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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지 아이비 - 그 뜨겁고 강렬한 예술적 충동의 기록! 리드머 작성 | 2010-10-30 05:08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32 | 스크랩스크랩 | 33,518 View 확대보기
각나그네, 슈퍼맨 아이비, 자즈, 재지 아이비... 많은 닉네임만큼이나 재지 아이비는 음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활동을 벌이고 있는 뮤지션이다. 그는 MC이고 프로듀서이자, 세계적인 비보이(B-Boy) 크루 리버스 크루의 멤버이며, 전설적인 힙합 집단 유니버설 줄루 네이션(Zulu Nation)의 한국 대표이자, 세계를 돌며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힙합문화를 흡수하고 있는 열혈 힙합 여행자이다. 그리고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끊임없이 자신만의 힙합 세계를 구축해오던 그의 노력과 애정은 이번에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Illvibrative Motif]에서 드디어 뜨겁게 꽃을 피웠다. 여기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신예 프로듀서 비니셔스(Vinicius)와 함께 '영혼의 진동과 원초적 영감의 정수를 뿜어준' 재지 아이비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진동의 기록을 옮겨본다.
리드머(이하’리’): 일단 이름부터 정리하고 가죠. 각나그네에서 슈퍼맨 아이비(Superman IVY), 재지 아이비(Jazzy IVY), 자즈(JAZ)를 거쳐서 다시 재지 아이비로 돌아왔어요. 이 이름을 전부 다 사용하는 건가요? 이를테면, 음반의 컨셉트에 따라 바꾼다든지….
재지아이비(이하’아이비’): 그때그때 제가 받은 감흥이라든지 감성들에 따른 저의 자아(Ego)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은 제가 느끼는 대로 가고 있는 거구요. 각나그네나 슈퍼맨 아이비 때는 그때만의 감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름마다 다 사연이 있었던 거고요.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관리하고 있어요. 사람들의 눈치 보는 것을 초월해서요. 일단 재지 아이비와 자즈는 하나에요. 외국친구들은 자즈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이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저한테는 별개의 이름들이 아니에요. 이미 제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중인격처럼 분리할 수도 없어요. 어찌 보면, 여러 모습을 뿌려놓을 것일 수도 있는데, 저한테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묻어나가는 것 같아요. 지금은 재지 아이비구요.
리: 그간 음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활동을 많이 했지만, 풀렝스 앨범은 [그린투어(Green Tour)]이후로 4년 만에 발표한 건데,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어때요?
아이비: 새로워요. 그동안 제가 시대상황에 맞춰 반응하면서 음반을 내왔지만, 풀렝스 앨범을 낼 만큼 심적 여유가 없었거든요. 원래 제 머릿속 계획은 [Jazxploitation]이라는 앨범을 내는 거였어요. ‘블랙스플로테이션(blaxploitation)’이라는 문화를 스스로 디깅하고 남들이 발굴하지 못했던 데에서 저만의 것을 구현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아쉽게도 그 프로젝트가 지연되면서 그 사이에 새로운 것을 준비하게 되었죠.
리: 그러는 동안 느낀 점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아이비: 모든 것을 흐름에 맡기다 보니 통찰력을 가지고 넓게 보게 된 것 같아요. 당장 한두 곡이 급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건, 제가 예술을 추구하는 목적이나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성임을 느끼게 되었어요. 비보이(B-Boy)들과 호흡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더 많은 것을 보면서, 제 색감을 찾기 위해서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그동안 들어왔던 음반들, 느꼈던 모든 감성을 소화해서 제 것으로 끄집어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4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리: 아이비 씨는 리버스 크루의 멤버인데, 이렇게 MC가 비보이 크루의 정식 멤버로 활동하는 경우가 미국에도 있나요?
아이비: 솔직히 4대 요소를 다 담고 있는 이들은 락 스테디 크루(Rock Steady Crew)말고는 없어요. 어떻게 보면, 그래서 리버스 크루가 더 주목받은 건지도 몰라요. 저희 움직임이 ‘브랜드 뉴 올드스쿨 (Brand New Old School)’이었잖아요. 미국의 80년대에 있었던 올드스쿨 움직임을 우리나라에서 부활시켜서 다시 한번 역으로 수출하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죠. 그런 부분에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리: 실제로도 춤을 즐겨 춰요?
아이비: 어휴, 그럼요! (웃음)
리: 아! 그래서 예전에 춤 추다가 다쳤었죠?
아이비: 네. ‘서울 시티 락커스’ 때 다쳤어요. 가끔씩 파티 때나 비보이 잼 호스트 시작하기 전에 많이 춰요. 비보이들 긴장을 풀어주고 무대 분위기를 좀 달구기 위해서 그러거든요. 굳이 마이크를 들지 않아도 공간을 다 알고 이 무대를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다 알아야 하니까요. 이게 공연이 아니라서 구석에 있는 사람이랑 눈이 마주쳐도 어색하면 안되거든요. 이쪽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힙합답게 하는 거죠.
리: 음…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비보잉이 되는 MC는 라임어택 씨랑 재지 아이비 씨 둘이네요?
