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저스디스 - 씹새끼, 컨셔스 힙합,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리드머 작성 | 2016-07-22 19:27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43 | 스크랩스크랩 | 71,803 View
인터뷰, 글: 이진석, 황두하
사진: 저스디스
저스디스(Justhis)는 2014년에 발표한 믹스테입 [Money Vs. Love: Dream]를 기점으로 불한당 컴필레이션을 비롯한 각종 피처링 작업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며 단숨에 주목받는 루키로 떠올랐다. 날카롭고 화려한 스킬의 랩에 얹힌 복잡하게 꼬아 다층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가사와 무거운 주제 의식은 그에 대한 기대치를 더더욱 올려 놓았다. 그리고 지난달 발표된 첫 정규 앨범 [2 Many Homes 4 1 Kids]는 그동안 쌓인 역량이 폭발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가해자를 미화하는 듯한 일부 가사와 전반에 흩뿌려진 불편한 표현들 탓에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그는 탁월한 완성도의 앨범과 함께 의도와는 별개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리드머(이하 '리'): 원래 미술을 하려 했다고 들었는데,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스디스(이하 '저'):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두려움이 있었어요. 주변 눈치도 보게 되고… 그런데 고3 때까진 미술로 대학을 간 뒤 이후의 모습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냥 막연히 그림을 그렸던 거죠. 어느 날 제 마지막 모습을 상상했는데, 너무 별로인 거예요. 그래서 그때 술을 엄청 먹었는데, 당시 미니홈피에 일기장 같은 게 있었어요. 다음날 일어나서 보니 거기에다가 취한 상태에서 글을 써놨더라고요. 그 내용 중에 음악을 하고 싶단 얘기가 있어서, 무조건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입시가 한 달이 채 안 남았을 땐데, 무조건 미대가 아니라 음대를 가야겠다 마음먹었죠.
리: 장르는 원래부터 흑인음악을 지망했나요?
저: 중학교 때까지는 힙합이라는 단어도 몰랐어요. 랩이란 단어도 몰랐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거의 소프트 락만 들었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일렉트로닉 쪽으로 넘어갔는데, 아무래도 그림을 그릴 때 계속 음악을 틀어놓고 그리게 되거든요. 당시에 다프트 펑크(Daft Punk)가 누구랑 콜라보를 했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게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Stronger”였죠. 이게 뭐지 싶었어요. 음악에 음가가 없으니까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되게 별로다 싶었죠. (웃음)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칸예 웨스트의 4집이 나왔는데, 접근 방식이 보통 랩 음악과 다르잖아요? 그때부터 듣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당시엔 힙합이라는 장르를 들은 게 아니라, 그냥 팝 앨범을 들은 거죠. 이후에 음대에 들어가고 싶어졌을 때 즈음엔 계속 연결돼서 제이지(Jay-Z),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 등등, 해서 자연스럽게 듣게 됐어요. 그때도 굉장히 깊게 듣는 건 아니었어요. 저한텐 [The Blueprint 3]도 그렇고, [Lupe Fiasco’s The Cool]도 그냥 팝이었고, 가사를 크게 생각하며 들은 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다가 변성기가 찾아오고, 노래방에 가면 자연스럽게 랩을 하게 됐어요. 그때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의 노래를 외워서 부르곤 했죠. 이후 음대에 가고 싶어져서 학원에 갔는데, 노래방 가면 뭐 부르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랩을 한다면서 다이나믹 듀오의 “불면증”을 불렀어요. 상담 선생님이 듣고, 국제예술대학에 붙여주겠다고 하더군요. 정말로 국제예술대학에 힙합 전공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나찰 형을 만났어요. 오리엔테이션 이후 첫 수업에서 블랙 스타(Black Star)를 틀어줬는데, 그게 제 기억에서 힙합으로 인식하고 들은 첫 번째 음악인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힙합이나 랩을 꼭 해야겠다는 개념으로 접근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냥 음악이 하고 싶었죠.
리: 변성기와 노래방이 굉장한 영향을 끼쳤네요? (웃음)
저: 노래를 못하니까, '이걸로 대학에 들어가서 음악을 공부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블랙 스타를 듣고, 난 이걸 무조건 해야겠다 하고 돌아섰어요.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땐, 약간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했어요. 저도 지금은 충분히 이해하는 게, 거기 있는 애들은 다 힙합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모인 거거든요. 근데 저는 힙합을 모르니까, 걔네 입장에선 말을 섞기 싫은 거예요. 그땐 되게 화가 났었죠.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얘기하면 뭐 그런 걸 듣냐면서. (웃음) 또 그때가 2010년이었는데, 당시엔 이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릴 웨인(Lil Wayne)만 들어도 페이크라 그러고. 나스(Nas)만 짱이고. (웃음) 제가 영 머니(Young Mone)가 좋다고 하면, 웩(Wack) 취급을 받곤 했죠. 너무 화가 나서, 교보문고에 가서 검색대에 힙합이라고 친 다음 책을 다 사서 읽었어요. 수능 때 공부했던 그 방식으로요. 그렇게 완전히 거꾸로 간 거죠. 처음부터 완전 깊게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연대를 쭉 훑고 나니까, 책에 ‘99년에서 2000년도가 컨셔스 힙합의 황금기라고 써 있더라고요. 책을 다 읽고, 음반을 다 듣고 심지어는 혼자 감상문도 썼어요. (웃음) 제가 아는 방식은 그것 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게 다 알고 나니까,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보이더라고요.
리: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2010년도에 대학교 신입생 시절, 처음 음원으로 등장한 게 시로스카이(Shirosky) 씨의 앨범이었죠?
저: 네, 맞아요.
리: 당시 학교에서 만나 작업이 이뤄진 건가요?
