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Blood Orange - Negro Swan
황두하 작성 | 2018-08-30 02:47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6 | 스크랩스크랩 | 17,057 View
Artist: Blood Orange
Album: Negro Swan
Released: 2018-08-24
Rating: RRRR
Reviewer: 황두하
전위파 아티스트 데브 하인스(Dev Hynes)는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수년간 놀라운 음악적 성취를 이루었다. 이전보다 알앤비, 일렉트로닉에 초점을 맞춘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광활한 사운드 스케이프 위로 미국 사회에서 소수자로서 겪은 감정들을 정제된 언어로 풀어내었다. 2016년에 발표한 세 번째 정규 앨범 [Freetown Sound]는 상이한 장르를 섞어내는 그의 기량이 절정에 올랐음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다양한 음악적 장치들과 넘실거리는 리듬,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로 황홀한 감흥을 안겨주었다.
[Negro Swan]은 그가 블러드 오렌지로서 발표하는 네 번째 정규작이다. 전작들처럼 알앤비, 일렉트로닉, 힙합, 펑크(Funk), 뉴웨이브, 신스팝 등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가운데 블랙뮤직의 비중이 늘어났다. 더불어 전체적으로 신시사이저보다 어쿠스틱 기타를 비롯한 리얼 악기를 더 많이 사용하여 따스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미디엄 템포 알앤비 트랙 “Charcoal Baby”나 기타 하나로 단출하게 진행되는 “Smoke” 등은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앨범 전반적으로 차분해진 인상이다. 더불어 멜로디 라인이 더욱 쉽고 명징해지면서 보다 가볍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아예 다른 장르의 게스트를 초빙해 그들의 음악적 색깔을 흡수한 점 또한 눈에 띈다.
퍼프 대디(Puff Daddy)가 목소리를 더한 힙합 소울 트랙 “Hope”와 에이셉 록키(A$AP Rocky)와 프로젝트 팻(Project Pat)이 참여해 남부 힙합의 바이브를 불어넣은 “Chewing Gum”, 가스펠 싱어 이안 이사야(Ian Isiah)가 성스러운 분위기를 더한 “Holy Will”이 그것이다. 특히, “Chewing Gum”에서 킹핀 스키니 핌프(Kingpin Skinny Pimp)의 “Lookin’ For Da Chewin”을 샘플링하고, “Holy Will”에서는 이안이 더 클락 시스터즈(The Clock Sisters)의 “Center of Thy Will” 중 한 소절을 부르는 시도를 통해 각 장르가 가진 특징을 적극 받아들인 다음, 본인만의 색깔로 구현해낸 점이 인상적이다.
일렉트로닉 성향이 강한 트랙들도 여전하다. 간간히 울리는 색소폰이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신스팝 트랙 “Saint”, 물에 젖은 듯 먹먹한 질감의 드럼이 인상적인 “Dagenham Dream”, 일렉트로닉 펑크 사운드를 차용해 스티브 레이시(Stave Lacy)와 좋은 합을 보여준 “Out of Your League” 등은 대표적으로 그의 날카로운 음악적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트랙들이다.
앨범에 담긴 내용도 달라졌다. 그 어느 때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첫 트랙인 “Orlando”를 통해 학창시절 인종차별과 따돌림을 당한 경험을 공유한다. 이후 그로 인해 생겨난 트라우마와 혼란, 분노 등의 감정을 순서 없이 토로하고, 결국 본인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극복해낸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그동안 잘 이야기되지 않았던 흑인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다룸으로써 모두의 경험이 되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위로를 건네는 조지아 앤 멀드로우(Georgia Anne Muldrow)의 따스한 보컬이 담긴 “Runnin`”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희망을 엿보는 마지막 트랙 “Smoke”가 주는 감동이 상당하다.
본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바로 TV 쇼 진행자이자 트랜스젠더 인권운동가 재닛 모크(Janet Mock)다. 그녀는 앨범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스킷에 참여하였는데, 이것이 마치 데브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의 과정으로 이끄는 상담사 같은 역할을 한다. 일례로 그녀가 “Family”에서 가족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면, 이어지는 “Charcoal Baby”에서 데브가 대답하는 식이다. 이처럼 간단한 장치로 두서없이 이어진 이야기를 한데 묶어주었다. 앨범을 구성하는 데브의 역량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전작만큼 강렬하지는 않지만, [Negro Swan]은 데브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또 한 번 성공적으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블랙뮤직과 문화에 대한 애정을 본인의 경험과 섞어서 잘 담아냈고, 덕분에 전에 없던 새로운 결의 작품이 탄생했다. ‘전위파 아티스트’라는 수식어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결과물이다. 데브의 탁월한 음악적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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