아이비: 아, 그렇게 되나요? (전원웃음) 근데 진짜 재미있는 건 전부 다 춤을 잘 추기 때문에 그 사이퍼에 뛰어 들어가서 춤추기가 무서울 거 아녜요? 물론, 랩 사이퍼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막상 거기에 뛰어들면, 비보이들이 응원해주고 좋아해줘요. 자기들이 좋아하는 걸 같이 해주니까요. 춤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는 것 같아요.
리: 그럼 비보이 크루 활동과 ‘서울 시티 락커스(Seoul City Rockers)’ 같은 문화적 활동들이 음악적인 색감의 완성을 위해 필요했던 건가요? 아니면, 그와는 별개로 음악 창작 외 활동에 대한 욕구였나요?
아이비: MC로 시작했지만, 언제나 모든 힙합의 요소가 좋았어요. 잘 알지는 못했지만, 요소들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만약 랩을 만나기 전에 스트리트 댄스를 먼저 만났다면, 지금 비보잉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비보잉이 랩만큼 좋기 때문에 그 매력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해요. 디제잉도 물론이고요. 각자 매력이 있는데 그 매력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여러 비보이 대회의 호스트를 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비보이 친구들도 철학이 정말 대단해요. 춤의 깊이와 춤에서 자기만의 ‘Flavor’를 찾기까지 시간, 그리고 춤 동작에 담긴 메시지들이 있어요. 그냥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예를 들면, 그들이 춤으로 표현하는 (총 쏘는 시늉을 하며) 총을 빵 쏘고 다시 밑으로 넣고 찌르는 동작들이 정말 실시간 힙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MC들이 사이퍼(Cypher)에서 프리스타일로 공수를 주고받는 것 같은 실시간의 매력을 느꼈다는 말씀이에요. 사실 이번 앨범이 지난 각나그네 때의 앨범과는 다른 점이 뭐냐 하면, 상당히 포괄적이라는 거에요. 옛날이 포잇(Poet) MC였다면, 지금은 문화를 이해하고 그 안의 요소들을 흡수하고 있다는 거죠. 비보이들과 활동이나 ‘서울 시티 락커스’도 그런 의미에서 하고 있는 거고요.
리: 국내에서는 힙합을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게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비: 저는 문화적인 접근이라기보다 그냥 삶으로 받아들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힙합은 그냥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설명해줄 필요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는 거죠. 그래서 힙합만큼 자연스럽고 매력적이고 자유스러운 게 없는 것 같아요. 근데 요즘 보면, 무서워요. 자꾸 공식화되는 형식이나 틀 안에서 ‘힙합은 이래야 한다. 이게 올바른 것이다.’라고만 말하기 바쁘니까요. 그렇게 규격화되는 부분에 대해 반문을 던지고 싶어요. 힙합은 시초부터 안전하지 않았고, 언제나 현실로부터 탈출구를 찾기 위한 행복추구의 공간이었잖아요. 그런데 그 공간까지 무엇으로 가두려 하다 보니 답답해지는 거에요. 그래서 그냥 삶으로 받아들이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싶은 거고요. 인식부터 바꿔야겠죠. 예를 들어 ‘오늘 힙합 연습해야지.’가 아니라, 힙합은 자고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거에요. 습관화하고 생활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알고 있는 게 중요해요.
리: ‘서울 시티 락커스’가 그것을 위한 활동의 일환이었죠.
아이비: 네. 그래서 큰 의의를 두고 있어요. 전 그때 보여드린 영상들을 통해서도 그 과정 속에서 당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그들이 했던 것들을 보고 현상화해서 우리가 받아들이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내야 하나를 무언으로 깨우쳐 주고픈 의도였어요. [와일드 스타일(Wild Style)]이 82년도에 나왔고, 뭐가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공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가슴으로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게 중요한 거죠.
리: 물론, 아이비 씨가 이러한 문화적인 접근을 음악적으로도 담아내려고 했던 시도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어요. 하지만, 아이비 씨를 비롯한 몇몇 미국 태생, 혹은 미국에서 생활을 오래했던 뮤지션들처럼 그들의 힙합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지 못한 국내 힙합팬들에게는 아이비 씨의 시도가 다소 접근하기 어렵고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거란 말이죠. 어떻게 생각해요?
아이비: 정말 좋은 지적을 해주셨는데요. 음… 굉장히 이질적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 틈새는 빨리 메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한 쪽의 노력이 아니라 서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외국에서 살면서 힙합문화를 직접 경험했던 친구들이 더 분발해줘야 한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남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했을뿐더러, 남들이 어울려보지 못한 사람들과도 어울려봤으니까요. 그런 공기를 마셨다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특권을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 보고 느낀 것들을 나눠주고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의 힙합문화를 겪고 접했던 친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한국엔 이런 게 없구나, 한국은 이래서 안되!’라는 태도를 가지면, ‘한국도 잘하고 있는데.’라고 자부심을 가진 우리나라 친구들이 ‘미국에서 온 쟤는 한국을 무시하네?’라고 생각하면서 등을 돌리게 된단 말이에요. 이게 바로 이해관계의 차이인 것 같아요. 그래서 외국을 다녀온 친구들이나 교포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 하고 손가락질 하더라도 그 친구들이 들고 있는 카드의 힘이 더 크거든요.
