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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k Paige II - If I Fail Are We Still Cool?
장준영 작성 | 2021-06-29 18:24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5 | 스크랩스크랩 | 5,209 View
Artist: Patrick Paige II
Album: If I Fail Are We Still Cool?
Released: 2021-05-21
Rating: RRR+
Reviewer: 장준영
어느 곳에서든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티스트가 있는가 하면, 팀보다 솔로일 때 더욱 빛나는 경우도 있다. 패트릭 페이지 2세(Patrick Paige II)는 후자에 속한다. 디 인터넷(The Internet) 초기부터 투어 멤버로 활약했던 그는 2013년에 정식 멤버로 합류해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다. 시드(Syd), 맷 마션스(Matt Martians),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가 프로덕션과 퍼포먼스를 모두 소화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패트릭은 연주에 집중했다. 그렇다 보니 밴드의 성공에도 별다른 유명세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첫 솔로 앨범 [Letters of Irrelevance]는 인상적이었다. 밴드 내 활동과 다른 모습이 신선했다. 베이스는 물론이고 랩과 보컬까지 들려주었다. 힙합, 재즈, 알앤비를 어우른 프로덕션에 개인적인 일화와 감정을 담은 가사도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3년 만에 내놓은 [If I Fail Are We Still Cool?]에서는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전작에서 여러 감정을 단편적으로 나열한 정도였다면, 이번엔 비행이란 컨셉으로 통일감 있게 이야기를 엮는다. 기내 방송으로 시작되는 여정은 착륙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중간마다 삽입한 비행 관련 내레이션과 사운드로 컨셉에 몰입하도록 일깨운다.
여행이 진행되는 동안 비행기 내부는 아이러니한 공간이 된다. 수많은 사람이 같은 목적지를 위해 탑승했으나, 대부분은 혼자서 시간을 감내한다. 패트릭은 그 안에서 다양한 생각을 곱씹는다. 새로운 행동 또는 목표를 다짐하며(“New Habits”), 감사와 노력을 느끼고(“Good Grace”), 삶과 행동을 돌아보는가 하면(“Who Am I”), 스스로를 다그친다(“Curfew”). “Feeling Myself”처럼 능력을 과시하거나 자부심을 강조하는 곡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고뇌가 이어진다.
인터뷰에서 실제 런던행 비행기를 탑승한 날에 작업했다고 밝힌 “40000 Feet”은 컨셉과 핵심 정서를 모두 아우른다. 자신감을 내세우면서도, ‘I’m at 40,000 feet, still no sleep till London, 4만 피트 상공에 있는데, 런던에 도착할 때까지 잠도 못 자고 있어.‘라고 되뇌며 은연하게 불안과 우울을 나타낸다. “So They Say”도 흥미롭다.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엔 이유가 있다’라는 말에서 출발한 의문을 뱉는다. 풍족한 삶에서 느끼는 감사와 그에 따른 책임을 곱씹는다. 러닝타임 내내 일관되게 등장하는 성찰적인 자세가 진솔한 표현과 맞닿으며 매력적으로 들린다.
프로덕션은 붐뱁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스타일로 완성도를 높였다. 그중에서도 브라스 소스와 건반을 활용하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40000 Feet”, 프로듀서 애쉬튼 맥크리트(Ashton McCreight)의 주도 아래 비트의 타격감과 신스 사운드를 극대화한 “Westside Player Shit”이 대표적이다.
퍼포먼스도 주목할 만하다. 랩과 보컬에 능한 특징을 살려서 다채롭게 트랙을 꾸린다. 근사한 알앤비 보컬과 타이트한 랩을 동시에 들려주는 “Sun Up”이나 자유자재로 랩과 보컬의 경계를 넘나드는 “Accountable”은 훌륭하다. 웨스트사이드 맥플라이(Westside Mcfly)와 함께한 뱅어 트랙 “Big Plays”와 리듬감이 뛰어난 “Runway”처럼 래퍼로서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트랙도 있다.
사바(Saba)를 끌어들인 “Freestyle”도 돋보인다. 제목처럼 프리스타일로 녹음하며 실력을 과시한 점이 발군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벌스를 쏟아내면서 소재에 어울리는 가사로 곡을 이어가는 부분도 즐겁다.
다만 준수한 완성도와 별개로 몇몇 지점에서 개성이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일례로 싱잉 랩을 시도한 “Curfew”는 톤과 플로우에서 고유한 특징을 찾기 힘들다. 평이한 퍼포먼스도 다른 트랙에서의 타이트한 랩보다 감흥을 떨어뜨린다. 시드와 스티브 레이시가 참여한 두 트랙(“Ain’t Talkin Bout Much”, “Whisper”) 역시 그렇다. 프로덕션 스타일이나 보컬과 연주 면에서 패트릭의 솔로 앨범보다는 디 인터넷이나 두 멤버의 솔로 앨범에 더 가까워 보인다.
디 인터넷의 멤버들이 발표하는 솔로 앨범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보장한다. [If I Fail Are We Still Cool?]도 당연히 그렇다. 한층 발전한 실력이 두드러지며, 일부는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탄탄한 짜임새도 근사하다. 지난 정규 앨범이 밴드 활동보다 패트릭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를 담았다면, 이번에는 다른 멤버만큼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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