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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인터뷰 스월비 - 선할 수 있는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있다

한국힙합위키

스월비 - 선할 수 있는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있다 리드머 작성 | 2021-04-01 21:38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20 | 스크랩스크랩 | 14,913 View


인터뷰, 글: 황두하


오늘날 많은 힙합 아티스트는 더이상 ‘힙합’만을 하지 않는다. 힙합은 일렉트로닉, 록, 컨트리까지 여러 장르를 흡수하며 성장해왔고, 아티스트들도 음악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이다. 게다가 최근 등장하는 아티스트들은 애초부터 다양한 장르를 자양분 삼아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젠 특정한 스타일의 음악을 ‘힙합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위험한 시대가 됐다.


하이라이트레코즈(Hi-Lite Records) 소속의 래퍼 스월비(Swervy)도 마찬가지다. 그는 유년 시절 록 음악을 듣고 자랐지만, 지금은 랩을 하는 힙합 아티스트가 됐다. 이러한 음악적 배경은 작년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Undercover Angel]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형적인 트랩 사운드의 “Mama Lisa”와 크라잉넛(Crying Nut)의 캡틴락이 참여한 록 넘버 “파랑”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건 바로 스월비의 존재감이다. 한국 힙합 씬에 전에 없던 ‘하이브리드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리드머(이하 ‘리’): 처음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장르는 록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록에 빠지게 된 건가요?


스월비(이하 ‘스’): 어렸을 때 가장 접하기가 쉬웠던 장르였어요. 부모님이 LP나 CD, 테이프들을 굉장히 많이 모으셨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거죠. 특히, 아버지가 올드 록을 되게 좋아하세요. 어머니도 태교하는 노래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를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록도 굉장히 마니악한 장르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부모님 덕분에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던 거죠. 제가 지금껏 해왔던 음악도 그렇고, 지금 작업하는 것들도 소위 말하는 ‘야마’가 터지는 음악을 만들려고 해요. 텐션 터지는 걸 좋아하죠. (웃음) 록이 그런 면에서 특화된 장르잖아요. 그래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 다녔을 때 제가 되게 좋아했던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분도 밴드를 했었어요. 뭔가 인생이 록을 좋아하게끔 설계된 게 아닌가 싶어요. (웃음)


리: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있던 분들이 다 록 음악을 좋아했던 거네요.


스: 맞아요. 저한테 큰 영향을 끼친 분들이 다들 음악을 좋아했는데, 공교롭게도 늘 록을 좋아했던 거죠.


리: 어렸을 때 가장 꽂혔던 음악은 뭐였어요?


스: 제가 그린 데이(Green Day)를 진짜 좋아했거든요. 지금도 좋아해요. 그린 데이의 [1,039/Smoothed Out Slappy Hours]라는 앨범이 있어요. 완전 초창기에 나왔던 비정규 앨범인데, 당시에 그 앨범의 카세트테이프를 너무 구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초등학생이어서 어디서 구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그런데 방금 말했던 그 선생님이 저한테 카피를 주셔서 처음 들어볼 수 있었어요. 그린 데이를 너무 좋아해서 시험지에다가 가사 써놓고 혼난 적도 있어요. (웃음)


리: 그렇게 록에 빠져 있었는데, 지금은 힙합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고, 랩을 하고 있잖아요.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스: 누구나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분해야 하는 시기가 오잖아요. 저한테는 그 선택의 시기가 남들보다 빨리 왔던 것 같아요. 제가 랩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중학생 때 한국에 처음 왔어요. 당시에 접한 음악들이 거의 다 블랙뮤직이었죠. 그렇게 계속 접하다 보니까 안 해보고는 배겨 내지 못하겠더라고요. 록을 좋아했지만, 실제로 뛰어들어서 도전해본 장르는 힙합이 된 거죠. 해보니까 스스로도 잘 녹아든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걸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리고 당시에 록과 힙합을 접목하는 하이브리드한 음악들이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2010년대 중반쯤이었는데, 그런 시도들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죠. 그러다 보니까 굳이 한 쪽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더라고요. 힙합을 하면 어떤 음악이든지 다 할 수 있겠구나 싶었던 거죠. 그래서 조금 더 편하게 선택한 것 같아요.


리: 그럼 처음부터 음악을 전업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가요?


스: 맞아요. 되게 어렸을 때부터 사진을 찍는다든지 스타일리스트라든지 일반적인 알바랑은 다른 일들을 많이 했어요. 그런 일들로 용돈도 벌고 했지만, 그때도 저는 음악으로 돈을 버는 게 목적이었어요. 여태껏 한 일 중에 가장 즐기면서 하고 있고, 보람을 느끼는 일도 음악이에요. 그리고 돈도 제일 잘 되거든요. (웃음) 마음 속의 본업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그게 일치가 되는 것 같아요. 저한테 돈이 되는 일이지만, 천직이라고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리: 한국어로 가사를 쓰고 랩을 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스: 해외에 있을 때 네이버를 보는데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10위까지 다 래퍼인 거예요. ‘왜지?’하고 보니까 컨트롤 대전이라는 사건이 벌어졌던 거죠. 저는 빅 션(Big Sean)의 “Control”을 알고 있었거든요. 심지어 가사도 외우고 있었어요. 근데 이게 한국에서 갑자기 난리가 났다고 하니까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기 시작한 거죠. 검색해보니까 한국 힙합의 역사가 너무 깊은 거예요. 이렇게 긴 역사를 가진 장르가 한국에서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게 신기했어요.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서 내가 뭔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한국이 나한테는 본토인데, 본토에서 유행하는 장르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당시에 한국말도 잘 못 했는데, 이센스(E-Sens)의 [Blanky Munn's Unknown Verses], [New blood, Rapper Vol.1] 같은 믹스테입을 미친 듯이 들으면서 카피 랩을 했어요. 한국어 발음을 좀 더 잘 구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배치기의 “마이동풍” 카피 랩도 엄청 많이 했어요. 그 곡이 랩도 빠르고 어려운 단어들도 많이 있었거든요. 뜻도 모르는데 막 뱉었어요. 그러다가 한국에 온 후에 본격적으로 가사를 써보기 시작했어요. 당시에 ‘타입 비트(Type Beat)’라는 게 막 떠올랐었거든요. 그래서 유튜브에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타입 비트를 검색해서 거기에 가사를 썼어요. 처음에는 다 영어였어요. 한국어 가사를 쓰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 후로 한국에서 계속 지내고 친구들도 생기다 보니까 한국어 가사도 더 쉽게 쓸 수 있게 됐어요.


