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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인터뷰 이센스(E Sens) 2008년 인터뷰

한국힙합위키

이센스(E Sens) 2008년 인터뷰 리드머 작성 | 2015-08-25 16:46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34 | 스크랩스크랩 | 49,403 View


인터뷰, 글: 강일권



많은 이의 애를 태우던 이센스(E-Sens)의 첫 번째 정규 앨범 [The Anecdote]의 발매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008년, 리드머에서는 아직 힙합 팬들에게 그의 존재가 각인되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를 인터뷰한 바 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리드머 식구들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던 사이트 다운 사건 이후, 그동안 올라갔던 컨텐츠 중 30% 가량이 소실되었는데, 해당 인터뷰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며칠 전, 저장된 파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 인터뷰의 원본 문서를 우연히 하드에서 발견했다. 마침 '에넥도트'의 발매가 얼마 남지 않은 바, 진솔하고 진중한 내용 가득했던 당시의 인터뷰를 다시 공개해본다. 몇몇 지점의 맞춤법과 문장을 좀 더 부드럽게 다듬은 걸 제외하면, 2008년 원본 그대로임을 밝힌다.



리드머(이하 '리'): 안녕하세요, 이센스 씨. 반갑습니다. 근황부터 묻고 가야겠네요. 어떻게 지냈나요?


이센스(이하 'E'): 2007년 6월부터 슈프림 팀이란 프로젝트 팀을 결성해서 공연을 많이 했어요. 제 솔로 앨범도 준비하고 있고, 믹스테입 작업도 하고 있고요. 그리고 생계 유지를 하고 있어요.


리: 일을 하는 건가요?


E: 정기적인 일은 아니에요. 작업을 할 수 없어서 못하죠. 그냥 아르바이트 식으로 하죠. 한 번씩 노가다도 하고요. 사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웃음)


리: 노가다가 한 번에 돈이 많이 들어오긴 하죠. 첫 만남이니 닉네임에 대한 이야기부터 물어봐야겠네요.


E: 중 3때부터 사용한 닉네임인데요. 그때 지역에서 랩 대회가 있었는데, 거기 나갈 때 닉네임이 필요해서 지었어요. 'E-Sens'에서 ‘E'는 'essayistic(수필적인, 작가적인)'이에요. 작가적인 느낌, 즉'essayistic sens'죠.


리: 얼마 전 온라인에 올린 믹스테입에서는 블랭키 먼(Blanky Munn)이란 닉네임을 썼는데요. 닉네임을 따로 쓰는 이유가 뭔가요?


E: 이센스는 작가적 느낌이 센데요. 제 개인적 성격을 보면, 입 벌리고 멍하게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게으르고 멍하고 시끄러운 느낌. 이런 이미지도 랩퍼같다는 생각에 사용하게 됐죠.


리: 혹시 또 다른 닉네임이 있나요?


E: 중3때 영화 [허리케인 카터]를 보고 뻑 갔어요. 이게 남자다 싶어서. 그래서 카터란 이름에 제 성 약자를 붙여서 ‘카터 케이’ 뭐 이런 거 있었죠. 그 외에는 너무 부끄럽네요.


리: 그럼 공식적 닉네임은 2개라고 정리하면 될까요?


E: 네, E-sens a.k.a Blanky Munn이죠.


리: 아까 말씀했던 랩 대회는 혼자 나갔었던 거예요?


E: 아니요. 친구랑 팀으로 나갔고, 1등을 했어요.


리: 처음 힙합에 빠져든 계기가 궁금해요.


E: 어릴 때는 TV로 노토리어스 비아이쥐(Notorious B.I.G)나 드렁큰 타이거, 원타임을 보기는 했어요. 근데 적극적으로 제가 찾기 시작한 건 인터넷을 시작하면서부터예요. 인터넷에서 외국 음악이든 언더든 가리지 않고 찾아 들었고, 동아리도 가입했죠. 전 나스(Nas)보다 에소테릭(Esoteric)을 먼저 들었어요. 약간 변태적으로 시작했죠. 그러다 중3 때 직접 가사를 쓰면서 점점 더 빠지게 됐고요.


