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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플레이야인터뷰 조광일 “모든 래퍼들이 저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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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S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4월 25일 (월) 01:07 판 (새 문서: 조광일 “모든 래퍼들이 저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힙플 5 2046 Updated at 2022-04-14 20:44:08 Q. 안녕하세요. 조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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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일 “모든 래퍼들이 저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힙플

5

 2046 Updated at 2022-04-14 20:44:08









Q. 안녕하세요. 조광일 님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래퍼 조광일이라고 합니다.




Q. 조금 과거 얘기를 해보고 싶은데, 조광일 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어떤 아이였던 것 같으세요?

제가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이랑도 두루두루 잘 놀고 리더였던 적도 있었는데, 중학교로 올라가면서부터는 제가 하고 싶은 거에 빠지는 바람에 막 이렇게 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애 그 정도




Q. 중학교 때 하고 싶은 일에 빠졌다고 하셨는데, 원래 꿈은 래퍼가 아니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제가 가벼운 꿈들이 지나갔던 적은 많은데, 래퍼만큼, 아니면 래퍼보다 더 갖고 싶었던 꿈이 프로게이머였어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프로게이머.




Q. 대개 꿈을 가지면 노력을 하기 시작하잖아요. 당시에 조광일 님은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었나요?

세상에 다양한 직업이 있고, 그에 맞는 노력을 했던 거예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서 그 게임을 진짜 많이 했고, 어떻게 하면 이길까 밤새 하고 그런 것들? 그냥 많이 했죠 그때도




Q. 그러면 어떤 계기로 프로게이머에서 래퍼를 꿈꾸게 됐나요?

일단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리그가 안 좋은 사건에 휘말려서, 그 리그가 없어지게 됐어요. 그 직업이 사라졌다고 봐도 되는 거죠. 그러고서 중학교 때 친구들끼리 학교 끝나면 노래방도 가고 피시방 가고 했는데, 피시방은 가서 게임을 하다가, 노래방에 가면 제가 노래를 불러야 하는 데, 못하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노래가 안되니까 랩이라도 해보자. 그리고 해보니까 재밌는 거예요. 그런데 랩을 노래방에서만 하니까. 집에서도 언제나 하고 싶은데, ‘노래방에서 하는 게 집에서는 안 되나?’ 해서. 그날 그냥 바로 “녹음하는 법” 이렇게 알아봐가지고.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Q. 그 당시에 자주 불렀던 힙합 노래가 있었나요?

그때 거의 다들 비슷할 것 같긴 한데, 노래방에 가면 드렁큰타이거, 다이나믹 듀오 님들. 그렇게 많이 불렀던 것 같아요.




Q. 조광일 님은 래퍼에 대한 꿈을 주변에 바로 얘기한 편이세요?

근데 그때 제가 ‘래퍼가 될 거야, 이걸로 먹고 살 거야.’ 이런 건 없었고, 지금도 약간 그렇지만 단순히 재밌어서 랩하는 거였어서, 작업물을 MP3로 만들어서 들려주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고 말고 가 크게 없었어요.




Q. 부모님께도 ‘랩을 해보고 싶다’ 말씀드리지는 않았나요?

그런 거를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았는데, 그냥 ‘나 이거 뭐 하는데, 잠깐 랩 녹음 좀 할게’하면 깊게 생각을 안 하는 거죠, 부모님도. 그래서 ‘나 이거 녹음 좀 할게' 하면 들려달라고 하지도 않았어요. 그냥 잠깐 지나가는 취미 이런 걸로 보셔 가지고.




Q. 그러면 처음 랩을 시작할 때, 작업환경은 어떠셨어요?

어떤 매장에서 산 9900원짜리 마이크랑, 곰 녹음기 인가 그걸로 했을 거예요. 비트도 노래방 MR 틀어놓고, 탁자에 헤드셋 하나 끼고 9900원 마이크 하나 놓고 녹음기 딸깍 누르고, 그렇게 했어요.




Q. 그럼 그렇게 녹음을 하고 한번 들어보잖아요? 그때 어떠셨어요?

사실 랩할 때는 심취해서 모르잖아요. ‘내가 짱이다’ 이건데, 그거를 뱉어놓고 들어보니까 와 ‘세상에 이렇게 구릴 수 있는 랩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한테 실망을 했어요, 이상하게. 이렇게 구린 걸 친구들 앞에서 뭐라도 된 것 마냥 불렀던 게 창피해가지고, 그래서 그걸 듣고 이거를 제대로 해야겠다도 아니고, 이걸 안 구리게 만들어봐야겠다 해서 했던 게 있었던 것 같아요.