리: 일단 아이비 씨는 미국의 힙합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한국에서도 온전한 힙합문화가 싹트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인 거네요?
아이비: 어쨌든 힙합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미국문화에 기반을 두고 미국감성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이해하는 친구들이 더 잘할 수 밖에 없거든요. 그러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마음을 열고 ‘쟤는 왜 흑인인 척을 할까?’하는 생각보다는 ‘한국사람이지만, 저 친구가 어떻게 저런 감성이 발달되었을까?’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서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게 큰 숙제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전 타이거 JK형이 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걸 많은 분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교포로 한국에 건너와서 한국힙합 씬에 10년 넘게 몸담고 있는데다가 한국말 랩도 하시잖아요. 그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에요. 대개 교포 같은 경우는 ‘여기서는 힙합 라이프스타일이 불가능해!’라면서 떠날 수도 있는데, 아직까지도 형이 하는 걸 보면 저도 굉장한 자극을 받거든요.
리: 메워야 할 간극이 많다고 느낀 사례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좀 듣고 싶은데….
아이비: 저는 예전부터 서울에 대한 노래를 많이 만들었잖아요? 예를 들면, 진보랑 같이 했던 “Mind Body & Seoul”, 팔로알토랑 같이 했던 “Seoul Street”, 윤키 형이랑 같이 만든 “서어울” 같은. 자기가 사는 도시를 대표하고 이야기하는 건 힙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런 부분을 받아들이는 게 좀 다르더라고요. 심지어 옛날에 ‘각나그네는 서울 타령만 한다.’는 말도 있었어요. 이런 걸 보면, ‘한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게 아니고 오버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나…. 차라리 감성적인 랩을 해야 하는 건가?’하는 혼돈이 왔었어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게 자그마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굉장히 큰 거거든요. 그런 작은 부분도 옹골차게 채워나가려면, 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노래를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뮤지션이나 리스너나 힙합이 장수하기를 원한다면, 공통적인 마인드 셋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너무 앞서가도 안되고 반대로 너무 뒤쳐져도 안되고요. 리스너분들이 아셨으면 하는 건, 한국의 힙합아티스트들이 한국힙합을 하지만, 원초적인 영감은 미국힙합이라는 거에요. 그건 속이거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이죠. 지금까지도 영향을 많이 받고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힙합을 듣고 한국힙합만 해야지!’하는 편협한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중요한 건 그대로 따라 하느냐, 연구를 해서 더 발전시키느냐인 것 같아요.
리: 원래 계획했던 [Jazxploitation]을 미루고 이번 앨범을 작업하게 된 건 어떤 계기였나요?
아이비: 2008년 말에 [Jazxploitation]의 작업이 마무리되었는데, ‘서울 시티 락커스’와 ‘줄루 네이션(Zulu Nation)’ 활동을 함께하게 되면서 힙합을 대하는 제 마음가짐이 더 깊어졌고, 당장 뭔가를 생산해내기보다는 돌아다니면서 더 많이 배우고 깨달음을 얻으면서 저를 찾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Jazxploitation]를 마무리하고 잠시 쉬고 있던 시기에 비니셔스(Vinicius)와 챡(Choc)이 집으로 놀러 왔어요.
리: 그때 비니셔스 씨는 챡 씨하고만 알던 사이였고요?
아이비: 네. 챡이 소개시켜줬죠. 그때 저희 집에 있는 앨범들을 다 꺼내 들으면서 교감을 나누고 함께하게 된 거에요.
리: 당시 모습이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지네요. (웃음)
아이비: 일단 제 [Jazxploitation]을 쭉 들려줬는데, 정말 고맙게 잘 들었다고 이야기를 한데서부터 시작이 되었거든요. 집에 있는 음반들을 꺼내서 듣기 시작했고, 비니셔스가 자기가 만든 비트들을 들려줬어요. 그리고 그 날 바로 앨범을 만들자고 했는데, 비니셔스가 7월초에 군대를 가야 했어요. 그 친구가 ‘지금이 2월인데, 가능할까요?’라고 묻더라고요. 저는 일단 느끼는 대로 해보자고 했죠. 그렇게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어요. 어머니 이야기가 하고 싶으면 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만들고, 형제에 대해 느끼는 게 있으면 형제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대신 앨범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방향성에 참고할 레퍼런스를 많이 준비했죠. 서로 좋아하는 것들을 확실하게 해두려고 비니셔스 집에 들어가서 4시간 동안 음악을 진짜 크게 틀어놓고서는 미치도록 들었는데, 그때가 상당히 더웠기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었어요. 원초적이고 자연스럽고 정말 최고였어요. 가사도 노트에 다 펜으로 쓰고….
재지 아이비는 직접 가사를 적은 커다란 라임 노트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진짜로 노트에는 그때그때 쓴 것처럼 보이는 가사와 문구, 라임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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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앨범을 작업한 이야길 들어보니 왜 타이틀이 [IllVibrate Motif]인지 확실히 알겠네요.
