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영비 - Stranger
황두하 작성 | 2019-03-05 06:20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0 | 스크랩스크랩 | 55,303 View
Artist: 영비(Young B)
Album: Stranger
Released: 2019-02-16
Rating: RRR
Reviewer: 황두하
신예 랩퍼 영비(Young B)는 최초 [고등래퍼] 첫 번째 시즌에서 우승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스윙스가 설립한 인디고 뮤직(Indigo Music)에 합류하며 씬에 안착했다. 과거사 탓에 한 차례 크게 논란이 되긴 했지만, 그만큼 -혹은 그와 별개로- 장르 팬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높아져만 갔다. 묵직한 톤으로 발음을 뭉개며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개성 있는 랩 덕분이었다.
작년에 발표한 데뷔 EP [SOkoNYUN]에서는 본인만의 음악적 색깔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근래 유행하는 이모 랩(Emo Rap) 사운드에 가요스러운 감성을 얹어내 몽환적이고 아련한 무드를 자아냈다. 2000년대 한국 모던 록(Modern Rock)이 떠오르는 후렴과 딜레이를 잔뜩 먹인 랩이 어우러진 “Polo”는 앨범의 음악적 성격을 대변하는 곡이다. EP라는 짧은 형식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다 보니 다소 산만한 부분도 보였지만, 데뷔작으로서 나쁘지 않은 수준의 완성도였다.
이후 약 반 년 만에 발표한 첫 번째 정규앨범 [Stranger]는 EP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고 엑스엑스엑스텐타시온(XXXTentacion)으로 대표되는 이모 랩의 영향이 느껴진다. 일렉 기타가 아련하게 울려 퍼지는 첫 트랙 “Gray”, 텐타시온의 데뷔 믹스테입과 같은 제목의 “REVENGE”, 강렬한 일렉 기타가 내달리듯 질주하며 록 사운드를 껴안은 “B-Site” 등은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곡에 프로듀싱으로 참여한 판다 곰(Panda Gomm)은 특정 스타일을 준수한 수준으로 구현하면서도 노골적인 레퍼런스로 빠지는 함정을 피해갔다.
그러나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면서 다소 산만해진 것 또한 EP와 닮았다는 점이 아쉽다. 이러한 한계는 “서울”부터 “Business Class”까지 이어지는 전반부에서 드러난다. 판다 곰 이외의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부분이다. 각 트랙은 미국 메인스트림 힙합 씬의 특정 사운드를 떠오르게 하는데, 곡들이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일례로 “junky”는 브록햄튼(Brockhampton)이, “Business Class”는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가 떠오른다. 게다가 이 구간에서 윤훼이(Yunhway), 저스디스(JUSTHIS) 등등, 개성 강한 게스트들이 참여해 곡의 하이라이트를 가져간 탓에 더욱 산만해졌다.
랩 스타일은 확실히 무르익었다. 이전엔 특유의 톤 때문에 때때로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본작에 이르러 탁 트인 발성과 만나 완성형에 가까워졌다. 덕분에 빠르게 단어들을 뱉을 때나 내지를 때에도 전달력이 흐려지지 않는다. 트랩(Trap)과 붐뱁(Boom-Bap)으로 파트를 나눈 변주가 돋보이는 “Next?”는 이러한 랩이 빛을 발한 하이라이트 트랙이다. 두 파트에 각각 목소리를 보탠 베테랑 스윙스나 도끼(Dok2)보다도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주인공의 자리를 뺏기지 않는다.
반면, 전작에서 감초 역할을 했던 노래 보컬은 본작에 와서 분량이 늘어나며 오히려 약점이 되었다. 애초에 보컬 실력 자체가 뛰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중독적인 멜로디 라인조차 만들어내지 못한 탓에 종종 집중력을 흐린다. 중반부에 있는 “Rose”, “Ferrari”, “밤에” 같은 곡에서 이 같은 단점이 두드러진다. 결과적으로 “REVENGE”부터 이어지는 후반부만이 그가 의도한 감흥이 살아있는 구간이 되었다.
아티스트의 과한 욕심은 때론 독이 되곤 한다. [Stranger]가 딱 그렇다. 그의 욕심에 비해 앨범을 꾸리는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각기 다른 프로듀서가 참여한 초반부에서 이러한 점이 크게 두드러졌다는 건 많은 걸 시사한다. 그의 나이다운 치기와 비장함이 뒤섞인 가사 또한 핵심을 짚지 못하고 겉돈다는 인상이 강하다. 강력한 무기인 랩만큼이나 음악적으로도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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