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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인터뷰 손아람 & 이하윤 -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그 이후…

한국힙합위키

손아람 & 이하윤 -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그 이후… 리드머 작성 | 2015-09-01 19:03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5 | 스크랩스크랩 | 37,309 View


인터뷰: 하태욱, 이진석, 글: 이진석,

사진: 김홍수



한국 힙합 씬이 아직 제대로 된 틀을 갖추기 전인 ‘2000년대 초반, 인상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주목받았던 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손전도사, 오박사, 웨이브마법사라는 범상치 않은 예명으로 활동했던 이들은 시간이 흘러, 각자의 분야로 흩어진 끝에, 소설가 손아람, 공학 박사 오혁근, 재즈 피아니스트 이하윤이 되었다. 최근 상영관은 소수였지만, 재미와 작품성을 모두 잡은 덕에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영화 [소수의견]의 원작자가 바로 손아람 작가다. 이 잘 만든 영화를 본 후, 우린 그를 만나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국내에서 여전히 인상적인 음악 커리어를 이어가는 중인 이하윤도 함께했다. 비록, 사정이 있어 미국에 있는 오박사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진말페’라는 이름 아래 모인 두 명, 손전도사, 웨이브마법사와 함께 추억을 들춰보고, 문화 전반적인 부분에 걸친 생각을 나눠봤다.



리드머(이하 ‘리’): 근래의 리스너들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 있는데요.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는 어떤 그룹이었다고 생각하나요?


이하윤(aka 웨이브마법사): 그때 소울트레인 안에서도 그랬고......


손아람(aka 손전도사): (하윤을 보며) 이젠 소울트레인도 잘 몰라. 1세대 힙합이라는 게 우리가 시작하던 시기에는 리스너와 아티스트 사이의 경계가 희박했어요. 듣는 사람들 자체가 소수였기 때문에 그들 중에 조금 의욕이 있는 사람들이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시작하는 식이었죠.


하윤: 당시 인디 음악이 다 그랬던 것 같아요. 보면, PC통신 동호회에서 수입 음반 사 모으고, MP3 하나 다운받는데 30분 이상 걸리고, 그걸 공유하면서 ‘나도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어 시작을 한 거죠.


아람: 그렇다고 힙합을 1세대부터 시작해서 개척했다고 말할 수 있는 팀은 아닌 것 같고요. 그 시기를 같이 관통했던 목격자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 그때 함께 등장했던 분들 중에서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들이 있잖아요? 라디(Ra.D)씨라던가, 요즘은 팟캐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유엠씨(UMC)씨라던가… 당시 상황의 목격자로서 지금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해요.


하윤: 말씀하신 분들을 비롯해 태완이나 버벌진트(Verbal Jint) 씨도 다 오며 가며 보던 사람들이고, 생각해보면 좋은 것 같아요. 지금에 와선 음악을 뭐 계속해야 행복한 거란 생각은 들지 않고요. 유엠씨도 옆에서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는 것 같아 기쁘죠. 라디는…… 예전엔 형이라 불렀는데 여기선 그냥 라디 씨라 부를게요. 저보다 나이가 많은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리: 생일이 좀 달라서 그런가요?) 저를 속였죠. 동갑인데 동갑 아니라고. (웃음) 한동안 저보다 한 살이 많다고 모두 알고 있어서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죠.


아람: 당시 같이 하던 사람 중에 유독 79, 80년생이 많았어요. 이 무리에서 79년생이면 형이 되고 80년생이면 동생이 되는 거니까. 79년생이라고 하면 뭔가 꿀리지 않는 입장에서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제 와선 그냥 해프닝이죠.


하윤: 라디 생각해도 지금은 잘 된 것 같아요. 자기 하고 싶은 것 계속 하고 있고.


리: 당시엔 그런 분위기도 있지 않았나요? 옷차림에만 너무 신경 쓰면 진짜 힙합이 아니라거나.


하윤: 오히려 더 많이 신경 쓰지 않았나? 지금 어떤지 잘 몰라서 비교를 할 순 없지만요.


아람: 신경을 더 많이 썼죠. 오히려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힙합이 주류 문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덴티티를 가지는 게 훨씬 더 중요했고, 지금이야 힙합 패션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거든요. 사람들이 잘 입지 않는 힙합바지를 입어야 진짜 힙합을 하는 사람들이고…...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죠. 제가 좀 특별히 느끼는 건 제가 댄스에 대해서 약간 배타적인 느낌이 있었어요. 랩이 아닌 춤으로 힙합을 접한 사람들에게. 약간 고까운 정도의 그런 느낌도 있었는데, 재미있는 건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댄스로 시작한 친구들은 오랫동안 남는데, 랩이나 음악을 접해서 시작한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얼마나 입체적으로, 폭넓게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냐의 차이였던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엔 감각이 아닌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는 성향이 좀 심한 편이었고요.


