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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인터뷰 이센스 – 가장 큰 영감은 삶에 덤비는 느낌

한국힙합위키

이센스 – 가장 큰 영감은 삶에 덤비는 느낌 리드머 작성 | 2019-09-03 04:52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74 | 스크랩스크랩 | 32,903 View


인터뷰, 글: 이진석, 황두하


이센스(E Sens)의 [The Anecdote]는 한국힙합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반으로 남았다. 이어서 발매 전부터 화제를 모은 두 번째 정규작 [이방인] 역시 탄탄한 완성도로 치솟은 기대치를 충족시켰다.


두 장의 앨범이 높은 완성도를 보인 건 단순히 그의 랩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센스가 겪어온 일련의 사건들이 독자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냈고, 청자로 하여금 그의 결과물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장치가 되었다. 그렇게 홀로 상경해 서울 한가운데 내던져진 청년의 고군분투는 독보적인 랩 실력과 어우러져 짜릿한 힙합 엔터테인먼트로 완성되었다.


2008년, 리드머는 20대 초반이던 이센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긴 그에겐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리드머(이하 리): 반갑습니다. 앨범을 발매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이센스(이하 E): 놀고 있습니다. (웃음) Good Life에요. 매체 인터뷰, 라이브 영상, 무대 같은 것들도 하고 있죠. 협의중인 공연들도 있고요. 다 해야죠. 답답하게 살았으니까요. 공연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리: 리드머와는 10년만의 인터뷰예요. 오랜만인 만큼 지난 인터뷰 이후 10년을 잠시 돌아보고자 해요. 당시엔 닉네임에 관한 이야기부터 했었어요.


E: 나중에 영어를 잘 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까 사실 말이 안 되는 영어라고 하더라고요. 랩 대회 나갈 때 강민호로 나가기가 싫었어요. 그래서 사전을 뒤져가며 급하게 만들었죠. ‘Essay’에다가 ‘Sensitive’의 ‘Sens’를 따와서 합친 거죠. 닉네임에 작대기(-)가 들어가는 게 별로인 것 같아서 최근엔 뺐어요. 원래 대시가 붙는게 멋있는 것 같았는데...


리: 제이지(Jay Z)도 원래 대시가 붙었는데 지금은 뺐죠.


E: 맞아요. 제이지가 뺐길래 저도 뺐어요. (웃음)


리: 카터 케이(Carter K)라는 닉네임도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E: 그건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만들었어요. 복서가 나오는 영화인데, 한 복서가 스타가 되고 돈도 많이 벌다가 어떤 일에 휘말려요. 그래서 감옥에 가게 되는데, 감옥에서 글을 엄청 쓰거든요. 회고록을 적기도 하고요. 거기에 나온 대사들이 어린 마음에 확 와 닿더라고요. 극 중 인물 이름이 카터(Carter)였어요. 실존 인물일 거예요. 케이는 강(Kang)에서 따서 붙인 거고요. 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죠? (웃음)


리: 지난 인터뷰에서 언급했었죠. (웃음) 믹스테입(Mixtape)을 발표할 당시엔 블랭키 먼(Blanky Munn)이라는 이름도 사용했잖아요?


E: 사실 이제 닉네임에 별 생각이 없어요. 예전엔 이센스라는 닉네임이 별로란 얘기를 들었었어요. 어감이 별로 멋있지 않잖아요? 지금은 제가 블랭키 먼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옛날 기억이고요. 그런데 그 닉네임이 제 캐릭터와 제일 잘 맞는 것 같긴 해요. 멍하면서 입도 좀 벌리고 있고…


리: 그럼 지금은 공식적으로 사용하진 않는 건가요?


E: 맞아요. 저에겐 옛날 기억 같은 거예요. 아 그런데 사인할 땐 ‘B Munn’이라고 써요. 생각해보니까 쓰고 있는 거네요.


리: “Next Level”에서 다뤄진 랩 대회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E: 아마 학교를 자퇴한 뒤였을 거예요. 2002년이었나? 자퇴하면 열심히 살 것 같았는데 ‘리니지’만 했거든요. 나름 음악을 열심히 듣겠다고 했는데 당시 디깅을 할 줄도 몰랐고요. 당시에 세이클럽이라는 채팅 사이트가 있었어요. 거기에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MP3로 음악 틀어주고, 자료 공유하고요. 생각해보니 다 불법인데 그거… (웃음) 그 중에 힙합방이 있었어요. 들어가보면 방장이 프리스타일도 하고 그랬거든요. 제 기억엔 정말 잘했어요. 한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아직도 정확히 기억해요. 와! 끊기지 않고 프리스타일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방송을 하다가 서로 어디 사는 분 있냐고 물어봐요. 그 중에 대구 사는 사람이 있었어요. 나이는 16이라고 해서 말을 걸었죠. 나도 대구 사는데 17살이라고요. 그 사람이 대구 랩 대회가 있다고 알려줬어요. 자기는 거기 나갈 건데 혹시 만나볼 생각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만났어요. 붐박스도 아니고 그냥 카세트 테이프 들고 프리스타일 하자고 그러고. (웃음) 그러다가 대회를 팀으로 나가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당시 인터넷에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 떠도는 것 중에 닥터 드레(Dr. Dre)가 만든 “Put It On Me”(DJ Quik)를 다운받아서, 거기에 가사를 써서 나갔어요. 걔가 어떻게 기억할 지는 모르겠는데, 가사는 제가 다 써줬어요. (웃음)


리: 급조된 팀인 것 같은데, 상당히 결과가 좋았네요?