저: 아뇨. 그때 제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다녔던 학원에서 키비(Kebee) 형, 페니(Pe2ny) 형, 셔니슬로우(Sean2slow) 형, 디지(Deegie) 형이 다 선생님이었어요. 당시 페니 형이 시로스카이 씨가 앨범을 준비하는데, 해보겠냐고 해서 자연스럽게 했던 것 같아요. 저도 너무 옛날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웃음)
리: 그때는 이름도 저스디스(Justhis)가 아니었죠?
저: 그땐 급하게 랩 네임을 만들어야 했어요. 제 이름이 허승인데, 처음으로 만났던 교포 누나가 '승'이니까 '윈(Win)'이라고 불렀어요. 이것도 좀 가물가물한데, 당시 크루 친구들이랑 랩이라는 것도 결국 시간의 음악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타임을 붙여서 타임와인(TiMeWiNe)이라는 이름을 지었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힙합을 정말 힙합으로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당시 제일 많이 듣던 게 키드 커디(Kid Cudi)였거든요. 그런 걸 하고 싶어 했고, 거기에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느꼈어요. 이후엔 방향성이 많이 바뀌었죠.
리: 그럼 저스디스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쓰게 된 거예요?
저: 예전 이름으로 믹스테잎 하나를 내고 나서 점점 힙합스러운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되고, 옆 방엔 오케이션(Okasian) 형도 들어오고 하면서 힙합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게 됐어요. 그러고 나니까, 이름이 너무 별로라는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는 거에요. 그 와중에 저스디스(Justice)라는 앨범을 준비하게 됐어요. 마이클 샌댈(Michael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기도 했고, 원래 디씨 코믹스(DC Comics)의 [Justice League]의 팬이기도 했어요. 미술을 할 때도 원래 만화 지망이었거든요. 그 작가 중에, 알랙스 로스(Alex Ross)라고 모든 컷을 물감으로 정말 작품처럼 그리는 사람이 있어요. 이 둘에 굉장히 꽂혀 있었고, 컨셔스 힙합도 좋아하는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꿈을 하나 꿨어요. 어떤 큰 박물관에 제 자화상이 있는데, 그 자화상에 당시 제가 읽던 만화책의 악당들이 함께 모자이크된 작품이 걸려 있는 거예요. 와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그 스펠링이 저스디스(Justhis)였어요. 잠에서 깨서 아이폰에 메모를 하고, 이름을 바꿨죠.
리: 기가막히네요. 운명적인 것 같기도 하고요.
저: 그 꿈을 꾸고 난 다음에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고 다녔어요. 내 첫 정규 앨범의 커버가 꿈에 나왔다고. (전원 웃음) 그걸 아예 랩 네임으로 바꾸게 된 거예요.
리: 매드 클라운(Mad Clown) 씨와 함께하는 팀 커먼 콜드(Common Cold)는 어떻게 결성한 거예요?
저: 2010년인지 2011년인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당시 루키들을 상대로 컴피티션을 하는 공연이 있었어요. 경쟁을 해서 우승한 사람들이 최종 공연에 참여하게 되는 거죠. 그때 라인업이 빈지노(Beenzino), 더 콰이엇(The Quiett) 등등 이었는데, 거기 매드 클라운 형도 있었던 거죠. 대기실에서 제가 외국에서 산 메신저 백을 매고 있는데, 매드 클라운 형이 자기도 똑같은 게 있다고 먼저 말을 걸었어요. 이후에 네이트온 아이디를 주고받고, 음악 얘기를 많이 했죠. 그러고 시간이 더 지나서 알고 보니 서로 3분 거리에 집이 있더라고요. 그날 만나서 밥 먹고, 이후로 많이 친해졌어요. 당시가 소울컴퍼니(Soul Company)가 없어졌을 때였는데, 매드 형이 같이 팀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봤어요. 그렇게 진행된 거예요. 근데 커먼 콜드의 곡이 쌓여가고 있을 즈음, 매드 형이 [쇼미더머니]에 나가기로 결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매드 형이 잘 되고, 자연스럽게 무산됐죠.
리: 불한당 크루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했을 때도 꽤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키비 씨의 권유로 참여하게 됐다던데.
저: 키비 형은 지금도 저랑 제일 가까운 사람이에요. 음악적인 것뿐만 아니라, 제가 혼자 음반을 만들면서 힘든 게 많은데, 키비 형은 소울컴퍼니를 운영하면서 쌓인 경험도 있어서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아요. 이번 CD 프레싱도 마찬가지고, 제가 물어볼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키비 형이 그런 걸 선뜻 잘 도와줘서, 지금까지 잘 할 수 있었죠. 불한당 크루 앨범도 키비형에 참여를 권해서 하게 됐고요.
리: 믹스테잎도 비슷한 시기였지 않나요?
저: 믹스테잎이 그 전인데,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그래도 반응이 괜찮아서, 불한당 컴필레이션 때도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자세한 얘기는 잘 모르겠지만요. (웃음)
리: 믹스테잎 반응이 상당히 좋았던 걸로 기억해요.
저: 그 전에도 믹스테잎이 한 장 있었어요. 그런데 큰 반응이 없었죠. 그때 느낀 게, 무반응도 피드백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막상 냈을 때 피드백을 받아야 발전을 할 텐데, 저한텐 무반응이 굉장히 큰 피드백이었어요. 그래서 다음 믹스테잎을 자연스럽게 준비하게 됐죠. 그 믹스테잎을 준비할 땐 제가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어요. 정말 폐인처럼 살았거든요. 아침에 일어나면 맥주를 먹고 나가요. 작업실에 가서 또 맥주를 먹고, 가사 쓰고 녹음 하고 졸리면 자고요. 매일같이 이걸 반복하는 거예요. 술 먹고 담배 피는 것밖에 안 했었어요. 그러다 중간쯤 타이밍에 커먼 콜드가 시작이 돼서, 다시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왔다가, 커먼 콜드가 무산되고 믹스테잎을 완성했죠.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마이크 앞에 섰을 때 두려움이 너무 컸어요. 그래서 술을 맨날 먹은 거죠. 거기에라도 의지해서 뱉고 싶어서요. 그런데 녹음을 끝내고 나서, 술을 끊고 들었는데 너무 구린 거에요. 다 지워버리고, 5개월 동안 재녹음을 했어요. 그때는 술을 먹지 않고, 완성했죠. 그런데 제가 공개하려는 타이밍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어요. 그래서 더 지연이 됐고, 이런 저런 일들로 작업 기간이 되게 길어졌던 것 같아요.
