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영소울 – ‘ZISSOU’의 또 다른 주역, 완성도를 담보한 비트공장 리드머 작성 | 2016-03-28 23:13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28 | 스크랩스크랩 | 24,901 View
인터뷰, 글: 이진석, 하태욱, 김민선
사진: 김영기
그간 랩퍼 화지가 발표한 두 장의 정규 앨범, [EAT]과 [ZISSOU]는 평단과 장르 팬들로부터 적지 않은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 성공적인 두 작품이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던 데에는 화지의 영혼의 파트너이자 듀오 라디오스타의 반쪽, 프로듀서 영소울(Young Soul)의 조력이 컸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화제의 앨범 중 한 장이 된 [ZISSOU]의 주인공 화지는 이미 리드머에서 두 차례에 걸쳐 만나본 바, 이번엔 함께 앨범을 만들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영소울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그의 음악 세계를 여기 공개한다.
리드머(이하 리): 매체에서 하는 첫 인터뷰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소속이 궁금해요. IPT라는 프로듀서 집단에 소속된 건 알고 있습니다만.
영소울(이하 영): 만나서 반갑습니다. 말씀한대로 IPT라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데, 그 외에는 따로 없어요. 회사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혼자 하고 있습니다.
리: 아, 인플래닛과 계약한 것도 아니었군요.
영: 네, 화지 앨범을 위해서 함께 하고 있죠.
리: 화지 씨나 바비 제임스 본드 크루 쪽과는 미국에서 학창시절 때 만난 거고요?
영: 화지랑은 미국에서 고등학교 때 만나서 대학교까지 친구고요, 바비 제임스 본드라는 친구들도 다 대학교 친구들이에요.
리: 바비 제임스 본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준다면요?
영: 보통 크루로 많이 알고 있는데요, 사실 힙합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그런 크루 개념은 아니고, 그냥 친구들이에요. 그냥 친구들인데, 이름을 하나 붙이자 해서 저희가 좋아하는 “Bobby James”(*편집자 주: N.E.R.D의 곡)라는 노래에서 따온 이름을 붙이게 됐고요. 그동안 들었던 좋은 노래나 웃겼던 영상을 같이 보고 즐기며 노는 동기 모임 같은 거예요. (웃음)
리: 그럼 화지 씨와 듀오 라디오스타(Radiostarr)는 어떻게 결성하게 된 건가요?
영: 라디오스타는 저희가 미국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둘 다 힙합음악을 좋아하고, 보통 그맘때쯤 한번씩 해보잖아요? 그런 시기를 다 겪으니까요. 가사도 한 번 써보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리: 힙합 좋아하는 이들이 한 번씩 해본다는 그… (웃음)
영: 그렇죠. 그럴 때 보통 자기 옆에 있는 친구랑 팀을 만들게 되거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팀을 만들게 되었어요. 학교 내에서 탤런트 쇼 같은 거도 같이 자주 나갔고, 미국에서 같이 믹스테입 만들고. 그냥 어쩌다 보니 계속 같이 하고 있는 거에요. (웃음)
리: 화지 씨 앨범 이야길 해보죠. 평소 작업량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는데요. 이번 [ZISSOU]에도 약 300개 가량의 비트를 제공했다고 들었어요.
영: 굉장히 많이 제공했어요. 다 합치면 300개 정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300개라는 게 전부 다 쓸만한 비트들이 아니고요. 드럼만 있다든지, 샘플 루프만 있다든지, 그런 아이디어가 300개가 있는 거에요. 그중에서 한 3~4분짜리 곡으로 만들었다가, 사용하지 않게 된 게 약 100개정도 될 것 같고요.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가사까지 붙였다가, 쓰지 않은 것도 꽤 많아요.
리: 그 많은 비트 중에서 화지 씨가 선별하는 건가요?
영: 네, 저는 그냥 만들고 나면 그 친구한테 바로 바로 보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하듯이 비트를 보내주고, 그 친구가 결재를 하는 거죠. 괜찮다 하면 사용하게 되는 거고요.
리: 물론, 앨범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십 수개 트랙만을 살려야 하겠지만, 그래도 300여개면 상당히 많은 수인데, 아무리 친해도 좀 서운하지 않아요?
영: 저희 둘 다 최고를 지향하니까요. 아쉽지는 않습니다. (웃음)
리: 가사 쪽도 참여를 하는 편인가요?
