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리드머 작성 | 2019-08-20 19:12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1 | 스크랩스크랩 | 14,301 View
인터뷰, 글: 황두하, 이진석
수민의 등장은 갑작스러웠다. 2016년에 발표한 첫 EP [Beat, and Go To Sleep]은 이전까지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완숙한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네오소울을 바탕으로 팝, 알앤비, 힙합 등을 적절히 흡수한 프로덕션은 탄탄했고, 담백하게 리듬을 밀고 당기는 보컬 또한 수준급이었다. 실력 있는 신예 아티스트의 등장이 드문 국내 알앤비 씬에서 수민의 존재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큰 반전이 있었다. 작년 여름, 첫 번째 정규 앨범 [Your Home]으로 EP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음악을 선보인 것이다. 일렉트로닉적인 성향이 대폭 강화된 가운데 신스 팝(Synth Pop), PBR&B, 엠비언트(Ambient), 퓨쳐 바운스 등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사운드의 스케일을 성공적으로 확장했다. 더불어 과감한 구성과 사운드 전개, 그리고 수민만의 개성이 가득 담긴 가사로 전에 없이 황홀한 감흥을 선사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알앤비/소울 씬에서 쏟아져 나온 수작들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이었다. ‘2019 제16회 한국대중음악상’과 ‘코리안 힙합 어워드 2019(Korean Hiphop Awards 2019’에서 각각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상과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상을 받은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로부터 1년 후, 그는 새로운 EP [OO DA DA]를 들고 돌아왔다. 레드 벨벳(Red Velvet)을 비롯한 케이팝 아티스트들과 작업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까? 앨범은 ‘네오 케이팝(Neo K-Pop)’을 표방했다. 이번에도 하나의 장르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과감해진 수민의 음악 세계를 담아냈다. 블랙뮤직을 넘어 다양한 장르를 유영하고 있는 아티스트, 수민을 만나봤다.
리드머(이하 '리'): 이번 EP [OO DA DA]는 ‘네오 케이팝’을 표방했어요. 어떤 의미에서였나요?
수민(이하 '수'): 단순하게 제가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하는 음악이 ‘케이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케이팝은 아이돌 위주의 음악이죠. 거기에 ‘새롭다’는 뜻의 ‘네오(Neo)’를 붙여서 그냥 제 음악을 ‘새로운 케이팝’이라는 의미로 붙이게 된 거예요. 생각보다 굉장히 단순한 의미죠.
리: 데뷔 EP [Beat, and Go To Sleep)은 전통적인 알앤비에 가까운 사운드를 보여줬어요. 그리고 작년 [Your Home]부터 말씀한 것처럼 다양한 장르를 껴안는 식으로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수: 음악적인 계기를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워요. 제 감정과 감성의 기복에 따라서 음악도 변화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그런 음악적 변화는 활동하는 동안 계속해서 이어질 예정이에요. 이유라고 한다면 저의 개인적인 일들이나 사사로운 행동 방식의 변화 때문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어요. 첫 EP를 낼 당시에는 제가 재즈 씬에서 활동했었어요. 클럽에반스나 올댓재즈 같은 곳에서 긱(Gig/*필자 주: 필요에 따라 즉석에서 연주자를 섭외하는 재즈 특유의 협업 방식)을 하면서 만들었던 작품이었거든요. 그래서 재즈 연주자들에게 편곡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었어요. 자연스럽게 실제 악기 녹음을 받는 식의 작업이 이루어졌던 거죠. 이후에는 활동하면서 더 많은 프로듀서들과 DJ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음악적 영감을 받았어요.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퍼즐처럼 모아지면서 [Your Home]의 사운드가 완성됐던 거예요. 그렇지만 코드 진행이나 화성 같은 것들은 원래 제가 지향하던 알앤비적인 느낌이 녹아있죠.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지 어쨌든 다 제 음악의 연장선이거든요.
리: 여전히 블랙뮤직에 뿌리를 둔 건 맞나요?
수: 제가 91년생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음악이 블랙뮤직이었어요. 또 그 당시부터 블랙뮤직 커뮤니티들이 생기기 시작했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에 노출됐어요. 그래서 제 음악에도 당연히 반영이 되는 것 같아요. 기린 오빠와 함께했던 [Club 33]도 그러한 영향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었죠. 1990년대 알앤비를 기반으로 만든 프로젝트였으니까요. 그렇지만 블랙뮤직만을 고집하겠다는 건 전혀 아니에요. 저는 이걸 바탕으로 해서 록, 일렉트로닉,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고 싶어요. 한 가지만 하기에는 제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다양한 것 같아요.
