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이경화 작성 | 2013-08-07 16:28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7 | 스크랩스크랩 | 55,925 View
올 상반기 7년 만에 2집 [It’s Okay. Dear]를 발표한 선우정아를 만났다. 보컬,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 등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 그녀는 매력적인 음악과 보컬, 그리고 가사만큼이나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했다. 장담하건대 이번 인터뷰는 선우정아라는 뮤지션의 매력을 느끼고, 그녀의 음악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데 좋은 매개체가 될 것이다. YG와 함께한 음악을 비롯하여 주변의 음악들과 그녀의 앨범 속 음악들에 관해 약 80여 분간 이어진 인터뷰 내내 우리가 느낀 그녀의 음악적 강단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
리드머(이하 ‘리’):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략한 소개 부탁해요.
선우정아(이하 ‘선’): 어… 일단 소개를 하면 보통 표면상으로 맨 처음 하는 말은 ‘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션 선우정아입니다.’에요. 이유가 있는데, 뭔가 제 음악스타일이나 이런 게 말로 짧게 정리되기도 어렵고, 거기에 매이고 싶지도 않고, 대한민국의 여자라는 게 되게 자랑스럽거든요. 어렸을 땐 소년이 되고 싶은 여자였지만, 자라다 보니 여성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여성으로서 약함? 이런 것들마저 아름다움이 될 수 있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어떤 수단이든 음악 안에 있는 걸로 최대한 다양하게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어서 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션 선우정아. 뭔가 되게 거창하게 소개를 했네요. (웃음)
리: 인상적입니다. (웃음) 1집 이후, 7년 만에 2집이 나왔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예요?
선: 음… 밖에서 보시기에 이 부분을 좀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오랜만에, 또 오랫동안 안 했던 것들이 힘들지 않았나 말씀하시는데, 사실상 힙합 쪽이든 어디든 똑같겠지만, 메이저 씬이 아닌 상태에서 자유롭게 예술활동을 하다 보면 작품을 발표하는 것에 대한 강박이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고 그 전에 현실적으로 그런 발표를 할만한 상황이 대부분 잘 안돼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씬을 여러모로 거치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한 5년 동안은 앨범 발매에 대한 생각이 없었어요. 일단 현실적으로 힘드니까 생각을 못 했고, 다른 재미있는 일들이 정말 많아서 그런지 생각조차 없었어요. 오히려 그런 시간이 없었으면 이런 결과물이 안 나왔을 테고…. 다방면으로 많은 활동을 했어요. 영화음악도 했었고 심지어 그 영화에 출연도 해보고….
리: 독립영화였던 [오늘은 내가 요리사]였죠?
선: (웃음) 네. 아시는군요.
- 김의석 감독의 단편영화 [오늘은 내가 요리사]
리: 그런 활동 중에 본격적으로 앨범을 내게 된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선: 나이도 들고 또 이런 것들을 하기에 정신과 몸도 지치고 슬슬 앞으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생각을 하다 보니깐 아무래도 내 음악 할 때가 가장 좋다 싶었어요. 내 음악을 하지 않으면 다른 작업도 잘 안 풀리더라고요. 앞으로 내 것만 할건 아니지만, 이제는 내야 되겠다 생각을 하면서 슬슬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리: 지금 소속된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레이블에 합류하게 된 시기나 계기가 있을까요?
선: 시기… (매니저에게) 우리가 1년 좀 넘었나요? 그 언제지.. 1년쯤 된 거 같아요. 처음엔 혼자 준비를 했어요. 제 음악이 어딘가와 타협이 될만한 음악이 아니란 생각이었고, 타협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자…. 그런 와중에 인디 레이블 몇 군데서 연락받았는데 듣고 보니깐 제가 다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고 회사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인디 레이블)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우리 회사 메인 아티스트이자 이사님이신 ‘옥상달빛’ 언니들과 대학을 인연으로 가까운 사이였는데 요즘 궁금한 게 많다고 했더니 자기네 사장님과 상의를 해보래요. 그래서 서로 별 의도 없이 상의로 시작했는데 얘기를 하다 보니까 필이 잘 통하더라고요. 그래서 ‘음악 들려줘 볼래?’, ‘제 얘기 들어보실래요?’ 해서 함께 하게 됐어요.
리: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YG 소속 가수로 알고 있기도 했는데, 정확히 가수로 계약되어 있진 않았던 거죠?
선: (웃음) 전혀요.
리: 작사, 작곡가로 의뢰가 들어오면 작업을 하는 식이었군요?
선: 약간의 콜라보랄까요…? 제가 아직 대단한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에 이 단어를 쓰기 조심스럽지만 쉽게 말하면, 콜라보레이션 느낌으로 저를 대해줬어요.
리: 혹시 YG에서 앨범 얘긴 없었어요?
선: 얘기는 가볍게 오갔는데 정말 가볍게, ‘한 번 내볼까?’ 정도…. 테디 오빠가 제 음악에 관심을 줬어요.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고 조언도 많이 해주고. 제 앨범 ‘Thanks To’에 YG 분들 이름이 있는데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음악적인 편곡이나 모니터를 많이 해준 것에 대한 감사에요.