E: 일주일 정도 준비를 했어요. 뭐 거의 셔니슬로우(Sean2slow) 형의 “Moment of Truth”를 베끼다시피 하지 않았나… 베낀 건 아니고, 영감을 받았죠. 요즘 표절하는 새끼들이 오마주했다고 하는 그런 변명은 아니고요. (웃음) “똑같은 형식에 나를 가두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얘기를 썼던 것 같아요. 1등을 했죠.


리: 그 친구는 지금 뭘 하는지 전혀 모르고요?


E: 전혀 몰라요. 거기에서 연이 되어서 또래들끼리 놀러 다니고 그랬어요. 그때 학교를 관둔 사람들이 되게 많았어요. 몰래 술도 먹고 다니고, 비보이 형들이랑도 친해지고요. 서로 듣는 음악을 공유하기도 하고. 재미있었죠.


리: 대회를 통해서 클럽 헤비(HEAVY)에서도 공연하게 된 거죠?


E: 맞아요. 그때 대구 쪽 디제이 형들이랑 랩 하는 형들을 알게 됐죠.


리: 첫 공연은 어땠어요?


E: 앞이 안 보였어요. 무대가 그렇게 높지 않아요. 관객들 뒤도 보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돈 받고 하는 첫 공연이니까요. 돈이라고 해봐야 3천원이었지만요. 핀 조명 같은 게 있었는데, 관객들을 못 봐서 그걸 보고 했어요.


리: 이후 2004년에 [Uncut, Pure!!]를 발표했는데요. 이 앨범으로 처음 알려지게 된 거죠?


E: 그렇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어요. 540장 정도 팔렸을 거예요. 당시는 음반이 정말 많이 팔릴 때였어요. 10만 장, 20만 장씩 팔릴 때였죠. 540장 팔렸는데, 제가 학교에서 200장 팔았어요. (웃음) 쉬는 시간마다 종이 백에 앨범 넣어서 들고 복도에서 팔았죠. 그러다가 영어 선생님한테 싸대기 맞고… 포르노 파는 줄 알았대요. “이게 뭐고?” 하면서 앞 뒤 없이 맞고 쉬는 시간에 부르더라고요. “미안하다, 이거 니 얼굴이네?” (전원웃음) “얘기를 하지 그랬어!” 뭘 얘기를 해요. 얘기하기 전에 귀싸대기부터 날려 놓고. (웃음) 그랬던 기억이 있네요. 이 앨범으로 더 알려지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근데 당시에 20살, 21살 형들 사이에서 17살짜리가 랩을 한다고 하니까 막둥이로 친분이 생기긴 했죠.


리: 처음 힙합에 빠지게 된 계기는 뭔가요?


E: 조PD나 허니패밀리(Honey Family) 앨범을 작은 누나가 사왔어요. 그걸 신기해하면서 들은 게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또, 다시 떠올려보니까 어릴 때 멍하게 봤던 게 비기(Biggie)의 “Hypnotize”였어요. 비기가 죽고 나서 추모하는 영상이었어요. 날짜가 있고, R.I.P라고 적혀 있었죠. 그게 첫 기억이고, 제대로 들었던 건 조PD 1집이랑 허니패밀리 1집으로 랩이라는 걸 알았어요. [1999대한민국]도 들었고요. 이후로는 외국 곡도 조금씩 듣다가 대회 나가기 전에 외국 음악을 공유하면서 많이 듣기 시작했죠.


리: 국외 힙합을 들은 건 조금 나중이네요?


E: 잘 몰랐으니까요. 우탱 클랜(Wu-Tang Clan) 들으니까 지루한 것 같고, [Illmatic] 들어보라는데 지루한 것 같았어요. 못 알아들으니까요. 그래서 요즘 친구들한테 한 2003년도 앨범 들려주면 당황하는 걸 이해해요. (웃음) 너무 다르잖아요? “야 이거 존나 팝(Pop)이었어! 지금으로 치면 미고스(Migos) ‘Bad and Boujee’보다 더 히트한 거야!”라고 하면 “왜?” 하는 거죠. 근데, 또 어떤 건 여전히 좋다고 하는 것도 있어요. 그런 점이 참 재미있어요.


리: 본격적으로 래퍼로서 활동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뭐였어요?


E: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대놓고 돈만을 위해 시작한 게 아니라, 랩을 잘 하면 스타가 되고, 스타가 되면 멋지게 사는 것 같았어요. 다 그렇게 시작하지 않나요? 멋있어 보이려고. 또, 대회 준비하면서 다른 애들보다 잘한다는 걸 느꼈죠. 미숙하긴 했지만, 미숙한 사람들 사이에선 독보적이지 않았나… (웃음)


리: 당시 학교에 관한 노래를 많이 썼다고 했는데, 내용이 기억나요?


E: 선생들은 우리를 가두고 패고… 이런 내용이었어요. 시스템이라는 말도 그때 처음 썼던 것 같고요. 강압적인 걸 싫어했던 것 같아요. 음악은 그 정 반대에 있잖아요? 밴드 하는 형들 졸라 멋있게 느껴지고.


리: 10년 전 인터뷰에서 믹스테입과 정규작의 차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었는데, 시대가 많이 변했잖아요? 지금은 어때요?


