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title: [회원구입불가]Melo2012.12.10 21:20추천수 1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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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light] 소리헤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음악적 이론을 모르는 채로 프로듀서, 비트메이커라는 분야에 지망하는 사람들은 샘플링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작곡 방법보다는 접근성이 높고, 비교적 쉽게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샘플링은 사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어려운 작법이다. 단순히 자르고 붙이고를 넘는 뒤집고 쪼개는 등의 복잡한 과정은 배치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하며, 자신이 원하는대로 샘플을 운용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재창조의 미학이 있는 샘플링, 그리고 소리에 대해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를 가진 중고 신인(?)이 있다. 바로 소리를 헤다, 프로듀서 소리헤다다.
LE: 반갑습니다. 먼저 힙합엘이 회원 분들께 인사 부탁 드릴게요.
소리헤다: 안녕하세요. 저는 소리헤다라는 프로듀서고요. 2011년 2월에 정식 데뷔해서 이제 2년 차가 된 신인입니다. (웃음)
LE: 얼마 전 [소리헤다 2]를 내셨는데, [연우]로부터 딱 1년만이잖아요. 1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었나요?
[연우]를 발매하고 나서 하이라이트 레코즈(Hi-Lite Records) 친구들 앨범의 믹싱, 마스터링을 했고요. 또, 제리케이(Jerry.K)의 [연애담 : 생각해 볼만한 사랑 이야기]이나 이번 앨범인 [True Self]도 믹싱을 맡아 했어요. 주로 엔지니어링을 많이 했어요. 겟 백커스(Get Backers) 앨범에도 5곡 정도 주고, 엔지니어링을 했고요. 술제이와 타래 앨범에도 곡 하나를 줬고요. 그리고 올해 2월부터 본격적으로 제 앨범 준비를 들어갔고요. 사실 앨범을 되게 엉뚱하게 시작했어요. 올해 1월 말 쯤에 디깅을 한번 갔다 와서 LP를 한 4,50장 정도 사왔어요. 그 사온 것들을 듣다가 갑자기 삘을 딱 받아서 2집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만들어서 가을쯤에 발매하겠다고 생각했죠. 중간중간에 동료들 것들을 하다 보니까 좀 늦어졌어요.
LE: 그래도 어느 정도 계획대로는 나오게 된 것 같은 데요? 가을 쯤이라고 하셨으니까…
정말 간신히 나왔죠. (웃음) 못 나올 뻔 했는데… 굉장히 힘들게 나왔어요.
LE: [소리헤다 2]가 발매되고 나서 [소리헤다 2]에 대한 반응이 트위터에서 꽤 뜨거운 것 같더라고요. 본인이 느끼기에는 반응이 어떤 것 같나요?
사실 트위터만 봐서는 모르겠어요. 트위터는 어떻게든 연관된 사람들끼리 커넥션이 되어있다 보니까… 이를테면 저번에 총선 때도 트위터에서 ‘와~ 젊은이의 승리다!’이랬는데, 서울권만 그랬고 나머지는 다 졌잖아요. (웃음) 그런 것처럼 아직 트위터만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근데 아무래도 두 번째 앨범이다 보니까 전보다는 반응이… 그리고 참여진 이름빨도 있고… (웃음) 프로듀서 앨범은 참여진의 이름빨로 가는 겁니다. (웃음)
LE: 어쨌든 반응은 어느 정도 좋은 걸로…
네. 생각보다는 많아서 깜짝 놀랐었어요. ‘이거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 1집은 처음이라... 뭐랄까, 제 자신을 다 표현하지 못한 느낌? 1집 때 겁을 너무 많이 먹어서 ‘어느 정도 듣기 쉽게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좀 있어서 몇몇 곡이 좀 아쉬운데, 2집은 그런 부분 없이 ‘몰라.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했죠. (웃음)
LE: [소리헤다]와 [소리헤다 2]에 대한 내용은 뒤에서 더 자세하게 하도록 하고요.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볼게요. 일단 힙합음악을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중2, 중3때 맥스 3집인지 나우 3집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두 앨범이 나오던 시절이었어요. 몇 년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네요. 그때 두 앨범 중에 한 앨범에 한창 퍼프 대디(Puff Daddy)의 “I’ll Be Missing You”가 완전 대박치던 시절이어서 그 곡이 A면에 있었고, B면에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의 “Hypnotized”가 있었어요. “I’ll Be Missing You”는 그냥 팝 같아서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z)랑 다른 걸 잘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Hypnotized”를 듣고 맛이 간 거죠. ‘이거 뭐지?’싶었죠. 그래서 그때부터 (힙합에) 완전히 빠졌어요. 그때는 (제가 살던 데는) 깡시골이라 인터넷도 없고 해서 음반점을 가서 흑인 얼굴이 그려져 있거나 일단 뭔가 냄새가 난다 싶으면 들입다 샀었어요. 그렇게 힙합을 접해서 처음엔 ‘나는 훌륭한 랩퍼가 되겠어.’라고 했었죠. (웃음) 고등학교 때는 가사도 막 써보고, 랩도 해보고… 나스(Nas)랑 블랙칼리셔스(Blackalicious), 쥬라식 5(Jurassic 5)를 많이 들었었어요. 주로 베이 에이리어(Bay Area) 쪽에 많이 빠졌던 것 같아요. 들으면서 ‘와, 이건 짱이야.’이러면서… (웃음) 그렇게 시작을 했죠. 고등학교 때까지는.
LE: 지난 해에 해체된 BRS 레코드의 시작이 2004년인 걸로 알고 있어요. 2004년이면 소리헤다 씨도 20대 초반일 시절일 것 같은데, 그렇다면 BRS 레코드의 멤버들과 함께함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고 봐야 하나요?
BRS 레코드의 주축이 됐었던 김박첼라 형이라든지, 대표였던 카말(Kamaal) 형이라든지… 그땐 아날로그 소년도 없었어요. 그런 형들이랑 친하게 지냈었어요. 춘천에서 대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BRS 레코드라는 이름이 갓 생겨서 거의 주축은 그 형들이었죠. 저야 뭐, 그때 2005년 1월에 군대를 갈 사람이라서 뭘 하진 않았었어요. 저는 정확히 말해서 제대를 한 2007년 1월부터 제대로 했었어요. 2007년에 아날로그 소년의 앨범, [정류장]에 맨 마지막 리믹스 트랙을 실었는데, 그 트랙이 사실상 저의 첫 공식적 작품이죠.
LE: 김박첼라 씨와 카말 씨와 친하게 지내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만나서 친해지게 되신 건가요?
김박첼라 형을 제일 먼저 만났어요. 그때 김박첼라 형이 학생이었고…
LE: 같은 학교셨나봐요?
