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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경(a.k.a 엠브리카) - 알앤비홀릭, 그리고 알앤비를 만들 줄 아는 프로듀서 리드머 작성 | 2011-05-26 04:06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21 | 스크랩스크랩 | 22,707 View 확대보기
소울사이어티(Soulciety), 러브 TKO, 보니, 지플라 등 알앤비 음악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들(혹은 음악) 뒤에는 항상 프로듀서 윤재경(a.k.a 엠브리카)이 있었다. 그가 오랜 커리어를 바탕으로 완성한 슬로우 잼과 어반 사운드는 뮤지션이기에 앞서 ‘알앤비홀릭’이 아니면,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감흥을 담고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음악적인 활동 외에는 뮤지션으로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았던 게 사실. 그래서 최근 다시 싱글을 연이어 발표하며 소울사이어티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있는 것을 계기로, 이번 인터뷰를 통해 프로듀서 윤재경(엠브리카)의 음악 여정을 담아보고자 한다.
리드머(이하 ‘리’): 우선 최근까지 새 싱글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소울사이어티(Soulciety)의 정체성부터 물어보고 싶어요. 정식 그룹인지, 아니면 프로듀서 윤재경의 프로젝트인 건지….? 초기적과 지금의 형태가 좀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엠브리카(이하 ‘엠’): 사실 시작은 프로젝트 그룹이었는데, 1집 홍보할 때 소속사에서 프로젝트는 홍보가 힘들다는 정체성의 문제 때문에 보컬그룹으로 홍보를 하자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게 알려졌었죠. 원래 취지는 혼자만의 프로젝트라기보다 한국인들의 소울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거든요. 싱어뿐만 아니라 작곡자, 편곡자, 연주자, 싱어, 엔지니어, 작사가까지 여러 사람이 소울 하나로 뭉치는 장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리: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엠: 그래서 취지를 더 알리고자 요즘은 싱글을 낼 때도 편곡자와 한 트랙을 같이하고 연주자와도 한 트랙을 같이하고, 싱어들과도 함께 트랙을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리: Amin.J, 김동희, 소울맨, 박정은 같은 싱어들이 소울사이어티 출신이라는 점이 보컬 그룹으로서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굳힌 배경이기도 했어요.
엠: 그땐 그 친구들이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던 시기인데다가 저도 활동을 막 시작하던 시기였어요. 최초로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했던 첫 프로젝트가 소울사이어티였죠.
리: 윤재경이라는 본명으로 활동하다가 언젠가부터 ‘엠브리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특별한 구분이 있나요?
엠: 아직 본명을 많이 쓰고 있는데, 엠브리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건 앤써의 프로듀싱을 맡으면서부터에요. 대다수의 비트메이커들이 닉네임을 많이 사용하기에 저도 만들어보게 됐고요. 주로 힙합음악을 만들 때는 엠브리카라는 이름을 쓰는 편이에요.
리: 그래도 이름을 하나로 통일하는 게 집중도가 높지 않을까요?
엠: 크게 상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본명도 좋고 엠브리카라는 이름도 좋으니까요. 엠브리카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을 하죠.
리: 근데 어쨌든 소울사이어티도 윤재경이라는 프로듀서의 프로젝트니까, 소울사이어티, 엠브리카, 윤재경, 이렇게 정체성이 3개나 되는 거네요.
엠: 우선 소울사이어티와 엠브리카는 본질적으로 달라요. 소울사이어티는 그 프로젝트 안에 제가 프로듀서로 자리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힘도 보여주고자 한다면, 엠브리카는 윤재경과 같은 개념이라고 할까요?
리: 엠브리카나 윤재경의 이름을 건 프로듀싱 앨범을 낼 생각은 없어요?
엠: 언젠가는 독자적으로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요. 소울사이어티의 2집에 대한 구상은 있어요. 아직 결정한 건 아닌데, 2집 타이틀을 ‘Power of K-Soul’이라는 가제로 잡아놨어요. 저 혼자의 힘보다는 한국 소울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뮤지션들과 함께 하고 싶거든요.
리: 그 타이틀이 상당히 인상적이네요. 가장 최근작인 소울사이어티의 싱글 “Just Say” 이야기를 해보죠. 이 곡은 원래 오래 전에 만들어졌던 곡으로 알고 있어요.