리: 이번 앨범 얘기를 해보죠. 커버 아트도 직접 작업한 거죠?
저: 일러스트레이션은 제가 한 거고, 포토그래프는 저번 믹스테잎 때도 도와준 강형일 작가가 찍어준 거고요. 제가 이걸 핸드폰으로 작업한 다음, 다시 컴퓨터로 옮겨서 완성했어요.
리: 그렇게 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저: 제가 사는 이 시대는 핸드폰으로 모든 게 끝나는 세상이잖아요? 그 에너지를 담고 싶었어요. 처음에 커버가 나갔을 때, 저 이모지는 빼고 나가겠지 하는 반응도 당연히 예상했고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예술은 그 시대성이 있어야 돼요. 지금으로부터 몇 년만 지나도, 아 그때 이모지를 썼었지 하는 얘기를 할 거예요. 거기서도 고민을 했던 게,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 아이폰 이모지인데, 저는 갤럭시거든요. 내 정체성을 담을까, 보편적인 세상을 담을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웃음) 그러다가 아무래도 제가 쓰는 갤럭시를 선택했죠. (웃음)
리: 이 외에도 앨범 작업의 전반적인 부분을 혼자 담당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저: 다 처음이라 전부 어려웠어요. 로엔(Loen)에서 유통을 맡았는데, 지금도 죄송한 게 너무 많아요. 계속해서 오류가 생겼거든요. 다 처음이니까요. CD 찍는 걸 비롯해서 인쇄소라든가 알판 필름 같은 단어를 태어나서 처음 듣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물어봐야 했어요. 다음에 또 같이 하게 되면 이제 정말 잘 할 수 있어요. (웃음) 정말 모든 부분이 다 어려웠어요. 믹싱, 마스터링도 소리헤다 형이랑 같이 해본 적이 있지만, 그땐 제가 홈 레코딩을 해서 가져간 케이스였고, 이번엔 스튜디오에서 모든 걸 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굉장히 많았죠.
리: 뮤직비디오를 차차 만들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구상된 게 있나요?
저: 계획이 머릿속엔 있지만, 단독공연이 먼저에요. 콘서트를 마치고 나서 차차 생각 할 것 같아요. 지금 머릿속에 그림은 되게 많은데, 촬영 팀을 구한다던가, 예산적인 문제나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뮤직비디오를 찍을 거다 정도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리: 그럼 공연은 언제쯤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저: 당장 언제쯤일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되도록 빨리 할 거예요. 모든 걸 혼자 하다 보니 지금은 CD에 묶여있는 상황이고, 프레싱이 마무리 돼야 다음 준비를 할 수 있겠죠. 지금 저는 순차적으로 눈 앞에 있는 일을 먼저 끝내고, 다음 일로 넘어가는 식이에요.
리: 앨범 활동 자체를 상당히 길게 할 거라고 들었어요.
저: 사실 지금 음악 시장에선 싱글만 내고 활동하는 게 이득이라는 걸 저도 알고 있어요. 물론 이제 언더그라운드 씬이 없다곤 하지만, 저는 계속 언더그라운드 마인드 셋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그냥 저의 길을 갈 거예요. 사실 이게 맞는 건데, 아무도 안 하고 있다는 느낌이거든요. 다만, 말씀한대로 길게 활동할 거기 때문에 아직 섣불리 앨범이 잘 됐는지, 안 됐는지 판단할 수가 없어요. 근데 만약 엄청나게 망해서 제가 패배감을 맛 본 다면, 자연스럽게 돌아설 것 같아요. 이런 거 만들어도 너희가 안 들어 주잖아? 그냥 나도 싱글 내고 뮤직비디오 찍을래. 이런 느낌이요. 주변에서 그렇게 돌아서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근데 저도 그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미워할 순 없어요. 너무 이해가 되거든요. 제 주변에서도 그런 일들을 이미 겪어서 알면서도, 일부로 말을 안 해준 형들한테 고마움이 있어요. 저는 어차피 앨범을 만들 건데, 주변에서 요즘 앨범을 누가 듣냐고 얘기하면 멀리하고 싶거든요. 좋은 에너지가 안 되니까요. 앨범을 내고 나서, 주변 형들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사실, 말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요. 그게 고마웠어요. 그리고 또 앨범을 만든 이유는, 저는 제가 듣고 싶은 걸 만들고 싶거든요. 가벼운 말 같지만, 저한텐 되게 강한 철학이에요.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어요. 저는 음악을 앨범 단위로 밖에 안 들어요. 그 이외의 것을 들을 때 큰 감동을 받지도 않고요.
리: 앨범 내에서 여러 스킷이나 스탠딩 코메디 같은 다양한 장치를 많이 사용했잖아요? 거기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어요.
저: 제가 앨범을 만들기 시작한 게 2년 전이었는데, 그때부터 계획이 다 있었어요. [노원 (No One)] 싱글을 냈을 때도 중의적인 의미인데, 'This fuckin' headache'로 시작을 하거든요. 이 전에 사고가 나는 트랙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싱글로만 들었을 때는 그냥 머리가 아픈가 보다 싶어도 앨범으로 이어졌을 땐 다르게 들리거든요.