네. 처음에는 같은 학교였어요. 나중에 국민대로 도망가긴 했지만… 그래서 제가 처음에 학교를 가서 우연치 않게 제가 알던 형과 김박첼라 형이 아는 사이였는데, 제가 그 알던 형의 집에서 놀고 있는데 김박첼라 형이 온 거예요. 그래서 처음보고 ‘어, 뭐지?’하고서 인사하고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죠. 그 당시 같이 다닌 학교가 춘천에 있는 학교였는데, 거기서 베이 에어리어 힙합 듣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웃음) 근데 그때 때마침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김박첼라 형이 쥬라식 5의 앨범인 [Quality Control]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아, 역시 이게 짱이야.’이러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어, 저 쥬라식 5 알아요.’라고 하면서 서로 아는 것들 나누고, CD사고, 같이 술 먹고 그랬죠. (김박첼라 형이 그때) 클럽 슬러거(Slugger)에서 공연을 할 타이밍이라서 저 형도 공연하고 나도 힙합하고 싶고 해서 ‘훌륭한 랩퍼가 되겠어.’라고 했었죠. (웃음)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아날로그 소년은 옆 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만났는데 저는 그 당시에 랩을 드럽게 못했었고, 아날로그 소년은 느낌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에이씨…’하면서 관두고, (웃음) 원래 기계 쪽이나 턴테이블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제가 김박첼라 형을 만나게 된 계기가 됐던 알던 형이 DJ였어요. 그 형이 LP를 가지고 있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비트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열심히 만들기 시작했었죠.
LE: 근황을 말씀하시는 걸 보면, 엔지니어링도 굉장히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프로듀싱과 엔지니어링 중에서는 어떤 걸 먼저 시작하셨나요?
프로듀싱을 먼저 시작했죠. 사실 프로듀싱이라기보다는 비트 메이킹이 맞는 말이겠지만… 컴퓨터 한대랑 중고 가게에 냉장고 사러 갔다가 인켈 턴테이블이 중고로 있길래 ‘오! 나이스!’해서 그걸 사다가 알던 DJ 형에게 레코드를 빌리거나 비싸긴 했지만 춘천의 레코드 가게에서 레코드를 사다가 돌리면서 애시드(ACID) 2.0에 가져다 놓고 뭣도 모르면서 자르고 붙여보면서 시작을 하게 됐죠. 엔지니어링은 완전 나중에 시작했어요. 2007년인가… 제대로 된 엔지니어링이라고 말하기도 좀 힘든… (웃음)
LE: 이야기를 들어보면,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보면 되겠네요? 그전까지의 역사는 사실 있으나 마나 한 느낌이 없잖아 있고…
그렇죠. 있으나 없으나 아무도 모르니까…
LE: 춘천 쪽의 학교를 다녔다고 말씀하셨는데, 포털 약력에 보면 한림대 철학과라고 나오더라고요. 철학과하고 음악은 전혀 다른 분야잖아요. 연계가 쉽게 되지 않는데, 김박첼라 씨라든지 여러 주변의 인물들을 만난 건 과에서 뵌 건가요, 아니면 동아리로 만나시게 된 건가요?
힙합 동아리에서 만났었죠. 활동은 잘 안 했지만… (웃음) 만난 건 거기서 만났는데, 활동은 잘 안하고 우리끼리만 놀고…
LE: 예전에 랩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2007년 전이겠죠?
2002년도에 관뒀어요. (웃음) 시작하자마자 관둔 거죠. 아날로그 소년 만나고 보니까 딱 싹이 보이잖아요. 난 안되겠다 싶었죠.
LE: 그럼 그때 비트메이킹을 시작하셔서 BRS레코드에 프로듀서로서 소속되어 계셨던 거죠?
사실 BRS 레코드에 제대로 입단한 건 2007년이에요. 그전까지는 그냥 이름만 있었던 거죠. 그냥 형들이 ‘너 나중에 군대 갔다 와서 BRS 레코드 같이 하자. 이름 넣어버려. BRS 레코드야!’했죠.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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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럼 이제 프로듀싱 쪽 얘기로 본격적으로 넘어가볼게요. 샘플링이 주요 작법인 프로듀서신데요. 프로듀싱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샘플링을 주로 해오셨던 건가요?
그렇죠. 맨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어요. 그냥 화성학도 뭣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들입다 (샘플을) 자르고 봤었어요.
LE: 시퀀싱에 대한 관심 같은 건 별로 없으셨나요?
뭐랄까, 아예 작곡의 범주가 아니고 그냥 비트로 접근을 먼저 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심지어 그나마 알고 있던 게 도미솔, C코드. 뭐 이런 거? (웃음) 그런 것만 알고 시작을 했었으니까 이해고 뭐고 하나도 없었죠.
LE: 샘플링도 깊게 파고들면 굉장히 어려운 작법이지만 아무래도 맨 처음에 음악을 하려 할 때는 쉬운 편이니까 그러셨던 것 같네요.
네. 그리고 샘플링이 재미있었으니깐요.
LE: 샘플링 중에서도 LP로 샘플링을 하시고 직접 녹음을 한 소리들로 프로듀싱을 하고 계신다는데, 특히 mp3 샘플링을 반대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런 부분은 샘플링을 주력 작법으로 사용하는 프로듀서의 강단이 보이는 부분인데… 이렇게 샘플링을 하면서 옛날 빈티지 사운드를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이제는 레코드값에 치여서… (웃음) 근데 그게 그냥 좋아서 그래요. ‘이게 간지야.’, ‘이게 진짜야.’같은 마인드보다는 그냥 그게 좋으니까. 그리고 맨 처음에 그렇게 시작했기 때문에 저한테는 그게 당연해요. 어디선가 한번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한번은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MP3를 샘플링해서 MP3로 만든 다음에 MP3로 무료 공개 해버릴까?’했는데, 하려고 보니까 존나 재미없는 거예요. (웃음) 이거 왜 하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어려워요. 샘플을 들을 때 레코드로 하면 자꾸 돌리면서 유심히 들을 수가 있는데, (MP3는) 어떻게 들어야 되지 싶고… 익숙지가 않아서요. 예전에는 (MP3 샘플링)을 존나 싫어했거든요. 개 싫어했어요. 근데 얼마 전부터 그냥 그러려니하고 있어요. 괜히 그런 거 가지고 ‘야, 너는 존나 병신이야.’라고 욕하고 싶지도 않고, 제 자신이 더 구질구질해지는 거 같아요. 그냥 ‘니네는 니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나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할래’같은 마인드가 더 멋있는 것 같아요.
LE: 소리헤다 씨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이 아쉬울 것 같아요. MP3 샘플링과 LP 샘플링을 구분을 잘 못하니까…
심지어는 만드는 사람도 잘 몰라요. (전원 웃음) 근데 만약에 누가 MP3 샘플링을 해서 까요. 근데 그걸 가지고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고 고민한 노력까지는 깔 수 없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개인의 노력이잖아요. 그리고 제가 봤을 때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그게 당연한 거예요. 저보고 (MP3 샘플링)하라고 하면 죄의식 느낄 것 같은데,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그게 너무 당연한 거예요. 애초에 LP 샘플링으로 시작을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 정기고(Junggigo) 형도 저한테 얘기하셨는데, ‘야, 좀 둥글둥글하게 살아라.’라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둥글둥글하게 살려고요. 그냥 저는 LP를 고집하면 되요.
LE: 샘플링을 워낙 많이 하시다 보니 많은 샘플을 쓰실 텐데, 샘플 클리어는 어떻게 하시나요?