리: 앨범 발매 전에 초이스37(Choice37), 태양, 산다라박 같은 이들이 트위터에서 앨범을 언급해주었는데 홍보효과가 꽤 컸을 거 같아요.
선: 그러니까요. 그렇게 언급해주는 자체로 이름이라도 기억에 남잖아요. 되게 감사하죠.
리: 그동안 YG에서 꽤 많은 작업을 했어요. 최근 이하이 앨범에도 참여했고요.
선: (웃음) 그래 봤자 세 팀이에요.
리: 그래도 히트곡이 있잖아요.
선: 되게 중요한 포인트인 게 솔직히 말하면, 제가 잘해서 히트한 게 아니고 YG가 워낙 작품과 아티스트를 잘 풀어내는 것 같아요. 거기에 저는 향신료를 친 거죠. 조금 더 희한한 맛이 났겠지만, 히트한 원인이 제가 아니기 때문에 되게 조심스러워요. 히트 작곡가라는 수식어라든지…. 다른 쪽에서 제의가 많이 들어오는데, YG 하고는 전혀 다른 접근이거든요. ‘너는 이제 히트 작곡가니까 여기 와서 히트곡을 써줘.’ 하면 전 그들이 원하는 좋은 결과를 만들만한 능력이 없어요.
리: 이번에 서인영 씨 앨범에도 참여했죠?
선: (웃음 )그것도 거의 숟가락 얹은 거에요.
리: 그래도 음악을 들으면 ‘선우정아 스타일’이라 부를 만한 게 있어요. 단순히 향신료가 아니라 베이스 자체에 작곡가의 느낌이 있어요. 보컬 멜로디나 다른 곡에서 찾기 어려운 작사, 작곡을 하잖아요.
선: 그렇게 들어주시면 좋지만, 좀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아파”, “헤어지자”도 그렇고 쿠시 오빠가 거의 다 했어요. 작사, 작곡, 틀, 그 어떤 분위기. 에너지는 오빠로부터 시작돼요. 전 그걸 듣고 되게 좋았어요. “아파”도 듣고 딱 꽂히고, ‘아, 이게 대중음악 작곡가구나.’. 오빠도 거기까지 해놓고 완성을 좀 더 재미있게 해보려고 저뿐만 아니라 다른 스타일의 아티스트들과 많이 소통하더라고요. 물론, 그 만남이 좋은 작업으로 이어지는 건 모두의 몫이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리: 앞으로 작곡가로서도 계속 활동할 예정인 거죠? 공동 작곡이 아니더라도.
선: 상대 측이 제 색깔을 알고 있고 좋아해서, 자신과 섞어서 해보자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는데 ‘딱 대중음악!’ 이렇게 원하면 힘든 거죠.
리: 이하이 씨 앨범엔 4곡이나 참여했는데, 특별한 요청이 있었던 건가요?
선: 네. 요청이 있었어요. 처음엔 그저 트레이닝 쪽 인줄로 알았는데, 곡을 써보라고 하더라고요. ‘정아 씨 스타일대로 써 보시라.’. 다행히 하이는 제가 갖고 있는 것보다 또 다른 소울적인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창구였기 때문에 정말 즐겁게 작업했고, 그렇게 하다 보니 4곡이나 참여하게 됐어요
리: 특히 선우정아 씨가 작곡한 곡들은 이하이 씨의 느낌보다 선우정아의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선: 그래서 좀 문제에요. 제 곡을 먼저 녹음했는데, 마무리는 가장 마지막에 하게 됐어요. 다들 들으면서 ‘정아 씬데요? 하이가 아닌데? 하이 어디 갔어?’ 그러더라고요. 디렉하면서 되게 중요한 건데 머리로는 알지만, 이게 바로 제가 부족한 거죠.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결과물에 아직도 제가 너무 많이 들어간 거에요. 그런 게 좀 아쉽더라고요.
리: 이하이 씨의 앨범 크레딧을 보면, 코러스에 “Rose” 한 곡만 리디아팩(Lidia Paek)으로 표기되어 있던데, “짝사랑”, “Because”, “내가 이상해”에서 코러스는 이하이 씨 혼자 소화한 거예요?
선: 같이 했어요. “짝사랑” 같은 경우는 함께 부스에 들어가서 입 맞춰 녹음했어요. 이런 시도 처음 해봤는데 재미있었어요.
리: 그 외 곡들은?
선: “Because”만 몇 군데 섞고 나머지는 하이가 다했어요
리: 어떻게 보면 크레딧에서 빠진 거네요?
선: 굳이 넣고 싶지 않은…. 왜냐면, “짝사랑”은 특히 작사, 작곡, 편곡 선우정아잖아요. 코러스까지 선우정아. 이러면 숨 막히는 거에요. 일부러 안 쓴 의도도 있어요
리: 그런데 2집에서도 그렇고 “짝사랑”에서는 코러스가 백미에요.
선: (웃음) 코러스가 사실 사운드 색깔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곡이라.
리: 어레인지를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 (웃음)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려 했습니다.