엠: 맞아요. 전 예전에 작업했던 것들을 버리지 않는 타입이에요. 어떤 작곡가들은 수천 곡의 라이브러리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자신의 라이브러리를 잘 써먹는 작곡가라고 생각해요. 최소한 테마는 항상 버리지 않고 어딘가에 남겨뒀다가 2~3년 후에 새로운 감흥을 얻기도 하죠. 당시에는 생각나지 않았다가 나중에 생각나는 그런 것들이 있거든요. “Just Say”는 언젠가는 꼭 발표하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어요.
리: 원래는 랩이 없던 곡이었죠? 그런데 MC메타 씨가 피처링을 했네요.
엠: 메타 형님이 멋진 랩을 입혀줬죠.
리: 그리고 리믹스는 마일드 비츠(MildBeats) 씨가 작업했어요. 마일드 비츠 씨와는 최근 공동작업이 종종 눈에 띄어요. 어떤 프로듀서라고 생각하세요?
엠: 아… (웃음) 개인적으로는 동갑이라 더 친해질 수 있었고, 집 근처에서 만나서 술도 마시며 노는 그런 사이에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그걸 사랑하는 뮤지션이고요. 친구지만 그 모습은 제가 봐도 사랑스러워요. 그 열정이 무엇을 주는지는 두 번째 문제고, 열정을 최우선에 두는 삶을 살고 있는 친구이기 때문에 존중하죠. 그렇지만 은근히 좀 변태스럽다. 좀 밝힌다?! 라는 부분을 말하고 싶네요. (전원웃음)
리: 알앤비 음악엔 어떻게 빠져들게 됐어요?
엠: 중학교 다닐 적 친구가 랩 음악을 들려준 적이 있는데, 그때 깊은 인상을 받아서 이른바 빽판이라 불리는 해적판을 사서 듣기 시작했어요. 런 디엠씨(Run DMC)였을 거에요. 그때는 수입 CD조차 거의 안 들어 오던 시기라 흑인음악 CD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거든요. 이태원이나 동두천 미군부대 등지에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미국인들도 CD가 비싸니까 빽판을 사더라고요. 카세트 테이프에 당시 히트곡들을 모아서 녹음해놓은 것들이 많았죠. 당시 부대 앞에서 빽판을 팔던 한국사람들은 내국인을 상대로 판 게 아니라 흑인들을 상대로 팔았어요. 그게 20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제가 뭣도 모르고 ‘랩 주세요, 흑인음악 주세요.’하고 사와서 듣곤 했었는데, 랩 중간에 나오는 노래 파트가 정말 좋았어요. 예전에 유명했던 파더 MC(Father MC)의 노래를 듣다 보면, 조데시(Jodeci)가 백업 보컬을 맡은 것도 있어요. 물론, 나중에서야 그 4명이 조데시라는 것을 알게 됐죠. 지금은 파더 MC보다 조데시가 더 유명해졌지만요. (웃음) 그런 식으로 점점 알앤비에 대해 알아갔어요. 랩 음악에 싱어들이 피처링한 것들을 듣다가 그 싱어들을 찾아가며 들었죠.
리: 가장 처음은 랩이, 그리고 조데시가 알앤비 음악에 빠지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셈이네요.
엠: 네. (웃음) “Lisa Baby”라는 노래와 몇몇 곡의 백업 보컬을 맡으면서 조데시가 많이 유명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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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그때 들었던 음악들이 오늘날 엠브리카 씨의 음악에 가장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를테면 스타일, 보컬 어레인지, 소스 등….
엠: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사춘기 때 들었던 음악이 평생을 지배하는 것 같아요. 전 사춘기 때가 90년대였고, 지금 하는 음악에 당시 들었던 음악들이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는 편이에요. 어떤 하나에 꽂힌 건 아니고 모든 컨셉트에 영향을 받았어요. 그땐 보이 밴드도 많았잖아요. 그리고 음악적으로 60~70년대에 나온 소울의 원본을 한번 에디팅해서 뉴 잭 스윙(New Jack Swing)도 나오게 되고 여러 가지 장르가 나왔거든요. 원초적인 소울이 아니라 뭔가 재해석을 해서 나온 음악이 90년대의 주를 이룬 셈이죠. 당시의 음악은 모든 면에서 영향을 줬어요. 지금 나오는 808 서던 스타일도 좋지만, 90년대 후반에 나왔던 드럼의 질감을 아직까지도 가장 좋아해요.