안 하죠. 이런 케이스가 있어요. 이를 테면 이제는 아티스트와 아티스트와의 관계가 아니고, 원소스를 가진 회사와 아티스트의 관계잖아요. 이윤추구를 하는 회사와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물론 클리어하는 게 맞아요. 해야 되는데, 여건이 안되니까 범법하고 있는 거죠. 근데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아무리 꼰질러도 그쪽에서 반응조차 안 해요. ‘그러냐?’하고 말아요. 왜냐하면 털어서 돈도 안 나오는 걸 아니깐요. 그거 뭐하러 신경 쓰나 하고 내버려두는 거죠. 근데 10년 정도 지나서 좀 컸다 싶으면 그때 옛날 것들 끄집어 내기 시작하는 거죠. 회사 입장에서도 그게 똑똑한 거고. 지금 끄집어 내서 뭐해요. 그래 봤자 회사에서는 득이 되는 게 없으니까. 어디서 기사로 본 것 같은데, 칸예 웨스트(Kanye West)도 한 10년 전에 샘플링 한 게 걸려서 소송 당해서 돈 냈다고. 그런 것처럼. 저도 돈을 그만큼 벌면 돈 내고 클리어할 거예요. 여태껏 했던 거 싹 다.
LE: 아무래도 지금은 감당이 쉽지 않으니까…
‘돈 없으면 샘플링 하지마. 감옥 가’라고 하면 한번 다녀오고… 그럴 생각이에요. 근데 실상 그렇게까지 할 사람이 없다는 거죠. 그리고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척척척 말을 해서 설득을 할 수가 없어요. 말주변이 좋으면 막 털면서 하겠죠. (웃음)
LE: 그래서 그냥 감옥 갔다 오신다고… (웃음)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면서 정당화 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말씀 드렸듯이 말빨도 없고요. (웃음)
LE: 샘플 클리어 이야기를 넘어가서 작년에 첫 정규앨범인 [소리헤다]가 나오기 전까지는 주로 BRS 레코드의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참여하신 건가요?
네. 근데 곡은 몇 개 안 썼어요. 그냥 실험만 해보고… 되도 않는 엔지니어링하고… 왜냐하면 그 중에 제가 그나마 제일 나으니까. (웃음) 그래서 엔지니어링을 더 많이 했죠. 인디언팜(Indian Palm) 앨범이나… 지금 들어보면 들을 수가 없는, 어디 가서 엔지니어링 했다고 얘기하기도 힘든 부끄러운 과거에요.
LE: 요즘은 BRS 레코드가 해체되고 나서 소속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다 보니까 그런 게 없는데, 예전만 하더라도 BRS 레코드가 약간 ‘외인구단’의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 집단에서만 서로 교류하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그게… (다른 사람들이랑) 안 친하니까. 아예 모르니까. 그리고 그 당시에 서울에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다 춘천, 파주 이런 데 있었고… 그래서 씬에 있는 사람들이랑 친해질 기회가 없었죠. 어떻게 할 방도도 없고… 그러니 저희끼리는 ‘그냥 우리끼리 하지 뭐. 좋은 음악 하다 보면 알아주겠지.’하면서 했는데, 아무도 안 알아줬죠. (웃음)
LE: 근데 그 이후에 BRS 레코드가 많이 알려지면서 교류가 점점 늘어나게 된 거 아닌가요?
그냥 뭐랄까, 제 생각에는 그것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 킹더형 레코드(King The 兄 Records)가 있을 때, 아날로그 소년이 UMF Super Rookies가 돼서 그쪽 사람들이랑 친해졌어요. 그 다음에 [Rebelde] 작업을 할 때 엮여서 좀 더 친해지고, 통하고 통하고 해서 다른 여러 사람들과도 친해지게 됐던 거죠. 그때 당시에도 저는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LE: 2007년에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는데 2011년에 첫 솔로 앨범이 나온 걸 보면, 왠지 자신의 실력에 믿음이 생겼을 때가 되어서야 앨범을 냈다는 느낌이 드는데…
떠밀려서 했죠. (웃음) 1집을 시작했던 게 2010년 2월? 그 정도부터 시작을 했어요. 계속 쓸 데 없는 거, 실험만 하니까 김박첼라 형이랑 카말 형이랑 둘이서 ‘야, 너 블렌딩 앨범이라도 하나 해라.’라고 해서 한 2주 정도 후려쳐서 [Jazz Quarians]라는 믹스테잎을 냈어요. 그러고도 앨범을 하나 하라고 하셔서 아티스트라면 앨범 내고 싶잖아요. 그때부터 계속 준비해서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기고 해서 앨범이 나온 거죠. 사실 2010년 6월 쯤에 파일이 다 날라갔어요. 작업물들이 싹 날라갔어요. 백업도 안 해놨고요. 근데 그 똑같은 걸 또 작업하려니까 너무 싫은 거예요. 했던 걸 똑같이 하려니까. 그래서 다시 또 새롭게 작업했는데, 그렇게 6개월 정도를 했던 거 같아요.
LE: 아까 [Jazz Quarians]이란 믹스테잎에 대한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설명을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okplayer에 소울쿼리언즈(Soulquarians)라는 팀이 있잖아요. 모스 뎁(Mos Def), 탈립 콸리(Talib Qweli), 커먼(Common)같은 아티스트들이 모인 팀인데, 그 사람들을 워낙 좋아해서 소울쿼리언즈의 아카펠라를 이용해서 만든 믹스테잎이에요. 근데 그 당시에 저한테 그 사람들의 아카펠라밖에 없었어요. (웃음) 그러니까 당연히 그걸로 할 수밖에 없죠. 나중에 1집 낼 때 쯤에 들어보니까 싱크도 안 맞고 엉망이었어요. 랩 박자에 맞게 리믹스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고… (웃음)
LE: 그 당시에 [Jazz Quarians]가 처음에는 관심을 많이 못 받고 나중에 유명세를 탔다고 들었어요.
소리헤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누가 듣겠어요. (웃음) 나중에 유명세를 탄 것도 모르겠네요.
LE: 첫 정규앨범인 [소리헤다]는 발매 하자마자 완판 되어서 본인도 한 장밖에 없다고 들었어요.
