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R-EST - T.F.O.N
남성훈 작성 | 2011-09-25 23:08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6 | 스크랩스크랩 | 27,292 View
Artist: 알이에스티(R-EST)
Album: T.F.O.N
Released: 2011-09-20
Rating : RRR+
Reviewer: 남성훈
오랜 시간에 걸쳐 한국힙합을 세심하게 따라온 사람이 아니라면 알이에스티(R-EST)라는 래퍼는 생소할 수 있다. 그의 존재를 알고 있더라도, 결과물보다는 팔로알토, 라임어택, 마이노스와 같은 한국힙합의 중요한 아티스트들을 배출해 냈던 레이블 '신의 의지'의 짧은 역사 속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꽤 많은 앨범에 참여하고 동료 엘큐(Elcue)와 'INC'라는 듀오를 결성하는 등 꾸준한 활동이 있었음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경력은, 드디어 첫 솔로 정규앨범인 [T.F.O.N(The Frangrance Of Night)]을 발표하는 시점에서 독일까 약일까? 어쨌든 오랜 경력이 전혀 그의 발목을 잡지 않는 느낌이 드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고, 그런 이유로 적어도 첫 솔로앨범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 중 하나인 '신선함'을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1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진 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을 차별화하는 '승부수'일 것이다. 그리고 [T.F.O.N]에서 알이에스티가 승부수로 던진 것은 바로 웨스트코스트 힙합으로 잘 알려진 쥐-펑크(g-Funk) 스타일의 프로덕션이다. 다수의 비트메이커들이 참여했음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승부수임이 더욱 쉽게 짐작된다. 그는 2004년 부틀렉(Bootleg) [What U Gonna Pick]에서도 쥐-펑크 사운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러나 몇 트랙을 쥐-펑크 스타일로 꾸미는 것과는 다르게 앨범 전체를 통해 웨스트코스트 음악을 표방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과감한 일임을 이해해야 한다. 쥐-펑크는 장르 팬들에게 단순히 묵직하게 퍼지는 베이스라인과 이를 가로지르는 신시사이저, 잦은 멜로디 라인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캘리포니아라는 공간과 부족처럼 느껴지는 특유의 후드(Hood) 문화, 그리고 갱스터 랩 판타지가 만들어내는 기운이 뒤섞여 있는 묘한 아련함의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하나의 스타일임에도 진정성, 자격론 같은 저항이 생기거나, 이제는 일부 장인들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므로 [T.F.O.N]의 감상포인트는 유행이 완전히 끝난 쥐-펑크 사운드가 가진 기능들을 단순 스타일로 얼마나 잘 녹여냈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성공적이다. 알이에스티는 과욕의 선을 넘지 않는다. 프로덕션이 영광을 누린 시대에 스스로 먹혀 우스꽝스러운 순간을 만들지 않는다. “Party Tonight”의 도입부에서 지역구 라디오 스테이션이 등장하는 것이 귀여운 오마주 정도로 느껴지는 것만 빼면, 90년대 쥐-펑크 스타일과 함께 만들어진 문화 코드들을 가사에 등장시키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지역에 기반을 둔 장르음악을 본격적으로 차용할 때 특정 지역의 패션과 문화 코드들을 몸에 두르고 흉내 내는 것이 필수 조건인양 행동하는 강박도 없다. 랩에서 기술적으로, 또 내용상으로 90년대 쥐-펑크 음악들에 담겼던 것들을 클리셰(Cliche)로 까는 실수를 하지 않은 것이다. 강박감이 없으니 프로덕션이 랩을 풍부하게 받쳐주는 본연의 기능은 충실해졌다. 인트로 “Arrival”에서 90년대 중반의 독 파운드(Tha Dogg Pound)를 연상시키는 비트가 출사표에 강렬함을 더하고, “927”, “Chillin’ Allday”에서는 전형적인 레이드백(Laid-back) 사운드의 기능이 작동하여 평범해 보이는 내용을 아련하게 띄우는 식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프로덕션의 기능이지만, 앞서 말한 특이한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존재감 때문에 한국힙합 씬에서 앨범 전체를 통해서는 쉽게 구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전체적으로 풍부한 양감이 부족한 것이 아쉽지만, 군더더기 없는 비트와 많지 않은 트랙 수로 마감된 앨범은 스타일의 과잉을 막으며 [T.F.O.N]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감상용 앨범으로 위치시켰다. 알이에스티의 특유의 보이스와 변칙적이지 않게 비트를 밟아가는 랩은 이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한다. 다만, 몇몇 곡에서 게스트 랩퍼에게 주도권을 내주는 모습을 보이는 건 아쉽다.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Like a Star". 옵티컬아이즈 XL의 묵직함 위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소스들이 치고 들어오는 비트와 자이언 티(Zion T)의 감각적인 보컬, 그리고 알이에스티의 통통 튀는 랩, 세 구성요소가 어느 하나 튀지 않고 하나로 엉켜 긴장감을 만드는 앨범의 베스트 트랙이다. 특히, 랩 사이의 틈을 채우며 곡을 지배하면서도 랩퍼의 존재를 오히려 부각하는 자이언 티의 장악력은 대단하다.
