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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B. & Rakim - Let the Rhythm Hit 'Em
양지훈 작성 | 2011-12-09 15:28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2 | 스크랩스크랩 | 24,142 View
Artist: Eric B. & Rakim
Album: Let the Rhythm Hit 'Em
Released: 1990-05-22
Rating: RRRR+
Reviewer: 양지훈
에릭 비 앤 라킴(Eric B. & Rakim)의 '90년 작 [Let the Rhythm Hit 'Em]에 대한 평단의 의견은 분분하다. 미국의 힙합 매거진 소스(The Source)는 5점 만점으로 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98년에는 ‘베스트 랩 앨범 100선’에 이 앨범을 포함시키며 다시 한 번 에릭 비와 라킴의 공로를 재차 인정했다. 반면에, 앨범에 대해 냉소적인 평가를 하는 이들은 '1, 2집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채 지속되는 그들의 스타일에 대중은 서서히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라킴은 랩퍼로서 발휘할 기교에만 관심이 있을 뿐, 사회적 이슈에 대한 메시지는 세 번째 앨범에서도 취약하기 그지없다.'라는 식으로 혹평하곤 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본 작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었다고 결론짓고 싶다. 애초부터 랩 테크니션으로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역량을 십분 발휘하는 데에 모든 힘을 집중하는 것이 라킴의 의도였고, 그런 의도가 밑바탕에 깔린 이상 전작들과 큰 차이점이 있을 리 만무했으니 말이다. 사회, 혹은 정치적 메시지는 동시대의 타 랩퍼들이 끝없이 논하던 소재이니 라킴을 그런 비판에 가둬두고 폄하하는 것은 다소 가혹하다. 에릭 비와 라킴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매우 진지한 자세로 세 번째 앨범의 제작에 임했다. 멀티플 라이밍의 초석을 마련한 데뷔작 [Paid in Full]은 힙합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앨범이었고, [Follow The Leader]가 최고 수준의 랩 테크닉에 풍성해진 사운드가 가미된 수작이었다면, [Let the Rhythm Hit 'Em]은 2집과 비슷한 스타일을 유지하되, 미세한 변화가 곁들여진 앨범이다. 라킴의 목소리는 보다 굵은 톤으로 변모했고, 재즈(비밥)와 소울을 기반으로 하는 비트가 주를 이루었다.
묵직한 비트와 부드러운 비트가 교차하며 지루하지 않는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역시 가장 주목해야 할 요소는 라킴의 랩이다. 목소리의 변화가 있었을 뿐 스타일은 전작의 모습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모양새지만, 그의 랩을 집중해서 들어보면 원어민이 아닌 청자까지도 충분히 캐치할 수 있을만한 라임으로 가득하다. 첫 곡 "Let the Rhythm Hit 'Em"부터 'Reduced the friction with crucifixion / Let loose the mix then'과 같이 짧은 문장 안에 연속적으로 배치시킨 라임이 수시로 등장하곤 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흐름의 어색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딱딱하게 끊어지는 랩 때문에 '조립에 가깝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Mahogany"와 같은 곡은 예외가 되겠지만, 이 또한 다분히 의도적인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앨범을 빛내는 가장 완벽한 곡은 "Run For Cover"이다. 비밥(Be-Bop)을 기반으로 하는 변칙적인 비트와 런-디엠씨(Run-D.M.C.)의 음성을 빌린 턴테이블 리릭, 그리고 적절한 스크래칭과 라킴의 랩이 조화를 이루며 앨범의 중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흠잡을 데가 없는 곡이라 으뜸으로 치켜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곡에서도 라킴은 주로 두 문장으로 라임을 맞추는 부드러운 랩을 들려주며 막강한 실력을 과시한다. 도널드 버드(Donald Byrd)의 "Here Am I"를 샘플링한 것으로 알려진 "Untouchables"는 전작에서 제목부터 내용까지 우월함의 극치를 달리던 "No Competition"의 뒤를 잇는다. 각각의 벌스(verse)가 끝날 때마다 'I'm untouchable'을 읊조리는 출중한 실력의 소유자 라킴을 우월 의식에 빠진 랩퍼라고 비난하기에는 뛰어난 결과물이 정말 많다.
이렇듯 [Let the Rhythm Hit 'Em]은 저평가된 이유가 무색할 정도로 잘 만든 앨범이다. 싱글 컷 된 곡들("Let the Rhythm Hit 'Em", "In the Ghetto", "Mahogany")이 전작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 굳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크게 지적할 만큼의 결점은 아니다. 랩을 하는 선수로서 펼칠 수 있는 기교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한 라킴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나며, 그러한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 어떻게 쉽사리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나스(Nas)를 비롯한 많은 후배 힙합 뮤지션이 본 작을 샘플 소스로 사용해 왔다는 점을 통해서도 앨범의 위상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라킴의 랩과 커리어에 대하여 자세하게 파헤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전작들과 함께 반드시 몰입해서 들어봐야 할 앨범이며, 가지런하게 배치된 라임의 사례를 찾는 이들도 필히 들어봐야 할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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