리: 예전에 쓴 글을 봤습니다. [랩의 미학: 랩이란 무엇인가?]


아람: (웃음) 지금 보면 너무 부끄러운 기억이죠. 이걸 썼을 때가 스무 살, 스물 한 살 무렵이었는데…… 사실 나이에 맞지 않게 랩을 학습하려고 했었죠.


리: 이런 점이 머리로 이해하려 했다는 건가요?


아람: 그렇죠. 라임에 대한 거라든가, 어떤 뮤지션이 더 우월하고, 어떤 시도가 더 창의적이고. 사실 논쟁이 필요 없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말을 통해 논쟁을 하려 하고, 이야기를 하려 하고, 저희 그룹 안에서도 그런 성향이 강했어요. 하윤이랑도 여러 문제로 투덕거리던 때가 많았고요. 사실 정작 음악을 다루고 있는 하윤이가 봤을 땐 좀 같잖았을 거에요. 그렇지 않아? (웃음)


하윤: 아니야. (웃음) 그땐 우리가 20대 초반이었으니까 그랬다고 생각해요. 친했으니까. 친한 친구끼리는 원래 많이 싸우기도 하고. (웃음) 안 친하면 안 싸우잖아요.


리: 음악적인 대립이 좀 많았어요?


하윤: 랩에 리듬, 라임 같은 음악적인 요소가 많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뒤늦게 깨달았거든요. 당시엔 랩과 비트를 분리해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음악적으로 성숙하지 않고 잘 몰라서 그랬던 것 같고요. 랩과 비트가 종합된 결과물로서 음악이 들려진다는 걸 빨리 인지했으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요.


아람: 반대로 저희 시점에서는 랩 하는 사람들이 자기 비트를 손대고, 만들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런 시도를 아예 하지 않았어요. 저랑 혁근이(aka 오박사)는 시퀀싱에도 손 댈 생각을 하지 않았고요. 하윤이의 음악적 역량은 힙합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쌓여왔기 때문에 너무 월등했고,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가 굳이 비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죠. 오히려 일종의 침범이라 생각했어요. 우리가 두 명의 랩퍼와 한 명의 프로듀서로 이루어진 팀인데, 랩퍼들이 음악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체계 자체가 흐트러지지 않을까? 관여하지 않는 게 우리의 체제 유지 방식이라 생각했었죠. 그런데 우리가 랩을 해야 하잖아요. 랩 하기 좋은 비트라는 건 당연히 우리가 좋아하는 비트인데, 하윤이 같은 경우는 힙합 이전에 재즈, 혹은 록 같은 음악들을 접해 왔기 때문에…… 우리 느낌엔 랩 하기 너무 어려운 음악이 시도되었던 거죠. 그런데 이 체제 안에서 우리가 프로듀서한테 그런 음악을 만들지 말아달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타협하는 과정에서 많이 투덕거렸죠.


리: 그러면 리더는 따로 없었던 건가요?


아람: 하윤이랑 저는 초등학교 친구고, 혁근이와 저는 고등학교 친구였기 때문에 팀보단 우정이 앞서는 관계여서, 리더나 그런걸 정하고 활동하진 않았어요.


리: 그러면 주로 음악을 만드는 쪽이 팀을 주도하게 되지 않나요?


하윤: 아까도 말했듯이 저희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으니까요. 제가 작업을 하려고 컴퓨터에 앉으면 아람이랑 혁근이가 하는 일은 게임방을 가는 거예요. (웃음) 제가 비트를 만들고 있으면 아람이는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혁근이는 '디아블로'를 하면서 작업을 마치고 연락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제가 다 됐다 그러면 돌아와서 들어보고 좋으면 좋다 말하고 피드백하고. 아…… 그런데 처음 질문이 뭐였죠? (전원웃음)


리: 옷차림 얘기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넘어왔습니다. (웃음) 그러면 하윤 씨의 경우에는 원래 공부했던 게 클래식, 록, 재즈 음악 쪽이었던 건가요?


하윤: 이 친구가 좀 과장해서 저한테 음악에 대한 재능이 있다, 뛰어나다, 뭐 이런 말을 하는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동네 피아노 학원 다니다가 피아노가 싫어서 그만 두고, 평범한 코스를 밟아 왔어요. 고등학교 때도 거의 공부만 했고.