리: 근데 “내가 이상해”라는 곡 중에 ‘나만 가진 몇 가지 것들’ 하는 부분은 십대 감성이라기보단 30~ 50대의 감성이 느껴졌어요.
선: (웃음) 맞아요. 어덜트 송이었어요.
리: 마지막에 등장하는 ‘어쩌라고 사실인걸’ 하는 부분이 그런 가사를 중화시키긴 했지만, 전 한영애 씨가 불러도 좋겠다 생각했었습니다. 이 곡은 왠지 애초에 이하이 씨를 염두에 두고 쓴 곡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선: 네. 원래 제 앨범에 들어갈 수도 있었던 곡인데 전부터 양 사장님도 알던 곡이에요. 제가 부른 버전일 때도 좋아했는데, 이 곡을 하이에게 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제가 부르려고 했던 곡을 파는 건 처음이어서 아이 입양 보내는 기분으로 고민하다가 그 곡은 제가 부르지 않아도… (TV를 가리키며) 아, 저기 하이 나오네, 광고에…. 하이가 불러도 괜찮겠다 싶어서 주게 되었어요.
리: 그러면서 변화를 준 부분이 있나요?
선: 원래는 가사가 더 셌어요. 마지막 후렴구에 작게 깔리는 코러스가 ‘내가 이상해?’ 하면, ‘뚜두~ 어.’ 하고 대답하는 식이에요. 지금 가사는 또 다른 자아가 ‘어디가 어떻게?’ 하면, ‘넌 어딘가 달라.’인데요, 원래는 ‘넌 괴물이니까.’였어요. 근데 그건 너무 세다 해서 가사를 바꿨는데 원래는 메두사를 표현한 거라 셀 수밖에 없었어요. 어릴 때 [메두사]라는 1인 단막극을 시도했었는데, 메두사가 외로운 소녀라고 생각하고 연출한 거였어요. 다들 자길 보면 돌로 변하니까 ‘차라리 빨리 죽이러 와라.’ 이런 상상. ‘왜 나만 이상해?’ 하면, 뱀들이 대답하는 거에요. ‘어. 넌 괴물이니까. 어쩌라고, 사실인걸.’ 이런 식의 컨셉트였는데 하이를 만나면서 중화가 된 거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괜찮은 거 같아요. 나중에 아예 아방가르드로 가서 메두사처럼 표현해도 사람들이 조금 더 알고 있으니깐 재미있게 받아들일 것 같고.
리: 공연 때는 투애니원에게 줬던 “아파”를 라이브로 부르기도 했는데요. 앨범에 다시 실을 생각은 없어요?
선: 앨범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라이브 무대나 유투브가 하나의 프로잖아요. 공중파 같은 프로그램이다 보니 거기에만 올려도 충분하다 생각해요. 여태껏 “아파”나 “오예”는 사적인 곳 아니면 절대 한 적이 없었어요. 일부러 그랬어요.
- 선우정아가 공연 때 부른 투애니원의 “아파”
리: 이하이 씨 앨범에서 공동 작업한 레알미는 어떤 분인가요?
선: (웃음) 완전 친한 친구예요. 거의 친동생 같은….
리: YG 소속 뮤지션은 아니죠?
선: 네. 학교 후배로 만났고 이웃사촌이에요. 집에서 한 블록이면 레알미네 집이라서 오랫동안, 한 5, 6년 됐나? 베프에요. 이 친구는 사심이나 야망이 작은 스타일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슬슬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곡을 쓰는데, ‘언니, 이 곡으로 뭐 어떻게 해볼래,’ 식이 아니라 그냥 재미있어서 조금씩 쓴 곡들을 들려주곤 했어요. 거기에서 좋은 게 있어서 제가 먼저 제의한 거고요.
리: 공동 작업과 홀로 작업하는 것에 각각 장단점이 있을까요?
선: 누구랑 하냐에 따라 달라요. 경험으로 보면, 일단 더 많은 사람에게 포용되고 싶으면, 여럿이 하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요. 특히, 저는 혼자 시작하면 잘 갇혀서 빠져 나오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 제 앨범(선우정아 2집)에서도 되게 많이 그랬거든요. 특히 대중음악은 더 다양한 모니터와 더 많은 참여가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좋았어요. ‘같은 소재를 이 사람은 이렇게 풀어내는구나.’ 하고 서로 배우게 돼요.
리: 이전에 김현지 씨 앨범을 프로듀싱했었죠? 최근 [보이스오브코리아]에도 나왔던….
선: 제 생각에 되게 좋은 소울 앨범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믹싱 과정부터는 좀 아쉬웠지만, 아무튼 곡 선택이나 언니가 소화한 거나 좋았어요. (결과적으로) 아쉽고 좀 더 알려졌으면 했던 앨범이에요. [보이스 오브 코리아2]가 언니에겐 큰 도전이었는데, 과거에 대한 상처나 두려움을 많이 떨쳐낸 것 같아요.
리: 1집 얘기를 좀 해보죠. 당시 타이틀곡이 이승철 씨의 “긴 하루” , 윤도현 씨의 “사랑했나봐”를 썼던 전해성 씨 곡이었는데, 히트 욕심이 좀 있었던 거예요?