리: 음악적인 욕심이 엄청난 것 같아요.
수: 그래서 저도 저를 설명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웃음) 제가 지금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인디펜던트로 오래 활동했어요. 그때 유통사에 음원을 보낼 때 장르를 한 가지 카테고리로 정해서 보내야 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몇 가지 분류 밖에 없잖아요. 사람들이 저를 알앤비 뮤지션으로 부르면 알앤비 뮤지션일 수도 있고, 힙합이라고 부르면 힙합 아티스트일 수도 있는 거지만, 저는 그 어느 것으로도 규정되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장르’라는 벽을 허무는 시도를 계속하고 싶어요.
리: 그럼 본인이 활동하는 반경이나 회자되는 곳이 주로 블랙뮤직 씬이라는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수: 그것 자체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어디서 회자가 되건 저는 다 좋아요. 제가 아이패드를 노래해도 어떤 사람들은 같은 애플이니까 아이폰을 노래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저도 아티스트이자 대중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어떤 작품을 보거나 들을 때 주관적인 생각들이 불쑥 올라올 때도 있으니까요. 그 사람은 A를 말하고 있는데 저는 평생 B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긍정적인 편이죠. 제 음악이 어느 곳에서 한 번 이야기되면 이게 이어져서 다른 곳에서도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다른 매체에서 인터뷰할 때 가끔씩 ‘알앤비 싱어로 활동하고 있는 수민’이라는 이야기를 듣거든요. 그렇지만 그건 수식어일뿐이고 다른 수식어로도 불리려면 스스로 음악을 열심히 해서 설득력을 키워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 긍정적이에요.
리: 기린과 함께한 [Club 33]은 어떻게 작업하게 된 건가요?
수: 제가 원래부터 기린 오빠 음악을 좋아하는 팬이었어요. 근데 제가 옛날에 진보(Jinbo)와 함께 “U & Me”라는 싱글을 낸 적이 있었는데, 기린 오빠가 그걸 듣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연락을 한 거죠. 처음 만난 건 그때였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서로 만나면서 캐주얼하게 작업을 했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제가 SNS에 어떤 노래의 스케치를 피아노로 치는 영상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난 바보야”라는 노래예요. 그걸 기린 오빠가 듣고 그 곡을 자기한테 만들어 달라는 거예요. 본래는 본인 앨범에 수록하겠다고 가져간 곡이었죠. 그 다음에는 에잇볼타운(8 Ball Town)에서 나오는 프로젝트에 제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피처링을 한 적도 있고요. 그렇게 곡들이 쌓이다 보니까 기린 오빠가 ‘그럼 이것들을 프로젝트 앨범으로 모아서 내보자.’라고 해서 만든 게 [Club 33]이에요.
리: 커버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스키복을 입고 서있는…
수: (웃음) 제가 기린 화가 된 커버였죠.
리: 말씀한 것처럼 인디펜던트 활동을 꽤 오래 했는데, 어려운 적은 없었나요?
수: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회사를 들어와 보니까 ‘아 그게 정말 힘든 일이었구나.’ 하는 게 많았어요. 콘서트 같은 것도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도맡아 진행을 했었으니까요. 연락 돌리는 것부터 합주 진행, 페이 정산까지 전부 다요. 그것들을 저 혼자 했다고 생각하니까 스스로가 대견하더라고요. 사실 음악 작업하는 건 저한테 전혀 스트레스가 아니에요. 정말 즐겁고 행복한 일이죠. 그런데 보통 사람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오잖아요.
리: 어떤 분야에서든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힘들죠. (웃음)
수: 저 혼자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까 어려운 부분이 많더라고요. 소통의 오류가 생기기도 하고. 또 제가 도움 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더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생각했었고요. [Your Home]이라는 앨범이 수민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지만, 사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들어가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게 제 마지막 인디펜던트 앨범이 될 수 있었던 게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인디펜던트로 갈 수도 있지만, 그건 나중 일이니까. 지금은 일단 너무 좋아요.
리: 작년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Your Home]에 대한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2019 제16회 한국대중음악상’과 ‘코리안 힙합 어워드 2019(Korean Hiphop Awards 2019’에서 각각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상과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소감이 어떤가요?