얼마 안 찍어서 금방 나간 거죠. (웃음) 생각 없이 프로모션용 나눠주다가 저도 없어서 김박첼라 형 여자친구한테 얻었어요. (웃음)
LE: 그 당시 소리헤다 씨의 인지도가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리헤다]에 대한 리스너들의 평은 혹평보다는 호평이 많았는데, 본인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구성적인 측면에서는 확실히 좋았던 거 같아요. 인스트루멘탈 넣고 랩 트랙 넣고, 인스트루멘탈 넣고 랩 트랙 넣고. 그리고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과정 같은 걸 앨범 안에 녹이고, 각 곡들이 갑자기 확 튀지 않고 슬슬 올라가는 느낌? 그런 건 잘했던 것 같아요. 단지 그게 조금 아쉬워요. 인스트루멘탈 트랙들 있잖아요. 그냥 서비스의 개념으로 넣자 해서 8마디 룹에 베이스 덧입히고, 드럼 넣고 해서 만들었어요. 크게 공들여서 작업한 건 아닌 거죠. 그냥 랩 트랙들을 위한 양념 정도라고 생각하고 넣은 건데, 그거 때문에 존나 까였죠. (웃음)
LE: 앨범이 독특한 구조였어요. 인스트루멘탈과 콜라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번갈아 가면서 배치를 시켰는데요. 분명 특별한 의도가 있을 것 같은데…
제가 그 당시에 사람들을 더 많이 불러들여서 할 깜냥이 안됐어요. 지금도 신인이지만, 그때는 진짜 완전 초짜 신인이잖아요. 그리고 친한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허클베리피(Huckleberry P)나 수다쟁이 정도가 그나마 좀 친했던 사람이었고… 비프리(B-Free)도 작업하면서 처음 만났고. 소울맨(Soulman) 형도 몇 번 뵈긴 했지만 피쳐링 부탁 드린 건 처음이었고. 그래서 제가 감당이 되는 한도 내에서 할 필요성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했고, 원래는 랩 트랙은 한 두 곡만 넣고 다 인스트루멘탈로 하고 싶었어요. 근데 한번 엎어지고 나니까… (웃음) 그리고 아날로그 소년이랑 김박첼라 형이 저한테 충고를 했어요. 인스트루멘탈 앨범은 그냥 빚더미라고. 다음 앨범 작업하고 싶으면 절충해서 한 반 정도는 랩 트랙을 넣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반반씩 섞는 걸로 하게 된 거죠. 그때 지금의 배치에 대해서 김박첼라 형한테 얘기했더니, 별로라고 했어요. 근데 그냥 쌩까고 냈더니… (웃음)
LE: 그렇게 짧은 인스트루멘탈을 많이 실으신 걸 보면, 굉장히 다작하시는 프로듀서이실 것 같은데 어떤가요?
진짜요? 완전 안 하는데… 심지어는 겟백커스 작업할 때는 제가 만들어서 들려준 게 하나도 없어요. 걔네가 와서 이런 가사를 썼는데, 여기에 맞는 비트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둘이 앉혀놓고 같이 레코드를 듣다가 ‘여기서 이 음 따고, 저기서 이 프레이즈를 사용해서 이런 식으로 만들면 어떨까?’하니까 괜찮다고 해서 만들기 시작한 거죠. 미리 만들어놓고 주는 건 없다고 보시면 돼요.
LE: 약간 주문제작같은 느낌이네요?
네. 그래야 재미있어요. 재미 있으려고 하는 건데, 공장처럼 만들어서 주는 것보다… 물론 그런 방식이 있긴 있죠. 근데 제가 재미없어요. 왜 하나 싶어요. 공장 같잖아요. 만들어놓으면 가져가고, 만들어놓으면 가져가고. 물론 그런 방식이 있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가 재미있어야죠.
LE: 왜 다작을 하냐고 생각했냐 하면, 앨범의 전개를 미리 짜놓고 그에 맞춰 만들어놓은 인스트루멘탈 중에 적합한 것들을 껴 넣지 않았을까 한 거죠. 근데 그런 게 아니고 전개에 맞춰서 그때 그때 만드시는 거군요?
네. 맞아요. 전개에 맞춰서 만든 거죠.
LE: 주로 재즈 피아노, 기타, 브라스에서 샘플을 따오신 것 같은데, 앨범을 만들 때 어떤 시대의, 어떤 스타일의, 어떤 아티스트의 음악을 많이 찾아 들으신 건가요? 혹은 샘플로 가장 많이 사용했던 아티스트가 있다면?
누가 있으려나. 특정한 사람을 많이 쓰지는 않았어요. 시대로 따지면 60년대 초반에서 70년대 중후반까지가 많은 편이고, 어느 아티스트의 음악을 특별히 많이 썼다던가 그런 건 없어요. 그렇게 안 하는 이유가 예전에 한 아티스트의 음악에서 샘플을 두 개씩 따오니까 김박첼라 형이 ‘야, 너 간지 안 나.’라고 하더라고요. (전원 웃음) 그래서 간지 안 나는 건가 해서 그렇게 안 하기 시작했어요.
LE: 일각에서는 디깅을 좀 더 해라, 샘플을 선택 폭이 너무 좁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제가 듣기에도 비슷비슷한 샘플들이 눈에 보이고요.
알바하면서 간신히 사모아서 그 정도 했으면 잘한 거 같은데… (웃음) 자세히 들어보시면 다를 거예요. 충고 고맙습니다.
LE: 디깅을 와이드하게 하기 위해서 특별히 하시는 노력이 있으신가요?
확실히 예전보다 들어오는 레코드가 좋아졌어요. 그냥 그거 뿐이죠. 그리고 샘플을 위해서 디깅한다기보다 좋아하는 음악 취향에 맞춰 디깅을 시작했어요. 레코드에 사용된 악기들도 보면서 골랐고요. 그러니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죠. 재지한 레코드가 주를 이루는 거예요. ‘레어를 찾겠어’같은 마음가짐도 없어요. 무작정 가서 디깅하는 거죠. 그게 좋으니까. 마음 먹고 샘플 목적으로만 레코드를 사면 희한한 거 많이 살 수 있겠죠. 하지만 샘플을 쓰고 나서는 듣질 않게 되더라고요. 쓰고 그냥 박아두는 거죠.
LE: 재즈를 좋아하시고, 그래서 재즈 샘플을 많이 사용하시잖아요. 근데 재즈 중에서도 스탠다드에서 비밥(bebop)으로 넘어가는 프레이즈가 있는 경우가 있잖아요. 혹시 소리헤다 씨도 그런 프레이즈를 시도해볼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런저런 시도는 많이 해보려고요. 재미있으니까.
LE: 지금도 본인의 음악을 재즈힙합으로 규정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나요?
항상 사람들한테 그렇게 얘기하는데, 재즈힙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없어요. 아니, 재즈 샘플 썼다고 재즈힙합이면 락 샘플 쓰면 락 힙합이에요? 그냥 힙합은 힙합이에요. 그냥 사용한 샘플이 재지할 뿐이죠. 재즈힙합은 쿠마파크(KUMA PARK) 뿐이죠.
LE: 소리헤다 씨의 음악이 '재즈힙합'이나 누자베스(Nujabes)와 연관이 많이 되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덧붙여 음악적 롤모델을 꼽자면?
롤모델은 사실 없는데, 굳이 꼽으라면 피트 락(Pete Rock)이에요. (누자베스랑은) 전혀 연관성이 없어요. 누자베스 음악을 즐겨 듣지도 않았고… 그냥 쉴 때 듣기 좋고, 이런 식으로 만들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죠. 완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런 아티스트가 있다, 괜찮네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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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보통 샘플링이라 하면, 재창조의 미학이 담겨 있는 작법이잖아요. 그래서 샘플을 자르고, 가공하고, 뒤집고 이런 저런 시도를 할 텐데, 소리헤다 씨는 보통 어떤 식으로 많이 만드시나요? 샘플을 악기처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얘기도 있던데…
방법이 너무 많아서… 일단 샘플을 레코드에서 추출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레코딩하고 땡이 아니고, 레코딩을 한 추출물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늬앙스의 질감으로 미리 바꿔요. 예전처럼 몇 초 정도 따서 MPC에 넣고, 몇 초 따서 MPC에 넣는 식이 아니고 아예 전체를 따요. 그런 다음에 그 전체의 질감을 바꾸는 거죠. 그런 다음에 필요한 부분을 다 자르고, 필요 없는 부분은 버리면 조각들이 되게 많잖아요. 그 조각들을 이어가면서 시작하는 거예요.