영: 저는 거의 안 해요. 화지가 가사를 쓰면, 저는 녹음할 때라든지, 나중에 들어보면서 조금씩 수정했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에 대해 아이디어만 제공하는 편이에요. 워낙 그 친구가 잘하기도 하고 해서, 터치를 안 하는 편이죠. 사실 걔가 뭐라고 하는지 모르고 그냥 좋다고 할 때도 있고, 녹음할 때까지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면서 넘어갈 때도 있어요. (전원 웃음)
리: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작업 방식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영: MPC를 쓰고요, 샘플링을 주로 많이 하죠. 턴테이블에서 LP를 따거나, 여러 가지 샘플 소스를 다 사용하는 편이에요. 그 소스로 루프를 만들고, 그 루프를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따라서 메인 그루브의 뼈대를 만들죠. 그 위에 드럼을 입히고, 퍼커션들을 입히는 방식으로 작업해요.
리: 화지의 1집 [EAT]과 다음 앨범인 [ZISSOU] 사이에 작법적인 변화가 느껴집니다. 1집이 샘플 루프 위주의 진행이었다면, [ZISSOU]에서는 비트의 변주나 다른 부분에 더 신경을 쓴 것 같고요.
영: 되게 웃긴 게, 사실 1집을 다 끝내고 나서 제가 MPC를 샀어요. (웃음) 그래서 본격적인 샘플링을 시작하게 된 건 사실상 2집부터죠. 그런데 뭔가 MPC를 쓰면서 차핑(chopping)에 대해 더 연구를 하고 하다 보니 오히려 덜 샘플링처럼 들리나 봐요.
리: 아이러니하네요. (웃음) 2집 크레딧을 보면, 외부 연주자도 참여했더군요.
영: “바하마에서 봐2”에 저희가 ‘또치 누나’라고 부르는 누나가 신스 베이스 연주로 도움을 줬어요. 이번 앨범에서 유일한 연주자 참여곡이죠. 나머지 부분에선 필요한 연주가 있으면 제가 직접 해결하는 편입니다.
리: 아 직접 연주도 하나요?
영: 네. 근데 저는 피아노를 칠 줄 몰라요. (웃음) 건반으로 작업을 하지만, 배운 적은 없거든요. 주로 감으로 연주를 하죠.
리: 특별히 프로듀서로서, 혹은 랩퍼로서 영향 받은 뮤지션이 있다면요?
영: 너무 많죠. 오늘 하루에도 계속 생기는 중이니까요.
리: 그럼 요즘은 주로 어떤 음악을 들어요?
영: 요즘은… 이번 칸예 웨스트(Kanye West) 앨범 [Life Of Pablo] 좋아하고요. 프로듀서 날리지(knowledge) 있잖아요? 그 분 것도 많이 듣죠. 사실, 영향을 제일 많이 받은 건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칸예 웨스트 정도에요. 제이 딜라(J-Dilla)를 알기 전에 전 퍼렐과 칸예를 먼저 들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저희 학교가 시카고 근처에 있었거든요. 시카고 출신 친구들이 많았어요. 당시 칸예 웨스트나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가 특별한 존재들이었죠. 마침 그 뮤지션들의 시대이기도 했고요. 칸예 1집 나올 때쯤? 화지랑 제가 고등학교에서 만났던 게 2004년쯤이었거든요.
리: 그 프로듀서들이 롤 모델이었군요.
영: 맞아요. 칸예와 퍼렐이 제 롤 모델인 게, 그 둘은 음악 외적으로도 자기 컬러가 너무 또렷하죠. 게다가 이미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도취되어 살 법도 한데,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그런 게 되게 멋있는 것 같아요. 저도 사실 음악 하나만 생각하진 않거든요. 이번 [ZISSOU]를 작업하면서도 뮤직비디오나, 앨범 아트워크를 동시에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그런 식으로,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 제 걸 보여주고 싶어요.
리: 비트를 찍을 때, 먼저 주제적인 측면을 생각하는 편인가요?
영: 보통 그렇지 않아요. 즉흥적으로 많이 만드는 편이죠. 완성 후에 주제를 붙이고요.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주제는 제가 아니라 화지가 정하죠. (웃음) 가사를 쓰고, 후렴을 만들면서 주제를 만들게 되고요. 예를 들면, [EAT]에 수록된 “말어”의 경우 제가 이 비트를 되게 싫어했어요. 쓰지 말고 그냥 버리자고 말했는데, 화지가 이게 좋다면서 뭔가를 만들어 오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좋은 거에요. 그런 식으로 진행된 적도 있죠.
