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Michelle - After Dinner We Talk Dreams 장준영 작성 | 2022-05-08 20:32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7 | 스크랩스크랩 | 2,747 View Artist: Michelle Album: After Dinner We Talk Dreams Released: 2022-03-04 Rating: RRR+ Reviewer: 장준영
미셸(Michelle)이란 이름은 이미 많은 아티스트가 선점한 이름이다. 알앤비 씬에서는 케이 미셸(K. Michelle)이 있고, 2000년대 팝 록 계열 중 인기를 얻었던 미셸 브랜치(Michelle Branch), 90년대에 캐나다의 대표 컨트리 아티스트인 미셸 라이트(Michelle Wright), 활동명은 아니지만, 2021년의 베스트 앨범 중 하나인 [Jubilee]를 발표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본명 역시 미셸(Michelle Zauner)이다.
뿐만 아니라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 The Greatest Showman](2017)에서 노래를 불렀던 미셸 윌리엄스(Michelle Ingrid Williams)의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미셸이라는 이름을 지닌 아티스트의 수는 무척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뉴욕 출신의 음악 집단 미셸(MICHELLE)은 명칭만으론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After Dinner We Talk Dreams]를 듣고 난 후엔 어떤 아티스트보다도 강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일단 멤버 구성부터 독특하다. 줄리언(Julian Kaufman)과 찰리(Charlie Kilgore)가 프로듀싱과 연주를 담당하며, 라일라(Layla Ku), 제이미(Jamee Lockard), 소피아(Sofia D'Angelo), 에마(Emma Lee)까지 네 여성이 보컬과 송 라이팅을 맡았다. 일반적인 밴드에선 연주자 수가 보컬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면 눈에 띄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 자연스레 강점과 연결된다.
첫 곡 "Mess U Made"를 시작으로 "Syncopate", "Hazards", "Talking To Myself" 등 대부분이 대표곡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중독성 강한 멜로디가 앨범을 장악했다. 여기에 네 멤버의 하모니가 트랙에 생동감을 더했다. 한두 멤버가 곡을 주도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턴 다른 멤버가 스리슬쩍 들어와 소리를 겹겹이 쌓는다. 적재적소에 독창과 합창을 배치하여 곡을 풍성하게 한 덕에 듣는 재미가 배가된다.
네 멤버가 훌륭한 합을 이루는 가운데 개개인의 퍼포먼스와 스타일을 확연히 관철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에마는 가녀린 동시에 거칠고 날것의 소리로 개성을 드러냈고, 라일라는 안정감 있는 테크닉과 청량한 고음을 구사하며, 제이미의 매력적인 허스키 목소리가 근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소피아의 탄탄한 알앤비 가창이 매 순간 흥겹게 한다. 네 보컬이 유려하게 소리를 주고받는 "Expiration Date”에서 이를 쉽게 체감할 수 있다.
프로덕션은 인상적인 보컬 퍼포먼스와 연결된다. 알앤비, 펑크(Funk), 팝, 록 등 여러 장르를 포용하여 한 앨범에 엮어냈다. 종종 난잡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달라지는 트랙 사이에 네 사람의 장점이 사라지지 않아 전반적으론 만족스럽다.
개별 트랙에 집중해도 즐겁다. 풍요로운 신스와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화음이 병치된 "Pose", 찰랑거리는 펑키한 기타 리프가 밝은 에너지를 뿜어낸 "Syncopate", 2000년대 인디 팝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50/50", 프로덕션과 보컬 모두 알앤비를 머금은 "Hazards" 등등, 빛나는 순간이 다수다. 무엇보다 모든 멤버가 20대 초반으로 구성된 팀인 점을 생각한다면, 시대와 장르에 제약을 두지 않고 다채로운 스타일을 동시에 취한 선택이 무척 흥미롭다.
물론,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곡도 있다. "My Friends”와 "Fire Escape" 등이 그렇다. 사운드에서 여느 곡보다 가볍고 덜 풍부하게 들린다. 트랙을 주도했던 코러스는 단순히 더블링에 그쳤고, 비트 또한 단순하게 반복되며, 멜로디까지 밋밋하여 결과적으론 팀의 장점이 약해진 듯해 아쉽다.
이사 레예스(Isa Reyes)를 기용한 "No Signal"도 의아하다. 네 사람과 비슷한 음색과 창법을 구사한 탓에 이사의 보컬에서 특징이나 장점을 찾기 어렵다. 퍼포먼스 또한 평이한 수준에 그쳐 네 보컬만으로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을 느끼기 어렵다.
한편, 톡톡 튀는 이야기의 힘은 앨범의 또 다른 재미다. 짝사랑하는 마음을 재치 있게 숫자로 표현한 "50/50", 이별 후의 감정을 드러낸 "Expiration Date”, 누군가를 기다리며 느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End Of The World", 자신의 긍정적인 상황을 우주와 관련된 보조관념으로 유쾌하게 풀어낸 "Layla In The Rocket"이 대표적이다. 여러 레퍼런스와 재치 있는 비유가 상당수 있으며, 멤버마다 상이한 작사 스타일이 한데 어우러져 눈길을 끈다.
이 음악 집단의 명명만큼은 흔하며 심심하게 다가오지만, 이름을 제외한 나머지는 호기롭고 유쾌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어떤 미셸의 음악보다 더욱 귓가에 맴돈다. 플레이리스트를 채울 미셸이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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