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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인터뷰 던말릭 - ‘탯줄’을 끊고 세상으로

한국힙합위키

던말릭 - ‘탯줄’을 끊고 세상으로 리드머 작성 | 2015-05-04 20:44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1 | 스크랩스크랩 | 26,239 View


믹스테입 [Hashtag[#]]를 공개하며 등장한 신인 랩퍼 던말릭(Don Malik). 신인으로서는 비범한 수준의 가사와 랩 실력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는데, 그가 일 년 만에 한국 힙합 씬의 베테랑 프로듀서 마일드 비츠(Mild Beats)와 공동 작업한 앨범 [탯줄]을 발표했다. '90년대 힙합 황금기를 모태로 태어나 이제는 세상을 담아내고 싶다는 스무 살의 랩퍼 던말릭을 만나 음악에 대한 확고한 신념부터 힙합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리드머(이하 ‘리’):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처음 접할 분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 소개 좀 해주세요.


던말릭(이하 ‘던’): 안녕하세요. 저는 ‘326-2 kids’라는 JJK형의 레슨 프로그램을 졸업하고, [Hashtag[#]]라는 믹스테입도 냈고, 윗잔다리 싸이퍼 출신이고, 마지막으로는 데이즈얼라이브(Daze Alive)에 소속되어 있는 랩퍼 던말릭입니다.


리: 레슨생 출신임을 당당히 밝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대개 좀 꺼려하잖아요. 던말릭 씨는 레슨생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그다지 부담되지 않나봐요?


던: 음, 전 사실 결과물이 좋으면 게임 끝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내가 레슨생 출신이라고 사람들이 무시하면 어떡하나, 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냥 제 결과물로 증명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편견이 있다면 제가 잘해서 그런 편견들을 깨부수면 되지 않을까요?


리: 처음에 어떤 힙합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던: 처음엔 드렁큰 타이거나 MC 스나이퍼 음악을 들으면서 랩에 관심이 높아졌어요. 그러다가 외국 랩퍼들을 들어보려고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도 올려봤는데 (웃음) 그러다가 라킴(Rakim)을 처음 들었는데 진짜 좋은 거에요. “When I Be On Tha Mic”나, “18th letter” 같은 곡들이요. 그 스크래치 소리가 그저 재미있어서 초등학교 때 가족들이랑 밥 먹으면서도 틀어놓을 정도로 계속 들었어요.


리: 초등학교면 상당히 어릴 때부터 접했네요.


던: 네.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이는 과정 하나하나가 저에겐 되게 흥미로웠어요. 한 번은 용돈 받은 걸 다 모아서 앨범을 한꺼번에 엄청 많이 산 적도 있고. 피처링한 뮤지션들의 다른 앨범도 막 찾아보면서 제 취향을 만들어 갔던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이 다 재미있었어요.


리: 그러던 중에 '90년대 힙합에 빠진 건가요?


던: 사실 그것들이 '90년대 음악이라는 것도 잘 몰랐어요. 어쩌다 보니 취향이 그쪽으로 간 것 같아요. 그런 것을 좀 의식하고 찾아 듣게 된 건 믹스테입을 준비하면서부터였어요. 비트나 가사적인 감성을 좀 얻고 싶어서요.


리: 가사 작법에도 영향을 많이 줬겠어요.


던: 사실 전 영어를 잘 못해서 가사를 전부 알아듣진 못했지만, 리리시즘(lyricism) 정신을 배운 것 같아요. 가사에 되도록 많은 단어를 담고, 평소에 잘 안 쓰는 낯선 단어를 쓰고 이런 것들이요. 요새 랩퍼들은 리듬만 추구하고 내용적인 측면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힙합은 자기의 삶과 생각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 그런 스타일이 앞으로도 쉽게 변하진 않겠네요?


던: 그렇죠. 그게 저한테는 철칙이에요. 앞으로 음악 스타일이 바뀌더라도 가사 작법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요.