선: (전원 웃음) 저는 전혀 없었고요.
리: 1집에 대해 애착은 있는 거죠?
선: (전원웃음) 예리한 질문이네요. 있다고 해야 하는 데 사실 별로 없었거든요. 제 부족함을 감추고만 싶었는데,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공연 때 혼자 피아노 치면서 별 생각 없이 했는데, ‘오래 봐온 관객으로서 1집을 슬슬 편곡해서 준비해보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듣는 순간 1집에 대한 애착이 생겼어요. 남편은 그게 보기 좋았나 봐요.
리: 1집은 오감엔터테인먼트라는 곳에서 나온 건가요?
선: 그게 애매해요. 지금 제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에요.
리: 그럼 정확한 판매량도 모르겠네요. 지금은 구하기 어렵던데 재발매 계획도 없는 거죠?
선: 네. 구하기 어려울 거에요. 단종이라고 해야 하나? 몇 장 나갔는지도 모르고, 다만 잘 안 되었다는 것만 알죠.
(좌) 김현지 EP, (우) 선우정아 1집
리: 1집에 “아파”라는 곡이 있는데, 투애니원에게 준 곡도 “아파”였잖아요. 시리즈물도 아니고 한 뮤지션이 동일한 제목의 곡을 내는 경우가 드문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요? 제가 한 글에서 ‘선우정아는 아파 페티쉬가 있는 게 아니냐?’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만.
선: (전원웃음) 완전 신기해요. 우연이에요. 제가 전체적인 코드 트랙에 후렴구만 멜로디를 영어로 샬라샬라해서 가이드를 해서 보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쿠시 오빠가 ‘아파야! 아파!’ 그러는 거에요. 벌스 멜로디랑 가사도 붙여서. (제 앨범에) “아파”가 있는 건 모르는 상황이었고요. 그래서 그 제목은 이미 제 앨범에 있다고 했더니 더 좋다고, 잘 될 거라고. 그런 우연이었어요.
리: 사실 정아 씨가 추구하는 바도 그렇고, 앨범도 온전히 소울/알앤비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잖아요. 하지만 “주인공의 노래”, “뱁새”,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 같은 곡들에선 정말 한국에서 듣기 쉽지 않은 소울 트랙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장르적 특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곡이었나요?
선: 아니요. 그래서 처음 나왔을 때 네이버 뮤직에서 알앤비로 구분 되어 있는 게 신기했어요. 다만, 제가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도니 해더웨이(Donny Hathaway) 같은 옛 소울 가수들, 로린 힐(Lauryn Hill) 등등, 대부분의 보컬이 지나오는 감상 코스를 거치면서 영향받은 것이 드러났나 싶더라고요. 지금도 60년대 소울 사운드는 참 좋아해요. 기교가 있는데 정제되지 않은 기교있잖아요. 그런 에너지가 좋고 악기 조합이나 사운드를 좋아하다 보니 자주 들어요. 튀어 나가는 소리보다는 먹먹한 느낌들을 좋아하게 된 거 같아요.
리: 정아 씨 앨범에서는 보컬적으로 알앤비 특유의 그루브와 맛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선: 제가 계속 재즈를 하다 보니 그르부라든지 질감은 갖고 있어서 그런 게 나온 거 같아요. “주인공의 노래” 같은 경우에도 ‘힙합적! 그루브!’ 이렇게 하기보단 자연스럽게 스윙하면서 타던 그루브가 담긴 거 같고요.
리: 앨범에 브라스도 많이 쓰였어요.
선: 네. 제가 한창 재즈 보컬 활동을 할 때 트럼본, 트렘펫이 다 있는 뉴올리언스 딕시랜드(Dixieland) 스타일의 음악을 했어요. 그러면서 사람이랑 닮은 악기라서 더욱 매력을 느꼈는데, 동갑내기 트럼본 하는 친구를 10년 정도 가까이하다 보니 더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리: 브라스의 활용으로 음악이 한층 풍부해진 거 같아요. 1집과 가장 큰 음악적 변화 같고요.
선: 그렇죠. 그땐(1집땐) 쓸 줄 몰랐어요. 편곡을 다 남들에게 맡겼거든요. 1집을 하면서 남들에게 부탁한 결과물들이 오는데 다 맘에 안 들고…. 소통의 부족함도 있었겠지만,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니깐 아쉬운 거에요. 그래서 1집 낸 후에 본격적으로 공부한 거죠.