Q. 지금은 트레이드마크가 된 랩 스타일은 어떻게 얻게 된 건가요?

스무 살, 스물세 살 제가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진짜 너무 재밌고 불타서, 장난스럽게 한 게 컸는데, 서울에 올라와서 방을 잡고 2년 동안은, 거의 산속에서 수련하듯이 계속 계속 안되는 걸 되게 하려고, 안되는 걸 되게 하려 한 게 발음적인 부분이나, 사실 느리게 하면 발음이 거의 다 되잖아요. ‘가나다라마바사'하면 근데 빠르게 하면 안 될 때가 많잖아요. ‘가나다라마바사' 이게. 그래서 이거를 되게 하려고 좀 더 좀 더 하다 보니까 속도가 빠르고, 빨랐을 때 발음이 잘 되게 끔, 한계를 뚫다 보니까 이렇게 자리가 잡힌 것 같아요.




Q. 다른 인터뷰에서 랩 연습을 하다가 혀가 다치기도 했다고 밝히셨는데, 사실 그런 상황이 오면 낙담을 할 법도 하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극복이라기보다는, 혀를 씹어서 아프고 그래도, 좌절했던 적은 없어요. 아프니까 랩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그것 때문에 화가 나고, ‘빨리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데’ 이것밖에 없었지, 그것 때문에 낙담했던 적은 없었어요. 오로지 랩이 하고 싶은?




Q. 그러면 당시에 래퍼의 길을 걸으면서, 다른 래퍼들을 봤을 때, 리스너로서 보던 힙합 씬이랑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에는 제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 불만이 많았죠. 제가 겪었던 일들이 그런 일들이었으니까. ‘래퍼가 실력이 중요하지 않다.’ ‘래퍼는 무조건 관종이어야 되고, 랩이 아니고 다른 걸로도 래퍼가 될 수 있다.’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때 당시에는 씬도 씬이지만, 제가 겪었던 일들이 그때 씬이랑 완전 안 맞다고 보지는 못하고, 어느 정도 교집합도 있고 했어서. 그때 당시에는 약간 불탔던 것 같아요. ‘이거를 바꿔야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내가 한번 나서봐야겠다.’ 이런 약간 이상한 자신감 같은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Q. 약간 ‘랩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 이런 예시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요?

그렇죠. 사실은 그런 게 없었으니까.




Q. 그동안 미디어에서 나오는 래퍼들이 랩 외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게 많았잖아요. 그러면 꿈을 키우면서 공감대를 느끼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공감대라기보단 사실 무조건 제 기준이지만, 평소에도 멋있던 어떤 래퍼가, 미디어에 나와서 그런 걸 한다고 해서 저는 한 번도 ‘어우 씨' 했던 적이 없어요. 전에 제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사람들 중에선. 그래서 그런 걸 가지고 반감을 가진 건 없어요.





Q. 처음 <곡예사>를 만들었을 때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인기보다는 일단 자신은 있었어요. 사람들이 ‘어우 얘 랩 죽인다.’라고 들을 자신은 있었어요. 근데 이게 엄청 널리 널리 퍼져서 이렇게 될 거는 사실 상상을 못했어요. 근데 이거를 듣게 되면 지금의 상황보다는 조금 더 좋아질 거야, 좀 더 알아줄 거야 그런 자신감은 있었어요. 제 자신감 맥스가 100% 면 그때는 200%, 300% 그랬어요.




Q. 그러면 곡예사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은 어떤 거였나요?

일단 처음에는 제가 한 개 한 개를 뚫고 뚫고 하다 보니까, 나만 할 수 있는 랩을 만들어보자. 그리고 오로지 랩으로만 채워보자. 제목 그대로 곡예를 부리는 것처럼, 빡세고 나만 할 수 있고, 그때 당시에 나오지 않는 음악으로 한번 ‘그냥 해보자.’하고 그냥 했던 것 같아요.




Q. <곡예사>를 들었을 때, 랩에 감정이 실리는게 느껴졌는데, <곡예사>에는 어떤 감정이 많이 들어갔나요?

곡예사를 만들 때는 , 작업을 하면서 제가 느껴지잖아요. 어떤 트랙을 작업하면서는 ‘이거 좀 구린것 같은데’ ‘이거 별론 것 같은데?’ 느껴지기도 하는데, <곡예사>를 작업하면서는 살짝은 파이터기질?, 랩으로있어서 ‘니네 다 뒤졌다.’ 이런게 있었어요. 그때 감정을 빨리 곡으로 완성해서 내고싶은, 끓어오르는게 있었어요.