리: 그런데 힙합 커뮤니티 게시판의 반응을 살피다 보면, 던말릭 씨의 가사에는 단어는 많은데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 같다는 평이 있더라고요. 어떻게 생각해요?


던: 동의할 순 없지만, 일단 듣는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절대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제가 쓴 가사 하나하나에는 그걸 쓴 각각의 이유와 논리가 있거든요.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를 사용하는 이유도 듣는 사람들에게 더 풍부한 이미지를 전달해주기 위함인데, 그것에 실패했다면 제가 아직 부족한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상상하는 세계와 그들이 상상하는 세계가 다를 수도 있겠죠. 아무튼 크게 개의치는 않지만, 앞으로 정진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리: 사실 한국 힙합의 아티스트나 청자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그것 같아요. 미국 힙합을 들어보면 아무리 상업적인 랩퍼들이라도 단어 뒤의 맥락을 꼭 심어 놓잖아요. 그래서 ‘랩 지니어스(rap.genius.com)'라는 사이트도 있고. 그런데 한국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취약하다 보니 가사의 숨은 맥락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적은 것 같아요. 그래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고요. 전 이번 가사 무척 인상깊게 들었습니다. (웃음)


던: 감사합니다. (웃음)


리: 던말릭 씨의 랩 스타일을 두고 이센스(E Sens) 씨와 비교하는 사람들도 좀 있는데 알고 있죠?


던: 네 맞아요. 믹스테입 때부터 이센스 씨와 닮았다는 소리를 되게 많이 들었어요.


리: 느낌이 어때요?


던: 일단 제가 참 좋아하는 아티스트에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다 보니까 거기서 탈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앨범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직까지 그런 피드백이 나오네요. 그래도 이제는 크게 개의치 않을 생각이에요. 일종의 통과 의례라고 생각을 하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음 앨범으로 코를 눌러 줘야죠.


리: 프리스타일에도 애정이 크죠?


던: 네. 무척 좋아하고, 또 랩퍼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힙합이란 것 자체가 즉흥성이 강한 장르니까요. 제이 지도 프리스타일 하잖아요? (웃음)


리: 그렇죠. 에미넴, 비기, 투팍 모두 훌륭한 프리스타일 랩퍼죠.


던: 그래서 프리스타일이나 싸이퍼 문화가 많이 확산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지금은 그 명맥을 꾸준히 유지하는 곳이 ADV크루 밖에 없잖아요. 점점 힙합의 즉흥성이 소멸되고 있는 것 같아요. 심지어 싸이퍼에서도 써온 가사를 뱉는 친구들이 종종 있어요. 물론, 티는 나죠. 진짜 환호는 즉흥적으로 터지는 라임에서 나와요.




리: 레이블 이야기를 해볼까요? [Hashtag[#]]라는 믹스테입을 낼 때는 데이즈얼라이브 입단 전이었죠?


던: 네. 믹스테입을 내고 뮤직비디오를 올린 뒤에 제리케이형이 앨범 괜찮다고 샤라웃을 해줬어요. 그 이후에 제 라이브 영상을 보고 같이 하자고 직접 제의를 해왔죠.


리: 영입 과정이 어땠어요?


던: 처음에는 트위터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게 됐어요. 제가 올린 컨텐츠들을 몇 개 보고 형이 만나서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했죠. 그때 영입 제안을 받았는데, 바로 승낙하면 좀 그래서 생각해본다고 한 다음, 그날 저녁에 바로 하겠다고 연락했죠. (웃음)


리: 씬에 굵직한 레이블이 몇 있는데, 느낌이 각각 달라요. 하이라이트는 기 센 랩퍼들의 모임, 비스메이저는 상남자들의 술자리 같고 (웃음) 반면에 데이즈얼라이브는 좀 가족적인 분위기인 것 같아요. 실제로 어때요?