리: 이런 경우엔 고마움을 느낄 수도 있겠네요. 당사자에게 버림받아 죽을 뻔한 비트를 소생시켜 온 거니까요.
영: 그렇죠. 그대로였으면 버리는 300개의 비트 중 하나였을 텐데. 화지가 되게 잘해요. (웃음) 왜 화지랑만 작업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걔가 제일 잘해요. 저도 그 친구랑 작업하는 게 제일 편하고요. 워낙 잘하니까요. 걔는 제가 가시를 주면, 그걸로 생선을 만들어 와요. 그런 친구죠.
리: 근래 커리어에선 프로듀서 쪽으로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 랩퍼이기도 했잖아요? 랩퍼로서 또 다른 욕심은 없나요?
영: 욕심이…… 없어요. (전원웃음) 정말 욕심이 없어서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프로듀서로서 욕심이 너무 커서, 이걸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요. 사실 가사를 쓰는 게 어렵기도 하고요. 그리고 저는 랩퍼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있거든요. 랩퍼는 굉장히 멋있는 사람들이고, 카리스마 있는 사람들이고요. 그런 면에서 무대 위 제 자신의 모습이 부족해 보였던 것 같아요. 랩퍼는 저거보다 멋있어야 된다 해서, 화지를 서포트하고 있죠.
리: 그럼 앞으로도 프로듀서 커리어에만 집중할 계획이겠네요?
영: 그렇죠. 그런데, 화지의 1집에서 잠깐 피처링했던 것처럼 기회가 있으면 재미있게 할 것 같아요.
리: 현재는 화지 씨와 영혼의 파트너 같은 느낌인데, 다른 아티스트와 작업 또한 기대됩니다. 따로 계획하고 있는 게 있나요?
영: 계획 단계에 있는 건 몇 개 있어요. 일단은 회사 뮤지션들. 인플래닛에 소속된 뮤지션들이랑 실험을 더 해보려고요. 거의 같이 살고 있으니까, 작업으로 접근하지 않고 서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거든요. 그런 쪽으로 도전을 해보고, 한국에 있는 다른 랩퍼들과도 많이 (작업을) 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프로듀서 마일드비츠(Mild Beats) 형이랑 이것저것 실험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전 랩퍼들이랑 작업한다면, 화지랑 한 것처럼 앨범 단위라든지, 프로젝트 단위로 함께 하고 싶어요. 그 친구랑도 개인적으로 알아가고 시간을 보내면서요. 한 곡 안에서 제대로 된 화학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은 꽤 어렵거든요.
리: 저희가 듣기론, 영소울 씨의 생활 패턴을 보면, 하루 대부분을 작업에 쓴다던데…. 작업실 내에서 항상 비트만 찍어내고 있다고.
영: 다들 그걸 신기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웃음) 이건 제가 미국에 있을 때부터 계속 그랬어요. 항상 집에 친구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고, 옆에서 게임 하고 있으면 저는 구석에서 작업을 하다가 잠깐 끼기도 하고요. 이런 게 익숙해져서 주위 상황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꽤 오래 하는 편이고요. 안 하는 날은 아예 안 하기도 하고.
리: 솔로 앨범 계획은요?
영: 사실 회사에서도 이야기를 많이 해요. 프로듀서 앨범을 내라고. 그런데, 제가 아직 그런 욕심이 없어요. 지금으로선 그 앨범을 내서 제가 얻을 게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제 장점은 어떤 걸 기획하고, 제작하는 쪽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명의 스타를 두고 그 사람을 만들어내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리: 지금은 그 스타가 화지 씨인 거군요.
영: 제 스타죠. 일종의 뮤즈. (웃음)
리: 아까 말씀했던 IPT는 정확히 어떤 집단인가요?
영: IPT는 거기 소속된 프로듀서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자는 취지로 결성한 유닛이에요. 이 단위로 앨범을 내자는 것보다는 각자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거죠. 한 사람의 비트가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다른 사람이 도와주고, 믹싱도 그렇고요. 서로 모르는 걸 알려주고, 영감을 줄 수 있는 집단이에요. (리: 품앗이 같은 거군요.) 그렇죠. 서로 도움을 주는 거예요.