수: 일단 제 앨범이 엄청 잘됐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Your Home] 앨범이 제 스스로 이정표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많은 면에서요. 전부 다 설명할 수는 없어요. 저만 아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데 제 인생의 큰 이벤트라고 생각하니까, 진짜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 신기했어요. 이 앨범 덕에 사람들이 아주 조금 더 알아봐주기도 하고요. 특히,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회자되는 게 아직도 신기해요. 그런 현상들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특별한 일들이었던 것 같아요.
리: 이전에 인터뷰에서 ‘1일 1곡’ 작업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지금도 하고 있어요?
수: 요 근래에는 못 했어요. 최근에는 이틀에 한 곡?
리: 이틀에 한 곡도 대단한데요.
수: (웃음) 왜냐하면 혼자 활동할 때는 스스로 스케줄 조절을 하면서 매일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자연스럽게 구축했었거든요. 그런데 회사와 일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어느 날은 스케줄 끝나고 집에 오면 떡실신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요. 그런 날에는 작업을 아예 못하죠. 아쉬운 마음에 다음 날에 벼락치기로 몰아서 작업하고요. 그렇다고 ‘매일 만들어야 해!’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니에요. 사실 더 만들고 싶죠. 빨리 만들어서 실시간으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내 감정은 지금 이래.’ 이렇게요. 모든 아티스트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리: 대단한 열정입니다. 프로듀싱할 때 장비는 어떤 걸 사용해요?
수: 저는 정말 평범해요. 사람들은 제가 특별한 걸 쓸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모티프(Motif) 마스터 키보드 딱 두 개로 작업해요. 그것들 말고는 진짜 쓰는 게 없어요. 거기에 제 목소리랑 가사를 얹는 거죠. 그래서 가끔 제 작업실에서 라이브 클립을 촬영하고 싶다는 요청이 오면 민망해서 다른 데에서 하자고 해요. (웃음)
리: 작업하는 방식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네요.
수: 보통 드럼 스케치부터 먼저 해요. 원래는 그 뒤에 대략적인 코드 워크를 진행했었는데, 지금은 멜로디랑 코드를 거의 동시에 작업해요. 가사는 음악이 나오기 전에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매번 메모를 해놓는 건 아니고, 저도 모르게 막 생각나는 경우가 있어서요. 요즘에는 일부러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보려고도 해요. 제 목소리를 피치 별로 만든 다음에 샘플러에 넣어서 인위적인 음악을 만드는 거죠. 그 위에 새롭게 목소리를 얹어서 굉장히 이질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내려고 시도해보고 있어요. 근데 또 이렇게 말해놓고서 다른 방식으로 작업할 수도 있어요. 되게 랜덤하거든요. 어느 방식이 정해져 있다고 딱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리: 수민의 음악에서 가사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Your Home]의 “통닭”, “I Hate You”나 [OO DA DA]의 “POCKET” 같은 경우는 특히 가사가 굉장히 인상적인데,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수: 저는 무조건 ‘사랑’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막 ‘널 너무 사랑해 저 하늘 만큼’ 이런 식의 사랑이 아니라, 사랑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을 노래하고 싶어요. 사랑하면서 싸울 수도 있고, 너무 사랑해서 부서질 정도로 안을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을 특정 상황이나 소재에 연결시키는 걸 좋아해서 그런 가사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해요. 이번 앨범에서도 “STARDUST”라는 곡이 있어요. 그 곡은 사랑 안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감정이 폭발하는 곡이거든요. 첫 벌스(Verse)에 ‘우리는 똑같은 우주선에 탔었지 / 저 끝까지 가는 길 외롭지 않았지’라는 가사가 있어요. 그 우주선이 진짜 우주선을 말하는 게 아니라 둘만이 있는 공간을 의미해요. 그 공간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싸우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우주 끝까지 가는 거죠. 아시다시피 우주는 한계가 없고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둘의 사랑도 영원히 함께 커가는 거죠. 그 대상이 연인일 수도 있고, 떠나 보낸 친구일 수도 있고, 부모님일 수도 있는 거죠. 사랑에 대한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그만큼 사랑 이야기를 좋아해요. “통닭”도 마찬가지예요. 조금 외설적으로 사랑을 표현한 거죠. 저는 사실 외설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쿤디판다(Khundi Panda)가 외설적으로 표현을 해버려서… (웃음) 앨범에서 그 곡만 심의에서 방송부적격 판정이 났어요.