리: 근데 고유의 스타일을 고집하고 재현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그 시대 음악에만 머물러 있다.’라는 평가가 따르기도 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엠: 뮤지션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뮤지션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가는 길이 올드스쿨이고 그것만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누가 말려도 바꿀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취향이 아니라면 듣지 않음 되지, ‘아직도 그걸 왜 하느냐?’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리: 한 우물을 파는 프로듀서를 좀 더 높게 치는 편인가요?
엠: 어느 부분을 더 높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겉핥기를 많이 하는 뮤지션들, 예를 들어서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아.’라는 태도가 좋게 보이지는 않아요. 편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뭔가 하나에 빠져서 ‘나는 이런 스타일이 정말 좋아!’라고 하는 경우를 보기 드물거든요. 나중에 가면, 장르가 없어진다는 말도 많은데, 그래도 하나에 빠져보기도 전에 처음부터 이것저것 얕게 하는 건 긍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리: 창작자가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는 편인가요?
엠: 작곡가가 어떤 음악이 좋으면, 그걸 듣고 발생된 욕구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되잖아요? ‘나는 작곡가니까 음악을 100곡 들어야지.’하는 것은 말이 안되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떠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자연스럽게 듣는 게 더 중요하다는 쪽이에요. 물론,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에 맞는 음악을 많이 듣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리: 처음에는 해당 장르의 팬으로서 창작활동을 시작하지만, 막상 직업화되면, 본인이 좋아했던 타입의 음악을 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죠? 끊임없이 레퍼런스를 요구하니까…. 특히, 메이저 기획사가 그런데, 실제로 활동해본 경험상 느끼는 바가 있을 것 같아요.
엠: 일단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아이돌 음악을 만드는 작곡자라고 해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순수하게 아이돌 음악을 정말 좋아해서 만들기 시작하면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아요. 문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은 아이돌 음악이 아님에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아이돌 음악을 연구한다는 거죠. 그건 인위적인 거잖아요. 물론, 아이돌 음악이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외국의 음악을 레퍼런스로 삼고 항상 빗대어 만드는 것이 습관화 되고, 그것이 프로의 자세처럼 각인 된다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결과물들이 사라지게 되겠죠. 대충 들으면 모르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듣는 마니아들이라면, 그런 부분을 다 캐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수가 어떤 곡에서 애드립을 하면 그게 인위적인 애드립인지 아닌지를 느낄 수 있거든요. 괜히 소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소울에서 나와야 하는 스케일이나 음과 박자가 있어요. 근데 그걸 기계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어요. 만약, A, B, C, D 파트가 있다고 하면, D파트에서는 질러줘야 하는 타임이기 때문에 질러주는 수준에 불과한 경우…. 전 이런 걸 광적으로 싫어해요.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못하는 상태에서 곡을 만들고 노래를 하면 깊이가 없어지니까요.
리: 메이저 기획사에서 활동할 때도 알앤비 음악을 했었잖아요? 지금은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진 가수들의 앨범에 작곡자로 많이 참여했었는데, 당시에 대중성, 이른바 뽕끼를 강요받은 적은 없었나요?
엠: 압박은 굉장히 많았어요. 제가 많이 들었던 게 ‘너는 멜로디를 잘 쓰면 대성할 것이다, 너는 장르나 편곡 같은 것은 외국음악 같다, 근데 한국에선 멜로디가 잘 나와야 한다.’라는 말이었거든요. 물론, 이해는 하지만 그것을 수용하면 장르 본연의 맛은 사라지게 돼요. 그러니 선택의 기로가 될 수 밖에 없죠. 어떤 음악이건 나름대로 가치는 있겠지만, 한국적으로 만든 음악이 가치 있으면, 원론에 충실한 음악도 가치가 있는 거잖아요. 대중에게 원래 장르에 충실한 음악도 발표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 바로 그런 부분이 독립적인 길을 걷게 된 궁극적인 이유였던 거죠?
엠: 아무래도 제가 원하는 음악을 제작해줄 제작사가 많지 않았고, 제작사와 음악적인 실랑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래서 스스로 가는 길이 저에겐 때로는 제일 좋은 길이라 생각하게 된 거였고요. 하지만 저의 음악을 인정해 주고 밀어준 몇몇 제작사들에게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 특정 멜로디 라인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중요시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프로듀서로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요?