E: 그때와는 많이 다르죠. 믹스테입이란 것 자체가 옛날처럼 러프하게 비사이드(B-Side)곡들도 엄청 때려 넣고, DJ 소리를 억지로 넣거나 하지 않고 되게 퀄리티 있게 나오잖아요? 힘주기 나름이 아닌가 싶어요. [이방인]도 원래 믹스테입에서 정규작으로 바뀐 이유가, 결국 제 인생의 한 부분의 스토리가 들어간 것 같았거든요. 이건 저만의 기준이죠. 믹스테입이면 중구난방이어도 상관없고, 컨셉트도 필요 없고, 막 해도 되는 거란 인식이 아직 있거든요. 정규는 그보단 조금 더 완결성 있고, 유기적이어야 하고요. 그런데 요즘 남들 내는 거 보면 아무 상관없는 것 같아요. 이제는 구분 자체가 별 의미 없고, 그 앨범 이름으로 부르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1집, 2집 같은 말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리: 예전엔 기존 인스트루멘탈에 랩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오리지널 곡으로 채우는 게 대부분이죠.


E: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샘플링에 대해서도 논의가 많이 되면서 바뀐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은 접근성이 너무 좋아졌어요. 예전처럼 저 동네에 죽이는 프로듀서가 있다고 찾아가서 만나야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게 인터넷을 통해서 이루어지니까요. 월드와이드잖아요? 제가 내일 당장 스웨덴 사람이랑 작업할 수 있는 거죠. 그러기 힘들었던 때는 비사이드 트랙도 만들고, 남의 트랙에 랩도 하고, 그랬던 게 저에겐 믹스테입의 기억이죠.




리: 랩을 할 때, 본능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하기도 했어요.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요?


E: 맞아요. 제가 그런 말을 해놓고 까먹고 있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생각을 많이 한 가사들은 뭔가 맛이 안 살더라고요. 그러면서도 계속 생각을 했어요. 부담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조져야 된다, 완벽해야 된다. 근데 본능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고, 100% 맞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느끼죠. 가사를 쓸 때도, 모든 게 한 과정이에요. 가사를 다 쓴 순간에는 랩이 완성되어 있는 거죠. 벌스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녹음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리: 요즘은 트랩이 유행하면서 플로우가 정형화된 느낌이 있잖아요?


E: 그것도 오래 됐죠. 이제는 트렌드도 아니에요. 그런 플로우가 지금에만 부각된 것도 아니고, 다 찾아보면 옛날부터 있었어요. 저는 랩 스킬의 완성은 이미 ‘90년대에 끝났다고 봅니다. 그때 이미 나올 게 다 나왔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어떻게 재미있게 쓰느냐, 어떤 노래에 어울리게 쓰느냐죠. 특이한 건 없다고 봐요. 저에겐 똑같이 랩이에요.


리: 최근에 들은 랩 중에서 놀랍다고 느낀 적은 없나요?


E: 아뇨, 다 잘 하니까 놀랍죠. 그리고 옛날 같은 스타일이어도 이상하게 신선한 거 있잖아요? 이번에 나온 와이비엔 콜대(YBN Cordae)도 그렇고요. 익숙한 템포와 플로우인데 미세하게 다르고, 신선하게 느꼈어요. 예전 것을 그대로 가져오면 재미가 없었겠죠. 힙합이 다음으로 나가면서 미묘한 변화는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리: 본인의 랩은 10년 전, 믹스테입 때와 비교해 어떤 것 같아요?


E: 일단 사람의 변화가 우선인 것 같아요. 랩 스타일에 대해서 굳이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냥 항상 음악을 들으면서 살잖아요? 계속 영향을 받고 있는 거죠. 그러면서 비트를 틀면 랩을 하는 거고요. 분석적으로 이야기할 거리가 있나 싶어요.


리: 의식적으로 스타일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거네요.


E: 또 그건 아닌 게, 감옥에 갔다 온 동안 세상과 떨어져 있었잖아요? 디자이너(Desiigner)같은 래퍼도 지나갔고, 익숙한 것들이 나오는 동시에 최신인 음악도 있었고요. 출소 당시에 소위 말하는 트랩 템포에 랩을 많이 하진 않았는데, 작업할 때 몇 곡 정도 녹음해보려 했던 건 있었어요. 그래도 요즘은 트랩이니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전 잘합니다. (웃음) [이방인] 앨범에 있는 곡들도 제 패치가 상당히 잘 되었다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트랙이 있으면 거기에 맞춰 랩을 하는 거지, 제 랩 스타일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노래에 따라 다른 거죠.