리: 이번 앨범의 “POCKET” 같은 경우는 주제 면에서 “I Hate You”의 연장선에 있는 곡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수: 두 곡이 비슷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결이 조금 달라요. “I Hate You”가 조금 더 귀여운 느낌이죠. ‘네 발가락도 싫어졌어, 짜증나, 네 밥 먹는 소리도 싫어졌어’ 이렇게요. “POCKET” 같은 경우는 연인과 싸울 때 비아냥거리는 걸 표현한 거예요. 후렴에서도 가사 없이 ‘녜녜녜’만 반복하는 게 비아냥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해본 거죠. 이래라 저래라 하는 남자친구한테 너무 당해서 ‘네 지갑에 있는 카드처럼 나를 사용하지 마’라고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은 거예요. 상대방을 자신의 틀에 가두려는 것에 대한 폭발이죠. 원래는 오메가 사피엔(Omega Sapien)이 남자친구의 역할을 해주길 바랐어요. 근데 오메가가 ‘같은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보자’라고 해서 지금의 가사가 나오게 된 거죠.
리: “MEOW”도 독특해요. 고양의의 시점에서 쓴 가사라고 느껴지거든요.
수: 고양이의 시점이라기보다는 고양이의 성격을 사람에게 이입시킨 곡이에요. 그 사람이 바로 저죠. 모든 사람들이 이기적인 부분이 조금씩은 있잖아요. 근데 고양이라는 동물이 굉장히 솔직하고 교태스러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귀여우면서도 가끔은 굉장히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할 때가 많죠. 책상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진 물건을 쳐서 떨어뜨린다든가 하는. 저는 고양이가 어떤 욕구가 해소되지 않아서 그런 행동들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소재를 가져와서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을 표현한 거예요. 고양이란 동물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고양이 찬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굉장히 복합적인 노래예요.
리: 이번 앨범은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건가요?:
제가 평소에 앨범을 염두하고 작업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작년에 정규 앨범을 낸 후에 또 한 번 더 음악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EP를 가볍게 내볼까 싶었죠. 당시에 만든 곡들을 모은 다음에 주제를 통일시키기 위해서 가사를 조금씩 바꿔서 앨범에 담았어요.
리: 계획하지 않은 작업이란 게 놀라워요. 앨범 전체적으로 한 곡이 쭉 이어지는 것 같은 유기성이 돋보였거든요.
수: 처음부터 계획하진 않았지만, 곡을 모으고 후반 작업을 하면서는 곡들이 이어지도록 수정하면서 작업했던 것 같아요. 워낙 곡마다 생겨먹은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들을 연결시키는 게 필요하죠. 전곡을 쭉 이어서 뮤직비디오를 만든 것도 앨범의 유기성에 더욱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서였어요.
리: “BEE” 같은 경우는 보컬이나 가사보다는 사운드에 집중한 곡인데, 만든 계기가 궁금해요.
수: 저는 스스로 ‘보컬리스트’라고 칭하는 게 조금 낯부끄럽기도 해요. 그냥 음악을 하는 사람인 거고, 음악을 하면서 목소리를 악기처럼 써보기도 하는 거죠. 제 목소리가 악기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서 모든 곡에 제 목소리가 들어갈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BEE”는 보컬적인 것보다 사운드에 집중해서 DJ들이 재미있게 가지고 놀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곡 자체가 다음을 예상할 수 없게끔 진행돼요. 제가 카페 같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가요들을 듣다 보면 처음 듣는 노래인데도 다음 마디가 예상될 때가 많아요. 미리 따라 부르면 맞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저는 그런 예상을 피해가는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제 앨범에서 쉽게 호감을 가질 수 없는 곡일 거예요. 근데 저는 굉장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노래예요. 실제로 DJ분들이 많이 좋아한다고 해서 너무 감사하죠.
리: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볼까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에 노출된 환경 속에 있었다고 들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이 있다면요?
수: 가장 기억에 딱 남는 건 “Macarena”(Los Del Rio)라는 노래에요. TV에서 맨날 나왔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Dangerous]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되게 짬뽕(?)으로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한스밴드를 좋아했어요. “선생님 사랑해요”나 “오락실” 같은 노래들. 그리고 초기 SM 엔터테인먼트의 음악들도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그때는 유영진 선생님의 색깔이 많이 들어가 있었잖아요. 신화의 “중독”이라는 노래도 그렇고요. 그런 류의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신화나 S.E.S의 음악들이 굉장히 신선하게 들렸어요. 보컬이나 하모니에 매료됐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유영진 선생님의 영향이 많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아요.
리: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뮤지션은 누구예요?
