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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oose - The Nacirema Dream 예동현 작성 | 2013-04-02 17:37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0 | 스크랩스크랩 | 20,527 View Artist: Papoose Album: The Nacirema Dream Released: 2013-03-26 Rating: RR+ Reviewer: 예동현
믹스테잎 세계의 절대자였으며, 정규 앨범 한 장 없이 거물급의 이름값을 지닌 랩퍼 패푸즈(Papoose)의 정규 데뷔 앨범이 드디어 발매되었다. 피처링 등으로 얼굴을 비춘 걸 제외해도 그의 이름을 새긴 첫 믹스테잎이 2004년경에 나왔으니 어느덧 10년 이상의 경력이다. 그동안 수십 장의 믹스테잎에서 수많은 벌스에 괴물 같은 라임을 새겨놓으며 단숨에 팬들의 엄청난 주목을 받은 패푸즈는 2000년대 초·중반 믹스테잎 씬의 폭발적인 성장에 이바지한 일등공신이자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주인공이었다. 2006년 15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으면서 자이브(Jive) 레코드와 사인할 당시만 해도 그는 뉴욕 힙합 씬의 유일무이한 희망이자 믹스테잎 씬의 신데렐라였다. 그러나 서서히 남부로 기울어가던 메인스트림 힙합의 권력 이동과 그에 따른 패푸즈의 상품성에 대한 의심, 그 외의 몇 가지 이유 탓에 정규 앨범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2007년 레이블과 결별하고 다시 인디 씬으로 돌아와 믹스테잎을 양산하던 패푸즈에 대한 관심은 그때보다 많이 식은 것도 사실이다.
무려 8년을 묵은 이 앨범 [The Nacirema Dream]은 오래 묵은 그 타이틀만큼이나 퀴퀴하고 낡은 사운드 때문에 그 의미만큼 대단한 감동이나 기다림에 대한 보상감은 적다. 한창 딥셋(Dipset)의 전성기였던 약 8~10년 전의 뉴욕 하드코어 힙합을 연상케 하는 이 앨범의 비트들은 그 시절의 감동을 재현하기에는 매력이 한참 모자라고, 요즘의 유행과 겨루면 또 밋밋하다. 그렇다고 장르적 미학의 표준점에 발을 걸치기엔 기술적으로 모자라거나 영 어중간하다. 평범하다는 말 이외에는 그 어떤 수사도 어울리지 않는 비트들이 대부분인 이 앨범에서 그나마 가치를 찾는다면, 역시 패푸즈의 라임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패푸즈의 라임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의 하향 평준화된 엠씨의 기준에서도 이 앨범에서의 패푸즈는 예전과 같은 총기를 뽐내지 못한다. 물론, 괴물 같은 라임 메이킹이나 안정적인 스토리텔링 솜씨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작정하고 라임폭격을 퍼붓는 초반부의 트랙들에서는 야심이 너무 컸던 나머지 억지로 라임을 이어 붙이다가 전체적인 곡의 전개를 망치거나 잘나가던 스토리텔링의 흐름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더불어 많은 트랙에서 후렴구는 정말 형편없어서 벌스를 부각해주거나 곡에 반전, 혹은 포인트를 주지 못하고 기나긴 앨범의 트랙리스트가 더 부담스럽게 느껴지게 한다. 원래 이런 점들이 패푸즈의 매력이라고 변호하기에는 그가 벌이는 게임의 판이 다르다. 이건 정규 앨범이며, 따라서 단순히 좋은 곡의 모음이 아니라 그 자체의 호흡과 구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 앨범에서는 그것이 자꾸 다른 요소들 때문에 방해받는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은 목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Law Library Pt.8”이다. 정규 앨범이라는 다른 무대에서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약간은 경직된 듯한 패푸즈의 퍼포먼스가 내내 이어지는 가운데 이 곡의 자연스러운 송 메이킹은 확실히 돋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마저도 믹스테잎에서 들려줬던 기존의 시리즈들 가운데 특출하게 뛰어나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야심작이었을 “Alphabetical Slaughter Pt.2 : Z to A” 역시 군데군데 놀라운 라임들이 보이지만, 아무래도 재탕인 만큼 원본만큼 큰 임팩트는 없다.
2006년 버전 [The Nacirema Dream]의 첫 싱글이었던 “Bang It Out”을 기억하는 팬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혹은 수록 예정이었던 곡 가운데 드레(Dr. Dre)의 비트 위에 절정의 라임을 올려놓았던 “Guns Of Mine”이나 그의 최고 명곡으로 꼽히는 “License To Kill”을 기억하는가? 이 앨범을 듣고 그가 과대평가된 인물이었다고 회의감에 젖은 채로 판정을 내리기 전에 그의 전성기적 결과물들을 다시 한번 들어보고 재고해보시라. 패푸즈는 대단한 엠씨였고 이미 믹스테잎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존재다. 다만, 그의 첫 정규앨범은 8년의 세월 동안 숙성하는 대신에 상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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