리: 재즈 음악을 오래 했는데, 편견인지 몰라도 국내 재즈 보컬들은 유독 유학이나 이른바 외국 물을 먹고 오는 뮤지션들이 많잖아요. 유독 옛 명곡 리메이크가 많은 게 장르적 특성의 일부이긴 하지만, 가사적으로도 국내 팬보다는 국외 팬층을 향해 있는 거 같고…. 반면, 선우정아씨는…
선: 한국에만 있었죠. 슬픈 거죠. (전원웃음)
리: 다른 뮤지션과 같이 작업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선: 부담이라기보다 재즈 보컬로 규정되는 게 별로였고, 될 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재즈를 정말 좋아했는데…. 정말 좋아했어요. 근데 열심히 안 했어요. 그냥 누를 끼치지 않을 만큼, 관객들에게 모욕을 주지 않을 만큼만 하고. 정작 영향은 제일 많이 받았죠. 저는 한국적인 재즈 보컬에게 사사를 받았어요. ‘말로’ 선생님은 이미 그런 아쉬움을 알고 우리말로 직접 가사를 짓고 재즈를 했거든요. 계속 그 길을 가고 계시고. 그런 분께 사사를 받다 보니 그 영향도 컸어요.
리: 어느 인터뷰에서 스스로 재즈에 가장 적합한 보컬이라고 얘기했잖아요?
선: 네. 역설적이죠. 재즈보컬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재즈를 부를 때 목소리가 제일 편해요.
리: 알앤비, 소울, 록, 재즈 중에 어떤 장르의 아티스트로 불리는 게 좋아요?
선: 아방가르드. (웃음) 먼저 팝이라고 하고 싶어요. 2집도 정말 팝적인 앨범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많은 과정을 거쳤지만, 결론은 팝이었어요. 팝이란 게 많은 의미가 있잖아요. 팝 뮤지션으로 불리면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에요. 그다음은 아방가르드.
리: 선우정아 음악에서 가사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이하이 씨에게 준 곡도 그렇고 2집 타이틀 곡 “뱁새”도 그렇고 자학적인 가사가 많은데, 혹시 콤플렉스가 있나요? 물론, 그런 가사가 매력적이긴 합니다만.
선: 저는 콤플렉스 덩어리에요. 저의 음악적 원천은 열등감이고 그걸 폭발시키면서 곡이 나와요. 그런 다음 살아가는 희망이 생겨요. 열등감을 폭발시키고 희망이라는 행성이 생기는 거죠, 저의 우주가.
리: 저는 음악의 힘을 믿는 편입니다. 가수가 곡 제목 따라간다고, “뱁새”를 발표하고 다리를 다쳤잖아요.
(인터뷰 당시 선우정아는 발을 다쳐 깁스를 한 상태였다)
선: 어머! 진짜! 갑자기 무서워져요.
리: 저는 아들이 이제 15개월 됐는데 아들의 죽음에 관한 곡은 무서워서 못 듣겠더라고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Tears In Heaven” 같은 곡이요. 자학적인 곡을 만들고 부르면 소비되는 에너지가 많을 거 같아요.
선: 맞아요. 우울증이 심해지면 조울증이 된다고 하잖아요. 중간에만 있으면 우울증이래요. 그러다 너무 깊게 들어가면 조울증이 된대요. (손짓하며) 이렇게 내려가면, 이렇게 올라가고 하면서 조울증이 되는 건데, 자기혐오 같은 게 너무 세게 가다 보면 자기애가 같이 와요.
리: 그래서 선우정아 음악의 힘은 분노와 열등감 표출이군요?
선: 분노와 지나친 자기애가 동시에 있는 거 같아요. 이런 걸 갖고 있는 자체를 사랑하는 거…. ‘너무 힘들어….’ 하다가도, ‘역시 아티스트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자기애로 가는 거에요.
리: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수록곡 중 “Purple Daddy”의 가사는 실화인가요? 아버지를 돌려달라며 울부짖는 곡인데요.
선: 되게 많은 관심을 주더라고요. 반응이 재미있는데. 어떤 꼬임도 없고 은유도 없어요. 아빠가 돌아가셨고 받아들일 수 없고 힘들 때, 외로울 때 대상은 없지만, 분노는 치밀잖아요. 누굴 원망해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증오가 대상 없이 퍼져갈 때를 생각하며 쓴 곡이고 제가 그쪽 신앙을 믿는 건 아니지만, 뭐라 그럴까? 살풀이라 그러나? 그런 식의 작업이었어요. 남편도 그렇고 가까운 친구들은 제 삶을 알고 그때의 스토리를 알아서 그런지 되게 촌스럽고, 딥하다고 싫어했어요. 안 하면 안 되냐고, 얘만 너무 튀고 재수 없다고 별로래요. 근데 제 입장에서는 안 하고 있으면 계속 이 곡이 저를 괴롭힐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사실 편곡 과정에서 확신 있게 풀어지지 않은 상태로 진행하게 되었는데, 믹싱과 마스터링에서 좋은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풀어진 거 같아요
리: 말씀한대로 “Purple Daddy”에 대한 호응이 많았어요.
선: 그래서 남편이랑 친구들에게 보라고. 인기 많다고 얘기했죠. (웃음)
리: “알 수 없는 작곡가”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작곡가. 그러니깐 고스트 작곡가의 심경을 얘기한 건가요?
선: 그냥 언노운 아티스트(Unknown Artist)요. 한국말로 아이튠즈에서 이상하게 작곡가로 돼버렸어요. 노래하는 사람은 아티스트 아닌가? 포괄적인 아티스트의 입장이고 작곡가로 한정된 건 아니에요. 특별히 고스트 작곡가를 두고 쓴 곡은 아니에요.