아이비: 네 그래서 타이틀이 그렇게 된 거에요. 비니셔스를 만났을 때의 강한 진동! 비니셔스와는 작업을 끝내고 남자들끼리 약속을 했어요. 우리의 첫 번째 교감이 정말 끝까지 이어져간다면, 전역한 이후에도 서로 믿고 미치도록 달려보자고.
리: 그래도 시간의 압박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아이비: 시간 그 자체보다도 제한된 시간 내에 서로의 색감을 찾아내면서 교집합을 찾고 융화하는 과정이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매 순간 느끼는 진동을 어딘가에 담는 식으로 계속 진행했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는데, 결국엔 우리가 해냈잖아요. 둘의 교감도 깊어졌고요. 저는 그 친구를 프로듀서로서 존중하고, 비니셔스도 저를 MC로서 존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리: 그전에는 이런 교감을 느낀 적이 없었나요?
아이비: 솔직히 말해서 비트메이커와 이런 교감은 처음이에요. 그 전에 수많은 친구들, 저명한 프로듀서들과 작업을 해봤지만, 이 정도의 소통은 처음이에요. 음악을 다시 하는 기분도 들 정도에요. 단순히 멋있게 만드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담는 게 최고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었고요. 그래서 비니셔스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워요. 끝까지 믿고 함께하고 싶어요.
리: 비니셔스 씨와 또 다른 일화는 없나요?
아이비: 원래 이번 앨범은 6월에 끝낼 수도 있었는데, 녹음한 걸 비니셔스가 두 번이나 엎었어요. 정말 과감하게 엎어버린 거에요.
리: 전부 다요?
아이비: 네. 그 정도로 과감한 친구에요. 이 친구가 88년생이지만, 미국에서도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영어도 잘하고 어느 정도 그 쪽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편이에요. 그랬기에 가능했던 일 같아요. 그리고 부모님도 두 분다 예술가이셔서 어릴 적부터 예술을 친숙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고요.
리: 시간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녹음된 것들을 엎고 다시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말이죠.
아이비: 진짜 힘들었어요. 첫 번째 엎을 때는 결과물 자체가 맘에 안 들어서 마음을 비우고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두 번째로 엎을 때는 저희가 원하는 사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결국엔 비니셔스가 마이크에 앰프를 쓰지 말고 생으로 녹음해달라고 주문하더라고요. 세 번째 녹음하는 날엔 정말 저 자신에게 화가 났어요. 그래서 그날 비니셔스를 만나고 밤 11시에 집에 들어와서는 하루에 14곡을 다 녹음해버렸어요. 직감을 믿고 원샷으로요. 그래서 앨범을 들어보면 흐름이 느껴지실 거에요. 물론, 트랙 순서대로 녹음한 건 아니었지만, 목소리에서 일정한 톤이 느껴질 거에요. 하루 만에 녹음했으니까요.
리: 그렇게 녹음 끝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아이비: 정말 짜릿했어요. (웃음)
리: 어떻게 보면 비니셔스 씨는 영화 감독 같은 역할이었군요.
아이비: 진짜 재미있는 건 비니셔스가 영화감독 지망생이에요. (전원웃음) 그래서 서로에게 배울 점이 정말 많아요. “Vnivy”라는 곡에서도 노래했지만, 물 만난 고기마냥 너무 좋았어요. 이런 게 소통이라는 걸 처음 느꼈어요.
리: 저도 이번 앨범에서 비니셔스 씨의 비트에 큰 감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드러나지를 않았네요? 다른 앨범엔 어디에 참여했었죠?
아이비: 데드피 앨범, 제이켠 앨범에도 참여했어요. 제이켠 앨범에서는 심지어 노래까지 불렀고요. 챡이랑 같이 싱글을 내기도 했고요. 앞으로 저랑은 ‘Vnivy’로 활동하겠지요. 군 제대하면 6개월 동안은 음악작업에 매진하기로 약속했어요. 물론, 2012년이지만…. (전원웃음) 편지도 계속 주고받고, 비니셔스 부모님과도 연락을 하며 긴밀하게 지내고 있어요.
리: 이 앨범 이전에 계획했던 [Jazxploitation]은 아이비 씨가 프로듀싱했던 건가요?
아이비: 아뇨. JA가 총괄 프로듀싱을 했었는데, 그 앨범도 재미있었어요. 완성도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두었는데, 이번 앨범하고는 성격이 완전 달라요. 이번 앨범은 직감만을 믿고 하는 원샷이었어요. 계산하지 않은 그대로를 담아냈는데, [Jazxploitation]은 정말 그대로 블랙스폴로테이션이에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거에요. 진흙 속에 숨어있는 진주와 같은 문화를 다시 꺼내서 동양문화권에서 제가 바라본 형상들을 저만의 그림으로 펼치고 싶었기 때문에 문화를 기반으로 만든 음반이에요.
리: 그 앨범도 발표할 예정이죠?
아이비: 곧 발표 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리: 100% 영어로 구성되어있는 걸로 아는데, 해외를 겨냥한 건가요?