데뷔 후, 한참이 지나고 발표된 [T.F.O.N]은 알이에스티가 한국힙합 씬에 존재했던 긴 시간만큼 영리한 앨범임은 분명하다. 그가 선택한 프로덕션은 'R-EST'라는 브랜드를 차별화시켰고, [T.F.O.N]은 힙합팬은 물론, 다양한 장르음악을 경험하며 일상을 즐기려는 음악애호가들에게 힙합 특유의 멋과 편안함을 동시에 주는 앨범으로 선택되며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Track List
01. ARRIVAL (feat. DJ JUICE)
PRODUCED BY DEEP FLOW
COMPOSED AND ARRANGED BY DEEP FLOW
LYRICS BY R-EST
SCRATCH BY DJ JUICE
02. 927 (feat. RHYME-A-)
PRODUCED BY 도발 COMPOSED AND ARRANGED BY 도발 LYRICS BY R-EST, RHYME-A- CHORUS BY 샛별
03. PARTY TONIGHT (feat. 샛별)
PRODUCED BY JA, OPTICAL EYEZ COMPOSED AND ARRANGED BY JA VOCAL ARRANGED BY OPTICAL EYEZ LYRICS BY R-EST NARR. & ADDITIONAL VOICE BY JACKIE
04. LIKE A STAR (feat. ZION.T)
PRODUCED BY OPTICAL EYEZ, ZION.T COMPOSED AND ARRANGED BY OPTICAL EYEZ VOCAL ARRANGED BY ZION.T LYRICS BY R-EST, ZION.T
05. T.F.O.N (feat. SOULMAN)
PRODUCED BY 도발 COMPOSED AND ARRANGED BY 도발 LYRICS BY R-EST, SOULMAN GUITAR BY 백종성 FROM MIKO BAND
06. RAIN (feat. OPTICAL EYEZ)
PRODUCED BY OPTICAL EYEZ, ILLCOWBOY COMPOSED AND ARRANGED BY OPTICAL EYEZ LYRICS BY R-EST, OPTICAL EYEZ KEYBOARD BY ILLCOWBOY
07. KINGDOM (feat. MR.GORDO)
PRODUCED BY BRIKS, MR.GORDO COMPOSED AND ARRANGED BY BRIKS LYRICS BY R-EST
08. CHILLIN' ALLDAY (feat.PALOALTO)
PRODUCED BY 도발 COMPOSED AND ARRANGED BY 도발 LYRICS BY R-EST, PALOALTO TALKBOX BY 도발 SCRATCH BY DJ JUICE
09. WHAT'S MY NAME (feat. 진전)
PRODUCED BY OPTICAL EYEZ, 도발 COMPOSED AND ARRANGED BY OPTICAL EYEZ & 도발 LYRICS BY R-EST SCRATCH BY DJ JUICE
10. TIK TOK (feat. JUNGGIGO)
PRODUCED BY 도발,ILLCOWBOY,JUNGGIGO COMPOSED AND ARRANGED BY 도발 LYRICS BY R-EST, JUNGGIGO
11. PARTY TONIGHT (feat. 샛별) (RADIO 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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