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강일권 작성 | 2016-04-21 22:27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7 | 스크랩스크랩 | 23,283 View
Artist: Musiq Soulchild
Album: Life on Earth
Released: 2016-04-15
Rating: RRRR
Reviewer: 강일권
‘90년대 중반, 디엔젤로(D’Angelo), 맥스웰(Maxwell),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등장을 기점으로 일어난 네오 소울 열풍은 실로 대단했다. 전통적인 소울 음악 속에 펑크(Funk), 힙합, 재즈, 아프리칸 음악 등이 절묘하게 뒤섞여 만들어진 이 장르는 매우 세련되었으면서도 한동안 주류에서 잊힌 옛 소울의 흥취까지 품은, 말 그대로 새로운 소울 음악이었다. 필라델피아 출신의 뮤지크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는 따지자면, 2000년대 등장한 첫 번째 네오 소울 스타다. 2000년, 데프 잼(Def Jam)과 계약하고 발표한 데뷔 앨범 [Aijuswanaseing]이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좋은 성과를 올리면서 커리어는 쭉쭉 뻗어가기 시작했고, 뮤지크의 소울풀한 음색과 그루브 넘치는 보컬 퍼포먼스는 많은 이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만큼 뮤지크의 음악 세계를 대표하고, 여전히 많은 팬들이 그리워하는 스타일은 아무래도 [Aijuswanaseing]이다. 특히, 이 앨범은 그가 밝힌 음악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3요소인 소울, 힙합, 제3의 음악(재즈, 가스펠, 블루스, 클래식, 라틴, 일렉트로닉 등등) 등이 기가막히게 맞물려 완성된 결과물이었다. 비트 박스 도입부에 이어 팻 마르티노(Pat Martino)의 재즈 곡 “Sunny”를 샘플링하여 주조한 힙합 비트 위로 리드미컬한 보컬 플로우가 작렬하는 앨범의 첫 싱글 “Just Friends (Sunny)” 역시 그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곡이다.
그러나 4집 [Luvanmusiq]까지 비교적 순탄하던 그의 커리어는 5집 [OnMyRadio],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앨범의 리드 싱글이었던 "Radio"가 공개되면서 위협받기 시작했다. 아무리 당대의 트렌드라지만, 뮤지크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서던 힙합 클럽튠이 그의 음악 세계로 들어왔고, 이는 침범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한 곡이 남긴 잔상은 비록, 전작들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준수한 편이었던 앨범의 완성도마저 먹어버렸다. 이후, 3년만에 발표한 새 앨범 [MusiqInTheMagiq]에서도 뮤지크의 방황은 계속되어 보였다. 원하는대로 자유로운 시도를 하는 한편으로, 옛 스타일을 원하는 팬들을 의식한 구성 또한, 눈에 띄었으나 이번에도 완성도와 별개로 그러한 그리움을 상쇄시킬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갔다.
레게와 소울의 결합을 시도한 실리나 존슨(Syleena Johnson)과 듀엣 앨범을 제외하면, 무려 5년만에 발표한 새 솔로작 [Life on Earth]에서 뮤지크는 드디어 방황(?)을 멈추고 초창기의 소울차일드로 돌아갔다. 인디로 정체성을 새로이 하고 내놓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다. 애간장을 태우듯 쥐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흐르는 일렉트릭 건반과 전반적으로 재지하고 느긋한 기운이 어우러져 초기 네오 소울의 향을 풍기는 첫 싱글 “I Do”는 물론, ‘90년대 힙합 소울 프로덕션을 고스란히 재현한 “Heart Away”, 나긋나긋하고 펑키한 그루브가 살아있는 “Changed My Mind”, 기존의 “Just Friends (Sunny)”와 “Stoplayin”처럼 탄탄한 그루브의 비트와 그 위를 여유롭게 가로질러 가는 보컬의 조화가 돋보이는 “Who Really Loves You”, “Who’s To Say” 등의 곡은 이를 증명하는 예다.
무엇보다 본작이 흥미로운 건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90년대 초·중반 스타일의 힙합 비트를 바탕으로 톤에서 변화를 준 보컬이 얹혀 강렬하게 진행되다가 2/3를 기점으로 808드럼의 트랩 비트와 그윽한 신스가 어우러지며, 기가막힌 무드의 반전이 이루어지는 “Wait A Minute”, 적절하게 비트가 치고 빠지는 가운데 재지한 네오 소울 사운드가 이어지다가 흡사 드럼 앤 베이스를 방불케 하는 역동적인 리듬 파트가 막판에 불처럼 솟았다 사라지는 “Far Gone” 등은 언제나 프로듀서들과 함께 음악 전반을 책임져온 뮤지크의 감각적인 시도를 엿볼 수 있는 곡들이다. 그리고 이 같은 곡들이 이질감 없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구성의 미학이 더욱 돋보인다. 그런가 하면, 피아노가 주도하는 소울 발라드 “The Girl”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에 있는 듯 오묘한 무드를 연출하는 “Life On Earth”에선 소울풀하고 달콤한 뮤지크의 보컬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매번 이해할 순 없고, 좋아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당신 없이 살 수 없다는 건 안다’고 고백하는 “I Do”를 비롯하여 연인 사이의 관계에 대한 현실적이고 가슴에 와 닿는 가사 또한, 적잖은 여운을 남긴다.
사실 뮤지크는 앨범을 거듭하며, 은근히 변화를 시도해왔고, 그럼에도 장르의 정통성을 놓치지 않고자 노력해왔다. 더불어 스스로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하길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랜 팬들이 원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이다. 때론 새로운 시도가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때도 있지만, 이번 앨범은 그의 클래스가 여전히 높다는 걸 증명한다. 뮤지크 소울차일드는 그의 음악을 향한 팬들의 기대와 불만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린 오랜 기다림을 제대로 보상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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