아람: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피아노를 치고, 고등학교 밴드에서 작곡을 하고 이런 경험들을 모든 사람들이 겪는 건 아니잖아요?


하윤: 밴드는 다들 하잖아?


아람: 넌 작곡도 했잖아. 이런 것 자체가 뭐 독보적인 천재성 같은 건 아니더라도, 당시 고만고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충분히 특별했던 거죠. 요즘에야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사람이 많지만, 그때 뚝딱거리면서 건반을 치고, 소스를 입히고 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 보였어요.


하윤: 그렇지. 요즘에야 실용음악 학원이나 레슨이 많아서 쉽게 배울 수 있지만, 그땐 한국에 실용음악과라 해봐야 서울예전 하나밖에 없었죠. 남산에 있을 때.


아람: 제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가 이걸 할 수 있다는 게 저한텐 너무 소중한 자원이었던 거죠.




리: 두 분은 초등학교 이후로 MP(마스터플랜)에서 다시 만났던 거예요?


아람: 저희가 서로 음악적인 취향을 공유하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MP에서 마주친 거죠. 관객으로서.


하윤: 그랬던 것 같아요. 아람이는 프리스타일 하러 갔던 것 같고 저는 그냥 음악이 좋아서...... 아 잘 기억이 안 나네. (웃음)


아람: 맞아요. 저는 프리스타일 하러 갔고, 객석에 있는 하윤이를 봤죠. 그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이 친구가 음악을 하고 있었고, 저를 집으로 데려가서 자기가 만든 음악들을 들려줬어요. 그러면서 제가 혁근이를 소개해주고, 우리 같이 음악을 만들어 보자. 첫 시도까지는 팀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음악을 만들 줄 아는 너와 랩을 하는 우리가 한번 작업물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나오게 된 게 “어머니”라는 곡이고요. 이 곡이 예상치 못한 반향을 일으키면서, 음악을 직업적으로 한번 해볼까 생각하게 된 거죠.


리: 그 “어머니”를 계기로 디제이 우지(DJ UZI) 씨도 만나게 된 거죠?


아람: 네. 그 곡을 계기로 디제이 우지 씨나, 소울트레인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거죠.


리: 소울트레인 크루 멤버들과는 아직 연락해요?


아람: 아주 긴밀하게 연락하는 정도는 아니고요. 종종 하는 편이죠.


하윤: 현상이형 결혼식도 같이 갔었고.


리: 아 현상 씨 결혼식에서 아람 씨가 올린 SNS를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하윤: 현상이형이 요즘 어떻게 지내지? 연락 좀 해봤어?


아람: 계속 작곡 하고 있겠지 뭐.


리: 2008년에 소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가 출간되었을 당시, 버벌진트 씨가 “진실이 개, 말, 소 된 페이지”라는 작업물을 올려 화제가 됐었는데요.


아람: 저는 버벌진트 씨에 대해서 다른 것보다 조금 괘씸하고 야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저희의 음악을 디스한 게 아니라, 소설가인 저를 겨냥한 느낌이 드는 거에요.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라는 소설을 발매하고 다른 분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저주를 쏟아 붓는 느낌이 들었죠. 6년, 7년이 지났는데 느닷없이 저희 음악을 헤집어 디스할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책이 새로 나오면서 사람들로부터 그 시절을 회고하는 듯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었어요.


하윤: 저도 조금 이해가 안돼요. 그렇게 관심 갖고 있었나?


아람: 맞아요. 그렇게까지 관심이 많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우리는 사라진 지 너무 오래 된 팀이고, 한 명은 공학 박사, 한 명은 재즈 피아노, 또 한 명은 소설가를 하고 있는데 그 셋을 개, 말, 소로 묶어서 자기 음악을 통해 이야기할 만큼?


리: 하윤 씨는 그 때 한국에 계셨나요?


하윤: 그땐 캐나다에 있었죠. 제가 2012년 8월에 아내랑 한국에 한번 들어가 볼까 해서 왔는데 어쩌다 일이 계속 생겨 머물고 있죠. 여기서 계속 살게 될 지, 다시 돌아가게 될 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직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이 있으니까요.


리: 하윤 씨가 참여한 카페하우스(Kaffehaus)의 앨범을 들어봤습니다. 또 검색 포탈에는 최민호 퀸텟의 세션으로 소개가 되어 있어요. 따로 소속되어 있는 건가요?


하윤: 사실 저희 회사에서 프로필을 수정했어야 했는데, 대표님은 바쁘고 저도 사실 귀찮아서 그대로 두고 있어요. 조만간 수정을 할 것 같고요. 최민호 퀸텟은 조금 오래된 일인데……


리: 2010년에 발매된 음반이죠.


