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이진석 작성 | 2019-05-30 18:25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4 | 스크랩스크랩 | 18,157 View
Artist: Schoolboy Q
Album: CrasH Talk
Released: 2019-04-26
Rating: RRRR
Reviewer: 이진석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지는 게토(Ghetto)의 풍경, 랩스타로서의 성공, 마약과 총, 섹스, 이 모든 와중에 지켜내야 할 가족을 향한 사랑. 스쿨보이 큐(Schoolboy Q)의 음악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요소들이다. 그동안 사운드의 변화는 있었을지언정 큐의 음악은 철저히 갱스터리즘(Gangsterism)을 내세우는 데 주력했고, 이는 랩스타로 발돋움한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지금까지 약 2년을 주기로 정규 단위의 앨범을 발매한 스쿨보이 큐는 사실 이번에도 2018년에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맥 밀러(Mac Miller)의 죽음이 계획을 미루는 계기가 됐다. 절친한 친구를 잃은 실의에 빠진 그는 자신이 앨범을 내고 활동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고 밝혔고, 6개월이 지나서야 앨범에 수록된 싱글 “Numb Numb Juice”를 발표하며, 새 정규작을 예고했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CrasH Talk]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본작에서 큐는 일정한 서사적 흐름을 따라가기보단, 앞서 언급한 요소들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흩뿌려놓는다. “Tales”에선 세밀한 묘사로 실제 후드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선사하는 한편, “Numb Numb Juice”나 “5200”에선 여전한 호전성과 과시욕을 내보인다. 그러면서도 불안한 속내를 드러내며 감정선을 끌어올리기도 하며(“Dangerous”), 비장한 각오와 함께 딸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CrasH”).
이후, 마지막 트랙 “Attention”을 통해 갱단의 멤버에서 여러 전설이 인정하는 슈퍼스타가 된 현재를 자축하고, 투팍(2Pac), 스눕 독(Snoop Dogg), 커럽(Kurupt), 대즈 딜린저(Daz Dillinger)의 명맥을 이은 갱스터 랩의 적자임을 선언한다. 언뜻 중구난방처럼 느껴지지만, 그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만들어진 내러티브 덕에 모든 트랙이 자연스레 스쿨보이 큐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입체감 있게 쌓아 올린 캐릭터가 빛을 발한 순간이다.
전부터 좋은 조합을 선보인 네즈 앤 리오(Nez & Rio)를 비롯해 디제이 다히(DJ Dahi), 보이-원다(Boi-1da) 등이 제공한 프로덕션은 대체로 미니멀하고 먹먹한 트랩 비트를 위주로 진행된다. 이번에도 큐의 쫄깃쫄깃한 랩과 잘 어우러진다. 단, 중간중간 전환점을 마련하여 단선적인 진행을 피한 흔적이 엿보인다. 부드러운 선율의 피아노를 배경에 깔아 멜랑콜리한 무드를 자아내는 “Drunk”나 뒤이어 다소 뜬금없게 청량한 분위기로 선회하는 “Lies”는 대표적이다.
그의 불안한 심경을 대변하듯 불안정하게 떨리는 메인 소스를 앞세워 다이내믹한 감정선을 만들어내는 “Dangerous”도 특기할만하다. 로이스 다 파이브나인(Royce Da 5’9”)과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의 걸작 붐뱁 넘버 “Boom”을 레이드백(Laid-Back)하게 재구성한 “CrasH” 역시 인상적이다.
한편, 전작보다 게스트와의 조합이 주는 감흥은 다소 떨어진다. 타이 달라 사인(Ty Dolla $ign), 와이쥐(YG), 트웬티원 세비지(21 Savage), 키드 커디(Kid Cudi) 등등, 쟁쟁한 이들이 목소리를 더했으나, “Drunk”에서 부드럽고 나긋한 보컬로 존재감을 뽐낸 블랙(6lack)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특히, “CHopstix”에 참여한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은 특유의 개성을 살리지 못한 안일한 후렴구로 아쉬움을 더한다.
사실, 여러 면에서 [CrasH Talk]는 전작 [Blank Face LP]의 하위 버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스쿨보이 큐가 그려내는 갱스터 판타지가 주는 쾌감이 퇴색된 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서부 힙합의 계승자 중 하나이며, 앨범을 통해 이를 꾸준히 증명하는 중이다. 큐의 음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체성 하나만큼은 바뀌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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