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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비스트(던말릭 X 키마) - Tribeast
남성훈 작성 | 2016-04-24 23:57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4 | 스크랩스크랩 | 31,277 View
Artist: 트라이비스트(던말릭 X 키마)
Album: Tribeast
Released: 2016-04-19
Rating: RRRR
Reviewer: 남성훈
2015년 프로듀서 마일드 비츠(Mild Beats)와 합작 앨범 [탯줄]을 만들었던 랩퍼 던말릭(Don Malik)이 이번에는 프로듀서 키마(Kima)와 트라이비스트(TRIBEAST)를 결성하고 동명의 앨범을 발표했다. [탯줄]에서 그는 '90년대 황금기 힙합'의 구현이라는 식상해진 테마를 정교하게 짠 가사의 전개와 이에 힘을 실어주는 수준 높은 랩핑을 통해 오히려 신선하게 펼쳐냈었다. 특정 시기의 스타일과 본인의 출생을 절묘하게 엮어 장르 아티스트로서 명확한 정체성을 내세운 꽤 영리한 데뷔작이기도 했다.
[TRIBEAST]는 '멀리서 지켜보는 야생 섞이지 않아 흙에서 태어난 하나의 개념 그 틀 어디에도 맞지 않는 내 몸'이라고 선언했던 [탯줄]의 마지막 트랙 “첫 울음”을 자연스레 이어받아 확장하는 연작이다. [탯줄]을 전부 할애해 빚어낸 캐릭터는 [TRIBEAST]에 그대로 등장하여 그가 세상을 바라볼 때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풀어낸다. 특히, 하나의 큰 주제 아래 단 한 명의 프로듀서와 함께하는 방식 자체가 던말릭의 랩을 즐기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건 본작을 감상하는 데 핵심적이고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 스스로 랩퍼로서 강점은 물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하는지 또한, 명확히 알고 있다는 신호로 보이기 때문이다.
던말릭은 몇 개의 직언으로 끝낼 수 있는 찰나의 감정을 아주 장황하게 풀어내는데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곡마다 은유 가득한 시적 표현을 끊임없이 뱉어내며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주제를 정신없을 정도로 늘려놓는다. 하지만 주제가 모호해지기보다 오히려 강렬한 인상으로 힘을 더해가는 과정은 여러 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상투적인 표현을 철저하게 배제해 낯선 기운을 불어넣어 관심을 유도하고는, 마치 힘 조절이 안 된 듯 아슬아슬하게 플로우를 이어가다 굉장히 여유롭게 벌스를 빠져나오며 앨범 내내 듣는 이의 집중을 요구하는 능력은 전작에서 보여준 것 이상이다. 그야말로 ‘타이트(Tight)하다.’라는 감상이 절로 나오는 랩이다. 특히, 첫 트랙 “Come In To The World”에서 네 번째 트랙 “Tribeast”까지의 구간은 황홀할 정도다. 키마가 주조한 다채로운 무드의 비트 위로 일관되게 단단한 던말릭의 랩이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 구간이 끝난 뒤 나오는 “Dead Hero”와 “Rodeo(Safari)”는 단독 프로듀서인 키마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트랙들이다. 던말릭이 약간 힘을 빼면서 자연스레 프로덕션에 힘이 실리기도 한다. 드럼이 건조하게 퍼져가며 여운을 남기는, 흡사 로드 피네스(Lord Finesse)를 떠올리게 하는 붐뱁 비트의 탁월한 완성도는 치켜세울만 하다. 앨범 전체에 걸쳐 세련된 질감으로 주조한 루핑에 지루하지 않은 사운드 소스 운용을 더한 키마의 프로덕션은 던말릭 특유의 작법과 퍼포먼스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TRIBEAST]에서 던말릭은 한국 힙합 시장의 기형적 구조 및 구성원에 대한 환멸을 보내며 그것과는 섞이지 않겠다는 자기 선언을 담았다. 메시지 자체도 범상치 않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의 가치는 한국 힙합에서 보기 드물게 인상적인 가사 작법과 이를 성공적으로 구현하여 충분한 감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던말릭은 밀도 있는 두 장의 앨범을 통해 마치 작고 단단한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듯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대로라면 큰 그림이 무엇일지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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