Q. <곡예사>를 보면 조언이라고 해야 할까요? 조광일 님에게 훈수를 두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잖아요? 그 말들을 랩으로 재연하면서 감정이 복받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곡예사>라는 트랙이 복받쳐서 우는 트랙보다는, 화난 트랙이잖아요? 그거를 생각하면, 그때는 화가 났던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입이 됐던 것 같긴 해요. (녹음) 하면서도.




Q. 그렇게 만들고 나서 주변에 <곡예사>를 들려줬을 때, 어떤 피드백을 받으셨나요?

‘피곤하다.’ ‘이걸 어떻게 끝까지 듣냐.’ ‘너무 빡세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거의 다 그랬던 것 같아요. 브라운티거 형은 그래도 저를 믿어줬고. ‘어우 씨 X된다.’ 이랬고. 그 외의 거의 다른 분 들은 ‘너 이렇게 빡센 걸 어떻게 3분 동안 듣냐' 이런 반응이었어요. ‘이런 거는 내도 안된다.’ 그런 반응이었어요.






Q. 브라운티거 님은 그래도 조광일 님을 믿어주셨는데, 곡예사가 주목을 받고 나서 브라운티거 님과는 어떤 말을 했나요?

곡을 만들기 전부터, 만드는 중에도, 만들고 나서도, 만들고 나서 주목을 받을 때도 항상 티거 형이랑 같이 있었거든요. 실시간 상황을 보면서 느꼈던 거는 ‘에휴 진짜 해냈다' 이런 게 있었던 것 같긴 해요. 네, ‘해냈다.’




Q. 그 당시에 댓글 반응도 많이 보셨나요?

네 그때 한동안은 진짜 그것만 봤어요. 저한테는 너무 과분하고 감사한, 느껴본 적이 없는 그런 관심이었어서 그것만 보고 있었어요.




Q. 피드백이 좀 다양하게 남겨졌잖아요. 어떤 피드백을 들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으셨나요?

그때 처음 나왔을 때 아직까지도 인용이 되고 있는 ‘느슨해진 한국 힙합에 긴장감을 준 것 같다.’ 그게 큰 칭찬도 아닌데 그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어디 산속에서 20년 기술 연마하다가 내려와가지고 랩하는 것 같다'는 것도 기억나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보인다.’ 이런 댓글?




Q. 다양한 반응 중에 비판의 어조로 실린 피드백을 받게 되면, 자신감이 떨어지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어떤 비판이나 비난까지도, 그런 걸 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도 배울 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부분을 이렇게 하면 좋겠다.’라고 하면 ‘너의 말을 보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고 반응하고, 저를 깎아내리는 반응을 보면 사실 저는 웃어요. 그 사람의 의견이고,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게 재밌는 현상이여서, 그것조차도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극복은 애초에 할 게 없고, 상처를 받진 않으니까. 존중은 하고 넘어가는 스타일이에요.




Q.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건가요?

쓴 것도 먹고 ‘너무 쓰네?’ 하면 뱉고, 유하게 넘어가는 것 같아요.






Q. <곡예사>이후에 얼마 되지 않아서, 정규 1집 [암순응]을 발표하셨는데, 지금 돌아보면 [암순응]은 어떤 앨범인 것 같으세요?

암순응은 제 1집이지만, 제가 [암순응]을 만들 때가 발매를 위한 데드라인을 걸어놓고 작업을 했단 말이에요. 앨범을 위한 조언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는데, 듣기로 항상 앨범을 만들다 보면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트랙을 작업하다 보면 첫 번째 꺼가 구려져서 버리고, 미루고 미루고 한대요. ‘진짜 냉정해야 되고, 해야 된다.’라고 들었는데, 저는 그냥 빨리 내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 데드라인을 걸어 놓고, 한 달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작업을 해서 냈단 말이에요. [암순응]은 랩을 취미였을 때부터 시작해서 [암순응]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 모든 커리어, 제가 생각했던, 느꼈던 모든 행동, 제 인생 이런 게 다 담겨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Q. 아마추어 때부터 응축한, 정수 같은 앨범인 거네요?

네, [암순응]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 모든 제 인생이 담긴 앨범이에요.




Q. <곡예사 remix>를 제외하면 앨범 전 곡을 피처링 없이 혼자 작업하셨잖아요. 같은 이유인가요?

피처링을 쓰지 않은 이유는 제 첫 앨범이어서, <곡예사 remix>도 <곡예사>라는 곡이 그전에 있었잖아요. <곡예사 remix>도 이거는 많은 사람이 함께해서 같이 하면 좋을 것 같고 재밌을 것 같아서 한 거고, 다른 트랙은 제 정규 1집이기도 하고, 할 말도 많아서 피처링을 쓰지 않고 저 혼자 채우고 싶었어요. 욕심이었죠. 좋은 욕심.