수: 마이클 잭슨이요. 영원히 제 마음 속에 있는 뮤지션이에요. 그리고 퀸시 존스(Quincy Jones), 프린스(Prince)도 있고요. 모두가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도 너무 좋아해요. 림프 비즈킷(Limp Bizkit),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같은 밴드들도 좋아하죠. 국내에서는 술탄 오브 디스코(Sultan of the Disco)가 있어요. 제가 너무 사랑하는 밴드죠. 진보 씨도 너무 좋아하고. 최근에는 소피(Sophie)나 찰리 XCX (Charli XCX) 같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어요. SM 아티스트들도 다 너무 좋아해요. 레드 벨벳이랑 엑소(EXO) 같은 아티스트들 정말 사랑해요. 보아(BoA) 이사님도 너무 사랑합니다. 보아 같은 경우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자랐기 때문에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었죠. 활동을 정말 오래했잖아요. 엄정화 선생님도 정말 좋아해요. 많이 알려진 노래 외에 앨범 수록곡들을 정말 많이 들었었어요. 음악 산업 안에서 나름대로 운동을 하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먼저 하고 있으니까요.
리: 그러고 보니 이번 뮤직비디오는 비주얼 면에서 `90년대 엄정화나 이정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수: 이정현 씨의 음악도 너무 좋아해요.
리: 뮤직비디오는 어떤 컨셉트로 제작하게 된 건가요?
수: 비주얼적인 부분은 GDW에서 거의 다 맡아서 도와줬어요. 한국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형태로 비디오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앨범의 수록곡 전부를 하이라이트 구간만 짧게 자른 다음에 넘어가는 구간은 믹스, 마스터링을 다시 해서 새롭게 작업했어요. 앨범 전체를 물 흘러가듯이 담고 싶었죠. 컨셉트 자체가 ‘가상 현실’이거든요. 처음에는 해방촌에 있는 (현실의) 수민의 모습이 나왔다가, “SHAKER”부터 렌더링이 되면서 가상 현실이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곡마다 각자의 세계관이 있어서 그것들이 이어지며 나오는 거예요. 비디오가 너무 잘 나와서 만족스러워요.
리: 앨범 커버에 담긴 의미도 궁금합니다.
수: 이건 저희 회사에 있는 디자이너 분이 작업해준 거예요. 이전부터 저의 로고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회사에 들어오면서부터 심볼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죠. 가령 제가 앞으로 페스티벌에 설 때 LED 화면이나 포스터에 이 로고만 있어도 저라는 걸 알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도 저만의 로고로 쓸 예정이에요.
리: 영향받은 뮤지션이었던 SM 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들과의 작업 얘길 해보죠.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수: 제가 옛날에 프로듀서들이 모여서 가요 OST를 만드는 팀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그때 우연한 계기로 SM 송캠프에 참여하게 됐고요. 당시에는 경험 삼아서 해본 거였어요. 송캠프라는 것 자체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굉장히 신기했죠. 구경하는 느낌이었죠. 또 팀에서 혼자 여자고 막내이다 보니까 궂은 일을 도맡아 했었고요. 그래서 그때 ‘내가 나중에 혼자서 여기에 오게 되면 더 잘해야겠다’ 싶어서 작업하는 과정을 눈 여겨 봤었어요. 근데 얼마 있다가 저랑 진보 씨가 함께 송캠프에 초청된 거예요.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참여하게 된 거죠. 진보 씨는 이전에도 몇 번이나 SM 송캠프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쯤 저랑 진보 씨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됐던 거고요. 모든 게 퍼즐 맞춰지듯이 딱 맞아떨어졌던 거죠. 그리고 제가 SM 아티스트들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예전에 에프엑스(Fx)의 루나(LUNA) 씨가 냈던 “Free Somebody”란 곡을 리믹스해서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 올린 적이 있어요. 제가 노래까지 했던 곡이죠. 그게 사운드클라우드 내에서 굉장히 인기 있는 곡이 된 거예요. 그게 SM A&R 쪽의 귀에 들어가게 돼서 저한테 요청이 온 적도 있죠. 루나와 직접 만나서 작업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요. 되게 신기한 일들이 많았어요.
리: 역시 실력이 있으니까 기회가 저절로 찾아오네요.
수: (웃음) 아니에요. 저 혼자서 한 게 아니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한 사람이 잘한다고 해서 잘 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잘해서 다 같이 올라가야지 더 좋은 것 같아요.