리: 당시 에코 야드(Eco Yard)라는 이름을 썼던 수이(Sui)와 함께 팀 야야(TEAM YAYA)라는 이름으로 [YAYA TAPE]를 발표했었죠?


스: 그 주인공이 저기에 있습니다.


수이(이하 ‘수’): 반갑습니다.


리: 반갑습니다. (웃음) 첫 정식 작업물이었는데, 팀 야야 활동은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스: 옆에 있는데 이런 질문을 받으니까 재미있네요. (웃음) 제가 서울에 딱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어요. 당시에 홍대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사이퍼를 하는 걸 처음 봤거든요.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기도 했는데, 멋있어 보이기도 했어요.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프리스타일을 했거든요. 그중 한 명이 수이였어요. 그래서 다가가서 말을 걸고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음악을 하고 싶어서 한국에 온 거니까요. ‘친구 합시다’라고 하니까 오빠도 좋다고 해서 친해지게 됐죠. 그때부터 같이 음악을 배워나갔어요. 새롭게 알게 된 아티스트나 음악을 서로 추천해주고, 같이 디깅도 하면서요. 같이 성장해나갔던 거죠. [YAYA TAPE]가 나온 게 한 중3, 고1 때쯤이었을 거예요. 그때 오빠가 같이 작업물을 하나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그러다가 인스타그램을 보는데 스페이스고스트퍼프(Spaceghostpurrp)가 비트를 판다고 해서 연락을 했죠. 그래서 비트를 30개 정도 받아서 골랐어요. 당시에 제가 멤피스 랩(Memphis Rap)을 엄청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런 풍의 비트들을 골랐던 거죠. 그때 저희한테는 엄청 큰일이었어요. 딱히 이뤄낸 건 없지만 모든 걸 이룬 느낌? (웃음) 사실 앨범이 나오고 돌아온 반응도 딱히 없었어요. 그렇지만 그때부터 뭔가 하려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같은 게 생겼던 것 같아요. 아마 혼자였으면 그런 걸 배우지 못했을 거예요. 오빠랑 함께여서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같이 작업을 하는 게 너무 당연해졌어요. 그러다가 오빠가 본인은 플레이어로서는 그만두고 싶다고 했죠. 이제는 서포터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해서 그때부터 제 뮤비 디렉터와 프로듀서로 함께 하게 됐어요.


리: 그러면 팀 야야의 활동은 끝난 건가요?


스: 아니에요. 팀 야야는 늘 유효하죠. 왜냐하면, 저희가 뭔가를 함께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작업물을 기준으로 한다면 유효하지 않은 게 될 수도 있죠. 하지만 ‘팀 야야’는 저희 둘을 통칭해서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거든요. 저희가 같이하는 모든 활동이 팀 야야의 활동인 거죠. 아, 그리고 우리 말고 멤버가 한 명 더 있잖아?


수: 맞네.


스: 에이치디 블랙(HD BL4CK)이라는 프로듀서가 있어요.


리: 그렇게 셋이서 같이 하는 거군요.


스: 원래는 좀 더 많았어요.


수: 맞아요. 근데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레 흐지부지된 거죠.




리: 팀 야야 이후에 처음으로 냈던 솔로 싱글이 “Hybrid”였어요. 일렉트로닉 아티스트 띠어리아(Theoria)가 프로듀싱으로 참여했는데, 어떻게 작업하게 된 건가요?


스: 수이가 당시에 띠어리아님에게 오랫동안 프로듀싱을 배웠어요.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그런 음악을 접하게 됐죠. 그러다가 제가 유로(Euro) 사운드가 가미된 백비트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싶다고 수이한테 말했거든요. 정말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말했는데, 오빠가 알아봐 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같이 수소문하다가 결국 띠오리아님과 작업하게 됐죠. 그때 같이 집에 가서 작업하지 않았나?


수: 맞아요. 같이 (띠어리아의) 집에 가서 작업했죠.


스: 되게 즐거웠어요. 색다른 경험이었죠. 되게 백과사전 같은 분이더라고요. 어떤 단어를 이야기하면 그 단어의 어원 같은 것을 다 알아서 깜짝 놀랐어요.


수: 기계에 대해서도 굉장히 잘 알고, 코딩으로 플러그인도 직접 만들더라고요.


스: 그때 지나가는 말로 마시멜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시멜로가 어디에서 생겨났고 무슨 뜻이고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너무 대단하더라고요. 그때 완전 뻑갔잖아. 너무 멋있었어.


수: (웃음)


리: 아까도 이야기 중에 ‘하이브리드’라는 단어가 나왔잖아요. 스월비의 음악을 굉장히 잘 정의하는 단어인 것 같아요. 본인의 음악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해요.


스: 조금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스스로는 제 음악을 가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가치의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타당한 말이 될 수도 있고, 말도 안 되는 것이 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음악에 쏟는 노력과 들이는 시간을 떠나서 스스로 돌아봤을 때 그 음악에 다시 융화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기준으로 잡으려고 해요. 과거에 냈던 [Bunny Bullet]이라는 EP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앨범과 관련한 영상들을 다 내렸거든요. 왜냐하면 지금 돌아봤을 때 융화될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뭘 하고 싶었는지는 알겠는데, 스스로 결과물에 납득할 수 없더라고요. 그때 제가 생각하던 것과 지금 생각하는 것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요. 그때부터 가치 있는 음악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Undercover Angel]도 굉장히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소재를 다룬 앨범이라서 미래의 내가 봤을 때 ‘왜 이렇게 생각했지?’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현재의 저를 가장 잘 설명한 작품이라서 좋아하는 앨범이지만요. 지금 하는 프로젝트도 2021년의 스월비를 잘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가치 있는 음악’을 한다고 생각해요. 누가 산정해준 가치는 아니지만, 저 스스로 느끼는 가치인 거죠.