Q. 곡의 제목이나 가사에서 가급적 영어 사용을 지양하시는데,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거는 제가 항상 똑같이 답을 하는데, 첫 번째로 저는 영어를 잘 못해요. 그래서 영어를 쓰지 않는 거고. 두 번째는 제가 태어난 곳이 대한민국이고, 저는 한국어를 더 잘하고, 콩글리쉬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에요 사실. 그래서 영어를 쓰지 않는 것뿐이에요.




Q. 그래도 외국 힙합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은 영어 가사를 오마주 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조광일 님은 어디서 영향을 받은 편이세요?

제 음악 스타일에서는 어떤 영향을 받은건 없고, 제가 여기에 빠지게 된 영향은 외국, 한국 절반씩 섞여있는 것 같아요. 제 취향이 두루두루 많은 래퍼들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고, 어디에 꽂히면 꽂혀있는 스타일이어서.




Q. 그러면 가장 꽂힌 아티스트는 누군가요?

저는 일단 한국에서는 얘기해왔던게 이센스님이 있고, 최근에는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에서 계속하면서 그전에도 그랬지만 개코 형님도 저한테 더 큰 존재로 다가왔어요. 외국에서는 예전에 Big L을 되게 좋아했어요. Big L 하고 에미넴 이렇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Q. 키츠요지 님과 뜻밖의 디스전을 하셨었는데, 당시에 어떤 마음이셨나요?

사실 일단 첫 번째로 너무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바로. 사실 그전에도 여러 사람들이 제가 안 좋고 싫었는지. 디스를 좀 많이 받았었는데, 제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몸이 안 움직였어요. 디스를 받아도 ‘아 그렇구나.’ 근데 키츠요지 님한테 받았을 때는, 그냥 생각 안 하고 재밌을 것 같으면서, 끓어오르기도 해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Q. 키츠요지 님한테 대응한이유는 약간 ‘겨뤄볼만한 상대다.’느낌도 있었던건가요?

그렇죠. 그런 감정이랑 여러 감정이 섞였었겠죠.




Q. 그러면 그전부터 힙합 씬 안에서의 디스 문화를 좋아해오셨었나요?

저는 사실 싸우기 싫은데, 예전에 17, 18살 이때도 저를 공격해오는 사람이 많았어요. 디스도 힙합 안의 문화라서, 되게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재밌어하는데, 그래도 저는 평화를 원하는?






Q. 조광일 님의 예전 인터뷰로 인해서 ‘저스디스가 나가면 쇼미더머니 나온다.’ 이런 소문이 생기고, 쇼미더머니9 때부터 조광일 님에게 왜 안 나오냐는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그 얘기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고 싶은데, 그 인터뷰를 끝까지 보시면, ‘나갈 의향이 있다’ 였어요. 근데 온라인 세계가 그렇듯 그 부분은 중요치 않고, ‘나간다.’ 이렇게만 보여져서, 저스디스 님이 쇼미더머니에 나왔는데, 제가 그냥 안 나간 뉘앙스가 된 거예요. 그 얘기에서 말하고 싶은거는 인터뷰 끝에는 ‘나갈 의향이 있어요’라고 했었어요. 그 오해를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오해가 풀리셨으면 좋겠네요. 일단 저는 그때 [암순응]이라는 제 1집 앨범하고 쇼미더머니 9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어요. 애초부터 쇼미더머니에 대한 반감은 절대 없었고, 쇼미더머니가 우리나라에서 힙합을 알리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제 이야기를 더 꺼내고 싶고, 지금이 아니면 뭔가 앨범이 무기한 연장이 될 것 같아서. 결국 [암순응] 앨범을 택하고 앨범 작업을 해서 쇼미더머니9에 못 나가게 된 거예요.




Q. 그럼 쇼미더머니9 은 TV로 보셨나요?

아뇨, 그때는 앨범 작업을 하고 뭐하고 하느라 못 봤던 것 같아요.




Q. 그러면 바로 다음 시즌인 쇼미더머니 10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말했듯이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근데 이번 타이틀 테마가 “디 오리지널”이었어요. 거기서 ‘오? 이거는 안 나갈 이유가 없는데?’ 사실 래퍼라면 그런 얘기 있잖아요 ‘랩으로 증명해라’ 그동안 랩으로 계속 보여드려 왔는데, 저를 좀 더 날것으로 보여줄 수 있고, ‘옷 다 벗겨놓고 맨몸으로 싸우는 느낌으로 싸울 수 있겠다.’ ‘여기서 내 노력이 헛되지 않은 걸 보여주면 되겠구나’해서 나갔어요. 고민도 했지만, 그렇게 큰 고민은 없었고. 디 오리지널, 그리고 나가서 ‘보여주고 싶다’ ‘증명해야겠다’ 이런 의도로 나갔어요.




