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Frank Ocean - channel ORANGE
황두하 작성 | 2022-02-15 13:33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23 | 스크랩스크랩 | 14,389 View
Artist: Frank Ocean
Album: channel ORANGE
Released: 2012-07-10
Rating: RRRRR
Reviewer: 황두하
2010년대 초반, 알앤비(R&B)는 그 어느 때보다 큰 변화를 겪었다. 피비알앤비(PBR&B)를 위시한 ‘얼터너티브’ 바람이 분 것이다. 일렉트로닉, 알앤비, 록, 힙합 등의 장르가 변칙적으로 뒤섞인 피비알앤비는 디지털 가공을 거친 빈티지한 드럼 소스, 신시사이저의 과용으로 만들어낸 몽환적인 무드와 멜로디 라인, 엠비언트 음악처럼 잔향을 은은하게 퍼트려 공간감을 형성하는 믹싱 기법 등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가사적으로는 우울증과 쾌락에 집착하는 청춘의 단상을 그려낸다.
보컬이 추구하는 방향도 달랐다. 전통적인 방식의 알앤비 보컬은 뛰어난 가창력과 화려한 기교를 바탕으로 했다. 반면, 새 시대의 아티스트들은 기교보다는 그루브를 강조하고 조금 더 팝에 가까워진 담백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후 피비알앤비를 포함한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표방한 신예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해 씬의 중심이 되면서 한때의 유행이 아닌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알앤비라는 장르의 개념 자체가 달라진 순간이었다.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건 프랭크 오션(Frank Ocean), 위켄드(The Weeknd) 그리고 미구엘(Miguel)이다. 이들은 2010년대 초반, 각자 굵직한 데뷔작을 발표했다. 미구엘은 2010년 [All I Want Is You]를 통해 일렉트로닉, 록, 알앤비를 섞어낸 관능적이고 매력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위켄드는 2011년 석 장의 믹스테입(Mixtape)을 연속으로 발표하며 파격적인 스타일을 정립했다.
프랭크 오션 역시 같은 해 피비알앤비의 정수를 담은 데뷔 믹스테입 [Nostalgia, Ultra]를 발표했다. 그는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가 이끄는 크루 오드 퓨쳐(Odd Future)의 멤버이기도 했다. 오드 퓨처와 오션은 기존의 질서를 벗어난 음악과 행보로 대중음악계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새로운 것에 목말랐던 많은 이가 열광했다.
2012년, 오션은 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첫 정규 앨범 [channel ORANGE]를 발표한다. 그리고 앨범을 발표하기 직전, 개인사를 하나 공개했다. 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것이다. 그는 장문의 공개편지로 과거 한 남성에게 끌렸던 사연을 고백했다. 이후 비욘세(Beyoncé)와 제이지(Jay-Z) 부부를 비롯한 많은 셀러브리티가 그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금은 커밍아웃한 블랙 뮤직 아티스트가 꽤 늘어났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그 수가 많지 않았고, 대부분 언더그라운드나 로컬 씬을 기반으로 활동해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씬 내의 남성중심적인 분위기도 지금보다 팽배했다. 그래서 프랭크의 커밍아웃과 그에 대한 반응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새 시대로 진입하는 변화의 신호탄과도 같았다.
[channel ORANGE]는 이러한 맥락을 알고 들었을 때 감흥이 배가 된다. 인트로 “Start”를 지나면,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슬픔을 노래하는 “Thinkin Bout You”가 이어진다. 그는 커밍아웃 하기 전에 이 곡을 싱글로 발표했다. 본래 평범한 짝사랑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트랙에 사적인 맥락이 덧씌워지면서 전혀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지만, 다시는 함께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디지털 가공한 드럼 소스와 부유하는 듯한 신시사이저로 공간감을 자아내는 프로덕션, 그리고 나른한 톤으로 리듬을 밀고 당기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팔세토 창법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퍼포먼스도 매우 인상적이다. 시작과 함께 유려하게 진행되는 멜로디 역시 탁월한다. 그야말로 프랭크 오션과 얼터너티브 알앤비라는 장르를 가장 잘 설명하는 대표곡이 되었다.
“Thinkin Bout You”의 정서는 앨범 전체를 관통한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망과 좌절은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Sweet Life”, “Super Rich Kid”, “Lost”), 여성들과의 섹스와 마약으로 점철된 방황에 빠지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Pilot Jones”, “Crack Rock”, “Pyramids”, “Monks”). 아울러 “Pyramids”에서는 여왕으로 칭송받았던 고대 이집트 시대와 남성 권력에 의해 학대당하는 현대 미국 흑인 여성들의 지위를 비교하고, 자신 역시 이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을 은근슬쩍 고백한다
후반부부터는 다시 첫사랑의 지독한 아픔을 토로한다. “Bad Religion”에서는 택시 기사에게 고해성사하듯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종교에 대한 회의감을 품고, “Pink Matter”에서는 일련의 경험을 통해 느낀 성적 정체성의 혼란과 우울을 풀어낸다. 그리고 아웃트로인 “End” 이전 마지막 트랙 “Forrest Gump”를 통해 첫사랑을 향한 감정이 계속될 것을 암시한다.
특히 이 곡에서는 앨범을 통틀어 가장 직접적으로 마음을 표현한다(‘If this is love, I know it’s true. I won’t forget you / 이게 사랑이라면, 가장 진실한 마음이야. 난 널 잊지 않아’). 결국, 모든 방황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한 사람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이 드러난다. 분위기의 고저 없이 차분하게 마무리되는 트랙이지만, 그래서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긴다.
내러티브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건 탄탄한 프로덕션이다. 얼터너티브 힙합/알앤비 그룹 사라(Sa-Ra)의 멤버 옴마스 키스(Om’Mas Keith)와 말레이(Malay)는 신시사이저를 적극 활용해 일렉트로닉의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몽환적인 사운드를 완성했다. 여기에 프랭크는 간결하고 또렷한 라인으로 팝적인 터치가 느껴지는 멜로디를 얹었다.
약 10분의 러닝타임 동안 극적인 변주와 악기 구성으로 황홀한 감흥을 안기는 “Pyramids”는 [channel ORANGE]의 음악적 성취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특유의 냉소적인 랩을 선보인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와 화려한 랩 퍼포먼스와 뇌리에 강하게 남는 가사로 곡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안드레 쓰리싸우전드(André 3000)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channel ORANGE]가 세상에 나온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앨범은 같은 해에 발표됐던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good kid, m.A.A.d city]와 함께 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10년대를 기점으로 이루어진 알앤비의 커다란 변화를 촉진시킨 결정적 순간을 연출했다. 또한 오늘날 거대한 흐름이 된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효시이자 표본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처럼 상업적, 비평적 성공으로 프랭크는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올랐고, 많은 후배 아티스트가 그의 스타일을 표방했다.
오션은 2016년에 발매한 비주얼 앨범 [Endless]와 두 번째 정규 앨범 [Blonde] 이후 몇 장의 싱글 발표와 음악 외적인 활동 외에는 두문불출하며 지내고 있다. 여전히 많은 장르 팬이 신보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며 작은 조짐(?)들까지 예의주시한다. 그 누구도 그의 빈자리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channel ORANGE]를 들어본다면,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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