리: 자극적인 가사로 많이 논란됐어요. 특히, "씹새끼"란 곡이 그랬죠. 어느 정도 예상 한 바인가요?
저: 논란은 당연히 예상했지만, 제가 생각한 것보다 이상하게 마무리 된 것 같아요. 너무 단순한 거거든요. 과거의 나 자신에게 씹새끼라는데, 거기서 무슨 얘기가 더 나올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왜 자꾸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지. 과거의 얘기고, 내가 과거의 나에게 씹새끼라 하는 거고, 그러다 사고를 당했고요. 그 트랙 이후에는 어떤 곡에서도 똑같은 마인드 셋을 견지할 수가 없거든요. 절대로 다른 의도가 담겨있지 않아요. 그런데 자꾸 그런 방식으로 흘러갔고, 힙플라디오에서 이야기한 이후론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아직도 욕하는 사람들은 그냥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떤 말을 해도, 지금 하고 있는 이 인터뷰가 나가도 어떤 단어에 집중돼서 내 생각이 또 왜곡될 거다. 그래서 이제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 있는, 그 스토리를 아는 친구들은 당연히 “맞아, 너 이런 일 겪었었지?” 이런 반응이었거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노래를 듣지 않고 그 소문만 접한 친구들한텐 이상한 연락이 오더라고요. 왜 네가 일진이고, 양아치냐고. 걔들이 노래를 들으면 다 납득을 하는데, 소문만 들었을 땐 이상한 거죠. “뭐? 네가 누구를 팼다고?” 얘기가 많이 와전된 게 너무 이상해요. 그 가사 속에는 ‘널 건드렸지/신지 말랬잖아 비싼 신발은”이라는 부분 빼고는 어떤 직접적인 언급도 없어요. 제가 무슨 사람을 피떡이 되게 팼다던가 하는 언급이 전혀 없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기정 사실이 돼 버린 거예요. 그냥 아까 했던 첫 번째 얘기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과거의 나는 씹새끼였고, 그 씹새끼의 마인드 셋으로 얘기를 하고, 그게 결국 잘못됐기 때문에 사고가 난 거죠. 그리고 힙합이 나를 구원해서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그런 앨범이에요.
리: 반응을 보면, 곡 중 묘사된 법정 씬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 같아요. 가해자로서,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입장에 대해서요.
저: 힙플 라디오에서 제가 분명 그렇게 얘기했어요. 표현이 마땅하지 않아서 가해자라는 단어를 쓰겠다고요. 제가 사실 쓰고 싶던 단어는 씹새끼였어요. 그런데 제가 계속해서 씹새끼 거릴 수 없기 때문에 (웃음) 그냥 가해자라는 표현을 빌린 거거든요. 다시 그 표현들을 씹새끼로 치환하면 말이 돼요. 씹새끼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거고, 씹새끼이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뱉은 거고요. 씹새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사고가 난 거에요. 법정 같은 경우도, 어찌 보면 그리 큰 얘기가 아니에요. 저도 당시엔 키 작은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는데, 그런 일에 엮인 거죠. 그런데 그 장면 자체를 다큐멘터리 식으로 담았다면, 이 곡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을 거예요. 제가 이 얘기까지 해도 되는 지 모르겠는데, 판사가 그랬어요. 지금 애들끼리 장난친 것 갖고 어른들이 와서 무슨 지랄들을 하는 거냐고요. 그 정도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엄청난 일이 터진 건 아니거든요. 애들끼리 장난치고 투덕거린 건데, 우리가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그런 시선이었어요. 물론, 그것도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이젠 다른 모든 사람들의 시선으로 볼 수 있잖아요? 그땐 중학생의 어린 마음으로 생각했던 거죠. 그 가사의 생각을 지금 제가 품고 있으면, 일상 생활을 할 수가 없죠. (전원 웃음) 한국에서 누가 저를 만나주겠어요. 완전 미친놈이죠. 그 곡에 나와있는 전황은 전부 사실이 맞아요. 하지만 제가 그런 곡을 만들고자 하는 모티베이션이 일어났는데, 거기서 중간중간 이건 별거 아니었다는 식의 표현을 할 수는 없었어요. 어쨌든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이 있으니까요. 사실 이것들은 전부 한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중학생 시절, 2005년부터 시작해서 스무 살 초반까지 제가 겪은 모든 일을 복합적으로 훑은 거죠. 그 안에서도 저 나름대로, '난 씹새끼지만, 구원한다.'라고 썼어요.
리: 힙플라디오에서 이 부분에 관해 해명했지만, 반응을 보면,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저: 라디오에서도 얘기를 했는데, 원래 그 곡은 거기서 끝나는 거였어요. 구원하지로 끝나고 힙합 파트로 넘어가는 거였는데, 한 단락을 더 끌어서 사고가 나는 걸로 바꾼 거에요. 그런데 라디오에선, 그게 생방송까진 아니더라도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제가 빨리빨리 대답을 해야 하잖아요? 넉살 형도 유머러스하게 진행하려다 보니 몇 군이었냐고 장난도 치고요. 사실 그 정도로 장난스럽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방송이니 그렇게 진행이 됐던 거에요. 하지만 이 인터뷰 이후에도, 어차피 그런 시선들이 없어지진 않을 것 같거든요. 제가 신경 쓰는 게 저한테 안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 음악으로 보여줘야죠. (웃음)
리: 반응을 보면서 답답했던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 저는 이렇게 많은 피드백을 받은 게 처음이에요. 이런 반응에 함께 안타까워해 주는 분들도 있는데, 해결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잖아요? 사실상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이젠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멈추는 시기에 접어든 것 같아요. 분노가 많이 멎었어요. 저도 컨셔스 힙합의 영향인지 제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미숙한 탓도 당연히 있겠지만, 이번 앨범을 하면서 느낀 게 많죠. 다음에 발매할 앨범은 굉장히 편안하게 작업하고 있어요. 가사가 이렇게 빨리 나온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술술 나오기도 하고요.