리: “Workaholic”에서는 인맥의 바다를 노래했죠. 음악계에서 인맥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선: 거의 뭐 8~90퍼센트죠. 요즘에는 자본보다 정보화 시대다 보니까 자본보단 사람인 것 같아요. 여기(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온 것도 옥상달빛 언니들이랑 친해서고 YG도 쿠시 오빠를 통해서 연을 맺었고, 쿠시 오빠도 친구 덕에 알게 됐으니까요. 여러 가지가 인맥으로 펼쳐지는데, 그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저의 문제고, 그런 인연들이 제 삶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 같아요.
리: 스튜디오를 네 곳에서 녹음했던데, 그럼 사운드 잡는데 어려움이나 물리적인 시간 제약이 있지 않아요?
선: 시간제약이 조금 있었는데 그래도 자유롭게 한 편이에요. 1집에 이어서 운이 좋았죠. 사운드가 중구난방이 되지 않을까 고민은 했어요. 가뜩이나 노래 스타일들이 다 달라서 이걸 어떻게 잡을까 하다가 목소리로 잡으라는 조언이 있었어요. 덕분에 그 후로는 저 스스로 ‘프로듀싱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이어지겠지.’하면서 긴장을 좀 풀었어요.
리: 르네상스 스튜디오는 홈 스튜디오에요?
선: 네! 우리 엄마 아파트 이름이 XX르네상스 아파트에요. (전원웃음) 뭔가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리: 사운드 잡는데 관여를 많이 하는 편이죠?
선: 네. 거의 뭐.
리: 먼 미래의 일일지도 모르지만, 믹싱, 마스터링 같은 엔지니어로서 욕심도 있을 거 같아요.
선: 있어요. 아직 엄두는 안 나지만, 한 번 욕구를 느끼니 묻어둘 순 없어선 아주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하긴 할 거 같아요. 지금까지도 많이 배웠고…. 앨범의 절반은 외국인 엔지니어 (Brad. A. Wheeler)랑 같이 했는데 그 오빠한테도 많이 배웠고, 다른 절반을 맡아준 윤정오 기사님에게도 정말 많이 배웠어요. 스타일은 다르지만, 두 분 모두 제 곡에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았어요. “You Are So beautiful”은 다 집에서 혼자 했는데요, 베란다 두들기고 수첩에 연필을 긁고 30만 원짜리 핸드 마이크로. 그런데 그게 되더라고요. 저도 몰랐는데, 윤 기사님, 브래드, YG 프로듀서 분들과 얘기하면서 장비 걱정을 했더니 모두 이 말을 하더라고요. ‘좋으면 그만이지’. 이 말이 큰 모토가 되었어요.
리: 공연 때 마이크로 연필 소리를 내는데 신기했어요.
선: 그게 힘들어요. 가끔 마이크에 따라 그 소리가 안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서 종이를 비벼서 소리를 내거든요. 너무 안 들어가서 종이에 직접 마이크를 긁기도 해요.
리: 작사, 작곡, 편곡을 혼자서 다 했는데, 유독 “뱁새”에서만 스페셜 보컬 디렉터를 따로 뒀더군요. 바버렛츠 소속의 안신애 씨….
선: 초반에 말했지만, 제 안에 갇히는 걸 많이 두려워하는데, 그래서 계속 조언을 받아왔지만, 이 곡은 특히 더 집중력 있는 참여를 통해서 저를 덜어내고 싶었어요. 스스로 자기를 디렉할 때 혼란스러워서 괴롭거든요. 아무리 세상에 기준이 없고 정답이 없다지만, 이건 없어도 너무 없고 갈피를 못 잡는 경우가 있어요. 나에겐 내 목소리가 좋은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아닐 수도 있잖아요. 보다 덜 부담스러운 판단을 위해 아예 작정하고 불렀죠.
리: 바버렛츠와 안신애 씨는 어떤 뮤지션들이에요?
선: 그분들은 5, 60년대 스타일로 마이크 하나 두고 셋이 모여 입을 맞추는 걸 그룹인데요. 자작곡들도 매력 있고 한국의 소울도 잘 담아내서 더 좋아요. 안신애도 한국적인 뮤지션이기 때문에 앞으로가 기대돼요. 슬슬 앨범도 준비 중이고요, 신애의 솔로 앨범도 기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바버렛츠 “노란 셔츠의 사나이”
리: 저희 같은 음악 덕후들은 앨범을 사서 속지를 보는 게 큰 기쁨인데요,
선: 네. 저도 마찬가지예요!
리: 속지를 보면서 좀 놀랐어요. (선우정아의 앨범 속에는 그녀의 세미 누드가 실려 있다) 룰라 김지현 씨 솔로 앨범 이후로는 처음 본 거 같아요.
선: 아 진짜요? 그분도 있었나요?
리: 자신을 모두 드러낸다는 설정이었을까요?
