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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입 - Hardboiled Café
장준영 작성 | 2022-03-14 14:23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24 | 스크랩스크랩 | 25,245 View
Artist: 피타입(P-TYPE)
Album: Hardboiled Café
Released: 2022-02-18
Rating: RRR
Reviewer: 장준영
무려 7년 만이다. 피타입(P-TYPE)은 원래 정규 앨범을 자주 내는 편이 아니지만, 이번엔 유독 오래 걸렸다. 새 앨범의 구성을 보면, 그 시간만큼의 고심이 느껴진다. [Hardboiled Café]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스토리텔링 앨범이다. 한국 힙합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운 컨셉 앨범이어서 흥미롭다.
앨범은 일종의 서사극 형태를 취하여 '신디'라는 인물을 통해 씬이 죽는 과정을 추측하도록 유도한다. 성우 김현심을 기용한 두 트랙("Intro", "Outro")을 두미에 배치한 점이 그렇다. 앨범과 동명 곡인 "Hardboiled Café"부터 "The Picaresque", "고양이와 남자", "안녕, 내 사랑" 등등, 추리극의 느낌을 자아내는 순간이 여럿 포진되어 통일된 무드가 연출된 점도 포인트다.
피타입은 [The Vintage]를 제외하곤 매번 힙합, 문화, 씬을 이야기하는 아티스트다. 이번 앨범도 유사하다. 씬에 대한 비판 및 비관과 더불어 환멸적인 정서가 담겼다. 특히 "The Simple Art of Rhyme"과 "For Sale, My Rhymes, Never Used"에선 랩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거친 표현을 담아 래퍼들의 행태를 비판한다.
후반부에는 좀 더 감상적인 태도가 이어진다. 씬에 오래 머문 자로서 변화를 목도하고 상실과 체념의 정서를 다룬다. "Kiss Me Deadly"와 "Big Sleep"에선 씬을 의인화했으며, "고양이는 아홉번 죽는다"는 회상을 생생하게 풀어내어 유독 두드러진다.
다만, 앞뒤로 사용한 내레이션은 오히려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과장된 말투 탓이기도 하지만, 청자를 향한 발화 형태도 낯설고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독백이나 대화를 통한 정황 묘사로 자연스럽게 추리할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점도 앨범의 컨셉과 배치된다. 무엇보다 "Outro"에서 자기연민과 씬에 대한 애정을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나타낸 것이 다소 이상하게 들린다.
가장 인상적인 건 프로덕션이다. 패서네이팅(Fascinating)을 필두로 워크맨쉽(WRKMS), 플레이하우스(PLAYHOUSE), 프레디 카소(Fredi Casso), 페니(Pe2ny), 디프라이(Deepfry) 등 다양한 프로듀서가 큰 편차 없이 탄탄한 트랙을 주조했다.
투박하게 타격하는 붐뱁 비트가 주를 이루고, 재즈 요소를 여럿 가져왔으며("안녕, 내 사랑"), 프롬올투휴먼(FROM ALL TO HUMAN)의 연주로 강렬한 사운드가 구성되고("Hardboiled Café"), 여러 소리가 음산한 무드를 자아냈다("Lyricist Paradox", "고양이와 남자"). 그중 김오키의 밀도 높은 색소폰 연주에 보컬 샘플링을 활용하여 한층 풍성해진 사운드가 돋보이는 "Heavy Bass Saga"가 가장 매력적이다.
흥미로운 프로덕션 위로 변함없는 피타입 스타일의 랩이 얹힌다. 그는 본래 풍부한 어휘력, 철학적인 가사, 한영혼용을 배제한 타이트한 라임 구성이 특징인 래퍼다. 데뷔 이후로 꾸준히 유지한 장점은 이번에도 다수의 트랙을 통해 드러난다. 낮은 톤을 바탕으로 근사하게 자신을 소개하며 앨범을 연 "Writer's Profile", 일상의 다양한 이미지로 감정을 나타낸 "Moonlighting"이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곡에선 기존의 스타일을 고집한 퍼포먼스가 오히려 감흥을 떨어뜨린다. 강박적으로 라임에 중점을 둔 듯한 랩 탓이다. 이것이 과거의 앨범에서는 효과적이었으나 [Hardboiled Café]의 프로덕션과는 어긋난다. 종종 플로우가 늘어지는 것처럼 들리며, 트랙마다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 지루하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무드가 변화할 때조차 비슷한 톤과 래핑으로 일관하다 보니 몰입하기 어렵다.
한편, 게스트의 퍼포먼스는 준수하다. 저스디스, 던말릭, 팔로알토, 버벌진트, 콰이, 서사무엘, 김필 등 참여한 아티스트의 특장점이 물씬 드러난다. 아이러니하게도 게스트의 활약이 상당한 탓에 피타입의 랩이 더욱더 아쉽게 느껴진다. "노인의 테마: 낚시"가 대표적이다. 어두운 분위기에 붐뱁 비트가 강하게 떨어지는 이 곡에선 최엘비의 활력적인 랩이 전반부를 차지한다. 하지만 중반 이후 느슨하고 처지는 피타입의 랩이 등장하면서 쾌감이 반감된다.
[Hardboiled Café]는 문학적인 장치를 통해 힙합 씬에 관한 고찰을 담은 앨범이다. 그만큼 여러 시도를 담았고 여러 아티스트를 품었다. 이를 생각에 그치지 않고 한 장의 앨범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아티스트는 적어도 국내에서 결코 흔치 않다. 하지만 구현을 위한 모든 선택이 효과적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랩이 큰 만족감을 주지 못하면서 시도가 빛바랜 결과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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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xxxtentacion
ripxxxtentacion (2022-03-23 19:03:00 / 39.115.95.**)추천 0 | 비추 0
곱씹으면서 듣는 맛이 있음
본 리뷰에서 피타입의 랩을 많이 깠는데 생각보다 랩도 괜찮고
seungchul
seungchul (2022-03-16 21:52:08 / 121.166.127.***)추천 1 | 비추 0
기대 많이했는데.
그래도 생각하면서 듣는 앨범이라 종종 더들을듯 무지개씨리얼 무지개씨리얼 (2022-03-16 19:16:38 / 39.124.121.**)추천 2 | 비추 0 노인의 테마는 오히려 최엘비의 랩이 곡의 무드에 안 맞는다 느꼈는데 의외네요. 화나의 랩에서 느끼는 정도로 피타입의 랩에서의 라임이 강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철저하지만 곡의 내용과 감상을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Daharapapa Daharapapa (2022-03-16 14:52:40 / 58.142.77.**)추천 2 | 비추 0 다양한 프로듀서가 큰 편차 없이 탄탄한 트랙을 주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곡에선 기존의 스타일을 고집한 퍼포먼스가 오히려 감흥을 떨어뜨린다. 강박적으로 라임에 중점을 둔 듯한 랩 탓이다.
라는 평에서 이번 앨범이 더욱 기대되네요. 원래 피타입의 랩이야 그 강박적인 라임배치를 듣는 맛으로 들어왔으니 말이죠. 거기에 탄탄한 비트가 깔린다면 말해 뭐합니까? 기대되네요. mrlee mrlee (2022-03-15 23:02:47 / 116.126.28.***)추천 0 | 비추 3 피타입은 같은 랩을 20년째 하고 있는데 그게 문제라고 하니까 참 당황스럽네요 보일러 보일러 (2022-03-14 16:19:07 / 58.227.40.**)추천 3 | 비추 2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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