LE: 가장 기본적인 컷앤페이스트 작법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컷앤페이스트한 부분 중에 어느 한 특정 구간을 리버스 시킨다든지, 아니면 피트 락처럼 프레이즈를 차용해서 거기다가 필터링을 해서 고역대를 날려버리고, 거기에 다른 샘플을 얹어서 딜레이를 많이 걸어서 공간을 채운다든지… 뭐, 많이들 하는 방식이죠. 근데 저 같은 경우는 약간 엔지니어링 쪽의 기술을 많이 접목시켜요. 같은 트랙을 하나 더 둔 다음에 밑 트랙에서는 이펙트를 많이 걸어서 완전 이상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원 소스에 붙여서 굉장히 몽환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기도 해요. 한 트랙에서 서너 장 레코드를 섞기도 하고요. 진행되는 키가 안 맞으면 잘 안 섞이잖아요. 그런 것도 찹핑해서 딜레이랑 리버브를 많이 걸어서 두기도 하고.
LE: 모든 트랙들이 다 공들이고 열심히 만든 트랙이겠지만, 이 트랙은 정말 열심히 만들었고, 독특하고 기발하다고 생각이 드는 곡을 몇 곡 꼽자면?
2집의 첫 곡인 “출발선”. 그리고 졸리 브이(Jolly V)가 같이 한 트랙인 “자리(Position)”, 비프리랑 같이 한 “일어나 (Wake Up)”. “일어나 (Wake Up)”도 그냥 들어보면 프레이즈 샘플 같은데, 사실 프레이즈가 아니에요. 진행이 원래 말이 안 되는 거였어요. 여기 부분은 마음에 드는데, 다른 부분은 이어지지가 않고 해서 그래서 원하는 부분만 가져다 붙이고 그랬죠. 그렇게 세 곡 정도? 열심히 만들었다라기보다는 빡세게 만들었죠. 힘들게. (웃음)
LE: 혹시 스네어나, 킥 같은 드럼 샘플들도 음악을 듣다가 좋은 게 있으면 모아두고 그러시나요?
무조건 다 따놓고, 번호 매겨놓고 그래요. 아예 드럼 셋을 만들 때 1년에 한번? 그 정도 1달 정도 기간을 잡아요. 그때는 아무것도 안하고 드럼만 만드는 거예요. 그냥 따놓고 땡이 아니고, 따놓고 예전에 스튜디오에서 한번씩 치면서 만들었던 것들도 레이어링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놓죠. 언제든지 가져다 쓸 수 있게끔 드럼 킷을 만들어놔요.
LE: 평론가 김봉현 님도 소리헤다는 소리헤다만의 스네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트위터에 남긴 게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데요. 이 앨범도 그렇고 소리헤다 씨의 스네어는 웻한 느낌이 있어요. 촉촉한 느낌이 있어요.
제가 그런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1집 때 드럼에 엄청 공을 들였거든요? 그걸 캐치한 사람이 둘이 있는데, 한 명은 김박첼라 형이고 다른 한 명은 김봉현님이에요. 이 두명 뿐.
LE: 근데 그런 스네어가 웻한 느낌이 여러 수록곡에 걸쳐서 비슷하기도 해요. 그래서 드럼의 질감이 약간 다양하지 않다는 느낌도 있어요.
그렇게 느낀다면야 그렇게 느낄 수 있겠죠. 근데 저야 제가 좋은 걸 어쩌라고. (전원 웃음) 제가 뭐 못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좋아서 그러는 거지. 근데 그것 때문일 수도 있어요. 앨범 전체적으로 늬앙스를 맞추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지는 게 드럼이잖아요. 샘플이 갑자기 디스코 나오다가 재즈가 나와도 드럼이 얼추 비슷하면 잘 이어져요. 그런 것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어요. 자세히 들어보면 거의 다 다를 텐데? 난 캐치를 못하겠네. 아무튼 2집 같은 경우는 “꿈속은”이랑 “허수아비의 노래”의 드럼이 같긴 한데, 약간 에디팅을 다르게 했어요.
LE: 드럼 얘기가 나와서 하는 여담인데, 올해 상반기에 있었던 제리케이 씨의 러브 토크 쇼라는 공연에서 퍼커션을 담당하셨었어요.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드럼, 리듬적인 부분에선 일가견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런가요? 잘 모르겠는데…
LE: 프로듀싱하실 때도 퍼커션을 많이 쓰시지 않나요?
좋아해요.
LE: BRS 레코드 당시에도 MPC로 길거리 공연하고 그러지 않으셨나요?
네. 2007년 쯤에.
LE: 그런 샘플러나 퍼커션 연주를 특별히 배우신 건 아닌 건가요?
언제부터 퍼커션을 치기 시작했냐면, 지금도 친다고 하면 부끄럽지만… 맨 처음에는 진짜 못 쳤어요. 그냥 쿵쿵딱 정도? 근데 첼다피쉬맨이라고, 소울맨 형이랑 저랑 김박첼라 형이랑 소울피쉬(SoulFish)랑 밴드를 할 때 재미지게 놀아보자 했어요. 근데 소울맨 형만 압도적으로 잘했어요. (전원 웃음) 아무튼 그때 저보고 퍼커션을 하라고 그래서 연습을 열심히 했어요. 처음에는 너무 못 치니까 소울맨 형이 ‘너 너무 못 치는거 아니냐?’고 하셔서 다음 연습 때까지 열심히 쳐오겠다고 하고 그랬죠. 그래서 지금은 레코딩할 때 쓸 정도는 돼요. 어차피 에디팅할 수 있으니까. 어렵지 않으면 공연도 할 수 있고요. 연습량이 부족해서…
LE: 레코딩에 쓸 정도가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드럼 샘플들을 직접 퍼커션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으신가요?
네. 있죠. 알이에스트(R-est) 작업 도와줄 때도, 가서 라이브로 계속 쳐서 녹음 받고… 근데 뭐, 잘 치는 게 아니라서 부끄러워요. 누가 보면 욕할 걸요. 퍼커셔니스트가 보면 ‘아, 얘는 뭐지?’라고 할 거예요. (전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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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BRS 레코드가 해체된 이후에는 빅딜 스쿼즈에 들어가게 되시는데, [연우]가 빅딜 스쿼즈에서 나오게 됩니다.사실 빅딜의 전체적인 색깔과 소리헤다 씨의 색깔이 매칭이 되진 않는 편이잖아요. 어떻게 같이 하게 된 건가요?