리: 어떤 인터뷰에서 제이지(Jay-Z)도 ‘옛날에는 그 당시의 음악만을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오래 남길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라는 취지의 말을 하더라고요.


스: 제이지는 항상 오래 남는 음악을 하지 않았나요? [Blueprint]를 낸 사람이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웃음) 아티스트라면 대부분 공감할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Bunny Bullet]은 제가 너무 어렸을 때 낸 앨범이라서 보다가 ‘얘 왜 이러는 거지? 한 대 때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웃음) (리: 질풍노도의 시기를 공식적으로 남겨놓은…) 맞아요. 딱 그거예요.


리: 그러면 본인의 음악에 가장 많이 영향을 준 아티스트나 음악이 있을까요?


스: 이게 정말 하나만 꼽기가 어려워요. 제가 해외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다녔거든요. 학교 다닐 때는 이모(Emo) 컬쳐에 빠져있었어요. 그린 데이나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 패닉 앳 더 디스코(Panic! At The Disco) 같은 팀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리고 한국에서 온 다음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넘어가는 시기에는 소코(Soko)와 메러디스 브룩스(Meredith Brooks)를 처음 접했어요. 당시에 고릴라즈(Gorillaz)랑 소코의 영향을 진짜 많이 받았죠. 그리고 꾸준하게 지켜보면서 영향받는 아티스트는 손 럭스(Son Lux)예요. 최근에 이안 창(Ian Chang)이라는 드러머가 새로 들어왔거든요. 그분도 되게 오래 전부터 좋아했어요.


리: 이후 하이라이트레코즈(Hi-Lite Records)와 계약했어요. 저스디스(Justhis)가 팔로알토(Paloalto)에게 추천을 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스: 사실 그렇게만 말하면 되게 간단하잖아요. 저스디스님이 제 음악을 어디에선가 접한 후에 팔로 오빠한테 들려줬고, 오빠가 [쇼미더머니]에 나갔더니 마침 제가 있었고, 안타깝게 탈락했지만, 따로 연락이 닿아서 레이블에 합류하게 됐다. 굉장히 간단한 스토리죠. 그렇지만 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시행착오가 많았거든요. 사실 [쇼미머더니 777[ 때는 랩을 그만두기 위해서 나갔던 거였어요. 당시에는 방송에 대한 왠지 모를 두려움도 있었고, 방송에 나가서 제 커리어가 단정 지어지는 느낌이 있어서 피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랩을)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쇼미더머니 777]을 나가보자 싶었던 거죠. 방송에는 안 나왔는데 머리도 엄청나게 산발이었고 옷도 최대한 이상하게 입고 갔어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마지막으로 [쇼미더머니]는 경험해보고 끝내자는 마음이었던 거죠. 다른 하나는 제가 한국에 와서 사귄 친구들이 대부분 [쇼미더머니]에 나갔거든요. 제가 음악을 그만두고 다시 해외로 나가려고 했었는데,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였던 거죠. 가서 1차 예선을 보는데, 제가 작가분에게 이야기를 잘못 전해 들어서 선착순으로 심사를 본다고 이해한 거예요. 그래서 눈앞에 있는대로 뛰어갔더니 팔로 오빠가 있었던 거죠. 원래는 원하는 프로듀서한테 가서 순서 대로 자유롭게 심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제가 잘못 안 거죠. 제 앞에 수퍼비(SUPERBEE)님도 있었는데 ‘제가 먼저 보면 안 될까요?’ 해서 세 번째 정도에 심사를 봤어요. 그렇게 정신 없이 가서 랩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팔로 오빠가 저보고 팬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더 당황해서 머리가 새하얘졌죠. 그래서 랩을 했고, 오빠가 듣다가 중간에 목걸이를 줬어요. 타이밍이 좋았죠. 딱 가사를 까먹을 것 같은 타이밍이었거든요. (웃음) 이후에도 다른 프로듀서분들은 저를 그렇게 좋게 평가해주지 않았는데, 팔로 오빠만 저를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면서 칭찬을 해줬어요. 그래서 저도 약간 기대를 했죠. 레이블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아니고, 같이 작업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데 연락이 없어서 다시 유학 준비를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하이라이트레코즈의 에이앤알(A&R)인 루고(Lugoh) 오빠가 연락이 와서 미팅하자고 했죠. 음악을 시작하면서 특정 레이블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는데 하이라이트는 들어가고 싶다고 주변 사람들한테 몇 번 이야기했었거든요. 되게 막연하게 했던 이야기인데, 이렇게 운명처럼 여기에 앉아있게 됐어요.


리: 하이라이트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뭐예요?


스: 팔로 오빠의 “Good Times” 뮤직비디오가 너무 멋있었어요. 그 뮤비가 아이폰으로 찍은 거였잖아요. 거기에 호세 쿠에보를 오브제로 쓰고, 풍선들 떠다니는 그림이 저한테는 굉장히 기분 좋은 자극이 됐어요. 그리고 [HI-LIFE]도 되게 좋아했어요. 그중에서도 레디(Reddy) 오빠를 엄청 좋아했죠.


리: 레이블의 첫 여성 아티스트잖아요. 지금은 저드(jerd), 수비(Soovi) 등 여성 아티스트가 늘어났는데, 처음 들어왔을 때는 느낌이 어땠어요?


스: 당시에는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비슷한 시기에 다른 레이블도 멋진 여성 아티스트들을 영입하고 있었거든요. 오히려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걱정했어요. ‘내가 뉴 블러드가 되어야겠구나’ 싶었죠. 원우 오빠 같은 경우에는 조금 더 ‘근본’에 가까운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인데, 저는 하고 싶은 음악이 엄청 다양한 사람이거든요. ‘이게 요즘 스웨덴에서 유행하는 음악이래요’ 하면서 비슷한 걸 해보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 이런 저의 성향으로 어떻게 하면 레이블 안에서 존중과 배려를 하면서 맞춰갈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이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죠. 시대 간의 간격이 있다 보니까 그런 점을 고려했었던 것 같아요.


리: 지금은 어때요?