리: 한국 힙합을 먼저 들었던 것 맞죠?


E: 네. 힙합이라고 처음으로 인지했던 음악은 한국 힙합이었죠. 한국 힙합을 먼저 듣고, 나중에 제가 들었던 외국 음악들이 힙합이란 걸 알았죠.


리: 그때 랩퍼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E: 랩퍼가 되겠다고 의식적으로 다짐하진 않았어요. 그땐 그냥 공부하는 게 싫었고, 수업도 잘 안 들었어요. 특히, 수학 시간엔 이어폰 꽂고 한국 힙합 들으면서 혼자 ‘나는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가사를 썼던 거죠. 그땐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웃음) 랩 대회에서 2번 정도 1등을 했을 때도 랩퍼가 되겠단 생각은 안 했어요.


리: 그럼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E: 고2가 됐을 때, 나도 이거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그때 TV에 힙합하는 사람들이 나오더라고요. 그 사람들 보면서 ‘이걸로도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조금씩 들었죠. 그게 지금까지 온 거고요.


리: 뚜렷한 계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랩퍼의 길로 들어온 거네요. 랩퍼가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어요?


E: 랩 대회를 나가기 전에는 그냥 동아리 공연하면서 돌아다녔어요. 근데 대회를 나간 후부터는 대구 정기 공연 무대에 제가 이름을 올리게 된 거에요. 그때 공연을 하면서, 처음으로 좀 더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단 생각을 했어요. 그 전까지는 제 랩은 학교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공연을 듣는 사람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잖아요. 그때부터 들려주는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고려한 가사를 쓰기 시작했고, 인간의 공통적인 주제를 건드려야겠단 생각도 했고요. 또 공연하는 다른 형들 보면서 스타일 연구도 하고, 친구들이 TV에 나오는 뮤지션 중 누굴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뭐 이런 식의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점점 음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 거죠.


리: 처음에 랩은 주로 학교에 대한 이야기였군요.


E: 그렇죠. 아마 지금 힙합 시작하는 애들도 그럴 거예요. 특히, 제가 힙합 시작할 때 이슈였던 가수가 조PD였어요. 그래서인지 그때 힙합은 뭘 좀 하는 형들이 구린 걸 욕하는 이미지였죠. 근데 당시 제 생활환경에서 구린 건 없었거든요. 그런데 학교는 구리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학교 이야기를 주로 했죠. (웃음) 그러다가 고민이 더 넓어졌어요. 전 힙합의 그런 태도가 멋지다고 생각해요.


리: 생활환경에서 구린 게 별로 없었다는 건 주변 환경이 유복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웃음)


E: 그건 아니에요. 저희 집은 전혀 넉넉하지 않았어요.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고. 편하게 원하는 걸 사달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에어포스가 아니라 컨버스 하나 사서 발가락 나올 때까지 신고 그랬죠.


리: 그러면 충분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E: 근데 그 와중에서도 전 '아~ 내가 최고로 힘들구나.‘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힙합하려면 이 정도 힘들어줘야 한다고, 그래야 가사가 나온다고 생각했죠.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한 거죠. (웃음)


리: 집안 형편이 달랐다면 어땠을까요?


E: 제가 넉넉했다면 이런 길로 빠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제가 원하는 것들이 바로 충족될 수 있었다면, 이런 감성 자체가 없었을 거예요. 음악 하려면 사람들의 심리도 봐야 하고, 다른 이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내 안의 것과 일치시키는 작업들을 해야 하는데... 아마 안 했겠죠.


리: 멋집니다. 지금까지 활동한 지가 몇 년 된 건가요?


E: 음... 무대에 공식적으로 서게 된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2008년 현재 햇수로 7년이네요.