하윤: 맞아요. 그때 사실 방학 때 잠깐 들어와서 아는 선배의 부탁으로 녹음에 참여하게 된 건데, 어느 포탈 이달의 앨범에 올라가면서 그렇게 소개가 된 것 같아요. 그 앨범은 제가 활동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제가 최민호 퀸텟의 멤버로 올라가 있더라고요. (웃음) 지금은 이이언 씨가 있는 M.O.T.라는 밴드의 3집을 같이 작업하고 있고, 프로필상에도 그렇게 수정이 될 것 같아요. 카페하우스도 계속 하고 있는데 이건 친한 연주자들의 친목 동호회 같은 느낌이고요.


리: 그럼 세션이면서 동시에 작곡에도 참여하고 있는 건가요?


하윤: 네, 작곡, 작사 쪽도 관여를 하고 있어요. 카페하우스 같은 경우도 그랬고요. 저작권료 한 500원 들어왔나? (웃음)


리: 심하네요. 요즘 얘기가 많은 부분이죠.


하윤: 그 부분은 굵은 글씨로 써주세요. (웃음) 그리고 제 앨범도 이제 에반스 뮤직(Evans Music)에서 같이 작업 중이라 오늘도 믹싱을 하다가 왔어요.


리: 에반스 뮤직이면 클럽 에반스에서 운영하는…


하윤: 네 클럽 에반스 쪽에서 운영하는 레이블이에요. 힙합 쪽에서도 쿠마파크(Kuma Park)의 승민이도 있고, 힙합 좋아하는 분들이면 알만한 재즈합(Jazzhop)도 이쪽에서 나왔죠. 사실 그 앨범은 윤석철 씨라는 피아니스트가 녹음을 했는데, 저도 몇 번 같이 했어요. MC메타 씨가 프리스타일 고 저희도 거의 즉흥 연주로 진행을 했고요. 그런데 제가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서 이 팀과 마지막 공연을 했었는데요, 거기서 느낀 건, 이걸 예전처럼 못하겠다는 거에요. 앞에서 메타 씨는 열정적으로 랩을 하고, 다른 사람들도 여기에 녹아 들었는데 저는 동화될 수가 없는 거죠.


아람: 난 공연을 보면서, 좀 무리한 기획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랩과 연주자들이 하나가 되는 느낌이 아니었지.


하윤: 나는 왠지 그랬지. 다들 잘 놀고 있는 파티에 혼자 시무룩해져서 칵테일만 혼자 홀짝이다 집에 가고 싶어하는 그런 느낌?


리: 앨범 작업을 하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조금 색깔이 맞지 않았던 건 아닌가요?


하윤: 제가 원래 'Rock The House~!' 뭐 이런 인격이 아니었어서…… (웃음)


아람: 그런 것도 있고 지켜본 느낌으로는 차라리 랩퍼가 중심이 돼서 밴드가 세션으로서 녹아들 거나, 반대로, 이미 짜인 재즈 밴드 위로 랩퍼가 잠시 랩을 한다든지 하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두 아티스트의 곡이 서로의 것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데, 그 실험이 성공적으로 하나가 된 게 아닌듯한 느낌이 드는 거죠.


하윤: 아냐 근데 괜히 그러면 싫어할 수도 있어. (웃음) 디스하는 것 같은…….




리: 최근에 손아람 씨가 한겨레에 기고한 글을 하나 봤어요. [야! 한국사회]에서 로이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다뤘죠?


※답변을 읽기 전에 이해를 위해 먼저 읽어 보시길 권한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02315.html (손아람 작가 칼럼)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05125.html (남은주 기자 기사)


아람: 사실 저작권 관련 문제의 경우 전 음악을 경험했고 또 영화와 소설을 경험했잖아요? 이 세 가지 분야에서 전부 벌어지고 있어요. 출판 쪽에서도 그렇고, 음악은 특히 심한 편이고요. 글을 쓰면서도, 영화 쪽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무수히 보아왔고, 저도 직접 겪은 게 있죠. 모든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합법적인 착취도 아니고, 명백한 불법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관행적이라 아티스트들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고요. 최근 전 그 문제를 다루는 걸 중요한 움직임이라 생각하거든요. 문학 안에서도 표절 문제로 시작해서, 대필에 대한 것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 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음악 안에선 작곡 관련해서 문제가 심각하죠. 힘있는 작곡가들이 비교적 쉽게 남의 결과물을 빼앗아가는. 로이 엔터테인먼트에 관련해선 특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냥 칼럼을 쓰는 게 끝이 아니라 어떻게든 무너뜨릴 생각이고요. 변호사들도 이야기를 하는데, 로이 엔터테인먼트가 불법을 행했다기 보단, 회사의 근간이 그냥 불법인 거에요. 불법을 저지르지 않으면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거죠. 음악에 관해 일말의 지식도 없는 회사의 대표가 남이 쓴 4,400곡의 작업물을 자기 이름으로 방송에 내보내고, 수익을 올리고 있어요. 만약 저작권자에게 정당한 몫을 돌려주고 저작권자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이 회사는 성립이 될 수 없는 거죠. 기껏해야 수수료 정도 밖에 떼어 먹을 수 없을 테니까.


