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담예 - The Sandwich Artist
황두하 작성 | 2020-09-15 18:33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9 | 스크랩스크랩 | 13,197 View
Artist: 담예(DAMYE)
Album: The Sandwich Artist
Released: 2020-08-30
Rating: RRRR
Reviewer: 황두하
어떤 뮤지션에게는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투쟁이다. 특히,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이들 중에서 소수를 제외하고는 음악만으로 먹고살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이들이 많다. 어쩔 수 없이 음악과 별개로 알바 등의 생업을 병행하기도 하는데, 때때로 뮤지션들은 이 상황 자체를 음악에 녹여내기도 한다. 비프리(B-Free)의 [Korean Dream]이나 뱃사공의 [탕아]는 어려운 상황에서 음악이라는 꿈을 좇는 청춘과 낭만을 노래한 뛰어난 완성도의 작품이었다.
담예(Damye)의 두 번째 정규 앨범 [The Sandwich Artist]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이야기한다. 본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샌드위치 샵 알바생’이다. 가사 사이에 흩뿌려놓은 단서들로 유추할 수 있는 특정 브랜드에서 알바생으로 일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루를 시간순으로 그려낸다. 8트랙, 21분의 짧은 분량이지만, 알바생의 짧은 하루를 담기에는 충분하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 다른 일자리가 필요함을 솔직히 고백하는 첫 트랙 “구인구직”은 구체적인 상황 설정을 통해 그의 일상 속으로 초대한다.
알바생으로서 겪는 웃픈 상황을 재치 넘치게 담아낸 "테이블 닦이", "암낫욜손" 등은 본작의 컨셉에 매우 충실한 곡들이다. 한편으론 다른 알바생과 사랑에 빠진 설렘을 표현한 “영업종료”와 퇴근 후 마주한 단란한 가족의 모습에서 어릴 적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아이러니를 담은 “세 가족” 등에서 진지하게 사랑과 삶을 노래하기도 한다. 특히, “세 가족”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아 나가는 마지막 트랙 “샌드위치 드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한 가지 소재로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도 그사이에 다양한 면들을 다루는 영민한 구성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프로덕션의 변화도 눈에 띈다. 여전히 블랙뮤직의 여러 하위 장르를 아우르지만, 조금 더 힙합에 가까웠던 전작과 달리 알앤비, 펑크(Funk)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이러한 변화는 앨범의 완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본인을 비롯한 여러 세션이 참여한 사운드가 훨씬 더 다채롭고 풍성해졌다. 전체적으로 사운드 디자인과 질감에 세심히 공을 들인 것이 느껴진다. 특히, “테이블 닦이”, “암낫욜손” 같은 곡에서는 두터우면서 부드러운 베이스 사운드가 뛰어나다. “영업종료”와 “세 가족”에서 곡의 감성을 더욱 진하게 만드는 후주의 일렉트로닉 기타 라인도 매우 인상적이다.
프로덕션에 따라 퍼포먼스도 보컬의 비중이 늘어났다. 개성 있는 톤으로 빠르게 단어를 뱉어내다가도 여백을 두면서 리듬을 밀고 당기는 보컬은 딱딱한 톤의 랩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프로덕션과도 잘 어울린다. 랩은 노래 사이에 간간이 등장하며 감초 역할을 할 뿐이다. 한 번만 들어도 흥얼거리게 되는 캐치한 멜로디 어레인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다.
전반적으로 썬더캣(Thundercat)의 영향이 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레퍼런스에 머물지 않고, 담예만의 색깔로 깔끔하게 구현된 경우와 지나친 레퍼런스가 감흥을 깎는 경우로 양분되어 나타난다. 특히, 후자의 경우, “구인구직”은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의 “Good Ass Intro”가, “암낫욜손”은 썬더캣의 “Tokyo”가 즉각적으로 떠오른다. 편곡에 대한 독창적인 접근이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The Sandwich Artist]는 2020년에 발표된 가장 인상적인 블랙뮤직 앨범 중 하나다. 짧은 분량 내에서 하나의 소재를 밀어붙이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꿈을 좇는 청춘의 단상을 낭만스럽게 그려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일상적인 단어를 선택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를 엮어서 재치 넘치는 표현의 가사로 감흥을 배가시키고, 섬세하고 세련된 프로덕션으로 쾌감을 안긴다. 담예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이 제대로 빛을 발한 셈이다. 그렇게 ‘The Sandwich Artist’ 담예의 소소한 하루는 특별해졌다.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황두하 모든 리드머 콘텐츠는 사전동의 없이 영리적으로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11 코멘트 등록 pusha pusha (2020-09-27 23:08:35 / 1.237.144.***)추천 1 | 비추 0 쇼미 나가면 탑5 안에는 가볍게 들어갈만한 실력인데.. 걍 쇼미 나가시면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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