리: 진짜 어린 나이부터 시작했군요. 첫 번째 결과물이 플래닛 블랙과 함께 냈던 [Uncut Pure]였죠? 원래 플래닛 블랙 씨와 친분이 있었나요?



E: 아뇨, 처음에는 서로 몰랐어요. 작업하면서 알게 됐죠.


리: 그럼 어떻게 작업이 진행된 건가요?


E: 그 당시 정기 공연을 하면서 소울 컴퍼니 형들도 알게 되고, "People & Places" 피처링 작업을 하면서 엘큐 형과도 알게 됐어요. 원래 그때 솔로 EP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가 고등학생 신분이라 작업이 잘 진척되지 않았어요. 때마침 엘큐 형이 저한테 제안을 했죠. 저도, 플래닛 블랙도 인지도가 없는 상황이니까, 둘이 묶어서 내는 새로운 포맷의 더블EP를 만들자고요. 서로 곡 섞는 것도 없이 완전한 더블EP로.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포맷만 새로웠지, 장점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웃음) 근데 당시에는 열심히 했고, 그때 제가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준 것 같아요. 만약, 그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그때 열심히 했던 제 모습은 머릿속에만 있을 뿐 남겨지지 않았겠죠. 그렇게 기록으로 남겨 있다는 게 저한테는 참 소중해요.


리: 개인적으로 “Untouchable"이라는 곡을 가장 인상 깊게 들었었어요. 첫 결과물이었던 만큼 이센스 씨의 기억에 남는 특별한 곡도 있을 것 같은데요?


E: 모든 곡이 다 기억에 남는데요. "The Day"는 공연을 시작한 첫 곡이고, 그래서 바로 녹음했어요. “Untouchable"은 되게 시간이 오래 걸린 곡 이에요. ‘라임으로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쓴 그런 곡이고요. 제가 라임이 없다고 지적하시는 분들은 이 곡을 들어보세요. (웃음)


리: 이후에 온라인으로 공개한 믹스테입 이야길 해보죠. 믹스테입은 한국에서 아직 인지도가 부족한데요. 공개 후에 느낌이 어땠나요?


E: 일단 제가 공짜로 공개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 싶고요. 그리고 아직 한국에서는 믹스테입 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없고, 시도하는 사람도 없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계속 하고 싶고요.


리: 믹스테입과 다른 음반 작업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해요?


E: 저는 본능적으로 랩을 하는 랩퍼가 좋아요. 그래서 믹스테입이 좋고요. 믹스테입은 듣는 사람들한테 새로운 걸 보여줄 수도 있고, 또 랩퍼 스스로 듣는 사람 생각 안하고 한두 곡정도 넣을 수도 있고.


리: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요. 이센스 씨 활동 초기 때 우연히 공연을 본 적 있어요. 그때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도 본능적으로 랩을 하는 랩퍼가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접니다.” 뭐 이런 식의 멘트를 했었던 것 같아요.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기억하나요?


E: 음... 네,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아요. 랩시티(Rap City) 아시죠? 랩시티 프리스타일. 거기서 랩을 편하게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제이지(Jay-Z)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랩을 하더라고요. 근데 전 그게 안 됐어요. 어떻게 저러나 싶어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는데, 주위에 음악을 하는 형들이 그랬어요. 동양인들은 어쩔 수 없다고요. 목 자체가 다르다고. 그래도 계속 연습을 했고, 하니까 되더라고요. 지금은 더 나아졌어요.


리: 본능적으로 랩을 한다는 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 랩은 학문이 아니라 노는 거예요.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책상 문화같이 랩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가사와 라임을 보면 멋지죠. 그런데 문제는 들었을 때 죽여주지 않는 거예요. 차라리 가사가 이상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이거 랩이다’ 싶은 게 진짜 랩이죠. 그런 랩에 가사까지 잘 쓰면 이게 최고인데, 왜 가사는 그렇게 공을 들이면서 랩에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느냐는 거죠. 동양인이라는 한계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2005년에 한계를 뒀다면 지금의 저는 없어요. 계속 그때 스타일로 앨범 한 장, 두 장씩 내면서 적당한 커리어를 쌓았겠죠. 하지만 저는 정말 노력했어요. 아직 만족할 수준에 가지는 못했지만, 더 잘해서 그런 느낌에 도달하도록 노력하려고요.