리: 지금은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아람: 인맥을 이용하는 거죠. 작곡가는 도처에 깔려있고, 인맥은 소수의 사람만이 쥐고 있으니까요. 인맥이 없는 젊은 작곡가들에게 곡을 쓰게 하고, 그걸 자기 이름으로 내보내고요. 방송사 입장에선 좀 더 싸게 안정적으로 음악을 수급해 주는 거니까요.


리: 일종의 하청 같은 건가요?


아람: 거의 하청이죠. 그런데 저작권이란 것 자체가 하청이라는 게 성립하지 않는 개념이잖아요? 창작자가 만드는 순간 양도가 불가능하게 되는 건데……


리: 하윤 씨는 작곡가로서 어떻게 생각해요?


하윤: 일단은 제가 아람이 글을 보고, 페이스북에 공유하기도 했는데요. 제가 가르치는 일을 조금 하고 있어요. 거기에 있는 작곡가가 되고 싶은 학생들은 꿈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 학생들 입장에선 로이 엔터테인먼트와 연관이 되면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 학생들이 이런 기업구조에게 착취를 안 당했으면 좋겠다, 이런 기업이 있는 걸 너희도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공유를 한 거에요. 참 안타까운 것 같아요. 근데 또 웃긴 건 학생들끼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재학중인 학생들 몇 명이 작곡 팀을 짜면, 졸업한 선배들이 곡을 받아 비즈니스를 하면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에요. 어른들을 따라 하는 거죠.


아람: 로이 엔터테인먼트가 사실 이런 일들이 벌어 지고 있는 기업 중에 가장 큰 곳이거든요. 일종의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무너뜨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리: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는 당시에 소속사와 계약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고, 잘 풀렸다면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 했을 것 같나요?


아람: 만약 잘 풀렸으면 활동을 계속 했겠죠. 그런데 저도 뭐 인생의 목표가 랩퍼인 것도 아니었고, 글 쓰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퍼포먼스나 문화 자체보단 가사 쓰는 걸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고, 작가적인 성향이 굉장히 강했고요. 혁근이의 경우에도 힙합을 아주 좋아했지만, 장기적인 비전을 본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공학적으로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했으니까. 하윤이도 아티스트 몇 명에게 비트를 제공하면서 만족했을 만큼 야망이 작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때문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끝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윤: 영원한 팀이 어디 있겠어요.


아람: 셋 다 마찬가지로 힙합을 삶의 전체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요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나오는 친구들 보면 힙합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는데, 저흰 그렇지 않았거든요.


리: 요즘도 힙합은 계속 들어요?


아람: 따로 찾아서 듣진 않아요. 심지어 우리 것도 안 들은 지 오래 됐으니까.


하윤: 저도 최근까지 잘 안 듣고 있었어요. 알앤비 음악은 계속 찾아 듣고 있다가, 얼마 전에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앨범을 처음 들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1집도 그렇고 2집도…… 제가 문학적인 측면은 잘 모르겠지만, 음악적으로 보았을 때도 혁신적이고, 훌륭하더라고요.


리: 이젠 다른 장르에서 음악을 하고 있는데, 예전에 힙합 음악을 했던 경험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하네요.


하윤: 굉장히 많이요. 어찌 보면, 이 친구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웃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아람: 그게 왜 미안해?


하윤: 나만 그 시절에서 뭔가 혜택을 받은 건가 싶어서.


아람: 우리가 끌어들였으니까, 그 정도로 혜택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고맙지. (웃음)


하윤: 사실 이게 엄청난 게, 재즈 뮤지션들 중에서도 록을 베이스로 재즈를 하게 된 경우는 굉장히 많은데, 힙합을 듣다가 재즈를 하게 된 경우는 많지 않아요. 그래서 반복적인 그루브 안에서 뭔가를 만들어 내거나, 리듬적인 면에서 도움이 굉장히 많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 제가 그런 경험 없이 계속 피아노만 쳤다면, 음악의 전체적인 부분을 듣지 못했을 것 같고요. 재즈도 그렇지만, 흑인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리듬이라 생각하거든요. 화성이나 멜로디는 부차적인 것 같고, 결국은 리듬. 지금은 피아노를 치고 있지만, 연주할 때도 드럼을 가장 중요하게 듣고요. 이런 영향을 많이 받았죠.


