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언오피셜보이 & 하이프하이프 - 그물,덫,발사대기,포획
황두하 작성 | 2021-05-04 19:13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86 | 스크랩스크랩 | 75,072 View
Artist: unofficialboyy & HAIFHAIF
Album: 그물,덫,발사대기,포획
Released: 2021-04-12
Rating: RRRR
Reviewer: 황두하
2020년의 한국힙합 씬은 베테랑과 신예의 활약이 유독 돋보였다. 비프리(B-Free), 빌 스택스(BILL STAX), 딥플로우(Deepflow)는 물론, 쿤디판다(Khundi Panda), 블랭(BLNK), 콰이(Kwai), 스월비(Swervy) 등이 각자의 개성을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앨범을 내놓았다. 씬의 중심이 오디션 프로그램인 건 변치 않았지만, 앨범의 가치는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해였다.
이렇게 쟁쟁한 앨범 사이에서 신예 언오피셜보이(unofficialboyy)의 첫 정규작 [Drugonline]도 인상적이었다. 로파이(Lo-Fi)한 질감의 위협적인 트랩 비트 위로 쾌락에 천착하는 청춘의 단상을 공격적으로 그려낸 가사가 매력적이었다. 앞서 언급한 아티스트들의 작품보다는 언급이 적었지만, 장르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점차 주목도가 올라갔다. 최초 [고등래퍼]를 통해 등장했던 그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약 1년만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그물,덫,발사대기,포획]은 프로듀서 하이프하이프(HAIFHAIF)와 함께한 작품이다. 그가 전곡을 책임진 프로덕션은 트랩으로 점철되었던 전작과는 다르다. 트랩은 물론, 팝 랩, 일렉트로닉 레이브 뮤직(Rave Music), 붐뱁 등등, 다양한 하위 장르를 포괄한다.
눈에 띄는 건 2000년대에 유행한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트랙들이다. 비트박스 헬캣(Beatbox Hellcat)의 비트박스가 주도하는 리듬파트 위에 여러 소스를 난입시킨 “돈내”, 팀발랜드(Timbaland)가 떠오르는 신시사이저 운용이 인상적인 “누가왔게”, 두터운 베이스라인으로 시작하는 “그물,덫,발사대기,포획”은 대표적이다.
이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비트가 이어지지만,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드럼 덕분이다. 모든 트랙에서 노이즈 소스를 먹여 가볍게 터지는 듯한 질감의 스네어를 운용해서 특유의 날 것 같은 느낌을 유지한다. 그래서 부드러운 팝 랩 넘버인 “mmm”과 과장된 노이즈 소스가 어지럽게 분포된 레이브 트랙 “Unofficialboyy pt. 2” 사이의 괴리감이 상쇄된다. 비트박스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스네어에 파열음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돈내”도 마찬가지다. 레트로한 스타일을 시도했지만, 세련된 감성이 느껴지는 것도 감각적인 드럼 운용 덕분이다.
언오피셜보이의 퍼포먼스도 발군이다. 의도적으로 건조한 톤을 구사했던 전과 달리, 한결 자연스러워진 톤으로 어떤 곡에서든 타이트한 랩을 선보인다. 적당히 발음을 굴리면서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랩은 언뜻 지드래곤(G-Dragon)이 떠오르기도 한다. “누가왔게”, “대가리”, “그물,덫,발사대기,포획”처럼 공격적인 곡에서는 물론이고, “mmm”, “?X3”, “나빠”, “잿더미”처럼 톤 다운된 곡에서도 여유롭게 리듬을 밟아나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앨범에는 자기 과시나 사랑, 이별, 우정 같은 다소 뻔한 주제의 트랙들이 담겼다. 그러나 독특한 어휘 선택과 워드 플레이가 어우러진 가사 덕분에 감흥이 살아난다. 전반부의 자기과시성 트랙에서는 코믹함과 호전성이 뒤섞인 가사로 듣는 재미를 더했다. 반면, 후반부에서는 변하는 인간관계를 노래하는 “?X3”처럼 삶과 사랑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인다.
한 번 들으면 따라하게 되는 중독적인 후렴구도 강점이다. 특히, 재치 있게 말의 맛을 살려내는 감각이 뛰어나다. 그중에서도 첫 트랙 “그까이꺼”와 스페인어 ‘uno dos tres cuatro’를 비튼듯한 “그물,덫,발사대기,포획”의 후렴구는 앨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큼 인상적이다.
[그물,덫,발사대기,포획]은 언오피셜보이의 커리어를 업그레이드해줄 만한 작품이다. 그는 하이프하이프라는 최적의 파트너가 깔아준 판 위에서 기량을 마음껏 펼쳐냈다. 다소 강박적으로 랩을 죽 뱉어냈던 전작과 달리, 다양한 스타일의 비트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는 여유까지 느껴진다.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유행한 다양한 스타일의 힙합을 본인의 방식으로 체화했고, 그것을 2021년에 맞게 재창조해냈다.
흥미로운 건, 상업적이라고 여겨지는 팝 랩 스타일과 반대편에 있는 스타일이 한데 뒤섞였지만, 그러한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두 본인의 스타일로 수렴된다. 본작은 특정 음악 스타일로 규정하기 어려운, 한국힙합 씬에 나타난 새로운 세대의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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