엠: 감성과 정서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정서는 미국 본토의 흑인음악과 거리감이 있잖아요. 제가 피부로 느낀 건 우리나라 사람들은 슬픈 음악을 상당히 좋아한다는 거에요. 그래서인지 알앤비에 슬픈 감성을 인위적으로 넣으려는 움직임이 많았어요. 제가 겪은 흑인음악은 슬픈 정서보다는 뭔가 갈구하는 정서가 더 컸거든요. 영어로 표현하자면 ‘sad’보다는 ‘desire’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 슬픈 감정뿐만 아니라 굉장히 복합적인 느낌. 알앤비와 소울은 그 안에 희로애락이 응축되어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세련된 느낌을 담고 싶었는데 천편일률적인 슬픈 감성으로만 접근하는 것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리: 말씀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멜로디 진행이 확실한 곡을 좋아하는 편이죠.
엠: 신기하게도 알앤비는 멜로디가 수백 가지로도 나올 수 있는 음악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어떤 곡이 있다면, 그 곡을 A라는 가수가 부르는 것과 B라는 가수가 부르는 것은 애드립뿐만 아니라 멜로디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어요. 감성이 지배하는 음악장르기 때문에 부르는 사람에 따라 정말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말이죠. 많지 않은 코드에서도 다양한 감성이 멜로디로 표출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매력적인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어떠한 정해진 멜로디에만 정해놓고 가둬두려 하는 건 아쉬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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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사실 엠브리카 씨와 인터뷰할 때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프로듀서와 작곡자의 차이에요. 국내에서는 아직 명확하게 구분이 되지 않고 있거든요. 단순히 작곡을 한다거나 비트를 만든다고 해서 프로듀서라고 부르진 않잖아요?
엠: 예전에 베이비페이스(Babyface)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첫째는 프로듀서이고 둘째는 작곡자, 그리고 셋째로는 싱어라고 이야기했던 게 기억나네요. 그처럼 프로듀서는 음악이 나오면 모든 과정을 총괄하고 디렉팅과 어레인징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작곡자는 그것보다 작은 개념으로 곡에 관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에요. 곡을 몇 개 쓰고, 그 중에 좋은 트랙이 나왔다고 해서 ‘나 프로듀서야.’라고 이야기하는 건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야기죠. 사실 요즘 좋은 트랙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아졌잖아요? 하지만 앨범의 공정을 총괄하고 가수나 연주자들을 컨트롤하면서 방향성에 맞게끔 이끌어나가는 게 프로듀서인데, 그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솔직히 많지 않거든요. 전반적인 부분을 모르고 단순히 곡만 좋게 만들면, 자기가 프로듀서라고 이야기하는 게 요즘의 문제인 것 같아요. 심지어 옛날에는 엔지니어가 프로듀서를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곡 쓰는 사람도 있었고 가수도 있었지만, 엔지니어링을 보면서 디렉팅을 했던 거죠. 메탈리카(Metalica)도 프로듀서는 따로 있었어요. 음악을 하는 것과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지를 결정하는 것은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프로듀서라면) 그것도 커버할 줄 알아야 해요.
리: 저희가 ‘비트-따운(Beat Down)’ 라디오에서 소개하기도 했던 대릴 시먼스(Daryl Simmons)가 떠오르네요. 베이비페이스와 작업을 많이 했었는데, 대릴 시먼스가 작곡을 하고 베이비페이스가 프로듀싱한 곡이 꽤 있었죠.
엠: 맞아요. 어쨌든 프로듀서는 많은 사람을 어레인지하다 보니 약간은 비즈니스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리: 퀸시 존스(Quincy Jones) 옹이 대표적인 인물이죠.
엠: 퀸시 존스도 특히 최근작들 보면, 자기가 곡을 쓴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만든 것들이 많아요. 저도 그런 부분에서 많은 모티프를 얻었죠. 실제로 소울사이어티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리: 편곡의 영역도 궁금해요.
엠: 예전엔 작곡자가 오선지에 작곡을 하고 연주자에게 부탁을 하면서 연주자가 편곡을 해주는 시대가 있었어요.