리: 이번 앨범에선 전작보다 라이밍이 뚜렷해졌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E: 저는 늘 뚜렷했어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입니다. 라임이 없으면 랩으로 들리지도 않죠. 화내고 싶을 정도로 지긋지긋한 이야기가 있어요. 얘는 라임을 그냥 넘어가는 건데 플로우가 만들어진다… 개 촌스러운 소리에요. 진짜 강조를 두는 스타일은 있죠. 예를 들어 제이지보다 푸샤 티(Pusha T)가 명확하게 때리는 것 같고요. 그런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저는 늘 라임을 넣어서 랩을 한 거죠. 예전 인터뷰에서도 아마 라이밍 얘기로 화냈을 걸요? (웃음)


리: 맞습니다. (웃음) 당시에 라이밍에 관한 인터뷰나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E: 한국에서 영어 문법 공부하는 방식 같아요. 그게 다 일본에서 온 거라면서요? 원래 선교사들이 영어 가르칠 때 한국이 제일 잘했대요. 어떤 고문서를 봤는데, 애플(Apple)을 진짜로 ‘에-아-뽀’로 적어놓은 문헌이 있어요. 존나 발음 정확하잖아요. 일본 강점기 때 그게 다 박살이 났대요. 그래서 일본식으로 문법을 공부하는 게 지금의 교과서라는 거죠. 가사에 작대기 긋고 라임에 괄호 쳐놓은 그런 것처럼 느껴져서 짜증이 확 나요. (웃음) 왜 거기다가 줄을 치고 있어요.


리: 정말 많았죠. (웃음) 라이밍 방식이 많이 바뀐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엔 바 마지막에 무조건 라임을 넣어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잖아요?


E: 대체로 지금보다 랩을 못 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랩이 재미가 없는데, 왜 이게 멋진 랩인지 물어보면 설명해야 하니까요. 끝에 이렇게 라임이 있으니까 멋있는 랩이다.


리: 10년 전 인터뷰에선 원래 정규 앨범을 2007년에 계획했었다고 이야기했어요. 근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 첫 앨범이 나왔어요.


E: 아, 그랬나요? 당시엔 준비하던 게 있었어요. 가라사대에 있을 때 실제로 EP를 준비했고, 몇 곡이 나왔지만, 회사가 없어졌어요. 타일 뮤직(Tyle Music)에서도 준비하다가 회사가 없어졌고요. 그런 식으로 미뤄지다가 이거 대체 언제 내는 거야 싶어서 낸 게 믹스테입이에요. 작업한 걸 풀어버리고 나서 아메바 컬쳐(Ameba Culture)와 딜이 된 거죠. 그렇다 보니 첫 앨범이 제 솔로 앨범이 아니게 된 거죠. 또 저는 주변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작업했으면 평생 앨범을 못 냈을 성격 같기도 해요. 일주일 전에 녹음한 걸 다시 들어보면 무조건 별로인 것 같은 거죠. 성격을 고쳐야 되는 것 같아요. 지금 [이방인]에 들어간 트랙리스트도 사실 열 다섯 트랙 중에 열 세 트랙은 버리자고 했던 곡인데, 동료들이 괜찮다고 해서 넣었어요.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어요. 성격이 이상한 건지… (웃음) 깊게 생각해 볼만한 문제네요.


리: 첫 팝업스토어 때 공개했던 트랙리스트에서도 변화가 있었죠?


E: 제목만 바뀌었죠. 제목이 정해지지 않아서 비트 제목을 그대로 써놨을 거예요. 그 제목으로 갈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제가 제목을 은근히 막 짓거든요. (웃음) “DON”같은 경우도 제목을 어떻게 할지 얘기하다가 “이게 다 돈이지 뭐”라고 해서 지은 제목이고, “CLOCK”도 그냥 “Clock is ticking” 하니까 “CLOCK”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노래 제목을 잘 기억 못 해요. 제목을 기억하는 곡은 진짜 개 꽂힌 경우죠. “야, 그거 되게 좋았잖아?” 정도론 제목을 잘 몰라요.

리: 예전 인터뷰에선 버벌진트(Verbal Jint)와 했던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E: 글쎄요. 이제 음악을 오래해서 그런지, 저보단 사람들이 뭘 많이 기억하는지로 기준이 바뀌는 것 같아요. 지금 처음 생각해봤네요. 저는 계속 음악을 만들 뿐이고, 소비하고 듣는 사람들이 뭘 많이 이야기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어제인가? 2007년~2008년쯤 피처링했던 노래들을 듣는데 행복했던 23살이 느껴지더라고요. 헤어졌던 여자친구 때문에 쓴 노래가 “정열의 방”이었는데… 돌아보니까 노래로 남겨놓기를 참 잘한 것 같더라고요. 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은데 이 노래 어땠냐고 물어보면 다 기억이 나는 거죠. 제가 만약 결혼해서 아들, 딸이 연애를 하다가 질질 짜고 있으면 아빠가 21살 때 쓴 이별노래를 들려주면 어떨까? 생각을 했어요. 멋질 것 같아요.


리: 음악을 할 때 비교하게 되는 뮤지션이 있나요?


E: 없어요. 만약 한다면 모두와 하겠죠? 잘 한다고 느껴지는 모두랑요. 모두한테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리: 10년 전엔 세계 최고랑만 비교한다고 답변했었네요. (웃음)


E: 허세 끼가 있었나? (웃음) 제가 듣고 반했던 래퍼들이 사실 어디에 내놔도 안 꿀리고 세계 최고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땐 그런 심리도 있던 것 같아요. 당시엔 한국 래퍼들이 랩을 그렇게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들끼리 비교하는 게 웃겨서 좀 들으라고 했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야, 잘 하는 사람이 지구에 존나 많은데 그 사람들 것 듣고 배우면 되지! 당시만 해도 랩을 할 줄만 알아도 인기를 얻던 시기에요. 지금은 다 랩을 할 줄 알고,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시대고요. 한국 한정으로요. 지금 래퍼들은 다 랩을 잘 하잖아요? 저는 그때 랩을 할 줄 알던 키드 중 하나였고요. 그때는 랩이 자리를 잡은 게 아니라 발전하는 중이었는데, 자기들끼리 누가 더 잘 하고 구리다 하는 게 웃기기도 했어요. 여기보다 잘 해서 뭐 할 건데? (웃음)