리: 그럼 이번 인터뷰의 계기가 된 [소수의견]에 관해 얘길 좀 나눠보죠. 소설은 어떻게 해서 작업하게 된 거예요?


아람: 굉장히 오래 전부터 하고 싶던 작업이었어요. 법정 문제를 다뤄보고 싶었고, 구상을 하고 있던 과정에 용산 참사가 있었죠. 당시 제가 [소수의견]의 배경이기도 한 북아현동에 살고 있었는데, 거기도 철거에 관련된 문제가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철거 관련해서 제가 쓰고 있던 이야기를 용산 참사에 맞춰 재구성하게 됐죠


리: 영화 [소수의견]은 원작 외에도 각색이 더 추가됐죠? 감독 외에도 한 분이 더 참여했던데.


아람: 천성일 작가님이라고, 영화 쪽에서 굉장히 유명한 작가님이에요. 드라마 [추노]를 맡기도 했던, 거의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죠. 사실 천성일 작가님이 참여한 부분은 그리 많지 않고요, [소수의견]을 제작한 영화사 자체가 천성일 작가님의 회사에요. 어떤 부분에 얼마나 참여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제 역할은 각본 초고를 넘긴 부분에서 끝났거든요. 영화로 바로 옮기기 곤란한 부분들은 저도 많이 고쳤는데, 대사에서도, 영화적인 대사와 문학적인 대사가 있잖아요? 책에서 텍스트로 봤을 땐 반짝반짝 빛나지만, 배우가 입으로 뱉었을 땐 어색한 대사들. 장면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것들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참여를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리: 하윤 씨는 영화화 소식을 매체로 접했나요? 아니면 아람 씨에게 직접 듣게 된 건가요?


하윤: 직접 들었던 것 같아요. 아람이가 소설을 주면서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아 영화가 잘 되면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도 한번 다시 뭉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웃음) 행복한 상상을 하기도 했어요.


아람: 저는 [소수의견]에서 제일 아쉬운 게, 음악이 너무 별로에요. 음악까지 제가 관여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놔뒀지만, 이렇게 나올 줄 알았으면 하윤이한테 맡겨 볼 걸. (웃음)


하윤: 나는 네가 부탁을 했어도 안 들어줬을 걸? (웃음) 왜냐하면 제가 한국에 와서 세션이나 다양한 일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제 작업을 해야 한단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아람이도 소설을 쓰는 게 얘 커리어지, 각본을 쓰는 게 본격적인 커리어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제 음악을 해야 하니까, 그것까지 도와주면 제 걸 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아람: 그래도 좀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냐? (전원웃음)


하윤: 뭐 한 곡 정도야. (웃음)


리: 아람 씨는 음악을 할 때도 그랬고, 소설가로 전향한 뒤의 작품을 봐도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예요?


아람: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과는 별개로 전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힙합 음악으로든, 소설로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같지 못하면서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하는 건 말이 안되죠. 아무리 올바른 정치적 견해를 담은 가사를 썼다고 해도, 음악이 훌륭하지 못하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테니까요.


하윤: 동시대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이것들이 알려질 수 있죠.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예술을 하는 사람은 없겠죠.


아람: 나는 그래.


하윤: 아 진짜? (전원웃음)


리: 이렇게 의견이 갈라지는군요. (웃음)


아람: 모두가 그런 건 아닐 거고, 제가 좀 특별한 걸 수도 있어요. 전 좋은 예술가로 인정받는 것 이상으로, 저로 인해 세상의 어떤 부분이 바뀌기를 원해요. 예술가로선 특수한 코드일 수 있죠. 예술가 대부분이 장인으로서 인정받길 원하지,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진 않으니까요.


하윤: 난 예술가 대부분이 인정받기 위해 예술을 한다고는 생각 안 해. 그냥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예술이 목적 자체인 거죠. 음악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건 시작 자체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냉정하게 확률적으로만 봐도,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고 치면, 공부를 하거나 취직을 하는 게 돈을 벌 확률이 훨씬 높지 않나요? 내가 열정을 기울인 결과물이 사람들의 칭찬과 관심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칭찬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거죠. 돈을 벌고 싶었으면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 아이돌 음악을 하면 시장에서 제일 돈이 되잖아요?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악을 괴로워하면서 돈을 위해 만드는 사람은 없다는 거죠. 그렇게 억지로 했을 때 좋은 퀄리티의 음악이 나올 수도 없고요. 자기가 진짜 좋아서 미쳐서 해도 될까 말까 한 걸, 다른 목적을 위해 억지로 하면서 진짜 거기에 미친 사람들과 경쟁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순 없겠죠.