리: 한영 혼용에 관련해서도 제법 피드백이 있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한 생각도 궁금해요.
저: 사람에 따라서 그 기준이 다 다르니까,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겠죠. 그런데 저는 한영 혼용을 절대로, 단 한 개도 쓸데없이 쓰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Doppelganger”의 가사 중 '업보에 대한 내 가설 좀 정리하구/The babies will be sprayed in their fuckin' daughters/걔네 딸이 홍대 오면'이라는 라인이 있어요. 그 전에 'You don't know my sperm's worth'라는 가사가 나오고요. 이 뜻이 뭐냐 하면, 새벽에 전화한 여자한테 '넌 내 정자의 가치를 모른다.'라고 얘기하는 거거든요. 제가 이 표현을 하고 싶은데, 한국말로 쓸 수가 없어요. “씹새끼(Motherfucker Part 2)”의 경우엔 그 문제가 정말 많았어요. 그래도 이 트랙에서 한국말을 많이 채워 넣은 이유는, 이런 표현들을 쓸 수 있는 세상을 바라거든요. 그래서 “씹새끼(Motherfucker Part 2)”같은 곡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거에요. 힙합을 원래 듣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가사를 쓰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갱스터에 관련된 비유를 할 때 스쿨보이 큐(Schoolboy Q)에 관한 가사를 넣었다가 이건 대중이 잘 모르니까 투팍(2Pac)으로 바꿔야지. 이러는 순간 그게 제 기준에 웩(Wack)이거든요. 제 단어들을 그대로 쓰고 싶어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게 생기면 표현을 하는 거에요. 한영 혼용에 대해서도, 이걸 듣고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겠지만, 그걸 신경 쓸 생각은 없어요. 그리고 제가 2년 반 동안 가사 수정을 정말 많이 했기 때문에 빠진 부분은 없어요. 전부 필요에 의해 들어간 가사에요.
리: 본인에 대한 피드백은 많이 찾아보는 편이에요?
저: 힙플라디오 때까지만 해도, 하루 한 번씩 구글링을 했어요. 제 피드백이 너무 없으니까 매일같이 찾아본 거예요. 그런데 힙플라디오 이후에 아직도 저를 욕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고 끊었어요. 너무 화가 많이 나서요. 말이 안 통한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안 그래도 제가 정신건강학과를 다니면서 약을 먹고 있는데, 이게 치료가 될 수 있긴 한가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얘기하자면 불편한 게 많은 것 같아요. 힙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해를 못 해주겠지만, 저는 그래도 힙합적인 커리어에서 좋은 쪽에 서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정의롭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처음엔 많이 들었어요.
리: 이런 이야기들을 앨범으로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 처음엔 앨범의 가제가 'Dead Father'였어요. 디프라이(Deepfry) 형을 만나서 비트들을 고르고, 같이 얘기하면서 “Welcome to My Home”을 가장 먼저 작업했는데, 그 곡에 “Motherfucker”의 가사를 썼었어요. 그게 첫 시작이에요. 이 시대의 아버지, 어머니들과 갭이 저한테 가장 중요한 동기였던 것 같아요. 가사에 써 있는 대로, 저는 나름대로 컨셔스 힙합을 하면서 떳떳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살고 있지만, 집에 들어오면 엄마는 이해할 수 없잖아요? 그것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죠. 대화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거든요. 그럴 바엔 엄마한테 들려주고 싶은 예술을 만들자는 게 앨범의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이후에 “노원(No One)”이라는 곡도 나온 거고요. “씹새끼(Motherfucker Part 2)” 같은 경우는 제가 예전부터 언젠가 내 실력이 될 때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늘 품고 있던 곡이에요. “아뜰리에(Atelier)”도 당시에 가사를 썼었고요. 이런 트랙들을 놓고, 제목이 [Dead Father]에서 [Homes]로 바뀌게 됐어요. 유년기에서 떠나 집들에 관해 얘기하게 된 거죠. 정확하게 정리를 하자면, 첫 번째 집은 진짜 집이에요. 그리고 친구들의 집, 힙합, 스튜디오가 각각 집이 되는 거고요. 네 개의 집을 통해 이야기를 확장시킨 거죠.
리: 타이틀곡이 원래 “Sell The Soul”이 아닌 다른 트랙이었다던데, 어떤 트랙이었어요?
저: 원래는 “씹새끼(Motherfucker Part 2)였어요. 그리고 “Motherfucker”. 하나를 정한 건 아니었는데, 둘 중에서 얘기를 해보자고 했었죠. 어차피 안 될 걸 알고 있었어요. (웃음) 당연히 안 되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가장 듣기 편한 “Sell The Soul”을 타이틀로 한 거예요. 제가 원래 정적인 음악을 좋아해요. 어렸을 때는 EDM을 들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IDM이나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데, “Sell The Soul”은 제일 댄서블하거든요. 그게 제일 힙합이라고 생각했어요. 정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제 정체성과는 상관없이, 힙합은 댄서블 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이틀로 설정한 거죠.
리: 디프라이 씨와 작업하게 된 계기도 궁굼합니다.
저: 수다쟁이 형의 [북가좌동] 앨범에 제가 피처링을 했거든요. 그때 스튜디오에서 만났어요. 얘기를 하다 보니까 좋아하는 음악이 너무 비슷한 거에요. 특히, 한국에서 소울 샘플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이가 어린 사람을 찾기 힘들었거든요. 그 와중에 디프라이 형을 만나게 된 거고, 형이 [Madvillain] 같은 앨범을 언제 한번 내자고 얘기했어요. 저는 너무 좋아서 당장 하겠다고 했고요. 그래서 앨범이 시작된 거예요.