리: 더불어 래퍼로서 갖춰야 할 자질로서 ‘솔직함’을 꼽았었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E: 당시엔 ‘래퍼=나=강민호’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지금 치환해보면 그건 래퍼로서가 아니라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지금은 래퍼한테 솔직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예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음악이 멋지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결국 엔터테인먼트니까요. 비기 다큐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다큐에서 비기 어머니한테 질문을 해요. “비기가 17살 때 침대 밑에서 크랙(Crack) 뭉치를 꺼내서 거래했다는 가사를 썼는데, 정말 그랬나요?”, “아뇨, 우리 크리스토퍼는 밝은 아이였어요.” 왓!? 진짜!? 거기서 확 깬 게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존나 빠돌이었던 사람이 그랬으니까 그래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게 결국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이구나. 너무 신념만 강조되는 게 다가 아니구나. 물론, 신념을 강조하는 것도 멋있죠.


리: 제이지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토크 쇼에 나와서 래퍼들이 쓰는 가사는 전부 진실이냐고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더군요.


E: 어릴 때 저는 진실이 아닌 모든 것을 극혐하는 부류이긴 했어요. 래퍼들이 단칸방에서 고기 먹을 돈도 없으면서 여자 꼬시는 얘기만 쓴다고요. 와중에 저는 짠내 나는 얘기를 했고요. 그런데 거기에서 이득을 본 것 같은 게, 신선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랩을 잘 하는 친구들도 많이 없었고, 그래서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았던 거죠.


리: 그런 상황에서 “꽐라”는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E: 그런 의도는 없었고, 제가 클럽에서 호스트를 봤어요. 거기서 노니까 그 얘기를 한 거죠. 뭐 ‘프라다 그런 건 몰라 난’ 이런 가사가 나오잖아요? 이런 깡이죠. 나는 돈이 없어도 이렇게 놀 수 있다고요.


리: 화제가 되었던 곡이죠. 클럽튠이 거의 없던 시절이기도 하고요.


E: 제 스타일이 변한 기점이기도 하죠. 여자친구도 못 사귀어 본 16~17살짜리 꼬마가 냈던 [Uncut, Pure!!]에서 클럽에서 일하고, 형들 노는 거 보고, 슬슬 변하기 시작한 거죠. 그땐 조금 고루한 이야기만 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나는 클럽에서 일하면서 넬리(Nelly)를 듣고, 피프티 센트(50 Cent) “In Da Club”이 존나 히트치고, 캐시디(Cassidy)도 히트치고 있는데 이런 곡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리: 언더그라운드가 강조되던 시절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예전 인터뷰에서 언더그라운드는 없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도 생각은 변함없나요?


E: 와, 그랬었나요? 민호야, 잘했다! (전원웃음) 얼마 전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는데, 서브컬쳐,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에 씌워진 선입견이 있잖아요? 언더그라운드는 진정하고, 메이저는 돈이 전부고… 그런데 사실 언더그라운드고 자시고 돈이 개입되지 않는 바닥이 어디 있겠어요? 한마디로 그거죠. 얘네는 멋있기라도 한데, 언더그라운드라고 구리면서 멋만 든 애들이 많았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언더그라운드는 의미가 없어요.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거죠. 그래도 씬(Scene)이라는 건 있어요. 씬이 없다는 건 나이 든 사람의 의견이에요. 자기가 어릴 때 느꼈던 그 분위기가 없어진 거죠. 다 자기들끼리 교류합니다. 음악 서로 보내고, 어느 백스테이지에서 만나서 이야기하고요. 없지 않습니다.


리: 메이저 레이블에서 콜이 오면 갈 마음이 있다고도 했었어요.


E: 언더그라운드를 표방하는 것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이 있었어요. 말만 저렇지, 하는 짓은 똑같고, 여기는 돈만 더 없잖아? 저기는 돈이라도 많지. 지금 회사는 메이저고, 언더고 다 떠나서 일 존나 잘 하는 회사인 것 같아요. 최고죠.


리: 어떻게 함께하게 된 거예요?


E: 대표랑 얘기하다가요. 계획을 들었는데, 우와, 진짜 멋있겠다 싶었어요. 난 거기서 랩 하면 되겠다! 바나(BANA)가 음반 레이블로 시작한 건 아닌데, 에릭 오(Erick Oh) 형처럼 애니메이션 하는 사람도 있고. 처음엔 완전히 소속까진 아니고, 재미있는 작업 몇 가지를 해볼 수 있지 않겠나 해서 시작했어요. 얘기가 점점 통해서 진행이 됐죠. 자세한 얘기는… 아주 나중에 할 겁니다. (웃음) 아름다운 역사거든요.


리: 그럼 앨범 얘기를 해보죠. [The Anecdote]때와는 다르게 직접 반응을 체감하고 있는데, 기분이 어때요?


E: 존나 좋네요. (웃음) 이게 음악 하는 사람 기분이구나!


리: 팀으로 앨범을 낼 때랑은 감흥이 다른 것 같아요.


E: 왜냐하면 오롯이 제 욕심으로 낸 거니까요. 제 결과물이고, 받아들이는 게 다르죠. 오래 걸리기도 했고요.