저는 원래 빅딜의 팬이었어요. 데드피(Dead’P) 형의 [Undisputed LP]를 들었을 때부터. 그때 당시에 약간 말랑말랑한 게 유행하던 시절이었고, 사람들이 다 그런 걸 좋아하고 모두가 그런 걸 다 하고 있을 시절이었어요. 근데 (빅딜은) 아니잖아요. 그때 충격과 비슷했죠. “Hypnotized” 들었을 때. 그래서 좋아했고, 그 다음에 마일드 비츠(Mild Beats) 형의 [Loaded]가 터진 거죠. ‘이거다.’싶더라고요. 그래서 좋아하고 있다가 세월이 흘러 흘러 아날로그 소년이랑 2010년 5월인가, 6월인가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지금도 없지만 그때는 완전 생거지라서 어떻게든 긁어 모아서 신림동의 고시촌에 자리를 잡았어요. 아날로그 소년은 종로에 살았고요. 그때 친구도 뭐고 아무도 없었어요. 그냥 아르바이트하면서 앨범 준비하던 시절이었는데, 트위터에서 이치원(EachONE) 형이 근처에 산다고 해서 한번 보자고 했어요. 그때가 딱 1집 나오기 조금 전이었어요. 근데 이치원 형이랑 데드피 형이랑 친해요. 그래서 다짜고짜 데드피 형한테 이치원 형이랑 볼 건데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했죠. 그렇게 만나서 친해졌어요. 당시에 BRS 레코드가 해체될 예정이었고, 빅딜스쿼즈는 레이블이 아니고 크루잖아요. 부담이 없잖아요. 그래서 같이 하게 되었죠. (웃음)
LE: [연우]를 발매할 때는 빅딜 스쿼즈로 앨범이 나왔는데, [소리헤다 2]의 회사는 소리와 장단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게 원래는 개인의 이름으로 기획사를 표기해도 되는데, 로엔이었나 어디서는 제작사 이름이 이름뿐이어도 있어야지만 음원 등록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냥 제 이름으로 하면 안되냐고 했는데, 무조건 제작사 이름이 있어야만 된다고 해서 써낸 거예요. 실체는 없어요.
LE: 결국 인디펜던트로 하고 계신 거네요?
네. 그렇죠.
LE: 그럼 빅딜 스쿼즈는 나오게 되신 건가요?
아뇨. 나온 건 아니에요. 크루니까… 사실 이 앨범에 빅딜 스쿼즈의 마크가 안 실린 이유가 빅딜 스쿼즈의 마크가 옛날에 만들어진 거고, 마크를 새롭게 만들던 시즌이었어요. 그래서 그 새로운 마크가 나오면 실으려고 했는데 시간상 못나온 거죠.
LE: 작년 11월에 마일드 비츠 씨와 합작인 [연우]를 내셨어요. 어떤 계기로 마일드 비츠 씨와 작업을 하게 되신 건가요?
마일드 비츠 형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요. 언제 한번 같이 술 먹다가 마일드 비츠 형이 ‘너랑 나랑 앨범해야지?’하시길래 좋다고 했죠. ‘MC들 초대해서 만들까요?’하고 물어봤더니 ‘인스로 하지 뭐.’라고 하시길래 알았다고 했죠.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작업 들어가서 2주 안에 끝내자고 하고 만들었어요.
LE: 프라이머리 & 마일드 비츠 시절에 마일드 비츠 씨는 주로 샘플을 골라주고 다듬는 작업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연우]에서는 두 분이 각자 역할 배분을 어떻게 하셨나요?
복합적으로 같이 했어요. 앨범의 컨셉과 테마에 있어서 일반적인 인스트루멘탈 앨범과 다르게 작업했어요. 저희끼리 ‘앨범은 하나의 작품 아니냐. 앨범을 한번 책처럼 만들어 보자.’고 해서 유기성이 넘치는 앨범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일드 비츠 형이 스타트를 끊으면, 제가 뒤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했어요. 시작할 때 어떤 분위기의 앨범이 될 것인지도 미리 이야기하고 시작했어요. 너무 멜로우한 톤도, 너무 센 것도 아닌 추적추적 내리는 비처럼 약간 우울하면서도 혼자 드러누워 들을 수 있는 톤으로 결정했었죠. 앨범 타이틀인 [연우]는 마일드 비츠 형이 먼저 짓고, 형이 다섯 개의 트랙을 만들고 저는 여섯 개의 트랙을 만들었다가 하나를 빼서 하나씩 따라가게 배치했어요. 각 트랙의 제목은 전부 제가 지었고요. 마일드 비츠 형이 큰 틀을 잡고 제가 좀 더 세세히 각 트랙의 제목이나 배치 등을 한 셈이죠.
LE: [연우] 도, [소리헤다 2] 도 제목이 한글이예요. 어떤 의도인가요?
제 마음 속의 영웅들, 가리온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게 첫째고요. 보통 음악을 들을 때, 제목을 먼저 보게 되잖아요? 그 곡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은 제목이 절반을 잡고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분위기를 이해하기에는 영어보다는 한글이 쉬운 것도 있고,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가리온의 오마쥬도 있지요. 그래서 [소리헤다 2].
LE: [연우]는 힙합이라기보다는 연주 음반이었죠?
네. 앨범 자체의 목적이 음악의 시각화였어요. 제목들을 보면 전부 시각적인 제목이에요. “파도”를 예로 들자면, 딜레이를 사용하여 ‘타다다다닥’하는 소리를 만들어 파도를 시각화 하는 효과라든지, 그런 것 자체가 목표였어요.
LE: 이런 인스트루멘탈 앨범을 내는 것이 우리나라 힙합 씬에서 상업적으로는 많이 힘들지 않은가요?
물론 제가 앨범만으로 먹고 살고 있다면 많이 힘들었겠지만 엔지니어링을 함께 하고 있어서 그럴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힘들지만...엔지니어링도 재미있는 요소가 많아요. 비프리 앨범도 완성하고 얼싸안고 ‘와아아아~!’하고, 제리케이 때도 얼싸안고 좋아하고, 아날로그소년 때도 ‘와아아아~!“, 오케이션(Okasian) 것도 ‘와아아아~!’하고. (웃음) 인스트루멘탈도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장르잖아요?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워낙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불과 일년 전보다도 인스트루멘탈 앨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긴 했어요. 만약 2집이 전부 팔리게 되면 인스트루멘탈 앨범을 따로 낼 계획이 있어요.
LE: 혹시 인스트루멘탈이어도 연주 음반이 아닌, 래퍼들을 위해 ‘이 비트를 사용해서 랩 해라’ 하는 식으로 랩을 위한 비트들을 담은 음반을 낼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런 건 생각을 안 해봤네요. 괜찮은 아이디어인데요? 그렇게 하죠 뭐! 좋아요. 감사합니다. (웃음)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
LE: 이제 이번에 나온 앨범, [소리헤다 2]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일단 본인이 하시는 [소리헤다 2] 앨범에 대한 소개, PR타임입니다.
이 앨범 속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다 담았어요. 엔지니어링에 쓸 수 있는 시간이 6일밖에 안 되어서 약간 아쉽기도 했지만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어요.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제 모든 역사가 이 앨범 안에 담겨있어요.