리: 본인도 프로듀싱을 하잖아요?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는 많이 참여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저: 사실은 진짜 많이 했어요. 거의 디프라이 형한테 비트를 사 와서 이 앨범을 만든 정도라 할 수 있어요. 표기를 할 때도 전곡 프로듀싱에 참여했다고 하는 게 사실 애매했어요. 편곡으로 들어가는 게 정황상 맞으니까요. 그런데 사실상 거의 작곡이라고 할 정도의 양을 소화했거든요. 간단한 예를 들면, “Doppelganger”의 경우 샘플에 브레이크 비트 정도가 끝인 곡을 제가 받아서 하우스 신스를 연주하고, 스트링과 베이스를 연주하고, 트랩 하이햇을 찍고, 샘플을 재가공하는 과정을 거쳐서 완성한 거예요. 이런 게 앨범 전체에 들어간 거죠. “씹새끼(Motherfucker Part 2)”를 제외하곤 거의 뼈대를 제공받은 거였어요. 처음엔 제가 프로듀싱한 결과물이 별로 없으니까 형도 확신이 들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래도 나중엔 잘 진행이 됐죠.
리: 그럼 앞으로는 본인의 음악을 직접 프로듀싱할 계획인가요?
저: 제가 만들고 싶은 음악이 생겼는데, 구현할 능력이 되면 만들 거예요. 하지만 예를 들어 제가 퓨쳐 베이스를 하고 싶어졌다 치면 만들 줄 모르거든요. 장르에 대한 이해도도 적고요. 그럴 경우엔 이번 앨범을 작업한 방식과 똑같이 할 것 같아요.
리: 앨범의 마지막 트랙에서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를 메인 소스로 사용했는데, 어떤 의도로 작업한 건가요? 이거 궁금해 한 힙합 팬도 정말 많았어요.
저: 조금 길게 얘기할게요. (웃음) 앨범을 다 완성했을 때 원래 마지막엔 부정적인 벌스가 가녹음 되어 있었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앨범의 마지막 그림이었고요. 막상 그 전 트랙인 “아뜰리에”까지 마무리되고 나니까 이게 부정적인 무드로 끝나는 게 싫더라고요. 제가 이 부정적인 스토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에너지는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무드를 바꿔서 긍정적인 벌스를 꾸역꾸역 써서 가녹음을 다시 했어요. 이번엔 앨범이 쭉 잘 가다가 너무 갑자기 뒤집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도저히 마무리를 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던말릭(Don Malik)이랑 아는 프로듀서 동생이랑 카페에서 이 얘기를 했어요. 그때 프로듀서 동생이 루이스 씨 케이(Louis C.K.) 얘기를 꺼냈어요. 형이 그 사람을 예술적으로 존경하니까 그 샘플들 중에서 형이 원하는 중의적인 마무리를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고요. 사실 그땐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루이스 씨 케이의 쇼 중 하나를 제 앨범의 비트와 함께 틀어봤는데, 느낌이 너무 묘한 거에요. 스탠딩 코미디에 인스투르멘탈을 깔아서 들어본 것 자체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리고 루이스 씨 케이의 유튜브(Youtube) 계정에서 본, 2008년에 어느 소극장에서 했던 쇼가 떠올랐어요. 그 첫 대사가 기억이 난 거예요. “I fucked your mother”라고 시작하는데, 너무 충격을 받았었거든요. 이런 충격을 선사하고 싶은 욕심이 “씹새끼(Motherfucker Part 2)” 같은 곡의 맥락이기도 하고요. 그 맥락이 맞아떨어지면서 해당 쇼를 써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제가 소름이 돋았던 부분이 하나 더 있는데, 그 쇼를 보면 테러리스트들을 피해자라고 얘기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 두 부분만 처음에 기억이 났어요. 그래서 찾아 보니까 아직 그 영상이 있고, 맥락이 잘 맞아떨어지더라고요. 그렇게 앨범 전체의 맥락들을 코미디화 시킨 거죠. 마지막에 “JUSTHIS ain't free”라는 부분은 사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rmar)의 샘플이에요. 이게 중의적인 건데, 두 가지 발음으로 읽히면서 어떤 방향으로든 해석할 수 있어요. “저스디스는 공짜가 아니니까 돈을 내놔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정의는 공짜가 아니니 값을 치러라.”라고 볼 수도 있는 거죠.
리: 중의적인 표현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많이 쓰기도 했지만요.
저: 저는 그런 걸 제일 좋아해요. 제가 힙합을 들으면서 가장 큰 쾌감을 느끼는 게 고유명사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해서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한 가사를 들을 때거든요. 예전 믹스테잎 때도 이런 것들이 정말 많았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마이노스(Minos) 형이 이런 걸 진짜 많이 하고요.
리: 본인의 정체성을 컨셔스 힙합으로 확립하고 있는데, 주로 어떤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받았나요? 처음엔 아까 말씀한대로 블랙스타의 영향이 컸던 것 같고….