리: 출소 당시 사진에 노트 다발이 있어서 화제가 되었어요. 그런데, 출소 후에 한번도 읽지 않았다고 하던데, [이방인]의 실제 작업 기간은 얼마나 된 건가요?


E: 2017년 1월부터 지금까지요. 오래 걸렸다고 하는데, 갇혀있던 시간이 있어서 그렇지 그렇게 비정상적인 기간은 아니더라고요? 뮤지션들 3~4년에 한 장씩 내는 경우도 수두룩한걸요. 허슬하면 눈에 띄니까 그렇죠. 1년에 두 장씩 내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한국힙합 머릿수가 작아서 그래요. 들을 게 한 달에 20개씩 나와서 부지런히 듣는 씬이 아니라, 통틀어도 몇 장이 안 되잖아요? 빈약한 거죠.


리: 특히, 정규 단위의 작업물은 더 줄어들고 있죠.


E: 네. 그래도 방송에 나와서 얼굴을 비추면 눈에 더 걸리니까, 조용히 앨범만 내면 상대적으로 가끔 나오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런 거 아닐까요? 저 같은 경우도 이런 저런 활동하고 노출이 되었다면 그렇게 길게 느껴졌을 것 같진 않아요. 제 욕심에 새 앨범이 나오기 전엔 어떤 활동도 하기 싫었죠. 실제로 작업실에만 처박혀 있었어요. 토 나와요. (웃음)


리: 한국힙합엔 일종의 밈(Meme)처럼 주기적으로 사람들이 기다리는 앨범이 있는 것 같아요.


E: 그 자체는 그래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다려줬다는 거니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열심히 할 겁니다.

리: 조금 이른 질문이지만, 그럼 다음 작업물은 더 빨리 만나볼 수 있을까요?


E: 얘기를 하지 않을 거예요. (전원웃음) 또 작업에 들어가긴 할 거예요. 새 음악들이 더 있으니까요. 기약은 못하겠어요. 제가 뱉는 동시에 제가 한 말에 갇혀버려요. 다음 앨범은 이런 앨범일 거라고 해버리면 제 이야기에 갇혀요. 어떤 결과물을 낼 거라는 건 지금 결과가 나온 게 아니라, 제 상상이잖아요?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을 가지고 이빨 치는 거잖아요. (웃음) 좆되는 거죠.

리: [이방인] 발매일이 확정된 이후부터 여러 온라인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도 활발하게 만나볼 수 있을까요?


E: 음악을 보여주는 데 진짜 멋진 포맷이면 다 하고 싶어요.




리: 전작도 그렇고 [이방인]에서도,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상경’이라고 느꼈어요. 서울에 대한 인상이 궁금합니다.


E: 웃긴 것 중에 하나가, 촌놈이 상경하는 게 음악하는데 제일 유리한 것 같다는 말을 농담처럼 해요. 물론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 나름의 바이브가 있겠지만, 이건 제 경우죠. 되게 상징적으로 다가온 것들이 많았어요. 청담동 처음 가봤을 때나 좋은 공연장, 큰 클럽을 처음 가봤을 때. 그런 것들이 상징적으로 다가오기 좋은 게 촌놈인 것 같아요. ‘와우! 처음 보네? 나도 저런 걸 할 건데!’ 옆에서 늘 보던 것들이 아니니까 더 크게 느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삶에 덤비는 느낌에 가장 큰 영감이 있지 않나 싶어요. 던져진 기분이요. 상경이라는 게 가족 품 떠나서 혼자 툭 떨어진 거잖아요? 그 감성으로 쭉 산 것 같아요. 피곤하긴 해요.


리: 서울로 올라왔던 시기가 언제쯤이죠?


E: 2006년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한 학기 마치고 휴학 때리고 올라왔어요. 그게 2006년이었던 것 같아요.


리: 그럼 그때부터 영등포에 있었던 건가요?


E: 아뇨, 양재동에 있었고, 분당에 빌붙어서 산 적도 있고, 영등포랑 홍대에도 살았고요. 영등포랑 마포구 근처에 가장 오래 살았어요.


리: 음악에 영등포가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E: 거기 바이브가 별로에요. 영등포 자체가 그런 건 아니고 당산이나 이런 쪽은 밝고 괜찮은데, 제가 있던 곳은 칙칙해요. 제가 올라와서 충격 받은 건 청담동, 강남이나 이태원의 분위기, 홍대의 느낌 같은 것들인데, 그런 것들과 비교되게 존나 칙칙하고, 축축했어요. 제 금전적 상황도 한 몫 했고요. 저에겐 영등포가 그런 느낌의 장소에요. 엄청 고생했고, 찌질거리던 동네였어요. 영등포 옥탑에만 세 번 살았어요.


리: 보너스 트랙 “DON”이랑 “서울”, 두 곡을 CD ONLY로 넣은 이유가 있을까요?


