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Big K.R.I.T. - K.R.I.T. Iz Here
이진석 작성 | 2019-08-05 23:55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5 | 스크랩스크랩 | 16,011 View
Artist: Big K.R.I.T.
Album: K.R.I.T. Iz Here
Released: 2019-07-12
Rating: RRRR
Reviewer: 이진석
미국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뮤지션 중에 빅 크릿(Big K.R.I.T)만큼 완벽한 커리어를 쌓아온 이도 드물다. 미시시피 출신으로 미국 남부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고 자란 그는 티아이(T.I)를 필두로 2000’년대 중,후반을 휩쓸었던 트랩 뮤지션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던 힙합을 계승했다. 그들이 등장하기 전의 사운드, 즉, 유쥐케이(UGK)나 에잇볼 앤 엠제이쥐(8Ball & MJG)로 대표되는 서던 힙합 프로덕션을 현대식으로 재현하는 동시에, 탁월한 작사력을 더해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끌어내는 식이다.
그 결과 탄생한 빅 크릿의 데뷔작, [Live From The Underground]는 같은 해 발매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Good Kid, M.A.A.D City]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놀라운 결과물이었다. 이후, 이어진 [Cadillactica]와 [4eva Is A Mighty Long Time]에서도 기존의 서던 힙합을 중심으로 사이키델릭, 블루스, 재즈, 가스펠과 현대식 트랩 뱅어까지, 외부의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융합해 모든 앨범을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편, 이번 네 번째 앨범 [K.R.I.T. Iz Here]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약간 다르다. 우선, 이번 작품은 크릿의 2010년 믹스테잎 [K.R.I.T. Wuz Here]의 속편 격으로 만들어졌다. “Return of 4eva”를 통해 그의 데뷔작 제목인 “Live From The Underground”를 처음으로 외친 바로 그 믹스테잎이다. 마치, 여행을 떠나 서던 힙합을 부흥시키고 금의환향한 후 그간의 모험담을 풀어놓는 듯하다.
트랙의 면면을 살펴보자. 피치업 한 소울 샘플을 드라마틱하게 휘몰아치며 귀환을 알리는 “K.R.I.T. Here”를 지나 먹먹한 트랩 프로덕션의 “I Been Waitin”과 2000년대 중반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의 음악이 연상되는 “Make It Easy”가 이어진다. 크릿 특유의 과감한 실험성은 눈에 띄지 않지만, 넘실거리는 랩과 재기 넘치는 가사는 여전히 건재하다. 릴 웨인(Lil Wayne)을 초청한 뱅어 트랙 “Addiction”과 진중한 어조로 사유를 뿌리는 “Energy”까지 인상적인 곡들이 이어진다.
앨범의 진가는 후반부에 이르러 드러난다. “Learned From Texas”에서 빅 크릿은 찹드 앤 스크류드(Chopped and Screwed)작법을 차용함으로써 디제이 스크류(DJ Screw)의 업적을 기리고, 다시금 UGK를 언급하며 자신이 받은 영향을 드러낸다. 크릿이 남부 힙합에 바치는 헌정임과 동시에, 그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트랙이다.
스트립 클럽에서의 경험을 색다른 관점으로 풀어낸 “Blue Flame Ballet” 역시 특기할만하다. 더불어 캠퍼(Camper)의 보컬과 함께 긴박하게 몰아치는 “Life In the Sun”을 거쳐 풍성한 관악기와 두툼하게 깔린 베이스, 재즈 피아노, 스윙 리듬을 섞은 다이내믹한 재즈 연주 위로 본인의 출신을 노래한 “M.I.S.S.I.S.S.I.P.P.I.”로 이어지는 부분은 그야말로 최고의 순간을 선사한다.
다만, 앨범 중반부의 몇몇 곡은 다소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리코 러브(Rico Love)의 코러스와 더불어 다소 진부한 팝 넘버의 형식을 취한 “Obvious”는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옐라 비지(Yella Beezy)를 초청하여 또 다른 뱅어를 노린 “I Made”나 제이콜(J.Cole)의 참여로 기대를 모았으나 다소 밋밋하게 지나간 “Prove It” 역시 아쉬움을 남긴다. 그나마 균형을 잡는 건 미시시피 아이들의 롤모델이자 영웅으로 남고자 하는 다짐을 담은 “Believe” 정도다.
[K.R.I.T. Iz Here]는 빅 크릿의 앞선 세 장의 앨범과는 달리, 번뜩이는 시도가 바탕이 된 작품은 아니다. 그보단 일련의 여정을 마친 후, 그간의 행적을 복기하며 커리어의 제1막을 마무리하는 듯한 인상에 가깝다. 그래서 크릿의 디스코그래피 내에선 다소 밋밋한 결과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크릿의 전작들과 견주었을 때의 얘기다. [K.R.I.T. Iz Here]의 완성도는 역시 탁월하다. 크릿의 래핑과 남다른 작사력, 그리고 뿌리 깊은 음악관은 여전히 서던 힙합의 현재를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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