리: 이센스 씨 랩은 국내에서는 약간 특이한 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흑인 래퍼들의 스타일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는 래퍼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스너들이 느끼는 이센스 씨의 랩은 어떤 것 같아요?


E: 요즘 피드백을 받으면서 느끼는 건데요. 제가 라임이 약하고, 플로우로 라임을 다 까먹는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전 라임을 쓴다고 썼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좀 기분이 그렇더라고요. 근데 가만 보니까 제 가사가 라임으로 딱딱 들려서 외우기 쉬운 게 별로 없어요. 이게 제가 오랫동안 음악을 하면서 익숙해진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약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말 그대로 라임을 딱딱 맞추라면 그렇게 할 수는 있지만, 그러면 제 개성은 사라질 것 같아요. 현재로선 제 장점과 라이밍을 잘 버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둘 다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리: 다시 믹스테입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어쩌면 믹스테입은 정규 음반보다 더 발표하기 힘든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래퍼의 실력과 센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믹스테입이니까요. 실력이 까발려진다고나 할까요?


E: 네, 실력이 까발려지는 것. 그게 믹스테입의 매력이죠. 정규 앨범은 앨범 컨셉트를 짜고, 듣는 사람들을 고려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 교집합을 생각하는 등 좀 더 신중하고 정적이죠. 근데 믹스테입은 즉흥적인 작업이잖아요. 어떤 음악을 듣다가 좋으면 그냥 쓰는 거죠. 마치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어떤 이미지로 포장을 하고 나오지만,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는 연예인은 그런 포장된 이미지가 없는 것과 같이요. 믹스테입은 그런 의미인 것 같아요.


리: 그럼 앞으로 또 믹스테입 계획이 있나요?


E: 네, 믹스테입은 계속 하고 싶어요. 랩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즐기고 싶어요. 이미 [Unknown Verses] 이후에 또 30개 벌스가 쌓였어요. 가사 쓴 곡 중에서 예전에 누락된 곡들과 허락 받아서 “꽐라” 리믹스도 넣고, 공연 했는데 녹음 안 한 곡들도 넣어서 자체 제작할 거예요. 이번에는 씨디로요. 씨디 구워서 재킷 넣고 트랙 넣고 공연장에서 팔 예정이에요. 온라인 판매는 불법이라... (웃음) 공연장에서 사실 수 있어요.


리: 얼마나 제작할 생각이에요?


E: 치사하게 팔릴 때마다 또 만들지, 아니면 몇 장으로 한정해서 그 돈으로 다음 믹스테입을 할지 생각 중이에요.


리: 몇 개의 믹스테입을 만들겠다, 뭐 이런 목표가 있나요?


E: 저는 심심하면 랩을 하니까요. 계속 낼 것 같아요. 정규 앨범 3장에 믹스테입 10장인 랩퍼가 될 수도 있어요. 그냥 내고 싶을 때 낼 거예요.


리: 그러고 보니, 원래 정규 앨범이 2007년에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요?


E: 네, 그런데 외부적인 일이 꼬여서 결과적으로 잘 안됐죠. 2006년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제 음악에 대한 반응도 바로 받을 수 있는 건 좋았어요. 근데 현실적으로 아직 제 이름으로 장사할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돈은 벌어야 했죠. 2007년은 금전적으로 힘든 한해였어요. 작업하다 접은 곡들이 많았죠.


리: 그랬군요. 아무래도 경제적인 것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죠. 그런데 여기서 “꽐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이 곡으로 한국 힙합 씬에서 이센스 씨의 랩스킬을 알려주는 계기가 됐잖아요. '대중음악상시상식'에서도 싱글 후보에 올랐고 리드머 어워드에도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센스 씨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곡인가요?