던: 실제로 그래요. 가족 같아요. 일단 제리케이형이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많이 쓰기는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까지 날이 서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도 다들 성격 자체가 순하고 모난 데 없고. 진짜 평화로운 집단이에요.


리: 같은 레이블의 슬릭(Sleeq) 씨가 누나죠?


던: 네, 친동생 같대요. 밥 많이 사줘야 할… (웃음)


리: 음악적으로 피드백도 자주 주고받나요?


던: 네, 제 랩을 되게 좋아해요. 이번 앨범 듣고 나서 자기 랩 접어야겠다고 하고. (웃음) 사실 기분 좋죠. 음악 잘하는 사람이 좋게 평가해주니까 기뻤어요. 평소에 누나 작업실 가서 준비하는 곡들 들어보기도 하고. 서로 피드백을 자주 주고 받아요.


리: 던말릭 씨는 자기 스타일과 철칙이 확고하다고 느껴지는데, 최근 랩 실력에 대한 평가가 굉장히 모호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 힙합 초창기에 별다른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을 때는 소모적인 논쟁도 많았는데, 최근에는 실력보다 랩퍼들이 미는 컨셉트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본인의 랩 실력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다는 느낌도 받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던: 아, 그런데 저는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면 그것도 시대의 흐름이니까. 그냥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될 것 같아요. 만약에 저평가된다고 해도 큰 상관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는데요 뭐.


리: 한국 힙합에서 가장 아쉽고 힘든 부분 중 하나가 아티스트들의 경력 관리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발라드 랩을 하는 뮤지션이 장르 팬들의 비판을 받고 그들을 헤이터(hater)로 규정짓는다거나, 아이돌 하다가 갑자기 이른바 ‘빡센 랩’을 하고. 기본적으로 아티스트로서 신념을 유지하기가 힘든 환경이기도 하고요. 결국, 돈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던말릭 씨는 어때요?


던: 프로 뮤지션인 이상 돈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죠. 저는 일단 ‘돈을 벌기 위한 음악’을 만들기 보다는 ‘내가 만든 음악으로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프로모션이나 마케팅 쪽으로요.


리: 그럼 ‘돈을 벌기 위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에 대해선 별로라고 생각해요?


던: 별로이긴 한데, 사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죠.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음악으로 먹고 살려고 타협을 한 거죠. 저는 아직 어린 편이기 때문에 생계에 대한 걱정은 좀 덜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제가 나이가 많다면 현실의 벽이 더 크게 다가왔을 것 같기도 해요. 사실 얼마 전에 한 번 방송사에서 섭외 제의를 받은 적이 있어요. 되게 꿀 같더라고요. (웃음) 방송에 나갔던 랩퍼들이 인지도도 높이고, 성공하는 걸 보니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고. 그런데 고민을 계속한 끝에 결국 그건 제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제 최종 목표는 현실과 타협을 하지 않는, 그런 신념을 지키는 음악을 내면서 내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수준에 이르는 거예요.


리: [탯줄]은 데이즈얼라이브에 들어가기 전부터 프로젝트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걸로 아는데, 마일드 비츠 씨와는 어떻게 연이 닿은 거예요? 두 사람이 나이 차이도 되게 많이 나는데. (웃음)


던: 마일드 비츠형이 페이스북에 젊은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하고 싶다고 올린 글을 보고 메일을 보냈어요. 사실 그때 제가 군대 때문에 상당히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믹스테입을 내고 나서 바로 군대에 가려고 했는데, 제가 빠른 년 생이라 신검을 못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것 때문에 되게 애매해진 상황이었는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형한테 메일을 보냈어요. 근데 형은 이미 제 믹스테입을 들어봤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한 번 만나자고 해서 그 때부터 작업이 착착 진행됐어요.


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고 했는데. 굉장히 간절했나 봐요?


던: 그렇죠. 마일드비츠형은 ‘장인’이잖아요. (웃음) 큰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도움도 굉장히 많이 됐고, 배운 것도 많고.