리: 이미 국내에서 재즈의 길을 걸어가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비주류를 선택한 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하윤: 사실 재즈에 대해 별 미련은 없어요. 저 스스로도 제가 재즈 뮤지션이라 생각하지 않고요. 전 힙합음악을 할 때도 그랬고, 재즈를 할 때도 그렇고, 둘 다 아웃사이더인 것 같아요. 예전에 저희가 같이 음악을 할 때도, 누가 흑인의 느낌을 잘 따라 하는지가 관건이었거든요. 누가 지금 유행하고 있는 비트와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지. 누가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같은 사운드를 더 잘 낼 수 있는지, 누가 제이지(Jay-Z)와 비슷한 플로우를 가졌는지…… 근데 저희는 그게 싫었어요. 우리가 좋은 방식대로 표현하면 되는 건데, 왜 그 기준에 맞춰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됐죠. 재미있는 건, 재즈에서도 비슷한 게 있어요. 누가 더 미국의 재즈를 흑인처럼 할 수 있는가를 척도로 하는 뮤지션들이 있죠. 나는 흑인도 아니고, 미국사람도 아니고, 자라온 환경도 다른데. 그걸 추구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흑인들에게 열등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해도 동양인은 안 된다는 생각.




리: 솔로 앨범은 어떤 방향으로 작업 중이에요?


하윤: 제가 재즈에서 좋아하는 부분이 즉흥연주에요. 예전 진말페 앨범을 작업할 때에도 비트를 틀어 놓고, 한 트랙씩 즉흥연주를 해서 쌓아가는 방식이었거든요. 2013년쯤 합정에 있는 아트센터에서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1시간 20분 동안 즉흥연주를 한 실황이 앨범으로 나오기도 했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순수 즉흥 음악 씬이 한국에 들어서고 있던 것 같고요. 이런 프로젝트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에반스 뮤직 대표님과 얘기가 잘 돼서, 언제든지 스튜디오에 와서 녹음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스튜디오가 집에서 가깝기도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두 시간 정도 즉흥연주를 하고, 괜찮은 연주가 있으면 곡으로 만들어서 작업을 했죠. 그렇게 즉흥 연주로만 이루어진 앨범으로 나올 거에요.


리: 기대되네요. 발매 예정일이…?


하윤: 4월부터 녹음을 시작해서 6월 말쯤 마쳤고요. 지금은 에디팅 하고 믹싱이 진행 중이에요. 앨범 커버랑 마스터까지 마치고 나면 아마 빠르면 9월, 늦어도 10월, 11월까진 발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못(M.O.T.)이란 밴드도 하고 있고…… 제가 재즈를 하면서 좌절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한국에 들어온 뒤로, 한 달에 가장 많이 했을 때는 서른 번이 넘게 클럽에서 연주를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즈 클럽에 재즈 음악을 들으러 오는 건 아니더라고요.


리: 일종의 BGM처럼?


하윤: 그렇죠. 나 재즈 클럽 왔다 하면서 셀카 찍고, 음식 사진 찍고…… 그러다가 다 가버리니까요. 저는 매일 밤 영혼을 찢어서 그 한 부분을 테이블에 올려 놓은 건데,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더라고요. 아람이도 얘기하길, 재즈를 문학 장르로 비교를 하면 시인 것 같다. 굉장히 이미지적이고, 추상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읽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데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음악에 있어 더 관심있던 부분은 순수하게 음악적인 부분보다 서사적인 부분이었거든요. 만약 화려한 음계의 나열이나, 아름다운 코드, 음색을 좋아했다면 클래식을 했겠죠. 그래서 요즘은 가사도 많이 쓰고, 노래가 있는 음악을 많이 작업해요.


리: 아람 씨의 앞으로 계획도 들을 수 있을까요?


아람: 저는 계속 소설을 본업으로 해나갈 것 같아요. [소수의견]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영화 쪽 제안도 많이 들어오고 있고. 이 두 가지 분야를 당분간 계속 하지 않을까 싶어요.


리: 이어질 작품에서도 사회적, 정치적인 의견이 계속 녹아있을까요?