Q. 날것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날것의 모습이 잘 나온 것 같나요?

네 사실 저 자체에서는 날 것의 모습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Q. 그래도 지원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이 있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근데 되게 이상한 게 진짜 반반이었어요. 부모님은 말렸어요. 근데 친구들은 응원했어요. 동료 음악 하시는 분들은 그 안에서 또 반반이었어요. 그래서 되게 다양했던 것 같아요. 응원과 ‘나가지마라’를 동시에 들었어가지고.




Q. <곡예사> 때도 그렇고, 말리는 사람이 있어도 결정하시면 그냥 하시는 편이신 것같아요.

제가 독단적으로 하는 건 없고, 저는 모든 이야기를 들어보고 다 안고 저 혼자 생각 생각 하다가 선택을 하는 편이라서, 어찌 됐든 제 결정이죠.




Q. 쇼미더머니에 조광일님이 처음 나올 때, 방송상에서 다른 래퍼들의 인터뷰를 삽입하고, 대기실의 어색한 공기를 강조했잖아요. 실제 현장에서도 비슷하게 느끼셨나요?

사실 이게 디테일하게 들어가자면, 1차 예선을 볼 때는 저는 그냥 쇼미더머니 가기 전부터, 가고 났었을 때도, 현장에 있는 모든 래퍼들이 저를 싫어할 거라는 걸 미리 의식하고 갔어요. 실제로도 많이 그랬으니까. 근데 1차 예선 때는 대기하는데 주변 많은 분들이 저를 응원을 해주셨어요. 그때는 진짜 약간 감동? 감격을 했거든요. 근데 1차가 지나고 그 이후에 2차, 3차, 4차 때는 분위기가 완전히 반대였어요. 제가 또 하필 2차 대기할 때 맨 앞에서 있었거든요. 그때 대기시간이 엄청 길었는데, 계속 숙인 자세로 있었어요. 모두가 저를 뒤에서 약간 손가락 욕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사실.




Q. 다른 래퍼들이 조광일 님을 싫어한다고 심리적으로 추측한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하신 건가요?

일단 대기할 때는 사실 그렇게 막 직접적으로 하신 분은 없는데,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러가거나 화장실을 가면, 그냥 되게 안 좋은 말들을 했어요 당시에, 저도 그걸 들으면서 굳이 가서 제가 그 사람을 어떻게 할 필요는 없으면 (속으로) 삼키고 했었죠. 직접적인 워딩을 제가 하고 싶진 않아서. 아무튼 분위기는 그랬죠.




Q. 압박감이 진짜 어마어마했겠네요.

저한테 누가 ‘100억 줄 테니 다시 2차 현장으로 돌아가’ 하면 저는 진짜 안 돌아갈 것 같아요. 그땐 사실 너무 힘들었어요. 장기간 대기해서 허리가 아프고 몸이 아프고 이런 것도 있겠지만, 내적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랑, 여기 대부분 사람들이 제 랩을 안 좋아하시고, 그거에 더불어서 저라는 사람 자체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게 계속 느껴지니까. 좀 많이 힘들었었던 것 같아요.




Q. 그런 상황에서도 조광일님의 방식으로 극복을 하셨네요.

그 안에서 아까도 말했지만, 거기서 제가 인정하고 무너지고 거기에 속상해하는 순간, 다 끝날 것 같아서, 억지로 버텨가면서 했던 것 같아요. 여기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데, 2차 때 옆에 영잔디스 형이 있었어요. 같은 회사여서 친하고 하니까, 그 형이 없었으면 전 어떻게 거기서 버텼을지는 사실 모르겠어요. 못 버텼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그 형이 없었으면 저는 대기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안 했을 거예요.




Q. 그런 현장 분위기가 무대에서는 영향이 있었나요?

아뇨 무대에서는 그런 감정을 갖고 와서 할 여유는 없었어요. 무대에서는 그냥 연습한 대로, 연습 많이 했으니까 한대로 보여주자. 이 생각으로 일부러 머릿 속이 꽉 차게 냅뒀어요. 거기서 주눅 들고 그런 게 없진 않았겠지만, 보여주자는 게 커서.




Q. 보여줘야겠다는 게 (그런 의심들에) 음악으로 대답을 하는거네요?

네 무대 하기 전에도 ‘내가 진짜 여기서 잘하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인정해 주고 바뀌지 않을까’ 이 생각도 많았죠.