리: 그럼 당시 대부분 편곡자는 연주자들이었나요?
엠: 꼭 그렇진 않았지만, 작곡을 하는 사람이 편곡을 못해도 먹고 살수 있던 시기가 있었어요. 현 시대에는 작곡에 대한 모든 요소가 나온 상태라 자기가 새로운 곡을 써도 예전의 것들과 겹치는 부분이 생기고, 새로운 것을 어떻게 만들까 궁리하다 보니, 그에 대한 돌파구를 편곡 쪽에서 많이 찾게 된 거에요.
리: 일반적으로 편곡은 기존에 나온 곡에서 멜로디 라인을 약간 바꿔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을 거예요.
엠: 그것뿐만 아니라 모든 악기의 구성과 컨셉트를 포함해요. 60~70년대가 순수한 창작의 시대였다면, 80년대 정도 되면 괜찮다 싶은 코드와 멜로디는 다 나온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90년대는 편곡의 힘이 주효했던 시대라고 생각하고요. 그것들을 뭔가 센스있게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 여러 (하위) 장르가 생긴 거죠. 뉴 잭 스윙도 그 대표적인 예고요. 곡 쓰는 사람이 코드와 멜로디를 쓰는 것 이상으로 편곡적인 컨셉트를 만드는 것이 곡을 만드는 것으로 개념이 바뀐 거에요. 그런 경향이 점점 심해지면서 지금은 컨셉트 음악이 주를 이루는 상황이 되었죠. 그렇다 보니 사운드에 대한 욕구가 더 다양해졌고요. 컨셉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운드를 만들어야 하는데 곡을 쓰는 사람도 사운드를 케어하지 못한다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최근 예전 방식으로 곡을 쓰는 사람들이 상당히 고전하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사운드적인 부분과 컨셉트적인 부분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실력은 있는데 고전하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거든요. 저도 자연스럽게 사운드에 대해 연구할 필요성을 느꼈고 미국의 사운드와 유럽, 일본의 사운드는 어떤가 생각하고 연구했어요. 지금도 새로운 음악을 들으면 어떻게 이런 사운드가 만들어졌는지 연구를 하는 편이에요.
리: 역시 꾸준한 연구도 뒷받침 되어야 하는군요.
엠: 네, 그렇죠. 네, 그렇죠. 그만큼 사운드에 대한 지식은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제 작곡자는 엔지니어적인 지식도 있어야 해요.
리: 엠브리카 씨가 사운드 작업에 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나 장비는 어떤 건가요?
엠: 저는 녹음실에서 주로 많이 쓰는 프로툴스 같은 프로그램도 사용하고 있어요. 흔히 어떤 프로그램이 더 좋다라고 얘기하고는 하는데, 저도 여러 가지를 써봤지만 근본적인 사운드 이론은 매한가지에요. 단지 성능에서 차이가 있을 뿐, 근본을 캐치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면 나머지는 기능일 뿐이에요. 그렇지만, 감각은 쉽게 익힐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리: 감각을 익히는 가장 좋은 길은 뭐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음악을 많이 듣는 것?
엠: 많이 듣고 느껴야 해요. 본인이 느껴야지요.
리: 국내외를 통틀어 사운드적으로 가장 큰 감흥을 받았던 앨범이 있다면요?
엠: 정말 많아요. 다 열거하기는 힘들어요. (웃음)
리: 그동안 노래 좀 한다는 대부분 보컬리스트들과 작업을 해왔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보컬이 있다면 누구를 뽑고 싶어요?
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어떤 선호도에 따라 말씀을 드리자면 저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보컬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흑인음악 보컬처럼 부르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나이도 들고 이 음악 저 음악을 듣다 보니 각 보컬리스트들의 장점도 파악하게 되고, 결국 자기가 가장 잘하는 장르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리: 특별히 선호하는 보컬의 성향 좀 알려주세요.
엠: 가장 중요한 핵심이랄까…. 제작자도 그렇고 듣는 사람도 그렇고, 보컬의 개성에 꽂히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좀 달라요. 개성은 말 그대로 개성이고, 기본적인 음감과 박자감을 기본으로 깔고 그 이후에 대해 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수많은 가수를 만나봤지만, 이 이후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박자와 음정이 해결되지 않는 많은 사람이 있죠. 근데 심지어 그런 사람들이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레슨을 하고 있단 말이에요. 누구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웃음) 어쨌든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좋고 개성과 취향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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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그동안 슬로우 잼을 주로 표방해왔는데, 이게 섹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음악이잖아요? 그래서 분위기상 우리나라에서는 온전히 구현하기가 힘든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경계를 어떻게 타고 있는지 궁금해요.
