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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리콜리뷰 이그니토 - Demo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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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S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7월 3일 (일) 16:5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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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훈 작성 | 2022-05-27 17:25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2 | 스크랩스크랩 | 755 View

Artist: 이그니토(Ignito)

Album: Demolish

Released: 2006-08-17

Rating: RRRR+

Reviewer: 남성훈





이그니토(Ignito)의 데뷔 앨범 [Demolish](2006)는 한국 힙합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탁월한 앨범이다. 첫 트랙 “Ignite”가 시작되자마자 듣는 이를 암울한 기운의 세계로 단숨에 옮겨 놓는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단 한 순간의 예외 없이 끝까지 이어진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대표하던 비트 메이커들의 탁월한 프로덕션과 이그니토의 놀라운 가사와 퍼포먼스가 빈틈없이 짜인 세계관을 만들어낸 덕분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의 한국 힙합은 미국 힙합의 외양을 연출하는 것과 한국적인 콘텐츠의 간극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Demolish]는 그러한 고심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전례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며 등장했다. 얼핏 장중한 무드의 프로덕션으로 유명한 제다이 마인드 트릭스(Jedi Mind Tricks)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Demolish]에는 분명 고유한 특성이 가득하다.


이그니토는 모든 곡에서 웅장하고 암울한 묵시록적 가사를 거침없이 뱉는다. 혹자는 가사에서의 넘치는 비장함에 헛웃음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Demolish]의 진가가 여기서 비롯한다. 감탄을 자아내는 이그니토의 퍼포먼스와 어우러져서 전혀 어색하거나 민망하지 않고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그는 특이한 구조의 라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도 리듬감이 완벽하다. 여기에 압도적인 톤과 독특한 호흡법을 활용한 플로우로 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한다. 둔탁한 목소리로 앨범을 채우면서도 전혀 밋밋한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오롯이 이 같은 랩 기술 덕분이다.


특히 이그니토의 표현력은 의도한 모든 것을 이루면서, 시각적 경험까지 만들어낸다. 덕분에 현실과 접점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은 더 없이 생동감 있게 다가오며, 부조리한 한국 사회를 그 어떤 힙합 앨범보다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한 각양각색의 게스트 래퍼들도 인상적이다. “Lost Chronicle”에서 한국 힙합사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벌스를 남긴 이센스(E-Sens)와 “비관론”에서 균형 잡힌 활약을 펼친 듀오 바이러스(Virus)가 대표적이다. 일관된 무드에 자칫 늘어질 수도 있었을 구간에서 효과적으로 주의를 환기한다.


앨범의 중심이 이그니토의 랩인 것은 분명하지만, 랍티미스트(Loptimist), 마일드 비츠(Mild Beats) 등이 참여한 프로덕션 역시 값지다. 전통적인 붐뱁에 기반을 두면서 처연한 분위기를 끌어내는 멜로디와 사운드 소스를 잘 배치한 비트가 이그니토의 랩과 더없이 좋은 합을 보여준다. 특히 랩을 위해 비워 둔 여백이 느껴지는 일관된 무드는 한국 힙합에서 매우 드문 작가주의적 걸작 탄생에 일조했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심도 있는 철학적 가사와 세계관으로 무장한 이그니토와 그를 조력한 최상급 프로덕션 및 게스트와 결합한 [Demolish]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듣기 어려운 힙합 앨범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Demolish]처럼 독보적 위치를 점하는 한국 힙합 앨범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남성훈 via 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9899&m=view&s=review&c=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