E: 좋은 노래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서울”을 되게 좋아해서, 첫 싱글로 낼 생각도 했었어요. 아까 얘기했던 ‘상경’ 코드나, 제가 삶에 덤비는 느낌이 감동적으로 나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캐치한 노래는 아니지만, 믹스된 걸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제일 감동적이었어요. 앨범 산 사람들이 1번부터 마지막 “Bad Idea”가 끝나고 나서 듣는 마지막 순서잖아요? 제 과정을 함께한 팬들이라면 더 완벽한 아웃트로(Outro)로 느껴질 것 같았어요. 그냥 듣는다면, “Bad Idea”는 [이방인]의 진행 과정일 수도 있고, 누구에겐 첫 계단일 수도 있을 거고요. 저를 오래 전부터 들어줬던 팬들이나 상경하는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앨범을 사는 거잖아요? “야, 쟤 누구야?”하는 사람이 갑자기 앨범을 사진 않아요. 그래서 앨범을 산 분들이 마지막에 들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리: 사실, “DON”과 “서울”이 앨범의 주제를 압축하는 두 가지 주제라고 생각했어요.


E: 앨범 전반이 그거에요. 다 그렇죠. 저는 늘 모든 노래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The Anecdote]가 제 첫 솔로 앨범이 되니까 오히려 이야기하기 좋은 것 같아요. 이걸 냈던 놈이 [이방인]은 돈으로만 채웠다고 하는데, [이방인]에서 다룬 주제들은 제 평생의 주제에요. 앞으로도 나올 주제고, 죽기 전까지 나올 주제죠. 모두의 주제이기도 하지 않나요? 돈, 벌어먹고 살기! 같은 주제만 있어서 지겹다는 의견은 저한테 재고할 가치가 없는 피드백이에요. 이렇게 사는걸요. 그럼 갑자기 무슨 얘기를 해야 해요?


리: 두 장의 앨범을 통해 돈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차트 인을 노린 흥행 코드는 배제된 것 같아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E: 일부러 배제한 건 아니에요. 어디서든 캐치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닌 건 알죠. 그래도 그냥 음악이 나왔으니까 낸 거예요. 너무 단순합니다. 저는 음악 할 때 복잡한 의도는 넣지 않아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떠오르는 걸 쓸 뿐이에요. 단순하죠.


리: 그럼 본인이 생각하기에 [The Anecdote]와 [이방인]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E: 저는 [이방인]을 더 좋아해요. [The Anecdote]에는 아무래도 저를 들킨 느낌이 있어요. 그런 거죠. 사람이 멀끔해 보이고 싶지, 맨날 만나는 사람마다 힘들었던 얘기나 꿈이 뭔지 모르겠다는 얘기나 하고 싶겠어요? [The Anecdote]는 내고 싶었던 앨범이 아니에요. 그래도 나온 거고, 이 앨범을 듣고 제게 서포트를 보내준 분들에겐 깊게 감사 드리고 싶죠.


리: 앨범에 트랩 프로덕션 비중이 늘기도 했고, 다양한 해외 프로듀서가 참여했는데 비트를 선택한 과정이 궁금해요.


E: 그냥 땡기는 걸 가져다 썼습니다. 회사에서 해외 프로듀서들과 컨셉트를 설명하고 컨택을 했어요. 래퍼에겐 최고의 시스템이에요. 저는 누구의 비트인지 모르는 채로 들어요. 곡을 고르다 보면 파일에 프로듀서 이름이 써있는데 처음 보는 분들 것도 있었고요. 또, 드류버드(Drewbyrd)와 커셔스 클레이(Cautious Clay) 같은 경우는 같은 장소에서 캠프를 진행하면서 작업했어요. 디샌더스(D.Sanders) 같은 경우도 [Moonshine]때 직접 왔었는데 꼽사리 껴서 “손님” 녹음하고요. (웃음) 그 외에 250 형이나 프랭크(FRNK)는 만드는 동안 제 맥북에 있는 랜덤한 비트를 작업하고 녹음하기도 했고요. [I’M Good] 다큐멘터리를 보면 파주도 가고, 제주도도 가고 그래요. 그럴 때는 외부 프로듀서가 아닌 그런 비트들을 틀고 작업한 거예요.


리: 그렇게 많은 프로듀서가 참여했는데, 어느 정도 일관된 분위기가 유지된 것 같아요.


E: 편곡 과정에서 커셔스 클레이랑 프랭크가 애를 많이 써줬어요. 진짜 고생 많이 했어요. 질감을 통일하려고 손을 많이 봤고, 무드가 맞아서 가사를 썼는데 배치해보니까 생뚱맞은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부분을 다 손봤기 때문에 유기성이 있어요. 피드백 중에 아무래도 랜덤하게 고르다 보니 유기성이 떨어진다며 아는 척을 하는데, 그 유기성을 위해 몇 십 곡 중에서 열 다섯 곡을 골라 트랙배치를 신경 쓴 건데요. 유기성이 존나 있는 것 같은데요? (웃음) 물론, [킁]처럼 1MC 1프로듀서로 바이브를 통일한 건 아니더라도, 꼭 모든 곡이 비슷해야 유기성이 아니잖아요? 멍청한 소리잖아요. 흐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가 왜 흥분했죠? (웃음)


리: (웃음) 피드백을 어느 정도 찾아보는 편인가 봐요.


E: 앨범을 내고 나선 좋은 평이 많으니까, 신나게 돌아다녔죠. 야 좋대! 그러면서요. (웃음) 그러다가 참 못난 성격인 게, 안 좋은 거 몇 개 보고 “야, 저 새끼 뭐라는 거냐?” 그러고… 누굴 무시한 건 아닙니다. 사람으로서, 달콤한 소리 아니면 순간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예요. (웃음) 재고해볼 수도 있는 건데, 커뮤니티 반응은 하나하나 보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운 것 같아요. 딱 좋을 때까지 하고 끊은 것 같아요. 좋을 때라기보단, 좋다가 안 좋기 시작할 때 끊었어요. 거의 한 2주 동안의 반응만 보고 신나있었으니까요.