엠: 전 일단 아주 후줄근한 분위기보다 세련된 분위기를 더 선호한 편이에요. 뇌쇄적이고 섹슈얼하지만, 천박하지 않은 느낌을 좋아하는 편이죠. 말로 설명하기는 좀 힘든데…. (웃음) 소울 음악이나 알앤비 음악은 항상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제가 느끼기엔 왜 이 친구들이 다 섹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가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사랑으로 푸는 것 같아요. 그게 육체적이건 정신적인 것이든요. 디자이어(Desire)라는 말을 하잖아요.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인가 생각해보면 사랑으로 푸니까 애틋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섹스조차 어떤 것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가만히 들어보면, 단순히 섹스가 좋다는 접근만은 아니에요. 전 그래서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것들은 지양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선을 타고 있다고나 할까요?
리: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노골적인 곡들도 작업하고 싶지 않아요? 전 들어보고 싶은데. (웃음)
엠: 아시잖아요. 당연히 해보고 싶은 거. (전원웃음)
리: 디렉팅이 굉장히 깐깐한 걸로 소문이 자자해요. 어느 정도에요?
엠: 저는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한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는 것 같네요. (웃음) 그렇게 깐깐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보다 깐깐한 사람을 수도 없이 봐왔으니까요. 저도 실수를 할 때가 있지만, 누군가의 노래를 들었을 때,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에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안하고, 호불호가 분명한 편이죠. 소심한 사람에겐 그런 부분이 상처가 될 수 있겠지만요.
리: 그러니까 지적할 부분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는 말씀이죠?
엠: 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해요. 다른 쪽으로 유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존심이 강한 싱어들은 상당히 당황스러워 하더라고요.
리: 두 번째 소문입니다. 노래 못 하는 싱어와는 작업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엠: 가수가 노래 못하면 일단 정 떨어지고 시작하는 편이에요. 작업을 하더라도 연민과 애정을 가지는 쪽으로 흐르게 되고요. 어떤 방식으로든 못하는 가수도 잘하는 가수로 만드는 게 좋은 프로듀서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전 (실력이) 기본 이하의 가수는 상당히 버거워요.
리: 그렇다면, 앞으로 엠브리카 씨가 전혀 함께 작업할 것 같지 않던 가수와 콜라보 곡이 나온다면, 그 쪽에서 곡비를 굉장히 많이 줬다고 생각해도 되겠네요?
엠: 그럴 것 같은데요. (전원웃음)
리: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여가수는 누구에요?
엠: 샤데이(Sade)요. 흑인음악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까무잡잡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웃음) 샤데이는 고혹적인 목소리와 외모를 가지고 있고, 톤 하나만으로도 마치 인어가 노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리: 엠브리카 씨를 보면, 오래 전부터 메이저와 인디를 넘나들며 결과물을 많이 내왔고, 곡에 대한 퀄리티도 호평을 받았지만, 씬에 많은 노출이 되어있지 않은 은둔형 고수라는 느낌이 들어요.
엠: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제가 잉여 뮤지션이 아닌가… (웃음) 숨고 싶어한 적도 없고, 그런 마음도 없거든요. 다만 음악을 많이 발표하면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듣는 사람의 호불호는 그 다음 문제고….
리: 그래도 엠브리카 씨 음악은 많이 들려지고 있지 않아요?
엠: 그런 건가요? 많이 들려지고 있나…. (웃음)
리: 소울사이어티나 보니 씨의 음악을 생각해보면, 대중과 마니아에게 어느 정도 들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힙합과는 달리 알앤비는 씬이라고 부르기가 모호하고 시장 자체도 모호하다 보니 응집력이 없는 느낌이랄까요? 그렇다 보니 독자적으로 알앤비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에게 이런 상황이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엠: 그런 것 같네요. 그만큼 시장도 작고 어느 하나가 좋다고 하면, 몰려가는 사람의 습성. 예를 들면 TV의 어떤 프로가 인기면 그쪽으로 다 몰려가곤 하잖아요. 음식은 외식하면서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는데 말이에요. 음악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같은 이야기지만 알앤비 중에서도 뭔가 잘된다 싶은 스타일이 있으면 그쪽으로 몰려가잖아요. 트랜디한 것이든, 정통 알앤비든 자기가 잘하는 것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 밥상으로 따지면 밥과 김치뿐 아니라 여러 가지 반찬이 있는 그런 밥상을 원하는 거죠.
