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Kanye West - Donda
장준영 작성 | 2021-09-15 18:34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44 | 스크랩스크랩 | 31,213 View
Artist: Kanye West
Album: Donda
Released: 2021-08-29
Rating: RRR
Reviewer: 장준영
[Donda]를 둘러싼 모든 것이 과잉이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기행은 여전히 종잡을 수 없고, 팬들은 사소한 언행까지도 의미를 두며 상찬과 힐난을 쏟는다. 콘서트와 다름없는 규모의 리스닝 파티, 몇 차례 연기 후 기습적인 앨범 발매가 과도한 양상을 더욱 타오르게 헸다.
앨범에선 들끓는 외부 요인만큼이나 거대한 칸예의 야심을 찾을 수 있어 흥미롭다. 일단 트랙 수와 러닝타임이 눈에 띈다. [Ye](2018)와 [Jesus Is King](2019)에서 재생 시간이 20분 대로 대폭 줄었지만, 본래 디스코그래피에서 못해도 50분은 거뜬히 넘는 앨범이 다수였다. 이번엔 긴 호흡을 유지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커리어 사상 최장 러닝타임을 들고 왔다.
27곡, 109분에 다다르는 분량에 맞게 참여진도 방대하다. 마이크 딘(Mike Dean), 스위즈 비츠(Swizz Beats), 디제이 칼릴(DJ Khalil), 루이스 벨(Louis Bell), 제프 바스커(Jeff Bhasker)처럼 베테랑과 북즈다비스트(BoogzDaBeast), 오지볼타(Ojivolta), 나센트(Nascent)처럼 젊은 프로듀서를 고르게 기용했다. 제이지(Jay-Z),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 릴 베이비(Lil Baby), 위켄드(The Weeknd), 영 떡(Young Thug),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 로디 리치(Roddy Ricch), 타이 달라 싸인(Ty Dolla $ign) 등등, 피처링도 화려하다. 칸예가 리드하는 가스펠 그룹 선데이 서비스 콰이어(Sunday Service Choir) 역시 다수 트랙에 이름을 올렸다.
칸예의 최근 결과물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다소 아쉬웠다.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2010)와 [Yeezus] (2013)에서의 파괴적이면서 활력적인 프로덕션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고, 평이한 트랙만 늘어났다. 다행히 [Donda]의 일부 곡에선 과거 걸작과 궤를 같이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일례로 명징한 비트에 가스펠, 록, 일렉트로닉이 근사하게 엮인 "Jail"은 후반부에 쏟아지는 변주가 일품이다. "God Breathed"에선 베이스와 이펙터가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에코 사운드와 코러스 소스가 어둡고도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드릴(Drill) 프로덕션이 바탕이 된 “Off the Grid”에선 우월감을 드러낸 가사에 칸예의 밀도 높은 랩이 더해져 인상적이다.
“Moon”은 키드 커디(Kid Cudi)와 돈 톨리버(Don Toliver)가 함께 꾸렸다. 서정적이고도 은유적인 가사와 기타 소스를 활용한 프로덕션이 매력적으로 들린다. 다른 트랙과 비교했을 때 무드나 톤에서 이질적이지만, 곡 자체는 훌륭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곡이 평범하고 진부하다. 특히 “24”, “Jesus Lord”, “Lord I Need You”처럼 신앙심과 관련된 트랙은 [Jesus Is King]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앨범은 힙합 프로덕션을 중심으로 가스펠, 소울, 일렉트로닉 등 각 장르의 장점을 절묘하게 결합해낸 프로덕션이 특징이었다. [Donda] 역시 접근 방식에서는 유사하나 비트가 평이하고, 이미 몇 차례 들려준 구성과 편곡이 재미를 반감한다.
그런가 하면, 고(姑) 팝 스모크(Pop Smoke)를 끌어들인 “Tell The Vision”은 의아하다. 올해 7월에 새로 발매된 동명 곡이 재수록되었다. 최초 발매된 트랙은 농밀한 드릴(Drill) 프로덕션에 묵직한 팝 스모크의 랩과 푸샤 티(Pusha T)의 벌스가 강렬하다. 그러나 이번에 수록된 버전은 원곡이 지닌 매력 대부분이 거세된 채로 둔탁한 건반 비트에 팝 스모크의 목소리만 짧게 나오다 끝난다. 동명 곡과 비교했을 때 별다른 장점도 느끼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앞뒤로 연결된 트랙과도 어우러지지 못한다.