스: 지금은 뭐… 지금은 그런 거 전혀 없죠. (웃음) 엄청 감사하게도 제가 만드는 작업물에 대해서 (회사에서) 의심하지 않거든요. 늘 응원하고 믿어줘요. 집에서 수이랑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면서 아이디어를 내거든요. 저희는 진짜 하는 게 구상밖에 없어요. 집에서 아이디어 구상이랑 오버워치만 해요. 그렇게 구상하다가 나오는 게 있으면 실현해보려고 하고, 실현할 때 회사가 저를 위해서 힘을 써주는 그런 방식이죠. 제가 걱정했던 시대 간의 간격 같은 건 전혀 못 느꼈던 것 같아요.


리: 회사와 함께해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네요.


스: 그렇죠. 근데 처음 시작할 때 딩고 콘텐츠를 함께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계약하고 나서 딩고랑 [스월비하다] 같은 콘텐츠가 동시에 들어왔거든요. 오빠들도 강제로 저를 계속 봐야 했죠. 그래서 빠르게 친해질 기회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안 그랬으면 친해지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을 것 같고, 저도 좀 불편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리: 당시에 많은 콘텐츠를 진행한 것이 도움이 되었네요?


스: 회사에 적응하는 데에는 도움이 됐죠. 사실 당시에 콘텐츠들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거든요. 이런 얘기들을 인스타그램에서도 몇 번 했어요. 그때 본 모습으로 날 재단하지 말아 달라고. 그렇지만 어쨌든 제가 온전히 짊어져야 할 것들이기도 해서 스스로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면 제가 열심히 해야죠. 하지만 이런 이미지들을 제외하면 도움받은 것도 있죠. 회사에 적응하게끔 도와주기도 했고, 사람들한테 저를 보여줄 수 있는 큰 기회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리: 하이라이트레코즈에 들어오고 나서 두 곡의 싱글을 차례로 발표했어요. “Red Lite”와 “Art Gang Money”. 두 곡의 작업기를 듣고 싶어요.


스: 일단 “Red Lite”는 처음 딱 들어오고 미팅을 했을 때 회사에서 ‘입단 곡을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팔로 오빠가 처음 이야기했던 건 티나셰(Tinashe)의 “Throw A Fit” 같은 곡이었죠. 저도 그 노래를 정말 좋아하긴 하는데, 제가 하기에는 수련이 좀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오빠한테 ‘그냥 쉽고 강렬한 트랩 사운드로 곡을 만드는 게 어떨까요?’라고 의견을 냈었죠. 그래서 수이가 총소리가 잔뜩 들어간 트랩 비트를 만들었죠. 거기에 기존에 제가 작업했던 미공개 곡의 후렴을 조금 바꿔서 만들었어요. 하이라이트니까 ‘레드 라이트’로… (웃음) “Art Gang Money”는 잔다리 스토어라고 홍대에 위치한 편집샵이 있는데, 제 친구들이 운영하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스콜록트(Skoloct)라는 브랜드가 한국 최초로 입점 된 거예요. 제가 워낙 좋아하는 브랜드라서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방문을 했죠. 그때 (잔다리스토어의) 직원들이 자기네 가게가 스콜록트의 첫 공식 수입처가 됐는데 이걸 홍보해보고 싶다고 하길래 그러면 같이 곡을 만들어보자고 이야기가 된 거죠. 그래서 그 브랜드를 주제로 만든 곡이 “Art Gang Money”예요. 스콜로트의 슬로건이거든요. 원래는 일본에 있는 브랜드의 헤드 디자이너와 소통하고 있었는데, 그때 하필이면 일본과 우리나라의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아졌어요. 그래서 이걸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발표하면 시선이 곱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제 싱글로 발표하게 됐어요.


리: “Art Gang Money”는 [Undercover Angel]에 수록되었어도 이질감이 없었을 것 같아요.


스: 맞아요. (앨범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디엠(EDM) 사운드가 많아져서.




리: 앨범 이야기를 해볼까요. 발매된 지 꽤 됐고, 이미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했지만, 한 번 더 앨범 소개를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Undercover Angel], 아까도 이야기한 메러디스 브룩스의 “Bitch” 가사에서 따온 제목이죠?


스: 제가 “Bitch”라는 노래를 정말 좋아해요. 저는 어떤 작품이든 이질적인 맛이 있으면 무조건 흥미가 생기거든요. “Bitch”는 제가 좋아하는 이질적인 느낌의 정석 같은 곡이에요. 이 곡에서 마지막 후렴의 가사가 살짝 변형되거든요. ‘When you hurt, when you suffer, I’m your angel undercover’라는 가사예요. ‘네가 다치고 고통스러워할 때 내가 위장한 천사가 되어줄게’라는 뜻인데, 말의 의도가 굉장히 모호해요. 위장한 천사가 돼서 뭘 해준다는 말이 없거든요. 도와줄 건지, 그냥 지켜만 볼 건지 알 수 없어요. 딱히 실체도 없고요. 그래서 앨범을 작업할 당시에 저한테 엄청 큰 도움이 됐어요. 실체는 없지만, 무조건적인 선함을 가진 천사라는 존재가 내가 모르는 곳에 위장해서 살고 있다는 거죠. 지금 내가 고통스럽고 힘든 것과는 별개로 어쨌든 모두에게 선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 같았어요.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내가 미워하는 사람도 선할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있다는 사실이 저한테는 큰 위로가 됐어요. 그래서 ‘위장한 천사’라는 제목을 짓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위장천사’로 하려고 했는데 되게 쌈마이 트랩 앨범 같기도 해서 [Undercover Angel]로 바꾼 거예요. (웃음) 처음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에르메스(Hermes) 생각이 나서 ‘언더커버 에르메스’라고 할까도 생각했어요. 근데 브랜드 이름이니까 더 미친놈 같아서 지금의 제목으로 가게 됐죠. (웃음) 어쨌든 ‘선할 수 있는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있다’라는 주제로 만든 제목이에요. 아무리 절망적이고 힘들어도 인생이 다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실 그 제목에 너무 꽂혀서 의미를 찾지 못했다고 해도 그 제목을 썼을 것 같아요.


리: 그럼 제목부터 정하고 앨범 구상을 시작한 거예요?