E: 남다른 의미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지기펠라즈와 작업할 때, 그냥 착한 가사를 쓰기가 싫었어요. 전 착한 사람이긴 한데, 다른 면도 보여주고 싶었죠. 솔직히 놀 때 누가 진지하게, 착하게 노나요? 전 그냥 실제 노는 모습들을 가사로 담아보고 싶었어요. 근데 그게 많이 이슈가 됐죠. 그렇게 이제는 저에게 의미 있는 곡이 됐네요.


리: 말씀한대로 가사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E: 솔직히 자기 팬이 고등학생들인데, 가사를 저런 걸 쓴다고 욕까지 들은 경우도 있었어요. 근데 전 다르게 생각해요. 전 애들한테 나쁜 걸 조장하기 보다는, 그냥 ‘나도 이렇게 놀 때가 있다’ 뭐 이런 의도였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힙합 하는 사람들이 존나 똑똑하고 잘나서 애들한테 뭔가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으로 비칠 때가 있는데 전 그냥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가끔 욕도 하고 술도 먹는 모습이요. 만약에 이런 걸 이해하는 분들은 “꽐라”를 좋아하겠고, ‘힙합의 주제는 진지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욕할 수 있겠죠. 제 생각에 가사 내용을 문제 삼는 건 개개인의 성격이나 취향 문제인 것 같아요. 근데 이런 이미지의 랩퍼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이런 걸 보여줬다는 거 자체가 재미있어요. 공연할 때 즐겁고요.


리: 사실 우리나라에서 “꽐라”같은 비트는 몇몇 시도들이 있었지만, 인정을 많이 못 받았어요. 그런데 이 곡은 평이 좋았죠.


E: 네. 사람들이 좋게 평가해주고, 재미있게 받아들여줘서 좋죠. 근데 저 술만 먹고 다니지 않아요. 열심히 살아요. (전원 웃음)


리: 그래도 술, 좋아하죠?


E: 네, 주량이 세지는 않지만 좋아하죠.


리: 아, 슈프림 팀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결성된 건가요?


E: 사이먼 형과는 안지 5년이나 됐네요. 처음에는 중간에서 누가 연결해줬어요. ‘대구에 랩 하는 사람 있다’, ‘부산에 랩 하는 사람 있다’ 이런 식으로요. 평소에도 서로 같이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같이 한 번씩 공연을 했죠. 그러다가 부산에서 한 뮤지컬을 같이 하게 됐고, 그때 프로젝트 팀으로 만든 팀이 슈프림 팀이에요.


리: 앨범 계획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E: 아, 정규 앨범에 대한 계획은 원래 없었어요. 계약 얘기가 있긴 했지만요. 그런데 제가 군대문제가 있어서 잘 안됐죠. 애초에 솔로로 시작한 사람들이라 둘 다 솔로로 하기로 했고요. 다른 앨범에 둘이 같이 하는 곡은 있을 거예요.


리: 그럼 아직 팀으로서 계획은 없는 거네요.


E: 네. 전 솔로 앨범을 더 하고 싶어요.


리: 그간 활동했던 이야기들이 대강 정리가 되네요. 그럼 그동안 작업했던 곡 중에서 애착이 가는 곡이나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 곡은 어떤 게 있나요?


E: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아니지만, 최근 버벌 진트 형과 작업한 곡이 기억에 남아요. 진태 형은 저한테 정말 많은 영향을 줬거든요. 리스너 대 뮤지션의 소통으로요. 전 중학교 때부터 꼭 진태형과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해왔어요. 근데 이뤄진 거죠. ‘내가 오래 음악을 했더니 이 정도까지 왔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기분 좋았죠.


리: 인상 깊네요. 사실 같은 씬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뮤지션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말씀을 이렇게 공식적으로 하는 경우는 별로 없거든요.