리: 본인 앨범을 작업할 때와 차이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수: 크게 다른 건 없었어요. 차이점이 있다면 작업하기 전에 요구하는 사항들이 있다는 것 정도죠. ‘이 파트에 이런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 식으로 말해줘요. 강압적인 건 아니죠. 요즘에는 A&R이 아티스트에게 부탁할 때 그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존중해주기 때문에 작업 환경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배려를 많이 해줘요. 그리고 지분을 나눠야 된다는 것도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죠. 사실 그런 것도 인디펜던트 생활을 하면서 많은 공부가 됐어요.
리: 최근에는 비와이(BewhY)의 앨범에도 참여했어요.
수: 비와이 선생님 같은 경우는 (웃음) [Your Home] 앨범을 듣고 인스타그램에 4~5번을 샷 아웃(Shout Out)을 해줬었어요. 그걸 다른 사람한테 전해 들었었죠. 비와이라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저보다 쉽게 검색이 되는 편이죠. (웃음) 사실 접점이 아예 없다고 생각했는데 은근히 주변에 겹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중 한 명이 비앙(Viaan)이었죠. 그 친구가 ‘비와이가 너를 너무 만나고 싶어한다’고 하길래 ‘나는 너무 영광이지’해서 연결됐어요. 그렇게 연락이 닿은 후에 우연한 계기로 카페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세 시간 동안 저에 대한 질문만 하는 거예요. 그게 너무 인상적이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에 카톡으로 ‘누님, 누님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라면서 곡을 하나 보내줬어요. 그게 “장미는아름답지만가시가있다”였죠. 작업한 지는 3~4개월 정도 됐어요. 되게 재밌었어요. 비와이의 섬에 제가 게스트로 잠깐 갔다 온 느낌이었죠.
리: 수민 씨의 앨범과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었잖아요.
수: 속에는 은근히 그런 걸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봐요. 트랩 비트에 제 목소리가 들어가니까 색다르더라고요. 가끔씩 제 메일로 데모를 보내주는데, 들어보면 대부분 처음에 ‘스컬~ 스컬~(Skrr)’ 하면서 시작해요. (웃음) 물론 보내주는 게 너무 감사하지만, ‘여기에 내가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죠. 그렇지만 또 그런 걸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던 건 아니었어요. 비와이가 그런 부분을 잘 건드려준 거죠. 저에 대한 이해가 완벽한 상태에서 곡을 보내준 거니까 흔쾌히 작업할 수 있었고요.
리: 미래에 함께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수: 저는 폼라드(Pomrad)랑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그리고 소피랑도 언젠가는 작업해보고 싶고, 레드 벨벳이나 다른 SM 아티스트들과 SM 스테이션(SM Station)을 진행해보고 싶어요. 앨범에 참여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일 테니까요. 진보 씨나 자이언티 오빠랑도 새로운 걸 해보고 싶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후디 언니랑도 또 같이 해보고 싶어요.
리: 앞으로의 계획을 알고 싶어요. 단기적인 것도 좋고, 장기적인 것도 좋습니다.
수: 가을 쯤에 싱글을 하나 낼 계획이에요. 아까 작업하고 싶다고 말한 사람들 중 한 명과 할 계획인데,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나오지 않은 작업물들도 있어요. 다른 앨범에 피처링이나 작사, 작곡으로 참여한 것들이죠. 네이버 문화재단과 함께 하는 ‘디깅클럽서울’이라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님 선생님의 노래 중 하나를 김아일(Qim Isle) 오빠랑 함께 리메이크해서 발표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앨범이 나왔으니 공연도 많이 하고 싶어요.
리: 기대하겠습니다. 수민 씨는 후에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어요?
수: 하나의 장르에서 회자되지 않고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마이클 잭슨이나 프린스, 샤카 칸(Chaka Khan) 같은 아티스트들처럼요. 셋의 공통점이 젠더리스하다는 것도 있고, 한 장르 안에서 최고라기보다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저도 그 사람들처럼 아이코닉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아직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제 주변 사람들과 건강하게 관계를 맺으면서 재미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같이 성장해야지 모두가 빛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주변을 잘 챙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리드머 모든 리드머 콘텐츠는 사전동의 없이 영리적으로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10 코멘트 등록 Enomis Enomis (2019-08-24 21:44:26 / 118.91.0.***)추천 0 | 비추 0 비전과 야심이 뚜렷한 아티스트. 이렇게 경계를 넓히려고 애쓰는 아티스트가 리스너 입장에서는 참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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