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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ous - Judas and the Black Messiah: The Inspired Album
강일권 작성 | 2021-03-24 17:32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8 | 스크랩스크랩 | 6,617 View
Artist: Various Artist
Album: Judas and the Black Messiah: The Inspired Album
Released: 2021-02-12
Rating: RRR+
Reviewer: 강일권
2020년 10월에 공개된 아론 소킨 감독의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The Trial of the Chicago 7]은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의 주동자 7명이 기소되었던 악명 높은 재판을 다룬다. 7인 중 한 명은 급진적인 흑인민권운동단체 블랙 팬서(Black Panther)의 수장 바비 실(Bobby Seale)이다. 그리고 영화엔 또 한 명의 중요한 블랙 팬서 일원이 등장한다. 블랙 팬서의 일리노이 주 지부장으로서 조직의 성장을 이끈 인물 프레드 햄튼(Fred Hampton)이다. 그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외부에서 바비 실을 조력하다가 공권력으로부터 살해당했다.
지난 2월 12일, HBO 맥스에서는 이 프레드 햄튼을 다룬 영화 [유다스 앤 더 블랙 메시아, Judas and the Black Messiah]가 공개되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해당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컴필레이션 앨범 [Judas and the Black Messiah: The Inspired Album]이 발표됐다. 영화에서 다룬 인물과 소재의 무게감만큼이나 참여 진 역시 상당한 중량감이 느껴진다.
나스(Nas), 제이지(Jay-Z), 라킴(Rakim) 등등, 묵직한 이름의 베테랑 래퍼들과 에이샙 라키(A$AP Rocky), 폴로 쥐(Polo G), 릴 더크(Lil Durk), 랩소디(Rapsody), 마세고(Masego), 허(H.E.R) 등등, 오늘날의 힙합, 알앤비 스타가 대거 참여했다. 프로듀서 진 역시 30명에 달할 만큼 다양하며, 총괄 프로듀싱은 히트보이(Hit-Boy)가 맡았다.
앨범은 프레드 햄튼의 유일한 자식이자 사회운동가인 프레드 햄튼 주니어(Fred Hampton Jr.)의 스포큰워드로 시작한다(“Cointelpro/Dec 4"). 제목 ‘코인텔프로’는 과거 FBI가 미국 내부의 저항 정치 조직을 조사하여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설립한 프로그램 ‘카운터 인텔리전스 프로그램(Counter Intelligence Program)’의 약칭이다. 당시 FBI는 거짓 정보까지 퍼트리면서 반대자들을 색출하고 처단했다. 프레드 햄튼도 코인텔프로의 희생자였다.
이후 이어지는 곡에서 아티스트들은 블랙 팬서와 프레드 햄튼의 업적을 기리고, 햄튼을 추모하는 한편, 오늘날까지도 진행 중인 인종차별과 미국 사회의 치부를 날 선 언어로 비판한다. 현 시대 가장 컨셔스한 알앤비 아티스트 허(H.E.R.)는 마빈 게이(Marvin Gaye)를 향한 오마주가 담긴 듯한 디마일(D'Mile)의 음악 안에서 나긋나긋하지만, 호소력을 갖춘 보컬로 햄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평소 사회 문제를 주제 삼아온 시카고의 신진 랩스타들, 쥐 허보(G Herbo)와 폴로 쥐는 각각 "All Black"과 "Last Man Standing"에서 고향에서 벌어지는 경찰 폭력, 인종차별, 빈곤화의 문제를 역설한다.
떠오르는 신예 나르도 윅(Nardo Wick)의 "I Declare War"는 확고하게 반자본주의를 지향했던 프레드 햄튼의 가치관과 가장 맞닿아있는 곡이다. 햄튼은 노동계급의 결집을 위해서라면, 흑인 자본가를 조지는 것도 거리낌 없었던 인물이다. 나르도 윅의 호전적인 가사가 이 같은 햄튼의 태도를 드러내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What It Feels Like”에서는 고 닙시 허슬(Nipsey Hussle)의 랩을 들을 수 있어 반가운 한편으로 제이지(Jay-Z)의 파트가 귀를 잡아 끈다. 소울풀하며 진취적인 비트는 2000년대 초반 락커펠라(Roc-A-Fella)의 전성기를 연상케 하며, 텅트위스팅을 곁들인 래핑은 [Reasonable Doubt](1996) 때의 제이지를 소환한다.
특히, 가사가 흥미롭다. 제이지는 지난 2011년, [Watch The Throne]에 수록된 "Murder to Excellence"에서 'I arrived on the day Fred Hampton died'라는 라인을 썼다. 그런데 프레드 햄튼 주니어가 'died(죽었다)'란 표현을 강하게 비판했다. 암살당한 것을 단순한 죽음으로 묘사했다는 게 이유였다. 제이지는 이번에 해당 라인을 인용하면서 햄튼의 죽음은 암살이란 점을 확실히 한다('I arrived on the day Fred Hampton got mur—, hol' up Assassinated, just to clarify further).
펑크(Funk), 힙합, 소울, 트렌드와는 차별화된 싱잉랩이 조화로운 스미노(Smino)와 사바(Saba)의 "Plead the .45th", 당장이라도 바람이 불면 꺼질 것 같지만, 기어코 불꽃을 유지하는 촛불 같은 마세고의 중독적인 보컬,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이 감내해온 부당한 제도에 대한 혼란과 분노를 형상화한 제이아이디와 랩소디의 랩이 만난 "Somethin Ain’t Right", 프레드 햄튼의 명언 중 하나인 '혁명가를 감옥에 넣을 순 있지만, 혁명을 가둘 순 없어!, You can jail a revolutionary, but you can’t jail a revolution!'를 재치 있게 인용한 '흑표범을 죽일 순 있지만, 팬서는 여전히 존재해, You can kill a Black Panther, but the Panther still exists'란 라인으로 끝맺는 마지막 곡 라킴의 "Black Messiah" 등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몇몇 곡들이 앨범의 주제와 어긋나거나 접점이 희미한 건 매우 아쉽다. 일례로 나스(Nas)의 "EPMD"는 여전히 빛나는 리리시스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으며, 확실한 뱅어지만, 작품 내에서의 연결성을 찾기 어렵고, 에이샙 라키의 "Rich Nigga Problems"와 릴 더크의 "On Your Mind" 등도 결국 브래거도치오(braggadocio)로 귀결되는 구조여서 몰입을 방해한다.
비제이 더 시카고 키드의 "Letter 2 U"도 맥락을 끊는다.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따지자면, 사랑 테마로서의 역할인 듯하나 이번 컴필레이션 앨범의 성격과는 맞지 않게 느껴진다. 루츠의 핵심, 블랙 쏘웃(Black Thought)이 부른 "Welcome to America"는 주제와 랩 퍼포먼스 전부 인상적이지만, 마칭 드럼과 가스펠풍의 코러스에 기반을 둔 프로덕션이 너무 관습적이어서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는다.
[Judas and the Black Messiah: The Inspired Album]은 블랙 팬서와 프레드 햄튼이란 주체가 구심점을 이룬 덕에 힙합, 알앤비 아티스트를 대거 참여시킨 여느 엔터테인먼트성 컴필레이션 앨범, 혹은 사운드트랙보다 일관된 정서와 구성이 돋보인다. 이는 확실히 감흥을 배가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앞서 언급한 단점 또한 부각한다. 좀 더 응집력이 높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을 내어 들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근래 이처럼 무게 있는 컨셉트와 괜찮은 완성도를 지닌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을 접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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