리: 작업 관련 의사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던: 카페에서 만나서 이야기하기도 했고요. 형이 ‘내가 오늘 비트 보내줄게’ 하면 비트 받아서 가사를 쓰고. 그거에 대해서 또 만나서 상의하고. 이런 식의 반복이었어요. 그렇게 가사를 완성하고 스튜디오에 가서 작업을 한 거죠.


리: 그럼 본격적으로 비트를 고르는 경험을 처음 한 거네요. 이견이나 갈등은 없었어요?


던: 갈등까지는 없었고요. 제가 비트를 좀 까다롭게 골랐어요. 형이 총 80개에서 100개 정도의 비트를 보내줬는데, 그중에서 제가 하고 싶은 비트만 골랐거든요. 형한테는 되게 죄송하죠. 제가 만약 비트메이커이고, 저보다 스무 살 어린 랩퍼랑 작업을 한다고 하면 그냥 ‘이걸로 해!’라고 했을텐데 (웃음) 정말 감사해요.


리: 와, 비트 100개라니… 던말릭 씨를 랩퍼로서 상당히 존중했던 것 같네요. 예전에 마일드 비츠 씨와도 인터뷰를 했었는데, 협업하는 랩퍼와 가사 컨셉트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인 것 같더군요. 이번에도 그랬나요?


던: 네, 비트에 어울리는 가사 컨셉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 형이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골라준 비트도 있었어요. 그게 “Old School”이랑 “Street”이고. 나머지 구체적인 주제를 포함한 가사 전반에 대한 관리 감독은 제가 거의 했죠.


리: 이번 앨범 제목이 [탯줄]이잖아요. 초심을 넘어서 완전히 뿌리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던: 네 맞아요. 공동 작업한 마일드 비츠 형은 저보다 한 세대 위에 있잖아요. 그런 아티스트와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 세대의 음악이 저에게 계승되고 있다는 느낌을 줬어요. 물론, 형은 더 이전의 음악을 듣고 영향을 받았겠고, 그게 이어지고 이어져서 저한테 온 거죠. 그런 고리들이 뿌리가 되고, 모태가 되어 제가 태어났다고 생각해서 ‘탯줄’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리: 본인의 뿌리를 '90년대 힙합에 두는 건가요? 그런데 저는 '90년대의 한국 힙합은 거의 없다고 보거든요. 그럼 한국 힙합보다는 외국 쪽으로?


던: 굳이 한국, 외국 구분하고 싶지는 않지만, '90년대 황금기라고 불렸던 미국 힙합이 제대로 된 힙합이고, 가장 멋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저도 하고 싶었고요.




리: 예전에 프로듀서 키마(Kima) 씨와 작업한 “The Way I Am”에서는 라킴을 오마주했고, 이번 앨범의 “Old School”에서는 다스 이펙스(Das EFX)의 "Real Hip Hop"을 오마주했잖아요. 이런 장치를 숨겨 놓는 걸 즐기는 편인 것 같아요.


던: 뭔가를 오마주해서 작품에 담는 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물론, 너무 많이 하면 날로 먹는 거니까 이제는 좀 줄이려고 하고 있어요. (웃음)


리: “About Muse”를 넘어서 “Street”으로 가면서 본인을 확 드러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두 곡에 대한 이야기 좀 부탁해요.


던: “About Muse”는 제목 그대로 제 창의성의 뮤즈가 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썼고, 또 제가 누군가의 뮤즈가 되고 싶다는 열망도 담았어요. “Street”은 제가 좋아하는 힙합 문화에 대해서 표현해본 거고요.


리: 그 다음에 “Interlude”가 삽입되었죠? 의도가 있는 듯한데….


던: “90’s Freestyle”하고 “Old school”에서 바운스를 타고, “About Muse”에서는 경쾌하게, 그리고 “Street”은 좀 더 강력한 느낌이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바로 “첫울음”으로 넘어가면 너무 분위기가 동떨어질 것 같았어요. 좀 중화된 느낌을 주고 싶어서 넣은 거에요.