E: 평가는 듣는 사람들이 하는 거니까요. 제가 어떤 뮤지션을 리스펙트한다고 해서, 제가 그 사람보다 뒤처지는 건 아니잖아요.


리: 그렇죠. 그동안 활동하면서 느낀 점도 많을 것 같아요.


E; 저 개인적으로 늘 같아요. '나는 잘해야 한다', '좋은 가사, 멋있는 음악을 해야한다‘ 이런 마음가짐은 언제나 같아요. 그 상태에서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아요. 근데 주변 상황들, 특히, 요즘 힙합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많아요.


리: 어떤 아쉬움이죠?


E: 제가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힙합 간지라는 게 있었어요. 어떻게 가사를 쓰고, 랩을 하고, 공연을 해야 멋있다는 그런 거요. 팬들도 힙합 간지를 알았고, 그 느낌을 잘 내면 멋있다고 생각했고요. 물론 저도 거기에 빠졌죠. 근데 2005년 즈음부터 느낀 건데요. 힙합 좋아하는 팬층 중 많은 분이 힙합 간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았어요. 원래 서서 공연하면 피드백이 오잖아요. 내 랩이 어떻고, 공연이 어떤지 그런 이야기들이요. 근데 그 피드백이 잘 안 오더라고요. 그냥 무조건 좋대요. 마치 한국에서 랩하면 약간 준 연예인인 것 같고, 특히 남자애들은 랩이 노래보다 괜히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힙합을 듣다가도 학교를 졸업하면 안 듣는 거죠.


리: 음,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


E: 요즘 힙합을 듣는 많은 분들은 무조건 한국 힙합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게 편하긴 해요. 대충 랩만 좀 멋있게 써 놓고 ‘이거 힙합이다’ 이러면 되거든요. 근데 전 그러기는 싫어요. 문화가 그런 식으로 지속되면 결국 생명력이 짧아지는 거예요. 왜냐면, 힙합 자체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 힙합이 질리더라도 다른 외국의 힙합들을 들으면서 계속 힙합 팬으로 남을 수 있어요. 한국 힙합이 침체기일 땐 어떻게든 지속적인 지원도 해줄 수 있겠고요. 근데 한국 힙합만 듣는 사람은 그게 질리면 바로 떠나버리겠죠. 이런 팬들이 늘어날수록 국내 힙합 문화의 열기가 식어버리고, 또 다시 침체기가 올 거예요.


리: 팬층의 연령이 낮아진 것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E: 일단 팬들한테는 정말 고맙죠. 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음반 시장이 큰일 났어도, 인디 씬에서는 힙합이 제일 잘 팔리는 거거든요. 근데 지지층들이 좀 힙합을 더 아는 노력을 해줬으면 해요. 멋진 게 정말 많잖아요. 같이 즐겼으면 좋겠어요.


리: 힙합 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네요. 뮤지션으로서, 또 힙합의 팬으로서 진심이 느껴집니다.


E: 힙합이 왜 멋있는지를 보여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국내 뮤지션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과 팬들이 더 잘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힙합 팬들 중에서도 1000명 중 5명은 아마 미래에 음악을 할 거란 말이에요. 앞으로 뮤지션이 될 사람들은 더더욱 한국 힙합만 들어서는 안 되거든요. 감성이 너무 뻔해요. 일단 씬 자체가 작으니까. 미국은 지역별로 다 다르고, 뮤지션 캐릭터도 엄청나잖아요. 이런 걸 더 들으면서 다양한 음악을 했으면 좋겠어요.


리: 버벌 진트 씨와 생각이 많이 통할 것 같아요.


E: 네, 서로 생각이 비슷하죠. 근데 제가 3년만 늦게 시작했으면 이런 고민 안 했을 것 같아요.


리: 음악 할 때, 혹시 비교하는 뮤지션이 있나요?


E: 무조건 세계 최고랑 비교해요. 수많은 랩퍼들이 각기 다른 장점들을 갖고 있잖아요. 그 사람들과 계속 비교하죠.


