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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국내리뷰 기린 – 사랑과 행복

한국힙합위키

기린 – 사랑과 행복

강일권 작성 | 2014-12-22 00:02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2 | 스크랩스크랩 | 35,399 View

Artist: 기린

Album: 사랑과 행복

Released: 2014-11-20

Rating:Rating: RRR+

Reviewer: 강일권





미국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던 장르,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을 표방하는 뮤지션 기린은 꾸준히 결과물을 발표하며, 다소 장난스러움과 이벤트성이 느껴졌던 초기적 선입관을 걷어냈다. 다만, 그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고 논하려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 음악적 뿌리와 구현된 결과물이 맞닿아 있는 지점에 대해서다. 이에 따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기린의 음악은 과대, 혹은 과소평가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일단 그가 내세우고 많은 이가 인지하고 있는 해당 장르적 관점에서 엄밀하게 본다면, 기린의 음악은 중요한 약점을 노출한다. 뉴 잭 스윙은 알앤비, 댄스 팝, 힙합 등등, 여러 장르가 결합하여 탄생했으나 어디까지나 알앤비의 범주에 속한다. 그렇기에 그저 프로덕션뿐만 아니라 이른바 알앤비적 보컬의 구현과 맞물림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기린은 바로 이 지점, 보컬 자체와 어레인지 면에서 장르적 정수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이것이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의 뉴 잭 스윙이 미완일 수밖에 없는 치명적 이유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장르의 전설들인 가이(Guy), 블랙 스트리트(Blackstreet), 뉴 에디션(New Edition), 벨 비브 드보(Bell Biv DeVoe) 등의 음악만 들어봐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고 흥미로운 건, ‘한국으로 넘어오며 여과 과정을 거친 뉴 잭 스윙’에 기준을 두었을 때 그의 음악이 지니는 가치와 감상 포인트가 살아난다는 사실이다. 그 중심엔 기린의 음악적 자양분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듀스(Deux/김성재 + 이현도)의 음악이 있다. ‘90년대 가요계에 랩과 힙합을 앞세운 가수들이 등장하게 되는 기폭제 역할을 했던 듀스가 발표한 곡들은 당시 미국에서 명성을 떨치던 테디 라일리(Teddy Riley)와 키스 스웻(Keith Sweat)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비록,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룩한 스타일적 구현과 달리 어쩔 수 없는 사운드와 보컬의 한계가 확연했으나 오히려 그 덕에 듀스의 보컬과 멜로디는 미국과 한국대중음악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 시절 한국에서는 미국 본토의 뉴 잭 스윙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없었다는 게 어드밴티지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들어도 그 감흥과 가치가 빛난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기린의 음악, 그리고 이번 앨범의 음악적 핵심은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기린의 랩과 보컬은 의도한 연출과 오마주를 통해 알앤비 보컬리스트로서 부족함을 상쇄시킨 셈이다. 실제 타이틀곡 “요즘 세대 연애방식”을 비롯한 대부분 곡에서 듀스의 영향은 고스란히 드러나며, “너의 곁에” 같은 곡은 듀스의 “다투고 난 뒤”나 “너만을 위해”의 애정 어린 재현 그 자체다. 기린을 비롯하여 디제이 매직 쿨 제이(DJ Magik Cool J), 디제이 프렉탈(DJ Fraktal) 등이 구축한 프로덕션도 듀스가 전파한 당대 한국 뉴 잭 스윙의 감흥을 잘 구현하고 있다. 강렬한 리듬 파트, ‘80년대 미 뉴 잭 스윙에 영향받은 특유의 과용된 신스, 단선적으로 뻗어가는 멜로디, 발라디한 곡의 적절한 배치 등등, ‘90년대 한국의 블랙 뮤직 선봉장들인 듀스, 현진영, 언타이틀 등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흐뭇한 웃음을 지을만한 곡들이 즐비하다. 뿐만 아니라 프랙탈이 만든 두 곡(“Jam”, “눌러봐”)은 제대로 된 뉴 잭 스윙의 감흥을 전달하는데, 그중에서도 “Jam”은 드럼, 신스, 보컬 샘플, 보컬 구성, 모든 면에서 본작의 백미라 할만하다.


다만, 아무리 음악적 방향성이 확실하다 해도 전반적으로 (앞서 언급한 알앤비적 보컬과는 다른 관점에서 보더라도) 보컬의 구성과 진행이 단조롭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이미 첫 앨범과 몇 개의 싱글을 통해 당대 스타일과 사운드의 재현에 대한 의지와 감각은 꽤 설득력을 얻은 상태이기에 본작에서는 좀 더 치밀한 어레인지를 기대했다. 특히, 코러스 파트에서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점이 영 아쉽다.


어쨌든 [사랑과 행복]은 [그대여 이제]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동안 영화계와 음악계에서 툭하면 남용되는 바람에 거부감이 생겨 그렇지, ‘한국형’이란 표현이 적재적소에 제대로 된 의미로 사용된다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고유의 특징이 살아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듀스의 음악은 미국의 뉴 잭 스윙이 우리네 가요 감성과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탄생한 ‘한국 뉴 잭 스윙’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며, 그럼으로써 더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기린은 이를 적극적으로 계승하여 기술적으로 좀 더 발전시키는 데 성과를 거두었고, 이 또한, 작품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만약 그의 음악에서 ‘한국 뉴 잭 스윙’의 범주를 벗어난, 뉴 잭 스윙 본연의 맛을 원한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노력과 시도를 기대해야 하겠지만, 지금의 노선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게 들을 수 있고,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그러한 바람, 혹은 기대가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한국형 힙합’이나 ‘한국형 블록버스터’와는 달리 ‘한국형 뉴 잭 스윙’은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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