스: 그건 아니에요. 앨범은 이미 트랙 리스트가 다 나와 있던 상태였어요. 제목을 세 번 정도 바꿨죠. 원래는 ‘Life’s a bitch then you die’로 하려고 했어요. (웃음) 당시 제 마인드가 그 구절에 굉장히 근접했었기 때문에… “Bitch”를 듣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죠. 저는 앨범 작업할 때 트랙 리스트를 미리 만들어놓고 최대한 맞춰서 진행하려고 해요. 작업하면서도 샛길로 잘 새는 편이어서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그때도 이미 트랙이 80% 정도 나온 상태에서 제목을 새로 지었던 것 같아요. [Undercover Angel]이 앨범의 전체적인 이미지나 흐름과 굉장히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리: 그럼 처음에는 어떻게 구상하게 된 앨범이에요?


스: 사실 맨 처음에는 EP를 만들겠다고 했어요. 여섯 곡 정도에, 완전 퓨어 멤피스 펑크를 해보자고 했죠. 다 찢어진 믹스에 벨이 완전 날카롭게 들려서 미쳐버릴 것 같은 그런 사운드요. 근데 그때 수이가 이 순간이 저의 감정을 녹이는 앨범을 만들 수 있는 기간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당시에 활동을 잠시 쉬고 구상만 하고 있을 때거든요. 제가 이전까지는 스토리텔링이라는 걸 해볼 생각을 단 한 번도 못 했어요. 그리고 스스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랩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죠. 요새는 ‘랩 차력’이라고도 많이 말하는데, 그런 퍼포먼스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수이가 말한 앨범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있었죠. 그래도 한 번 제 감정선을 푸는 앨범을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으로 만든 트랙이 “Did It Like I Did”였어요. 라틴풍의 루프로 만든 트랙이었는데, 제가 그 트랙에서 처음으로 싱잉을 도전했어요. 멜로디도 만들어보고, 노래도 해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거예요. 그래서 자신감을 얻게 됐고, 작업하면서 더 발전하게 됐어요. 여러 가지 장르를 들었지만, 제 음악에 있어서는 굉장히 닫혀 있는 편이었거든요. 앨범을 작업하면서 조금 더 마음을 열 수 있었어요.


리: 작업하면서 특별히 신경 썼던 점이 있을까요?


스: 유기성과 사운드에 포커스를 맞췄던 것 같아요. 제가 가사에 있어서 비주얼라이징을 엄청 중시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정말 구체적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직접적인 가사를 쓰지 못해서가 아니라 굳이 직접적으로 쓰고 싶지 않아서 그랬죠. 비유적인 표현을 더 많이 썼죠. 그래서 가사에서 살짝 부족할 수 있을 법한 부분을 사운드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커버하려고 했어요. 사운드와 유기성, 그리고 이미지로 이야기를 보여주고, 가사로 부가적인 설명을 하는 거죠. 앨범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가사를 쓴 트랙이 두 개 있는데, 그게 “Mama Lisa”랑 “파랑”이에요. 그 두 트랙은 가사부터 사운드, 비디오 모든 것이 직접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했어요. 나머지는 사운드를 더 신경 썼죠. 수이한테 옆에서 입으로 ‘여기선 이래야 해’라고 말하면 수이가 고생하는 그런 방식이었죠. (웃음)


리: 이야기한 것처럼 수이가 전곡을 프로듀싱했는데, 굉장히 긴밀하게 작업했을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이야기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스: 너도 말씀하세요. 어떤 식으로 작업했나요.


수: 우선 유빈이(스월비)랑 같이 구상을 막 해요. 어떤 장르랑 힙합이랑 섞고, 드럼은 이런 것을 얹고, 등을 이야기하죠. 그리고 트랙 순서를 정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또 구상하고, 그 다음에 제가 비트를 만들기 시작해요. 그 위에 유빈이가 랩을 하면 저는 그걸 가지고 다시 편곡하죠. 그리고 같이 들으면서 다시 한번 더 회의한 다음에 발전시키는 거죠. 그래서 한 곡 만드는 데에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스: 제가 랩을 한 다음에 수이가 바통을 받아서 완성하는 게 아니라, 제가 20% 완성하면 수이가 다시 20% 만들고, 이런 과정을 반복했어요. 그래서 오래 걸렸죠. 이게 같이 한 자리에 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걸 만약에 구글 드라이브 같은 걸 통해서 원격으로 작업했다면 못 했을 거예요. 제가 막 자다가 깨가지고 ‘야 이거는 이렇게 해야 해. 내가 꿈에서 들었어!’ 이러면서 작업할 수 있었죠. (웃음)


수: 믹스할 때도 유빈이랑 같이 부스트놉(Boostknob) 기사님 찾아가서 믹싱했어요.


스: 맞아, 맞아. 그때 저녁 7~8시에 만나서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같이 있었어요. 완전 동고동락한 거죠. 그래도 엄청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소감 말할 때 부스트놉 기사님을 거의 맨 처음에 언급했어요. 기사님이 엄청 잘해줬거든요. 그리고 애초에 저희랑 사운드적으로 취향이 너무 잘 맞더라고요.