아이비: 그렇죠. 왜냐하면 그 문화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할뿐더러 미국에서는 지금 그 추세가 돌아오고 있거든요. 제가 그걸 만들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지만요.
리: 다시 이번 앨범이야기로 돌아와 보죠. 앨범의 첫 번째 곡 “JINDONG”은 후반부에 두 가지 벌스를 교차시키면서 혼란스러운 느낌을 주면서 제목처럼 진동이 느껴지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첫 곡으로 할 걸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었나요? 잘 어울려서요.
아이비: 그 노래로 시작하고 싶었던 건 제 마음가짐과 자신을 제일 먼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나란 사람이 누구이고 내가 왜 이 음악을 하고 남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맨날 밤을 새우며 이걸 하고 있는지…. 앨범 작업을 하는 동안 집밖을 한 번도 나가지 않았는데, 밖에 나가는 날은 외국에 가는 날이었어요. 그 정도로 밖에 나갈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친구들하고 카페에서 시간낭비 하는 것도 제 스타일이 아닐뿐더러 제가 아는 힙합도 아니고요. 대신 그냥 집을 잘 꾸몄어요. 좋아하는 아티스트들과 앨범의 포스터를 나를 바라보게끔 붙여놓았죠. (웃음) 그리고 그 곡을 만들 때는 온 방안이 포스트잇으로 가득했어요. ‘절제 있게 행동해라, 절도 있는 랩, 네 방안은 뉴욕이다, 뉴욕에서 만났던 그 친구는 깨어있는데 넌 뭐하냐, 지금 TV 볼 시간 아니잖아.’ 등등. (웃음) 그만큼 “JINDONG”은 제 스스로 마음을 다지는 트랙이에요. 그 곡에서는 미국에서 살아왔던 교포로서 감성과 한국에서 자라오면서 한국인으로서 감성들이 충돌과 재조합하고 건설과 붕괴하죠. 영어와 한국말이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그래서이고요.
리: 말씀을 듣고 보니 더욱 와 닿네요.
아이비: 저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국에서 자란 정체성과 한국에서 자란 정체성, 양쪽에서 펼쳐지는 제 머릿속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고요. 영어로는 이런 생각하고 한국어로는 이런 생각하고 내 하루 일과는 이렇게 시작된다는 것들. 정말 신실하게 대했어요. 사용하지 않은 가사들도 너무 많아요. 예를 들면, (가사를 적은 종이들을 보여주며) ‘3시~4시: 반성하고 되 뇌이기, 4시~5시: 잠든 귀를 깨워놓고 5시~6시: 글을 쓰며 훈련하기 6시~7시: 몸 풀린 심장가동하기, 단칼 베기, 진짜배기, 남자패기….’. 또 예를 들면, ‘everday 45’라고 한 것도 매일매일 7인치 판을 틀자는 마음 가짐이었어요. De La Soul, A Tribe Called Quest, Erykah Badu, J Dilla, Pete Rock, Fela Kuti 같은 제가 믿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음악을 7인치로 찾아 듣고 몸으로 느끼고, 행동하는 게 제가 바라는 그림이었죠. “JINDONG”은 이번 앨범을 풀어나가는 기준이자 잣대에요. 그 트랙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느낌의 앨범은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리: “JINDONG”도 인상적이지만,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곡이 바로 “Yadan”이에요. 플로우도 타이트하고 무엇보다 가사에서 한글의 리듬감을 정말 잘 살렸다고 느꼈습니다. 사투리의 사용이 그 맛을 더했고요.
아이비: 그 곡은 비트를 처음 들었을 때 크게 와 닿았어요. 곡을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다가 처음에는 프리스타일로 녹음했는데,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서 동네 꼬마 한 명이 다른 꼬마 어머니한테 혼나는 걸 본거에요. 그 상황이 참 특이했어요. 어머니가 변호해 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인 아이가 혼나고 있는 상황이 처량하고 불쌍하게 느껴졌어요. ‘만약, 저 아이도 자기 어머니가 있었다면, 뭔가 막아 줄 텐데….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참 극성이다.’싶더라고요. 저희 부모님 두분 다 경상도 대구 분이세요. 오늘까지도 사투리를 쓰시고요. 그래서 매일 사투리를 들으면서 자라왔거든요. 그때 어머니가 생각났어요. ‘아~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베푸는 관용과 지극정성인 손길에 대해 노래를 해봐야겠다!’싶어서, 저를 혼나고 있는 그 친구의 상황에 대입해서 만들어본 곡이에요. 그래서 원래는 아프리카 스타일에 기반을 두려다가 한국의 전통적인 스타일로 넘어오게 되었고요. (전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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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다른 수록곡 “Namhee&”도 눈에 띄는 곡이에요. 여기서 ‘남희’가 아이비 씨 어머님 성함이죠?
아이비: 네. 맞아요. 저희 어머니처럼 절 지지해주고 제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어머니만큼 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고 생각해요. 아무리 믿고 의지하는 친구들이 있다 하더라도 어머니만큼 무조건적이지는 않잖아요. 저는 좋아하는 것만 하고 다니면서 부모님께 효도할 생각도 못하는데도 저를 믿고 매일매일 함께해 주신다는 게 너무 고마웠거든요.
