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CHIEF LIFE’로 돌아온 팔로알토, 쉼 없는 노 젓기
조회9,697 등록일2013.12.10 2 추천하기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의 스타 팔로알토가 지난 11월 새로운 앨범 [CHIEF LIFE]를 냈다. [CHIEF LIFE]는 스무살, 홍대의 작은 공연장에서 랩을 시작한 래퍼가 어느덧 서른이 되어 하는 담담한 자기고백이다. 앨범의 첫 번째 트랙 ‘Ideal Moment’에서 팔로알토는 ‘어릴 적 원하던 것들을 이미 다 이뤘네’, ‘가던 길 가겠어 쉬지않아 노를 젓는 일’이라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백한다.
팔로알토는 2003년 힙합 앨범 [PEOPLE&PLACES]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홍대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며 무게감 있는 보이스와 진솔한 가사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그런 그가 지난 2010년에는 B-Free, 허클베리피, Reddy 등 쟁쟁한 6팀의 힙합 뮤지션이 소속된 하이라이트레코즈를 설립하며 이슈를 던졌다. [CHIEF LIFE]는 스무살 청년 팔로알토가 서른살의 레이블 대표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서른의 팔로알토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돌진했던 20대를 보내고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 힙합 레이블의 대표로서 노 젓기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하이라이트레코즈의 합동앨범 [Hi-Life]부터 최근 발매한 [CHIEF LIFE]까지 두 장의 앨범을 선보이며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서른을 맞아 개인적으로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올해도 올해지만 작년에 참 고민이 많았다. 하이라이트레코즈를 설립하고 나서는 음악이 좋아서 앞만 보고 달렸던 이전과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지난해는 수익적인 부분과 창작활동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던 한 해였다. 프라이머리, 빈지노와 작업했던 ‘3호선 매봉역’이라는 곡이 딱 그런 마음을 대변하는 곡이다.
지난 11월 발매한 [CHIEF LIFE]에 대한 반응이 좋다. 주위에서의 반응은 어떤가? 좋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랩은 좋은데 곡이 지루하다고도 하고 다양한 반응에 신기해하고 있다. 그 동안 작업해왔던 곡 중 추려 넣은 곡들이다. [CHIEF LIFE]라는 타이틀을 생각하고 앨범의 큰 그림에 어울리는 가사, 사운드를 담기 위해 10곡 넘게 가사를 엎었다.
특별히 신경 쓴 곡이 있다면? ‘Chief Life’는 지금 나의 상황을 대변하는 곡이라 특별히 가사에 신경을 썼다. ‘Renaissance’라는 곡은 기존에 들어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노래다. 타이틀곡 ‘또 봐’의 경우 내 노래를 꾸준히 들어준 사람들에게 바치는 곡이다. 공연장에 오는 팬들 외에 공연장 밖에서 우연히 내 노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 기쁘다. 그런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
앨범에 수록된 곡 중 한 곡만 들어도 지금 팔로알토가 하고 있는 생각과 고민이 전달된다.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건지? 최근 들어 이전과 달라진 현재의 상황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다. 어느덧 음악 활동을 한지도 10년이 지나 공연장에 후배들이 늘어났고 심지어 그들 중엔 내 음악을 들으며 자란 친구도 있다. 특히 하이라이트레코즈라는 레이블을 만들고 나서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서 음악을 대하는 것과 레이블의 대표로서의 입장이 달라짐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느꼈던 여러 생각들을 담았다.
10년차 베테랑 래퍼 팔로알토의 음악인으로서의 첫 스텝은 언제였나? 2003년 주류와는 다른 힙합 음악을 보여주자는 취지에 만들어진 [PEOPLE&PLACES]라는 앨범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 팔로알토라는 이름을 걸고 올라간 첫 공식 무대는 스무살 때였다.
데뷔에 어려움은 없었나? 스타보다는 래퍼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대형 기획사에 오디션을 보는 대신 공연할 수 있다면 어디라도 올라가서 열심히 뛰었다. 그냥 좋아서 한 거다. 꾸준히 음악을 하고 가사를 썼다. 화려한 데뷔보다 무대에 서서 랩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았다. 열심히 하니 더 좋게 봐줬던 것 같다.
팔로알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나? 여러 후보가 있었다. 유치한 이름은 싫고 멋있는 이름을 갖고 싶었는데 예를 들면 ‘개코’, ’최자’ 같은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 1년 정도 살았던 미국의 팔로알토라는 곳이 떠올랐다. 당시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기억이 많았던 그 때를 추억하며, 무엇보다 팔로알토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좋아서 선택했다.
힙합에 관심을 갖게 된 시점은 언제인가? 중학교 시절 언타이틀의 팬이었는데 앨범에 몇 곡은 꼭 랩으로만 된 노래가 있었다. 1집에 ‘독자’라는 곡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게 무슨 노랜지도 모르고 그냥 좋았다. 당시 케이블 방송을 통해 Wu-Tang Clan, JAY Z의 뮤직비디오가 나오면 막연히 닮고 싶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그럼 그 때부터 가사를 쓰고 랩을 하기 시작한건지? 사실 가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 이전부터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솔리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개사하면서 놀았다. 예를 들면 박진영의 ‘청혼가’를 ‘이혼가’로 바꿔 정반대의 가사를 써붙이는 거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스스로 가사를 써보기 시작했고 래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했던 것 같다.