Q. 조광일 님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간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그 순간은 3차 때 1:1 배틀 미션에서 저랑 에이체스형이랑 그 무대에서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저도. 제가 몸소 체감을 했다기보다는 그렇게 들었어요.




Q. 그럼 현장에서 피드백은 없었나요? 심사위원 분들이나.

그 당시보다는 이후의 얘긴데, 코쿤형이 ‘3차에서 뭔가 생각이 바뀌었다. 그 무대를 보고’ 그 말이 제일 기억이 나요.




Q. 이후에 팀 선택을 할 때 코코팀(개코, 코드쿤스트)으로 들어가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크게 막 제가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런 건 없고, 끌려서 갔어요. 개코 형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너무 팬이었고 존경하는 래퍼셨고. 코쿤 형도 그전부터는 아니지만, 되게 존경하고 음악도 들으면, 저랑 교집합적인 부분은 없지만, 배우고 싶다 그랬어서. 사실 이것도 굳이 말해서 이거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가고 싶었어요.




Q. 댓글에서는 코쿤 님이 과자를 쥐여줘서 갔다 이런 말도 있는데 큰 영향은 없었겠네요.

없진 않겠지만, 겸사겸사




Q. 프로듀서 님들한테 음악적으로 배우게 된 부분이 있나요?

A. 이거는 너무 많아서 제가 딱 하나를 꺼낼 수 없는 것 같은데, 제 장점을 극대화해주시고. 제 부족한 부분을 완전 채워주시고, 멘탈적으로나 그냥 모든 부분을 케어를 해주시고, 저를 한 단계가 아닌 네 단계 업그레이드 해주셨어요. 아직도 너무 감사한 게 마음속에 있어요. 배울 점은 그냥 모든 것.




Q. 그러면 주로 보완을 했던 부분은 뭐였었나요?

보완을 한 부분은 디테일한 것 보다는 프로듀싱적인 부분에서 비트가 됐던, 곡의 흐름에 어떤 제 파트를 만들어주고 비워놓는 여러가지 것들인 것 같아요. 콕집어서 말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이런 부분에서는 이렇게 하면 너의 장점이 살것 같아.’ 하면 저는 바로바로 듣고 피드백을 받아드렸었거든요.




Q. 개코 님에 대한 믿음이 크셨던 것 같아요.

사실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잖아요. 개코 형은 그런 존재였는데, 하면서 더 믿음이 커져버린 거죠.




Q. 쇼미더머니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게, 파이널 1차는 원래 프로듀서랑 같이 하는 무대가 아니었잖아요. 그런데도 다이나믹 듀오를 피처링으로 개코님과 같이하셨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개코 형님이랑 저랑 곡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내가 할게’ 이런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어요. 딱히 의도는 없었어요.




Q. 곡 제목도 <가리온>이었잖아요. 사실 힙합 씬에서는 상징적인 이름을 이렇게 대중적인 무대에서 보여주신 건데, 작업과정이 궁금해요.

<가리온>은 파이널을 준비할 때 파이널 준비 기간 첫째 날부터 준비를 시작했는데, ‘뭘 할까’하다가 <쿠키영상> 곡을 먼저 정하고, 나머지 한 곡을 고민고민하다가 개코 형이 갑자기 ‘광일아 너 이건 무조건 들어봐. 너 그냥 들어봐. 일단 너 좋아할 만한 곡이야‘하셨는데, 사실 제가 비트에 대한 취향이 많이 까다롭고 진짜 꽂히지 않으면, 몸이 나가질 않는 스타일이어서, 개코 형이 그렇게 얘기했을 때 긴가 민가 했거든요. 텍스트로만 봤을 땐. 근데 다운받아서 듣고 ‘와!’ 그래서 바로 픽스됐어요. 어느 정도의 랩을 하시는 분들은 “가리온”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알잖아요. 제목을 가리온으로 하면 말이 달린다. 그런 의미도 있어서, 여러 가지로 딱이었어요. 의도라기보다는 그냥 하고 싶어서 했던 것 같아요. 파이널까지 갔으니, 여유도 있고 부담감도 없으니 뭘 하자 이런건 없었어요. 끝까지 보여주자.




Q. “가리온”이라는 아이디어가 갑자기 스치듯이 꽂힌 건가요?

비트를 듣다가 갑자기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어요. 첫 번째로 나온 제목 아이디어였는데, 그걸로 해놓고 작업을 했어요.