선: 이게 타이틀하고 동기화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타이틀로 ‘괜찮다 괜찮아’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은데 괜찮다는 말이 한국말로는 너무 착하고 예쁜 거에요. 친구 덕에 [It’s okay, dear]를 생각했는데 괜찮다라는 의미가 ‘괜찮아~’가 아니고 ‘야, 괜찮아!’ 이런 뉘앙스 차이거든요. 그냥 생 까고 뭐 없어 별거 없어 버티고 살면 돼. 이런 식의 위로를 일단 저 자신에게 하고 있었어요. 발매 생각이 없었을 때는 몰랐는데 발매를 하려고 보니깐 예상보다 더 역경이 많더라고요. 실제로 앨범 전체 믹싱까지 끝냈다가 완전 엎어진 적이 있었거든요. 똑같이는 아니고 조금 추려서 이 앨범이 나온 건데, 그러면서 힘이 다 떨어지더라고요. 회사도 생겼고 이제 조금만 하면 완성되는 데 오히려 힘이 떨어지고. 혼자 준비하던 앨범 구상들은 전체를 통괄하는 컨셉트가 아주 확실했는데, 여러 이유로 세상에 나오게 된 앨범은 그렇게 컨셉트에 딱 맞진 않았어요. 그래서 색깔이라도 정하자 하는데 참 정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전 제 곡들을 묶은 그룹마다 색깔을 잘 상상하는 편인데 이번엔 도저히 안 되는 거에요. 그러다가 좀 더 시야를 넓힌 다음 떠오른 게 제 피부 색깔이었어요. 전 이 앨범으로 저를 다 까발려 보이는 동시에 위로하고 있었거든요. 그간의 힘들었던 역사들이 뭉쳐진 것을 ‘몰라, 괜찮아’ 하면서 벗어버린. 막(커튼)을 생각했던 이유는 “주인공의 노래”의 제목에서, ‘그래, 내가 주인공이야!’ 하는 위트도 있었고요. “알 수 없는 작곡가”의 제목에서도 가려져 있다가 힐끔 등장한 뮤지션 정도의 의미가 있었어요.
리: 그러고 보니 앨범이 전체적으로 살풀이하는 앨범이군요.
선: 네.
리: 종교는 따로 있어요?
선: 지금은 좀 방황 중인데 크리스천이었어요. 그래서 살풀이란 단어를 쓰기가 좀 묘한…. (웃음)
리: 1집 보면 “떠돌이 별”이란 곡이 있고 2집의 “Purple Daddy”나 앨범 속지에 보면 우주 사진이 나오던데, 혹시 천체에도 관심이 많아요?
선: (웃음) 예술을 하고 표현을 하는 삶을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게 되잖아요. 저도 가면 갈수록 에너지라는 말을 자주 쓰더라고요. 연주할 때, 특히 긱을 해오다 보니.... 긱은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끼리도 한 번 안 맞춰보고 처음 보는 악보로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시간이 에너지나 자기집중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경험하는 건데, 그렇게 쭉 느껴오던 게 나이도 들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면서 극대화되는 거 같아요. 앨범, 우주, 사람, 지구. 순서나 주제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계속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더 가면 위험해 질 거 같아서 그냥 추상적으로만…. (웃음)
리: 세션 얘기를 좀 할게요. 건반 치는 길은경 씨나 베이스 치는 서영도 씨와 궁합이 좋은
거 같아요. 정아 씨도 연주를 하잖아요. 음악적으로 가장 큰 차이라면?
선: 저는 개미고 그분은 나비? 완전 다른데 예를 든다면, 화려한 나비가 모든 경우에 다 어울리는 건 아니잖아요. 되게 개미 같고 작고 단출하지만, 그게 어울리는 곡이 있고. 그런 프로듀싱을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내가 해야지 멋있게 나오는 것과 세션으로 빛날 수 있는 경우를 구분하는…. 근데 저는 사실 연주가 아니었어요 편집의 끝이었죠.
리: 트위터에서 재미난 일이 있었는데요, 베이스 세션을 했던 서영도 씨에게 ‘이하이의 ‘내가 이상해’, ‘짝사랑’이 나왔어요.’ 하자 서영도씨가 ‘그렇게 말하니 뭔지 모르겠다.’라고 하더군요.
선: 워낙 많은 곡을 하시니까요. 이른바 말하는 A급 세션이잖아요. 녹음이 일상이시다 보니…. (웃음)
리: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서영도 베이시스트를 꼽기도 했었죠?
선: 완전 멋있잖아요. 샤넬 같다고 생각했어요. 독보적이에요. 성격도 독보적, 연주도 독보적,
정말 멋있어요. 한국에 그런 뮤지션이 있다는 게 든든해요.
리: 앨범 발매 후 각종 리뷰 매체에서 호평이 쏟아졌습니다. 이 정도 되면 연말 음악 시상식에서 욕심도 생길 거 같은데….
선: 정말 멋진 앨범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에선 인지도 있는 분들도 있고 활동도 열심히 한 분들이 있어서, 제가 감히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요.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장 용기있는 음반상’. 그러면 제가 그걸 받고 싶은데, 그냥 대중음악상이라면 글쎄요. (웃음)
리: 완전한 소울 앨범을 내도 참 좋을 것 같은데, 욕심 없어요?