리: 조금 전에 이야기한 “Mama Lisa”라는 트랙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어머니의 기도가 담긴 “천수경 (Skit)”과 이어지는 트랙이잖아요. 어떻게 구상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스: 애초에 “천수경”은 넣기로 했던 트랙이에요. “Mama Lisa”는 오히려 이후에 작업하기로 마음먹은 트랙이죠. 제 감정선을 푸는 앨범을 만들자고 생각했을 때부터 ‘어머니의 기도’가 떠올랐어요. 원래는 엄마 기도 소리만 쓰는 게 계획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드럼도 넣고 조금 더 사운드를 풍성하게 가져가게 됐어요. 종교적인 느낌을 가미하기 위해서요. “Mama Lisa”는 그 당시에 제가 “파랑”, “Alibi”, “YAYA2”처럼 멜로디컬한 노래들을 작업하다 보니까 랩이 너무 하고 싶어져서 만들게 된 거예요. 수이한테 ‘나 랩 하고 싶어. 몸에서 사리 나올 것 같아. 트랩 하나 하자!’고 했는데 수이가 되게 멋진 루프를 하나 가지고 왔어요. 진짜 엄청 마음에 드는 사운드였죠. 그런데 듣다 보니까 사운드에서 엄마의 이미지가 겹쳐 보이는 거예요. 뭔가 명을 받은 것처럼. 그래서 여기에서는 조금 더 직접적이고 강렬한 단어들로 가사를 쓰고 싶은데, 엄마의 가르침에 따라서 쓰면 예쁠 것 같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가사를 보면 엄마라는 단어나 엄마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는 않아요. 후렴에서 엄마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 엄만 말해 나를 보고’ 같은 가사가 다죠. 제가 여기에서 엄마 이야기만 죽 쓰면 그냥 엄마에 대한 헌정곡이 되어버리거든요. 저는 ‘추성희’라는 사람에 대한 헌정곡을 만들고 싶지 엄마에 대한 헌정곡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근데 제가 ‘성희는 내게 말했지’라고 쓸 수는 없으니까… (웃음) 저는 엄마의 후대잖아요. 엄마의 가르침을 물려받아서 그걸 계속 이어나간다는 게 주제고, 우리 엄마는 이런 가르침을 주셨다고 말하는 거죠. 엄마의 가르침이 일반적인 가르침과는 조금 다르긴 해요. ‘천적을 만나면 이렇게 해라’, ‘위험에 처했을 때는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네가 천적이 되어라’라고 하는 편이었거든요. 그런 가르침을 받았지만, 어렸을 때는 조금 소극적인 편이었어요. 엄마의 가르침을 적용하면서 살아가기 시작한 건 성인이 된 이후죠. 앨범을 작업하면서도 엄마랑 대화를 굉장히 많이 했고, 제 삶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Mama Lisa”가 나온 것 같아요. 만약에 ‘우리 엄마는 너무 고생을 많이 했어, 우리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이런 노래였으면 이렇게까지 애정이 가는 곡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엄마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곡에 대한 애정이요. 그래서 저도 “Mama Lisa”를 엄청 좋아해요. 제 팬들도 많이 좋아해 주더라고요. ‘추성희’라는 여자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곡인데, 제 의도에 맞게 들어준 것 같아서 뿌듯하죠.


리: 본인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예요?


스: 저에게 교본 같은 존재죠. 제가 어떤 상황에 부딪쳤을 때 대다수의 경우에 딱 두 가지로 생각하거든요. ‘엄마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그리고 ‘수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스스로 자립심을 가지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난관에 봉착했을 때는 그 두 가지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두 사람이니까요. 늘 닮고 싶지만, 닮으려면 한참 먼 것 같아요.


리: “Mama Lisa”는 영화 [킥 애스: 영웅의 탄생, Kick-Ass]의 클로이 모레츠(Chloë Moretz)나 [알리타: 배틀 엔젤, Alita: Battle Angel]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스: 저도 [킥 애스] 정말 좋아해요. 실제로 “Mama Lisa” 뮤직비디오를 찍으려고 했었는데, 그때 레퍼런스로 잡았던 게 [킥 애스]의 전투 씬이었거든요. 힛걸이 교복 입고 싸우는 장면. 작년 할로윈 때는 수이가 힛걸, 제가 빅 대디 코스프레를 하려고 하기도 했어요. (웃음)


리: “Mama Lisa”도 그렇지만, 앨범 전체적으로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에 맞서 싸우는 여성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대한민국에서 어린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또 대중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이러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거로 짐작해요. 실제로 그런 시선을 느끼고 살아가나요? 또 그러한 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스: 사실 편견 섞인 시선이 대다수잖아요. 저는 부정적인 의미의 시선을 많이 겪었던 것 같아요. 제가 처음 등장했을 때 ‘미성년자 여성 래퍼’였어요. 그런데 제가 뮤비에서 빨간 머리로 염색하고, 빨간색 가터벨트와 짧은 치마를 입고 나왔거든요. 그런데 그 모습이 제가 의도한 캐릭터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간과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시에 받았던 편견 섞인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더니, 이제는 그 바뀐 모습에 대한 편견이 또 생기더라고요. 원래는 그런 시선에 동요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에 더 상처를 받았죠. 나를 재단하는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갈 거라고 자신했어요. 그게 인간 신유빈이든 스월비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시선에 제가 갇히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볼 텐데’ 하는 식으로요. 그래서 앨범을 만들면서도 ‘이 노래 너무 좋은데, 이거는 뮤비를 찍지는 말자.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볼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이제는 그런 시선이 정말 쓸모 없다고 느껴요. 제가 옷에 돈을 진짜 많이 쓰거든요.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250만원 어치인데, 250원도 안 되는 의견들에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싶은 거죠. ‘너희들이 날 보는 시선을 바꾸지 않을 건데, 내가 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저는 (차별과 편견의 시선들을) 받다 보니 무뎌진 거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 어떤 누구도 ‘그런 차별이나 편견은 없지.’라고 말할 수 없어요. 명백하게 존재하니까.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여성 아티스트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라잖아요. 성비가 맞지 않죠. 그래서 여성 아티스트들 각자가 질타나 편견에 무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극복해나가는 방식도 각자 달라요. 나서서 싸우는 분도 있고, 그냥 무시하는 분도 있죠. 각자 방식은 다르지만, 극복한다는 선택을 한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지금 씬에서 활동하는 여자 아티스트 중 8할은 그걸 극복한 사람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편견은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이 보일 때마다 되게 화가 나요. 그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척하는 거예요. 제가 앨범이 나왔을 때 안 좋은 의미로 마음에 남았던 피드백 중 하나가 ‘여자 래퍼답지 않은 앨범이다.’라는 거였어요.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지 생각해봤는데, 주제도 아닌 것 같고, 사운드도 아닌 것 같았어요. 그냥 그 당시에 여성 아티스트가 앨범을 냈을 때 그것에 대해서 뜨겁게 토론하거나 피드백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앨범이 나왔고, 그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다 보니까 그런 반응이 나온 것 같아요. 아티스트가 작업물을 내면 그것에 대해 리스너들이 반응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러한 반응을 얻기 위해서 작업물을 내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성 아티스트들 앨범에 대해서 이 정도로 뜨겁게 반응하거나 이야기한 적이 없어서 그런 분위기 자체만으로도 ‘여자 래퍼답지 않은 앨범이다.’라고 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러한 의견에 굉장히 화가 났어요. 스스로에게 화가 나더라고요. ‘내가 뭘 챙겼어야 하지? 내가 더 뭘 어떻게 했어야 이런 말이 안 나왔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 거죠. 또 ‘내가 어떻게 해야 이런 소리에 더 의연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식으로 어느 순간부터 분노가 저한테 돌아왔어요. 아까 제 앨범의 주제가 ‘모두한테 선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가 있다’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 기회도 안 잡는 머저리들이 있을 뿐이라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이제는 그냥 도움이 되고 싶어요. 힙합 씬이라는 커뮤니티에도 도움이 되고, 그 안에 있는 여성 아티스트라는 작은 커뮤니티에도 도움이 되고 싶고, 저랑 비슷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Did It Like Did”라는 곡도 제 친구 중에 소수자들이 많은데, 그들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표하는 의미로 쓴 거예요. 그런 식으로 저 나름대로 도움이 되려고 하는 거죠. 저한테 따라오는 시선이나 편견 같은 걸 극복하고 돌파하려고 노력도 많이 해요. 근데 뜻대로 안돼서 서럽기도 하고… 정말 많이 고민하고 화내고 해결해보려고 하는 주제예요. 이건 정말 얘기를 해도 해도 끝이 없어요.