Q. 쇼미더머니 10에 있어서 많은 래퍼들이 싱잉랩을 했잖아요. 근데 조광일 님은 기존 랩스타일을 고수해 오셨는데, 사람들이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더라고요.

싱잉랩을 안 하는 이유는 ‘싱잉랩이 싫어서’ 이런 이유는 없고, 굳이 해야 될 이유가 있나? 그냥 제가 해오던 거 여기서 좀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 그냥 싱잉랩을 할 이유가 없었어요. 원래 랩스타일이 제가 제일 잘하는 거기도 하고, 여태까지 해왔으니까 보여드린 거죠.




Q. 필요성을 느끼시지는 않으셨나요?

필요성을 못 느끼진 않죠 사실, 저도 싱잉랩을 했던 적도 있고 해서 제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지금 당장은 이게 재밌으니까 하는 건데, 그런 것도 하지 않을까 나중엔.




Q. 쇼미더머니 2차 때의 공기가 불편했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코코팀에서 연습하는 장면이 나올 때 소속감이나 친밀감을 많이 느끼신 것 같더라고요.

사실은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서, 처음 팀이 된 순간엔 어찌 됐건, 아무리 죽자고 싫어했던 사람이었어도, 팀이니까 뭔가를 해나가야 되잖아요. 근데 소속감이 들어서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얘기가 통하고 제가 뭔가를 얘기하면 받아주고, 음악적인 교류를 쌓는 게 재밌고 신나고, 행복한거에요. 코코팀에 들어간 매 순간이 행복했던 것 같아요. 너무 재밌고, 너무 고맙고.




Q. 조광일 님도 팀원분들을 만나기 전에 생각했던 이미지가 있었을 텐데, 실제로 만났을 때 의외였던 점이 있었나요?

의외였던 점이 없었어요. 겉핥기로 생각했던 성격이 다 그대로였던 것 같아요.




Q. 팀원들하고 그렇게 작업을 하면서 그전에 있던 압박감이나 소외감이 극복된 것 같아요.

팀이 생기니까 극복이라기보단 그런 생각이 안 났어요. 팀 안에서 이야기하고 뭔갈 꾸며나가고, 물론 그것도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 안이였지만. 극복이라기보단 생각이 안 났어요. 너무 행복하고 좋았던.




Q.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나요?

그렇죠 사실 회사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선 처음이었죠. 저도 방송을 보면서 보여요. 팀 선택 전엔 우울하고 다크 다크 한 게 뿜어져 나오는데, 팀이 되고 나서 이런저런 연습 한 거나, 같이있을때 보니까 되게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저도 그래서 느껴진 것 같아요. 저 땐 진짜 우울하고 다크하고 그랬는데, 이때는 행복하고 재밌었고 그랬구나. 프로듀서 님들도 디테일하게 하나하나를 신경 써주시고, 저희보다 더 바쁘시고 힘드셨을 텐데. 한 번도 티를 안 내시고 해주신거에,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한거에 저도 행복해졌죠. 너무 감사했죠.




Q. 원래 힙합 씬에서 조광일 님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셨나요?

지금은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신다.’도 있고, 저의 쇼미더머니 이전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다가, 더 많은 모습을 보니까. ‘이런 사람이었구나 내가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해서 오해가 풀린 느낌도 있는 것 같아요.




Q. 요즘은 조광일 님에 대해 귀엽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방송에 나온 모습들이 제가 의도적으로 이랬고 저랬고는 없어요. 모든 분들이 곡만 들으셔서 오해를 하고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계시다가,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더 많은 부분을 보시고 저에 대한 생각이 형성이 된 거지 저는 바뀐 게 없어서, 그게 방송에 나가고 그게 제 모습이거든요.




Q. 파이널은 문자투표가 집계에 들어가니까 사람들이 조광일 님을 진심으로 응원해야 투표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우승자로 불리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우승을 하게 됐을 때는, 우승이란 타이틀에 대해 기대를 크게 하고 있진 않았거든요. 근데 그걸 딱 듣자마자 너무 당황스러웠죠. 당황스럽고, 그때 우승 소감 말하는데 어버버 해가지고,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생각도 안 하고 있었거든요. 너무 당황스럽고 ‘이 자리가 맞나?’라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걸 포함해서 같이 고생하고 도와주신 형들, 팀 코코 사람들한테 너무 감사했죠.





Q. 우승 이후에 어떻게 지내셨어요?

요즘은 그냥 스케줄 있으면 하고, 작업은 평상시에 하던 것처럼은 못하고 있지만, 틈틈이 하면서 그냥 바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Q. 인기를 실감하시는 부분이 있나요?