리: 질문이 늦었는데, 음악을 꼭 해야겠다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영: 저로 하여금 쉬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일이 음악인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굉장히 재미있고, 결과물이 굳이 나오지 않더라도 장난치고 실험하는 것 자체로 즐겁거든요.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 아직은 음악 밖에 없더라고요. 저도 사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냥 평생 취미로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혹은 일종의 사이드잡으로?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까, 전문 비트메이커가 되어 있더라고요. 전 몰랐는데 직업이 되어 있었어요. (전원웃음) 결과적으로 보니 이게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다른 일을 했으면 지금보단 조금 덜 행복했겠죠. 그런데 이런 것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게 될 거에요. 다른 더 재미있는 게 생기면 언제든지 그쪽으로 떠나겠죠.
리: 부디 영소울 씨의 가장 큰 재미가 더 오랫동안 음악이길 바랍니다.
영: 네, 아직은 이게 제일 재미있어요. (웃음) 이런 일 하면서 재미가 없으면 정말 할 이유가 없죠. 돈이 엄청 잘 벌린다면야 억지로라도 할 수 있겠지만, 일단 재미있어야죠.
리: 사실 일종의 재능인 것 같아요. 몇 백 개의 비트를 쉼 없이 찍어내면서도, 질리지 않고 재미를 느끼는 거잖아요?
영: 제가 느끼는 또 하나의 재미가, 작업을 하다 보면 ‘와 죽인다.’, ‘이게 내 정점이다.’ 싶은 결과물이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런데 다음날 다른 뮤지션의 작품을 들어보면, ‘아직도 멀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미국의 다른 노래를 들어 보면 한참 모자라다고 실감하게 되죠. 또, 항상 다른 나무를 베는 느낌이에요. 힙합이 룹을 위주로 한 음악이고 단순할 수 있지만, 제가 BPM을 0.1 단위로 바꾸면서 작업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 0.1 단위로 그 그루브가 달라져요. 할 수 있는 게 정말 무제한인 거죠. 그런데 이 재미를 유지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해요. 계속 좋은 음악을 찾아 듣고, 텐션을 유지하는 거죠. 화지랑도 이런 걸 계속 공유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둘 다 블로그를 하나씩 만들었거든요. 블로그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좋은 것들을 서로 공유하는 거에요. 회사 사람들이랑도 이런 걸 하고 있고요.
리: 이런 부분도 음악적으로 영향을 미치겠네요?
영: 그래서 하는 거죠. 저 혼자 찾아 보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늘 같은 루트로 비슷한 소스를 통해 여러 가지를 볼 텐데, 다른 친구들은 다른 세계가 있으니까요. 특히, 보니(Boni)누나가 보여주는 영상들은 제가 절대로 찾아보지 않을 영상들이에요. 그 누나는 주로 라이브 영상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이런 부분도 저한테 많은 영향을 주죠. 꼭 음악을 만들 때가 아니더라도, 일상 생활에서도 이런 영감을 많이 얻어가요. 곧 화지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런 쪽으로도 저희가 좋은 것들을 얻어올 수 있는 거고요. 옛날부터 친구들이랑 이런 연습을 많이 해왔어요. 예를 들어, 어떤 친구가 단소를 부는 영상을 찾아온 적이 있어요. 그 영상을 틀어주면, 저희는 토 달지 않고 쭉 감상하죠. 그 친구가 이 영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이런 것들이 또 나름대로 재미있는 거예요.
리: 한국 힙합도 많이 들어요?
영: 한국힙합은 많이 안 듣는 것 같아요. 오히려 한국 가요는 많이 들어요. 이번 아이유 앨범도 좋았던 것 같고요. (웃음) 사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잖아요. 아직 들어보지 못한 옛날 음악들도 있고, 들을 게 너무 많다 보니 한국힙합까지 체크할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요.
리: 아이유 앨범은 의외네요. (웃음) 영소울 씨의 음악과 매치가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영: 그냥 듣는 걸 좋아하는 거죠. (전원웃음) 제 음악에 아이유 씨는 안되죠. 듣는 쪽으론 발라드도 좋아하고요. 락 쪽은 많이 안 들어요. 락은 유일하게 저와는 취향이 잘 맞지 않더라고요. 약간 헤비한 것들이요.
리: 다시 앨범 얘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ZISSOU]를 작업하면서, 비트 면에서 특히 애착이 갔던 트랙이 있나요?
영: 저는 “히피카예”가 제일 좋았어요. 또, 개인적인 취향으론 “구하소서”도 좋았고요. 회사에선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을 정할 때, 다들 “구하소서”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저만 혼자 밀어붙였던 게 기억나네요. 아, “이르바나”도 되게 좋은 것 같아요.
