 한다’고 생각해요. 레이백 레코즈라는 이름도, 가능한 튀지 않고 ‘힙합적’이지 않게 지으려고 했던 거예요. 그래서 모두가 개개인의 실력으로 증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뮤지션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회사는 최대한 뒤로 빠져있으려고 합니다. 회사 브랜딩은 천천히, 조용히 할 예정이에요. ‘좋은 음악을 만드는 회사다’라는 정도로만 인지해줬으면 좋겠어요.


리: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레이블의 계획이 궁금하네요.


차붐: 우선 이번 달 말에 디젤의 데뷔 EP가 나올 예정이에요(*편집자 주: 인터뷰 시점으론 8월). 그리고 오아이의 싱글이 9월 말에 나오기로 했는데, 계획을 바꿔서 데뷔 EP로 10월 말 쯤에 나올 것 같아요. 저희가 조금 더 큰 덩어리의 결과물을 내려고 하다 보니까 오아이도 싱글이 아닌 EP로 내는 게 나을 것 같더라고요. 곡이 진짜 많이 쌓여있거든요. 그리고 11월 말에 대망의 마일드 비츠 3집이 나옵니다. 이번 거 진짜 작살납니다! 1집, 2집을 거의 발라버릴 정도에요. 그리고 12월 말에 힙인케이스 정규 1집이 나옵니다. 이 친구는 프로듀서인데요. 제 안산 후배에요. 마진초이도 1월 말에 정규 1집을 낼 생각이고요. 사실 모든 아티스트의 작업물이 준비된 상태에요. 일정 때문에 밀리고 있는 거죠. 저희는 한 달에 하나씩 작업물을 쏟아낼 생각이에요. 아! 그리고 이건 엊그제 정해진 건데, 레이블의 믹스테입을 정기적으로 공개할 예정이에요. 특수한 점이 있다면, 무료로 공개를 할 것이기 때문에 원래는 저작권 때문에 쓸 수 없는 한국 곡들만 샘플링해서 만들 생각이거든요. 진보 씨가 하는 ‘KRNB’ 시리즈와는 조금 다를 거예요. 그게 저희가 보여드릴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계획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리: 레이블 스케줄이 이미 꽉 차 있네요?


차붐: 네, 전 유달리 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았었거든요. 이제서야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마침 기회가 와서 앨범을 내게 된 거고요. 사실 [Sour] 낼 때도 불안했던 게, 평가가 안 좋아서 이후에 제가 음악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그게 두려웠어요. 다행히 나쁘지 않은 평가가 나와서 ‘음악을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라고 생각해요. 최소 두 번 정도의 기회를 더 얻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기회를 더 늘려갈 수 있도록 많은 음악을 낼 생각이에요. 특히, 회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구요. 저희가 가진 것들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싶어요.


리: 레이백 레코즈의 왕성한 활동이 기대되는 것 이면으로 사장인 차붐 씨가 본인의 음악에 집중하기 어려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드는데요.


차붐: 그렇진 않습니다. 제가 원래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해요. 제 음악을 듣고서 제가 굉장히 즉흥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철저히 계획하고 계획한대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죠. 이건 그냥 저의 인간적인 본성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원래 프로듀서적인 성향도 강해요. 랩보다 프로듀싱으로 먼저 음악을 시작했고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제가 곡 만드는 건 열심히 했지만, 실력이 늘지 않아서 할 수 없게 된 반면에 랩은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큰 애정도 없는데 재능 때문인지 잘하게 됐거든요. 좀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저에겐 속상한 일이에요. 곡 만드는 걸 진짜 좋아하고 시간도 많이 투자했는데, 이쪽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재능 발현이 된 거니까요. 랩퍼로서의 평가가 프로듀서로서의 평가보다 더 앞선 것에 대해서 예전에는 의구심을 가졌어요. 하지만 이제는 왜 그런지 알 것 같아요. 어쨌든 음악을 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리: 프로듀서로서의 욕구와 랩퍼로서의 욕구 사이에서 그 정도로 무게중심이 기울어있었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놀랍네요.