리: 앨범에 디제이 켄드릭스 씨가 유일한 피처링인데, 랩 피처링을 배제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던: 아무래도 랩은 저 혼자 해보고 싶었어요. 누군가를 찾아서 작업을 부탁하려고 해도 앨범의 컨셉트나 아티스트로서 방향성이 맞는 사람이 잘 없더라고요. 아무리 실력 좋은 랩퍼라고 해도 서로 전체적인 방향이 맞아야 앨범의 완성도가 더 탄탄해질 수 있잖아요. 예를 들면 저는 제이 지(Jay Z)가 제 곡에 피처링을 해준다고 해도 앨범과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면 쓰지 않을 것 같아요. (전원 웃음) 그래서 이번 앨범에 랩 피처링이 안 들어간 거에요. 국내에서는 저와 비슷한 지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실력도 있는 랩퍼를 찾기 힘들어서.


리: 녹음하면서 에피소드는 없었어요?


던: 음, “Old School”을 편곡할 때 자꾸 문제가 생겨서 그걸 미처 체크를 하지 못하고 믹싱에 들어갔었어요. 그런데 막상 믹싱을 하고 보니 별로 신경 안 써도 될 수준이어서 다행이었죠. “About Muse”는 처음 녹음했을 때 톤이 너무 안 맞아서 다시 녹음을 한 일화도 있고요. 제일 걱정했던 트랙은 “Street”이었는데, 1절과 2절 사이에 스크래치가 들어가지 않았을 땐 너무 심심한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켄드릭스 형이 딱 알맞은 퍼즐 같은 스크래치를 넣어줘서 기뻤어요. 그리고 이 트랙을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많고요.


리: 솔로 정규 앨범도 계획에 있다고 들었어요. 아직 구상 단계인가요?


던: 네, 지금 시작 단계에요.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생각하고 있어요. 하나의 추상적인 아이디어가 있는데, 거기서 하나씩 실오라기를 풀고 있는 중이에요. 그걸 좀 예쁜 모양으로 풀어내는 게 앨범 작업 과정이죠. 머리 속에 있는 걸 하나 하나 풀어내는 중입니다.


리: 올해 듣기는 어렵겠네요?


던: 열심히 해봐야죠. 아직 8개월이나 남았고요.


리: 혹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좋아해요?


던: 켄드릭은 그냥 나온 앨범들이 다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제 앨범에는 음악적으로 크게 영향을 준 부분은 없어요. 그냥 저는 켄드릭의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어요. 자기의 삶과 사회를 음악에 투영해서 표현하는 그런 모습. 거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게 진짜 힙합 같아요.


리: 본인도 그런 걸 추구하고 있는지?


던: 제가 살면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들려줌으로써 사람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형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상황이 조금 다른 게, 미국에는 아직도 흑인에 대한 차별이 있고, 켄드릭은 그걸 건드림으로써 젊은 세대들의 연대를 이끌어내고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너무 개인적인 삶이 지속되고 있고, 그래서 젊은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통적인 키워드가 잘 없는 것 같아서 아쉽긴 해요. 다음 앨범엔 그 키워드를 찾아서 넣고 싶어요.


리: 궁금해지네요. 젊은 세대의 공감을 사면서도 예술적인 수준을 일정 정도로 끌어올리는 게 한국에선 조금 어려운 것 같거든요. 힙합 씬을 넘어서 전체 사회를 아우르는 키워드를 찾고 있다는 거죠?


던: 그렇죠. 제가 힙합 안에서만 사는 건 아니잖아요. 힙합 말고도 제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본 건데, 협소한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이벤트’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위대한 사람들은 ‘아이디어’에 대해서 생각을 한대요. 제 생각에 아이디어라는 건 어떤 지식보다는 ‘지혜’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도 사람이나 이벤트보다는 아이디어를 담는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리: 멋지네요. 요즘 음악 외에 또 관심 가지는 분야가 있나요?