리: 결국 타이틀곡 의견은 기각되었군요. (웃음)
영: 그런데 사실, 그 부분이 저희가 회사한테 맡겼던 거의 유일한 부분이에요. 우리 취향은 좀 더 음지의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니까요. 회사 사람들과도 똑같은 믿음이 있어요. 다들 우리가 잘 됐으면 하고, 돈 버는 걸 굉장히 바라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고집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죠. 그래도 작업이나, 창작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회사가 일절 관여하지 않아요.
리: 혹시 전업 프로듀서로서 수익 부분을 물어봐도 될까요? 자신의 결과물 외에 공연이나 피처링 등의 창구가 있는 랩퍼와 달리 프로듀서는 이른바 돈 되는 곡을 쓰지 않는 이상 창구가 거의 없잖아요.
영: 주변을 보면, 아직 한국에선 프로듀서란 직업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것 같아요. 페이 문제나 저작권 분배 문제 등을 보면요. 제가 지향하는 목표 중 하나가 프로듀서들의 좋은 선례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고 페이를 받고 싶은 거고요. 그런 식으로 하나의 길을 만들어 가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금은 랩퍼들에게 곡을 팔아서 받는 페이나 TV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의 저작권료만 가지고는 프로듀서들이 생활하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그런 쪽으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선례가 되어야 할지. 곡 단위로 작업하는 것도 지금보다 더 시스템이 잡혀야 해요. 곡에 대한 페이를 받는 것도 당연해져야 하고요. 아직은 시스템이 미흡하지 않나 싶어요.
리: 그럼 앞으로도 지금처럼 소속 없이, 독자적으로 활동할 계획이에요?
영: 그렇죠. 지금 얘기가 오가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제가 계약 하나 없이 화지의 앨범을 맞게 된 이유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거든요. 화지 정도의 가치를 가진 랩퍼의 정규 앨범을 통째로 맡아볼 기회는 모두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잖아요? 프로듀서로서 큰 기회이기도 하고, 동시에 큰 임무이기도 했죠. 이런 경험들을 살려서 제 길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리: 시스템적인 부분과 본인의 커리어, 두 부분을 다 생각하고 있는 거네요.
영: 둘 다 잡는 게 목적이죠. 프로듀서의 선례가 되고 싶다는 게, 쉽게 말하면 프로듀서 모두가 TV에 나오고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지 않더라도 좋은 작업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이 대중 미디어의 노출 없이도 돈을 벌 만큼 벌고, 수익이 보장될 수 있는 부분에서 선례가 되고 싶어요.
리: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영: 일단 제가 아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웃음)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커리어를 더 쌓는 게 먼저죠. 화지랑도 항상 고민하고 있는데요, 이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자라기보다는 ‘이 문제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존해낼 것인가?!’라는 맘으로 창의적인 돌파구를 찾아보고 있어요. 결국, 목적은 저희가 만든 음악을 많이 듣게 만드는 건데, 지금은 이 한 시간짜리 결과물을 통째로 듣게 하는 게 굉장히 힘들거든요. 그래서 영상이나 아트워크 등등, 다른 방법들로도 화지의 매력을 어필할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죠.
리: 그렇다면, 영소울 씨가 어필할 매력으론 어떤 걸...
영: 글쎄요. (웃음) 그런데 저는 스포트라이트 받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성격 차이도 있을 건데, 저는 그 조명을 직접 받는 것보다 뒤에서 받쳐 주는 역할을 하는 게 제 일인 것 같아요. 앨범 작업을 할 때도, 제가 비트를 만들어서 주고 수정을 하게 되면 서로 어느 정도 요구를 하게 되잖아요? 그럴 때도 항상 그 친구가 이 영화의 슈퍼스타라는 걸 염두에 두고 작업했던 것 같아요.
리: 뭔가 달관한 느낌입니다. (웃음)
영: 처음에는 저도 돋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음악에 있어서도, 제 색깔을 철저히 입히는 것보단 앨범과 랩퍼를 좀 더 생각할 때 더 좋은 작품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화지랑 일할 때는, 항상 제가 조금 더 냉정한 역할이에요. 이 친구가 항상 뜨거운 상태로 뭔가를 하면, 저는 옆에서 아닌 건 아니다라고 잡아주는 역할을 하죠. 그래서 더 잘 맞는 것 같고요. 옆에서 보면 어떻게 이 두 명이 친구일까 싶을 정도로 다르거든요. 그게 더 도움 되더라고요.
리: 음악 외에도 화지 씨와 일상을 공유하는 편인가요?
