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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Isiah - AUNTIE
황두하 작성 | 2020-09-25 20:32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2 | 스크랩스크랩 | 8,227 View
Artist: Ian Isiah
Album: AUNTIE
Released: 2020-08-31
Rating: RRRR
Reviewer: 황두하
브루클린 출신의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이안 아이재이야(Ian Isiah)의 음악은 젠더리스(genderless)하다. 본인의 정체성을 ‘젠더리스’로 정의한 그는, 음악 속에서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성적 욕망과 흑인이자 성소수자로서의 자긍심을 적극적으로 녹여왔다. 여기에 어릴적 성가대에서 노래한 경험을 바탕으로 가스펠과 PBR&B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섞어 보다 관능적이고 몽환적인 음악을 선보인다.
지난 두 장의 앨범 [The Love Champion](2013)과 [Shugga Sextape, Vol.1](2018)은 그의 음악적 색깔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특히, [Shugga Sextape, Vol.1]은 최소한의 악기와 보컬만을 사용해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음악으로 고유한 영역을 구축했다. 그는 음악 외에도 패션 브랜드 후드 바이 에어(Hood By Air)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하며 창의력을 분출해왔다.
약 2년 만에 발표한 [AUNTIE]는 전작과 매우 다른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앨범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레트로’다. 최근 2010년대를 휩쓸었던 PBR&B의 열풍이 사그라지면서, 위켄드(The Weeknd)처럼 그 흐름에 있던 많은 아티스트가 레트로 음악에 투신하는 경우를 왕왕 찾아볼 수 있다. [AUNTIE]도 이러한 경향을 띤다. 이를 위해 이안이 선택한 파트너는 캐나다 출신의 일렉트로닉 펑크(Funk) 듀오 크로미오(Chromeo)다. 2002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 베테랑 듀오는 이안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1989년 이전의 알앤비’를 구현하는 데에 집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두터운 베이스와 가벼운 신시사이저로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첫 트랙 “N.U.T.S”부터 미니멀한 악기 구성으로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는 가스펠 알앤비 트랙 “Loose Truth”까지 그 시절 알앤비의 정수를 제대로 구현해냈다. 반대로 말하면, 레트로 소울 리바이벌 이상의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 없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프로덕션의 완성도가 워낙 뛰어난 덕분에 이러한 아쉬움을 상쇄한다. '80년대 디스코, 펑크의 정수를 살려낸 “Can’t Call It”과 보코더를 적절히 사용한 코러스가 흥을 돋우는 “Lady Bug” 같은 곡들은 근래에 쏟아져 나오는 레트로풍의 트랙 중에서도 눈에 띄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여기에 기교를 최소화해 직선적으로 뻗어 나가다가도 부드러운 팔셰토와 풍성한 코러스로 따스함을 더한 보컬 퍼포먼스가 얹어져 제대로 된 레트로 알앤비가 완성됐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가족’, 그중에서도 ‘고모 혹은 이모(Auntie)’다. 그에게 ‘언티(Auntie)’란 부모와는 또 다른,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자신감을 갖게 만들어준 존재, 넓게는 흑인 공동체 그 자체다. “N.U.T.S”를 통해 ‘언티’의 가르침에 따라 본인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당당하게 천명하며 타인에게도 이러한 자부심을 가지라고 당부하고, “Loose Truth”에서는 신의 이름 아래 가족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고백한다.
“Princess Pouty”나 “First Love” 같은 러브 송이나 “Lady Bug” 같은 파티 앤썸도 흑인 공동체를 전제로 일어나는 상황들이다. 이를 통해 흑인과 가족이라는 가치를 긍정하고 구성원들의 안녕을 염원한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이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시대에 이러한 메시지는 강한 울림을 가질 수밖에 없다.
[AUNTIE]의 두 가지 키워드 ‘레트로’와 ‘가족’은 결국 흑인이라는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이안은 흥겨운 디스코/펑크 리듬 속에서 흑인 커뮤니티가 가진 힘을 보았고, 이를 뛰어난 완성도의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본작은 올해 레트로를 시도한 수많은 블랙뮤직 앨범 중에서도 꼭 언급해야 하는 작품 중 하나다. 그리고 이안 아이재이야의 이름도 지금보다 더 크게 주목받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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