리: 부모님을 생각하면, 항상 뭔가 짠한 게 있죠. 그 마음을 담은 곡이군요.
아이비: 제가 그동안 홍대, 양재 등등 여러 곳에서 살아보다가 부모님 댁에 들어갔거든요. 이번 앨범의 작업을 부모님 집의 제 옛날 방에서 다했어요. 어머니는 작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제소리를 다 들으셨단 말이죠. 게다가 제가 비트를 보통 크게 트는 게 아니었거든요. 미치도록 크게 음악을 트는데도 어머니는 밖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대해주시고 되려 밖에 나오면, ‘대각아 수고 많다.’라고 하시면서 뭐라도 해주려고 하시고…. 저 같았으면 짜증도 한 번 냈을 법한데…. 밤이 되면 저 작업하라고 TV를 끄시고 비켜주세요. 제가 밤에 녹음하는 타임을 아시거든요. 그런 배려들이 정말 감사했어요. 원래는 어머니를 위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방에서 녹음할 때 어머니가 당신의 이름을 제가 흥얼거리는 걸 들었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침에 쉬면서 비트를 듣다가 ‘남희랑~ 아라리요~’라고 흥얼거렸거든요. 어머니에게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에 제가 그래도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해드리고 싶어서요.
리: 어머님이 들었나요?
아이비: 그건 잘 모르겠지만, 방에서 나왔더니 밥상이 차려있더라고요. 들으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정말 어머니처럼 제게 천진난만하시고 웃음을 주는 아름다운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는 예전에 대구에서 정말 유능한 발레리나셨거든요. 그런데도 꿈을 펼치지는 못하셨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한테 더 기회를 주시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 마지막 예술적 감성을 제가 이어받은 느낌이고요.
리: 어머님 성함 뒤에 ‘&(랑)’이 붙은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아이비 씨 말씀을 듣고 보니 어머님과 사뿐사뿐 걷는 모습도 상상되고…. (웃음)
아이비: 함께 손잡고 춤추는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원래 표기는 ‘남희랑’이라고 쓰고 싶었는데, 부모님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 같아 보여서 ‘Namhee&’이라고 했고요. 그리고 이 곡은 어머니께 바치는 노래라기보다는 어머니와 언제든 같이 듣고 싶은 곡이에요.
리: 앨범이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분이 바로 어머니네요.
아이비: 네.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서포트를 해주셨죠. 그런데 전 이제 또 나와서 살고 있네요. (웃음)
리: 어머님이 허전해하시겠어요.
아이비: 며칠 전에는 외국여행을 갔다 와서 뭣 좀 챙겨가려고 집에 들렀다 나가는데, 어머니께서 “그래 대각아 가~”라고 하시면서 대문을 닫았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하니까 다시 문을 열고 우시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왜 울어요?”라고 여쭤보니 “그냥….” 이러시더라고요.
리: 이것 참, 듣는 제가 다 찡하네요.
아이비: 정말 부모님의 마음은 알 수가 없는 것 같아요. 10년 전에는 우탱(Wu-Tang Clan)이나 투팍(2Pac)을 집에서 들으면 어머니가 내용을 다 알아들으시니까 정말 싫어하셨거든요. 투팍 음악, 특히, “Hit’em Up” 같은 곡에는 욕이 진짜 많잖아요. [Wu-Tang Forever] 앨범은 제가 꽂혀서 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크게 들었거든요. 당시에 어머니가 “그 쓰레기 같은 음악 좀 그만 들으면 안되냐!”라고 하셨어요. (웃음) 그럼에도 아직 저를 믿어주고 계시니까요. 그 이상의 감성이 음악에 있다는 걸 알고 계신 것 같아요.
리: “Ahwu”라는 곡은 힙합팬들이 원하는 전형적인 바이브를 가진 곡이 아닌가 싶어요. 가사를 보면,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무엇을 담고자 한 건가요?
아이비: 말 그대로 ‘아우’라는 뜻이고, 제 형제들에게 바치는 노래에요. 사실 특정한 인물을 생각하면서 만든 거에요. 제가 꼭 들려주고 싶은 형에게 바치는 노래인데, 그 마음가짐은 모든 형제에게 공통적으로 던지는 메시지에요. 근데 그 형에게만큼은 제가 가진 형제로서 마음가짐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형제는 이것이고, 난 당신과 함께했을 때는 이런 마음가짐이었으며, 아직도 그러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 공통적인 뼈대를 나눌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만약에라도 이 마음가짐을 심장으로 느끼고 읽었다면, 언제든지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한 사람을 생각하며 썼지만, 모두를 위한 곡이 되었기 때문에 저에겐 뜻 깊은 작업이었죠. 특히, 이번 앨범을 완성시키면서 네덜란드랑 미국 시카고를 다녀왔는데요, 그 친구들에게 앨범을 전해주고 이 노래도 다 들려줬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앨범을 호텔, 차, 심지어는 붐박스에서도 틀고 있는 거에요. 아무 생각 없이 차에 올라탔는데 이 노래가 나오고 있고, 호텔방에 들어갔는데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누워있고…. (웃음) 그걸 보면서 언어라는 게 중요하다기보다는 전하려는 에너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친구들이 말하기를 ‘네가 어떤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그 에너지가 느껴진다.’라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이 노래를 듣게 된다면, 제 솔직한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리: 이번 앨범에는 한글 발음을 영어로 표기한 제목들이 많은데, 굳이 영어로 표기한 이유가 있나요?
