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마인드 컴바인드 - Circle
김효진 작성 | 2021-04-06 16:57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0 | 스크랩스크랩 | 13,291 View
Artist: 마인드 컴바인드(Mind Combined)
Album: CIRCLE
Released: 2021-03-11
Rating: RRR+
Reviewer: 김효진
불교의 세계관은 '순환'을 토대로 한다. 우주 만물은 끊임없이 생멸하며(제행무상), 우주에 실체하는 모든 존재는 인연 따라 소생하는 것이니 본질적인 자아도 실체가 없다고 본다(제법무아). 불교에서 '인연'은 인간과 인간 사이로만 한정된 개념이 아니다. 인간은 자연, 세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이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
마인드 컴바인드(Mind Combined)의 본작 [CIRCLE]은 순환을 토대로 작금에 도래한 사회 현상, 현실을 벗어난 영혼, 철학까지 풀어나간다. 음양의 순환을 말하며 결국 뭐든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새겨놓기도 하고("Can You Understand"), 영혼이 다양한 우주를 돌아다닌다는 상상을 바탕으로 평행우주를 그리기도 한다("Multiverse"). 그래서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내면 철학을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4차 산업 혁명으로 도래한 특이점("Singularity")과 '내려놓음'("Waterfalls")처럼.
[CIRCLE]이 지닌 메시지는 불교 사상과 상당한 교집합을 이룬다. 마인드 컴바인드는 마지막 트랙 "Purple Sky"에서 본작을 아우르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빛과 어둠, 기쁨과 슬픔 중 양자택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편히 먹자고 말한다. 이는 불교 삼법인 중 하나인 '열반적정'을 떠올리게 한다. 속박에서 벗어나 집착을 버리고 열반에 이르는 것은 불교 최고의 경지다. 마인드 컴바인드는 앨범 내내 '모든 것은 돌고 도니 거센 파도에 저항하지 말고 흐르는 대로 흘러 가보자'라고 주창한다(*필자 주: '열반적정'이란 모든 번뇌가 소멸된 마음 상태를 이르는 불교 용어다.).
마인드 컴바인드는 [CIRCLE] 안에서 다양한 장르를 운용한다. 기술 발전이 이룬 기묘한 상황을 앱스트랙트 힙합과 재즈 랩 사운드를 절묘하게 교차시킨 프로덕션으로 표현하고("Singularity"), 말랑한 사랑 이야기("Show Me")는 '90년대 특유의 리듬감 있는 알앤비 프로덕션에 로파이(Lo-fi) 사운드를 가미한 음악 위에 녹여낸다. 프리 재즈를 기반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질서 없이 변주되는 "Swiss Gold"는 답답한 상황을 우리의 방식으로 똑똑하게 타파하자는 메시지를 구축하기에 걸맞다.
특히, 귀를 더 잡아끄는 프로덕션은 앨범 주제와 궤를 같이 하는 트랙이다. "Waterfalls"은 혼(Horn) 사운드와 댄서블한 하우스 비트가 어우러지고 마구 변주돼 듣는 재미가 있다. 그 덕에 곡이 품은 주제처럼 집착을 내려놓고 경지에 오른, 한 개인을 위한 '우승가'처럼 들린다. 마지막 트랙인 "Purple Sky"도 마찬가지다. 사고의 양극화를 끊어 내고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아량을 갖자는 메시지를 활기찬 삼바 리듬에 올린다. 마침내 삶을 축제처럼 즐길 수 있게 된 상태를 축하해주는 것만 같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힙합 비트로 시작해 흥겨운 삼바 리듬으로 마무리 짓는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이처럼 [CIRCLE]은 거시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다채로운 프로덕션에 영민하게 담았다. 그러나 가사는 그렇지 못 하다. 모든 곡이 영어로 쓰여져서가 아니다. 노랫말이 단순하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구간도 다분하다. 4차 산업 혁명, 특이점, 인플레이션, 더 나아가서는 미래, 우주, 사랑까지 포괄하고 있는, 거시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담기에는 말의 그릇이 얕고 좁다.
예컨대, "Can You Understand"의 가사는 모든 것이 순환되니 되고 싶은 게 무엇이든 언젠가 그 목표점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일종의 희망적인 예언이다. 그러나 전반부 가사는 'Someday I wanna be it / Someday I gotta feel it, 언젠가 나는 그것이 되고 싶어 / 언젠가 나는 그걸 느낄 거야'를 일차원적으로 반복한다. 후반부도 깊은 관철은 드러나지 않는다. 'Inferno like desire / Ice cold rationality ... They Swirl like Yin Yang, 열망 같은 불꽃 / 차가운 이성 ... 그 둘은 음양처럼 소용돌이 친다' 같이 단순히 나열하고 직선적으로 묘사한다. 숙고의 깊이와는 달리 표현이 아쉽다.
그럼에도 답답함이 지속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현상을 주시하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본작은 존재만으로도 뚜렷한 의미를 아로새긴다. 고착화된 불행은 없다는 것. [CIRCLE]은 어둠 속에서도 평화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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