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빅 나티 - Bucket List
황두하 작성 | 2021-03-12 16:35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9 | 스크랩스크랩 | 32,587 View
Artist: 빅 나티(BIG Naughty)
Album: Bucket List
Released: 2021-02-25
Rating: RRR
Reviewer: 황두하
최초 [쇼미더머니8]을 통해 주목받은 빅 나티(BIG Naughty)는 미성을 앞세운 감각적인 랩 싱잉이 돋보인다. 방송 후에는 박재범이 이끄는 하이어 뮤직(H1GHR Music)에 합류하며 커리어의 기반을 다졌다. 오늘날 래퍼 지망생들이 부러워할만한 코스를 밟은 셈이다. 레이블의 컴필레이션 앨범 [RED TAPE/BLUE TAPE](2019)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의 트랙에 맞춰 준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잠재력 있는 신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눈에 띄는 트랙은 [BLUE TAPE]에 수록된 솔로곡 “잠깐만”이었다. 어쿠스틱 기타로 단출하게 진행되는 서정적인 비트와 감각적인 랩 싱잉 퍼포먼스, 그리고 짝사랑 상대에게 고백하기 위해 카페를 빌려 라이브 공연을 하는 상황을 그린 가사가 어우러진 이 트랙을 통해 쟁쟁한 레이블 메이트들 사이에서 잠재력을 드러냈다. 동시에 그가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에 대한 단서를 제공했다. 이는 데뷔 EP [Bucket List]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첫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Joker”는 앨범의 색깔을 대표한다. 그는 간결한 기타 연주로 진행되는 미디엄 템포 팝/알앤비 사운드 위로 노래에 더욱 가까워진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이어지는 “Frank Ocean”과 “커피가게 아가씨”에서도 비슷한 결을 유지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일렉 기타 연주로 록 사운드를 껴안고, “10년 후”에서는 퓨처 베이스의 틀을 차용한 변주를 시도한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가로지르는 와중에도 특유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톤을 유지해 사운드적으로 일관성을 갖췄다.
흥미로운 트랙은 “커피가게 아가씨”와 “멋진 신세계”다. 전자에서는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를 2021년 버전으로 재치있게 비틀었고, 후자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를 일부 인용해 여전히 몰개성을 강요하는 학교 시스템을 비판한다. 두 곡 다 10대인 빅 나티가 발표된 지 약 30년이 되어 가는 과거의 곡을 적절하게 차용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특히, “멋진 신세계”에서는 고등래퍼 출신인 이로한(Rohann)이 참여하여 대한민국 고등학교의 모순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듣는 재미를 더했다.
아쉬운 점은 빅 나티의 퍼포먼스다. 무기인 미성을 내세운 랩 싱잉 퍼포먼스는 준수한 편이지만, 비슷한 패턴의 멜로디 어레인지가 이어지다 보니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력을 흐린다. 게다가 게스트가 주인공보다 더 주인공 같은 활약을 펼치며 각 곡의 하이라이트를 가져가 버린다. 앞서 언급한 이로한과 원슈타인(WONSTEIN)(“커피가게 아가씨”), 팔로알토(Paloalto)(“10년 후”)는 대표적이다.
이는 빅 나티의 가사가 게스트들에 비해 평이한 표현으로 점철된 탓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평범한 고등학생의 삶은 거부하고 뮤지션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린 마지막 트랙 “Bucket List”가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다.
[Bucket List]에는 가능성을 가진 10대 뮤지션의 현재가 담겼다. 빅 나티는 본작을 통해 세련되고 재치 있는 트랙을 만드는 감각을 충분히 보여줬다. 다만, 그 속을 채우는 내실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유일하게 게스트가 참여하지 않은 “Bucket List”에서 본인만의 이야기를 가장 잘 풀어냈다는 점에서 더욱더 아쉬워진다. 그가 여태껏 내비쳤던 ‘잠재력’에 걸맞은 데뷔작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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