LE: 앨범 아트웍이 어린 소녀의 옆모습 실루엣이에요. 무슨 의미인가요?
어린 것에 대한 특별한 의미는 없고 단지 어른을 넣기에는 징그러워서... (웃음) 앨범의 테마가 ‘우리들’이었어요. 우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말하려 하고 무엇을 꿈꾸는가... 그래서 이 모습은 각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에요. 이 아트웍의 배경도 많은 이미지들을 섞어 만들었어요. 나무, 바다, 벽, 구름 등... 그리고 뒷 페이지는 1집의 아트웍과 이어지는 이미지고요. 사람의 감정의 들쭉날쭉 함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LE: 앨범 아트웍은 어떤 분이 만드신 건가요?
1집의 아트웍을 맡아줬던 진왕이 해줬어요. 진왕은 아날로그소년, 옵티컬아이즈 엑스엘(Optical Eyez XL) 등 여러 앨범의 아트웍 작업을 한 친구에요.
LE: 1집과 이어지는 한 이야기의 마무리이자 다시 시작점으로 연결되는 의미의 앨범이라고 들었어요. 설명 부탁 드릴게요.
1집은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과정을 담아낸 구성이었어요. “Night Lights”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트랙은 “해가 뜨면”이에요. 1집이 그런 시간의 흐름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감정의 흐름이에요. 이 앨범에서는 시간이 뒤죽박죽이에요. “출발선”에서 바로 또 “침묵”으로 가면서 밤이 되죠. 그러면서 감정이 점점 정돈되거나, 무심하게 바라보게 되는 느낌으로 바뀌어요. 시간이 지나며 분노도 생기거나 하기도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꿈속에”나 “여전히”같은 느낌으로 가게 되죠. 그러면서 다시 “Night Lights”가 되는 거예요. “여전히” 가사가 ‘어떻게 돌려놔야 하는가’하는 내용이잖아요? 그러다 다시 밤이 돼서 술 먹고 뻗는 거죠. (웃음)
LE: 라임어택(Rhyme-A-) 씨는 첫 곡과 끝 곡에 참여하였는데, 라임어택 씨가 시작과 끝을 맡은 건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저랑 잘 맞아요.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뭉뚱그려 설명해도 바로 정확히 이해하고 따라 와줘서 작업하기 수월해요. 개천재. 임형랩.
LE: 피쳐링을 많이 받아보면 앨범이 난잡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색깔을 유지하려고 하셨나요?
일단 처음과 끝 트랙, 그리고 중간 중간 심어진 트랙들의 위치는 처음 정해진 것과 변동 없이 진행했어요. 각 트랙의 제목과 주제, 쓰여지는 내용까지 간섭을 했어요. 몇몇 트랙은 아예 정해서 넘겨줬고요. 나머지는 컨셉이 ‘우리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자유롭게 맡겨도 각자 꿈꾸고 생각하는 내용이 나올 거라 생각해서 맡겼어요. 그 자체를 테마로 잡게 된 거죠. 쭉 들어보면 난잡하진 않은 것 같아요. 일단 참여진이 너무 잘해준 것 같아요.
LE: 2집을 작업하면서 제일 잘했다 하는 콜라보 아티스트를 꼽자면?
모든 트랙이 다 마음에 들어서 어려운데…그냥 타이틀 홍보로다가… 마리나 제틀(Marina Zettl) 과 소울맨 & 마이노스(Minos). 일단 10번 트랙의 “설흔” 같은 경우는 마이노스형이 예전에 있었던 분노 또는 다른 감정들을 무신경하게 뒤돌아보면서 곱씹는 내용의 가사를 너무 잘 대변해주면서 잘 해줬어요. 소울맨 형은 언제나 잘해주시고요. 소울맨은 은혜입니다. 사랑이죠. 마리나 제틀 같은 경우는 제가 원하는 곡의 테마와 주제 등의 내용을 길게 적어 졸리 브이에게 부탁해서 영어로 번역한 걸 이메일로 보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결과물이 돌아와서 놀랐죠. 처음엔 제가 영어를 잘 못해 (작업물을) 받아 들고 ‘이게 무슨 뜻일까’하다가 졸리 브이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해석해 보니까 정말 잘했더라고요. 감동이었어요. 너무 잘해줘서 수정 전혀 없이 가이드 온 그대로 진행했어요.
LE: 해외 뮤지션인 마리나 제틀, 토마스 마우어호퍼(Thomas Mauerhofer), 카에데멜로디(kaedemelodii) 와는 어떻게 같이 작업하게 되신 건가요?
제가 원래 마리나 제틀의 팬이었어요. 마리나 제틀과 토마스 마우어호퍼가 예전에 냈던 [fikus]라는 앨범을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고 팬이 되었어요. 팝재즈였는데 드럼 대신 비트박스에 6줄이 아닌 8줄로 개조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걸 보고 빠져있다가 올해 4월에 2집이 음원으로만 우리나라에 발매가 되었어요. 힙합적인 요소가 들어간 “Radio Girl”라는 곡이 있는데, 제가 원래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음악이었어요. 이걸 제 스타일로 바꿔서 해보자는 마음으로 만든 게 “올빼미의 밤”이에요. 잘 들어보면 “Radio Girl”의 노래를 “올빼미의 밤”에 맞춰 불러도 맞아요.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서 마리나 제틀에게 부탁했어요.
그때 마리나 제틀이 작업이 재미있었다며 스튜디오 대여비를 제외한 제작비를 받지 않고 해주었어요. 그래서 제작비가 굳게 되니까 일본 쪽 보컬이랑 작업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친분이 있었던 카에데멜로디 누나에게 혹시 보컬을 소개해 줄 수 있는지 물어봤었는데, 소개해줬던 보컬이 제가 원하던 성향이 아니어서 마음을 접었죠. 그런데 카에데멜로디 누나가 자신이 이 트랙이 마음에 든다며 오르간을 여기에 입히면 멋질 거 같다고 했어요. 저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죠.
LE: 참여진들 중 제일 많은 트랙에 참여한 뮤지션이 강선아 씨인데요, 강선아 씨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강선아 씨에 대한 설명도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재즈 쪽에서는 다운스트림(Downstream)이라는 팀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엄청 잘해요. 다른 요즘 보컬들에 비해 올드한 느낌이 있어요. 검색해보시면 나오니 검색해보세요! 사실 원래는 “허수아비의 노래”에만 들어갈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생각의 탄생”을 작업해놓고 나니 70년대와 80년대의 느낌이 나는 보컬을 넣고 싶어졌어요. 선아 누나가 생각나서 또 부탁 드렸더니 들어보시고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함께 하게 되었고요. “사과마티니”를 할 때는 본킴(Born Kim) 형과 함께 작업하면서 여기에 스캣 형식의 보컬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본킴 형이랑 작업실에서 선아 누나와 작업한 곡을 듣다가 마음에 든다고 했어요. 누나한테 스캣 보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설명하자 선아 누나도 그런 작업 해보고 싶었다면서 또 한 번 흔쾌히 승낙을 해줬어요. 그래서 세곡을 하게 됐죠.