선: 언젠간 해보고 싶어요. 가까운 시일 내는 아닌데, 꼭 제 앨범이 아니더라도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 프로듀싱에 제가 참여한다든지 하는 식으로라도 결과물을 내고 싶긴 해요. 앨범에선 많이 절제하려고 했는데, 보컬리스트로서 결과물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쌓아놓은 곡이 많기 때문에 살풀이를 다 하고 나서. 제가 보컬로서 매력이 있고 잘하는 편이긴 해도…? (웃음) 더 농익을 필요가 있어요.
리: 하루에 발성 연습은 얼마나 해요?
선: (웃음) 안 합니다.
리: 타고난 보컬이군요.
선: 아니요, 아니요. 제가 컨디션을 많이 타서 사실 해야 하는데…. 핸드폰에 넣고 다녀요. 정말 불안하거나 관리가 필요할 때, 대기시간이 길 때는 살짝 해요. 하게 되면 차 안에서 하는데, 거의 안 한다고 보면 돼요. 피곤에 쩔어 있는 상태에서 긱을 딱 할 때, 하루의 마지막에서 재즈클럽에서 노래 부를 때. 그때 희열이 장난 아니거든요. 노래를 못할 것 같았고 하기도 싫었는데 올라가서 노래하는 순간 그 생각들이 다 우스워져요. 그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감동은 있지만, 연습 안 하는 건 그냥 게을러서예요.
리: 곡들을 들어보면 호흡이나 눈물짓는 소리 같은 게 멜로디화 돼서 음악 속에 묻혀 있는 게 느껴져요. 따로 채보할 때 연출을 잡는 건가요?
선: 따로 채보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둬요. 제가 보컬이고, 사람 몸, 특히, 이쪽이(턱 쪽을 가리키며) 악기잖아요. 노래할 때 호흡도 노래만큼 중요하다 보니깐 자주 사용하게 돼요.
리: 요즘은 통상적으로 끊어서 녹음한다든지 오토튠이 남용되면서 호흡 자체가 사라졌는데, 앨범 안에 호흡이 들어가서 좋았습니다.
선: 감사해요. 사실 약간의 연출이 있었지만, 편집할 때 최대한 살아 있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리: 밴드 활동도 지금 하고 있나요?
선: 가끔 남편이 하고 있는 밴드에 얹혀서 하기도 하고 재즈 긱도 시간이 맞으면 하고 있어요.
리: 미디 프로그램은 어떤 걸 써요?
선: 시작은 거의 큐베이스로 작업하고 외부 스튜디오에서 녹음 받았을 때는 프로툴로 넘어가고요. 스튜디오와 연동되어 작업하려면 아무래도 그게 더 좋더라고요.
리: 이른 질문이지만, 다음 앨범 계획은요?
선: 이번에 대박! 준비하고 있어요. 자세한 건 말씀 드릴 순 없지만….
매니저: 다 알아요 이제.
선: 알아요 이제? (웃음) 누구한테 까인 곡인데 너무 아까운 거에요. 덕분에 좋은 곡 썼어요. 이걸 저 혼자만의 싱글 결과물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콜라보할 거예요. 아마 최다 콜라보가 될 거 같아요. 아. 아니다. “우리 하나되어”가 있구나. 하지만 편곡까지 참여하는 콜라보로는 최다 콜라보가 되지 않을까?
리: 싱글인 거죠?
선: 네, 그럴 거 같아요. 제 버전의 트랙과 콜라보 버전이 수록될 예정이고요. 뮤직비디오도 시간 들여서 찍을 예정인데, 영상에서도 콜라보가 느껴지는 그런…. 아직 준비만 하고 있어요.
리: 아 기대되네요. 더 하고 싶은데 못한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선: 이거 아직 어디에서 얘길 못했어요. “뱁새”에서 처음 도입부나 중간중간에 새소리, 새 날갯짓이랑 자연의 소리가 들리잖아요. 실제로 날갯짓으로 비트를 만들고 싶어서 되게 연구를 많이 했었어요. 드럼 탐 킷을 리버스해보기도 하고, 새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다 뒤져봤어요. ‘교미를 합니다’ (웃음) 뭐 이런. 몇 날 며칠 동안 그거만 보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원하는 날갯짓이 나오는 걸 BBC 다큐에서 찾았어요. 올빼미. 인트로에도 있고요. 아웃트로 전조 되기 직전에 ‘깨액~’ 하는 소리가 나잖아요. 그것도 뻐꾸기 새끼 우는 소리에요. 어렵게 다 따서 넣었는데…. 자랑스러워, 짱이야! “뱁새”기 때문에 새소리를 넣다니 정말 대박이야! 했는데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요. (웃음)
리: 진짜 새소리였다니!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전원 웃음) 끝으로 앞으로 행보 좀 알려주세요.
선: 라이브를 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는데, 그쪽으로 노력을 많이 하려고요. 라디오 라이브를 몇 번 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TV도 나가면 좋겠다. 아무튼 공연처럼 직접 보여드리는 곳에서 실제 호흡을 담아서 전달해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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