아이비: 제목을 지을 때 그냥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새롭잖아요. 제목은 전부 한국말이지만, 표현은 영어로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가사에서도 ‘맘찌게, 심장밥’ 등 없는 말을 표현했고, 예전과는 많이 다른 느낌으로 랩을 하기도 했고요. 어떤 뮤지션이든 끊임없는 변화와 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리: 제목은 그렇다고 해도, 사실 이번 앨범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 영어가사가 많다 보니 아이비 씨가 의도했던 국내 힙합팬들과 소통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거에요. 소통에 장애가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없었나요?
아이비: 맞아요. 어찌 보면 어려울 수 있겠지만, 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그냥 심장으로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만약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그게 가장 진솔한 관계일 수 있어요. 저는 눈높이를 맞추기보다는 발 맞추어 가고 싶어요. 일단 전 항상 솔직하고 싶어서 제가 느끼는 대로 고스란히 노트나 마이크에 옮겨 담고 싶기 때문에 (한영) 비율에 신경 쓰지 않아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담다 보니 영어가 많더라고요. 하지만, ‘한국 팬들을 더 섭렵하기 위해서 한국말로 더 해야지.’라는 생각은 없었어요.
리: 개인적으로는 “Yadan”이나 “Simjang Talk” 같은 곡에서 아이비 씨가 선택한 한글 단어나 라이밍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곡들이 더 많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웃음)
아이비: 그때그때 제 있는 그대로를 담았으니 사람들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주신다면 감사할 것 같아요.
리: 랩 스타일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아이비 씨는 일반적으로 리듬을 타다가 어느 순간 나레이션 비슷한 애드립이 이어지고, 다시 전형적인 플로우로 돌아오곤 합니다. 물론, 미국 랩퍼들은 국내와 달리 정식 벌스 외에도 애드립을 치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비 씨는 그보다 좀 더 유기적으로 섞여 있죠. 애드립이 아니라 정식 벌스의 개념이니까. 지금의 랩 스타일을 구축하는데 영향받거나 고민이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아이비: 음… 저도 만들고 나면 그런 게 느껴져요. 만들 때는 잘 모르겠거든요. 만약 제가 음악을 공식으로 만들었다면 규격에 맞춰서 했겠지요. 사람들이 원하는 규격과 좋아하는 일정 길이 같은 게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16마디 뒤에 훅이 나온다든가 하는. 사람들이 듣기 좋은 규격화된 포맷이 있는데, 그걸 격파한다기보다는 제가 느끼는 대로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그게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묻어 나오는 것 같다는 거에요. 억지로 한 방을 터뜨려야지 하는 것보다는 순간순간에 충실하며 멀리 내다보지만 건너뛰지는 않고, 서두르지 않으면서 천천히 한발 한 발 나아가는 느낌이에요.
리: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스타일이라는 말씀이군요.
아이비: 네.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들도 대부분 그런 스타일인 것 같아요. 큐팁(Q-Tip)이나 모스 데프(Mos Def), 엠에프 둠(MF Doom) 등등….
잠깐 동안 우린 모스 데프의 [The Ecstatic]에서 서로 좋아하는 곡들과 모스 데프가 엠에프 둠에게 공연을 통해, 그리고 평소에 리스펙트(Respect)를 표한 이야기 등을 하며 열혈 힙합 키드들의 수다(?)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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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이번 질문은 좀 민감할 수도 있겠네요. 아직도 많은 분이 서울스타의 불화를 아쉬워하고 있어요. 두 분의 관계는 여전히 같은 상태인 건가요?
아이비: 서로 충분히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큐빅(정기고)형은 여전히 제 형제나 다름없어요. 저는 항상 서포트해주고 싶어요. 큐빅형을 미워한다기보다는 그저 다들 마음을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서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게 가장 큰 숙제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또 접점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리: 아무쪼록 다시 서울스타를 보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참, 얼마 전 라카(Rakaa)와 인터뷰했는데, 재지 아이비 씨를 언급하더군요. 같은 줄루 네이션(Zulu Nation)의 일원이기도 한데, 첫 만남은 어땠나요?
아이비: 라카 형을 처음 만났던 건 2009년에 인천에서 열린 ‘R-16’이라는 비보이 행사에 초청돼서 만나게 되었는데, 보자마자 서로 알아봤어요. 형도 줄루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저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시작부터 필터라는 게 없었어요. 저는 정말 라카처럼 마음이 열려있어서 대화가 가능하고, 릴랙스한 사람은 못봤어요. 그때 시간이 많아서 호텔방에서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도 굉장히 많이 했었죠. 비공식적으로는 저하고 시간을 많이 함께했거든요. 감사하죠. 저한테는 꿈 같은 존재지만, 줄루 안에서는 형제니까요. 배운 것도 굉장히 많아요. 그리고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되게 많고 한국을 돕고 싶어해요.