아람: 네. 굳이 본격적이지 않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간에, 우리 세계의 구조가 녹아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제 모든 관심사가 그것이기도 하고요. 만약 SF나 판타지를 쓰게 되더라도, 이 세상의 구조와 동떨어진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 아직 바로 다음 작업을 어떤 것으로 하게 될지는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요. 소설은 언제든지 제가 묵혀놨다가도 할 수 있는데, 영화 쪽 일은 제안이 들어오면 제가 기다려 달라 할 수 없거든요.


리: 아 문득 생각이 났는데, 소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도 영화 각본이 나왔었다고 들었어요.


하윤: 저도 뮤지컬 제안도 받았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아람: 뮤지컬 쪽도 제안이 왔는데 제가 거절했고요. 일단 영화화가 된 다음 이야기 하자고 했는데, 영화가 안 됐죠. (웃음)


리: 아예 무산된 건가요?


아람: 네, 아쉽게도……


리: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두 분에게 있어서,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란 뭘까요?



아람: 결국 우리가 진말페로 남진 않았지만, 그 경험이 없었으면 전 작가라는 직업을 택하지 않았을 거에요.


리: 아 그 정도인가요?


아람: 창작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직업을 갖고 살아가다가 ‘난 글을 쓰고 싶어, 음악을 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어서 모든 걸 잘라내고 그 일을 시작하긴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저는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창작을 경험했고, 계속 글을 쓰고 창작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어요. 사실 모험이잖아요? 대학을 졸업하던 시기에 친구들이 토익을 하고, 시험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저 혼자 글을 썼으니까, 진말페의 경험이 없었다면 못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문학 안에서 인정받고 있는 영역을 랩을 했던 경험과 분리할 수 없어요. 제가 문장에서 가지고 있는 호흡이라든지, 리듬적인 부분이 한국 문학에선 많지 않은 부분이거든요. 문장은 물론 눈으로 보는 거지만, 그 안에서 리듬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랩을 하면서 그런 부분의 중요성을 겪어 봤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리: 하윤 씨는 어때요?


하윤: 일단 즐거운 시간이었죠. 기억도 많이 나고. 이 경험을 통해서 제가 음악적으로 많이 배우고 생각하했던 것도 있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아람이랑, 혁근이랑 반지하 방에서 클럽 다니고, 얘기하고, 싸우고 했던 것들. 이런 것들을 돌이켜 보면 감사하게 생각해요. 보통 20대들을 보면 학교 다니고,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저도 똑같이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잖아요?


아람: 저도, 가족이나 애인이 아닌 누군가와 그렇게 가깝고, 한 몸이 된 것 같은 시간이 제 인생을 통틀어 그때밖에 없었어요. 그때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그런 경험은 못해봤을 것 같아요. 제 인간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죠. 엄청나게 싸우고, 이기적으로 군 것도 많지만, 끊을 수 없는 존재라는 느낌.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이해하려 했던 노력들. 일반적인 관계라면 싸우고 나면 그냥 안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가족의 경우에는 그게 안 되는 거고, 우리 팀 안에서도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커리어에 대한 영향 말고도, 이런 부분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죠. 제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는 건…… 혁근이. (웃음) 공학자가 되는데 진실의 말소된 페이지의 경력이 인생에 있어 어느 정도의 영향이 있었을지, 낭비는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윤: 그런데 사실, 저나 아람이는 당시에 모난 구석도 많고, 친화력이 있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혁근이가 둘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많이 해줬고. 혁근이가 있었기 때문에 싸우고 난 다음에도 밥을 먹던지, 스타크래프트를 하던지 해서 풀 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을 할 때도, 우리 둘이 굉장히 예민해지면 혁근이가 옆에서 다 받아주기도 했었고요.


아람: 특이한 사람이에요, 오혁근은. 뭔가 예술가적인 인간은 아니면서도…… 저랑 하윤이는 사회 평균적인 기준에서 특이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사실 혁근이가 제일 특이하거든요. (웃음) 매우 똑똑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자의식이 없는 것처럼 이 사람도 포용하고, 저 사람도 포용하고. 고집 부려도 다 받아주고.


하윤: 어떤 밴드에건 한 명쯤 꼭 필요한, 그런 사람이죠.


아람: 결국 제일 특이한 사람은,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그런 사람인데, 사실 정말 드물어요.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20대에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하윤: 혁근이 보고 싶다. (웃음)


리: 지금은 어떻게 지내나요?


아람: 지금은 너무 다른 길을 걷고 있어서 그냥 간간이 연락 할 뿐인데, 결혼을 좀 일찍 해서, 가정에 충실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윤: 요즘 페이스북 보면, 힙합은 계속 듣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리: 오히려 창작 쪽 일을 하고 있지 않으니까, 제일 즐겁게 듣고 있지 않을까요?


하윤: 즐겁게 듣고 있겠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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