리: 이른바 ‘한국형 알앤비’라는 표현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요?
엠: 예전에는 그 표현에 대한 심정이 증오에 가까울 정도였죠. (웃음) 사실 양날의 검 같은 이야기에요. 그것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저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거든요. 자연스러운 크로스오버 한국형 알앤비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마니아들과 전문가들이 들으면 그것이 인위적인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은 서거든요. 그런 인위적인 것들이 한국형 알앤비라면, 그건 오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거부감이 들고 참을 수가 없어요.
리: 공감 가는 말씀입니다. 자연스러운가 인위적인가의 차이가 중요한 것 같네요. 앞으로 나올 결과물이나 계획은요?
엠: 일단 아끼는 가수 보니와 작업은 계속 될 거고요. 아까 말씀 드린 소울사이어티는 한순간에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제 인생을 걸쳐 돈이 되든 안되든, 할 수 있는 음악적 여건만 유지된다면 지속적으로 진행할 프로젝트에요. 일에 많이 치이다 보면 원래하고 싶었던 음악이 뭐였는지를 잊고 지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것을 잊지 않고자 해요. 예전엔 SWV 같은 팀을 만들어 보고도 싶었고, 하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여건이 닿는 데로 할 생각이에요.
리: 소울사이어티는 싱글이 3장 발표됐으니 다음 결과물은 2집을 기대해도 될까요?
엠: 네. 다음엔 싱글이 아닌 앨범으로 나올 예정이에요.
리: 마지막으로 프로듀서로서 포부와 꿈이 있다면….?
엠: 초심에 감동받았던 흑인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거에요. 제가 들어왔던 음악들이 그렇게 마니아스러운 음악은 아니었어요. 제가 좋아했던 음악들은 빌보드에도 올라가던 그런 음악이었으니까요. 그런 음악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다른 수단이 아닌 제 순수한 음악만으로 가장 위까지 올라가는 게 큰 꿈이고, 소박한 꿈은 어떤 여건과 관계없이 음악적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음악을 계속 하는 거에요.
인터뷰. 글 / 박배건, 강일권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모든 리드머 콘텐츠는 사전동의 없이 영리적으로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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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니 - 90년대, R&B의 황금기이자 사랑을 갈구하던 시기 »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리드머 모든 리드머 콘텐츠는 사전동의 없이 영리적으로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00 코멘트 등록 Fukka Fukka (2011-05-31 00:19:30 / 211.246.68.**)추천 0 | 비추 0 진짜 국내에서 인정할만한 프로듀서 중 한명 diamond diamond (2011-05-27 04:18:15 / 216.114.194.***)추천 0 | 비추 0 영화 "The Hangover" 에 나오는 Ken Jeong 을 닮으신듯 현승인 현승인 (2011-05-27 00:42:38 / 122.46.219.**)추천 0 | 비추 0 알찬 인터뷰!!! 재경형님 사랑합니다. 제 마음 받아 주실꺼~죠? 휘루꾸 휘루꾸 (2011-05-26 21:54:55 / 115.137.137.***)추천 0 | 비추 0 예압! 잘 읽었습니다! Stally Stally (2011-05-26 21:27:30 / 27.1.4.***)추천 0 | 비추 0 REAL 알앤비프로듀서 !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doh! nuts doh! nuts (2011-05-26 09:20:08 / 164.124.106.***)추천 0 | 비추 0 소울사이어티... 지플라... 제가 잘 몰랐던 윤재경님을 너무 잘알게 해준것 같네요. 소울사이어티 하면 늘 보컬분들만 떠올렸는데...!! 멋진 인터뷰입니다.
프로듀서들 인터뷰도 많이해주세요. 재미있네요!! capca capca (2011-05-26 09:05:59 / 203.241.147.**)추천 0 | 비추 0 love tko 한 번만 더... 채영 형님 좀 소환해 주세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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