리: 이번 공연 때도 만났나요?
아이비: 네. 그때가 저도 네덜란드에서 공연을 하고 막 한국에 왔기 때문에 엇갈린 줄 알았는데, 다행히 제가 돌아온 다음날 공연이었어요. 마침 라카형의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라카가 너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라고 하기에 새벽에 공연장으로 찾아갔었죠. JK형이 잘 챙겨줘서 고맙고, 한국인으로서 자부심도 뿌리깊게 심고 간다고 했어요. 저도 기분이 참 좋았어요.
리: 세계를 돌면서 몸으로 힙합을 체험하고 다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좀 해주세요.
아이비: 솔직히 모든 순간이 생생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최근인 것 같아요. 미시건 대학에 있던 교포친구들에게 초청을 받아서 시카고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잼도 열고, 정말 가보고 싶었던 더스티 그루브 레코드를 갔어요.
리: 와, 그곳을!
아이비: (웃음) 더스티 그루브는 5년째 제 인터넷 메인 홈페이지로 걸어놨을 정도에요. 일단 그곳에서 받는 영감들이 너무 많아요. 항상 레어한 앨범들을 디깅하고 있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음반이 아니면 판매할 의사가 없다. 우리는 굶주린 사람들도 아니고 들었을 때 좋은 음반이라면 팔아주겠다.’라는 마인드도 멋있고. 그리고 음반리뷰들에 정성이 담겨있어요.
리: 스토어를 딱 봤을 때 느낌이 어떻던가요?
아이비: 의외로 얌전한 동네에 있는 소박한 스토어더라고요. 하지만, 막상 들어가면 그 사람들의 연륜, 내공, 전통이 느껴지는 거 있죠? 정말 편안하고 계속 머물고 싶고, 그 사람들의 고집도 느껴졌기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만약, (이곳을) 아직 몰랐던 사람들이라면, 더스티 그루브에서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리: 저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부럽습니다. (웃음) 팻비츠(FatBeats)처럼 문닫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아이비: 저도요. 팻비츠는 정말 안타까웠어요.
리: 아이비 씨의 재즈빌 레코드(Jazzville Records)는 계속 유지가 되고 있는 거죠?
아이비: 네. 지금 함께하는 친구는 보컬 챡이 있고 재즈몰(Jazzmal)이라는 프로듀서 겸 MC가 있어요. 여러분에게는 샤이닝 스톤(Shinin’ Stone)으로 알려진 친구에요. 그리고 비니셔스가 있고, 챠닉이라고 사진 찍는 친구인데, 트럼펫 연주자이기도 해요. 결론적으로 저희는 음악집단이라기보다는 예술집단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아요. 비디오아트, 페인팅, 댄싱 등등 예술을 추구하고 사랑하는, 힙합 안에서 뿌리를 찾는 집단이에요. 레이블이라 하기에는 조금 낯설고요. 왜냐면, 제가 CEO로써 발벗고 나서서 서포트해주는 단계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항상 집단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좋은 영감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한 곳에 모이게 된다면 정말 멋있는 게 나올 것 같아요. 각자 색깔도 뚜렷하니까요.
리: 라인업을 더 늘려갈 생각이에요?
아이비: 멤버들을 늘리는 데에 관심을 두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는 함께하게 되겠죠. 그래서 말 그대로 재즈 빌, 마을의 느낌이 더 드는 것 같아요.
리: 앞으로 계획된 움직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아이비: 정말 운이 좋게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경험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전 세계의 움직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것 같아요. 그만큼 많은 곳에서 초대를 받았고 앞으로도 줄지어 기다리고 있어요. 내년만해도 플랜이 가득하기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상태로 이 배움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에요. 그리고 현재 저한테 중요한 건 서울과 어떻게 소통을 나눌 것인 가에요. 세계와는 많은 소통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어요. 그런데 정작 집에서는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공연도 우리나라의 친구들과, 특히, 뭔가를 내뱉는 친구들이 있다면 멈춰 세워서라도 함께 해보고 싶어요. 공동작업들도 많은 것을 해보고 싶고요. 문화적인 것들에 기반한 움직임,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삶을 사는 저를 보고 피부로 느끼면 좋을 것 같아요.
재지 아이비 리드머 인사 영상
*이번 앨범을 작업하는데 가장 많은 영감을 줬던 작품 10
1.John Coltrane & Johnny Hartman [John Coltrane & Johnny Hartman](1963) 2.Fela Kuti [Fear Not For Man](1977) 3.Miles Davis [Kind of Blue](1959) 4.Miles Davis [Tutu](1986) 5.Ornette Coleman [Tomorrow is the Question](1959) 6.Pete Rock [Petestrumentals](2001) 7.J Dilla [Ruff Draft](2003) 8.Mos Def [The Ecstatic](2009) 9.Nneka [Concrete Jungle](2010) 10.Saul Williams [Saul Williams](2004)
인터뷰. 글 / 강일권, 박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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