리: 많은 사람들 중에 특히 꼽자면 누구요?


E: 당연히 나스(Nas)랑 제이지요. (웃음)


리: 음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과정도 그렇고, 인터뷰하면서 계속 느끼는 건데요. 음악적으로 자신감이 있는 모습이 보기가 좋네요.


E: 저는 항상 그래요. 아무리 못해도 그 당시에는 제가 잘하는 것 같아요. 근데 6개월 지나서 들으면 완전 똥 같죠. (전원 웃음)


리: 밤에 심혈을 기울여 쓴 연애 편지도 그 다음날 보면 참 부끄럽잖아요. 아티스트들 대부분이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E: 그래도 전 항상 자신감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돈 없는데, 자신감이라도 있어야죠. 랩퍼에겐 필수에요.


리: 랩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이 또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E: 무조건 솔직해야 하고, 인간적인 본능에 충실해야 해요. 섹스나 마약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천성이란 거 있잖아요. 그 인간의 천성에 충실해야 하고, 솔직하고 멋있게 그걸 표현해야 한다는 거죠. 가령, 주위 사람들 모두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해요. 그런데 나는 여태껏 신과 상관없이 살았단 말이죠. 그럼 내 안에서 ‘나는 이제껏 신과 상관없이 살았는데, 왜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할까’ 이런 물음이 생겨요. 랩퍼라면 자기 안에 생기는 이런 문제의식에 관심을 갖고, 발전시켜야 하는 거죠.


리: 한 인터뷰에서 언더그라운드는 없다고 한 걸 본 적이 있어요. 여기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생각이 궁금했어요. 그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없나요?


E: 네. 일단 언더그라운드를 정의하는 기준은 매우 개인적인 것 같아요. 저는 자기 사상을 음악에 솔직히 담고, 그걸로 반응을 끌어내는 것, 이게 언더그라운드라고 생각해요. 언더그라운드라고 할 수 없는 건, 자기 이야기를 듣지 않고 무조건 듣는 입장에서 어떻게 반응할 지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도 능력이긴 하지만. 언더그라운드가 없다고 말했던 이유는, 이미 이 조그마한 홍대 바닥 안에서도 음악을 만들면서 상업적인 계산들을 하기 때문이에요. 요렇게 하면 이런 애들이 좋아하고, 저렇게 하면 저런 애들이 좋아한다는 식의 고정된 스타일이 있어요. 제한된 인원을 가지고 나눠먹기 하는 거죠. 이런 거 정말 재미없어요. 이런 건 언더그라운드도 아니고요. 홍대에서 공연한다고 언더그라운드 아니에요. 전 단지 저 자신이 언더그라운드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성공하는 게 음악의 승리라고 생각하고요.


리: 그럼 혹시 메이저 기획사에서 러브콜이 온다면 응할 생각도 있어요?


E: 당연하죠. 돈 많은 환경에서 몸 힘들지 않고, 문화적으로 풍부하게 즐기면서 음악 하는 건 축복이니까요. 근데 문제는, 회사 입장에서 장사하기 편한 모습으로 절 바꾸려고 하는 거겠죠. 그런 식의 계약이라면 내키지 않을 거예요. 가장 좋은 건 내가 나로서 보여줄 수 있는걸 보여주면서, 대중과 합일점을 찾는 거예요. 처음에 덜 성공하겠지만, 점점 팬층을 넓혀갔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제가 조금씩 일궈 놓은 다음에 이런 제 모습을 보고 큰 회사랑 계약을 하면 더 좋겠죠.


리: 하지만 일궈 놓은 게 있어도 큰 기획사와 계약하면 또 다른 얘기가 되거든요.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한가요?


E: 음, ‘이건 이센스가 아니잖아’라는 말을 안 나오게 하고 싶어요. ‘듣기 좋네’ 정도의 반응은 있을 수 있죠. 대중적이면서도 제가 가지고 있는 느낌들을 잘 섞어서 사람들한테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다면요. 그런 합리적 타협들은 가능하다고 봐요.


