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Cormega - The Realness
예동현 작성 | 2012-09-27 17:15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4 | 스크랩스크랩 | 21,185 View
Artist: Cormega
Album: The Realness
Released: 2001-07-24
Rating: RRRR+
Reviewer: 예동현
퀸스와 브루클린을 잇는 슈퍼 프로젝트였던 더 펌(The Firm)에서 코메가(Cormega)를 탈퇴시키면서 스티브 스타우트가 밝혔던 이유를 지금 생각해보면, 실소를 머금게 한다. 물론, 불화 때문에, 그가 싫었기에 코메가를 제외했다고 직접 말할 수는 없었겠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평균 이상은 될 수 없는 범용한 MC인 네이쳐(Nature)가 코메가보다 훌륭하기 때문이라는 핑계는 궁색하다 못해 거의 거짓말 수준이었다. 이 불운했던 MC가 숙원의 데뷔작 [The Realness]를 내놓기까지 겪어야 했던 수많은 좌절을 돌이켜보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화까지 있었던 것이다.
많은 청자가 퀸스 힙합을 기억하면서 나스(Nas)와 맙 딥(Mobb Deep)의 걸작을 떠올리는 데 반해 선뜻 코메가의 데뷔 앨범을 떠올리는 이는 많지 않다.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아무래도 당시의 퀸스는 뉴욕 내에서도 주도권을 잃어가는 분위기였고 인디/언더그라운드 씬의 대대적인 공습과 에미넴(Eminem)과 넬리(Nelly), DMX 등이 메인스트림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격동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시 힙합 씬의 청자에게 이 앨범은 탄탄하지만, 너무 조용한 랩 앨범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작의 완성도는 감히 평하건대 2000년대 이후 퀸스 출신 뮤지션이 내놓은 최고의 앨범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하다.
사실 코메가는 독특한 플로우를 빼면 래퍼로서 큰 메리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의 목소리는 스트리트 MC치곤 점잖은 편이고 나름대로 괜찮긴 하지만, 나스나 프로디지(Prodigy)같은 동료와 비교하면, 화려한 라임 메이킹 능력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깊은 감수성을 지닌 그의 작사력과 표현력은 실로 대단해서 가사를 놓친 채로 감상한다면 코메가 앨범의 매력은 반으로 줄어든다. 데뷔 앨범에는 이런 그의 훌륭한 가사와 더불어 그를 더욱 부각시키는 비트들로 가득 채워졌다. 가장 인상적인 인트로 가운데 하나인 "Dramatic Entrance"부터 시작해서 알케미스트(Alcehmist)의 "Fallen Soldiers" 리믹스까지, 화려한 포장은 없지만, 군더더기도 없고 그래서 더욱 빛난다.
프랭크 맥도날드(Frank McDonald)와 크리스 래(Chris Rae)의 “Night Moves"를 샘플링하여 원곡의 아련한 느낌을 힙합 비트 위에 포갠 프로덕션 위로 우정과 배신, 믿음에 관한 얘기를 풀어놓는 “R U My Nigga"와 육중하게 내리깔리는 베이스 라인 위로 건조하게 던져지는 드럼이 먼저 떠나간 친구에 대한 슬픔에 몰입도록 하는 “Fallen Soldiers”는 그야말로 명곡이다. 랩(Rap)을 허슬(Hustle)에 비유하면서 코메가가 포주(Pimp)로 자신의 펜(Pen)을 매춘부(Ho)에 대입해 랩 가사를 쓰고, 랩 하는 상황을 핌핑(Pimping)으로 묘사한 매우 절묘한 가사가 인상적인 “Rap's a Hustle"도 명장 아야톨라(Ayatollah)의 비트가 없었다면, 그 빛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힘겨웠지만, 즐거웠던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Glory Days”와 코메가식 거리의 철학을 대변하는 문구인 ‘Trust is a luxury, I can't afford it’이라는 명구절을 남긴 긴장감 넘치는 하드코어 넘버 “Unforgiven"도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곡이다. 커먼(Common)의 전설적인 명곡 ”I Used To Love H.E.R."의 컨셉트를 빌려 온 “American Beauty"는 세부적인 표현까지 비슷한 부분이 있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곡 자체는 훌륭하다.
위의 트랙들에서 그의 빛나는 감수성을 엿듣게 되지만, 코메가가 언제나 우수에 젖은 나약한 MC는 절대 아니다. 당시의 부진을 의심케 하는 해복(Havoc)의 긴장감 넘치는 비트 위로 프로디지가 목소리를 보태준 “Thun & Kicko”는 특유의 구두 발걸음 소리로 국내 팬들에게도 화제가 됐던 곡이다. 또 다른 퀸스의 전설인 트래지디 카다피(Tragedy Khadafi)가 참여한 “They Forced My Hand"와 지금은 유명해진 샤 머니 XL(Sha Money XL)이 프로듀스한 화끈한 자기과시 넘버인 “Get Out My Way"는 최고로 꼽지는 못할지언정 코메가의 준수한 라이밍과 거리에 대한 멋들어진 묘사에 감탄하게 된다.
본작 [The Realness]는 그의 커리어에서 최고의 앨범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물론, 2집 [The True Meaning]의 가사는 본작보다 더욱 성숙한 면모를 과시하지만, 다소 아쉬운 비트 셀렉션은 데뷔작에 비할 것이 못 된다. 사실상의 데뷔 앨범이지만, 미발표 앨범으로 남아 후에 발매된 [The Testament]가 그나마 본작과 그 우위를 다툴만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을까. 그는 다수의 훌륭한 리릭시스트들처럼 의미 있는 가사와 그것의 바탕이 되는 감정을 지니고 있다. 투팍(2Pac)의 가사의 원천이 분노였다면, 코메가의 가사를 지배하는 감정은 아마도 고독일 것이다. 그의 가사는 눈부시게 화려하지도 않고 청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할 만큼 자극적이지도 않다. 열 번 스무 번 곰곰이 되씹으면서 그 표현과 감성을 음미하기에 걸맞다. 그리고 만약 그런 시도를 통해 이 앨범을 감상했다면, 그 청자는 아마도 코메가에 대해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의 팬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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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etype
Archetype (2012-09-28 23:44:34 / 112.170.109.**)추천 0 | 비추 0
좋은 앨범이죠ㅎㅎ
양지훈
양지훈 (2012-09-28 08:50:09 / 1.241.191.***)추천 0 | 비추 0
The Saga, They Forced My Hand 등은 아직도 즐겨 듣고 있는 명곡.
[물 흐르듯 BOSS (토론)를 한다]는 표현을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데, 이 양반 랩의 플로우가 그 표현에 안성맞춤이다 싶습니다. Messlit Messlit (2012-09-28 00:27:41 / 175.223.3.***)추천 1 | 비추 0 The firm을 코메가가 했다면.... 훨씬 좋은 앨범이됬을텐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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