저: 일단 당연히 소울쿼리안스(Soulquarians) 멤버들 전부 다, 네오 소울(Neo Soul) 전성기에 있던 사람들에겐 전부 영향을 받았고요, 그 외에는 LA의 블루(Blu)요. 블루 같은 경우엔 제가 앨범 인스트루멘탈을 다 받아서 블루의 랩을 똑같이 다 했어요. 그 다음 트랙을 교차해서 듣고 다녔고요. 그 정도로 탐이 났던 이유는, 블루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자기 TOP 5 MC중에 아이스 큐브(Ice Cube)가 있다고. 본인도 체구가 작고 랩에 힘이 없는 편인데, 아이스 큐브는 그걸 발음으로 커버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인터뷰를 보면서 동양인들이 모두 갖고 있는 콤플렉스라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든 후에 블루의 모든 랩을 카피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엠에프 둠(MF Doom)은 어떻게 보면 장난스럽지만, 그 문화권에 있어야 정확히 알 수 있는 고유명사들로 워드플레이를 하는 모습이 멋있었죠. 오드 퓨쳐(Odd Future)의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도 좋아해요. (리: 그럼 이번 내한 공연은 갔다 왔나요?) 아뇨. 저는 솔직히 2집은 즐겨 듣는 편이 아니라서요. 거의 2집 위주로 공연할 것 같고, 러닝타임도 짧아서 가진 않았어요. 또 최근에 좋아하는 사람들은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나 맥 밀러(Mac Miller) 등등. 얼터너티브 안에도 컨셔스함이 내재돼 있는 아티스트들을 많이 들어요. 여기까진 영향 받은 뮤지션을 물어봐서 빅 네임들을 얘기한 거고, 그냥 혼자 즐겨 듣는 아티스트는 애드 투(Add-2)라고 있어요. 아마 애티튜드(attitude)를 그렇게 읽은 게 아닌가 싶은데, 엄청 키가 작은 컨셔스 래퍼에요. (리: 나인스 원더의 레이블에 있는.) 네. 그리고 케이플레이(K.Flay)라는 여자 래퍼가 있는데, 정말 백인스러운 음악이에요. 락 음악 샘플링하고. 이 사람도 완전 인디펜던트로 혼자서 다 하거든요. 공연을 보면 되게 너드(Nerd)같이 생겼는데, MPC를 하나 들고 나와서 마이크 켜서 녹음하고, 즉석에서 비트를 만들어요. 저는 그런 류의 공연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켄드릭 라마의 공연을 보면 너무 압도당하기도 하고, 저렇게 까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실 안 들어요. 저는 이런 게 좋아요. 맥 밀러가 무대에서 술에 취해서 가사 다 까먹고, “좆까, 나스가 나보고 짱이랬어!” 이러고. (웃음) DJ가 랩을 다 하고 그걸로 퍼포먼스 하고 그러잖아요. 그런 사람들한테 영향을 많이 받아요. 저한테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고 싶은 욕구가 있죠.
리: 아이러니하게도 켄드릭 라마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얘기가 많이 있었잖아요.
저: 저는 이런 피드백까지 봤어요. 켄드릭 앨범을 들은 게 뻔한데 안 들은 척 하는 게 별로라고. 저는 그 말이 참 별로였어요. (웃음) 제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굳이 그런 거짓말을 하겠어요?
리: 앨범에 한국힙합 씬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들어가 있는데, 여러 불만이 느껴졌습니다. 본인이 느끼는 한국힙합의 문제점을 말해줄 수 있나요?
저: 당연히 [쇼미더머니]죠. 얘기를 해야 한다면요. 그 외에는 제가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고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제가 그 입장에 몰입해서까지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싶지도 않고요. (웃음) 여전히 부정적이죠. 그런데 이제 그걸 대하는 태도에서 온화해진 부분이 있다면, 사람들을 잃게 되잖아요. 어쩔 수 없이 주변 사람들이 다 나가게 되고요. 제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음악적인 방향을 달리 한다 해서 그 사람까지 싫어지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다른 방향으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나요? 저는 잘 모르겠거든요. [쇼미더머니]도 사실상 쉬운 출구가 아닌 게, 저한테도 참여 제의가 많이 왔거든요. 이게 일정 부분까지는 일단 붙여 주겠다는 맥락이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일반 참가자들은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죠. 그냥 허수아비가 되는 거죠.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러면 저는 당연히 좋아할 거에요. 제 세 번째 집이 힙합이었잖아요? 이 힙합이라는 집으로 들어오면서 제가 좋아하는 컨셔스 힙합들을 차핑(Chopping)해서 인트로를 만들고 그런 바이브로 진행을 하려고 하는 거에요. 그런데 “Veni, Vidi, Bitch”나 “Sell The Soul”이 의미하는 건 들어와 보니 전부 다 영혼을 팔았더라. 그래서 스튜디오에 혼자 앉아 노래를 부르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걸로 이미 표현은 다 했다고 봐요. “Doppelganger”의 첫 벌스 같은 경우엔 정말 모두 까기였잖아요? 형들을 얘기하고, 동년배를 얘기하고, 동생들을 얘기하고 나면 이제 아무도 없으니까요. 시스템을 같이 바꾸자던 사람들이 다 TV에 나가 있으니까 정말 빡 치는 거에요. 저한테 힙합을 알려줬던 사람들도 다 생각나고요. 그런데 그런 것도 다 “Doppelganger”를 만들 때의 과정이고, 그 사람들의 사연을 들었을 때 이해가 안 되진 않더라고요. 당장 집안에 큰 일이 생긴다던가 하면, 저도 제일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길을 찾을 테니까요.
리: 그러면 이제 [쇼미더머니]에 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선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없어진 건가요?
저: 그래도 50%이상은 부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이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만일 우리가 다 거기 안 나갔으면? 정말 ‘우리’라는 단어를 쓸 수 있었다면 방송은 진행 되지 못했을 거거든요. 만약 진행되더라도 진짜 신인들이 나와서 어떤 그림을 만들고, 우리는 그 그림이랑 상관 없어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전엔 제가 어렸고 씬에 들어와 있지 않아서 그렇게 보인 건지 모르겠는데,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씬이 확실히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었고요. 그런데 그 냄새를 [쇼미더머니]가 터뜨린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아쉽죠. 전부 나가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지금도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면 진짜 다 멋없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고 엠씨면 음악을 만들어야지, 다 방송 나가느라 너무 바쁘잖아요. 떨어지는 순간 싱글 준비해서 바로 내고, 다 갑자기 소속사 잡히고요. 소속사가 잡히고 난 뒤에도 앨범은 안 내고 병신 같은 것만 하잖아요. 납득이 안 돼요. 정말 자기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먼저 돈을 벌고 그 다음 힙합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돈만 계속 버는 거니까요. (웃음) 아직은 참가자들 중에서 납득할 수 있는 그림이 안 나온 것 같아요.