리: 아까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수록곡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 있나요?


E: 전 다 좋아요. 그날마다 다르기도 하죠. 다른 인터뷰에선 “CLOCK”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오늘 말하다 보니까 “서울”이 제일 감동적이라고 했듯이요.


리: 반대로, 작업 과정에서 유독 속을 썩인 곡은요?


E: 그런 곡은 없어요. 거의 하루 안에 다 나오거든요. 하루 안에 안 나오면 그 곡은 그냥 버려요. 쟁여놨다가 다시 꺼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리: 도중에 사운드클라우드(Sound Cloud)를 통해서 공개하거나 카세트 테이프로만 수록한 곡도 있잖아요? 이런 것들은 원래 [이방인]의 수록을 고려했던 곡인가요?


E: 그런 것들도 있고, “WTFRU”의 경우는 당시만 해도 달라요. 제가 2017년 4월에 앨범을 낸다고 얘기했을 때만 해도 대충 앨범을 낼 만큼의 트랙 수는 쌓여있었어요. 항상 이 정도의 숫자는 후보군으로 뒀었는데, 별로인 것 같아서 넘기고, 한 방이 없다 싶어서 넘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WTFRU”는 그 당시에 앨범을 냈다면 들어갔을 것 같은 곡이에요.


리: 전에 작업한 트랙들에 따로 미련을 두지 않는 타입인 것 같아요.


E: 너무 욕심이 나서 버리고 싶지 않았다면 버리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에넥도트’ 캠프 이후론 바로 완성이 안되면 안 되는 노래라고 넘겨버리는 것 같아요. 어릴 때도 번개송으로 정말 많이 만들 땐 1년에 200개 넘게 작업했어요. 어디 낼 생각이 없으니까 조금씩 해놓고 쌓아놨는데, 그 하드를 잃어버렸어요. 그 중에 고른 게 [New Blood, Rapper Vol.1]이었고요. 그렇다 보니 나온 노래들은 거의 그날 작업한 게 많아요. 오래 붙잡은 곡은 손에 꼽아요.


리: 카세트 테이프 제작은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E: 회사의 아이디어죠. 특별하지 않을까 싶었죠. 사운드클라우드에 곡을 풀기 시작할 때 이미 그 아이디어가 나와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좋은 것 같아서 동의했죠. 사라져가는 추세라 플레이 하긴 어려워도, 소장용으로 의미가 있으니까요.


리: 김심야(Kim Xymya)가 참여한 신곡도 수록되어있는데, 다른 채널로 공개할 생각은 없나요?


E: 저는 노 아이디어에요. 회사의 선택이죠. 꼭두각시는 아닙니다. (웃음) 굉장히 신뢰하는 거죠. 모두 저를 위한 거란 걸 알기 때문에 전략 같은 부분엔 관여하지 않는 편이에요.


리: 많은 사람들이 단독 공연을 기대하고 있는데, 계획이 있겠죠?


E: 논의 중이라 지금 얘기할 순 없습니다. 무조건 해야죠.


리: [The Anecdote] 콘서트 때는 기분이 어땠어요?


E: 저를 서포트해준 분들이 오는 거니까 계속 고마운 마음이었고, 차오르는 느낌이었어요.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원래 그 투어 때 [이방인]이 발매된 상태여야 했어요. (웃음) 그래서, [The Anecdote]도 하고, 어느 시간대에는 [이방인]도 쭉 부를 예정이었는데… 진짜 멋있겠다 했는데 멘탈 빠그라졌죠.


리: DJ세트와 밴드 세트를 나눠서 했었죠?


E: 금요일에 DJ, 토요일에 밴드 세트였어요. MC & DJ는 힙합에서 영원할 조합이고, 밴드는 또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리: 마지막으로, 2008년 인터뷰에서 마지막에 물어봤던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답변을 다시 듣고 싶어요. 첫째로, 내 인생의 명반이 있다면 뽑아줄 수 있을까요?


E: 한 장만 뽑아야 돼요? (리: 아뇨, 상관없습니다.) 제이지의 [Blueprint], 로린 힐(Lauryn Hill)의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이 존나 명반인 것 같고요, 나스(Nas)의 [Stillmatic]. 아무래도 자기가 가장 팬보이였을 때 들은 음악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켄드릭 라마(Kendrick Larmar)도 그렇고, 좋은 게 너무 많은데 평생으로 꼽으라면 그 시기에 들었던 걸 꼽을 것 같네요.


리: 두 번째, 이센스에게 힙합이란?


E: 힙합은 그냥 힙합이에요.


리: 마지막입니다. 리스펙트 하는 대상은?


E: 모두를 리스펙트할게요. (웃음) 정치적인 답변은 아니고요. 결국은 거기서 샘솟는 게 제일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리: 인터뷰 응해줘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E: 고맙습니다. 모든 서포트에 대해서요. 제가 힘들었던 건 저의 인생을 위했기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였고, 결국 이겨내는 것도 저를 위해서였는데,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저에게 사랑을 보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해요. 항상 앨범을 내고 나면 그 감사함을 크게 느낍니다.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그걸 기억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항상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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