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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리스틱 스웨버 - BFOTY
남성훈 작성 | 2019-01-07 18:46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25 | 스크랩스크랩 | 31,645 View
Artist: 퓨처리스틱 스웨버(Futuristic Swaver)
Album: BFOTY
Released: 2018-12-17
Rating: RRRR
Reviewer: 남성훈
정식 데뷔 후 4년이 흐른 지금 퓨처리스틱 스웨버(Futuristic Swaver)는 한국 힙합을 깊이 있게 주목하고 있다면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이름이 되었다. 퓨처리스틱 스웨버의 음악, 특히 [BFOTY]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힙합의 주요한 서브장르인 트랩(Trap) 뮤직이 지닌 매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트랩뮤직은 2000년대 초반 미국의 남부힙합에서 파생되어 2010년대 비로소 세계 음악 시장의 프로덕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만, 힙합 음악으로서의 힘은 미국 밖에서 크게 발화하지 못했다.
그 범위가 넓어지고는 있으나 돈, 마약, 총기를 포함해 위험한 라이프스타일을 그린 한정적 가사가 특징적인 매력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트랩 뮤직을 정체성으로 한 이들 외에는 그 특유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가 상당히 어려웠던 것도 같은 이유다. 어설픔이 집중을 흐리는 것이다. 그런데 유튜브와 SNS를 중심으로 재미난 흐름이 생겨났다. 반대로 '너드(Nerd)' 컨셉트의 어설픔과 트랩 뮤직의 무드를 동시에 극대화하며 그 한계를 우회하는 이들이 등장한 것이다. 퓨처리스틱 스웨버는 클라우드 랩 스타일로 자신의 지질한 면모를 드러낸 결과물도 많지만, 최근의 결과물, 그 중 [BFOTY]는 이 흐름의 영향 안에서 바라볼 구석이 많다.
그가 이런 흐름 속에서 추구하는 결과물이 충분한 감흥을 안기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누가 봐도 헛웃음부터 나오는 패션과 제스처를 포함한 기믹(Gimmick), 그리고 이와 즉각적으로 대치하는 음악적 탄탄함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 반전의 미학을 얼마나 기가 막히게 보여줄 수 있느냐가 핵심인 것이다.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리치 치가(Rich Chigga, 현재 Brian)의 "Dat $tick" 비디오가 좋은 예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BFOTY]는 그 조건들이 잘 결합하여 시너지를 발휘하는 작품이다. 뿔테와 바가지머리, 여린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기억되는 기믹은 긴 시간 유지한 덕분에 비디오 없이도 자연스레 음악과 함께 떠오르는 수준이 됐다. 랩탑보이보이(Labtopboyboy) 시그니처 사운드로 시작하는 프로덕션은 특유의 웅장미와 멜로딕함이 안정적으로 균형을 맞춘다.
무엇보다 앨범 전체적으로 어그러지지 않고 발전을 거듭하는 랩 퍼포먼스와 작사력이 돋보인다. 2014년 등장 때부터 흥미롭긴 했지만, 앨범 단위로는 이 같은 조건이 완전히 충족되지 못한 채, 다소 엉성한 부분이 있어 아쉬웠다면, 이제 [BFOTY]를 통해 비로소 온전히 시작점에 섰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돈이하란대로해”부터 “ㅂㅅㅈㅂ Who R U”까지 이어지는 초반이다. “돈이하란대로해”부터 범상치 않다. ‘돈’, ‘약’, ‘지옥 같은 삶’ 같은 워딩이 페이소스 가득한 전자기타 사운드와 펼쳐지며 비장미 가득한 무드의 연출로 앨범을 연다. 이어서 돈과 마약, 폭력적 태도가 넘실대는 가사가 귀를 잡아 끄는 “Dead Friends”, “Emotions”, “ㅂㅅㅈㅂ Who R U”가 이어지는데, 기믹에 기댄 뻔뻔함에서 오는 코믹함을 단지 가볍게 소화하지 못하게 하는 잘 짜인 퍼포먼스와 프로덕션이 주는 쾌감이 상당하다. 특히, ‘자나깨나 마약을 난 도핑’, ‘돈 세고 똥싸는 하루일과’, ‘너네가 망친 문화 위에서 날 봐 바’ 같이 심리적 한계선 없이 직접적으로 마약과 돈, 문화시장을 언급하는 라인은 그 자체로 유쾌하게 흥을 돋우는 도구이면서 한국 힙합을 향한 조롱과 풍자로 들리기도 한다.
“Heartless”부터 시작되는 퓨처리스틱 스웨버 식 러브송의 향연도 즐겁다. 초반의 캐릭터를 유지하는 단어 선택은 지질한 면모를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주면서 곡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과하지 않은 오토튠과 깔끔하게 떨어지는 랩-싱잉 퍼포먼스가 만드는 곡의 집중도도 치켜세울 만하다. 어느 정도 몽환적인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이모 랩(Emo Rap)’ 프로덕션의 틀을 더해 감수성 가득한 가사, 감미로운 멜로디와 속도감을 더한 “Heartless”, “off my head”, “20”로 이어지는 트랙들은 친 대중적인 팝(Pop) 트랙으로도 손색없다. “Paypal”, “실패작”으로 대표되는 자기 관조적인 시선이 짙게 깔린 트랙까지 지나가면, 퓨처리스틱 스웨버라는 기믹과 컨텐츠의 관계에 대한 생각까지 바뀌어 버린다.
[BFOTY]는 퓨처리스틱 스웨버의 대중적 인지도가 여전히 크지 않기에 기믹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한국 힙합 엔터테인먼트다. 마미손이 “소년점프”로 수혜를 입은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의 위상을 전복시키는 조롱을 통해 허술한 완성도에도 대중적 지지를 획득했다면, 퓨처리스틱 스웨버는 너드 컨셉트를 깔고도 현재 한국 힙합에서 가장 하드코어하며, 가장 감수성 풍부한 앨범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의도된 코믹 컨셉트가 시장의 변두리에 머물지 않고, 가치 전복의 쾌감을 불러오는 것은 꽤 흥미롭지만, 한편으론 한국 힙합 시장과 음악 자체의 허술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BFOTY]는 탄탄한 완성미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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