영: 그럼요. 같이 놀기도 많이 놀고, 그냥 제일 많이 보는 친구에요. 전화 통화량도 서로가 1순위일 거예요. (웃음) 그런데 또 확실한 건, 음악을 같이 했기 때문에 이 정도로 친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오래 못 봤을 것 같다 생각해요.
리: 예전에, 어떤 뮤지션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팀이 어디 있겠느냐고요. 이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영: 영원하진 않겠죠. 뭐 죽을 수도 있고? (웃음) 그런데 화지랑은 음악만 같이 할 건 아니라서요. 저 친구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관심사가 너무 방대하고,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라디오스타라는 팀을 힙합 듀오로 한정하지도 않을 거예요. 바비 제임스 크루도 마찬가지에요. 나중에 식당을 하나 같이 하자 뭐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요. 무조건 재미있고 행복한 게 1순위인 친구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게 될 지는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때는 이런 게 있었어요. 우리가 한국힙합을 씹어먹자. (웃음) 이런 야망이 있었는데, 이제는 많이 없어진 것 같고, 항상 클래식 앨범을 만들자는 목표는 여전히 가지고 있죠.
리: 이번 [ZISSOU]는 그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나요?
영: 항상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매번 아쉬움이 남죠. 그래도, 마지막까지 만족하면서 만든 작품이에요. 보통 마지막 단계에선 많이 지쳐서 듣고 싶지도 않게 돼요. [EAT]이 그랬거든요. 앨범 자체가 조금 무겁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엔 우리가 듣고 즐길 수 있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런 점에서 성공했죠.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들로 앨범을 채워 넣었고, 계속 듣고 싶은 작품이 완성됐어요.
리: 프로듀서로서 완벽에 가까운 이상향으로 꼽을 수 있는 앨범이 있을까요?
영: 클립스(Clipse)의 [Hell Hath No Fury]가 저한텐 올 타임 넘버 원이에요. 그 앨범 들어보면 되게 구린 곡들도 있거든요? 왜 이렇게 만들어서 넣었을까 싶은 곡들이 있는데, 이걸 앨범으로 들어보면 말이 되거든요. 굉장하죠.
리: 외국에서 오래 생활했잖아요? (*편집자 주: 영소울은 사우디와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다.) 헬조선에서 생활은 어떤 거 같아요? (전원 웃음)
영: 이전부터 자주 왔다 갔다 해서 적응하기 힘들진 않았어요. 그렇진 않은데, 한국에 완전히 들어오면서 걱정을 좀 했죠. 미국에선 생활이 굉장히 여유로운 편이었는데, 한국에선 전형적인 아저씨가 되어가는 거예요. 운전을 할 때도, 처음엔 굉장히 느긋하게 양보해주고 비켜줬었는데, 이제는 그렇지가 않죠. (웃음) 여러모로 여유를 잃어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좀 나가줘야 돼요.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리: 서울을 떠야 돼?) 네, 맞아요. 그런 부분에서 이 노래가 나온 거예요. 국내 여행도 저희는 많이 가보지 못했거든요. 온천을 간다든지, 산이나 바다를 간다든지? 그래서 이번 공연이 끝나면 미국으로 갈 예정이에요.
리: 끝으로 예정된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영: 일단, 화지와 앞으로도 계속 작업을 할 것 같아요. 꼭 어떤 목표를 두고 하는 게 아니더라도 작업을 이어갈 거고요. 사실 전 한국힙합 씬에 속한 사람들을 잘 몰라요. 화지가 다른 뮤지션들이랑 두루두루 친한 편이라 저랑 작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주로 화지 통해서 듣거든요.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일단 진행해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다른 랩퍼들과도 작업해보면서 저도 실력을 더 키워야죠. 일단은 비트 만드는 공장을 가동하면서 수련을 하려고요. (웃음)
리: 아티스트로서 귀감이 될 만한 태도란 생각이 드네요.
영: 다들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을까요? (웃음) 뮤지션이 음악을 안 하면 뭘 하겠어요? 일해야죠.
리: 그럼 다음 결과물은 아마도 화지의 세 번째 앨범이 될까요?
영: 그래도 화지 3집 전에는 뭔가 나오지 않을까요? 1년에 하나 꼴로 발표하면 저도 살기가 힘들 것 같아서요. (웃음) 지금은 화지가 3집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일단 머리를 식히러 미국에 다녀와야죠.
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영: (화지 2집) 많이 들어주세요. 좋아해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고,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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