그런 조기교육(?)을 통해 지금의 팔로알토가 탄생했다. 데뷔 이후 가장 주목받았던 시점은 언제인가? 2006년 더 콰이엇과 함께 P&Q로 활동하면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많은 뮤지션들에게서도 작업 제의를 받았다. 당시 에픽하이 형들이 인기가 많았는데 그 덕분에 홍대에도 소녀팬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우람한 형들 대신 소녀들이 플랜카드를 들고 사탕 선물을 하는 게 신기했다. 그 때는 어렸을 때라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꽤 핫했던 것 같다. (웃음) 당시 홍대 클럽 캐치라이트(현 코쿤)에서 P&Q 합동공연을 했을 때 700~800명이 관람했는데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하더라. 군대 가기 전, 100일 휴가 때 했던 공연 2번을 그렇게 채웠다.
여기저기서 많은 러브콜을 받았을텐데도 불구하고 돌연 군대를 갔다. 불안하지는 않았나? 주위에서는 입대를 만류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군대가 20대의 짐 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빨리 다녀오고 싶었다. 내가 만든 음악을 듣고 중학교 때부터 동경했던 타이거JK 형이 계약을 제안하는가 하면 다이나믹듀오, 에픽하이 형들도 함께 작업하게 되면서 하고 싶은 건 다했다는 생각도 있었다.
당시 수입도 꽤 짭짤했을 것 같다. 그 때는 그게 대단한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만큼의 수익을 똑 부러지게 챙기지 못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음악이 좋아서 음악만 하는 ‘순딩이’였다. 그냥 무대에서 노는 게 좋았고 내가 좋아하는 유명한 형들과 작업하는 것이 좋았다.
군대를 전역한 이후 기대하는 팬들도 많았을 텐데 의외로 앨범 발매 소식이 뜸했다. 군대 전역 후 정글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면서 큰 무대 경험을 많이 쌓았다. 평생 가볼 일 없을 것 같았던 방송국도 가보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됐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앨범 발매가 늦춰져서 정글을 나왔다. 이후 대중기획사들은 내가 원하는 음악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레이블 설립을 계획했다. 그렇게 2010년 하이라이트가 탄생했다.
하이라이트레코즈의 설립과 함께 래퍼 팔로알토에게 대표라는 새로운 수식어가 생기면서 부담감이나 책임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즐거웠다. 직접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공연, 앨범 작업을 촬영해 유투브에 올리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파티도 기획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의 체계라던지 수익 부분에 대한 고민이 무거워졌다. 특히 작년은 음악인과 경영인으로서의 갈등이 많았던 한 해였다. 다행히 올 들어 수익 부분이 많이 개선됐다.
하이라이트레코드가 들려주고 싶은 음악과 지향점은? 어떤 음악이라는 선을 긋기 보다 그냥 듣기에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는 좋은 음악을 주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힙합 레이블이자 유니버셜 뮤직 그룹인 데프잼 레코드처럼 크게 성장했으면 한다. 아티스트들이 음악을 하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레이블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팔로알토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이란? 좋은 음악이라는 건 듣는 사람이 판단하는 거다. 같은 ‘도’라는 음을 쓴다고 해도 새로운 ‘도’를 위해 몇 번씩 음을 만지는 정성이 있다면 듣는 사람 또한 그 음악을 위한 노력이나 독창성, 감각같은 것들을 느낀다. 창작자의 고민이 들어있지 않은 음악은 존중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음악이 아니라 소모품처럼 느껴진다.
더 콰이엇을 비롯해 에픽하이, 다이나믹듀오, 프라이머리 등 많은 뮤지션과 작업을 했는데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지금 기억나는 건 군대 가기 전날 했던 작업이다. 입대 전 부모님과 마지막 저녁을 먹고 있는데 타블로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군대 간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작업을 하자는 얘기였다. 밥을 먹고 밤에 녹음실로 가서 레코딩을 했다. 녹음이 끝난 뒤에 형들과 술을 마시고 나서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그 때는 그것도 너무 좋아서 ‘입대 전까지 음악 작업을 하다니 난 정말 대단한 놈이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대의 팔로알토는 그렇게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살았다. 30대의 팔로알토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이번 앨범에 수록된 [CHIEF LIFE]의 가사를 보면, 어릴 적 내가 꿈꿔온 건 다 이뤘다는 가사가 있다. 무대에 서서 랩을 하고 레이블을 만들고 이런 것들은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 앞으로의 삶은 음악인으로서 레이블의 대표로서 더욱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개인적인 행복을 이루고 싶다. 또 그런 삶을 음악적으로 이야기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CHIEF LIFE] 발매와 함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다. 늘 그랬듯이 열심히 공연을 다닐 거다. 내년 1월에 ‘베테랑’이라는 이름의 세 번째 단독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전에는 많은 게스트를 불러 무대를 채웠는데 이번 콘서트에서는 최대한 자제하고 스스로 무대를 채워보려고 한다. 많이 구경들 와주셨으면 좋겠다.
글ㅣ패션웹진 스냅 권정은 사진ㅣ이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