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명령
Ab-Soul – These Days...
오규진 작성 | 2014-07-09 23:12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5 | 스크랩스크랩 | 22,167 View
Artist: Ab-Soul
Album: These Days...
Released: 2014-06-24
Rating:Rating: RRR+
Reviewer: 오규진
언젠가부터 힙합 앨범을 평가하는 데 ‘일관성’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모든 이의 극찬을 받은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Good Kid, M.A.A.D. City] 또한, 앨범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일관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잘 만들어진 ‘컨셉트 앨범(Concept Album)’이었다. 비록, 이 앨범에 빛이 가려졌지만, 같은 해 발매된 블랙 히피(Black Hippy) 동료 앱-소울(Ab-Soul)의 [Control System] 역시 영적인 계몽을 부르짖는 또 한 장의 준수한 컨셉트 앨범이었고, 그렇기에 그의 이번 앨범 [These Days…]에서도 일관성의 미를 기대할만했다.
사실 앱-소울은 매 앨범을 하나의 정해진 의도 아래 만들어왔다. 단지 전작과 이 앨범은 주제가 다를 뿐이다. [Control System]의 의도는 “Track Two”에서 'I’m stimulating the hoes and educating my niggas'라고 설파했듯이 그의 이웃들에게 ‘깨어 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These Days…]의 의도는 앨범 제목이 시사하듯이 요즘 그의 생각과 삶 등을 전반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스스로 그가 이번 앨범을 자평하길 ‘앨범이 아니라 타임캡슐에 가깝다’고 했으니, 전작의 목적이 ‘청자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본작의 목적은 ‘자신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제작자의 의도를 염두에 두면 이번 앨범의 구조를 훨씬 더 개연성 있게 파악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Kendrick Lamar’s Interlude”를 기점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지는데, 앞의 반은 현재 그의 표면적인 삶을 묘사하고, 뒤의 반은 현재 그의 생각을 묘사한다. 흥미롭게도 두 파트의 시작을 알리는 두 곡 “God’s Reign (These Days)”와 “Closure”는 앨범에서 앱-소울의 전 여자친구인 알로리 조(Alori Joh)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유일한 두 곡이다. 그녀는 [Control System]을 발매하기 몇 달 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 일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이 앱-소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나왔던 전작에서는 “The Book of Soul”에서 그 여파가 여실히 드러났고, 2년이 지난 현재에선 조금 더 초연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혼란스러워하는 건 여전하다. “God’s Reign (These Days)”에선 그녀를 극복하고 일어선 것으로 묘사한 것과 달리 “Closure”에서는 지금의 여자친구 앞에서도 알로리 조의 생각이 난다며 애절한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바로 이 두 곡의 차이점이 전반부와 후반부를 대비시키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중심으로 주목할만한 곡이 이어진다. 마리화나의 슬랭인 ‘tree’를 사용하여 마리화나에 자연의 건강한 이미지를 재치있게 연결시키는 “Tree of Life”, 스쿨보이 큐(Schoolboy Q)와 평행한 벌스를 뱉으며 돈을 자랑하는 “Hunnid Stax”는 단순한 주제를 복잡한 언어 유희로 풀어내는 곡들이다. “Dub Sac”에선 유쾌한 자기 자랑이 끝난 후 예전의 가난했던 시절을 솔직하게 그려내고, “World Runners”에선 루페 피애스코(Lupe Fiasco)와 함께 최상의 언어유희를 선보이며, “Just Have Fun”에선 마리화나와 함께 즐겁게 살자는 메시지를 설파하다 사실은 자신도 우울증 때문에 약을 끊을 수 없다는 고백과 함께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후반부에선 “Stigmata”로 대표되는 종교적인 주제를 통해 자신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묘사하는데, 대니 브라운(Danny Brown)의 특이한 플로우와 맥 밀러(Mac Miller)의 샘플을 쓰지 않았음에도 사이키델릭(Psychedelic)함이 느껴지는 비트의 “Ride Slow”를 통해 그 방점을 찍는다.
그러나 나름대로 균형 잡힌 의도가 느껴짐에도 [These Days…]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조금 부족한 앨범이 되었다. 먼저 프로덕션의 수준이 전작에 비해 낮아졌다. [Control System]에선 사운웨이브(Sounwave), 데이브 프리(Dave Free), 스카이 허치(Skhye Hutch), 태 비스트(Tae Beast)가 각자 복수의 곡들을 작업하면서 앨범을 절반 넘게 책임졌고, 그 덕에 앨범 전체의 사운드 역시 컨셉트와 발맞춘 일관성이 돋보였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선 태 비스트를 제외하고 모든 프로듀서가 하나의 곡만을 작업했고, 이 때문에 전반적으로 비트의 완성도와 감흥이 들쑥날쑥이다. 특히, 가장 큰 괴리감은 “Twact”에서 느껴지는데, 별 내용 없는 ‘파티하자’라는 가사는 차치하더라도 디제이 머스타드(DJ Mustard)를 어설프게 따라 한듯한 비트는 앱-소울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이외에도 릭 로스(Rick Ross)의 특별할 것 없는 벌스(Verse)가 들어간 “Nevermind That”이나 [Section.80]의 “Ab-Soul’s Outro”를 잇는 의도는 좋았지만, 앨범의 분위기에 좀처럼 어우러지지 않는 “Kendrick Lamar’s Interlude”와 같은 곡들은 앨범을 감상하는 중간중간 의문을 갖게 한다. 이처럼 앨범의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는 부분에 있는 곡들이 감상을 크게 방해한다. 만약 이 세 트랙을 앨범에서 제거한다면 [These Days…]는 훨씬 괜찮은 작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더불어 전반부의 끝 곡들인 “Dub Sac”, “World Runners”, “Just Have Fun”이 언어유희와 메시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곡들이었고, 후반부의 두 번째 곡인 “Sapiosexual”은 지적인 가사로 청자들의 머리를 '휘젓겠다(Mindfuck)'고 선언하는 가벼운 분위기의 곡이기 때문에, 굳이 앨범을 칼로 자르듯이 반으로 자르지 않았어도 주제의 전환이 자연스레 이루어졌을 것이다.
직설적이면서 별 생각 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 메시지를 숨겨야 하는 이번 앨범의 특성상, 앱-소울은 오히려 전작에 비해 더 수준 높은 언어유희와 가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앨범이 안고 있는 몇 가지의 단점이 더욱 안타깝다. 그가 조금 더 영리하게 꾸렸다면, 전작을 뛰어넘는 앨범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텐데, 좋은 의도에 비해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이 따라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번 앨범은 [Control System]이라는 한정된 분위기의 컨셉트 앨범에서 벗어나는 작품으로서 역할을 다한다. 그런 의미에서 앱-소울의 다음 앨범은 청자의 경험을 더 존중하는 작품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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