던: 음, 책 읽는 거 굉장히 좋아해요. 초능력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어요. 시간을 멈추는 초능력이 생겨서, 세상에 있는 책을 시간 제한 없이 다 읽고 싶어요. 가득 쌓은 지식을 가사에 쭉 짜내는 거죠. (웃음) 또 옷 입는 것도 항상 관심이 많고. 힙합에서 비쥬얼적인 측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랩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슬리퍼나 늘어진 티 입고 나오면 아무도 안 봐주거든요 솔직히. 그래서 옷에도 애정이 많아요.


리: 책을 많이 보는군요. 예전에 에미넴이 어떤 인터뷰에서 말한 건데, 영어 사전을 계속 읽는다고 그러더라고요. 단어를 살피면서. 갑자기 생각이 났네요. 그럼 최근에 읽은 책은 뭐에요?


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든가, 주로 고전 중심으로 읽으려고 노력해요. 아, 기형도 시집도 읽었어요. 기형도 시인의 시는 그냥 힙합이에요. (웃음) 제 여자친구가 국문과 다니는데, 저한테 해 준 말이 시는 몇 개 안 되는 함축적인 단어로 표현되기 때문에, 나머지 빈 공간은 읽는 사람이 전부 상상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시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머릿속에 엄청난 상상의 세계를 펼치게 해주죠. 그래서 시를 많이 읽고 있어요. 읽은 걸 또 읽기도 하고.


리: 요즘은 앨범 내고 공연하느라 바쁘겠네요. 앞으로 계획은 뭐예요?


던: 저는 먼 미래를 내다 볼 요령이 아직 부족해서요. 일단은 눈 앞에 있는 것부터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멀리만 보고 가다가 눈 앞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안되잖아요.


리: 혹시 롤모델이 있어요?


던: 큐팁(Q-Tip)하고 나스(Nas), 그 정도요.


리: 한국에서는요?


던: 한국에서는 JJK형이요. 혼자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잖아요. 앞에서 말한 사람들은 그냥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거지만, JJK형은 힙합을 문화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에 대해서 진심으로 응원하고 존경해요.


리: 던말릭 씨처럼 신인 중에 같이 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요?


던: 신인은 아닌데, 항상 존경하는 제이문(Jay Moon). 제이문은 존나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곧 나올 앨범에 들어갈 몇 곡을 들어봤는데 진짜 좋아요. 다들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라이브도 잘하고. 꼭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친구에요.


리: 키마 씨와 함께 한 “Thank You”라는 곡에서 제이문 씨의 랩은 저도 정말 좋게 들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탯줄]이 세상에 나왔잖아요.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청자들이 어떻게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던: 일단은 [탯줄]이라는 제목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들어줬으면 해요. 던말릭이라는 랩퍼가 이런 제목을 왜 지었고, 앨범 커버를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를 한 번쯤 생각했음 하고요. 또 가사를 유심히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제 모든 가사는 내러티브가 있고, 그 속에서 논리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거든요. 탯줄이라는 큰 주제와 연관을 해서 가사 하나하나를 유심히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글: 남성훈, 하태욱, 신연수 ※사진 제공: 스톤쉽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리드머 모든 리드머 콘텐츠는 사전동의 없이 영리적으로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11 코멘트 등록 rhythmer rhythmer (2015-05-06 16:23:22 / 218.101.181.**)추천 0 | 비추 0 임가람 / 피드백 감사합니다. :) 임가람 임가람 (2015-05-05 12:01:54 / 175.197.32.***)추천 1 | 비추 0 좋은 인터뷰 잘 봤습니다. 인터뷰 내용 중에 '명목을 이어간다.' 라는 말이 두번 정도 나오는데, '명맥을 이어가다.'가 옳은 표현 아닌가 싶습니다.

via 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6172&m=view&s=interview&c=24&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