제가 집, 작업실, 스케쥴 빼고는 밖에 잘나가지를 않아서. 근데 그 와중에도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많고. 제 SNS나 팔로우, 이런 거로 체감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가장 체감되는 변화는 어떤 걸까요?

변한 거는 할 일이 더 많아진 거? 그 이외에는 변한 건 없다고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은 사실 단편적인 모습을 보다가 다양한 모습을 보니까, 전에는 길 가다 저를 보면 때릴 것 같은 인상이고 음악이고 그랬는데, 많은 모습을 보고 오해를 풀고, 물론 오해를 준 적은 없지만, ‘이런 면도 있구나’하고 응원 자체가 훨씬 많아진 것 같아요.




Q. 자신감에는 변화가 없을까요?

자신감보다는 평소대로 작업하고, 좀 더 다양한 걸 보여주고 싶다 정도지, 우승을 해서 자신감이 이렇게 업돼서 뭘 하든 되겠다. 이런 건 없어요. 마음가짐은 그전이랑 똑같고, 더 다양하고 넓어진 작업을 하고 싶고 뿐이지, 자신감 자체는 똑같은 것 같아요. 그전에도 항상 랩을 하는 거에 있어서 자신감이 계속 있었으니까.




Q. 최근에는 MAMA 무대에 오르셨잖아요. 거기서 조광일 님 무대가 끝나고, 다른 래퍼 분들이 나란히 서는 모습이 나왔는데, 어떤 느낌을 받으셨어요?

사실 제가 생방송으로 모두가 서있는 모습을 보진 못해서, 그때도 그냥 ‘내가 할거 잘하자’이랬는데 나중에 영상으로 보니까 되게 감사한 거에요 사실 보면서. MAMA라는 무대라는 게 타이틀이지만, 제가 랩을 하고 있고, 옆에서 기라성 같은 분, 잘하시는 분이 같은 한 무대에 있을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감사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못 느꼈는데, 그 이후에 영상으로 보면서 느꼈어요.




Q. 커리어만 봐도 근 2년 동안 계속 달려오셨는데, 좀 쉬고 싶다거나 이런 생각이 들진 않으셨어요?

사실 달려왔다는 게, 쉬면서 랩 한 것도 있고, 바쁠 때 랩한 것도 있어서. 쉬고 싶다는 없는 것 같아요. 하루 이틀 어디 놀러 가고, 고향을 가고 이런 건 있겠지만, 음악을 쉬고 싶다는 건 없는 것 같아요.




Q. 그럼 아직도 랩 작업을 하시는 게 재밌으신 건가요?

그렇죠




Q. 조광일 님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으신 생각은 없으세요?

장르는 근데 지금 당장 구현이 안 될 뿐이지, 저는 R&B도 발라드도 하고 싶고, 그냥 여러 가지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5년 내로 안 보이긴 하겠지만, 마음은 있죠.




Q. 아직 조광일이라는 래퍼로서 증명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죠, 콕 집어서 말하기보다는, 저로서는 작업과정이 재미가 있어서 하지만, 밖에서 볼 때는 계속 계속 더 원하는 게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어떤 거든, 랩이 아니더라도, 다른 식으로도. 랩을 하는 래퍼로서는 증명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래퍼로서 조광일님의 목표가 있으신가요?

래퍼로서의 목표는 그냥 계속 재밌게 작업하고,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고 그 희열을 느낀 작업물이 나오고, 그걸 듣고 많은 사람들, 혹은 적은 사람들이라도 거기에 공감하고 느끼고 하면 그게 다인 것 같아요.




Q. 그럼 나중에 조광일이라는 래퍼를 돌아봤을 때 어떤 래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그냥 계속 노력하고 그게 보이고, 멋있는 래퍼였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시면 편하게 해주세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항상 저의 음악을 들어주시고, 많은 관심 과분한 사랑 항상 너무 감사드린다고 전해드리고 싶고, 제가 이거를 죽지 않는 이상 계속하니까, 저를 좋아해 주시는 마음을 음악으로 계속 보답해 드리고 싶고, 너무 감사드린다고 전해드리고 싶어요.







[CREDITS]


PRODUCER 김홍민 @boundlessb

CAMERA 주진재 @jinjae_ju

LIGHTING 김유빈 @yubin0712

VIDEO EDITING 김홍민 @boundlessb

MOTION GRAPHICS 정상훈 @jaylefffff_

INTERVIEWER 유어랩 @urr_rap

PROJECT MANAGER 박준영 @itsjoonbug

AUDIO RECORDING 이재원 @seoulcyberland

via https://hiphopplaya.com/g2/bbs/board.php?bo_table=interview&wr_id=15783&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