차붐: 프로듀싱이 됐건 내레이션이 됐건, 하다못해 조언으로라도 좋은 음악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거든요. 어떠한 음악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함께할 수만 있다면 좋은 거죠. 그게 제 음악적 목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작자로서 일을 한다고 해도 저에게 전혀 해가 될 게 없는 것 같아요. 시간 충분합니다! 뮤지션들 시간 많아요. (웃음) 시간 없다는 거 다 거짓말이에요. 저 맨날 술 엄청 먹고, 새벽까지 미드 엄청나게 보고. 솔직히 맨날 음악 하는 거 아니잖아요. 직장인들이 얼마나 바쁜데, 어딜 감히 그런 이야기를 합니까! 진짜 솔직히 말하면, 한 달에 하루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더 부지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 그럼 솔로 2집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차붐: 다음 앨범을 정규로 할지, EP로 할지 고민 중이에요. EP를 하나 더 낼 확률이 커요. 근데 이 EP가 정규 정도의 길이로 갈 수도 있고요. EP 두 개를 하나로 합쳐서 낼 생각도 하고 있어요. 이게 ‘맛’ 시리즈로 계속 가니까 한도 끝도 없더라고요. 여러 고민이 많은데, 일단 확실한 건 내년 4월 전에는 앨범 하나를 무조건 낼 생각이에요. 그리고 내년 9월이나 10월쯤에 정규를 하나 더 낼 생각이고요. 근데 만약 그때까지 준비가 안 됐다고 느껴지면 아마 못 낼 수도 있겠죠. [Original] 낼 때는 “이거나 먹어라”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솔직한 마음으로 “이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생각도 했어요. 워낙 제 이야기를 다 정리해서 낸 앨범이라서요. 근데 이 세상이라는 게, 절 가만히 놔두지를 않더라고요. (웃음) 금방 금방 쌓이더군요. 최근에 [Sour]를 내서 또 다 뱉어냈잖아요. 특히, 앨범을 내기 직전 이야기들까지 다 뱉은 거라서,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또 무언가가 쌓이겠죠. 그 에피소드가 제 안의 무언가를 크게 바꿔놓을 수 있다면, 정규가 될 거예요. 그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에 머무른다면, EP가 될 거고요.


리: 그럼 마일드 비츠 씨와의 앨범은 그 중간에 나오는 건가요?


차붐: 그렇죠. 근데 그건 다른 뮤지션과의 일정 조정도 해야하고, 저도 일말의 아쉬움조차 없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Still Ill] 내고서 무료 공개로 냈던 1.5집 [Caged Animal]이 있었잖아요. 그 앨범 내고서 음악을 그만두려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각했거든요. [Caged Animal]의 가마스터링이 끝나고 마일드 비츠 형님이 저한테 쭉 들려줬는데, 랩이 너무 구린 거예요. 제가 늘 욕했었던 인맥으로 힙합 하던 사람이 저였더라고요. 그래서 스스로가 너무 혐오스럽고, 깜짝 놀랐어요. 충격이 너무 커서 음악을 그만두려고 생각했었죠. 그때 그만뒀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웃음)


리: 그때가 언제쯤이죠?


차붐: 2011년에서 2012년 사이였던 것 같아요. 당시 저한테 용기를 불어넣어줬던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음악을 더 해야지’ 하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이그니토(Ignito) 형 때문이었고요. 그 형이 안산까지 찾아와서 저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제가 음악을 계속 하도록 잡아줬죠. 아직까지도 감사하고 있고, 원래 팬으로서도 이그니토 형을 좋아해요. 그 형이 저한테 “그만두는 건 너의 마음이다. 그런데 너는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앤데, 그 자존심이 꺾였기 때문에 네 감정상태가 변한 거지 실력적인 부분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씀해줬어요. 굉장히 냉정한 말씀이었는데, 그래서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감정적인 말에는 제가 잘 안 흔들리거든요.


