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Black Moon - Rise of Da Moon
오정민 작성 | 2019-11-24 18:50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2 | 스크랩스크랩 | 11,571 View
Artist: Black Moon
Album: Rise of Da Moon
Released: 2019-10-18
Rating: RRRR
Reviewer: 오정민
동부 힙합 역사 속에서 1993년은 특히 기념비적인 해 중 하나로 기억된다. 동부 힙합을 대표하는 아이코닉(iconic)한 아티스트들의 데뷔 앨범이 줄줄이 발표된 해이기 때문이다. 우탱 클랜(Wu-Tang Clan)의 [Enter the Wu-Tang (36 Chambers)]과 맙 딥(Mobb Deep)의 [Juvenile Hell]이 대표적이다.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명세는 덜했으나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명반으로 블랙 문(Black Moon)의 첫 앨범인 [Enta da Stage]가 있었다. 가사에 담긴 공격적인 메시지와 강렬한 표현, 거칠면서도 미니멀한 드럼과 두께감 있는 베이스 전개 등, 동부 붐뱁(Boom Bap) 힙합의 상징적 요소를 완성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블랙 문의 다음 앨범들은 데뷔작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했다. 두 번째 앨범 [War Zone]은 나름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로우(Raw)한 매력이 희석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 번째 앨범 [Total Eclipse]는 모든 면에서 전작들의 하위 호환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였다. 그 후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블랙 문이라는 유닛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렇기에 [Total Eclipse] 이후, 16년이나 지난 지금, 팀의 재결합과 더불어 네 번째 앨범 [Rise of Da Moon]이 발매된 것은 놀랍다.
본작은 마치 데뷔 시절의 블랙 문이 돌아온 것처럼 강한 인상을 남긴다. 꽤 오랜 시간의 공백기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과거의 영광과 향수를 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Rise of Da Moon] 은 그들의 첫 앨범인 [Enta da Stage]의 직계 후속작이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1990년대 동부 힙합 고유의 장르적 쾌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프로듀싱은 여전히 멤버 디제이 이블 디(DJ Evil Dee)의 팀인 비트마이너즈(Da Beatminerz)가 전담했다. 둔중하고 거친 드럼과 묵직한 베이스라인이 기저에 깔린 프로덕션은 특유의 건조한 분위기를 잔뜩 조성한다. “Creep with Me”에서의 낮고 위협적인 피아노 룹이나, “Da Don Flow”에서의 적정하게 커팅된 로이 에이어스(Roy Ayers)의 “Liquid Love” 샘플 운용은 건조한 드럼과 만나 특유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붓 캠프 클릭(Boot Camp Clik)만의 붐뱁 사운드를 창조했던 비트마이너즈의 감각이 여전히 날카롭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멤버인 벅샷(Buckshot)과 파이브 피트(5 Ft)의 랩 퍼포먼스 역시 빛을 발한다. 데뷔 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랩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움을 간직한 랩과 더불어, 촘촘한 라임 디자인 덕에 지루할 틈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뱉어내는 브래거도시오(Braggadocio) 가사의 무게감 또한 여전히 예사롭지 않다.
벅샷의 랩은 과거보다 다소 차분해진 톤으로 전개되지만, 여전히 완성형 래퍼다운 최상위 급의 기술을 보여준다. 파이브 피트의 퍼포먼스 향상도 놀랍다. 과거 벅샷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받던 그의 랩은 본작에서 충분히 1인분 이상의 완성도를 보이며 균형적으로 트랙에 녹아든다. 파이브 피트는 솔로곡인 “General Flava”에서 절묘한 완급 조절을 통해 베테랑 하드코어 래퍼로서의 자존심을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우탱 클랜의 메쏘드 맨(Method Man)과 스미프 앤 웨슨(Smiff-N-Wessun)의 스틸(Steele)이 참여한 “Ease Back”이나 스미프 앤 웨슨이 함께한 “Impossible”처럼 게스트와의 조합도 좋다. 스타일리스틱스(Stylistics)의 동명의 곡을 절묘하게 샘플링한 “Children of the Night”, 마치 과거의 앨범 작법을 오마주한 듯 벅샷과 파이브 피트가 교차로 랩을 주고받는 “At Night”도 놓쳐서는 안될 인상적인 트랙이다.
‘90년대 힙합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당대에 활약한 베테랑들의 재결합은 그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사건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그들의 여전히 뛰어난 기량과 탁월한 음악이 담긴 작품까지 마주한다는 건 큰 선물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Rise of Da Moon]을 통해 블랙 문은 성공적으로 부활했다.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오정민
via 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8815&m=view&s=review&c=17&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