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황두하 작성 | 2015-11-27 22:33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8 | 스크랩스크랩 | 21,451 View
Artist: Cee Lo Green
Album: Heart Blanche
Released: 2015-11-06
Rating:Rating: RRR+
Reviewer: 황두하
애틀랜타(Atlanta) 힙합 씬을 일으킨 이들 중 하나인 구디 몹(Goodie Mob)과 댄저 마우스(Danger Mouse)와 합작으로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린 날스 바클리(Gnarls Barkley) 등, 씨로 그린(Cee Lo Gree)은 그동안 음악적으로 굵직한 족적을 남겨왔다. 소울 머신의 면모를 보여주는 솔로 활동 역시 전작 [Lady Killer]를 통해 정점을 찍었다. 앨범은 옛 소울의 감흥을 재현하는 비슷한 성향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줬고, 수록곡 “Fuck You”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했다.
이후에도 2012년에 발표한 크리스마스 앨범 [Cee Lo's Magic Moment]와 이듬해 구디 몹에 다시 합류하여 발표한 [Age Against The Machine]가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개인사적으로는 다사다난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2012년 엑스터시를 이용해서 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씨로는 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마약 소지 혐의로 중죄를 선고받았다. 사건 이후 처음 내놓은 결과물인 [Heart Blanche]에는 이렇게 한 차례 홍역을 치른 후 그가 느낀 후회와 깨달음이 담겨있다.
앨범의 방향은 그동안 씨로가 발표했던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60-70년대 모타운(Motown) 시절의 고전 소울과 펑크(Funk)를 바탕으로 하면서, 옛 음악에 대한 향수의 범위를 80년대까지 확장한다.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뮤지션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자신의 음악적 뿌리가 80년대에 있음을 말하는 디스코/펑크 트랙 “Est. 1980s”는 대표적이다. 오페라 형식의 보컬로 시작하여 80~90년대 디스코-댄스 트랙의 전형을 따르는 극적인 구성이 인상적인 “Tonight”과 80년대에 인기를 끈 미 유명 텔레비전 쇼 [택시, Taxi]의 주제가였던 밥 제임스(Bob James)의 “Angela”를 샘플링한 “Sign of the Times” 역시 연장선에 있는 곡들이다.
이 같은 프로덕션을 배경으로 씨로는 첫 곡인 “Heart Blanche Intro”에서부터 스캔들 뒤의 깨달음과 이를 긍정적인 기운으로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블루스를 표방한 “CeeLo Green Sings The Blues”는 가장 직접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트랙이다. 더불어 “Robin Williams”에서는 작년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미 유명 코미디언이자 배우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와 그와 비슷하게 자살한 배우, 코미디언을 언급하며 웃음 뒤에 숨겨진 괴로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Music To My Soul”에선 자신과 함께 음악을 시작한 이들을 추억하며 결국 음악이 가장 큰 위로임을 설파한다.
그러나 인상적인 부분 못지않게 아쉬움도 있다. 마크 론슨(Mark Ronson), 더 퓨처리스틱(The Futuristic) 등등, 지난 앨범보다 다양해진 프로듀서 진이 구현한 곡들은 관성적인 진행 탓에 씨로의 탁월한 보컬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느낌을 준다. 그의 과거 작품들이나 매해 꾸준히 나오는 훌륭한 레트로 소울 트랙들과 비교해보면, 이러한 점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히, 타이트한 구성과 흐름의 중반부에 비해, 초반과 후반에 이어지는 몇몇 곡들은 느슨한 어레인지와 편곡, 그리고 배치의 이질감 탓에 집중력을 흐리는데, 일례로, “Mother May I”, “Working Class Heroes(Work)”, “Thorns”, “The Glory Games” 등에서 나타나는 진부한 멜로디 진행은 전체적인 감흥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너무 안정적인 진행에만 기대다 보니 전작의 “Fuck You”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곡도 부재하다.
분명 [Heart Blanche]는 불미스런 사건을 겪은 한 명의 아티스트가 이를 음악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담아낸 앨범이다. 하지만 너무 안정적인 방향을 선택한 바람에 과거 결과물만큼 감탄을 자아내진 못했다. 여전히 매력적인 소울 머신의 보컬과 준수한 곡들을 확인할 수 있어 반가우나 한편으론 이번이 그의 솔로 활동에서 전환점이 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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