가사도 아쉽다. [The Life Of Pablo](2016)부터 전면으로 내세운 종교적인 색채가 단순한 가사로 반복되다 보니 감흥이 떨어진다. 칸예가 겪은 상황과 감정은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상이한 듯 보이지만, 표현에선 별반 차이가 없다. 현재의 부와 명성을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고난과 역경을 신앙심으로 극복하겠다는 내용이 유사하게 이어진다. 공식처럼 된 내용에 흥취가 일지 않는다.
다만, 모든 트랙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젤다 레코즈(Griselda Records)의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과 콘웨이 더 머신(Conway the Machine)을 불러들인 “Keep My Spirit Alive”는 신선하다. 그리젤다 특유의 생생한 범죄 스토리텔링에 감사와 만족이라는 종교적인 접근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진실하고 떳떳한 삶을 강조한 “Pure Souls”도 그렇다. 힙합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이지만, 오히려 일관된 신앙심과 결합하면서 의외의 재미를 준다.
[Donda]는 그의 정규작을 통틀어 가장 적은 샘플링이 사용됐다. 아쉽게도 칸예의 장기인 다채로운 샘플링 활용을 느낄만한 트랙이 많지 않다. 다만, 그래서 "Believe What I Say"가 두드러진다. 로린 힐(Lauryn Hill)의 "Doo Wop (That Thing)"을 샘플링한 이 곡은 보컬 샘플을 제외하면 베이스라인만 남을 정도로 미니멀한 구조다. 그럼에도 후렴구에 코러스와 추임새가 다양하게 배치되어 여느 트랙보다 꽉 찬 사운드로 들린다. 중독성 강한 멜로디도 즐겁다. “Praise God”과 “Donda”에서 어머니 돈다 웨스트(Donda West)의 목소리를 가져온 점도 눈에 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감사, 존경 등 복합적인 감정을 샘플링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많은 트랙 수와 긴 러닝 타임은 단점이다. 칸예가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관철하려는 당위성이나 이유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앨범 제목에 어머니 이름을 새겼지만, 몇몇 곡을 제외하곤 어머니와 연결되는 내용이 부족하다. 또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신앙심이나 개인사와 관련된 트랙은 단편적이고 유사한 가사로 가득하다. 이를 연달아 접하니 피로감이 가중된다.
종결부에 연속으로 배치된 리믹스 트랙 “Jail pt 2”, “Ok Ok pt 2”, “Junya pt 2”, “Jesus Lord pt 2”도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동명 트랙과 다른 점이라곤 피처링 게스트 정도이며, 그들의 퍼포먼스는 원곡보다 특출한 지점이 없다. 특히 “Jail pt 2”에서의 마를린 맨슨(Marilyn Manson)은 별다른 활약 없이 후렴구 더블링만 하다가 끝난다. 게다가 보컬 자체도 완성도를 갉아먹는다. 현재 심각한 성폭력 및 학대 혐의로 비판받는 그를 굳이 참여시킨 이유를 찾기 어렵다.
“Jesus Lord pt 2”에선 더 록스(The Lox)가 참여했으나, “Jesus Lord”보다 난잡하다. 세 멤버의 벌스가 추가되면서 지나치게 러닝타임이 길어진 점도 있지만, 예수와 관련된 공통된 소재 정도를 제외하곤 참여한 모두가 다른 이야기를 내뱉는 랩 역시 산만하게 들린다.
앨범 외적으로 아티스트가 보인 행동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결국, 평가의 기준은 앨범이다. [Donda]는 칸예가 끊임없이 내비친 욕심과 야망에 부합하는 완성도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포장은 번지르르하지만, 내용물이 예전만큼 실하지 못하다.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장준영 모든 리드머 콘텐츠는 사전동의 없이 영리적으로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30 코멘트 등록 seungchul seungchul (2021-09-21 22:37:32 / 121.166.127.***)추천 2 | 비추 3 기대했던 만큼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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