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Miles Davis & Robert Glasper - Everything's Beautiful
강일권 작성 | 2016-06-08 17:49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5 | 스크랩스크랩 | 20,821 View
Artist: Miles Davis & Robert Glasper
Album: Everything's Beautiful
Released: 2016-05-27
Rating:Rating: RRR+
Reviewer: 강일권
연주자이자 프로듀서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는 최근 돈 치들(Don Cheadle)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전기 영화(‘Miles Ahead’)에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다. 재즈에 기반을 두고 소울과 힙합 또한 적극 끌어안은 그는 이 작업에서 재즈 전설의 곡을 마음껏 재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고, 4곡에 직접 연주까지 보탰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글래스퍼가 얻은 에너지와 아이디어는 본작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을 재료 삼은 로버트 글래스퍼의 앨범이 아니라 마일즈 데이비스와 로버트 글래스퍼의 앨범임을 내세운 것에 주목할만하다. 그만큼 본작은 단순히 데이비스의 명곡을 샘플링하거나 커버하는 것에서 벗어나 거장이 구축한 음악 세계를 분석한 후, 유지, 혹은 확장하여 재구성하는 데 주력한 인상이 강하다. 이는 글래스퍼의 세심한 소스 선택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Maiysha”와 “Kind Of Blue”처럼 정식 발매된 버전뿐만 아니라 "The Ghetto Walk"처럼 낙점되지 않았던 미발표 세션을 사용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녹음 도중 잡힌 음성까지 중요한 소스로 삼았다. 여기에 빌랄(Bilal), 에리카 바두(Erykah Badu), 폰테(Phonte), 일라 제이(Illa J),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하이어터스 카이요티(Hiatus Kaiyote) 등등, 힙합과 소울 아티스트를 대거 불러모으며, 장르 퓨전에도 적극적이었던 데이비스의 음악적 기조를 잇고자 한 흔적을 군데군데 뿌려놨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한 곡들이 전하는 감흥과 여운은 진하다. 특히, “The Ghetto Walk”의 일부를 따와 둔탁하게 들러붙는 힙합 리듬과 빌랄의 매캐한 보컬을 입혀 수면 위로 끌어올린 “Ghetto Walkin’”을 비롯하여 “Maiysha”를 샘플링하고 에리카 바두를 불러들여 재즈, 보사노바, 네오 소울 퓨전으로 재탄생시킨 “Maiysha (So Long)”, 프로듀서 나인스 원더(9th Wonder), 폰테와 함께 “Kind Of Blue”를 재료 삼아 서정적인 재즈 힙합의 진수를 선사한 “Violets” 등이 이어지는 중반부까지의 흐름이 일품이다.
종반부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펑키한 트랙 "I'm Leaving You"도 주목할만하다. [The Complete Jack Johnson Sessions]에서 잡아낸 데이비스의 짧은 외침('wait a minute!')으로부터 출발하여 블랙 밀크(Black Milk)가 제공한 드럼과 존 스코필드(John Scofield)의 기타, 그리고 레디시(Ledisi)의 보컬이 합류해 완성된 곡으로, 글래스퍼의 반짝이는 설계 감각과 끈끈한 협연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다. 활기찬 리듬 파트 위로 밝은 듯 애수 어린 데이비스의 트럼펫과 스티비 원더의 하모니카 연주가 놓인 "Right On Brotha"가 장식하는 마무리도 좋다.
그러나 이 의미 있고 흥미로운 작업이 마냥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Violets" 이후 "Little Church (Remix)", “Silence Is The Way”, "Song For Selim"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본작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이다. 굉장히 정적이고 호흡은 긴데, 음악적으로 특기할만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 곡들이 연이어 배치되다 보니 이전까지 쌓인 감흥과 집중도가 확 떨어진다. 각 곡에 참여한 개성 있는 아티스트와 협업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치명적이다. 정통성과 실험성의 기가 막힌 조화를 통해 소울의 새 지평을 연 하이어터스 카이요티와 역시 범상치 않은 음악 세계를 보여준 로라 음불라(Laura Mvula)의 참여는 굳이 왜 그들을 불러왔는지 의아할 만큼 미미하고, 올해의 발견이라 할만한 그룹 킹(King)이 참여한 곡은 본작보다 그녀들의 앨범에서 인터루드(Interlude)로 더 어울릴 트랙이다. 무드로 봤을 때 이 구간이 마일즈 데이비스에 대한 추모의 순간으로 마련되었다고 짐작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음악적으로 아쉬운 건 변함없다.
[Everything’s Beautiful]은 이 시대의 젊은 블랙 뮤직 거장이 재즈계의 상전설에 대한 충만한 존경과 애정으로 바치는 헌정 앨범이자 ‘만약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어서 나와 듀엣 앨범을 작업했다면?’이라는 상상을 실행에 옮긴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글래스퍼의 의도는 매력적인 작품으로 귀결됐다. 다만, 더욱 근사한 앨범으로 가는 길목을 막은 후반부의 아쉬움이 못내 잊히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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