리: 실제 러브콜하는 회사는 없었나요?


E: 몇 번 있었어요. 근데 잘 안 맞았어요.


리: 그럼 앞으로 공연 계획이나 차후 계획들 좀 얘기해주세요.


E: 일단 2월에는 솔로나 슈프림 팀으로 주말마다 공연하고, 앨범 녹음으로 바쁠 것 같아요. 3월~4월에 EP앨범 나오면 앨범 활동할 거고요.


리: 몇 곡정도 담을 예정이에요?


E: 6~9곡정도요. 진중한 음반, 가사를 위한 음반이 될 거예요.


리: 다른 뮤지션은 누가 참여하나요?


E: 아직 확정된 바가 없어요. 피처링이 없을 수도 있어요. 대중성 있는 건 생각 안 하려고요. 재미없는 음반일 수도 있고, 제가 생각하는 힙합에 가까운 음반이 될 수도 있어요. [소품집]으로 이름 지은 만큼 소소한 제 안의 이야기로 담을 거예요. 전체적으로 담백한 느낌일 겁니다.


리: 어느 정도 완료됐어요?


E: 2곡 녹음했고, 2곡 가사가 완성됐어요. 금방 끝날 것 같아요. 써 놓은 가사가 많거든요.


리: 정규 앨범도 올해 안에 꼭 낼 예정이죠?


E: 네, 뮤지션으로서 제 길을 봤을 때 정규 앨범이 올해는 나와야 해요. 어떻게든 낼 거예요.


리: EP는 자체 제작인가요?


E: 네, 자체 제작이에요. 레이블 안 달고 나와요. 근데 정규 앨범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그 때가서 볼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정규 음반은 회사를 잡아서 하고 싶어요. 좋은 환경에서 돈 들이면서 하고 싶거든요.


리: 이번 EP음반은 어떤 주제인가요?


E: 작년부터 일관된 컨셉트가 있어요. ‘내가 나로서 살아야 한다, 생각하는 방향대로 사는 게 쉽지 않지만, 그렇게 가고 싶다’ 이런 거요. 음악에서 많이 써왔던 주제인데, 이게 이번 앨범의 모토에요. 특별히 어떤 튀는 컨셉트가 아니라, 평범한 이야기죠. 거기서 제가 표현을 잘 하고 싶어요.


리: 그럼 믹스테입 작업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E: 아직 순서를 정하지는 못했어요. EP를 내고 믹스테입이 나올 수도 있고, 정규 음반이 나올 수도 있죠. 근데 아마 믹스테입은 빠른 시일 내에 나올 거예요.


리: 마지막으로 리드머 회원들과 흑인음악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E: 리드머닷넷과 인터뷰하게 돼서 즐거웠고요. 힙합 좋아하고, 흑인음악 좋아하는 입장에서 좋은 거 들려드리고 싶고, “모두 다같이” 흑인음악 안에서 즐겁고 통쾌했으면 합니다. 모르겠어요. 여중생들은 절 좋아하는데. (웃음)


리: 남자들도 이센스 씨 좋아해요. (웃음)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어 고맙습니다.


E: 네. 저도 고맙습니다.



※E-Sens Said


내 인생의 명반

Nas [Stillmatic] & Jay-Z [The Blueprint]


힙합

가장 당당하고 솔직하고 자존감있는 사람의 멋


Respect

1. 배우고 싶어지는 모든 사람

2. 나에게 음악을 듣게 해준 모든 음악인

3. 우리엄마


Simon Dominic

잘 생겼다. 자기가 그걸 안다.

"형도 나도 잘하자구요 :)" 코멘트 등록 체노멜로이데스 체노멜로이데스 (2015-08-25 17:50:33 / 61.82.208.***)추천 0 | 비추 0 2007년에 내기로 한 정규가 8년이 미뤄진건가.. 잘읽었습니다 역시 이센스 변함없는 아이덴티티..꼭 만나서 술한잔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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