LE: 이렇게 1집과 2집을 통틀어서 보면 많은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를 하셨는데요, 씬에서 마당발이신 편이신지 궁금하네요.
전혀 아니에요.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죠. 제가 돌아다니면서 인사하고 CD 주는 그런 타입이 아니거든요. 낯을 많이 가려서…저와 함께 작업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저와 작업을 해본 적이 있던 사람들이나 제가 엔지니어링을 맡았다던가 하면서 친해지게 된 사람들이에요. 주변에 언제나 있는 사람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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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엔지니어링으로 알게 된 인연이 꽤 많으신 편인가요?
반 이상은 그렇게 만난 것 같아요. 처음에 의뢰 받았던 작업이 팔드로(8dro) 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비프리, 이치원 형 것도 몇 개, 그리고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것들을 많이 하게 됐죠. 또 제리케이, 화나까지... 엔지니어링으로 만난 사람들이 많죠.
LE: 엔지니어로써의 작업 의뢰를 받으실 때 골라서 하시기보다는 들어오는 제의는 거의 다 해주시는 편인가요?
네. 부탁하는 사람들이 다 잘하는 사람들이라 저야 좋죠. 좋은 음악들만 했어요. 제가 맡았던 것들이 다 좋았어요.
LE: 앨범을 들여다보면 ‘이 앨범을 손에 들고 있는 당신은 FAN이 아닌 SUPPORTER입니다.’라고 쓰신 이유는?
사실 이 앨범을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내가 앨범을 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술에 취한 채로 기억도 안 나는 상태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는데 저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도 아닌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힘이 되는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다음날 일어나서는 대충 넘겨보았었는데, 어느 날 그걸 다시 한 번 쭉 들여다봤어요. 그런데 이게 정말 너무 고마운 거예요. 눈물이 날 정도로... 그래서 그 고마운 마음을 담아 쓰게 된 문구에요.
LE: [소리헤다] 발매 당시에는 쇼케이스를 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소리헤다2]는 쇼케이스나 공연계획이 잡혀 있으신가요?
없어요. 공연까지는 아니지만 하나 있다면 12월 14일 1984에서 뮤직토크를 하게 되었어요. 제가 타 매체에서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이자 몇 곡의 라이브 공연을 보실 수 있는 자리에요. 이것만 딱 하나 있고 다른 계획은 없어요. 앨범을 사주신 분들에 대한 서비스 같은 자리랄까? 앨범을 들으실 때 어떻게 들으면 더 좋을지, 어떤 생각을 하고 만들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오프라인으로 하게 될 것 같아요. 2집에서는 최초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LE: 인터뷰가 막바지입니다. 저희 힙합엘이에는 자주 오시는 편인가요?
제가 웹서핑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댄스디(DanceD) 때문에 알게 되었어요. (학교) 후배니까. 원래 알았던 음악들도 해석된 가사를 보면서 ‘이런 내용이었구나.’하고 알게 되는 것도 좋았고, 뮤직살롱에서 마일드 비츠 형 인터뷰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인터뷰 하네?‘하면서 가끔씩 들어가 보기도 했어요.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이 있더라고요.
LE: 저희가 외국힙합을 많이 다루는 사이트인데, 소리헤다 씨는 최근에 어떤 음악을 즐겨 듣고 계신가요?
전 선비입니다. (웃음) 요즘 힙합음악에는 관심이 없고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한 번도 못 들어 봤고 제이 콜(J.Cole)도 하나도 안 들어봤어요. 루페(Lupe Fiasco)는 원래 좋아했으니까 들어봤어요. 하이햇이 ‘칙칙치기칙칙’대는 것들은 안 들어요. 듣질 못하겠어요. 오히려 유럽 쪽 인디 재즈나 아예 옛날 음악을 들어요.
LE: 종합적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해주세요.
인스트루멘탈 앨범이 될 거고요… 전 세계의 악기들을 뒤섞는 작업을 하고 싶네요. 그리스 현악기 + 스위스 관악기 + 인도 타악기 뭐 이런 식? 재미있잖아요?
LE: 프로듀서로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정약용 같은 느낌? (웃음) 정약용을 보면 딱 선비잖아요. 유교사상에 꼰대고 딱 선비잖아요. 그러면서도 그 시절 거중기라든지 이런 걸 발명했잖아요. 과거의 것을 토대로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LE: 더불어 같은 프로듀서 입장에서 한국힙합 씬에 이런 스타일의 프로듀서가 나왔으면 좋겠다, 혹은 지금의 프로듀서들이 어떤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같은 얘기가 듣고 싶네요.
지금 다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각자 색깔을 가지고 잘 하고 있어요. 시모앤 무드슐라(Simo & Mood Schula), 프라이머리(Primary) 님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일드 비츠 형도 있고... 김박첼라 형, 소울피쉬도 그렇고… 너무 많다. 다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자기가 ‘난 이 씬에 존나 기여하겠어!’하는 마인드는 사실 별로잖아요? 그냥 자기가 하고 있는 걸 열심히 하면 그게 자신의 스타일이 되고 그러다 보면 전체가 발전하게 되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다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멋있어요.
LE: 덧붙여서 최근에 씬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작가주의적, 언더그라운드적 마인드보다는 미국의 메인스트림의 스타일 쪽으로 양성화가 되어가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 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음악적 성향이나 이런 걸로 보아선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은데…
잘 생각해보면 샘플 베이스로 했던 힙합이 역사가 깊어요. 그러니 더 토착이 되어있고 발전이 되었죠. 그런데 그런 방식은 우리나라에서는 한지 얼마 안됐어요.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하는 거 아니야?’하고 느낄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거 가지고 까대기만 하는 건 이해를 못하겠어요. 그게 발전돼야 더 좋은 게 나올 수가 있는데.
LE: 그럼 소리헤다 씨를 그렇게 까시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웃음)
살려주세요. 우리나라에 레코드 없는 거 아시잖아요? (웃음) 얼마나 힘든데~ 너무 힘들어서 저번에 일본까지 가서 사왔단 말이야~ 농담이에요. 계속 봐주세요. 어디까지 가나. (웃음)
LE: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한 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인터뷰 소감 등등 자유롭게 얘기해주세요.
이런 식으로 오래 한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이렇게 만나서 두 시간 가까이 인터뷰하는 것도, 이렇게 사진 많이 찍는 것도 처음이었고... 재미있었어요.
LE: 인터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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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헤다 블로그: http://soriheda.tistory.com
인터뷰, 글 | Melo, Twangsta
인터뷰, 사진 | Creaty
1 추천 목록 스크랩신고 댓글 3 title: #BlackLivesMatterKAYEM12.12 21:04 잘 봤습니다!
마리나제틀의 곡이 궁금해서 유튜브에 검색해서 들어봤는데 오스트리아 뮤지션이었군요ㅎㅎ
막상 독일어 전공인데 독일계 뮤지션을 잘 모르는데 덕분에 좋은 뮤지션을 알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추천 댓글 title: MBDTF브루스웨인12.20 01:28 잘읽엇습니다 ㅋㅋㅋ 추천 댓글 title: MBDTF브루스웨인12.20 01:28 잘읽엇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