리: 이 이야기만 해도 인터뷰 한 편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웃음) 최근에 “Mama Lisa”로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트랙 부문을 수상했어요. 수상을 예상했나요?


스: 예상은 정말 조금도 못 했습니다. 뻔한 얘기지만, 후보에 오를 거라고도 생각 못 했어요. 알게 된 계기가 정말 웃긴데, 제가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친구가 저한테 카톡을 보내는 거예요. 이것 좀 보라면서, 자기가 너무 화가 난다며 보냈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인터넷에서 누가 제 욕을 엄청 하는 거였죠. 원래는 그런 걸 잘 보는 성격은 아닌데 들어가 봤더니 ‘스월비가 뭔데 한대음 후보에까지 오르냐’라는 식의 글이었어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리: 악플로 알게 된 거네요.) 그러니까요! 기대도 안 했고, 한대음 후보 발표 날이 언제인지도 몰랐거든요. 그래서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수상했을 때는 막중한 책임감이 들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받고 나니까 오히려 길이 하나 더 열린 느낌이더라고요. 스스로를 믿고 음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리: 코로나 시국이라서 시상식 날에 수상자들만 참석했잖아요. 그래서 수상한 걸 미리 알게 됐죠?


스: 그렇죠.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잠도 많이 못 잤어요. 10분 동안은 ‘어떡하지, 이게 사실일까?’ 이러다가 또 10분 동안은 ‘그래서 트로피는 어디에다가 놓지?’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리: 실제로 트로피는 어디에 뒀나요?


스: 마이크 스탠드 옆에 뒀어요. 보면서 녹음할 수 있게. (웃음) 트로피가 스피커 우퍼 모양이잖아요. 그래서 양쪽에 하나씩 두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제가 시상식 때 소감 말하면서 약간 마음이 들떴는지 ‘자주 얼굴 비추고 싶습니다.’라고 말해버렸거든요. 약간 그 말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이 생겨서… 뱉은 말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웃음)


리: 그럴 수 있길 바랍니다. (웃음) 앨범을 들으면서 가사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특히, “Did It Like I Did”의 ‘니 여자친구나 챙겨, 내가 뺏고 나면 넌 울어’나 “Mama Lisa”의 ‘우리 엄만 말해 나를 보고, 뺨을 한 대 맞음 목을 뽑고 와’ 같은 가사들은 스월비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라인이라고 생각해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감흥이 달라지는데, 어떻게 이런 식의 가사를 쓰게 됐는지 궁금해요.


스: 제가 이질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잖아요. 가사도 그런 것 같아요. ‘클리셰 비틀기’를 좋아하죠. “Did It Like I Did”의 가사는 클리셰 비틀기의 일환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그런 가사를 많이 썼었어요. ‘네 여자친구는 나를 더 좋아한다’라는 식의 가사죠. 클리셰를 비틀어서 오리지널리티를 하나 더 챙긴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목을 뽑고 오라는 말을 하는 엄마를 가진 딸들은 세상에 많이 없잖아요. (웃음) 그리고 힙합에는 클리셰가 많잖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너무 좋죠. 영감이 쏟아지는 장르를 운 좋게 택한 것 같아요.


리: 평소에 가사를 쓸 때 주제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받는 편이에요?


스: 제가 심보선이라는 시인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분의 단어 선택이나 문체가 굉장히 날카로워요. 제가 그런 날카로운 단어나 흐름을 좋아하거든요. 화지님의 가사도 굉장히 좋아해요.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리고 가사를 쓸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까 말했듯이 비주얼라이징이에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가사를 쓰기 전에 비트를 틀어놓은 다음에 눈을 감고 5분에서 10분 정도 막 공상하다가 가사를 썼었거든요.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상상을 하는 거죠. 요즘엔 명상까지는 안 해요. (웃음) 그리고 옛날에는 가사를 사운드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거든요. 라임을 이렇게 배치하고, 이런 음절을 사용해서 이런 소리가 나오게끔 하는 접근법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어요. ‘래퍼는 가사를 쓰는 사람인데, 의미를 버리고 소리만 챙기면 어떡해?’라는 생각을 했죠.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식으로 가사를 써 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음절 하나 빼니까 완전히 다른 소리가 탄생하는 게 신기했죠. 그래서 요새는 중간인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한 비주얼을 가사로 완전히 표현하는 것 반, 그렇게 쓴 가사를 사운드적으로 잘 녹이는 것 반. 그래서 요즘에는 정말 장황하게 가사를 써놓고 계속 불러보면서 음절을 빼고, 프로듀서인 수이랑 같이 상의하면서 조율해나가요. 그러다가 막히면 다시 심보선님의 시집을 읽죠.


리: 작년에는 밴드 못(MoT)의 이이언과도 작업을 했어요. 어떻게 이루어지게 된 작업인가요?