리: 앨범이 개인사와 힙합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그것을 넘어서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회 전반에 관한 이야기 역시 드러낸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회와 이른바 말하는 헬조선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저: 저는 사실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런 라이프스타일과는 멀어진 지 너무 오래됐어요. 주변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다들 평범한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서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 제가 무슨 말을 해도, 그다지 설득력이 있진 않을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너무 동떨어져서 살다 보니까,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느낌이 되게 커졌어요. 불편함이 배가 되는 거죠.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힙합에 관해 아예 모르는 사람과 몇 시간 동안 얘기를 해야 한다 치면 제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막 하거든요. 어떻게 저런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살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 경우에는 의도적인 부분은 아니지만, 정말 매일같이 가사를 써요. 그렇게 매일 겪은 것들을 가사로 풀어내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왔을 때 뭔가 터지죠. 아저씨 아줌마들이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편견 아닌 편견들이 있잖아요? 힙합을 통해서 더 좋다고 생각되는 라이프스타일을 찾았지만, 여전히 한국이기 때문에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죠. 그래서 거기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리: 이후의 활동 계획이 궁금해요.
저: 정규 앨범을 다시 구상하고 있고, 힙플라디오 이후에만 4곡 정도를 만들었어요. 지금 에너지가 굉장히 꽉 찬 상태여서 곡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그리고 팀으로 앨범을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그 분과 앨범을 공개할 지 상의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자세히는 말씀 드리기 힘들 것 같아요. 어쨌든 래퍼 한 분과 앨범을 준비하고 있고, 둘 다 기약은 없지만, 그래도 팀 앨범이 먼저 나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팀이다 보니까 벌스에 대한 부담이 적기도 하고요. 사실 이번 앨범의 믹싱을 맡겨 놓은 동안 전혀 다른 앨범을 또 준비하고 있었는데, 앨범이 발매되고 나니 지금의 상태를 지속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접었어요.
리: 앞으로도 소속사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계획인가요?
저: 네. 회사들이랑은 당연히 얘기를 많이 해봤어요. 그런데 저는 아쉬울 게 없더라고요. 돈을 정말 많이 벌고 싶은 것도 아니고, 제 생활비를 벌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으면 되거든요. 여기서 좀 더 여유가 생기면, 더 좋은 음악을 하고요. 이런 단순한 삶을 원하는 사람이고, 회사들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관점이 다른 걸 느꼈어요. 회사에선 돈을 중심으로 얘기하고, 저는 음악적으로 어떤 걸 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거든요. 그렇다 보니 여태까지는 잘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몇 년씩 되는 계약 기간이라는 걸 막상 마주했을 때 쉽게 판단할 수가 없더라고요.
리: 최근엔 비프리(B-Free) 씨의 새로운 레이블에 합류한다는 소문도 있었어요.
저: 프리 형이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상황에 같이 찍은 사진이 올라가니까 그런 얘기가 도는 것 같아요. 제가 최근에 프리 형 앨범에 곡 하나를 같이 했어요. 그렇게 만나고 나서 프리 형이 괜찮게 생각해 준 것 같더라고요. 그 이후로 동네도 가까워서 지나가다가 “뭐해? 볼래?”해서 만나는 정도였어요.
리: 하이라이트(Hi-Lite)와는 원래 교류가 많은 편이었죠? UMF 공연을 함께하기도 하고요.
저: 아무래도 제가 제일 리스펙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어요. 너무 좋은 사람들이고, 잘 맞기도 하고요. 또 자주 불러 주고요. (웃음) UMF에도 팔로알토(Paloalto) 형이 화지 형을 부르듯 저도 부른 건데, 화지 형은 회사가 있어서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은 거예요. 제가 회사가 없어서 자꾸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누구랑 다니는 게 보이면 그 회사에 들어간다고. (전원 웃음)
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저: 지금 앨범의 디럭스 에디션을 준비하고 있어요. 리믹스 트랙들이 들어가고, 새로운 피처링도 있을 거예요. 아직 확정되지 않은 뮤지션들이 있어서 확실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요. 그리고 응원해주는 사람들 너무 감사하고, 이번 앨범 만드는 데 도움 준 사람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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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blu 말하는것 같네요.. 구보(9 v o) 구보(9 v o) (2017-12-17 20:05:43 / 114.203.225.**)추천 0 | 비추 2 la의 블루가 지금의 메킷레인의 블루를 말하는건가요..? 철자를 blu라고 해놓으셔서 헷갈리네 ..내가 아는 그 bloo인지 아님 다른사람인 blu 인지 신숭털 신숭털 (2016-07-24 20:34:03 / 121.130.227.**)추천 7 | 비추 0 리스펙!! R.E.S.P.E.C.T GeorgeBenson GeorgeBenson (2016-07-23 17:52:23 / 210.217.59.***)추천 3 | 비추 12 애가 아직 어리네 miNs miNs (2016-07-23 15:48:57 / 175.214.96.***)추천 8 | 비추 3 감히 빈지노의 예술성과 이센스의 영혼의 담금질이 적절히 섞인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박한웅 박한웅 (2016-07-23 08:18:45 / 182.224.146.***)추천 3 | 비추 0 작가주의 새앨범 잘 듣고있습니다 인터뷰를 보고 더 리스펙 드리게되네요 너무 멋지십니다^^ 장고라 장고라 (2016-07-23 00:03:43 / 121.183.241.**)추천 7 | 비추 0 이번 앨범으로 완전 팬이 된 사람입니다 인터뷰도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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