리: 이그니토 씨의 말씀 인상적이네요. 음악만 듣다가 실제로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해보니까 차붐 씨를 오해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차붐: 그래서 실망하는 분들도 많아요. 저한테 직접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본드 불 것 같이 생겼는데 전자담배 태우시네요?”라고요. 근데 나이 서른 먹고 누가 본드를 불어요? (웃음) 그리고 제 음악에 욕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죠. 사실 지금의 저도 저의 한 부분이잖아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예의는 지켜야죠. 예의를 지키지 않아야 할 상황이 왔을 때는 지금처럼 친절한 이유가 없고요. 그것도 저고, 이것도 저죠. 사실 예전에는 처음 보는 분들 앞에서도 이 정도까지 예의를 갖추진 못했어요. 그래서 씬에 처음 들어왔을 때 형들한테 미움도 진짜 많이 받았죠. 술 먹고 이상한 짓도 많이 하고, 말도 좀 막 하는 편이라서요. 또 옛날에 제가 안산에서 잘나갔고, 꿀린 적도 없었다는 점에서 자부심 가득하기도 했어요. 근데 나이 든 지금의 전 그게 창피하다고 생각하죠. 언제까지 그렇게 살겠어요. (웃음) 무엇보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고, 저와의 만남을 통해 불쾌감을 느끼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런 인터뷰마저도 저한테는 되게 감사한 기회에요. 진심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걸 최대한 보여드리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음악으로도 마찬가지고요. 시간이 생각보다 진짜 없더라고요. 중국 가서 느낀 게, 음악을 이제 더 이상 못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거든요.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봐야 하는데 괜히 들고만 있던 기분이 들어서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이제는 정말 진심을 다해서 할 생각입니다.


리: 말씀 들어보면,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기분인 듯해요.


차붐: 그렇죠. 이제 확실히 알았어요. 음악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바라고 원하고, 시켜줘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래서 그 안에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하려고 해요. 중국 갔다 와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Caged Animal] 이후에 저라는 사람 자체의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고요.


리: 레이블 대표로서 눈 여겨 보는 신인이 있나요? ‘데려오고 싶다’ 라든지….


차붐: 잘하는 뮤지션들이 너무너무 많죠. 일단 데려오고 싶은 뮤지션은 제가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저희 레이블 구조가 제가 노예고, 뮤지션이 갑이에요. 그 분들이 음악 생활하는 데 불편하심이 없게 해드리는 게 제 역할이죠. 거의 집사죠. 돈도 저보다 더 많이 가져가시고요. 그래서 뮤지션 분들도, 저를 찾아주시는 분이 있다면 좋은 거죠. 제가 모시는 입장이기 때문에, (웃음) 제가 ‘누군가를 원한다’는 건 너무 좀 위에서 하는 말이라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따로 눈여겨보고 있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와비사비룸도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제이플로우(Jflow)가 이번에 낸 ‘히피는 집시였다’ 앨범도 좋게 들었어요. 올해의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제 꺼도 올해 나왔구나! (웃음) 그리고 아카시(Acacy)라는 친구가 있어요. 모두가 관심을 좀 가져주셨으면 하는 아티스트인데, 너무 잘하고 센스 있는 친구에요. 장담하건대 앨범이나 믹스테입을 낸다면 정상급으로 오를 거예요. 아, 009라는 친구도 있어요. 요새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활동하는 친구들 중에 떠오르는 아티스트에요. 이번에 믹스테입이 나왔거든요. 저희 나이 때에 화나가 있었다면, 이 친구들 나이 때에는 009가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음악적인 색깔은 조금 다른데, 민감하게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닮은 것 같아요. 제가 화나 씨 음악을 들으면 뉴스 보는 느낌이 들거든요. 제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세세하게 잡아내는 분이니까. 근데 009 이 분도 그런 센스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표현력이 압도적이더라고요. 더 말씀드리고 싶지만, 이정도로 하겠습니다.


리: 신인들에 관한 정보 너무 좋네요. (웃음)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해요.

차붐: 리드머에게 “존재해줘서 감사하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어쨌든 뮤지션은 평론가를 싫어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저희에 대해서 압도적으로 평가만 하니까요. 저희가 평론가를 평가할 기회는 없거든요. 복수를 할 수가 없어요. (웃음)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평론가들이 없다면 저희가 냉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도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대중들의 판단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조금 더 깊고 편안하게, 대중이 캐치하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설명해주는 기회를 가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론가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고, 특히 힙합이라는 장르는 더더욱 그렇죠. 더 젊고, 어린 평론가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 부분에서 리드머가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보면, 점차 세일즈로 변모하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제대로 평론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계속 역할을 지켜가는 걸 존중합니다. 동시에 전 제 앨범이 평가받는 부분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에요. 아마 다른 뮤지션들도 민감하지 않은 척하지만, 민감할 겁니다. 이게 솔직한 제 심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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