스: 제가 크라잉넛의 한경록님과 친해져서 종로컬링 공연에도 섰었거든요. 그때 이이언님도 있었어요. 제가 정말 오랫동안 팬이었는데, 정신이 없어서 인사도 못 했죠. 이후 어떤 인터뷰에서 이이언님에 대한 팬심을 엄청나게 드러냈어요. 그런데 우연히 이이언님이 저를 검색했고, 그 인터뷰를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경록님한테 제 번호를 받아서 새벽 2시쯤에 문자를 보냈어요. 저랑 작업하고 싶다고. 제가 20초 만에 답장했죠. 아직 들어보지도 않았지만, 무조건 한다고. ‘스컬’ 한마디만 해도 좋으니까 하겠다고. (웃음) 그 후에 비트를 보내줬는데, 저는 약간 도전하는 느낌이었어요. 정말 오랫동안 팬이었던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누가 되기 싫었거든요. 그래서 엄청 열심히 작업했어요. 12마디 정도였는데, 정말 공을 많이 들였죠. 다행히 한 번에 오케이가 났어요. 결과물이 엄청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이언님은 마음에 들어 했어요. 거기서 끝난 줄 알았는데 뮤직비디오 감독님이 모델로 저를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서 뮤비에도 출연하게 됐어요. 그 후에는 사적으로도 엄청 친해졌어요. 이이언님 와이프분하고도 같이 친해져서, 저랑 수이까지 넷이서 같이 집에서 술도 마시면서… 서로 선물도 주고받고, 작년 할로윈 때는 랜선으로 같이 파티도 했어요.


리: 엄청 깊은 인연으로 발전했네요.


스: 네, 엄청 가까워졌어요. 그래서 되게 뿌듯했습니다.


리: 앞으로 또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나, 도전해보고 싶은 음악이 있을까요?


스: 제가 얼마 전에 딘딘님이 진행하는 [뮤직하이] 라디오에 나가서 선우정아님과 신해경님에 대한 애정을 또 한 번 드러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한대음 시상식에 가서 중학생이 된 기분으로 선우정아님한테 너무 팬이라고 고백했어요. (웃음) 근데 엄청 잘 받아줬거든요. 그래서 엄청 뿌듯했죠. 제가 지금 2집을 작업하고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꼭 같이 작업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요새 재즈나 엠비언트에도 관심이 가더라고요. 요새 저랑 수이가 ‘엠비언트가 미래다’라는 말을 맨날 하거든요.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팔로우하고 좋아하던 아티스트들이 자꾸 엠비언트 쪽으로 빠지더라고요. ‘이게 이유가 뭘까’라고 생각하면서 파보고 있어요.


리: 스월비가 하는 재즈나 엠비언트는 굉장히 독특할 것 같네요.


스: 그렇죠. 지금 하는 음악들과는 굉장히 거리가 머니까요. 근데 또 재미있는 건 요새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빅 션(Big Sean)의 [Detroit 2]예요.


리: 최근에는 레디, 요시(Yosi), 수이와 함께 하트코어(Heartcore)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프로젝트인지, 또 구체적으로 언제쯤 발표가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스: 언제쯤 발표된다고 딱 약속할 수는 없는데, 무조건 올해 안에 나올 거예요. 여름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어요. 전자음악 기반이고, 패션쇼 음악을 생각하면 쉬워요. 패션쇼에서 들리는 EDM과 벌레스크(Burlesque) 음악의 웅장함을 섞은 음악이에요. 제가 벌레스크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저희 넷이서 EDM과 벌레스크의 접점을 딱 찾았다고 생각해요. 도움을 주는 분들도 굉장히 많아졌어요. 저희도 이 프로젝트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어요. 그래서 좀 말을 아껴야 할 것 같긴 한데, 저희도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이게 프로젝트 팀이긴 한데, 저희끼리 1년에 한 번 씩은 뭔가를 해보자고 이야기 중이에요. (수이를 보며) 너는 할 말 없니. 너도 멤버잖아.


수: 얘기를 다 해버려가지고. (웃음)


리: 어떻게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예요?


스: 제가 앨범이 나오고 난 후에 수이한테 쉬지 않고 뭔가를 또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2집을 바로 작업하기는 그렇고, 그사이에 할만한 적당한 볼륨의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데 뭐가 있을까 하다가 레디 오빠를 꼬셔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회사에 레디 오빠가 나오는 날을 스캔한 다음에 가서 ‘오빠 우리 옷 얘기하는 앨범 만들래요?’라고 제안했죠. 오빠도 좋다고 하는 거예요. 안 그래도 자기도 이제 또 뭘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고. 레디 오빠의 [500000] 앨범이 제 앨범이랑 일주일 차이로 나와서 타이밍이 딱 맞았거든요. 작업하면서 저희도 오빠한테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저희도 몰랐던 레디 오빠나 요시 오빠의 매력도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오빠가 EDM에 가까운 음악을 많이 하지는 않았거든요. 넷이서 같이 하니까 시너지가 좋은 쪽으로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리: 하트코어 외에 다른 계획도 있어요?


스: 일단 2집이 있습니다. 2집과 하트코어를 동시에 작업 중인데, 하트코어가 먼저 나올 예정이라 2집은 아주 천천히 작업하고 있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저희는 구상하고 오버워치밖에 안 하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하는 중이에요. 그리고 사진을 다시 시작했고요. 또 언오피셜보이(unofficialboyy) 오빠랑 감마(Gamma) 오빠랑 디오지(D.O.G)라는 크루를 만들었거든요. 아마 홍원 씨도 같이 하는 것 같아요. 그쪽 크루랑 자주 놀고 있어서 번개로 뭐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리: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스: 하트코어 프로젝트 기대해주세요. 저희가 처음 의도했던 것보다 일이 커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엄청 기대돼요. 2집도 준비 중이니까 그것도 기다려주면 좋겠어요. 계속해서 잊혀지지 않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리드머 모든 리드머 콘텐츠는 사전동의 없이 영리적으로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20 코멘트 등록 안냥하샤요 안냥하샤요 (2021-04-01 23:08:56 / 115.137.235.**)추천 1 | 비추 0 신보선 -> 심보선 시인, 신혜경-> 신해경으로 오타 정정하셔야 할듯 싶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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